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으로 방송된 <sbs스페셜-엄마의 전쟁> 1부, <나는 나쁜 엄마입니까?>는 일요일 밤 11시가 넘어 늦은 시간 방영된 다큐임에도 다음 날 검색어를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엄마라면 느낄 절박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며 시작한 <엄마의 전쟁>은 2부 <캥거루 맘의 비밀>에 이어, 1월 17일 3부 <1m의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로 3부작를 마무리하였다. 




엄마들의 끝나지 않는 전쟁?
시작은 '맘충'으로 불려진다는 이 시대 엄마들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이른바 '애착 육아'라고, '적어도 3년은 아이를 품 안에서 키워야 하며, 3초도 눈을 떼서는 안된다'라는 아이와 엄마의 '애착 형성'을 아이의 성격 형성에 근간으로 삼는 '육아 방식'이 이 시대 대표적 육아 방식이 되면서 '엄마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는데서 다큐의 문제 의식은 시작된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전력을 투구해야만 하고, 그런 극성스런 엄마들의 육아 방식에 대해 일부에서는 '몰지각한 신인류', '맘충'이라고 모욕적인 표현까지 쓰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정작 들여다 보면, 그 '전쟁'에 휘말린 '엄마'들의 사정도 녹록치 않다는 것이라는데 다큐의 시선은 놓여져 있다. 

그리고 '애착 육아'가 중요한 사회에서, 자신의 일과 육아, 그리고 가정이라는 두 마리, 혹은 세 마리의 토끼를 쫓는 엄마들의 일상은 '분초'를 다투는 말 그대로 '전쟁'이요, 그런 엄마들의 빈 자리에 어김없이 2부에서 등장한 '캥거루맘'이라 지칭되는 '황혼육아'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 의식은 그럴 듯하고, 막상 다큐를 통해 보여진 현실은 적나라한데, 막상 3부까지 마무리된 <엄마의 전쟁>은 어쩐지, 마치 그 예전 대학 역사개론 시간에 한 시간 내내 사건을 쭈욱 나열하고는 그 시대의 역사를 흐뭇하게 쫑내버리는 어떤 역사 교수님이 떠오른다. 이것도 엄마의 전쟁이요, 저것도 엄마의 전쟁이요, 이렇게 엄마들은 '전쟁' 중에 있다. 이상 끝! 뭐 이런 식인 느낌?



엄마들의 중구난방 전쟁
1부 <나는 나쁜 엄마입니까?>가 방영된 이후 화제가 되었던 것은 제목 그대로 다큐에 등장했던 엄마들이 나쁜 엄마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의도한대로 우리 시대의 워킹맘의 '적나라한 가족 사진'이 가감없이 보여졌다. 연세대를 나와 국내 굴지 대기업에 근무하는 워킹맘의 24시간이 모자른 육아하며,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다섯 명의 '아이 돌보미 어벤져스'군단까지 현실은 절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시기에 도움이 안되는 어벤져스 덕에, 발을 동동 구르며 책임을 져야 하는 35살 양정아 씨의 상황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안타까움에 비례하여, 그 다음 등장한 33세 간호사 남궁정아씨는, 그렇게 아이와 육아라는 양 손의 떡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양정아 씨에 비해 마치 '가정'과 '육아'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처럼 보여져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정말 다큐를 보다보면 그녀의 남편 말처럼, 그녀는 가정을, 그리고 아이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은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2부에 등장한 한때 사교계 여왕이었으나, 이제는 딸이 데리고 온 손자들과 씨름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황복심씨의 딸 역시 논란이 되었다. 다큐의 시선은 '자고로 얘들은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는 엄마 세대 육아와 그런 엄마와 달리, 아이의 이유식을 위해서는 5만원 어치의 소고기도 아까워 하지 않는 딸 세대의 육아 방식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하였지만 정작 다큐 시선 속에 보여진 것은 어쩐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딸의 육아 방식이다. 

그래도 1부에서는 현실에서 절박한 워킹맘의 육아 전쟁과, 이어진 2부에서는 요즘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황혼 육아의 가치관 전쟁을 다룬 점에서 일련의 당대성과 시사성을 가진 '엄마의 전쟁'이었다. 그러다, 이 다큐의 마무리가 되어야 할 3부에 와서 다큐는, 정작 1,2부에서 제기한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튼다. 스물 셋에 시집와서 30년이 넘는 대가족을 건사하느라 일에 파묻혀 사는 일개미 엄마 김미숙씨와, 그녀의 베짱이 남편, 그리고 13명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대식구에 워킹맘까지 하는 함은주씨의 고달픈 일상으로 침전해 버린다. 물론 1부도, 2부도 그리고 3부도 여전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엄마의 전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전쟁도 전쟁 나름이지, 이렇게 쭈욱 '엄마가 전쟁'을 하고 있다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서로 이해하고 다가가면 다 해결되는가?
전쟁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어떤 상대를 대상으로 해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3부작 <엄마의 전쟁>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 다큐는 제작하는 제작진이 이 시대 엄마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 사실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그 전쟁의 '주적'이 누군인지에 대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즉, 간호사이면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고자 하는 엄마의 욕구는, 그녀의 모성성의 부재로 욕을 먹을 일이 아니라, 정작 연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직장을 계속 다녀야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엄마의 고민과 동일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여성'도 동등한 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그 능력을 펼쳐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현실에서 그런 '욕구'를 가진 엄마를 '나쁜 엄마'의 여론 재판으로 내몰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애착 육아'가 대세라고 하면, '애착 육아'가 가능하게 회사에 놀이방을 마련하고, 엄마가 일을 하며서도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한때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엄마를 새삼스레 집에 불러들여, 부모 자식 세대의 가치관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식 둘 데리고 와서 엄마에게 한동안 치대다가, 그 이유가 엄마가 외로워서 함께 있고 싶어서라고 핑계댈 것이 아니라. '황혼'에 육아가 짐이 되지 않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다큐'의 시선과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엄마들의 전쟁'이라는 보이는 현실만 찍다보니, 자기 계발의 욕구를 가진 엄마를 '나쁜 엄마'라 규정짓고, 아이 돌보미 어벤져스나 황혼 육아를 해프닝처럼 그려낼 뿐이다. 



그러니 3부에서 예능처럼 1m의 밧줄이 등장하여,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친해보자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부추키는 나라, 하지만 정작 아이를 많이 낳은 엄마는 가난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죄인이 되고, 하루 종일 그 아이들 뒤치닥거리와 돈벌이에 심신이 지쳐간다. 13명의 아이들도 부족해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나라의 엄마에게 필요한 게 주말의 휴식일까? 

그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처럼, 조금 더 이해하고 다가가면 해결 될 문제일까? 간호사 엄마와 아빠가 서로 이해하고 다가가면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 아이돌봐줄 사람이 없어 동동 거리는 워킹맘에게 이해하고 다가갈 사람은 주변 사람들일까? 국가일까? 사회일까? 그러니 결국 대한민국에서 전쟁에 시달린 엄마가 선택할 길은 '어벤져스'와 같은 돌보미 영웅들이 등장하거나, 그게 아니면 윤현숙씨 처럼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주변의 '인정'과 이해로 마무리한 또 다른 '가족주의'의 전횡이다.  나름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던 <엄마의 전쟁>이 그래서 그 어느때의 sbs스페셜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by meditator 2016. 1. 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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