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최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36살의 싱글남이다. 남들이 보기엔 도쿄의 내로라한 공대를 나와 도쿄 전철에 근무하며, 어린 시절 꿈꾸던 역을 짓는 일을 현실로 실현시킨 멋진 남자요, 이제는 결혼을 독촉하던 그의 어머니와 누나들조차,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익숙해져서 결혼하기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대학 시절부터 머물던 아파트에서 싱글 라이프를 꾸려나가는데 하등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금요일 밤 11시30분에 찾아오는 <나 혼자 산다>는 마치 위에서 서술한 다자키 쓰쿠르의 외면적 삶의 모습과도 같다. 혼자 살지만, 늘 주변에는 어우릴 누군가가 있고, 혼자 사는 삶은 먹방과 즐겨하는 취미로 넘쳐나고 감히 '외로움'을 들먹이기에 어색한 혼자로써 충만해 보이는 삶.

그런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는 그 누군가의 말처럼 스물 살 무렵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과도 같다. 아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저 책의 수식어처럼 개성이 강한 그들에 비해 '색채가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쭈뼛거리기 바빴던 한 켠으로 물러선 청춘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버림받았던(?) 그날 이후 그는 그저 이 이후의 삶을 연명해가며 서른 중반에 들어섰는데, 보는 사람들을 그를 그저 그럴 듯한 멋진 싱글남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전철 회사 멋진 싱글남  다자키 쓰쿠루의 속사정을, 아니 실은 경제 성장 시절의 무난하게 자랐지만 이제는 공허한 현실인이 되어버린 세대의 후일담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들여다 보듯이, 2월 28일 <나 혼자 산다>는 그간 화려한 먹방과 취미 생활에 밀려났던 속사정이 슬며시 드러난다.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인 김광규와 홀로 감기 몸살에 시달리는 파비앙의 혼자 사는 삶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가 전셋집을 구하기위해 고군분투 했다./MBC 나 혼자 산다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마치 다자키 쓰쿠루가 색채가 없는 자기 자신에 대비를 하듯 그가 만나는 누군가가 어떤 색깔로 대변되었듯, <나 혼자 산다>의 각각의 멤버는 무지개 회원이라는 아롱이 다롱이의 색깔을 지닌 동호회적 성격의 구성원으로 재규정된다. 그 중에서 김광규 회원이 발하는 빛의 프리즘은 독특하다. 우리가 동네 마트에서 쉽게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색채를 띠면서도, 가장 그 평범함의 파장이 크다. 마흔 후반의 머리가 더 벗겨질까, 혹은 이제사 좀 머리가 나는가 노심초사하며, 건강에 좋은 것은 결코 놓치지 않는 보통 중년남의 면모를 결코 빼먹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무색하게 에어로빅에,  살사에, 그것을 넘어 음반 취입에, 홀로 외국 여행까지 보통사람이 꿈을 꾸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그래서 다른 무지개 회원들의 삶이 홀로 사는 연예인의 삶을 '관상'하는데 그치게 되는 반면, 유독 김광규 회원의 삶에는 보는 사람들의 '감정이입된 공감'이 실린다. 더구나, 요즘처럼 날마다 뉴스에서 전세 대란을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하고 있는 시점에 하필 보통 사람의 대변인 같은 김광규 회원조차  그 전세 시장에 휩쓸리게 된 지점은 참으로 절묘하기 까지 하다. 

죽은 자식 뭐 만지기라고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이 누렸던 것들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렇게 김광규 회원은 전셋집을 옮길 처지에 놓이자, 자신이 사기로 날렸던 돈을 다시 떠올리고, 심지어 그때 살았던 동네의 시세까지 착각하며 다시 가보는 해프닝을 벌인다. 또 언제나 그렇듯 이사는 해야 하고 집값은 올라가서 여의치 않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듯 진작 무리를 해서라도 이집을 사는 건데 하는 정석의 과정 역시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들어 이제 좀 정들고 사는가 싶은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데서 오는 '정주의 동물'로써의 불안함이다. 집값이 맞지 않음에도 다시 예전 동네를 가보는 그의 발걸음은 이제와 또 다시 어디선가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버거움의 표현이다. 

그런 김광규 회원의 모습은 물론 그 개인에게는 또 다시 평화로웠던 삶을 휘젓는 고통이겠지만, 나 혼자 사는 '저들의 이야기' 같은 <나혼자 산다>가 다시 한번 우리네 삶의 한 가운데로 던져지는 공감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사진; 엔터 미디어)

프랑스 청년 파비앙의 감기 몸살은 그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의욕적인 프랑스 청년 파비앙이 처음 동네 축구 동아리에 나가 하루 종일 종횡무진 열심히 뛰었지만, 그 결과 그가 얻은 것은 혹독한 감기 몸살이다. 쌓아놓은 설거지, 두겹의 이불을 덮고 누운 채 배즙을 덥혀 마시는 파비앙의 모습은 홀로 아픈 사람의 처량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던 그가, 너무 아파 한의원을 찾고, 거기서 보험이 없어 거금을 내야 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우리 중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지만 우리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 누군가의 모습이 너무 여실히 드러나 가슴이 아파온다. 식당에 가서 감자탕을 즐겨 시키고, 공기밥을 흔들어 섞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결국 우리 안에 들어서지 못해 빠른 회복을 위해 고춧가루 탄 소주를 들이켜야 하는 그의 모습이 못내 짠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외국인 파비앙만이 아니라, 그처럼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서지 못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일 거 같다는 자각이 들기도 한다. 파비앙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가기 두렵다지만, 그와는 다른 우리와 같은 얼굴을 지닌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로 아픔을 물리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2월 28일의 <나 혼자 산다>는 모처럼 흥건한 먹방과 화려한 취미 생활을 뒤로 하고, 혼자 사는 삶의 속살을 내보였다. 그 속살에서 드러난 삶의 가장 기본인 사는 것, 그리고 질병에 대해 무방비한 싱글남의 모습은, 이 시대를 버텨가는 또 다른 우리들과 다르지 않기에 유독 짠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 혼자 산다>는 삶의 희로애락을 채워간다. 


by meditator 2014. 3. 1. 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