5회 더 뮤지컬 어워즈 소극장 창작 뮤지컬 상, 18회 한국 뮤지컬 대상 베스트 창작 뮤지컬 상에 빛나는 <왕세자 실종 사건>은 성남, 부천 등의 아트 센터를 통해 장기 공연 중이다. 제목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조선'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하룻밤 사이에 '실종'된 왕세자, 즉 왕과 중전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스터리 멜로'를 내건 뮤지컬답게, 뮤지컬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위해 맹목적인 '중전'과 이런 중전에 맞대응하여 지킬 것이 많은 임금과 측근의 긴장감넘치는 대결로 이어진다. 길고도 지리한 궁궐의 밤을 견디기 위해 하릴없이 술잔이나 기울이던 어미 중전은 하지만 아들의 '실종' 앞에 지아비인 국본 임금은 물론이요, 그간 자신의 측근이라 생각했던 모두에게 '의심'을 던진다. 아들을 잃은 어미이기에 가능하다. 물론 뮤지컬 <왕세자 실종 사건>은 이렇게 맹목적인 어미의 아들 실종 사건으로 시작하여, 뜻밖에도 연극이 표방하듯 '미스터리 멜로'로 장르를 전환한다. 하지만, 연극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래서 왕제자는? 이라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듯, 기꺼이 멜로의 떡밥이 된 '아들의 실종'과 '애타는 모정'은 이 연극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 가장 큰 변수였다. 




자식잃은 어미들이 만들어 가는 스릴러 
연극만이 아니다. 손예진의 영화 인생의 변곡점이라 칭해지는 <비밀은 없다>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남편 종찬(김주혁 분)의 내조에 바빴던 아내 연홍(손예진 분)은 딸이 실종되자 오로지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정치 행보에 바쁜 남편에 실망하고 분노하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의 벽 앞에서 엄마 연홍은 하루하루 돌아오지 않는 혈육의 부재에 미쳐가며, 그러면서도 딸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로 오면 '모정'의 시련은 더 익숙하다. 22일부터 방영이 시작된 <원티드> 역시 잠시잠깐 사이에 7살 먹은 아들을 잃은 최정상의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주인공이다. 아들을 데려간 유괴범은 그녀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에게 '리얼리티 쇼'를 방영할 것을 요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퇴를 선언했던 정혜인은 자신의 은퇴를 번복하고, 아들을 찾는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으로 다시 돌아온다. 매회, 유괴범의 미션에 따라 아들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그녀, 그녀는 아들을 찾기 위해 맹목적 모정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때론 부도덕할 수도 있는 수단 사이에서 고뇌하고,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 주변인들의 엇갈기는 이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단면으로 상징된다. 

이런 아들을 잃은 엄마의 고군분투는 드라마로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방영되었던 이보영 주연의 <신의 선물-14일> 역시 그 시작은 시사프로 방송 작가인 김수현이 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역시도 여기에서 '방송'이 배경으로 등장하며, 엄마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차치하고, 홀로 아이를 찾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딸의 주검, 통곡하는 그녀에게, 뜻밖에도 '신의 선물'처럼 되돌려진 14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엄마는 다시 '폭주'한다. 

위의 두 드라마처럼 자식을 잃은 경우는 아니지만, 2015년 방영된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주요한 극의 동인 역시 '모성'이다. 자식을 잃고 그 잃은 아이를 찾기 위해 맹목적인 모정과 달리,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우리가 관성적으로 알고 있는 '모정'의 또 다른 면을, 우리 사회가 가진 비윤리적은 속내의 상징으로 차용한다. 



스릴러 속의 '모성', 가족이 허물어져가는 사회를 반증하다. 
이렇게 뮤지컬, 영화, 그리고 몇 편의 드라마들이 '모성'을 엔진으로 삼는다. 또한 이들 작품에서 '어미'는 '어미'로서 존재감의 의미가 되는 아이를 잃고, 절규하며, 그 스스로 아이를 찾기 위해 '스릴러'의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분야를 막론하고, 스릴러에서 '모성'이 '엔진'으로 추진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 위에 세워진, 특히나 사회적 안전 장치가 미흡한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한 사회 속에서 사람이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기에 '대중적 흡인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엄마의 실종을 다룬 <엄마를 부탁해>가 센세이셔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듯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엄마'란 존재는 가치 판단 이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대중적'인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주요 장치가 된다. 

동시에, 최근 '모성'이 스릴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역설적으로 '모성'의 위기, '가족'의 위기를 상징한다. <왕세자 살인 사건>의 중전은 아들이 실종되는 그 시각, 임금이 찾지 않는 처소에서 홀로 궁인을 상대로 술잔을 기울이다, 아들의 실종조차 놓쳤으며, <신의 선물-14일>이나, <원티드>의 엄마는 아이를 자상하게 살피기에 너무 바빠던 커리어 우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모성'에의 후회를 짊어지고, 자식의 실종에 '순교자'가 된다.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엄마'들이 그 불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모성'의 신화를 써내려 가는 반면, 정작 아이에게 유전자적 정보를 물려준 '아비'의 존재는 무기력하거나, 오히려 '적'이 된다. <왕세자 살인 사건>의 임금은 실종된 왕세자보다 자신의 위신이 더 중요하고, <비밀은 없다> 국회의원 후보 아버지는 자식의 실종조차 국회의원 당선의 디딤돌로 여긴다. 그리고 그의 부도덕함은 종내 그를 '비속 살해범'으로 몰고 간다. 드라마에서 아버지들도 다르지 않다. <신의 선물-14일>에서도 딸의 실종과 죽음의 귀책 사유는 궁극적으로 양심적인 변호사연했던 아버지 한기훈(김태우 분)로 귀결된다. <원티드>의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들의 실종과 아내의 절박함에 팔짱을 끼고 관전할 뿐이다. 아비는 있으되, 무기력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위신이나 이기적 욕심으로 자식마저 희생하는 존재가 된다. 마찬가지로, 엄마와 아이를 '사회'는 전혀 보호해 주지 않을 뿐더러, 자식잃은 어미가 기댈 언덕조차 되지 않는다. 

부도덕한 아버지, 뒤늦게나마 '모성'의 이름으로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이들은 부도덕해진 '가부장제'와, 사회,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본원적 모성'이란 대립각을 세운다. 그를 통해 이제 우리 사회를 버티어 가고 있는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기력하며, 허울뿐인 단위인가를 드러내고 있다. 본의 아닌 '모계 사회'로의 귀결이다. 


by meditator 2016. 7.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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