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진흙을 묻힌 채 뒹굴며 느긋하게 휴양지의 일상을 보내는 두 남녀가 있다. 그 때 문득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지금 곧 공항에 도착한단다. 그는 바로, 여자의 전 애인, 당연히 두 남녀와 불청객 그 사이엔 긴장감이 돌고, 한 술 더 떠서 그의 딸이란 여자인지 소녀인지 모를 그녀는 그녀의 현재 남자에게 대놓고 어필하기 시작한다. 이 뒤얽힌 사각 관계의 결말은, 그 얽힌 관계답게 '치정'으로 인한 '사고'로 귀결된다.


poster #1




<수영장> 그리고 두 번의 리메이크,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현재의 애인과 전 애인 사이의 여자, 거기에 끼어든 전 애인의 딸, 이런 '막장' 스토리의 주인공은 한 편이 아니다. 일찌기 알랭 들롱이 현 애인으로 등장하여, 당시 연인이었던 로미 슈나이더와 젊은 제이 버킨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폴을 연기했던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 la piscine>가 제일 첫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2003년 프랑스와 오종 감독은 <수영장>을 오마주한 <스위밍 풀>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육감적인 로미 슈나이더 대신, 선병질적인 중년의 작가로 셜롯 샘플링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네 남녀의 서스펜스 스릴러는, 작가인 셜롯 샘플링과 편집장의 딸로 수영장이 딸린 외딴 별장을 찾은 줄리(뤼디빈 사니에르)의 숨막기는 심리극, 그리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반전의 결말로 변주된다. 그리고 이제 2011년 <아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과 함께 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비거 스플래쉬>란 제목으로 새롭게 리메이크 하여 돌아왔다.

 

 

네 남녀의 숨막히는 심리극이 걸출했던 1969년작이건, 그녀의 범죄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숨막히는 눈빛의 셜롯 램플링에 의한 욕망 심리극이건, 그리고 이제 틸다 스윈튼에, 수식어가 필요없는 랄프 파인즈, <대니쉬 걸>의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그리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다코타 존슨까지 합류한 <비거 스플래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휴양'이라는 미묘한 목적으로 고립된 공간에 머물게 되며, 드러나는 '인간'의 맨 얼굴, 즉 욕망이다.

 

 

 

 

 

결국 파국이 되고 만 욕망의 파문

2015년작 <비거 스플래쉬>에서 틸다 스윈튼이 맡고 있는 마리안은 한때 무대에서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연호를 받았던 '스타'이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과도한 성대 혹사로 인한 수술이후, 판탈레리아 외딴 별장에 애인 폴과 함께 머물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전나의 몸으로 관객을 맞이한 마리안과 폴, 하지만 무안한 관객과 달리,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마리안은 이제 그 누구의 시선에서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한다. 그런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간 공항에 도착한 것은 한때 그녀의 사랑이었던 해리와 그가 1년 전에 알게 된 22살 먹었다는 딸이다.

 

 

로마에 자주 왔다는 폴은 대뜸 그들을 판탈레리아 언덕의 기묘한 식당으로 안내하며, 고즈넉한 폴과 마리안의 일상에 파열음을 빚어낸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그들의 빌라에 얹히고, 손님까지 초대하며 주도권을 쥐어간다. 그런 해리가 잔뜩 못마땅한 폴과 달리, 마리안은 폴과는 전혀 다른, 해리가 빚어낸 일상의 소란스러움이 그리 싫지 않은 듯 합류한다. 그렇게 해리가, 그리고 그런 해리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마리안과 겉도는 폴, 그런 그에게 해리의 딸 페넬로페가 도발적으로 접근한다.

 

 

마치 로마와 왔다 자연스레 들린 듯했던 해리의 속내는 영화가 진행되며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리안과 자신의 추구하는 음악이 달라, 마리안을 폴에게 넘겼다던 해리는 마리안에게, 그리고 폴에게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를 노골적으로 표명하다 못해, 이젠 대놓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속 욕망은 거의 '주접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해리'나, 알고보니 10대의 거침없는 도발이었던 페넬로페만이 아니다. 대놓고 부담스러워하는 폴의 의사를 사뿐히 즈려밟고 전 애인을 집에 들이는 마리안이나, 그런 마리안에게 전전긍긍하며 어쩌지 못하다 결국 폭발하고 마는 폴 역시 '욕망'이란 '전차의 탑승객이다.

 

 

 

일찌기 네 남녀의 '육욕' 혹은 '소유욕'에 집중했던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을 새롭게 각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저 이탈리아 명문가의 며느라의 불륜을 넘어 '삶의 존재' 양식에 대한 반문으로 이어졌던 <아 엠 러브>에서 처럼, <비거 스플래쉬>를 통해 '욕망'에 서사를 부여한다. 한때 수만의 관중에 주목을 받았던 마리안은 이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숨기며 자신의 삶을 조용히 살아가고자 한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해리는 그 예전처럼, 자신이라면 다시 마리안을 거뜬히 무대 위의 스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님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프로듀싱했던 장황한 후일담처럼. 그의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런 해리가 한때는 카메라 감독이었지만, 이제는 다시 작품을 할 기약조차 불투명한, 마리안의 종속물같은 폴은 하찮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불과 1년 전에 해리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지만 그런 뒤늦은 부녀 관계가 무색하게 어머니에 의해 내처지다 싶게 해리에게 떠맡겨진 페넬로페의 의지가지없음은 아버지 해리와 폴 사이에서 묘한 도발로 드러나고. 그렇게 영화는 '욕망'의 심리는 넘어서 '존재'를 묻는다.

 

 

그렇게 불안정한 혹은 정처없는 각자의 존재들은, 판타레리아라는 휴양지라기엔 모랫바람이 불어오는 삭막한 공간 속에서 '남'과 '여'의, 그리고, '확정되었지만, 불투명한' 관계들 속에서 '파문'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파문'은 '사건'이 되는 대신, '락'의 정신 대신 비겁하게 불법 이주민들을 핑계대는 스타 마리안의 처신으로 덮어지고, 물 속에 잠겨버린 채 야무진 꿈조차 수장시켜 버린 한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은 우리나라에 알랭 들롱의 작품답게 <태양은 알고 있다>로 번안되어 개봉되었었다. <비거 스플래쉬>의 태양은 아쉽게도 사건이 일어나던 그 날 밤의 일을 알 수는 없다. 폴은 페넬로페에게 질문하지만, 관객은 그 답을 듣지 못한다. 폴과 페넬로페가 함께 간 짧은 도보 여행의 내막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건의 내막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대신, 관객 각자가 품고 있는 '욕망'에 따라 답하기를 원한다. 마찬가지다. '막장'으로 보이는 이 네 남녀의 '욕망'이 빚어낸 파국에 대한 '해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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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08.1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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