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넘도록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끌며 세상 모든 진기한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세 mc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가 다시 뭉쳤다. 이번엔 sns다.

2월11일 첫 방영된 <공유 TV좋아요>는 SNS상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으며 화제가 돠었던 내용들을 TV를 통해 다시 한번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첫 방영된 <공유 TV좋아요>에서는 유상무, 레이디 제인, 홍진호, 육성재 등의 패널들이 자리를 함께해, 64만명이 공유한 돈주고도 욕먹는 '쌍욕 라테', 연예인들 조차 요청한 '포샵해 드립니다', 3분이면 완성되는 '나만의 영화관', 96만명을 울린 악플없는 댓글 릴레이  등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SNS를 공유한다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화성인 바이러스>의 세 MC가 고스란히 자리를 이어받은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공유 TV좋아요>는 소재가 고갈되어 폐지된 <화성인 바이러스>의 SNS버전과도 같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회자되던 화제의 인물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면면이 던지는 충격적 내용을 프로그램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처럼, <공유 TV좋아요>는대신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들을 끌어모은 식이다.

바로 거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상식을 벗어난 충격적 면모의 인물들로 화제를 모아왔던 것에서 볼 수 있었듯이, 결국 프로그램의 관건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가'였다. 그러기에,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어받은 듯한, <공유 TV좋아요>도 그 정서를 이어받을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놓인다. 이는 이른바 '화제성'이라는 것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과연 SNS에서는 어떤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빈번하게 방영되었던 예고와 달리, 네 꼭지로 나뉘어 소개된 내용들은, <공유 TV좋아요>가 <화성인 바이러스>를 이어받을 만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미약했다. '욕라테'의 반전 매력은 신기했고,'포샵해 드립니다'는 오묘했고, '나만의 영화관'은 기발했고, '댓글 릴레이'는 감동적이었지만, <공유 TV 좋아요>가 딱히 이렇다 하는 프로그램의 정서를 형성하는데는 전체적으로 산만했다. SNS 상에서는 제 아무리 화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기기묘묘한 사람을 앞지르기에는 화제성 면에서 미흡하였던 것이다. 결국 또 다시 <공유 TV 좋아요>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을 TV라는 매체를 통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부담없이 순간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이상의 리모컨을 유지할 인내심을 가질 만큼의 화제성이 필요하다. 그렇지않다면 <세 얼간이>처럼 신기한 것들만 잔뜩 소개하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비운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 

화제성 면에서 만이 아니라, 과연 젊은 매체 SNS의 화제성을 이어가기에 <화성인 바이러스>의 세 MC가 적절한가도 또 하나의 딜레마이다. 요즘은 하다 못해 맛집 선정 프로그램 하나에도 실시간으로 SNS 상에 사진을 올리고 교감을 하는 식의 첨단의 진행을 도입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공유 TV좋아요>는 21세기의 내용들을 가지고, 20세기의 MC가 진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전히 <화성인 바이러스>의 진행 방식을 고수하는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의 진행 방식이, 과연 SNS 시대의 화제들을 공감시키는데 적절한가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 공감의 온도와, 스튜디오 안에서의 공감의 온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화성인 바이러스>가 누가 봐도 화성인 같은 사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각을 세 MC가 대변했었다면, 첫 방송을 한 <공유 TV좋아요>는 보통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SNS 시대에 괴리된, 혹은 뒤처진 사람들의 정서가 종종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가 화성인이 아닌 한에서, 그 괴리감은 '좋아요'를 눌렀던 세대와의 괴리감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이경규를 필두로 해서, 김구라, 김성주가 21세기의 담론들을 그들의 정서에 맞춰 젊게 소화해 낼 수 있는가이다. 부디 <공유 TV좋아요>가 그 예전 처음 양초를 보고 끓여서 다 함께 나눠먹던 식이 아닌, 젊은 세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신선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12. 10:18

2월 10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에서는 두 나쁜 년의 대결이 그려졌다. 

여기서 대결이라고 해서 칼을 휘두르며 싸운다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지난 번처럼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이는 그런 대결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여주인공 신주연(김소연)과 불가피하게 함께 일하게 된 오세령(왕지원)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친구였던 주연이 자신이 사랑하는 강태윤(남궁민>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우정을 이용하기로 한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여전히 신주연이 사람의 감정 앞에서는 나약해 질 거라는 지레 짐작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신주연을 옭아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신주연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잘못했다며 꼬리를 내리고 우정의 이름으로 다가온 오세령의 행동이 강태윤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 우정에 넘어간 듯이 행동한 것이다. 
드라마 말미 그런 속내를 들은 주완(성준>은 말한다.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도 깨닫지 못하는 네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네 곁에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하지 말라면서. 

(사진; tv리포트)

tv속에 등장하는 일하는 여성들, 그것도 이른바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결같이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 
여기서 신주연스럽거나, 오세령스럽다는 것은, 마치 여린 속살을 꽉 다물은 석회질의 껍질로 보호하듯,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변화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제 그녀와 함께 살며 그녀를 변화시키는 주완이 등장하기 까지 신주연은 그녀의 동료가 폐경 등의 고민에 빠져도 그건 당신의 일이라며, 심지어 회사 일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신주연만이 아니다. 오세령 역시 자신은 누구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우정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역시 자신이 갖고픈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편다. 어디 두 사람 뿐인가. 같은 사무실의 정희재(윤승아) 역시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에게 행시에 붙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귈 의미가 없다고 퍼붓는 극단적 사고 방식을 내보인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김선미(김유미)도 마찬가지다. 세 친구 중 가장 직업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김선미는 그녀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그녀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치를 떨며 그녀 곁을 떠날 만큼 매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오너로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사 연적이 친구라 하더라도,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이 쟁취하려고 하는 이기적 인물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은진의 동생 역을 맡고 있는 은영(한그루)의 캐릭터도 다르지 않다. 홀로 나가 살며 집안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무심하게, 반면 자신의 사랑 앞에선 맹목적이어서, 언니고 뭐고 없는 캐릭터이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나, 그녀의 연적으로 등장하는 유세미(유인나)나, <왕가네 식구들>의 왕수박(오현경)까지, tv속 능력있는 여성들의 캐릭터는 한결같다. 

tv속 일하는 여성, 그것도 전문직 여성들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싸우는 전사들과도 같은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화법을 내재화한다. 즉, 싸워서 밟고 이겨내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를 내재화하는 존재들로 tv 속에서 그려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고, 우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란 식으로 친구들 이용하는 것조차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눈썹하나 끔쩍하지 않고 해치줘 버리는 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tv 속 여성의 캐릭터들은 흡사 8,90년대 드라마의 야망에 불타오르는 남성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야망 하나로 입지전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인기를 끌었던 <청춘의 덫>의 동우(이종원)로 대변되는 캐릭터와 다르지 않다. 사회적으로 가진 것 없는 남성이었던 동우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여성을 버리고 야망을 위해 사랑을 갈아치우듯이, 21세기의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성이라는 지위에서도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들로 그려진다.


(사진; 부산일보)

시대별 자본주의적 화법을 내재화하는 캐릭터들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적 강요이기도 하다. <로맨스가 필요해3> 등을 보면서, 동시대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어쩔 수 없는 고달픔에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저런 삶이 불가피하는 심리적 강요를 은밀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저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되려면, 저 정도의 삶은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남성 캐릭터들이 야망을 위해 희생시킨 여성들의 사랑으로 인해 주저앉거나, 진실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드라마들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이제, 21세기의 드라마는, 이기적인 사회적 성취를 위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지만, 단단한 겉껍질 속에서 외로움 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녀들을 위해 그녀들에게 복수를 하고 무너뜨리는 대상이 아닌 그녀들을 위로하고 보살펴 주는 남자들을 보내준다. 과거의 드라마의 야망남과 오늘날 드라마의 그녀들에게 내려진 처방이 다른 이유는, tv를 소비하는 주 시청층이 누구냐 라는데 달려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그는, 가끔은 그녀에게 가슴 아픈 말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를 '케어' 해준다. <로맨스가 필요해3>처럼 노골적으로 아예 집에 들어와 살면서 시시때때로 먹는 거 챙겨주고, 마음까지 보살펴 주기도 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직장에서든, 사회 생활에서든, 그게 아니라도 드라마의 주인공인 처지라면 멀찍이 지켜보는 그라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그'들의 역할은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멘토'라던가, '힐링'이라던가, 혹은 ''상담'이란 명목의 여러가지 심리적 처방전의 유행과도 다르지 않다. 네가 아무리 상처받고, 못되게 굴어도 괜찮아, 네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잖아, 너를 사랑해, 기운내 라는 식이다. 그렇게 '케어' 받으며 그녀들은 다시 힘을 내서 전쟁터로 나간다. 아마도 대부분의 드라마들 속 그녀들은 사랑도, 일도, 아니 사랑의 힘으로 일조차 성취해 내는 성공인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11. 11:04
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위의 노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이 불렀다는 노래다. 여기서 아내와 함께 누워 있는 다리 두 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의 것이고, 처용은 그런 역신의 모습을 알아차려 노래를 불러 역신을 내쫓았던 기인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제 그 설화 속 인물 '처용'이 형사가 되어 돌아왔다. 

2월 9일 밤 11시부터 ocn에서 2회 연속 <처용>이 첫 방영 되었다. 드라마 제목처럼 <처용>의 주인공 윤처용(오지호) 형사는 [삼국유사] 속 그 처용처럼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건에 휘말려 들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것이 <처용>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간 ocn에서 제작된 수사 드라마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귀신을 본다는 기담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 특수수사 전담반<TEN>과 <뱀파이어 검사>의 잔향이 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OCN표 수사드라마의 공식이 정해 졌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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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로 시작된 <처용>, 종영된 특수수사 전담반<TEN>, <뱀파이어 검사>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외로운 능력자들이다. <TEN>의 여지훈(주상욱)이 인간적 경계를 뛰어넘은 뱀파이어 민태연(연정훈)과 귀신을 보는 윤처용에 비해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지만, 범죄 심리학자 출신에,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연쇄 살인마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지는 한에선, 그 능력에 있어 보통의 인간 수준을 넘는다는 점에서는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 즉, <TEN>의 이지훈이던,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이던, 그리고 <처용>의 윤처용이든, 각자 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되려 낭중지추라고, 이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외로운 처지에 놓인다.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은 당연히 인간의 피를 공급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이기에, 대한민국 검사라는 번듯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늘 어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TEN>의 여지훈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그의 트라우마는, 잘 나가던 심리학 교수직 대신에 특수사건 전담팀의 외곬수 팀장직으로 귀결된다. <처용>의 윤처용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을 보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 한때 광역 수사대에서 날아다녔지만, 그의 발군의 능력으로 인해 범죄자의 타겟이 되고, 그로 인해 아끼던 후배를 잃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경찰차를 몰고 순찰이나 다니는 처지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들 주인공의 캐리어 상의 고독함을 배가시키는 건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많은 가족력이다. 민태연의 여동생, 여지훈의 약혼자, 그리고 잠시 등장했지만 피투성이 몰골의 처용의 아버지까지, 주인공들은 시즌 내내 가족, 혹은 애인으로 인한 상흔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고, 내몰 것이다. 드라마는, 각각 회차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사건을 끌고 나가면서, 그 사건들 아래에서 부지런히 주인공 각자의 트라우마가 얽혀진 큰 사건의 밑그림을 그려가느라 분주한 것이, 미드식 전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OCN표 드라마의 특징이다.

(사진; 스타엔뉴스)
 

따라서 <처용>도 무리없이 단 2회만에, 병원에서 실종된 아이 엄마라는  개별 사건 해결과 함께, 윤처용과 하선우(오지은)가 얽혀 있는 과거의 사건의 흔적, 나아가 윤처용의 아버지라는 전체적 윤곽을 선보이며 OCN표 수사 드라마의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처용>의 진가가 드러났다기에는 이젠 OCN표 수사 드라마의 공식이 너무 익숙해 졌다. 덕분에 그간 미드나, <TEN>, <뱀파이어 검사> 등을 즐겨왔던 팬이라면 무리없이 <처용>에 빠져들수 있는 반면, 또 그만큼 어딘가 본듯한 기시감 또한 떨쳐 버릴 수 없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용>은 선택한 전략은 귀신 보는 형사라는 전략에 맞춘 '빙의'를 등장시킨다. 경찰서에서 소일하던 여고생 귀신 한나경(전효성)이 극적인 순간에 하선우의 몸에 들어가 사건에 직접 개입한다는 신선한 전술이다. 극의 절정에서 빙의된 한나경의 기억에 잠시 떠올려진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 그리고 드라마의 말미 잠시 스쳐가듯 보여진 한나경과 하선우가 함께 찍힌 사건에서 한나경의 빙의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면서 <처용>이 보여주는 드라마로서의 맛은 한결 독특해 진다. 귀신을 보는 형사에, 빙의된 여형사 걸맞는 조합이다. 

OCN의 드라마는 미드식 수사 드라마로서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트렌드에 맞게 적절한 소재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신의 퀴즈>로 메디컬 수사 드라마의 효시를 열더니, 이어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인간의 경계를 허물더니, <특수사건 전담반 TEN>을 넘어 귀신을 보는 형사<처용>까지 이르렀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오가며, 장르적 진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부디 <처용>도 그간 앞서의 드라마들이 시즌에 시즌을 거듭했듯, 충실한 스토리로 다음 시즌까지 고대할 좋은 수사 드라마로 남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2. 10. 10:33

경기도에 사는 기자는 조금 시간이 나서 어딘가를 가게 된다면 자꾸 발걸음이 서울로 향한다. 철마다 바뀌는 서울의 고궁, 이제는 점점 낡아가다 못해 어느 틈에 아파트 숲에 먹혀버리곤 하는 한적한 주택가, 그리고 물은 비록 그 물이 아니되, 여전한 한강...... 누군가에겐 그저 숨막히는 도시에 불과한 서울이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에게 그곳은 내가 살아왔던 추억이 어린 곳이다. 학창시절 원고지를 옆에 밀쳐둔 채 친구들과 헤젖고 다니던 곳, 동동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곳, 현실의 압박감을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잠시 잊었던 곳, 그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저 여느 사람들에겐 스치듯 지나가는 장소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과 관련된 추억이 저장된 장소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2월9일의 <1박2일>은 '장소'가 가지는 본원적 의미를 가장 뜻깊게 잘 살려낸 시간이 되었다. 


처음 한 명, 혹은 두 명씩 조를 짜서 설날의 고즈넉한 서울을 돌아본다 할 때만 해도, 그저 지금까지 해온 서울 탐험이려니 했었다. 주어진 미션도 그 예전의 고궁을 들러보던 미션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처음 세워진 빌딩에, 가장 오래된 다리에, 찻집에, 역사 책에 등장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역사가 된 서울의 한 곳들을 돌아보는 미션은 <1박2일>은 물론, <무한도전>에서도, <런닝맨>에서도 본 듯한 그런 것들이었다. 학림 다방에 소장된 LP판을 틀어 제목을 맞추고, 제일 오래된 빌딩에서 IT에 무지한 김주혁이 팩스에 자신의 사진을 보내느라 낑낑 거리고, 오래된 빵집에서 숨겨진 빵을 맞추는 게임은 굳이 그곳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해도  미소를 띠고 보게 만들 그런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 여의 시간 <1박2일>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서울의 오래된 장소를 찾아보고, 그곳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둘씩 짝을 이뤄 또 다른 거리를 걷고, 거기서 미션을 하며 설정된 사진을 찍는 등 분주하게 설날의 서울을 활보했다. 

그리고 마지막 잠자리를 찾아 KBS 건물로 돌아온 멤버들에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동안 분주히 서울을 돌아다닌 멤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중 베스트를 뽑겠다는 명목 하에 모인 편집실에서 뜻밖에도 가장 좋다고 뽑힌 사진은 온갖 설정을 하고 찍었던 사진이 아니라, 명동 성당에서, 남산에서, 그리고 고궁에서 가장 평범하게 찍힌 사진들이었다. 


(사진; 리뷰스타)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변한 건 다음 순간이었다. 명동 성당 앞에서 주춤거리며 찍힌 김주혁의 사진 다음으로, 김주혁의 아버지 어머니가 바로 그 명동 성당에서 데이트를 하던 시절에 찍힌 사진이 나타난다. 이제는 김주혁보다도 젊은 아버지가, 멋쟁이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어 나타난 사진은 그 젊은 김주혁의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어 아들인 김주혁과 함께 찍은 것이다. 불과 몇 장의 사진이었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아들인 김주혁의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주르륵 흐른 것처럼, 사진은 그저 사진이 아니라, 명동 성당을 배경으로 한 한 가족의 역사가 되어 가슴을 흔든다. 

서울이 고향인 차태현도,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미션을 수행한 다음에 함께 방문했던 4대가 함께 서울에서 살아온 가족을 방문한 자리에서 펼쳐 본 앨범의 그 사진들과 비슷한 사진들이 차태현과 김종민의 역사로 등장한다. 4대 가족의 부모님이 남산으로 신혼 여행을 가셨던 사진은 이때는 이랬구나 하고 신기한 것이었지만, 방금 전 내가 사진을 찍고 다녀온 그곳이 차태현 자신의 부모님 사진이 되면 마치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이 계신 그 시간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같은 전율과 함께 목이 메어 오는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어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김종민에게선 그 감회가 극한에 이른다. 

그저 <1박2일>의 한 순간을 통해 등장한 것은 김주혁, 차태현, 김종민 부모님들이 자식들보다도 젊은 나이에 찍은 사진 한 장이었지만, 그 사진만으로, 남산, 명동성당, 고궁은 마치 김춘수의 시처럼, 우리들에게 꽃처럼 다가온다. 김주혁의 '훅 하고  들어왔다'는 표현처럼 아마도 지금까지 <1박2일>이 방문했던 그 어느 장소보다도 유서깊은 서울이 되었다. 아름다운 명승지가 아니라, 일상에서 스치듯 지나쳐온 것들이 다른 이름의, 명소가 되는 순간이다. <1박2일>을 본 사람이라면, 명동 성당을, 남산을, 고궁을 지나칠 때라도 이제는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수 밖에 없도록. 

전국 방방 곡곡도 모자라, 북한에, 이제 일본에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까지 샅샅이 훑고 다니는 유홍준 교수가 그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통해 남긴 명언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2월9일의 <1박2일>의 서울은 바로 그 사랑해서 달라지게 된 곳이 되었다. 그저 연인들이 매어놓은 자물쇠 더미를 놓고, 한 사람이 몇 번이나 걸어 놓을 수도 있다고 농을 던지며 미션을 하기에 급급한 장소에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장소로 신혼 여행을 와 똑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역사를 안 순간, 학교를 다니며 수백 번을 스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소가 이젠 아들과 함께 꼭 가서 사진을 남겨야 하는 나만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곳이 되었다. 장소를 명소로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사람들의 역사라는 걸, 가슴 저리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본 <1박2일>이 또 무엇을 할 수 있겠어가 아니라, 똑같은 곳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1박2일>이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시간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2. 10. 09:02

세계화의 시대란다. 

우리의 음식이, 우리의 문화가 세계로 펼쳐나가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 우리의 것이 우리의 상표를 달고 해외로 나가 잘 팔리는 것에만 세계화의 방점을 찍고 있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또 다른 세계화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 집약의 대표적 산업인 봉제 산업, 우리나라가 수출 주도형 산업국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봉제 산업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물가 상승과, 임금 대비 고비용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없자, 사양 산업으로 몰락해 가는 수순을 밟아갔다. 그때 그 봉제 산업을 구해준 것이 바로 동남 아시아국가들의 저렴한 노동 시장이었다. 

'지난 1월 3일 캄보디아 프놈펜, 봉제공장 100여개가 밀집한 카나디아 공단 인근에서 수십 여발의 총성이 울렸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장기간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군대와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 것이다.'

(사진; 유니온 프레스)

'공식적으로 다섯 명의 공식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혀진 이 사건이 국제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 배후에 한국 봉제 기업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터이다. 공장과 담을 이웃하고 있는 공수부대가 공장 측의 부탁을 받고 출동을자비한 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총격 사태 이튿날, 한국 대사관은 공식 페이스북에 교민과 기업을 안전을 위해 군대와 긴밀히 협조하였으니 안심하라는 당부 글을 게시했다. 한국이 강경 진압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제기되기 시작하자 이 글은 곧바로 삭제'됨으로써 의심의 불씨를 지폈다. <추적 60분>은 바로 그 캄보디아의 현지에서 '메이드 인 캄보디아'의 현실을 밝힌다. 

캄보디아 정부의 적극적 외국 자본 유치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리바이스', '자라' 등 내로라 하는 전 세계의 봉제 산업들이 캄보디아로 몰려 들었다. 노동 인구 800만명 중 35만명이 고용된, 수출 산업 전체에서 80%가 캄보디아 봉제 산업의 현실이다. 물론 이는 캄보디아가 절대적으로 봉제 산업에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패스트 패션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옷값,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빨라지는 패션의 주기는 보다 싼 노동 시장을 찾아 아시아 각국을 휘젖고 다녔다. 아직 개방이 덜된 베트남 등에서 시작된 봉제 산업들은, 그들 국가들이 산업 발전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자, 조금 더 싼, 조금 더 싼 국가를 찾아 다니다 보니, 결국 캄보디아에 이르게 된 것이 현실이다. 캄보디아 현지의 봉제 공장 한국인 관계자들은 불평을 토로한다. 캄보디아처럼 일년에 노는 날이 많은 나라에서는 베트남만큼의 이윤을 뽑아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노동력에 온전히 의존하는 봉제 산업의 특성상 낮은 임금선을 유지하는 캄보디아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캄보디아의 노동자들은 1월3일 시위에서처럼 월 80달러의 임금으로는 살 수 없다며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낮은 임금으로만 존속가능한 봉제 산업, 하지만 더 이상 비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캄보디아의 노동자들, 우리에게 이 전선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YH 사건(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은 가발수출업체인 와이에이치 무역 여성 근로자들이 회사폐업조치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 )등 70년대에서 80년대 초의 노동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이들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즉 우리나라가 1,2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수출 국가로 올라서기까지 그것을 견인해 낸 사람들이 바로, 가발, 봉제 산업 등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이었다.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한 장을 차지하며 열심히 싸웠던 사람들이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의 얼굴을 하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동일한 사회적 갈등 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현실은 볼멘 소리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불평이 무색하리 만치 궁색하다. 가난한 농촌의 딸로 태어나 아픈 부모님을 둔 덕에 11여년 간을 일고여덟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방에 머물려 공장을 다니다 보니, 결혼도 하지 못한 채 44살이 된 처녀에, 몇 년을 일해도 결국 자기 손에 쥔 게 없어 다시 떠난다는 청년의 짐보따리는 그가 일했던 시간이 허무하리만큼 초라하다. 세 오누이가 함께 생활해야 겨우 빠듯하게 버티며 산다는 방에서, 시위대의 주장은 공허한 희망으로 멤돈다. 가난한 농촌의 딸로 도시로 올라와 가족까지 먹여 살리며 빠듯하게 버티다 버티다 못해 임금 인상을 외치던 7,80년대의 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문도, 우리 기업이 캄보디아 등 아시아 현지의 국민들을 너무 낮은 임금으로 혹사시키다, 인명이 살상되는 시위를 불러 일으키는 세계화의 현장에 있다는 소식을 제대로 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신 속에 사건은 그저 이웃집 불구경만도 못하다. YH여공들의 역사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여전히 전설 속 이야기처럼 회자되는 것처럼. 
그래서 <추적 60분>이 현지에서 만난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현실은 굳이 누구의 편을 가르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잊고 있는 세계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y meditator 2014. 2. 9. 14:42

나이가 들어 얼굴에 검버섯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을 발견한 친구가 시술을 권한다. 그 정도는 시술도 아니라고, 70이 넘은 노인도 그 정도 검버섯 없애는 시술은 한다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때마다 보톡스를 맞는다, 필러를 맞는다 분주하다면서. 
하물며 저렇게 시술까지 하는 마당에 화장이야 더 말할 꺼리가 되지 않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이라 하지 않고,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조차도 '분장'이란 말을 즐겨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을 민낯이라 하며 차마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심각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취급한다.
이렇게 누구나 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화장'의 담론이 시험대에 오른다. 바로 두번 째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다.

2월 8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은 다시 한 번 여성 멤버들을 불러 들였다.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소영 등의 기존의 멤버가 잔류한 가운데, 개그우먼 박지선과, 아나운서 박은영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지난 번 여성 멤버 버전 <인간의 조건>이 기존의 남성판 <인간의 조건>이 했던 쓰레기 없이 살기,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 등 미션등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문화적 차별성에 방점을 맞추어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 이번 두 번째 미션은 '화약 약품 없이' 살기로 온전히 여성 멤버의 특성에 맞춘 미션이 등장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사진; tv데일리)

남성 멤버들이 일정한 물의 양을 가지고도 쉽게 적응하며 일주일을 버텨냈던 것과 달리, 늘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자존감의 향상 요건이자,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여성 멤버들에게 '화학 약품 없이 살기'는 그 심각성을 고민하기에 앞서, 샴푸, 화장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황은 '아노미'적이다. 
특히나 이쁜 개그우먼이라고 인정받는 김지민의 경우에는, 최근에 돋아난 얼굴의 뾰루지로 인해 그것을 가려야 하는 화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기에,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조차 느낄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런 김지민의 모습은 아마도 일상 생활에서 화장에 의존도가 높은 보통 여성의 반응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모습일 것이다. 트러블 때문에 애초에 화장을 하지 못하는 박지선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이번 미션에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멤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을 떠날 때부터 '화약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지가 주어지고 아지트에 모이자 마자 가지고 있는 화약적 처리가 된 모든 물품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야 하는 미션에 여성 멤버들은 크게 당황한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볼 만큼, 화학이란 단어가 막연했던 멤버들은 오히려 화학에 대해 알아가면 갈 수록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일상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화학의 힘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화학 약품 없이 살기 위해서는 샴푸, 화장품은 물론, 당장 입고 있는 옷부터 모두 벗어제껴야 하고, 비닐 포장지에 둘러싸인 먹거리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차분히 화약 약품의 문제점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이 각자의 방송들을 맞닥뜨린 멤버들은 당장 자신의 민낯을 가릴 화학 약품이 아닌 꺼리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김신영은 눈썹 화장을 하기 위해 갈비집에서 숯을, 피부톤을 위해 방앗간에서 콩가루를, 그리고 입술 화장을 위해 체리를 구한다. 샴푸는 소금으로 대신하고 달걀과 식초로 유연 과정을 거친다. 당혹스러워 하던 김지민도 궁여지책 구해든 것이 밀가루와 꿀이다. 하지만 늘 그녀를 돋보이게 해주던 화약 약품 덩어리인 인조 속눈썹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넘겨는 보지만 누렇게 뜬 얼굴톤과 시큼한 냄새를 숨길 수는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김숙와 박은영은 화학 약품이 들어 있지 않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에 도전한다. 몇 가지의 천연 재료로 약간의 품만 들이면 만들어 지는 화장품을 보며, 수십만원을 투자했던 화장품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쉽게 만들어 진 것에 비해 막상 사용해 보니 그간 화학 약품 덩어리인 화장품에 못지 않는, 아니 심지어 그와는 다른 차원의 만족도를 주는 천연 화장품, 천연 세제에 경이를 느껴간다. 

김숙, 박은영이 재빠르게 찾아 내었듯이, 우리가 주위에 눈을 돌리고 보면 화학 약품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천연 세제, 천연 화장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을 투자해 서점에서 책을 독파했던 박지선의 깨달음처럼, 더께를 두르듯 일상을 겁박한 화학 약품의 세상이 몇몇 천연 제품을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물만으로도 얼만든지 깨끗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실천하는 사람도 있듯, 결국은 이런 '화학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삶의 담론이 문제이다. 

늘 몇 겹의 화장으로 짙게 자신을 치장하고, 매일매일 샴푸에, 린스에, 에센스까지 덧칠을 하며 머리를 감아야 하고, 때마다 유행에 맞춰 옷을 사입어야 하는 '소비'의 담론이, '화학 약품 없이 살기'의 일주일을 통해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것이 이번 <인간의 조건>의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한 몸 깨끗이, 아름답게, 내 한 입 맛있게, 넉넉하게 만드는 그것들이, 결국은 내가 일부인 지구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가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시간, 그래서 조금은 덜 아름답고, 덜 깨끗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는 것, 그런 신선한 담론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9. 11:00

드디어 스스로 엘리베이터걸이었음을 밝힌, 그래서 그 좁은 엘리베이커에서 하루 종일 서있었던 경험 덕분에 줄곧 서있어야 했던 서너시간의 대회 동안 남들보다 더 버티기 쉬웠다고 말한 오지영(이연희)이 1997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탄생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자리, 애초에 그녀에게 미스코리아에 나가자고 했던, 그리고 그녀와 함께 달려왔던 형준(이선균)과 그의 동료들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드라마답게도, 그 시각 비비 화장품의 식구들은 부도난 회사에 기계를 떼어가려던 조폭들을 몸으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영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기계마저 빠져나간 빈 공장에서 형준의 동료들은 울음마저 흘릴 힘도 없이 나뒹구러져 있다. 

하지만 형준은 그런 빈 공장과 동료들을 놔두고 1등을 한 지영을 찾아간다. 맞아서 얼룩덜룩한 얼굴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야 지영을 찾아가 축하를 해준다. 비비화장품의 부도를 모른 채 해맑게 이제 자신 때문에 잘 될거라는 말에 헛헛한 웃음을 날리다, 그녀가 잠든 사이 떠나려던 형준은 정선생(이성민)의 상처주지 말란 한 마디에 그녀 곁에 다시 남는다. 그녀가 스스로 형준을 버릴 때를 기다리며, 절대 애인은 아니라며,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16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거리에서 그 방송을 지켜봐야 하는 형준, 그리고 공장 바닥에 나뒹구는 동료들이야말로, 드라마<미스코리아>의 결정적 장면이다. 삶의 냉엄한 아이러니, 잔인한 선물, 졸렬한 비애, 그간 잽처럼 날리던 그것들이 팡파레를 울리며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그저 나정이네 가족이 아빠가 잘못 결정한 주식 투자로 인해 휘청대고, 취직이 잘 안되서 결혼마저 미뤄야 하는 처지에 빠지지만,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곁에는 여전히 그녀를 위해 결혼마저 미뤄주는 한결같은 쓰레기 오빠와, 그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달려올 칠봉이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IMF시기를 그려내지만, 여주인공은 오뚝이처럼 삶의 성과물을 쟁취하고, 남자 주인공들은 시대적 상황과 상관없이 잘 나가는 '의사'요, '메이저 리거'였다. 그래서 덕분에 시청자들은 마음놓고, 쓰레기가 어떻니, 칠봉이가 어떻니 투정을 부리며 그들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미스코리아>의 사랑은 치졸하다. 형준이 지영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그의 회사를 다시 살리기 위한 홍보 도구로써 지영을 이용하기 위해서 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내내 미스코리아란 국가적 행사(?)틈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했고, 그 역경을 견디고 미스코리아가 됐지만, 형준의 부도 덕분에, 애초의 목적은 커녕, 이제는 진심으로 충만한 형준의 사랑마저 초라하게 버티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IMF의 현실은 <응답하라 1994>가 보여준 잠깐의 시련보다는, <미스코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징허디 징헌 운명에 가깝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고개 숙인 아버지 신드롬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IMF체제가 드러내 보인 것은 결국 이 사회를 이끌어왔던, 하지만 현실의 벽에 무너져버린 남성들의 민낯이었다. <미스코리아> 속 형준처럼, 한때 자신의 학벌만 믿고, 자신의 사랑하던 여자조차 낮잡아 보며, 성장 가도의 대한민국에서 야심차게 자신의 꿈을 펼치겠다 했던 그 남성들의 몰락을 의미한다. 애시당초 자신의 회사를 구하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를 미스코리아에 내보내 홍보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이겠지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발상인가 말이다. 마치 IMF를 넘기기 위해 전국민적 금 모으기를 한 것처럼. 몰락해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식들의 돌반지이자, 아내의 혼수품이어야 했건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미스코리아>는 다른 드라마가 남자 주인공이 얼마나 멋지게 여자 주인공을 위한 사랑을 어필하는가와 달리, 1회부터, 16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에 이르기까지 남자 주인공의 치졸하고 궁색한사랑을 보이기에 애써왔다. 자신의 여자를 투자를 위해 그녀를 좋아했던 친구에게 접대하기 위해 술집으로 끌고 갔던 형준, 그리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앞에서 서성이던 형준의 모습은 상황만 달라졌을 뿐 16회 내내 일관되게 그려져 왔다. 16회 친구이자 자신의 회사를 노렸던 이윤(이기우)를 찾아간 형준이 고용 승계를 보장한 회사 인수라 하지만, 드라마는 내내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형준과 동료의 모습은 스치듯 집어 넣고, 내내 미스코리아를 위해 복무하는 형준과 그의 동료들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회사는 쓰러져 가고, 조폭들은 신체 포기 각서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데, 오지영의 의상과 구두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애잔하기 이를데 없는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물론 <미스코리아>가 자신의 주제 의식을 살려내는데 흡족했는가 하는 것에서는 의문 부호가 달린다. 이제 와 고백컨대, 권석장과 그의 동료와도 같은 이선균, 이성민이 <골든 타임>에서 보여주었던 환상의 호흡을 그리워 하며 <미스코리아>를 보았지만, 드라마는 애초에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드라마를 만들었는가 의문이 가져질 만큼, 형준과 정선생을 둘러리로 만들면서, 지영의 미스코리아 만들기 에피소드에만 골몰해 왔다. 덕분에, 이성민과 이선균의 좋은 연기는 이연희의 미스코리아 만들기 드라마에 애잔한 정서로만 터지되며 16회를 연명시켜 왔다. 이성민, 이선균만이 아니다. <보고싶다> 등에서는 발군의 캐릭터로 빛을 발하던 오정세는 리액션의 존재로만 소모되었고, <골든 타임>에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던 러브라인의 주인공 송선미도 스쳐가듯 그 매력을 드러낼 뿐이었다. 

좋은 주제, 좋은 배우들을 가지고, 16회 내내 미스코리아 만들기 에피소들에 골몰한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낮은 시청률이 굳이 관심을 끌기엔 부족한 주제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엔 드라마는 단선적 에피소드에 치중해 왔을 뿐이다. 때때로 애초에 이 드라마가 과연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 이연희 미스코리아 만들기만이었을까 의문이 가져질 만큼. 작가와, 피디의 숨겨놓은 서랍 어딘가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짜 <미스코리아>가 숨겨져 있는게 아닌가 할 만큼. 하지만 그저 <별에서 온 그대> 라는 강적을 만났다고 핑계를 대기에, <미스코리아>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럴듯한 환타지를 통해 아픔을 가리느라 급급한 드라마 세상 속에서 IMF 시대의 민낯을 그려내고자 애쓰는 <미스코리아>의 미덕은 여전히 희미하나마 가치있다. 부디 남은 4회라도 그 미덕의 불씨를 제대로 살려내는 드라마로써 마무리해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7. 10:26

결혼 첫 날 밤, 당신은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이 나의 네 번 째 남자라는 걸 고백해야 할까?

21세기에 이 뜬금없는 결혼 첫 날밤의 고백이 화두가 된 것은 2월 3일 방영된 <힐링 캠프> 시청자 특집의 한 장면이다.
시청자 특집에서 강사로 초빙된 '다상담'의 철학자 강신주는 이제 남자 친구를 만난지 22일 된 새내기 연인에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면을 벗어 던지고 민낯의 자신을 보여주어야 외롭지 않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면을 벗어던진다는 미명 하에 던지는 진실이 진실일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진실이란 미명하에 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과연 내 맘 속에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나의 언어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 온전히 진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듣는 상대방의 생각과 관점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질될 파편들이 아닐까? 아니 무엇보다, 결혼 첫 날 밤이든, 이제 겨우 22일 만나는 사이이든지, 그 두 사람 관계 사이에 딱 이렇다 라고 정의내릴 진리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사진; 영남 일보 )

하지만 강신주는 단호했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면 뒤에 숨어서 외로울 것이라고, 둘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선택을 강요받은 사람, 당연히 외로움을 피한다. 
이런 식이다. 
병들어 퇴직한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에게, 본질은 나이들어 낯선 아버지가 귀찮아 하는 당신의 마음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그리고 그동안 돈 버느라 아버지의 자리에서 벗어나 '모르는 사람'이 된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김제동에게 사자 인형 따위나 사지 말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라고 충고한다. 

돌직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그의 직설은 결국 '사랑'으로 향한다. 
쿨하고 싶지만 결국 자신이 던진 말들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성유리에게도 자신이 속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듯이, 정의롭고 성숙한 사랑이야말로 사회적 모순조차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 초반 사연을 보낸 70여 명의 방청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입장한 강신주에게 mc 이경규는 다짜고짜 힐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힐링 캠프>에 출연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강신주는 그 말을 거부하지 않는다. 힐링은 결국 '위로'에 다름아닌데, 그렇게 달콤함 위로는 세상의 험한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정의내린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식의 김제동 어록은 조작일 뿐이라며, 자신은 도화지에 불과하며, 자신과의 상담을 통해 그 도화지에 그려지는 상담자의 맨 얼굴을 직시하는 것이 자신의 방식으로 힐링과 전혀 다른 효과를 준다고 단언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YES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있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강신주의 혹독한 상담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텔레비젼에서 봤던가, 영화에서 봤던가 어떤 무당집이 떠오른다. 앞의 상을 '땅'치며 '틀렸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인연이 아니야!'라고 말하던. 모욕인가? 아니 우리가 이젠 무당의 그 말이 낭설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지, 과학과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에, 신의 대리인으로서 전지전능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들이 바로 그들 샤먼들이었다. 우리가 즐겨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도 전쟁에 나가기 전에 신전에 찾아가 신의 말씀 신탁을 듣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지만 내 운명을 확고하게 인도할 것 같던 그 신의 존재는 산업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간다. 더불어 신의 말씀을 전하던 샤먼들은 음침한 골목에서 외로움 깃발 하나에 의지한 채 '영험'하다는 말로 포장한 채, 삿된 요술의 존재가 되어가고. 사람들은 개별자로서의 외로움에 떨고. 

(사진; 스포츠 동아)

그래서 대신 등장한 것이, 정신과 상담이요, 그것보다 유연한 것이 '힐링' 이요, 이제 '힐링'이 또 다르게 '업그레이드'된 것이 '다상담'과 같은 것들이다. 상당해 주는 사람들이 방책으로 삼는 처방들은 제 각각이지만, 결국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해주던 신탁과 본질적으로 효과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 신탁은 때로는 영웅들에게 전쟁에 나가 이기리라는 승전보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살아돌아오기 힘들다는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영웅들이 비보를 들었다고 그의 걸음을 물렸던가.

결국, <힐링 캠프>에 출연했던 많은 출연자들이 전해주었던 힐링의 달콤한 말이 옳냐, 강신주식의 직설이 옳냐가 문제가 아니다. '직설'이라면 지난 번 출연했던 법륜 스님의 즉문 직설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강신주든, 법륜 스님이든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치나 메치나'위로'이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어깨를 도닥여 주느냐, 선방의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치느냐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조금 더 행복하게 사랑하고 살라'는 소박한 주문이다. 단지 그것들이 텔레비젼이라는 공적인 매체를 통해, 조금 더 공신력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 있다. 그런 누군가의 방식이, 그 옛날 샤먼의 그것처럼 전지전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덧 이 시대의 텔레비젼이 바보 상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신전이 되어, 신탁인 양 그런 정언 들을 옮겨대는 것이다. 그 또한 그저 강신주의, 법륜의 생각이요, 주장에 불과한 것을, 우리는 마치 교실 속 착한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 첫 날밤 고백을 하던 그렇지 않던 그게 그 사람의 진실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을,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간사한 귀찮음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 마음 속에 누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끄집어 내는 충격 요법은 그저 여러 치료법 중 하나라는 것을 텔레비젼을 보는 우리가 매번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아무리 꿈을 꾸어도, 사랑을 해도,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게 된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2. 4. 10:20

2월2일 밤 11시 55분에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돌날>은 2002년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그리고 2001년 한국 평론가 협회 선정 BEST3에 빛나는 연극 <돐날>의 TV 드라마 버전이다. 드라마는 연극의 생생함을 그대로 살려 내고자, 실제 연극에 출연했던 서현철, 박준면 등이 극중 배역 그대로 출연하였다. 하지만 연극 <돐날>이 온갖 상을 수상하며 한때 뜨거운 청춘을 살았으나 이제는 중년이 된 세대의 리얼리티를 소름끼치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70분에 꾸겨 넣어진 원작의 연극은, 채 무르익지 못한 채 스릴러, 멜로, 심지어 동성애까지 온갖 장르들이 뒤섞여 보는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으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돌날>의 장르는 문학으로 치자면 후일담 문학에 속한다. 한때 야학당에 모였던 사회 정의에 눈뜨고, 지식인의 사명에 고뇌하던 청춘들, 하지만 이십여 년이 지나 마흔 줄에 다시 모인 그들은 평범하다 못해 서로가 속물이라 비웃고 조롱하는 보잘 것없는 사십대가 되었다. 

돌잔치를 연 정숙(김지영)-지호(고영빈) 부부는 야학당에 만나 결혼에 이르는 동지애적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젠 무기력한 강사와 그의 아내로, 치솟는 전셋값에 전전긍긍하며, 뱃속의 아기조차 지워야 하는 처지의 가난한 삶에 찌든 부부일 뿐이다. 그리고 한때 그들과 함께 세상의 불의를 논하고 실천했던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성기(서현철)는 잘 사는 부모 덕에 사업가가 되었고, 그와 함께 젊음을 불살랐던 친구들은 이제 그의 앞에서 어떻게든 떡고물이라도 얻어볼까 전전긍긍하는 만년과장에, 다단계 판매 사원이 되었다. 시인으로 남은 친구라고 나을까, 그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이다. 

정숙-지호의 아이 돌을 기념하여 모여서 좋자고 모인 잔치는 곧 술이 좀 들어 가면서, 세상사의 만화경이 되어 버린다. 돈이 많은 성기 앞에 친구들은 비굴해지고, 이제는 전셋값에 시달린 집주인 지호조차 성기에게 돈을 빌려보려 애쓴다. 하지만 성기는 안하무인 그 자리에 온 여자들을 농락하느라 바쁘고, 친구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모멸의 말과 행동들 뿐이다. 심지어 남은 것이라곤 학자적 자존심 밖에 없는 지호에게 돈을 주고 논문을 사겠단다. 시간이 흐를 수록, 한때 정의를 논하던 친구들은 가장 치졸한 중년의 모습만을 드러낼 뿐이고, 그런 그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의논조차 하지 않고 아이를 지운 정숙으로 인해 생활의 비애가 극에 달한 지호의 분노는 일탈이 되어 점증된다. 술을 가져오라, 음식을 가져오라, 유산으로 인한 휴유증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에게 권위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다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지호의 불만을 아내 정숙도 이기지 못하고, '나가라' 소리피며 무능한 가장의 이면, 허울만 그럴듯했던 마흔 무렵의 폐부가 드러난다.

그렇게 지호-정숙 부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절묘하게도 내내 이 부부의 신경전의 원인이 되었던 친구 경주(서유정)이 들이닥치며 극은 반전된다. 아내 정숙은 젊은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경주가 자신의 남편 지호와 연인 관계였을 것으로 오해하지만, 다시 돌아와 정숙에게 여전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경주는 알고보니 정숙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지호는 정숙을 도발하고 결국 정숙의 손에 들린 칼을 스스로 당김으로써,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물론 지호의 현실 도피성 자살 시도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남편의 무모한 돌 잔치 강행으로 인해 시달리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아내는 지고지순한 아내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남편과 함께 앰블런스를 타고, 친구와 가족들을 멀리한 채 하늘로 둥둥 떠가던 지호는 딸아이의 해맑은 모습에 떠나는 발길을 접는다. 붕괴 직전의 가족과 우정은, 오히려 지호의 자살 시도로 봉합된다. 마치 부부 싸움, 친구 싸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드라마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내리는 눈 송이 속에서 서둘러 친구들을 보러 들어가며 여전히 철없는 친구들을 그리는 것으로 행복하게 막을 내렸지만, 보는 시청자들은 방금 전 밥상을 들어엎고, 칼부림을 하던 그 기억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드라마는 이게 이게 다 철이 없어서라고, 제 아무리 동성애의 흔적이라도 살 부비고 산 부부애를 넘지 못한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본듯한 피로감에 젖어든다. 저러고도 해피엔딩이면 다야? 하는 울컥하는 분노까지 느끼며. 120분의 연극이 불과 70여분의 드라마가 되는 동안 놓친 개연성으로 인해, 마흔 무렵 지호의 고뇌는 이해되지만, 난장이 되어버린 돌잔치의 해피엔딩은 쉽게 끄덕여 지지 않는다. 마치 마흔 살의 삶의 무게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동성애까지 해볼 수 있는 모든 장르적 실험에 동원된 듯한 느낌이다. 

좋은 원작이 곧 좋은 드라마가 아니듯이, 좋은 연극이었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늦은 밤이라고는 하지만, 공중파의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 아니 70분의 개연성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위해서, 친구들과 지호의 막장 행각은 '철없음'으로 면피도리 만큼 좀 조절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제대로 마무리 할 자신이 없는 동성애 코드라면 없는 게 나았다. 정숙-지호 부부만의 문제로도 단막극에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을 테니까. 원작의 배우들까지 출연한 열연에도 불구하고, '과유불급'이란 단어만이 자꾸 떠오른 실험의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2. 3. 09:41

1월 28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의 백미는 신주연(김소연)과 그녀를 보살펴 주는 주완(성준)의 관계도, 신주연도 미처 깨닫지 못한 선배 강태윤(남궁민)과의 사랑도 아니다. 내일 방송을 앞두고 겨우 집에 들어가 옷이나 갈아입고 올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조기 폐경을 맞게 된 신주연의 동료이자, 고참인 이민정(박효주)과의 갈등이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민정은 강도윤과 동기이자, 직장 연배로 보면 신주연에게 언니 대접을 받아야 할 연배이다. 하지만 늘 신주연에게 ‘자기야’라고 불리워지는, 신주연을 팀장으로 모셔야 하는(?) 위치의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 흰 머리가 늘고, 달력의 잔글씨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조기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늘 연애할 시간조차 제대로 없다고 푸념을 하던 그녀에게 일하느라 바쁘고 번거로워 금요일 밤의 원나이트 정도면 즐기기에 적당하다 하던 그녀에게 내려진 여자로서의 사형선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의 신체적 변화에 아노미 상태가 된 그녀는 그 일을 비밀 없이 지내는 듯한 사무실 동료들에게 토로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일 방송을 앞둔 팀장 신주연의 철면피같은 무반응이요, 그저 ‘왜 이렇게 바쁜 시기에’라는 난처함이 역력한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한 이민정은 ‘갑각류같은 년’이라며 신주연에게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바쁜 동료들에게 이기죽거리는 심정으로 카톡으로 사직서를 날려 버린다.


<로맨스가 필요해3>가 사랑에 미성숙한 여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멋진 두 남성이라는 환타지에 충실한 로맨스 소설의 얼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는 측면은 그 로맨스 소설이 딛고 있는 현실성이다. 고시를 앞둔 애인 때문에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사되어 가는 듯한 정희재(윤승아 ), 마흔을 앞두고 있음에도 직장 일에 얽매어 시원하게 연애 한 번 사랑 한번 못해본 이민정, 그리고 팀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일에서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미성숙한 신주연까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이 그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투영하기에 충분할 캐릭터들이다.


그렇게 일에 압박당하느라 사랑도, 젊음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젊은이들의 삶을 케이블 tvn이 그려내고 있는 동안, 종편 jtbc<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녀들의 언니급인 마흔 무렵의 삶이다.


직업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올랐지만 결혼이라는 관문을 아직까지 넘지 못해 이제는 불안해 하는 김선미(김유미 )의 모습은 <로맨스가 필요해3>의 신주연이나 이민정의 미래가 오버랩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결혼을 했지만 그 번듯함이 허명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권지현(최정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미경의 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결혼도 넘고, 이혼까지 넘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가장이 되어 자기 삶을 꾸려낼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윤정완(유진)은 이 시대 마흔 무렵 여자들이 빚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성이다.


(사진; 무비조이)


sbs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나은진(한혜진)은 세대로 치자면 jtbc <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세대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의 논조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를 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미경(김지수)의 시선이다. 자신의 동생이 미경의 동생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진은 자신이 전염병같다고 오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학(지진희)와 정신적 외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경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가족, 친지,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외도 그 불가피성 여부랑 상관없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고 있는 파장은, 외도가 가족에 미치는 사회 병리학적 조사 보고서와도 같은 것이다. 가족이, 남편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던 40대 중반의 여성 미경의 눈높이이다.


은진이 재학과의 외도 한번에 천형과도 같은 형벌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 오면 드라마의 제목처럼, 상황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비록 그녀가 낳은 숨겨진 딸의 아버지라는, 첫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이제는 엄연히 남의 집 부인과 그 집 남편의 사업상 파트너라는 위치에 놓인 지현와 안도영(김성수)는 사람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나눌 만큼 대담해진다. <따뜻한 말 한디>에서 ‘사랑’이기에 더 용서할 수 없던 외도가,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장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선미와 주완은 한 남자를 놓고 연적이 될 처지이지만, 결혼이란 제도에서 놓여진 그녀들이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천형이던 외도에서 사랑이란 이름이 부각되고, 결혼이란 제도에서 헐거워진 그녀들은 한 남자의 사랑을 높고 자유로이 경주한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로 가면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겼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신주연이지만 머리끄댕이 한번 잡는 것으로 지나간 회한을 풀어내고, 사업상 그녀가 필요하자 그녀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쿨’한 선택을 한다.  얼굴만 마주대면 으르렁거리다가도 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철한 카리스마를 놓치지 않는다. 사랑에 상처받으면 일로 풀어내고,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다시 사랑이 채워주는, 양수겹장의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하여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주연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일과 사랑 모두에서 그녀의 버팀목이던 도윤의 냉정함에 마주쳤을 때이다.


이렇듯 동시간대 sbs, jtbc, tvn에서 월화 10시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각 그 드라마의 타겟층이 되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녀들과, 이혼 후의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 >, 그리고 일이 곧 삶의 주된 동인이 되어버린 <로맨스가 필요해3>의 그녀들은 우리 시대 세대별 여성상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를 맛본 중년의 세대와, 그 사이에 끼인 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세대별 사회적, 경제적 삶의 반영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1. 29.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