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 시장>이 4일 현재, 누적 관객수 720만 1055명을 기록하며,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일 방영한 <무한도전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는  29.6%를 기록(tns 수도권 기준), 요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다. 


이렇게 천만 관객을 앞둔 영화,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30%에 육박하는 프로그램에 두고, 뭐라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가. 심지어, 그것을 보고 즐기고, 눈물 흘리면 됐지, 뭐라 말하기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 '감읍'한 감동을 뒤로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기에 앞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90년대 화려한 문화계를 공유했던 사람도 아니요, <국제 시장>의 고생담을 공유한 세대도 아니다. 그저, 이 세대도, 저 세대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의 기자가 본, '그들'의 추억에 대한 감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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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 시장>이 개봉하기 전부터 다수의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딱 한 마디로, 영화 평론가 김태훈의 말처럼, 맨날 듣던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극장에 가서 또 들을 필요까지 있겠는가 였다. 문제는, 그 아버지의 이야기의 '화법'이었다. 극단적으로는, 허지웅 식으로, '반성이 없는 어른 세대'의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당파성'을 떠난 고생담에 대한 미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정치 연합 문재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의 가치를 확인하고,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이런 문재인 의원의 생각과, '우리 역사가 굴곡이 많은데, 그 고비마다 고생을 많이 하고."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의 '소회'가, 이성을 앞선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박대통령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들어,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라는 결론을 냈고, 엄밀하게 이 말은, 문재인 의원의 '애국은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다'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여봐란듯이, 여야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없이 영화<국제 시장>을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당파성을 떠나, 중견의 여야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들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기자 조차도, 때론 tv를 통해 보여지는 '대한늬우스'에 시큰해지는 걸 보면, 지나간 것에 대한 '감상'은 인간의 누선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여리데 만드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그리도 쉽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에는, 역시나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비평과 평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논외의 대상이란 의미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살아왔기에, 그것만으로도 다 용서되고, 설명이 되는 것이, 여전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그 '과거'는 선택적이다. 그들은 <명량>을 보고, <국제 시장>을 보지만, 2014년 개봉한, imf시절을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을 다룬, <해무>를 보러 가진 않았다. 자신의 배와, 가족, 그리고 생존을 위해, 피치 못할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또 다른 우리 기성 세대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당대의 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는 조용히 극장에서 내려왔고, 용산 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은 극장에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역사는 엄밀히 말하면, 편집된 역사이다. 영화 <국제 시장>의 역사가, 지극히 보고 싶은 면만 보여준 아버지의 역사이듯이.

그렇게, <국제 시장>이 보고 싶은 우리의 고생담만을 칭송할 때, tv를 통해 보여지고 있는 90년대의 열풍은 어떨까?
이미 그 조짐은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예견되었다. 과연, 90년대의 음악이 ost로 깔리지 않은 <응담하라> 시리즈가 지금처럼 장안의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경제적 부흥의 마지막, 문화의 르네상스, 90년대의 화려함은, 당대의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차려진 문화의 진수성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90년대 르네상스의 복귀는, 2014 말과, 2015년 초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무한도전-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가 생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청춘 나이트' 라는 특집을 통해, 90년대의 가수들이 나와, 그 시절의 음악을 재현해 내었던 것을 먼저 한 것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했던 특집을, 보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닌 <무한도전>이, 그 시절 가수들의 이야기까지 얹어,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만드니, 밥을 먹던 식구들까지 서서 tv를 보며 몸을 흔들게 만든, 흥겨운 잔치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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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pop

그런데, <무한도전 -토토가>는 그저 90년대의 오마주랑 다르다지만, 정말 무엇이 다를까? 그 시절의 가수들이 등장하여, 그 시절 못지 않은 여전한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시간, 과연, 그 시간을 통해 시청자들이, '접신'하고자 한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음악 프로를 봐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돌들이, 한 주 만에 1위를 하는, 저들만의 음악 세상이 된 세상에서, 음악을 즐겼던 그 시절에 대한 회귀?, 댄스 뮤직에서 부터, 발라드, 아이돌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성찬처럼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던 풍성한 음악에 대한 그리움? 아니면 한때 자신이 즐기고 좋아했던 가수들에 대한 여전한 팬심? 

안타깝게도, 그 화려한 잔칫상의 너머로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무엇을 해도 될 꺼 같았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아닐까? imf라는 경제 위기로 마침표가 찍어지기 전까지, 경제 호황과, 성장, 그리고 발전이라는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란 말이다. 기약할 수 없는 저성장과, 취업난과, 고소비의 아득한 현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세대가 지나온 시절을 반성없이 고생담만을 늘어놓는다 하면서, 정작 그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이룬 호황 속에 흥청망청 했던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한도전-토토가> 열풍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tv가 말하는 90년대에 왕년에 잘 나가던 가수들은 있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부서지던 졸속 시공과 부실 공사가 거듭되던 imf로 결단날 허술한 대한민국은 없다. 정말, 환호하며 반기는 그'토토가' 열풍이, 정말 온전히 그 가수들에 대한 그리움과 반김인지, 한번쯤, 조금은 더 젊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 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나간것을 그리워하는 순간, 어느새 사람은, 조금씩 '보수적'이 되어간다. 그 시절의 가수들과 함께, 자신의 화려한 젊음을 반추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자신의 회고 방식이, 과연 <국제 시장>을 보며 눈물 흘리는 어른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한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4-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종교에 억눌렸던 인간 본연의 정신을 되살려내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인문 정신을 불러 들였다. 고대 그리스의 그것은 분명 과거의 그것이지만, 암흑의 중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안티 테제였다. 
어른들은 <국제 시장>을 보고 눈물 흘리고, 젊은이들은 90년대의 음악을 다시 부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과거를 쉽게 이야기하고, 90년대 문화는 트렌디 셀러가 될 듯하다. 부디 지금 불러낸 이 과거의 '망령'들이 그저 과거를 '미화'하고 '칭송'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충전재'가 될 수 있기를. <국제 시장>과, <무한도전-토토가> 사이에 낀 세대의 작은 새해 희망이다. 


by meditator 2015. 1. 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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