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 밀레니엄의 전날 신촌 하숙집 우연찮게 나정이만 남겨지고 모든 하숙생들과 식구들이 외출을 하게 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다 <꽃보다 누나>는 안하려나? 벌써 10시가 되어가는데? 했는데, 중간 광고를 하는가 싶었더니, 뜬금없이 화면은 <코미디 빅리그>의 한 코너로 옮겨진다. 비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예고편으로 또 옮겨진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다른 때 같으면 8시 40분이면 일찌감치 시작했을 <응답하라 1994>가 50분이 되도록 시작되지 않은 채 시청자들은 <코미디 빅리그>와 <렛츠고 시간 탐험대>, <레인이펙트>의 예고 방송이 이미 나왔었기 때문이다. 18화 편집이 지연됨에 따른 의도적인 방송 지연이었다고 한다. 그간 <응답하라 1994>를 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20일의 이런 방송 사고가 놀짜증은 나지만 어쩌면 놀랍지는 않을 듯도 싶다. 오히려 '사필귀정이라' 공감할 듯도 싶다. 우연찮은 제작지연이 아니라는 것을. 고무줄 늘이듯 마음대로 방송 시간을 늘려 방송하던 <응답하라 1994>가 맞이할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이다. 


앞서 인기를 끌던 <응답하라 1997>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한 번 40분짜리 두 편을 연달아 방영하였다. 후반에 이르러서야 회차에 따라 방영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미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은데다, 시작하자 마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 였다. 40분쯤 시작하겠거니 하고 텔레비젼을 켜보면 벌써 하고 있을 때가 있다거나, 이즈음엔 끝나겠지 하고 공중파의 다음 프로를 보려고 하면, 10시는 저리 가라 도무지 언제 끝날 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채널을 돌릴 수 조차 없다. 방송 사고가 발생한 20일 방영분에서 기어코 다시 나정이와 칠봉이를 결국은 다시 밀레니엄을 빙자해 한 자리에 앉히고 여전히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듯한 시선을 오고가는 장면을 오랜 지연 뒤에 내보내고야 마는데, 그저 낚여서 파닥파닥 거리는 처지의 시청자들이야 욕을 하면서 기다릴 밖에 무슨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사진; TV리포트)

덕분에 <응답하라 1994>의 방송 시간은 제작진만 아는 것이 되었고, 공중파의 미니 시리즈 시간 72분룰은 저리 가라, 종종 90분을 넘는 경우 조차 빈번했다. 공중파의 미니 시리즈 방영 시간이 최근에 72분에서 다시 67분으로 줄어 들었다. 이것은 실제 광고를 빼면 순수 방송 시간으로 65분에서 59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왜 이렇게 줄였을까? 일주일에 두 편을 방영하는 미니 시리즈라면 결국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분량을 찍게 되는 셈이다. 제작진도, 연기자도, 작가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밤샘 촬영이요, 쪽대본이라는 관행이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촌각의 관심을 끌려는 꼼수로 인해 서로 조금씩 조금씩 늦게 끝나다 보니 결국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공중파는 서로 협정을 맺어 72분 룰이니, 67분 룰이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케이블의 장점은 바로 그런 공중파를 제약하는 방송 시간의 룰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4>는 마음대로 방영 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만용'을 부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드림팀의 제작진이라 하더라도, 늘어진 방송 시간은 고스란히 제작진과 출연진의 몫이다. 그러니 결국 20일의 방송 사고는 예정된 것인 셈이다. 이미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이 15분 정도 방영된 이후, 다시 <응답하라 1994>가 15분 정도 방영되었다. 여전히 과유불급이다. 

과연 그렇게 과욕을 부릴 만큼 <응답하라 1994>가 흥미진진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시간은 IMF의 여파와 특별했던 연인들 나정이(고아라 분)와 쓰레기(유연석 분)의 특별하지 않은 짧은 이별과, 장황한 해태의 첫사랑 다시 만나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결국은 누구나 다 예상 했듯이, 나정이와 칠봉이의 해후가 이루어 졌다. 

그렇다. 드라마에 깔리던 나정이의 나레이션처럼,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다 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정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결혼조차 미룰 수 있는 쓰레기(정우 분)(보통 사랑 얘기에서 이쯤되면 결혼을 미루는 게 아니라, 결혼을 먼저 한다)를 그저 보통의 연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은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마치 칠봉이와 재회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적인 극적 장치인 것 마냥. 죽은 오빠로 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 단 2년 동안의 물리적 공간의 확장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게 이해를 하려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간 두 사람이 보여준 정신적 유대의 깊이에 비하면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랄까? 

오히려 다시 만나게 된 나정이와 칠봉이를 보면서 든 생각은 저렇게 어거지로 낚지 말고 그냥 깔끔하게 16부작 정도로 이야기를 끝내 버리지 하는 아쉬움이다. 2년 동안 안본다고 헤어지는 나정이와 쓰레기 커플에, 더 오랫동안 나정이를 잊지 못하는 칠봉이라, 이제 누가 나정이의 남편이 되도, 공감이 가지 않을 듯 싶은거다. 과연 이 제작진이 그려내고 싶은 것이, IMF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 휘말린 청춘의 이야기인지, 도돌이펴 나정이 남편 떡밥 게임인지, 그 순수성에 자꾸 의혹의 눈길이 보내진다. 

부디 남은 몇 회 동안 시청자 낚기 게임 대신,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충실한 늘어진 방송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개시켜 마무리 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2. 21.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