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동일한 드라마가 맞을까 싶게 2회를 연 <쓰리데이즈>는 그 내용만큼이나 진행에 있어서도 반전이었다. 

마치 프롤로그라도 되는 양 세 번의 총성이 울리기 까지 등장인물들의 처한 상황을 느슨하게 1회가 보여준 것과 달리(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두 명의 인물이 살해되며 사건의 복선이 깔리지만), 2회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대통령의 실종에서 암살을 시도한 인물까지 밝혀내며 한 코스를 단숨에 달려 버린다. 16부라는 드라마 동안, 대통령의 암살 시도가 굵직한 미스터리로 갈 거라는 시청자의 안이한 기대를 단숨에 짓밟아 버리며. 

(사진; 스타 투데이)

제작 발표회에서 함봉수 실장 역을 맡은 장현성은 우스개 소리로 친구인 하지만 늘 드라마에서 몸을 쓰는 역에 익숙한 비서실장 역의 윤제문을 두고, 헷갈리지 말라고 자신이 경호실장임을 밝혔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헷갈리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을 통해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 경호실장 역의 장현성이 가장 먼저 실체를 밝히는 악역이 될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1회에서도 경호실을 찾아와 위협적으로 책임을 묻는 윤제문이나, 심지어 2회에서 경호실장 옆에서 연신 눈을 돌리며 의심가는 표정을 짓는 경호 본부장 역의 안길강을 의심할 지언정, 1회부터 충실히 대통령의 경호에 여념이 없는 경호실장 함봉수를 의심할 순 없었다. 심지어 드라마 공홈의 인물 관계도에서 조력자로 표시되는 함봉수가 단 2회만에 대통령 암살범으로 등극(?)함으로써 이제 <쓰리데이즈>에서는 주인공 한태경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어져 버린다. 

하지만 믿을 사람이 없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저격한 범인이 함봉수 임이 밝혀진 순간, 한태경에게 총을 겨누며 함봉수는 말한다. 대통령은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사실 2회의 드러난 반전이 대통령을 지키는 핵심인 경호실장이 암살범이었다는 사실이라면, 내적 반전은,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함봉수의 선언이다. 그의 단언으로 드라마는 대통령의 암살을 밝히는 단순 미스터리에서 한 발 더 깊게 들어간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에서부터 작가는 정의로워야 하지만 정의로울 수 없는 사회적 존재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싸인>에서는 법의학이라는 수단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이명한(전광렬 분)과 법의학을 수호하는 윤지훈(박신양 분)의 대립을 내세웠다. <유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적 영역이 되어야 할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조현민(엄기준 분)과 그에 대항하는 사이버 수사대의 김우현(소지섭)이 등장한다. 

<쓰리데이즈>는 보다 더 직설적이다. 단 2회 만에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것을 목숨과도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경호실장이 대통령을 저격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를 그저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인즉슨,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놈이란다. 그 순간, 그의 방식은 부적절했지만, 그의 선택은 또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문제가 된 '기밀 문서 98'의 내용이건, 혹은 함봉수가 피력한 바의 논리이건, 대통령이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면 모든 비극의 시작은 표피적인 암살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는 보여지는 암살 사건을 넘어 또 다른 궤도를 가진 드라마로 재시동을 걸게 된다. 

김은희 작가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어떤 직위, 그 중에서도 특히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사적 이해로 농단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것이 법의학을 농락하는 그 누구든, 정보를 전횡하는 그 누구든, 심지어 국가를 농단하는 그 누구든, 결국 본질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직위와 역량을 들고 타인을 농락하려 드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 처음부터 아래까지 너무도 익숙한 현상이다. 그런 그들에 맞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마저 내걸며  자신이 맡은 바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싸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놀랍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법의학적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조차 불사했다는 그 지점이다. 개인적 원한이나, 집단적 복수가 아니라, 순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그 직업적 헌신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이 죽음을 걸고서야 가까스로 얻어지는 어려운 난제라는 자각때문일 것이다. 

(사진; 해럴드 경제)

그런 윤지훈에 못지 않게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는 순혈의 정의남 한태경은 이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의 딜레마는 김은희 작가 작품의 전작들 주인공들 보다 더 어렵다. 그의 직업인 경호관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떤 사람 혹은 세력, 그리고 앞으로 밝혀지게 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대통령 사이에서 직업적 윤리와, 사적 원한, 그리고 그를 앞서는 역사적, 혹은 그 이상의 도덕적 윤리 앞에서 고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켜야 할 사람이 지킬 가치가 없다면, 그를 지켜야 하는 한태경의 선택은? 함봉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에 두고서도, 그리고 장례식을 미뤄두고라도,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한태경에게 던져진 선택은 곧 이 드라마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시청자들은 고뇌하는 한태경과 함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게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7. 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