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마귀-파발을 달리다>를 통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소식을 전하던 파발꾼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길어올린 바 있던 드라마 스페셜이 이번에는, 죽은 자를 위해 소리내어 울 수 없는 양반을 대신해 울어주던 노비 곡비(哭婢)를 내세운다. 


곡비 단금(황미선 분)의 딸 연심(김유정 분)은 남을 위해 평생 울며 살아야 하는 그래서 정작 자신의 피붙이가 죽었을 때는, 진짜 울어야 할 때는 눈물이 말라 붙어 나오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곡비의 삶을 거부한다. 하지만 어미 단금은 그나마 그거라도 하면 연심이 평생 밥을 굶지는 않겠다는 신념 하나로 연심에게 곡비를 강요한다. 딸린 자식 때문에 곡비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미가 싫은 연심은 울음을 파느니, 차라리 웃음을 파는 기생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노비의 신분인 곡비는 기생에게조차 내처지는 미천한 신분일 뿐이다. 


하지만 거짓 울음을 울며 살고 싶지 않다는 연심의 결심은 몇 날 며칠을 기생집 청루각 앞에서 버티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실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루각 수기생 도화(임지은 분)의 아들인 양반 서출 윤수(서준영 분)와 조우하게 된다. 

<드라마 스페셜-곡비>의 얼개는 명징하다. 조선 시대 양반 중심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존재하지만 그 존재의 뜻이나 의지는 상관없이 조선이라는 계급 사회가 규정하는 존재로만 살아야 하는, 그래서 그런 존재로 인해 슬픔이 배태된 존재들을 조우시킨다. 울고 싶지 않지만 울어야 사는 곡비,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 사는 기생, 그리고 양반이라지만 어미를 기생으로 두는 바람에 그 누구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 서출들이 <곡비> 를 통해 얽혀들게 된다. 

차라리 웃음을 팔겠다는 연심은 수기생 도화와 윤수의 악연을 알게 되며 웃음을 팔고 살아야 하는 기생의 고달픈 삶을 엿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꺽지 않았던 그녀는 아파서 곡비를 할 수 없는 어미 때문에 윤수의 집으로 끌려와 곡비를 강요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죽은 형 대신에 이제는 상주로 나설 수 있는 윤수와 마주치게 되고.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게 되었다며 곡비를 부탁하는 윤수에게 연심은 당신이 바라던 것이 겨우 양반이었냐며 조소한다. 


하지만 결국 연심은 윤수 형의 영전 앞에서 울음을 토한다. 자신처럼 곡비가 되고 싶었다던 하지만 뱃속의 자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곡비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던 어미의 사연을 듣고,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울음을 토한다. 

역사는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양반들 대신에 울음을 울어주야 하는 노비 곡비의 삶을 거부하는 연심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의 족쇄가 강요되는 조선 사회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자아를 내세운 근대적 인간상이다. 더구나, 서출인 윤수에게 당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라며 다그치고, 울음을 강요하는 문중의 양반들을 호통치며 자기 직업의 진정한 면모를 강조하며 토해내는 연심의 울음은 더더구나 '모던(modern)하다. 과연 역사적 현실로써 그 시대에 노비가 자신의 주어진 신분을 벗어나는 것이 '도망'이나, '죽음'이 아니고서는 가능한가를 질문해야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양반들 앞에서 죽은 자식을 위해 진정한 울음조차 내지 못하는 위선을 호통치는 연심의 장면은 상상력을 넘어선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에 되살려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분적 억압에 자신을 다해 저항하는 연심의 그 모습은 감동이 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노비의 모습은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아헤매는 우리 시대의 역사적 자기 계발서와도 같다. 그런 모던한 의식의 연장 선상에서 <곡비>의 감동은 전해져 온다.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위태로운 경계에 선 사극 <곡비>를 살려낸 것은 후반부에 들어선 배우들의 연기이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랴~' 라며 난봉가를 그 어떤 노래보다 구슬프게 불러대는 아직 소녀같은 하지만 그래서 그 누구보다 처연해 보이는 김유정의 연기는 울기 싫어 차라리 웃음을 팔겠다는 연심이 그 자체였다. 언제나 사극에서 그 발군의 매력이 돋보이는 서준영의 서출 연기도 안정적이었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기생 어미 임지은의 연기는 몇 장면에 지나지 않았어도 존재감이 두드러졌고, 곡비 어미 황미선의 연기는 처연했다. 

하지만 2014년에 들어서 새롭게 선보이는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시리즈는 어딘가 어설프다. <곡비>의 초반 연심이 된 김유정은 극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았으며, 사극에서 안정적이던 서준영의 감정은 어색했다. 중반 이후 그들의 연기가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불협화음들은 비단 <곡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가 상투적이거나, 맺음새가 어색하거나, 어딘가 한 가지 이상의 단점들을 몇 회 동안의 드라마 스페셜이 노정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것이 배태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제 몇 년 동안 반복된 드라마 스페셜의 인력과 소재의 고갈 때문인지, 그게 아니라면 7000 여 만원 정도에 불과한 제작비 때문인지, 만족도가 크지 않다. 물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드라마 스페셜이 습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요일 밤과 월요일의 경계에 선 시간까지 드라마 스페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습작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조금만 더 신선하고, 완결성 높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3. 10.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