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시즌3가 시작과 동시에 시청률 1위를 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자, 상대적으로 비교를 당하는 건 시즌2이다. 겨우 그 정도 시청률은 시즌1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라거나, 시즌2가 잃어버린 시청률을 이만큼 찾아온 것이 어디냐는둥, 시즌2 초반에도 이 정도 시청률은 나왔다거나, 그게 어디 시즌2때문이냐, 시즌1 후광 때문이지. 하지만 그 어떤 논의가 반복되면 될 수록, <1박2일>의 역사에서 시즌2는 점점 시즌1의 영광을 말아먹은, 이제 막 시작한 시즌3보다도 못한 '흑역사'의 늪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 가게 된다. 무엇이 어찌되었건 실패했다는 게 시청률을 담보로 한 냉혹한 평가의 기준이다. 


바로 그 실패했다는 시즌2의 최재형 피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1박2일> 시즌2의 피디로 들어가기 전 원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피디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오락프로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음악 프로그램이나 하던 피디가 어찌 1박2을 감당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패전장군'이 되어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복귀하였다. 어라,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던데, 오히려, 최재형 피디는 탱자가 회수를 건너서 귤이 된 듯, <유희열의 스케티치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랄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해왔다.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하'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며 '대반전 쇼'라 면서, 성시경이 시퍼런 외계인 분장을 하고, 루시드 폴이 치마를 입고 양 갈래 머리를 나풀거리며 춤을 추고, 정재형이 깃털을 잔뜩 단 무희들에 둘러 싸여 가슴에 X자 테이프 표시가 역력히 드러나는 시스루 와이셔츠를 입고 무대를 꾸민다. 야한 포즈의 가인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유희열의 코에서 코피가 나는 건 예사다. 당연히 올해도 크리스마스 특집을 한다니, 또 어떤 '썰렁한' 유머 코드가 등장할까 기대를 안한 건 아니다. 물론, 첫 회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분장을 하고 유치한 모습을 선보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다음 해엔, 올해는 또 누가 그럴까 싶어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썰렁함' 만으로 몇 년을 더 이끌어 가기엔 무리다 싶었다. 그리고 더 기상천외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인맥이 있을까도 싶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KBS제공
(사진; 조선닷컴)

그런데, <1박2일>이란 회수를 건너 온 최재형 피디는 실패했던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가져와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을 꾸몄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시청자들의 소원을 받아, 그 중 몇몇을 추려, 그들에게 직접 캐롤을 배달한다는 이벤트이다. 음악 프로의 성격을 살리는 캐롤를 배달한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1박2일에서 봤던 것들이다. 심지어 방문 지역을 추천하는 커다란 판도, 작은 판도 다 1박2일 재활용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유희열의 스케치북~ 하며 단체 구호도 외친다. 손으로 스케치북에 뭔가를 쓰는 제스쳐도 해가며, 심지어 나중에 저녁을 먹는데,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남자' 스티커를 붙여 복불복 메뉴를 정한다. MC유희열을 비롯한 윤종신, 이적, 육중완 등은 대놓고 <1박2일>의 실패한 피디라고 조롱하며, 이렇게라도 재활용을 해야하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때마다 화면은 피디의 난감한 표정을 잡는다. 철저한 '자기 디스'다.

'루저'가 된 피디에, 함께 '루저'가 되어버린 소품이지만, 그것으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특집은 이상하게 지금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온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의 연장인 양 이물감이 없다. 언제나 썰렁하고 이상해 왔기에, 이제 와 새삼 루저가 되어버린 그것들이 여기서 접목된다 한 들 하등 이상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1박2일의 영광을 깍아먹었다 욕을 먹던 것들이 이렇게라도 재활용되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그렇게 1박2일의 형식을 차용한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이 내세운 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 캐롤을 불러주는 것이다. 건물의 1층 로비 한 켠에서 공익 변호사로 열심히 생활하는 다섯 살 연상의 애인을 위한 '메리크리스마스 온리유'가 퍼지고, 이어서 몰려든 사람들의 '우우우우우~'라는 후렴 합창과 함께 '본능적으로'가 더해진다. 앰프도 없고, 제대로 된 세션도 없지만, 그래도 이건 공연에 가깝다. 다음에 찾아간 아파트 복도에서는 남편없이 홀로 아이도 낳고, 전문의 시험도 치뤄야 하는 아내를 위해 하지만 이웃에 불편을 줄까 조바심을 하며 소리 죽여 '고요한 밤'를 부른다. 이어진 장미 여관의 히트곡 '봉숙이'는 민망함에 몇 마디를 못 넘기고 결국 태교를 위해 중지되고 만다. 마지막 공연은 늦은 밤 어린이 놀이터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서 74번의 시험에서 떨어지고 마지막 한번의 결과를 앞둔 취직 준비생을 위해 '징글벨'과 '말하는 대로'가  하모니카 하나, 기타 반주 하나에 의지해 말 그대로 날 것으로 불리워진다. 

마지막에 이적이 평가하듯이, 음악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방송이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본 시청자들에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음색의 노래를 전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적은 덧붙인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듣는 사람과의 교감으로만 따진다면 최고의 방송이었다고. 애인의 따스한 맘을 받은 공익 변호사 여자 친구도, 홀로 남겨진 아내를 걱정하는 군의관 남편의 노심초사를 받아든 만삭의 아내도 캐롤 선물을 받아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결국 75번째의 입사 시험도 실패했다는 자막을 남긴 입시 준비생도, 어쩐지 마냥 주저앉아 있을 것만 같지는 않았다. 시간에 쫓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스레 날 것으로 전달된 캐롤 선물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전해진 선물같은 방송이었다.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1발2일> 시즌2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불복 등의 미션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마음이 약해 휘돌리고 마는 피디를 보면서, 독한 예능 <1박2일>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오늘날의 시즌2의 평가에서 보여지듯이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독하지 못한 피디가,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와 보여준 1박2일의 잔향이 남은 크리스마스 특집은 성공적인 듯 싶다. 1빅2일 인듯 싶지만, 피디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따스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실패를 여유롭게 디스해 가며 만들어 낸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실패가 아닌 경험이 된 자산이 보여진다. 그리고 혹독한 경험 속에서도 잃지 않은 피디의 훈훈한 노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기에, 74번 떨어진 취업 준비생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생경하지 않다. 이렇게 실패조차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여유, 그게 2013년 <유희열의 크리스마스 > 특집의 코드이자, 성과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생뚱맞은 모험을 한 크리스마스 특집이 이제는 유희열의 솔직뻔번한 입담에만 의지해 조금은 뻔해져 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계속 볼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3. 12. 21.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