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특집으로 꾸려졌던 여성 멤버 들의 화학제품 없이 일주일 살기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단 두 번의 특집 방송으로 여성 멤버들은 당당하게 <인간의 조건> 정식 멤버로 입성하게 되었다. 주어진 일주일이란 시간을 버티던 그녀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4주차에 걸친 방송을 통해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은영, 박지선, 박소영 여섯 여성 멤버들은 열성적으로 자신들이 <인간의 조건>을 이끌어 갈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보였다.


'화학 제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든 멤버들이 보인 과정은 마치 암선고를 받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 까지의 과정과도 같았다. 화학 제품이라는 미션을 막연하게 받아들였다가, 그게 알고보니, 여성이며, 연예인인 자신들에게 있어, 그간 해오던 모든 겉치례를 벗어던져야 하는 혁명적인 미션이라는 것을 알고 이른바 '집단 멘붕'에 빠지고, 자학과 자기 부정을 거쳐 미션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 까지의 과정은, 연예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많은 '허울'을 필요로 하는 과정인가, 그래서 여성으로서 그 미션이 얼마나 버거운 과정인가를 여섯의 여성 멤버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움에 앞서 여성 방송인으로서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김지민의 모습은 우리 사회 여성의 딜레마를 가감없이 드러낸 모습이었다. 당장 3월 8일에 이어진 남성 멤버들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기' 미션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에서 샴푸나, 수분 크림등이 날아가고, 최소한의 로션 만이 살아남고, 오히려 안경이나 담배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과정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살아가는 틀의 차이가 고스란히 보여지는 것이다. 


우먼 특집 인간의 조건 - 화학제품 없이 살기

하지만 미션을 수긍한 여섯 멤버들은 언제 '멘붕'이 왔냐는 듯이 적극적으로 화학제품 없는 삶에 도전한다. 집에서 가져 온 천연 비누가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화학 제품 없이 사는 삶에 도전한다. 심지어 생방송을 진행해야 하는 아나운서 박은영이 사상 최초로 멤버들이 급조한 숯으로 그린 눈썹과, 꽃물로 들인 입술 등으로 면피한 채 민낯에 가까운 모습으로 거침없이 내보이기도 한다. 
무공해, 천연 제품의 사용이 사회 일각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찾아보면 '한살림', '생협' 그게 아니라도 그걸 주대상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섯 여성 멤버들은 그런 완제품을 찾아 쓰는 대신, 마치 만능 칼 하나로 모든 것을 만들어 쓰던 '맥가이버'처럼 그 자신들이 직접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주방 세제에서 부터, 샴푸,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만들어 쓰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여성 멤버들을 정규 편성으로 밀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간 남성 멤버들만의 방송이 지속될 때 <인간의 조건>의 시청률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고심하기도 하고, 안타까워도 했지만 그것이 어떤 지점에서 문제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언제나 미션이 주어지면 남성 멤버들도 열심히 그 미션을 수행해 냈었으니까. 하지만, 여성 멤버들의 일주일이 진행되면서, 그 차이점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 멤버들은 미션이 주어지면, 어느새 자신을 엄습해 오는 그 미션의 불편함을 방어하는 수준에서의 미션을 수행하는 수동적 모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내 온도를 몇 도에 맞추면, 거기에 맞추어서 견디고, 버티는 그 정도랄까. 대신 그런 버티는 과정에서의 한데 어울려 사는 남자들의 공동체적 삶이 방송의 주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다 보니, 그런 사람냄새나는 삶의 모습도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짬만 나면 거실 소파에서 자는 김준현이 푸근했고, 밥을 하는 정태호가 친숙했고, 아웅다웅거리는 김준호와 박성호가 흐뭇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늘 그런 모습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뻔함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성 멤버들에겐 그 자신의 동력 외에 외부 게스트가 에너지로 충원되어야 하는 상황까지 도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조합을 맞춘 여성 멤버들은 그 조합의 신선함만큼, 미션에 대해 도전하는 의욕이 남다르다. 여성들로써는 버거운 미션에 당혹스러워도 하지만, 각자 최선을 다해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남성 멤버들의 그것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늘 화장을 해야 하는 그녀들이 소금을 이를 닦고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 그 자체도 볼 거리가 되었지만, 그 볼거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칫솔에서 부터, 샴푸, 비누 등 기초적인 세정 용품에서 부터, 립그로스, 천연 분을 넘어, 향초 등 생활 용품에 이르기 까지의 시도가 볼만했다. 

(사진; tv리포트)

뿐만 아니라, 방송의 꽃인 아나운서가 목욕 가운을 입는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 시도에서 부터, 천연 제품을 고수하기 위해 방송 내내 자신이 데뷔 때  했던 개그 꼭지의 한복 의상이나, 짚 머리띠에서 버선에 짚신 까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한복을 고수했던 박은영, 김신영, 박지선의 철저함은 그녀들의 실천에 신뢰를 보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회, 수가 놓인 아얌에, 가죽 당의를 신고, 천연 염색으로 고운 빛을 낸한복을 입고 완벽하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천연 제품을 실천한 김숙은 그저 과제의 실천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다. 그저 이 정도면 화학 제품 없이 살기가 되겠지가 아니라, 매회, 매 순간 그저 화학 제품 없이 살기가 아니라, 그것의 대안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물론 남성 멤버들의 수동적 태도와, 그에 반해 적극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단지 타성에 젖은 것과 새로운 멤버들의 적극성으로만 구분할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적당히 '갑'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남성적 삶과, 사회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유리 지붕을 뚫고 살아가는데 익숙한 '을'의 여성들의 습성이 자연스레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이제 정규 편성된 여성 멤버들의 <인간의 조건>은 정체된 프로그램에 활력을 줄 것이며,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할 꺼리와 볼 거리를 줄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9. 11:32

봄을 앞두고 각 방송사 별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의 개편 소식이 들린다. 

유재석, 강호동 등 이른바 예능의 전성기를 이르던 두 예능 거두의 새로운 프로그램 발진이 시도되는가 하면, 이제는 그들 못지 않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신동엽과 김구라의 새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봄 개편 예능의 대체적인 추세는 그간 인기를 끌던 리얼 버라이어티 대신 스튜디오 토크쇼라는 점이다. 물론 신동엽이 윤종신과 함께 하는 새 파일럿 예능 <미스터 피터팬>의 경우는 야외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 작품을 제외하고, 강호동의 <별바라기>, 유재석의 <나는 남자다>, 그리고 김구라의 <진격의 역지사지- 대변인들> 모두 스튜디오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토크쇼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의 한 장을 과감하게 닫고 스튜디오 토크쇼가 대두하게 된 배경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장기간 독주와 범람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야외로 나가는 것도 모자라, 해외로, 정글로, 시골로, 심지어는 군대로까지 그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고, 연령별로는 청년을 넘어 할배, 할미에서, 어린이, 이제는 아기까지 가리지 않고 예능의 대상이 된 상황이 포화점을 지나지고 있다는 지적은 굳이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포화 상태라 하더라도 검증되지 않은 것을 하느니 보다, 낯뜨겁더라도 기존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바꿔서 연명하는 것을 선택하던 예능 트렌드가 결정적으로 변화되는 변곡점은 무엇이었을까?

가수 김그림이 JTBC 마녀사냥에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 JTBC 방송 화면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그것은 외람되게도 공중파가 아닌 종편 jtbc의 예능 <마녀 사냥>의 성공이 아닐까 싶다. 
평균 시청률 2.627% 를 가지고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 맞다. 하지만, 그 저렴한 시청률로는 설명하지 못할 이 시대의 트렌드로써 <마녀 사냥>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견을 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평균 시청률 2.627 %가 의미하는 바는 역설적이기도 하다. 광범위한 연령 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시청률 표에서는 결코 집계 할 수 없는, 시청률 집계표가 놓여있는 텔레비젼이 놓인 거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마녀 사냥>의 초록색 기운을 공중파의 개그 프로에서 차용해 써도 이물감이 없어지는 tv 시청 양식의 변화를 <마녀 사냥>은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녀 사냥>은 마치 '금성에서 온 남자, 화성에서 온 여자'의 텔레비젼 판이라도 되는 양, 연애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의 소재로 한다. 당당하게 19금을 내건 이 프로그램은 그간 공중파의 토크쇼에서는 결코 다루지 않았던 성에 대한 담론은 스스럼없이 내세우면서, 현실적인 젊은이들의 성과 사랑을 토크쇼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결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음성적으로나마 엿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공론화 되면서, 그 또래의 젊은이들의 연애 코치로 당당하게 등극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그 시간에 그 자리를 지켜서 봐야할 의미을 잃어가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간절히 원하는 동시대 젊은 층의 지지를 획득한 <마녀 사냥>의 성취를 당연히 새롭게 개편을 하는 프로그램들이 놓칠 리가 없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4월 9일 부터 선보일 유재석의 <나는 남자다>는 철저히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표방한다. 공중파임에도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네세우는 방식에서 부터 케이블의 방식, 혹은 <마녀 사냥>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남자'를 내세우는 방식은 결국 그 이면에 그들의 이야기 대상이 대부분 여자가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감으로써 결국 여자를 마녀로 규정하고 시작했던 <마녀 사냥>과 다르지 않은 출발점을 가진다. 물론 유재석의 이 프로그램을 오로지 <마녀 사냥>의 답습으로 보기는 힘들다. 8년 여 만에 폐지되었던 <놀러와>의 마지막 시도 중 하나가, 유재석과 남자 패널들이 여성 게스트를 불러다 놓고, 연애에 있어 남성적 시각과 여성적 시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조율했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시도는 <놀러와>의 호흡기를 뗀 결정적 시도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묻혔던 아이템을 용감하게 다시 들고 나올 수 있었던 데는 그런 그들만의 이야기가 손질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마녀 사냥>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내세운 것은 유재석만이 아니다. 신동엽이 kbs2에서 선보일 파일럿 예능 <미스터 피터팬>역시 남자들만의 예능을 표방한다. 물론 이 작품은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3월 7일 <마녀 사냥> 예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도 야외 녹화만으로도 힘들다고 하는 신동엽이 하는,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것도 남자들의 이야기를 내세운 프로그램은, <마녀 사냥>의 mc 신동엽의 색채가 짙게 음영처럼 드리워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녀 사냥>의 성공을 단지 19금이라던가, 음지에 묻어 두었던 사랑을 양지로 꺼내든 성적 담론에 국한시키면 아쉽다. 19금이라던가, 성에 관해서는 <마녀 사냥>못지 않은, 혹은 그보다는 더한 케이블의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마녀 사냥>이 군계 일학으로 젊은 층의 호응을 얻었던 것은,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등의 mc진과 곽정은, 한혜진, 홍석천등의 패널 등이 이루어진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조화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자막으로 순화시켜야 하거나, 묵음 처리를 해야 할 만큼 솔직한 입장의 토로와, 그에 못지 않은 패널 별 입장에서의 현실적이고도 설득력있는 조언들이 이 프로그램을 '소통'에 성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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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머니투데이)

그에 따라, 봄 개편을 맞이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스튜디오 토크쇼라 하더라도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관객, 혹은 관객 이상의 시청자층과의 소통을 내건다. <마녀 사냥>의 성공을 뒤업고 성시경이 mc 중 하나로 등극한 kbs의 토크쇼 <진격의 역지사지-대변인들>이 그것이다. '당신의 입이 되어 드립니다'라는 컨셉은 <마녀 사냥>의, 그리고 kbs2의 <안녕하세요>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단지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넘어서, 개인의 신변 잡기를 넘어서, 갑을 관계 등 사회적 불통을 그 대상을 확산 시킨다는 점에서 발전적 모방의 사례가 된다. 이미 <라디오스타>나, <마녀 사냥>을 통해 검증된 김구라와, 성시경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감으로써, 새로운 영역의 위험 요소를 줄이고자 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홀씨처럼 날아가, 새로운 포자들을 번식시키고 있는 <마녀 사냥>이 처음이라고 말하기는 또 어폐가 있다. 그에 앞서, 게스트들을 불러놓고, 19금은 아니지만, b급 정서의 솔직한 토크로 한때 화제가 되었던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든 <라디오 스타>가 존재하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여전히 우리의 생활 곁에서 우리의 귀가 되어주고 있는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이다. 결국은 라디오 프로그램식의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주고, 그것을 mc가 소개하고, 게스트와 함께 난장토론을 벌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식들이 홀씨의 근원이다. 결국 범람하다 못해 고사되어 갈 조짐을 보이는 공중파 예능의 젖줄은 방송의 원류 라디오가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8. 11:48

과연 동일한 드라마가 맞을까 싶게 2회를 연 <쓰리데이즈>는 그 내용만큼이나 진행에 있어서도 반전이었다. 

마치 프롤로그라도 되는 양 세 번의 총성이 울리기 까지 등장인물들의 처한 상황을 느슨하게 1회가 보여준 것과 달리(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두 명의 인물이 살해되며 사건의 복선이 깔리지만), 2회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대통령의 실종에서 암살을 시도한 인물까지 밝혀내며 한 코스를 단숨에 달려 버린다. 16부라는 드라마 동안, 대통령의 암살 시도가 굵직한 미스터리로 갈 거라는 시청자의 안이한 기대를 단숨에 짓밟아 버리며. 

(사진; 스타 투데이)

제작 발표회에서 함봉수 실장 역을 맡은 장현성은 우스개 소리로 친구인 하지만 늘 드라마에서 몸을 쓰는 역에 익숙한 비서실장 역의 윤제문을 두고, 헷갈리지 말라고 자신이 경호실장임을 밝혔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헷갈리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을 통해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 경호실장 역의 장현성이 가장 먼저 실체를 밝히는 악역이 될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1회에서도 경호실을 찾아와 위협적으로 책임을 묻는 윤제문이나, 심지어 2회에서 경호실장 옆에서 연신 눈을 돌리며 의심가는 표정을 짓는 경호 본부장 역의 안길강을 의심할 지언정, 1회부터 충실히 대통령의 경호에 여념이 없는 경호실장 함봉수를 의심할 순 없었다. 심지어 드라마 공홈의 인물 관계도에서 조력자로 표시되는 함봉수가 단 2회만에 대통령 암살범으로 등극(?)함으로써 이제 <쓰리데이즈>에서는 주인공 한태경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어져 버린다. 

하지만 믿을 사람이 없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저격한 범인이 함봉수 임이 밝혀진 순간, 한태경에게 총을 겨누며 함봉수는 말한다. 대통령은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사실 2회의 드러난 반전이 대통령을 지키는 핵심인 경호실장이 암살범이었다는 사실이라면, 내적 반전은,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함봉수의 선언이다. 그의 단언으로 드라마는 대통령의 암살을 밝히는 단순 미스터리에서 한 발 더 깊게 들어간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에서부터 작가는 정의로워야 하지만 정의로울 수 없는 사회적 존재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싸인>에서는 법의학이라는 수단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이명한(전광렬 분)과 법의학을 수호하는 윤지훈(박신양 분)의 대립을 내세웠다. <유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적 영역이 되어야 할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조현민(엄기준 분)과 그에 대항하는 사이버 수사대의 김우현(소지섭)이 등장한다. 

<쓰리데이즈>는 보다 더 직설적이다. 단 2회 만에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것을 목숨과도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경호실장이 대통령을 저격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를 그저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인즉슨,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놈이란다. 그 순간, 그의 방식은 부적절했지만, 그의 선택은 또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문제가 된 '기밀 문서 98'의 내용이건, 혹은 함봉수가 피력한 바의 논리이건, 대통령이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면 모든 비극의 시작은 표피적인 암살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는 보여지는 암살 사건을 넘어 또 다른 궤도를 가진 드라마로 재시동을 걸게 된다. 

김은희 작가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어떤 직위, 그 중에서도 특히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사적 이해로 농단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것이 법의학을 농락하는 그 누구든, 정보를 전횡하는 그 누구든, 심지어 국가를 농단하는 그 누구든, 결국 본질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직위와 역량을 들고 타인을 농락하려 드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 처음부터 아래까지 너무도 익숙한 현상이다. 그런 그들에 맞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마저 내걸며  자신이 맡은 바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싸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놀랍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법의학적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조차 불사했다는 그 지점이다. 개인적 원한이나, 집단적 복수가 아니라, 순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그 직업적 헌신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이 죽음을 걸고서야 가까스로 얻어지는 어려운 난제라는 자각때문일 것이다. 

(사진; 해럴드 경제)

그런 윤지훈에 못지 않게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는 순혈의 정의남 한태경은 이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의 딜레마는 김은희 작가 작품의 전작들 주인공들 보다 더 어렵다. 그의 직업인 경호관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떤 사람 혹은 세력, 그리고 앞으로 밝혀지게 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대통령 사이에서 직업적 윤리와, 사적 원한, 그리고 그를 앞서는 역사적, 혹은 그 이상의 도덕적 윤리 앞에서 고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켜야 할 사람이 지킬 가치가 없다면, 그를 지켜야 하는 한태경의 선택은? 함봉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에 두고서도, 그리고 장례식을 미뤄두고라도,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한태경에게 던져진 선택은 곧 이 드라마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시청자들은 고뇌하는 한태경과 함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게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7. 01:49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가 종영되었다.

다른 시즌에서도 그래왔듯 그녀 신주연(김소연 분)의 집을 찾아든 주완(성준 분)과의 사랑을 이룬다. 무려 여섯 살 연하의 잘 나가는 뮤지션 남친이다. 주인공 신주연만이 아니다. 그녀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이민정(박효주 분)도, 정희재(윤승아 분)도 다 사랑을 쟁취했다. 다만, 신주연과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던 강태윤(남궁 민 분)과 오세령(왕지원 분)만이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침표를 찍지 못했을 뿐, 말 줄임표가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랑만이 아니다. 신주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앙숙이었던 오세령과의 우정을 회복했으며, 그 우정과 함께 사업에서의 윈윈을 얻게 되었다. 이민정은 당당하게 미혼모임을 밝히고서도 팀장의 자리를 누릴 수 있었으며, 정희재는 1년을 기다려주겠다는 착한 남친을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저 해피엔딩에 이르는 사랑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고구마였던 주완을 보살펴 주던 신주연에게 어른 남자가 되어 나타난 주완은 이제는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는 주연을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주연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그와의 커플링을 목욕탕 선반 유리잔에 던져 넣는 것으로 시크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주연의 냉랭했던 마음은, 동료의 걱정을 직장이라는 틀 속에 넣어 각자의 문제라 외면하려 했던 주연의 이기적인 태도는 진정한 사랑을 감별할 수 있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직장 동료를 넘어 우정이라는 관계에 도달하는 '성숙함'에 도달하게 되었다. 

20,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장르를 '칙릿(chick lit)'이라고 한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는 그렇게 칙릿의 장르적 특성에 충실한 듯 보인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의 일종인 칙릿을 굳이 로맨스 소설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용어 '칙릿'이라는 단어를 차용한데는 장르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산업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 여성들의 사회적 존재가 두드러지면서, 그들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장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칙릿을 굳이 로맨스 소설과 구분하는 장르적 이유를 들자면,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반영한다는 데 있다. 굳이 방점을 찍자면, 로맨스 보다는 '직업 의식'이나 라이프 스타일 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놓고 보면, 과연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는 두 장르 중 어느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리뷰 스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홈쇼핑 회사의 MD인 주연, 금요일 밤이면 원나이트 하는 남성을 만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성적 용구를 만족하는게 충실한 민정, 그리고 고시를 준비하는 가난한 애인을 둔 희재는 드라마의 시작 초반만 해도, 우리 시대의 젊은 여성의 리얼리티를 충실히 살려낸 듯 보였다. 그리고 매회, 마치 여성판 <마녀 사냥>이라도 되는 듯, 키스에서 부터 시작하여, 스킨 쉽,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적나라한 수다는, 그 예전 <SEX&CITY>의 그녀들의 수다 만큼이나 적나라했다. 어디 그뿐인가, 공중파 드라마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부모님 세대의 간섭 따위는 없다. 오로지 사랑도, 삶도 나의 선택인 듯 보인다. 쿨한 젊은 세대의 표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똑부러지게 당당한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의 대변자같은 그녀들이 사랑하는 남자들은 그녀들이 어릴 적 보던 만화 <캔디>의 안소니나 테리우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시절 고구마였던 주완을 보모처럼 주연이 보살펴 주듯이, 불현듯 멋진 남자가 되어 나타난 주완은 주연을 그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는 양 보살펴 준다. 피곤하고 상처 받아 돌아온 집에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는 우렁 각시같은 주완이 있다면, 직장에는 또 다른 키다리 아저씨 태윤이 팀장으로 음으로 양으로 주연을 보살핀다. 어디 그뿐인가. 원나이트의 상대자로 피지 못할 임신의 상대방은 알고보니, 애아빠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실남이다. 고생고생해서 뒷바라지 하자마자 고시에 성공한 애인이 헤어지자 하여 상처를 받을라치면 자기 마음을 자기보다도 더 잘 아는 자상한 동료 남친이 등장한다. 만나자마자 하는 키쓰에서 시작하여, 그것도 부족하면 상상으로까지 매회 충만했던 스킨 쉽의 실체는, 사실 여전히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백마 탄 왕자'들이다. 단지 그들이 탄 백마가 시대에 맞게 진솔한 위로와, 직장에서의 배려, 삶의 진정한 동반자로 변색되었을 뿐이다. 아니, 이것도 그들의 옵션에 불과하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속 그 어떤 남자도, 등장한 여주인공들만큼이나,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장 구체적 딜레마인 경제력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어릴 적 그녀들이 읽던 동화나 만화 속 왕자님에 버금가는 능력자들이다. 여전히 드라마 속 그녀들은 어떤 의미에선가 신데렐라들인 것이다. 

드라마는 적나라하게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듯 하지만, 드라마 속 그녀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사랑도, 일도 승승장구요, 미혼의 임신도 거뜬하며, 직장 1년 차에 속 시원하게 때려치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그들의 사랑 놀음에. 주연의 독백에 홀려 저건 내 이야기다 싶어 빠졌다 돌아온 현실은 그래서 더 초라하다. 제 아무리 <마녀 사냥>을 열 시청해도 막상 내 연애는 책으로 배운 것과 다를 바 없는 식이다. 내 앞의 남자는 절대 백마 따위는 커녕, 집값이 두려워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할 찌질남일 뿐이다. 
<로맨스가 필요해>가 시즌을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환타지는 강화되는 경향을 띤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여전히 신데렐라 이야기에 골몰한다. 현실이 압박을 더할 수록, 드라마는 황홀하다. 그래서 더 공허하다. 이제는 젊은 세대 사랑 문법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로맨스가 필요해>가 그래서 더 아쉽다. 


by meditator 2014. 3. 5. 02:43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동화의 세계가 열린다.

하지만 드라마 속 동화는 결코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동화 속 죽음의 신에게 아이를 잃은 엄마는 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이가 간 곳을 알기 위해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기꺼이 자르고, 가시 나무를 자신의 따스한 품으로 안아준다. 그래서 드디어 만나게 된 죽음의 신, 하지만 죽음의 신이 있는 곳은 강과 숲이 막고 있다. 죽음의 신은 엄마에게 말한다. 그 강을 건너고 싶으면 두 눈을 강에 던지라고. 엄마는 주저없이 자신의 두 눈을 강에 던진다. 아이를 위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모성의 댓가는 잔혹하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를 구했냐는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동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드라마가 비로소 시작된다. 

(사진; 헤럴드 경제)

드라마의 서두에 짤막하게 보여진 동화의 내용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엄마인 수현(이보영 분)이 자신의 아이 샛별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덕분에 1회 내내, 아직은 엄마와 함께 사는 샛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청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샛별의 엄마 수현은 실시간으로 범인을 현상 수배하고, 범인을 찾아내는 시사 프로그램의 작가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샛별의 아버지인 한지훈(김태우 분)은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자신의 소신을 펼 정도로 정평이 난 인권 변호사이다. 수위 아저씨가 홀대하는 장애인에게 동정을 보이고, 잔혹하게 여자를 살해한 살인범에게 분노를 느끼며 저돌적으로 반응하는 수현도, 피해자 가족에게 오물 세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기훈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들로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사회적 의식과 달리, 현실의 수현은 지극히 보통의 엄마일 뿐이다. 일하느라 돌보지 못하는 아이를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맡긴 채, 영어 학원이다, 수학 과외다 하며 뺑뺑이 돌리고, 그런 아이가 잠시 일탈을 위해 찾아간 장애인에게 당장 싸다귀를 날릴 만큼 속물적인 엄마일 뿐이요, 의식있는 변호사인 아빠는 그런 엄마를 방관하며 육아에는 오로지 엄마의 몫으로 돌리며 바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부모 아래에서 학습 부진을 겪으면서도 티없이 순수한 딸 샛별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착한 심성으로 자꾸만 엄마와 비끄러져 나가며, 다가올 비극의 징조를 보인다. 굳이 우연히 들른 까페 여인의 의미 심장한 예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동화의 학습 효과를 겪은 시청자들은 그 짧은 1회 동안, 엄마의 품에서 자꾸만 벗어나 튕겨나가는 샛별이의 행보에 번번히 가슴을 쓸어내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돌발적으로 사건을 만들던 샛별이 정작 사라지게 된 계기는, 마치 백화점에서 잠깐 아이의 손을 놓았던 그 찰라로 인해 아이를 잃게 되듯이, 10년 전 사랑하던 사람을 만나 잠깐 차를 마시는 그 되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우연히 벌어진다. 그것도 하필 수현이 내용까지 바꿔가며 수배를 하려던 했던 그 연쇄 살인범의 손아귀에 아이를 놓친다. 

뿐만 아니라, 번잡스럽게 벌려진 1회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등장하는 그 누구도 다 의심스러울 뿐이다. 뻔히 교도소에 갇혀진 사형수에서 부터, 그의 어머니가 불현듯 수현의 빌라 앞에 등장하는 것이며,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지적 장애아가 샛별이의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까지. 뜬금없이 수현의 집으로 쳐들어 온 사형수의 동생 기동찬(조승우 분)까지 의심의 촉은 끝이 없이 번져간다. 도대체 10년 전 벌어졌던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기에 그 사건의 인물들이 촘촘히 수현과 수현의 딸 샛별의 주변에 포진되어 있는 걸까. 과거의 사건까지 시선이 간다. 친절하게 샛별이 친구의 강아지를 맡아준 문방구 주인에서, 수현과 부딪쳤던 택배 기사는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고,심지어 이유없이 등장하고 말기엔 비중있는 조연인 기동규 장애 학교 교사조차 의구심이 든다. 당연히 한기훈에게 피해자의 가족의 심정으로 악다구니를 하던 방청객 역시 피해갈 수 없으며, 하다하다 아빠가 친아빠일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아니 한기훈을 정적으로 여기는 대통령은 어떨까?


(사진; osen)

<신의 선물>은 이렇게 단 1회 만에 마치 추리 소설의 첫 장 인물 소개난처럼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과 함께, 그들의 혐의에 대한 의심을 풀어 놓는다. 덕분에 극은 마치 잔뜩 쌀겨를 쑤셔넣은 오즈의 마법사 속 허수아비처럼 삐죽거리고,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오즈의 브레인인 양 허세를 부리던 허수아비라도 되버린 듯,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사건의 실체를 그려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의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번다한 전개를 실마리라 생각하고 도전 의식을 가진 그 누구라면, 2회를 이어 보며 모처럼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펼칠 장르물을 만났다 여길 것이요, 도무지 이리저리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가 그저 잔뜩 엉킨 것 이상으로 보여지지 않은 그 누군가는 두 손을 들고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마지막 복병이 있다. 생방송 순간에 들려오던 납치범의 다그치는 목소리 다음에 이어지던 딸 아이의 익숙한 흐느낌에 스튜디오로 달려가 전화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엄마 수현의 모습은, 장르극을 넘어, 처음 아이를 찾아 자신의 눈조차 서슴없이 던져주던 엄마의 처절한 모정을 다시 연상케 한다. 그래서, 장르를 넘어선 모성애의 서사라는, 보편적 공감대로서의 여지를 남기며 시청자들을 끌어 앉힌다. 

<신의 선물>이 그 부제처럼, 14일 이라는 기간을 빌미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직 열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단 1회 만에도, 엄마인 수현도, 그리고 등장한 그 누구도,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인물들로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현의 주변에서 촘촘하게 배치된 기동찬의 식구들에게서도 알 수 있듯이, 단지 이 드라마가 샛별의 납치 사건 이상의 그 무엇을, 그저 한 가족의 상실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닐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전작이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부부 사이의 불륜과 이혼 문제를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해냈듯이, <신의 선물> 역시 유괴 사건이라는 외피를 넘어 또 다른 문제 제기를 할 것처럼 보인다. 또한 <내딸 서영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그녀가 선택한 작품이라면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이보영이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된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이어 역시나 만만찮은, 하지만 기대해 봄직한 sbs의 월화 드라마 라인이다. 


by meditator 2014. 3. 4. 01:43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나눌 희망도, 서로/힘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혼자 밥먹는 세상
밥 맛 없다/ 참, 살 맛없다  -오인태<혼자 먹는 밥 > 중

먹방이 넘쳐나는 시대다. 
tv를 켜면 프로그램마다 먹방이 넘쳐난다. 끼니 때마다 정보 프로그램들은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고, 그 맛집 속 먹음직스런 음식은 예외없이 그날의 검색어 순위에 올라 또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능 프로그램도 다를 거 없다. 예능 프로그램 멤버 중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은 바로 먹방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일찌기 야수와 같은 식성을 보였던 강호동으로부터 시작하여, <나 혼자 산다>와 <1박2일>을 오가며 진가를 발휘하는 데프콘의 존재 이유중 하나가 먹방이다. 심지어 어린 추사랑의 사랑스러움에서조차 먹방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사진; 뉴스 에듀)

아니 케이블로 가면 아예 맛집을 찾아다니며 하루에 몇 끼를 먹어대는 건 예사다. 인터넷 방송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아예 먹방 전용 방송이 있고, 이 프로그램의 BJ(broadcasting jockey)들은 여자라 할 지라도 앉은 자리에서 킹 크랩에, 새조개에, 치킨까지 몇 끼는 거뜬히 먹어제끼고, 거리에 앉아 군복 차림으로 군대 시절을 추억하며 군사 식량을 시범보이고, 게스트의 요구에 따라 대화를 나누며 춤을 추다 음식을 먹는 생쇼(?)를 보이기도 한다. 

먹방계의 여신이라 칭해지는 BJ 더 디바의 방송은 하루 동안에만 조회수가 2만이 넘는다. BJ비룡의 경우, 그가 방송하는 거리까지 그의 고정 게스트들이 음식을 사들고 찾아와 함께 방송을 한다. 방송을 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는 BJ음마의 경우, 가족보다도 그의 게스트들이 그를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홀로 먹는 밥상을 sns에 시와 함께 올려 화제가 된 오인태 시인의 저녁상은 홀로 먹는 것이되, 그의 sns를 넘쳐나는 댓글로 풍성해진다. 

그렇다면 이 넘쳐나는 먹방을 시청하는 게스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피씨방과, 개인 피씨, 그리고 모바일을 통해 먹방을 시청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홀로 사는, 혹은 홀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488만 1인 가구들이 그 주 시청층이다. 학업으로, 혹은 가족 사정으로, 그리고 직업 때문에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먹방을 '탐닉'한다. 

그래서 먹방의 탐닉은 그저 먹방을 즐기고 빠져드는 문화 오락적 증상으로만 보여져서는 안돤다고 SBS스페셜은 진단한다. 우리 시대 먹방이란 이제는 해체되어 가는 가족 혹은 상실되어 가는 공동체를 향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지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제는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싱글 라이프와, 여전히 그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공동체적 의식, 그리고 무리 동물로써의 인간의 본성이 빚어낸 간극의 지엽적인 해소 방식이 먹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SBS스페셜의 카메라는 먹방의 진화를 시도한다. 그저 보고 즐기는 먹방이 아니라, 홀로 먹는 삶의 공허함을 메워줄 적극적 방식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그 첫 번째의 모색으로 등장하는 것이 '소셜 다이닝'(social dininig)이다. 
광고 디자이너 김건우씨의 경우처럼 일주일의 하루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직접 요리를 하고 함께 요리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아현동 재개발 지구 피터 아저씨네 작은 집에 그저 하루 음식을 먹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피터 아저씨네를 찾아든 객식구의 솔직한 답변처럼 음식은 솔직히 그리 맛있지 않더라도, 홀로 세상을 떠돌다가 어느 하루 좁은 방에서 마치 가족처럼 무릎을 맞대고 음식과 함께 나누는 대화가 그리워 사람들은 잊지 않고 이 허름하고 조그만 집을 찾아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비로소 '소셜 다이닝'과 같은 형태로 싱글 라이프의 모색이 시작되었다면, 이웃 일본의 경우, 아예 밥을 함께 먹기 위해 모여 사는 '셰어 하우스'가 있다. 집값이 비싸 한 지붕아래 모여 사는 경제적 필요를 넘어서, 한 식구가 되어, 함께 음식을 하고 나누는 생활 형태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아예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홀로 살아가는 노인, 혹은 노인 부부가 무료로 젊은 학생들을 데리고 살며 그들과 매일 저녁 식사를 나누는 '두 세대 함께 살기' 혹은 '꼴로까시옹'이 그것이다. 

'먹방'은 그저 트렌드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제는 좀 더 진지하게 '모색' 해 보기 시작할 우리 사회 싱글 라이프의 일탈적 형태이다. 그리고 이제, 홀로 살지만, 외로이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해 구체적 모색이 필요한 시기라 sbs스페셜은 말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4. 3. 3. 10:04

워낙 바빠서 tv 드라마 하나 챙겨 볼 여유가 없는 친구가 웬일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부부 사이의 문제를 모처럼 진지하게 바라보는 드라마라며, 그러면서 과연 재학(지진희 분)과 은진(한혜진 분)의 불륜으로 시작된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중년의 그 친구가 살아온 나날에서 짚어왔을 때, 설사 불륜이라 하더라도, 실제 부부 사이의 이혼이란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자기 나름의 결론과, 결혼에 대해 모처럼 진지하게 접근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부부의 외도와 갈등을 여타의 드라마처럼 무 자르듯 이혼이라는 결론으로 맺을 건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도 했다. 

(사진; tv 리포트)

그리고 드디어 종영을 맞이한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친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덕분에, 그 결론으로 인해 드라마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왔다. 

아마도 그것은 재학의 불륜을 알고 용의주도하게 쿠킹 클래스까지 잠입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미경(김지수 분)의 깊은 분노, 그리고 그 깊은 분노만큼이나 집착적인 사랑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오랜 세월 재학에 대한 사랑 만으로 거의 학대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을 견디며 살아온 미경에 대해 드라마를 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이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을까 라고 쉽게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다. 
은진의 외도가 성수(이상우 분)의 외도로 인한 보복성 해프닝의 성격이 강하고, 두 사람이 막말을 하며 혹독하게 상대방을 몰아세워도 이른바 '미운 정'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재학-미경 부부에게서는 함께 한 세월의 온기가 그보다 덜 느껴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그 냉랭함을 대신할 '정'과 '관계'를 설득하기에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논리가 상투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외도로 인한 상처가 치유받았다고 혹은 치유는 아니더라도 봉합되었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싶었으나, 시청자들은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 근거의 부족과 함께,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우리 드라마에 숨겨진 '이혼'에 대한 환타지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무시했다는 데서 오는 배신감도 있지 않을까.
일상의 삶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짧게는 하루, 아니 1박2일, 길게는 해외 여행을 꿈꾸는 핵심은 바로 '일탈'에 있다. 그처럼, 부부 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자신이 불만을 가지고 사는 문제들이 드라마를 통해 속시원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클라이막스와 엔딩은 마치 못된 놀부를 처단하듯,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응징하고 통쾌하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미경이 재학을 버리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환타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선택을 보여준다. 이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라고, 어쩌면 상대방의 불륜 한번으로 손상된 자존심을 내세워 이혼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과, 가족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익숙하지 않은 해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계 수위의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세운 해법이 역설적으로 환타지적이거나, 진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렇게 대중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달리, 애초에 제목에서부터 두 번의 이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당연한 수순이듯, 주인공 두 사람의  두번 째 이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준구<하석진 분)와 재혼한 은수(이지아 분)는 마무리 되지 않는 준구의 불륜으로 이혼의 위기에 놓인다. 은수의 전남편인 태원(송창의 분) 역시 새엄만 채린(손여은 분)의 딸 슬기(김지영 분)에 대한 학대로 이혼을 선언한 상태이다. 마치 두 사람은 제목이 정해준 메뉴얼처럼, 재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심지어, 이지아는 준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3월 1일 은수가 준구를 만나 정리하듯, 애초에 은수와 준구의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설사 준구가 바람을 피지 않았더라도 자의식이 강한 은수는 준구의 집안에서 조금씩 말라가다,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이혼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그보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마치 탯줄을 자르지 않은 아이처럼, 비록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이혼까지 했지만 여전히 정신적 유대의 끈을 놓지 않은 은수와 태원의 두번 째 결혼이 순탄치 않는게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두번 째 결혼은 마치 두 사람이 지난 시간 내렸던 첫 번째 이혼이라는 결정이 경솔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처럼 씌여지고, 두 사람들의 두번 째 파트너는 무엇을 어떻게 해도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하는 도구적 인간들일 뿐이다. 드라마는 그들이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에, 두번 째 이혼에 봉착한 것처럼 그려내지만, 결국 두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자존이라고 내세우면서, 첫 번 째 결혼의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두 주인공의 두번 째 이혼을 들먹이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이르른 이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르고 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와 태원은 두번 째 결혼의 붕괴 지점에 이르러서야, 지난날 자신들의 결정이 경솔했음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세월의 더깨가 앉은 좀 살아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과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에 대한, 그리고 관계에 대한 따스한 가능성에 대한 천착이라면,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이라는 노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냉소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을 담기에도, 가족이라는 그릇으로 포용하기에, 더더우기 개인의 자존감이 존중받기에는 더더욱 어색해져 버린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 거북살스런 제도를 야멸차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미경도 어색하고, 태중에 아이를 넣고 이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은수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애초에 결혼 자체가 미친 짓이기 때문일까. 설득력있는 이혼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일까. 


by meditator 2014. 3. 2. 10:26

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최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36살의 싱글남이다. 남들이 보기엔 도쿄의 내로라한 공대를 나와 도쿄 전철에 근무하며, 어린 시절 꿈꾸던 역을 짓는 일을 현실로 실현시킨 멋진 남자요, 이제는 결혼을 독촉하던 그의 어머니와 누나들조차,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익숙해져서 결혼하기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대학 시절부터 머물던 아파트에서 싱글 라이프를 꾸려나가는데 하등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금요일 밤 11시30분에 찾아오는 <나 혼자 산다>는 마치 위에서 서술한 다자키 쓰쿠르의 외면적 삶의 모습과도 같다. 혼자 살지만, 늘 주변에는 어우릴 누군가가 있고, 혼자 사는 삶은 먹방과 즐겨하는 취미로 넘쳐나고 감히 '외로움'을 들먹이기에 어색한 혼자로써 충만해 보이는 삶.

그런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는 그 누군가의 말처럼 스물 살 무렵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과도 같다. 아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저 책의 수식어처럼 개성이 강한 그들에 비해 '색채가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쭈뼛거리기 바빴던 한 켠으로 물러선 청춘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버림받았던(?) 그날 이후 그는 그저 이 이후의 삶을 연명해가며 서른 중반에 들어섰는데, 보는 사람들을 그를 그저 그럴 듯한 멋진 싱글남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전철 회사 멋진 싱글남  다자키 쓰쿠루의 속사정을, 아니 실은 경제 성장 시절의 무난하게 자랐지만 이제는 공허한 현실인이 되어버린 세대의 후일담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들여다 보듯이, 2월 28일 <나 혼자 산다>는 그간 화려한 먹방과 취미 생활에 밀려났던 속사정이 슬며시 드러난다.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인 김광규와 홀로 감기 몸살에 시달리는 파비앙의 혼자 사는 삶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가 전셋집을 구하기위해 고군분투 했다./MBC 나 혼자 산다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마치 다자키 쓰쿠루가 색채가 없는 자기 자신에 대비를 하듯 그가 만나는 누군가가 어떤 색깔로 대변되었듯, <나 혼자 산다>의 각각의 멤버는 무지개 회원이라는 아롱이 다롱이의 색깔을 지닌 동호회적 성격의 구성원으로 재규정된다. 그 중에서 김광규 회원이 발하는 빛의 프리즘은 독특하다. 우리가 동네 마트에서 쉽게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색채를 띠면서도, 가장 그 평범함의 파장이 크다. 마흔 후반의 머리가 더 벗겨질까, 혹은 이제사 좀 머리가 나는가 노심초사하며, 건강에 좋은 것은 결코 놓치지 않는 보통 중년남의 면모를 결코 빼먹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무색하게 에어로빅에,  살사에, 그것을 넘어 음반 취입에, 홀로 외국 여행까지 보통사람이 꿈을 꾸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그래서 다른 무지개 회원들의 삶이 홀로 사는 연예인의 삶을 '관상'하는데 그치게 되는 반면, 유독 김광규 회원의 삶에는 보는 사람들의 '감정이입된 공감'이 실린다. 더구나, 요즘처럼 날마다 뉴스에서 전세 대란을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하고 있는 시점에 하필 보통 사람의 대변인 같은 김광규 회원조차  그 전세 시장에 휩쓸리게 된 지점은 참으로 절묘하기 까지 하다. 

죽은 자식 뭐 만지기라고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이 누렸던 것들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렇게 김광규 회원은 전셋집을 옮길 처지에 놓이자, 자신이 사기로 날렸던 돈을 다시 떠올리고, 심지어 그때 살았던 동네의 시세까지 착각하며 다시 가보는 해프닝을 벌인다. 또 언제나 그렇듯 이사는 해야 하고 집값은 올라가서 여의치 않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듯 진작 무리를 해서라도 이집을 사는 건데 하는 정석의 과정 역시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들어 이제 좀 정들고 사는가 싶은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데서 오는 '정주의 동물'로써의 불안함이다. 집값이 맞지 않음에도 다시 예전 동네를 가보는 그의 발걸음은 이제와 또 다시 어디선가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버거움의 표현이다. 

그런 김광규 회원의 모습은 물론 그 개인에게는 또 다시 평화로웠던 삶을 휘젓는 고통이겠지만, 나 혼자 사는 '저들의 이야기' 같은 <나혼자 산다>가 다시 한번 우리네 삶의 한 가운데로 던져지는 공감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사진; 엔터 미디어)

프랑스 청년 파비앙의 감기 몸살은 그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의욕적인 프랑스 청년 파비앙이 처음 동네 축구 동아리에 나가 하루 종일 종횡무진 열심히 뛰었지만, 그 결과 그가 얻은 것은 혹독한 감기 몸살이다. 쌓아놓은 설거지, 두겹의 이불을 덮고 누운 채 배즙을 덥혀 마시는 파비앙의 모습은 홀로 아픈 사람의 처량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던 그가, 너무 아파 한의원을 찾고, 거기서 보험이 없어 거금을 내야 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우리 중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지만 우리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 누군가의 모습이 너무 여실히 드러나 가슴이 아파온다. 식당에 가서 감자탕을 즐겨 시키고, 공기밥을 흔들어 섞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결국 우리 안에 들어서지 못해 빠른 회복을 위해 고춧가루 탄 소주를 들이켜야 하는 그의 모습이 못내 짠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외국인 파비앙만이 아니라, 그처럼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서지 못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일 거 같다는 자각이 들기도 한다. 파비앙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가기 두렵다지만, 그와는 다른 우리와 같은 얼굴을 지닌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로 아픔을 물리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2월 28일의 <나 혼자 산다>는 모처럼 흥건한 먹방과 화려한 취미 생활을 뒤로 하고, 혼자 사는 삶의 속살을 내보였다. 그 속살에서 드러난 삶의 가장 기본인 사는 것, 그리고 질병에 대해 무방비한 싱글남의 모습은, 이 시대를 버텨가는 또 다른 우리들과 다르지 않기에 유독 짠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 혼자 산다>는 삶의 희로애락을 채워간다. 


by meditator 2014. 3. 1. 10:17

얼마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관능의 법칙> 리뷰를 썼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쓴 또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었다.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관능의 세대를 훌쩍 넘긴 나이이고, 그 또 다른 분은 아직 그들의 세대가 되려면 한참 먼 나이였다.

그 분이 그랬다. 자신이 그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아, 저 세대가 되어도 저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고 자신만만할 수 있구나 란 것이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똑같은 이야기일 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세대와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게 오히려 <관능의 법칙>이 불온했던 이유는, 그런 관능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안일한 낭만주의였기 때문이었는데, 누군가는, 그런 가능성이, 여전히 또 나이를 들어갈 희망으로 여겨지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의 차이는 2,30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가 필요해3>를 두고도 갈라진다. 그 세대를 훌쩍 넘어, 이제는 거의 자식뻘이 되어가는 세대의 이해를 위해 보는 나와, 그들과 동시대를 사는 그분의 입장이 역전되는 것이다. 나는 아, 요즘 젊은 세대는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라고 하며 보았다면, 오히려, 그분이 본 그 드라마는 현실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그저 환타지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다루는 세대가 자신의 세대와 비슷하면 비슷할 수록, 그 다루는 방식이 환타지스러운 것은, 동세대들은 그 현실과의 괴리감에 불편함을 느끼기 쉽고, 오히려 멀어지면 환타지로 받아들이는데 이물감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진리를 증명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사진; OSEN)

그렇다면 <드라마 스페셜- 들었다 놨다>가 그려낸 마흔 무렵의 사랑은 어땠을까?
대기업의 부장이지만, '내 인생엔 민폐란 없다'란 그의 좌우명의 현실태인 교감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조만간 원주로 좌천될 남궁 상(김 C)과 같은 회사의, 하지만 남궁 상과 전혀 다르게 스카웃이 되어 이 회사로 올만큼 잘 나가고 있는 이은홍 부장(우희진), 이은홍 부장이 부하 직원을 달달 볶아 가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종이에 그녀를 마녀라 그리며 속으로 궁시렁 대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두 사람의 관계의 시작은 같은 회사이지만, 서로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서로 다른 별의 사람들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사람의 아파트와, 마흔의 나이에 여전히 싱글이라는 지점이다. 그리고 <들었다 놨다>에서 마흔 무렵의 사랑은 바로 이런 생활 속 교집합으로 부터 시작된다. 남궁상이 절대 그녀와 얽히지 말아야지 하면 할 수록, 이은홍의 사생활은 자꾸 남궁상의 레이더에 잡히고, 그런 그녀에게 무심하게 던지는 남궁상의 관심이 똑부러지는 듯하지만, 홀로 생활하는데 두려움을 가진 이은홍의 싱글 라이프에 동심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관계의 진전이 '품앗이'라는 용어로 정의내려지고, 마지막 이은홍이 원주로 떠나는 남궁 상을 배웅하며, 아파서 병원에 실려간 환자 남궁 상의 보호자 란에 자신의 이름을 쓴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듯, <들었다 놨다>가 전하고자 하는 마흔의 연애는 싱글의 삶을 채워주는 일상의 공유들이다. 

그리고 잔잔하게 스며드는 품앗이 사랑을 하는 남궁 상과 이은홍의 사랑이, <관능의 법칙> 속 당당한 싱글로써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하는 정신혜(엄정화 분)의 사랑에 비해 훨씬 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듯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드라마를 다 보고 한 독해의 의미이고, 실제 드라마는 그런 일상의 연애를 보다 스타일리쉬하게 낭만적으로 그려내고자 애쓴다. 민폐를 끼치지 싫어하며 홀로 사는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남궁상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이 울려퍼지고, 도서관같은 서가가 폼나게 진열된 전혀 궁상맞지 않은 집을 배경으로, 남궁 상과 이은홍의 해프닝을 로맨틱 코미디처럼 진행시켜간다. 마치, 한 영화를 보고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 다른 판단을 하듯이, 드라마의 극본은 일상의 삶 속에서 조금씩 의지해 가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중년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연출은 그걸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붓질하겨 애쓰는데, <들었다 놨다>의 묘한 이질감이 존재한다. 덕분에, 남궁 상과 이은홍의 충돌은 부각되지만, 정작 그들이, 서로를 돌아보게 된 시점,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이 기울여지는 지점에 대한 설명은 불분명하다. 그저 언제나 로맨틱 코미디의 그것처럼, 김C라는 묘한 존재감에 의지한 남궁상과, 우희진이라는 중년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름다운 두 사람이 도드라져보이는, 사랑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연인들의 또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되돌아보면 현실적이었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들었다 놨다>가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매체 속 사랑은 늘 한결같이 낭만적이고, 로맨틱해져야 하는지, 작은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2. 24. 13:24

40%가 넘나드는 하지만, 이 드라마가 어디까지 가려고 하나 하는 우려와 이웃집 싸움 구경 하는 심정으로 관심을 끌던 <왕가네 식구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 회까지 '어의상실'의 원칙을 견지하며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오로라 공주>나 <왕가네 식구들>과 같은 드라마의 후속작들은 일반 잘 나가던 드라마와 다른 부담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워낙 '막장' 요소로 이름 높았던 전작의 조미료같던 진한 맛을 지양하며 새 드라마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것과,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적 관심을 끌던 전작만큼은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방영 2회만에 30%를 넘은 <참 좋은 시절>의 출발은 두번 째 관점에서 순조로운 듯하다. 또한, '왕가네 식구들이 기록을 봐야하는 스피드 스케이팅이었다면, <참 좋은 시절>은 제한된 시간 안에 소소한 몸짓으로 점수를 얻어내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이라고 규정을 내렸던 김진원 연출의 정의처럼, 소소하고 따뜻한 행복을 그려내겠다는 <참 좋은 시절>의 색채 또한 <왕가네 식구들>과는 이미 2회만에 그 차별성을 분명하게 각인시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 osen)


<참 좋은 시절>은 그간 주중 미니시리즈만 집필해오던 이경희 작가가 2000년도의 <꼭지>이후 모처럼 돌아온 주말극이다. 이미 <고맙습니다>를 통해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그려내어 전국민적 드라마를 탄생한 바 있는 이경희 작가에게, 주말 드라마는 어찌보면 생소하거나 도전해야 할 장르이기보다는 조금 더 풍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이라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늘 이경희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가족으로 부터 시작된 해원의 희생자들이곤 했으니까. 아직도 사랑에 대한 드라마라면 한번쯤은 회자되곤 하는 <미안한다 사랑한다>에서 가장 기본적인 갈등의 시작은 엄마 오들희(이혜영 분)의 숨겨진 아들이었던 차무혁(소지섭 분)이란 존재였다. <크리스마스엔 눈이 올까요>도 다르지 않다. 차강진(고수 분)과 한지완(한예슬 분)의 슬픈 사랑의 시작은 그의 부모 차춘희(조민수 분)와 한준수(천호진 분)의 비극적 관계로 부터 잉태된다.
지양할 수 없는 관계 가족, 그 가족으로 부터 잉태된 비극, 그렇게 이경희 월드의 시작은 언제나 도망칠 수 없는 운명적 관계로 부터 시작되고, <참 좋은 시절> 역시 다르지 않다. 강동석(이서진 분)의 어머니 장소심(윤여정 분)이 차해원(김희선)의 집에서 가정부를 살게 되면서 갈등의 씨앗은 뿌려진다. 차해원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가족들이 차해원의 어머니에게서 받는 수모를 견뎌내기 힘든, 자존심강한 강동석은 이경희 월드에서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 자신 한 사람으로는 너끈히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는 존재이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들어서면 한없이 상처받고 그래서 발톱을 세우게 되는 가녀린 짐승같은 존재, 그것이 이경희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끊어낼래야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 위에 주인공들을 상처입히는 또 하나의 관계가 있다.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고 없음이라는 양적 물증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이 사회적 신분 제도처럼 고착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규정하고, 평가 기준이 되는 '돈'에 의해 재편된 인간 관계가 그것이다. 촉망받던 의대생 강마루를 물질로 평가되는 세계 속에 자신을 던지는 욕망의 현신으로 변질시키는 건 결국 그의 불운한 가정 환경이다.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 세상의 핍밥을 견디지 못하고, 자아를 외면한 채 자본주의적 자아로 재편하여 기계인간과도 같은 존재로 거듭나는 건, 이경희월드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차무원을 거듭 상처주는 건, 오들희의 숨겨진 자식이란 존재 외에, 부잣집 사모님인 그녀로부터 쏟아지는 모멸이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차강진도, <참 좋은 시절>의 강동석이 냉혹해 지는 지점은  구체적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이다. 

(사진; osen)

하지만 사회적으로 불균등한 부, 그리고 거기에 얹혀진 가족 관계로 부터 상처받고 발톱을 드러내는 주인공, 그것은 이경희 월드의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 '피겨같다는' 연출의 말처럼, 진짜 이경희 월드를 규정짓는 본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 냄새 풍기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내걸었던 <고맙습니다>에서 세상에 상처받고, 아픈 딸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던져진 운명을 원망하기 보다, 그것을 품고 또 품으려 애썼던 이영신(공효진 분)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이 그들이다. 단 2회지만, 10년 만에 돌아온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찬 동네 어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동옥(김지호 분)으로 대변되는 바보같은 사랑이, 그리고 잘 나가는 검사 아들 대신 못나고 부족한 동옥과 심지어 자신의 친 아들이 아닌 동희(택연 분)를 부등켜 안고 사는 장소심 여사가 이경희 월드를 완성시키는 충분 조건이다. 그들 역시 상처받지만 그 상처를 들고 울부짖기 보다는, 그 대신 가진 것 없어도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진실한 사랑의 힘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주변의 관계까지도 온전하게 일으켜 세우는 강인한 자존감, 그것이 이경희 월드의 주제 의식이다. 그런 그들 덕분에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아파하는 주인공들을 발톱을 세우지만, 결국은 발톱 대신 화해와 사랑으로 귀결되게 되는 것이다. 

단 2회에 불과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이경희 월드의 색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주라는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둥그런 고분을 배경으로 한 나지막한 도시의 라인처럼, 2014년을 이야기함에도 과거의 어느 시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배경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2014년을 사는 주인공들임에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얽혀들게 되는 강동석 검사의 가족들처럼, 얼기설기 사람 냄새 풍기며 우르르 다가오는 가족들에게서 <왕가네 식구들>의 현실적 아비규환 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마치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가며 느끼게 되는, 분명 내가 지나가고 있는 곳임에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추억 속을 걷는 듯한 처연함을 <참 좋은 시절>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제는 점점 찾아보기 힘든 사람다운 훈훈함이 <참 좋은 시절>의 기조이기 때문이리라. 


by meditator 2014. 2. 24.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