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 국왕인 정조와 척을 지어야 하느냐고 묻는 아들 이선준(박유천 분)에게, 좌상을 맡고 있는 아버지(김갑수 분)는 일갈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라고, 거기에 덧붙인 그의 설명은, 왜란 당시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려는 임금과 달리,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 사대부라는 명목이었지만, 기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실권은 사대부의 손에 달려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배경이 조선이 건국된 지 어언 300여년이 흐른 1700년대, 그 드라마에서 국왕으로 나온 정조는 무려 조선의 22대 임금이었다. 비록 드라마라지만, 300년이 흐른 조선의 좌상 입에서 당당하게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는 정언을 드러내게 하는 그 기초를 세운 자가 바로 KBS 대하 사극의 주인공 정도전이다. 300년이 뭔가, 조선 왕조 500여년을 걸쳐, 숱한 사화와 정쟁으로 얼룩진 피비린내 나는 대전을 치루게 만드는, 결국 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왕권과 신권이 자신의 헤메모니를 성취하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정도전인 것이다. 



하지만 그 갈등의 원인을 입안한, 하지만  혈연에 의거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국왕이 아니라, 철저히 유교적 실력에 기초한 사대부에 의해 다스려지는 이데올로기적 이상적 국가, 국왕조차도 날마다 신하들에게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의 명령 하나의 정당성을 두고 신하들과 쟁론을 벌여 정치적 이상 국가를 지향한, 어찌 보면 조선 건국의 진정한 어머니인 정도전은 그간 조선 건국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들러리의 역할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미욱한 신하이거나, 불운한 역적의 모습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통 사극'이 그려낸 주인공은, 왕좌의 자리를 차지한 왕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제 아무리 화려한 세트에 웅장한 스케일로 그려낸들, 이제와 되돌아 보니 궁색하고, 시대에 뒤처진 왕조의 영화를 논하는 대신에, 오랜만에 돌아온 KBS 대하 사극은 그 주인공을 조선을 입안한 정도전으로 눈길을 돌린다.

덕분에,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일원으로 정치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정도전의 생애를 그려내기 위해, 고려의 군주 공민왕은 단 두 회만에 신하의 칼에 도륙되고 만다. 국사 시간에 개혁 군주라 이름 붙여졌던, 그리고 노국 공주 죽음 이후 그의 개혁은 흐지부지 되었다던 그 역사의 행간을, 하지만 그보다는 대중들에게는 영화 <쌍화점>의 그 파렴치한 군주의 모델로 상상되던 공민왕의 모습을, 자신을 목숨을 걸고 국왕에게 진실을 고하던 고려의 충신 정도전이 자신의 꿈을 조선의 건국으로 틀게되는 과정의 인큐베이팅 과정으로 적나라하게 다루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대쪽같을 수록, 그의 의지가 무너져 내릴 때, 그의 궤도 수정은 자연스레 시청자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덕분에 그간 이성계의 건국이라는 왕조 중심의, 어찌보면 절름발이 조선의 건국이 이제야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사진; 세계 일보)

제작 발표회에서 정도전 역을 맡은 배우 조재현의 당당한 발언처럼, 모처럼 만나는 정통 사극 <정도전>은 굳이 역사를 뒤틀거나 왜곡하지 않아도, 정사에 실린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드라마적 재미를 줄 수 있으면 증명한다. 역시 KBS1의 사극이구나 라는 전통이 느껴지는 스케일에, 그의 죽음이 역사적 인물이라서이기보다, 그의 연기가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게 만드는 공민왕(김명수 분)을 비롯, 시트콤에서 그 헐랭한 인물을 연기한 사람이 맞는가 싶은 이인임 역의 박영규 등 중진 배우들의 정통 사극다운 연기가 모처럼 그래, 이게 사극이야 라는 찬탄을 불러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통 사극에서 처음 선보인 조재현의 연기는 정통 사극의 그것과 약간 불협화음같은 걸 느끼게 하는 게, 오히려 그 나름 고려 말 정치의 이방인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에 색다른 생명력을 불러 넣는다. 또한 드라마 끝 무렵 이어붙인 짤막한 역사 다큐 분량은, 일본의 NHK 사극의 형식을 고스란히 빌려온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사실성에 보탬이 되며, 정통 사극의 분위기를 살린다. 비슷한 시기에 정도전를 다룬 사극을 준비했던 MBC가 지레 주춤할 만 하다 싶다. 부디 이 분위기를 쭈욱 유지해 모처럼 되살아난 KBS1사극의 전통을 잘 이어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6. 09:38

지난 연말 kbs연예 대상에서 <인간의 조건> 팀은 '실험 정신상'를 수상했다. '아나로그 정신'의 발현이라며 화제를 끌며 첫 화두를 뗀 것에 비하면 조촐한 결과였다. 그를 두고 '시상식이 학예회냐, 그러려면, 시청률은 안나오지만, 네 마음은 다 알아' 상을 주지 그러냐'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jtbc <썰전> 허지웅) 시청률도 마찬가지다. 1회, '쓰레기없이 살기'에서는 10%를 넘으며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에도 그 언저리를 오가며, 동시간대 경쟁작인 <세바퀴>를 눌렀지만, 이제는 <세바퀴>를 이기기는 커녕, 특집으로 한번 방영한 여성판 <인간의 조건>보다도 못한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결과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1월4일 설 특집 편 <인간의 조건>에서는 시청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지하는 층을 '매니아'라고 칭하는 애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청률이라는 가시적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이 받은 상이 '실험 정신'상이듯, 그리고 지난 1년간 <인간의 조건> 팀이 환경부 등에서 받은 여러 수상 실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조건>은 공중파 예능으로서는 보기 드문, 우리의 문명적 삶을 되돌아 보는 건강한 화두를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한 좋은 예이다. 1월 4일 방영된 송참봉네 농장 MT를 통해 되돌아본 1년을 보면,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젼 없이 살기를 필두로, 쓰레기없이 살기, 원산지 알고 먹기, 자동차 없이 살기 등, 현대인이 자신의 삶에서 반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들이 총망라되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온몸을 굴려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실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지난한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1년만에 주어진 상이 겨우, '실험 정신상'이라는 구차한 명색에, 이제는 설마 없어지진 않겠지라며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요 를 읍소하는 처지라는 건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건>이 지향하는 다양한 문명적 삶에 대한 반성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지난 여성판 <인간의 조건>이 이슈가 되며 화제를 끌고 남성판에 비해 좋은 시청률을 나타낸 것을 보면,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처음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의 파일럿 프로그램 때, 그리고 1회 쓰레기 없이 살기의 화제성을 떠올리면 얼마든지 사람들은 이런 아날로그한 시도에 관심을 가질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겨우 1년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서고, 그럼에도 이 좋은 프로그램이 항구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의 조건>의 위치는 애매하다. 관찰 예능이 대중적 관심의 중심이 되는 트렌드에서,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적 성격과,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과도기적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던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라는 관찰 예능으로 넘어가기 전 런칭했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건>의 위치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조건>이 가지는 관찰 예능이기도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 이기도 하는 복합적 성격은, 양날의 칼로써 프로그램에 작용한다. 양자가 적절히 잘 조화되었을 때는, 금상첨화요, 그렇지 않았을 때는 말 그대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처지에 이른 <인간의 조건>은 전자 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처지라 해도 큰 손색이 없을 듯하다. 양 자의 재미를 다 가지면 좋은데, 관찰 예능도 아니고,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도 어정쩡한 그런 위치라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 답을 '역지사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찾아보자. 나영석 피디가 새롭게 만들어 케이블임에도 전국민적 화제를 끌고 있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시리즈, 그리고 나영석의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시즌 3를 역시나 화제의 중심을 올려놓는데 성공한 <1박2일>을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마자, 제작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바로 등장하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의 짐꾼 이서진, 그리고 <꽃보다 누나>의 짐 이승기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손에 잡히는 명확한 캐릭터를 잡고, 이어서, 회를 거듭할 수록, 다른 캐릭터의 맛을 더해간다. 그래서 처음엔 이서진과 이승기가 궁금해서 보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다른 할배들의 매력에, 다른 누나들의 새로운 면에 끌리면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것이다. <1박2일>도 마찬가지다. 당장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김주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자신이 토로하듯, 6개월 이상을 드라마를 해도 몰라보던 사람들이 단 몇 주만에 김주혁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개그 콘서트>를 통해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그맨들이긴 하지만, 과연 지난 1년 <인간의 조건>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되돌아 보
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 회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에서만 해도 아날로그적인인 삶에 힘들어 하다가 슬슬 그 맛에 새롭게 눈을 뜨고 행복해 하는 김준현 등의 새로운 모습이 관심을 끌었다.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는 지렁이까지 키우며 애를 쓰는 양상국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후로는, 딱히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는 멤버라 없다. 늘 여섯 멤버는,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른 캐릭터로서의 성장이 없다. 그들을 늘 형제 같고, 모이면 게임을 하고, 즐겁다. 그뿐이다. 희로애락이 없는 캐릭터는 밋밋하다. 그냥 오늘 보아도, 다음 주에 보아도 늘 똑같다면 무슨 꼭 보아야 할 의무감이 들까. 그렇게 캐릭터 변주에 실패한 제작진은 외부의 사람를 게스트로 들이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활기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껏 제작진이 불러모은 게스트는 대부분 아이돌이며, 그들과 멤버들과의 시너지는 아이돌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편차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아이돌이라서 장땡인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안타까운 이유는 정작 좋은 게스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섯 멤버라는 충분히 인간적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원을 가지고도, 여전히 납작한 캐릭터의 변주 밖에 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의 한계이다. 1월4일 방영분에서, 마지막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정태호는 말한다.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그러니까 꿈이 옅어지는 거 같다고, 어떻게 그런 감동적 이야기를 평면적 멘트로 나열하게 할까. 그렇게 말로 때우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정태호가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그 이야기가 감회어린 대화로 나왔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그 두 사람이 말하는 늘 화이팅 넘치지만, 그래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김준호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에서 김준호는 그저 늘 짖궃은 철딱서니 없는 큰 형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화이팅 넘치는 큰 형의 이미지는 지난 1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OSEN)

반면 그 시간에, <꽃보다 누나>는 무얼 보여주었는지 보면 <인간의 조건>의 패착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다. 촬영 6일차 늘 스태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김희애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그런 김희애의 심정을 윤여정의 첨언으로 공감을 끌어낸다. 이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자연스레 녹아들 무렵, 그래서 슬슬 권태로울 시점에, 새로운 갈등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는 그게 없다. 늘 그들은 모이면 좋고, 희희낙락하고, 흥겹다. 미션을 통해 겪는 괴로움은 외면적이다. 그들이 토로하는 고통은 몇 마디의 단어로 마감한다. 가족을 보여주고, 집을 공개하는 것이 성장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 인간적 맛의 변주가 이루어지지 않는 멤버들이 보여주는 미션의 마력으로 시청자를 사로 잡기에 시청자들은 쉽게 변심하는 애인과도 같다. 정이 들지 않는 캐릭터를 지켜봐야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지난 1년간 해온 미션들은 다종다양했고, 미션을 수행하는 강도가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실험 정신상'을 받을 만큼 충분히 고생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처음엔 미션만 주어지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멤버들이 이젠 어떤 미션이 주어져도 크게 당황치 않고 딱딱 해내듯이, 제법 능수능란해 졌다.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메꾸어 가는 건, <개그콘서트>를 재연한 듯한 그들의 번다한 게임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워가기엔 역부족이다. 게스트가 그걸 해줄 수 없듯이 말이다. 

정태호가 집안 일을 하기 싫다며 버둥거리고,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모습도 그저 미션의 일부로 흘려 버린다. 그가 4시간을 걸어서 미션 장소에 오는 것도 뒷모습 몇 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때운다. 그 시간에 대신 양상국의 데이트와, 시끌벅적한 MT 장소의 게임이 화면을 채운다. 아직도 사람들이, 시청자들이 무엇에 약한지, 무엇에 흐물흐물 무너지는지 모르는 구성이다. <인간의 조건> 1년, 여전히 여섯 멤버의 인간적 매력에 갈증이 난다. 부디 2014년에는 이 멤버들 각자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인간적 매력마저 만점인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를 끌고, 2014년 말에는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애잔한 모습 대신, 스스로 1년간 수고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5. 09:18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즐겨보는 애청자라면 통하는 한 마디가 있다.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늘 특집 때마다 시작하기에 앞서 mc 유희열이 다짐하는 말이다. 썰렁한 크리스마스 특집이던, 화려한 고고장 특집이건, 언제나 유희열은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낮추라는 이 말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유희열이 그 말을 하는 순간, 관객과 시청자들의 기대치는 올라간다. 오늘은 또 어떤 '스케치북다운' 특집을 보여주려나 하고. 
하지만, 1월 3일 신년 특집으로 꾸민 '가요 톱텐'은, 유희열이 손범수를 코스프레하며 가요 톱텐 시절의 음악들로 주옥같이 꾸몄지만, '스케치북'답기는 했지만, 어쩐지 한 김 빠진 <불후의 명곡>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가요톱텐' 특집에 앞서, 유희열은 이 특집에서 절대 케이블의 모 드라마를 연상하지 말라고, 자신들은 이미 6년전(?)부터 이 특집을 기획해 왔다고 했다. 물론 특집이란게 정말 말 그대로 특집으로 제작진들이 기획하기 나름이고, 거기에 굳이 개연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연 2014년의 새해 특집으로 무려 20년의 과거를 거스른 '1994'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6년 전부터 기획해 왔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015B의 음악으로 시작하는 건 더더욱 그랬다. 

(사진; 세계일보)

015B에 이어, 김건모, 김동률, 룰라, 듀스, 마로니에를 거쳐, 김광진, 조관우로 순항한다. 때로는 그 시절의 가수 015B, 김광진, 조관우가 직접, 그게 아니면 허각, VIXX, 쥬니엘, 케이윌, 강민경에 새롭게 불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 뒤에 있는 자막은 부지런히 이것이 '가요톱텐' 특집이라는 걸 복기하는 양, 그 시절의 영상을 보여준다. 물론 이제는 고풍스러운(?) 느낌조차 나는 1994년의 <가요톱텐>을 다시 보고, 그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면, '가요톱텐' 특집은 풍족하다.

하지만, 어쩐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까? 그것만으로는 어쩐지 아쉽다. 선배 가수들을 제외하고, 출연했던 가수들의 면면을 보자, 허각, 강민경, 켘이윌, 어딘가 익숙한 조합이다. 그렇다. <불후의 명곡>에서 몇 승을 거머쥐고, 1등을 했던 가수들의 명단이다. 그리고, 이미 <불후의 명곡>을 통해, 1994년의 노래들을 숱하게 불려졌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이들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에서 했던 무대랑 비교하게 되어진다. 화려한 편곡, 그리고 그보다도 더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거기에 뒤질세라 얹혀졌던 가수들의 절창, 거기에 비하면 어쩐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무대는 조촐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벤치에 쭈그리고 앉다 못해, 웅크리고 누워 부르는 케이윌의 '기억의 습작'이 '가요 톱텐' 특집의 묘미라면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고품격 음악 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면 이젠 특집을 위한 특집, 그래봐야, 결국은 무대에 있어서는 <불후의 명곡>에 비할 바 못되는 무대를 꾸밀 바에야, 이젠 정말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서의 본령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싶은 거다.

사실 015B의 음악은 좋지만, 어쩐지, 어색하게 그 시절의 015B를 코스프레 하는 나이든 015B의 키치스러운 무대보다는, <응답하라 1994>의 훈훈한 그 시절 장면 뒤로 흐르는 OST로서의 015B음악이 더 분위기 있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이끄는 주된 매력인 건 알겠지만, 거기에 고여있는 느낌은 그렇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응답하라 1994>의 붐에 더해 추억팔이를 하겠다면, 이제는 너무나 뻔해진 그 시절의 015B, 듀스, 김동률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놓친 그 시절의 다른 음악을 소개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015B, 김동률이라도, 우리가 뻔히 기억하는 그들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에게 잊혀졌던 그들의 또 다른 음악이라면? 1월 3일 방송 말미, '마법의 성'을 부른 김광진에게 보여진 것은, 몇 주에 걸쳐 1위 후보곡이었음에도, 결국은 신승훈의 '그후로 오랫동안'에 밀려 결국은 1위 한번 못해본 과거 영상이었다. 그렇듯이, 이제는 우리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인기 있었던 좋은 명곡들이 있었다. 

(사진; TV리포트)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물론 좋은 노래고, 인기있는 곡이었지만, 그 곡을 오늘에 길어 올린 건, 영화 <건축학 개론>이었다. <응답하라 1994>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억의 책장 속에서 먼지 쌓인 채 묵혀가던 곡들을 되살려 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억의 습작'이나, '어디선가 나의 노래를 듣고 있는 너에게'는 이미 길어올려져 회자되는 유행가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고품격 음악 방송의 본령에 충실하려면, 이미 유행가가 다시 되어버린 곡들을 그럴 듯한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재연하며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 미처 우리가 길어올리지 못했던 곡들을 재발견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너무나 대표적인 곡이 되어버린 015B의 음악 대신에 그와 함께 1위를 다투었던 최연제의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이 신선한 선택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요 톱텐' 특집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본연의 해학적 요소도 충분히 보여주었고, 여전히 좋은 그 시절의 음악을 다시 한번 들려주어서 흐뭇했다. 하지만, 금요일 늦은 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눈비비며 기다리는 마음은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고품격 음악에의 갈증이 남아있다. 


by meditator 2014. 1. 4. 12:03

어느샌가 나의 친 혈육보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누나, 할배, 형들이 친숙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문 닫고 들어가버리면 남보다도 못한 우리네 가족 사이의 헛헛함을 메워주는게 사명이라도 되는 양, 텔레비젼은 열심히 '유사 가족'들을 양산해 낸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인가 부터, 예능 속 캐릭터들은 친근하게 우리의 혈육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다. <꽃보다 할배>를 통해, 고리타분한 말도 통하지 않는 노인네가 아닌 늙음이 멋스러울 수 있는 할배들에 찬탄을 하게 하고, 할머니 또래 여성들까지 과감하게 누나라 품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꼭 명칭이 누나나 할배가 아니라도 좋다. <나 혼자 산다>라고 하지만, 그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은 여느 가족 못지 않거나, 심지어 맨날 얼굴만 맞대면 서로의 이해타산으로 으르렁거리는 가족보다 낫다 싶다. 어디 그뿐인가, 일주일이라는 한시적인 기간이지만, 형제처럼 어룰려 사는 <인간의 조건>이 풍기는 가족애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관찰 예능'이 가장 손쉽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노하우이다. 이제 거기에 또 하나의 '유사 가족' 예능이 덧붙여지려고 한다. mbc의 <사남일녀>가 그것이다.

오늘(3일) 첫 방송 <사남일녀>, 관전 포인트는? 이미지-1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네 명의 남자 연예인과 한 명의 여자 연예인이 '호형호제'하면서 4박5일 동안 함께 부대끼는 프로그램이다. 호형호제만이 아니다. 외딴 시골로 내려가 그곳에 실제 사시는 촌부들을 부모님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첫 회, 김구라, 김민종, 서장훈, 김재원이 사남으로 등장하고, 이어 이하늬가 일녀로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 인제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산 하나를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외딴 곳에 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세상에서 농구가 가장 어렵다던 서장훈이 출발 몇 시간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그리고 이하늬가 늦은 밤 화장실에 가다 결국 노상방뇨를 하고 마는 푸세식 외딴 '변소'가 있는 말 그대로 '시골집'이다. 거기서 사남일녀는 첫 날 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어거지로 맺어진' 혈육 관계, 즉, 신선한 조합의 예능의 관건은 결국 그들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호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첫 회 뜻밖에 공항에서 몰래 카메라에 무방비하게 당하고 마는 이서진의 모습은, 그간 멋지고 잘나고 집안 좋은 배우라는 타인을, 호감가는 내 안의 사람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꽃보다 누나>의 제작진이 초반, 허당 이승기 못지 않는, '짐승기'의 캐릭터에 골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운 멤버들을 맞이한 <1박2일> 시즌3가 전편과 다르게 쉽게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낸 것도 멀쩡하게 생겼으면서 어딘가 부실해 보이는 큰 형 김주혁의 캐릭터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방송 초반부터 시청자의 호감을 얻는 캐릭터들은 기존의 능수능란한 예능인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 가족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흔히 그러지 않는가, 가족 사이에 못볼 것이 어디있느냐고, 그렇듯, 가족처럼 그들의 허술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쉽게 경계의 끈을 늦추고, 그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 

그런 의미에서 <사남 일녀>의 구색은 아직은 어중간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일인자라 자청할 수 있지만 야생 버라이어티는 생초보나 마찬가지인 김구라는 여전히 그의 진행 방식을 버리고 못하고, 진행형 멘트를 남발한다. 대뜸 만나자 마자, '엄마, 아빠'라고 부르라고 밀어부치는 제작진의 무리수도 오그라드는 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사남 일녀>의 재미는 뜻밖에서 발생한다. 만화 <달려 하늬>의 주인공은 저리가라, 티없이 맑고, 따스하고, 거침없는 일녀 이하늬의 순수함이 프로그램 전체의 톤을 밝게 한다. 그녀의 모습은, 서먹서먹한 사남일녀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오빠많은 집의 막내딸 모습 그대로다. 뿐만 아니라,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덩치의 서장훈이 조금씩 빚어내는 어색한 성실함도 색다른 재미다. 허세 김민종과 살인미소를 잊지않는 김재원의 조합도 나쁘지 않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촌부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면서 빚어내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어느새 시청자로 하여금 라모컨을 다시 누르는 걸 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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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이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예능이라면 일찌기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있었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집의 주인이 잠시 집을 빌려주고, 유재석을 필두로 한 다수의 예능인들이 그곳에서 자생적으로 시골 생활을 해내야 하는 '만들어 내는' 예능이었다. 오히려, <사남 일녀>의 컨셉은, sbs<잘 먹고 잘 사는 법>에서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양희은의 시골 밥상'과 더 흡사하다. 이 프로그램은 양희은이 시골 생활을 모르는 젊은 연예인이나 외국인들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그곳에 사시는 분의 음식을 맛보고, 그곳에서 나는 재료로 한 끼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오는 방식이었다. 물론, 양희은 이후, 김혜영, 혜은이 등으로 프로그램의 흐름은 유지되고 있지만,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 밥상]이라는 책이 나왔을 정도로, '양희은의 시골 밥상'은 여전히 케이블에서 재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풍모에서부터 푸근한 양희은이 시골 어른들과 자연스레 어머님, 아버님하며 대화를 하며 음식을 함께 하고, 시골 생활이 생초보인 젊은 연예인과 외국인들이 분망하게 시골집을 오가며 그곳 생활에 적응해가는 데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은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재미였다. 어쩌면 <사남일녀>의 경쟁 상대는 <패밀리가 떳다>보다는 <시골 밥상>의 푸근함일 듯 싶다. 

할배 누나들이 외국 배낭 여행을 다니고, 김병만의 병만 족이 오지라면 마다하지 않고, 최수종 하희라 부부는 아마존까지 가서 이웃을 만든다. 관찰 예능의 범람이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친숙한 코드인, 가족과, 고향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선 <사남일녀>는 뻔한 듯 하면서도 여전히 친밀하게 다가온다. <양희은의 시골 밥상>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겐 그곳이 이젠 낯설지만, 가물가물한 어머니 자궁의 느낌처럼 안온한 그 무엇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진솔한 맛을 제대로 살려간다면, 금요 예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 4. 10:35
<별에서 온 그대>에서 신성록이 맡고 있는 이재경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한, 유능한 비지니스맨. 그러나 철저한 가면 속에 가려진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누군가 한 사람을 괴롭혀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소름끼칠 정도의 집요함으로 그를 조여 온다. 상대가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사이코패스라면 배트맨의 조커처럼 흔히 영화 등을 통해 쉽게 조우할 수 있는 '미친 놈'이라면, 소시오패스라면 좀 생소하다. 가장 최근에 대표적인 소시오패스로 각광(?)받기 시작한 인물이라면, 영국 미니시리즈 <셜록>의 주인공 셜록이랄 수 있다. 작품에서, 셜록은, 자기 스스로가 '소시오패스'임을 공언한다. 아니,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니! 바로 <셜록>의 매력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그 어떤 의무감도 느끼지 않는 주인공이 사회적 문제들을 처지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함, 뒤틀림을 극의 주요한 재미로 삼아, 원작의 셜록과는 또 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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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정의부터 알고 보자.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일종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인격장애 중 하나로, 성격이나 행동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 편향된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 사회적 규범이 없는 사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그것이 잘못인지를 인정하지 못한다.(다음 지식백과) 그에 덧붙여,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흔히 게임의 일종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며, 그를 위해서는 냉정한 두뇌를 활용해 자유자재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기에 사람들은 그의 본 모습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렇게 장황한 소시오패스의 정의에서 알 수 있는 건, 한 마디로 소시오패스는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나쁜 놈'이기 십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천송이가 그 소시오패스의 손아귀에 걸려 들었다는 것이고!

2013년의 대표적 악인이, 연말 시상식에서 조차 그 존재를 뽐낸,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민준국(정웅인 분)이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악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잃은데 대한 복수로 수하의 아버지를 죽였고,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재판에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폭로한 혜성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가는 존재다.
그에 비해, 아마도 2014년을 대표할 악인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인물이 <별에서 온 그대>의 이재경이다. 그는 이미 제작진의 홈페이지의 소개에서도 표명되었다 시피 '소시오패스'이다. 그의 발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묻지도 않고 따지지지도 않고, 자신의 앞을 가리는 장애물들 따위를 없애버리는데 거침이 없는 인격 장애이다. 

민준국이나, 이재경이나 자신이 목적한 바 범죄를 저지르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그 근원에 있어, 가족적 원한에 한 맺힌 민준국과, 소시오패스인 이재경은 다르다. 민준국의 범죄가 악랄한 만큼, 그의 사연만큼 뜨겁다면, 이재경의 범죄는 스텐레스 스틸의 그것처럼 마냥 차갑다. 그래서 민준국과 관련된 혜성(이보영 분)과 수하(이종석 분)의 쟁투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그의 해원을 넘을 만큼 간절하고 진솔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감동은 배가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소시오패스 이재경과 천송이의 조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재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혜성이 우연히 민준국의 범죄를 목격한 것 역시 재수없는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은 혜성의 목적의식적인 재판 참여로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와 이재경의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을 넘지 않는다. 우연히 천송이는 그날 이재경과 내연 관계에 있는 한유라(유인영 분)과 싸웠고, 이재경과 한유라의 다툼을 목격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천송이는 몰락하기 시작하고, 이제 이재경의 재물이 되어갈 것이다. 말 그대로 재수없어 살인마에게 걸린 셈인 것이다. 공포 영화에 등장하여 재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다른 처지가 아니다. 그저 이재경의 발 밑에서 굴러다니다 그의 행보를 막은 재수없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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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수없는' 천송이의 불행은 하지만 공교롭게도, 도민준의 도움을 자연스레 만드는 계기가 된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게임으로 치면 절대 최강의 능력치를 가진 '넘사벽' 캐릭터이다. 말 그대로 '백마탄 왕자'이다. 축지법에 버금가는 공간 이동은 물론이요, 소머즈가 저리 가라할 듣기 능력을 가졌다. 심지어, 400년을 산 그의 내공은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고스란히 손에 쥘 정도의 경제력 까지 겸비하게 만들었다. 단지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인간을 믿지 않아 외로움을 자처한다는 정도? 그런 그가 천송이를 돕는다는 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 이미 끝난 싱거운 게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애초에 능력치로 보자면, 천송이바라기인 이휘경은 도민준에게 잽도 안된다. 그를 상대로는 '질투'말고는 도민준이 내보일 장기가 없다. 아니 없는게 아니라, 지고지순한 그를 상대로 능력자 도민준은 비겁해 보이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게 시시해질 극에 도민준에 걸맞는 상대가 등장한다. 그게 바로 이재경, 소시오패스이다. 모든 것을 게임처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며, 하지만 한 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 철두철미한 이 범죄자야 말로, 사실, 도민준의 '만랩'의 능력치를 뽐내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장치이다. 앞으로도 도민준은 재수없게 이재경에게 덜미를 잡힌 천송이를 구해내기 위해 갖가지 장기를 선보일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재수없어 걸린 소시오패스와, 400년을 산 외계인의 대항전이라, 이보다 더 허무맹랑한 환타지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다시 또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백마 탄 왕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등장하는 거, 어쩌면 그게 더 허무맹랑할 지도. 하지만, 그런 들 어떻고, 저런 들 어떻겠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것인 걸. 


by meditator 2014. 1. 3. 09:59

매년 해가 바뀌면 신년이랍시고 여러가지 특집을 한다. 올해가 말의 해라니, 아니나 다를까, 방송사 마다 말들이 단골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의 해인들, 혹은 닭의 해인들, 그 프로그램들이 무수히 늘어놓는 정보들이 한 해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무에 그리 다를게 있으랴, 뉴스도 마찬가지다. 겨우 하루 차이로 해가 바뀌었다고, 뉴스마다 신년 특집이라고, 지난 한 해를 총괄하고, 새해를 예견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런 들, 매일 하는 뉴스와 그 내용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1월 2일,<jtbc뉴스>는 돋보이는 신년 특집을 선보였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한 8시부터, 신년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조몀하더니, 이어 2부에서는 '2014, 한국 사회, 4인의 논객이 말한다'를 통해 여야의 내로라 하는 논객을 불러 모았다. 


무엇보다 '2014, 한국 사회, 4인의 논객이 말한다'가 반가운 이유는 오랫동안 mbc에서 날선 공방 속에서도 꼿꼿이 사안의 중심을 잡고 시원한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던 토론의 좌장 손석희의 귀환이다. 비록 그간 <jtbc 뉴스9>을 통해 짤막한 토론을 이끌기도 했지만, 그런 찰라의 의견 조율과는 다르게, 이른바 대표적 논객을 이끌고, 온전히 한 시간 여의 토론 프로그램을 이끄는 손석희를 만나는 반가움이다. 이것은 곧, 손석희 개인에 대한 반가움이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 다운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의 소산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석희와 함께, 4인의 논객으로 나선, 유시민과 노회찬의 존재도 반갑다. 정치에 은퇴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이제는 컬이 들어간 자연인스러운 머리를 하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속시원한 질문을 하는 유시민과, 코레일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대기업 다니는 맏이는 분가 시키고, 비정규직 둘째에게 나머지 부채를 안기는 꼴이라는, 말 그대로, '쾌도난마'의 정의를 명쾌하게 내리는 노회찬의 단호한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토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JTBC뉴스>가 사전 여론 조사를 통해 조사한 국정 현안 중, 가장 다수의 의견이 나온, '국가 기관 선거 개입', 이어, '공기업 개혁과 민영화 논란', 그리고, 복지 공약 후퇴와 증세 논란이 다루어 졌다. 시간은 충분치 않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네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되었다. 

방송의 말미, 시청자 의견을 들었다. 
사당동에 사는 60대의 시청자는 그까짓 누구도 들여다 보지 않는 댓글 따위로 날선 정치 공방으로 1년을 보낸 허송세월이 아깝단다, 그에 반해 LA에 사는 70대 시청자는 결국 이명박 정권의 과를 박근혜 정부가 털어내지 못하고 덮어주려다 보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는 의견을 낸다. 
결국 두 시청자의 의견처럼, 4인의 논객의 의견은 서로 다른 입장의 궤를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그 서로 다른 의견을 적나라하게 쏟아놓을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JTBC뉴스>의 성과는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중년층들이 즐겨 본다는 종편의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은, 4인 중 1인인 전원책과 같은 의견을 하루 종일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낫다는, YTN 역시 최근 들어, 매 뉴스의 사안마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YTN이 출연시키고 있는 그 전문가들의 입장이 무에 그리 다른지 그것 또한 불명확할 뿐이다. 이렇게, 종편과 뉴스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무방비하게 이른바 전문 논객들의 세 치 혀에 좌우되는 시점에, JTBC뉴스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논객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그 의견을 전달하려고 한 것만으로 제 몫을 이미 일정 정도 해낸 것이다. 

1월2일의 토론에서도, 전원책은, 말끝마다, 그것은 좌파의 생각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누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냐는 유시민의 질문에 조차, 그건, 좌파의 프레임이라고 덮어 씌운다. 모든 길을 서울로 통한다더니, 그에게, 모든 비판은 오로지, 좌파들의 책동일 뿐이라는 식이다. 행복하냐는 질문조차, 어느새 좌파의 아이템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물론, 그런 전원책의 동문서답에, 유시민은 복지부 장관을 했던 혜안으로, 복지의 의미를 되새긴다. 가장 많은 의료 보험을 내도, 병원에 한번 가지 않아서 행복한 사람들, 내 돈이 많이 나가도 아깝지 않은 공감대가 바로 복지의 출발이라는 그 지점이다. 

(사진; 아시아 투데이)

뿐만 아니다. 파업에 참여한 기관사들을 귀족이라 매도한다. 코레일의 재정 적자에서 직원들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간, 노조의 파업 동안, 줄기차게 들려오던 소리이다. 그러자, 유시민이 모처럼 속시원하게 한 마디 한다. 19년 근속이 보통인, 가장의 연봉이 6000만원이래봤자, 우리나라 국민 소득에 반도 안된다고, 그런 사람들을 귀족이라 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토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수치상의 이익과 손실 사이에, 사업의 합리화란 이름 하에 숨죽인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의 본질을 짚는다. 

전원책이 일관되게 좌파의 프레임으로 모든 비판을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것에 반해, 여당의 중진인 이혜훈 의원과, 한때 복지부 장관을 했던 유시민 논객 사이이 토론은 평행선만은 아니었다.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던 공감대를 지닌 사람들로써, 코레일의 처사가, 조금 더 사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최소한의 결론에 이르렀다. 차이는 분명했지만, 의논하다보면, 양자 사이의 합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였다. 토론을 위한, 토론, 차이를 위한 입장 표명이 아닌,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한 이해의 가능성의 실마리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도 여전히 자기 논에 물대기 식으로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불통'이다. 하지만, 상식이 있다면, 이성적 판단을 제대로 내리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누가 이기거나, 누가 지지 않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명확해 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의견을 충분히 피력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종편을 중심으로 한 대다수의 프로그램들은 그런 과정조차 생략한다. 또 하나의 프로파간다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인의 논객들의 의견이 제시된 신년 특집은 모처럼 특집 다운 특집이었다. 


by meditator 2014. 1. 2. 02:02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 집에 남겨진 사람들이라면 원건 원치 않건 연말 시상식 한 두개 정도는 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사 별로, 연기, 가요, 연예 부문으로 하루씩을 배정하는 편성으로 인해, 날마다 그 시간에 텔레비젼을 틀던 사람들은, 고요히 숨죽인 거실을 원치 않는다면 시끌법석한 잔칫집을 목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으니까. 덕분에 또 한 해가 지나간다는 허전함도, 화려한 출연자들의 면면과 그들의 수상 소감에 흘려 잊을 수 있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와, 수많은 가수들의 범람으로 이제는 수상 대신에 축제로 대신하는 가요 축제와 달리, 여전히 '나눠먹기 식'이든, '공로'상 수준이든, 앞으로 잘 봐 달라는 '입도선매'의 의미이든 수상자가 정해지는 연예 대상과, 연기 대상은 그 나름의 흥미진진한 박진감을 지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즐겨 봤던 작품을 되새겨보며 시상식 현장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해 받기도 한다. 

(사진; 헤럴드 경제)


하지만 언제나 시상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31일 하루 종일 검색어 순위 수위엔 수지의 수상 소감이란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구가의서>의 여주인공 담여울을 연기했던 수지는 예상치 못한 최우수상 여자 부분을 받아들고 당황한 나머지 수상 소감을 매끄럽게 연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실, 그 검색어의 비밀은,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최우수상이라는 무거운 상을 짊어진 어린 여배우의 통과 의례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그녀의 연기를 보고 기대했던 상의 무게와, 실제 그녀에게 주어진 상의 무게의 차이, 그리고, 거기서 빚어지는 불협화음과 그녀의 어쩐지 가벼워 보이는 듯한 태도가 하루 종일 상을 타고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대가(?)를 치루게 했다. 방송국의 입장에서야, 지금 가장 잘 나가는 스타의 이름값을 길이 빛내주고 싶었겠지만, 시청자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지라,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시상 내용은 소심한 욕설과 때로는 과격한 댓글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3사 방송국에서 결국은 무관에 그친 유재석의 대상 논란에서 보여지듯이, 그것이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발현된 경우도 있으니, 그 역시도 객관성이란 이름으로 대신할 그것은 아닌 듯하다. 

결국은 상식이 아닐까. 가장 핫한 어린 스타가 상을 받던, 높은 시청률은 아니더라도 명작이란 이름에 걸맞는 작품의 주인공이 상을 타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정도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준의 내용이라면, 설사 내 스타가 상을 받지 않더라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건 극과 극의 의견을 달리하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란 말만큼 애매한 단어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sbs연예 대상의 수상자 김병만의 수상은, 다른 누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하나의 인간 승리를 목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기에 감격을 흔쾌히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꼭 대상을 수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3사의 연예 대상에 참석해서, 후배들의 수상을 아낌없이 축하해 주고, 축하 무대에 맞춰 크레용 팝 춤도 추어주고, 심지어 자신의 엉덩이 라인까지 아낌없이 노출해주는 유재석의 풍모는, 이미 그가 대상이란 이름값을 넘은 대가라는 느낌을 충분히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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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뻔하다 하면서도 매년 연말 시상식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은 화려하게 빛나는 별들 사이에서 또 다른 의미로 빛나는 수상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 지기 때문이다. 공로상을 받은 김수미도, 중견의 연기자 장현성도, 김미경도, 그들이 이제는 누구를 가르치는게 무색하지 않을 나이에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는, 자신에게 맡겨진 캐릭터에 고민이 된다는 소회는 진실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 우리는 그의 연기에 환호해지만, 정작 자신은 몹시도 힘이 들었다는 소지섭의 고백은 뜬금없었지만 진실했다. 자신의 수상을 공동작업인 드라마를 함께 했던 스태프들에게 돌리는 마음 씀씀이는 따스함 그 자체다. 특별 연기상이던, 황금연기상이던, 혼신의 연기를 다한 중견의 배우들이 후배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상을 거머쥐는 모습은 흐뭇하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들과 함께 경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이경규의 수상 소감은 또 다른 공감을 낳는다. 


흥청망청한 시상식의 순간들에서, 트렌디한 드라마들 사이에서 홀로 수상을 하며, <황금의 제국>의 존재감을 잊지않고 챙긴 이요원의 존재감과, 그저 시청률이 높아서 대상이 아니라던 이보영의 언급, 그리고 당당하게 미스김의 모습으로 대상을 거머쥔 채, 이웃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는 드라마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하는 김혜수의 소감은, 그저 '인기'의 이름만으로 덧칠 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시청률이 좋으면 다 좋다는 시청률 만능주의가 판치는 시상식장에서, 진정 좋은 작품의 가치는 무색해 지기가 십상이니까. 부디 2014년에도, 좋은 작품을 한 배우들에게 그들의 노력의 대가가 돌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by meditator 2014. 1. 1. 09:38

대부분의 동화들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결국은 주인공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동화이듯, <응답하라 1994>는 전편 <응답하라 1997>에 이어 90년대를 살아냈던 아이들의 동화, 그것도 성장 동화를 그려내고자 했다. 

이 작품이 성장 동화라는 의미가 가장 명징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마지막 삼천포(김성균 분)의 나레이션이다. 첫 회, 30분도 안 걸리는 하숙집을 찾기 위해 해가 저물도록 서울 시내를 뺑뺑 돌다 못해 바로 코 앞의 하숙집을 찾다 결국은 파출소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 삼천포가 21회, 사랑하는 아내 윤진이와, 느긋하게 택시를 타고가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 택시 기사조차도 미처 모르는 교통 혼잡을 피해 가는 빠른 길을 알려주는 모습은 바로 그 성장의 절정이다. 그렇게 삼천포처럼, 하숙집의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성장통을 겪어내고 그곳을 떠난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번듯한 아파트에 살며,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여러 명의 아이들을 거느린 부모가 된 것만큼, 아니 오히려 더, 하숙집 딸인 나정이를 포함해 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하숙집이 필요없게 되었다는 마지막 회의 엔딩이 그래서 더 가슴 찡하게 그들의 성장을 다가오게 만든다. 이렇게 아이들은 저마다 커서, 자신의 집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쓰레기, 삼천포, 해태, 칠봉이, 빙그레처럼, 치기어린 별명으로 불리워지던 아이들이 이제 저 마다의 이름을 얻어 자존한다. 

그리고 늘 동화에서 처럼 그들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어낸다. 사랑에 대한 속설이 첫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지만, 90년대 아이들의 동화인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의 첫사랑은 꼭 이루어진다. 나정이도, 쓰레기도, 삼천포도,윤진이도, 빙그레도 모두 자신의 첫사랑을 성취해 내고야 만다. 빙그레(바로 분)는 아니지 않냐고? <응답하라 1997>과 다르게 이성에 대한 사랑을 찾아간 빙그레에게, 쓰레기(정우 분)에 대한 감정은 첫사랑이기 보다는 알을 깨고 나온 오리가 자기 주변의 사람을 무조건 엄마라 생각하는 '각인'과도 같은 또 다른 성장통이라고 드라마는 치부한다. 

칠봉이(유연석 분)가 있지 않냐고?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칠봉이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었다. 엄마랑 아빠가 있지만, 그가 아플 때 조차 부르지 않는 부모 대신에, 그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밤새 침을 튀기며 자기 일처럼 고민해 줄 수 있는 혈육과도 같은 친구를 얻었다. 애초에 칠봉이가 나정이와 하숙집을 좋아하게 되었던 그 장면처럼, 비록 칠봉이는 첫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어쩌면 첫사랑보다 더 소중한 친구와 형을 얻었다고 <응답하라 1994>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진짜 칠봉이에게 필요했던 건 그거라고.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빙그레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사랑인지 가족의 따스한 정인지 헷갈려 하던 칠봉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찾아가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응답하라 1994>가 성장동화인 이유이다. 그것은 굳이 21부로 늘여, 장황하게 한번은 헤어지게 만들고야 말았던 나정이의 남편찾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죽은 친오빠를 대신하여 늘 오빠여야만 했던 쓰레기와, 그를 오빠처럼 믿고 따르던 나정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친남매인지, 사랑하던 연인인지 정체성에 혼돈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사랑에 빠졌지만, 2년간의 물리적 이별과 그에 이은 진짜 이별이 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연인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성장통의 기간이 되었다. 그래서 21회에야 드디어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은, 해태의 하숙집 탈출과 함께 나란히 병치되어 그려짐으로써, 그것 역시 이들에게 부여된 또 하나의 성장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소꼽장난하듯 사랑을 하던 철부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드라마는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21회에 걸친 장구한 90년대 아이들의 성장 동화가 꼭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다. 결론은 해피엔딩의 동화였지만, 드라마는 내내 90년대 아이들의 성장통을 그려내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을 '나정이의 남편 찾기'라는 퍼즞 맞추기 게임식으로 단순화시켰기 때문이다. 언제나 주인공들의 성장통은 뒤편에 숨긴 채 결론이 먼저 보여졌고, 한 회, 심지어 몇 회가 지나고서야 불친절하게 몰랐지, 혹은 속았지 하며 사실은 이래서 그런 거야 라며 놀리듯 사건의, 혹은 사연의 속내를 들춰 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칠봉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 옆에서 질척거리는 사내가 되었고, 심지어 나정이는 어장관리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차라리, 얍삽한 나정이의 남편 찾기 게임 대신에, 진솔하게 칠봉이 사랑의 속내를, 오지랖넓은 나정이의 속내를 그려냈었다면, 시청자들이 나정이의 남편 찾기 게임 앞에 진저리를 치는 사태가 오지는 않았을 듯 싶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비록 마지막 회를 통해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90년대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그 과정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인가? <응답하라 1997>이 마지막까지도 90년대 아이들의 체취가 흠씬 느껴졌었다면, 마찬가지로 늘 어느 장면에서나 넘치듯 90년대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응답하라 1994>에서는 그런 느낌이 덜하다. 오히려 드라마는 IMF다, 삼풍백화점 사건이다, 그리고 그 틈새 틈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삐삐, 핸드폰의 섬세한 발자취마저 담아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응답하라 1994>에서는 오히려 그 뒤의 시대를 그린 <응답하라 1997>에서 보다도 시대의 향수가 덜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가 지나치게 '나정이의 남편 찾기'에 매몰되다 보니, 사건은 있되, 알맹이는 없는 동시대성의 고증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응답하라 1997>의 전례가 있어 시들해진 추억팔이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되어버린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회 신촌 하숙이 문을 닫고, 이제는 네 것 내 것이 무엇인지 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진 삼천포와 해태의 모습, 형제들같아진 하숙집 아이들이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응답하라 1994>의 21회를 달려온 보상을 받은 듯 훈훈했다. 결국은 나정이 쓰레기 커플의 사랑 놀음에 이용당하고 만건가 라는 칠봉이에 대한 아쉬움은 미흡하나마 가족같은 친구들의 울타리로 달래보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동화같은 현실은 없다. 애초에 그렇게 90년대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명문 연세 대학교에 갈 리가 없었고, 그들이 IMF라는 고비를 넘기고서도 남보란 듯 멋진 아파트에,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거느린,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어 있을 리도 없다. 동화 속에는 고통이 있지만, 그 고통은 언제나 주인공들이 감내할 만한 수준의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아파하지만, 그뿐, 그들이 현실에서 얻어낼 사회적 성취에 하등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들은 아파했지만, 진정 그 시대가 고통받고 아파했던 현실적 고통엔 늘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기껏해야 그들이 맞닦뜨린 데모는 고향 주민들의 그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니라도 막장이 판치는 세상에서, 꼭 내가 동화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해피엔딩의 동화를 보며, 탈색되었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을 회고하며 잠시 묵직한 현실의 위로를 받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추억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니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12. 29. 09:34

파올로 코엘료의 작품 중 [11분]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브라질에서 태어난 마리아라는 소녀가 진정한 성과 사랑의 완성을 찾아 가는 성장 소설이다. 작품 속 마리아는 한때 창녀로 일하며 성에 탐닉하거나, 성에 짖눌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성과 사랑이 조화되는 완성된 경지에 이른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 11분은 남자와 여자가 성행위를 하는데 있어 이상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도대체 갑남을녀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에서 시간의 길이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표준으로 정해진 것은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터넷 기사 주변에 잔뜩 산재해 있는 수많은 '긴'시간을 보장한다는 비뇨기과 광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언제인가부터 그 수많은 광고들이 우리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긴' 성행위가 '좋은' 성행위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진; osen)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사례에서 바로 등장한다. 
<마녀 사냥>의 상담 코너에서는 자신과 함께 잠자리를 하는 남성이 3분 정도의 짧은 성행위 시간으로 인해 매번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는 고민이 등장했다. '3분 카레'라며 살짝 놀려대기도 했지만, 그 고민을 보낸 여성은 자신은 절대 이 남성에게 불만이 없지만, 정작 남성 자신이 너무 괴로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녀 사냥> 27일 방송분은 내내 이 커플의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고민을 상담하는 네 명의 mc는 물론, 거리로 나선 이원 생중계 카메라에 등장한 젊은 시민들에게도 이 질문은 던져졌으며, 또 다른 패널과 게스트가 초청된 '그린라이트를 꺼요' 코너에서도 다시 한번 이 주제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네 명의 mc 들의 쿨한 입장과 달리, 대다수의 남성에게 있어서는 그 '시간'이라는 게 자존심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대다수의 여성 역시 고민을 보내온 여성처럼, 그다지 '시간'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한다. 이렇게 여성의 입장과 남성의 생각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시경의 명쾌한 정의와 신동엽의 첨언처럼, 사람들이 성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정상적인 것들이 없다보니, 왜곡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호간의 대화인데,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채, 자신이 얻은 왜곡된 지식에 의존하다 보니, 결국 상대방은 괜찮다는데, 나 혼자 자괴감에 빠지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에 이른다는 현실이 등장하는 것이다. 

JTBC 마녀사냥에서 곽정은이 여성의 외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JTBC 마녀사냥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실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녀 사냥>은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수위에 들곤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여기서 19금의 야한 이야기를 해주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지점,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거리에서 카메라에 비친 여성조차 성행위의 시간을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시대에 여전히 그들이 사랑을 위해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은 단편적이다. 그래서, <마녀사냥>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동년배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패널들의 솔직한 담론에 솔깃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27일의 성행위 시간에 대한 담론도, 곽정은 연애 칼럼니스트의 통계에 근거한 명쾌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거기에 더해, 상호간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성시경의 충고도 얹어졌다. 

하지만<마녀 사냥>의 시간이 꼭 적절한 정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신동엽은 짧아도 괜찮다는 여성들의 허위를 밝히기 위해 집요하게, 자신이 만족할만한 성행위 시간에 대한 질문을 여성 패널과 거리의 관객에게 던진다. 그리고 결국은, 너무 짧은 건 싫다는 답을 반복적으로 얻어 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런 집요한 질문의 시간은, <마녀 사냥>이 양질의 정보와, 19금의 탐닉의 줄타기에서, 결국은, 탐닉의 늪으로 빠져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통해 건강한 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1분이라는 비정상적인 시간 개념까지 제시하면서 결국은 여자들은 자신을 오래도록 즐겁게 해주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통념의 늪에 다시 한번 빠지게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곽정은 칼럼니스트가, 성행위 시간을 구성하는 과정을 제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명해 줘도, 결국 이 시간을 지켜본 남성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집요한 신동엽이 얻어낸, '짧은 건 싫어요'가 아닐까. 이러니, 여전히 <마녀사냥>은 위험하다. 



by meditator 2013. 12. 28. 11:41

자신이 연출했던 <1박2일>과의 신선한 콜라보레이션을 크리스마스 특집을 통해 선보였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던 최재형 피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본연의 맛을 살린 '솔로 특집'을 선보였다. 


그럼, 여기서 <유희열의 스케치북> 본연의 맛이란 무엇일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통은 공개 음악 방송이란 점이다. 다수의 방청객을 불러놓고, 무대 위에서 양질의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그것도 말 그대로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서, 다른 무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양질의 '라이브'의 진수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좀 듣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젼의 모드를 '음악'으로 해놓고 프로그램을 감상한다고 한다. 즉, 이 프로그램의 주연은 바로 '음악'이다. 거기에 덧붙여, 무대에서 한 발짝 내려오면 바로 객석인, 관객과의 교감, 그것이 음악을 우리가 기계음을 통해 듣는 그것을 넘어서는 시너지를 가미해 생동감 넘치는 그 무엇으로 전달해 주기에, 불타는 금요일 늦은 시간까지 인내하며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포츠 월드)

아마도 지난 시간 찾아가는 크리스마스 캐롤 특집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고정 독자들에게 탐탁치 않았던 이유는 바로, 어설픈 <1박2일>의 흔적에, 본연의 맛조차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기획에 있었을 것이다. 신선하고, 따스했으나, 그 시간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본연의 맛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전국민적(?)인 별칭이 되버린 '감성 변태' 유희열이 거기에 있다. '감성'과  '변태',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단어의 조합인가, 바로 이 감성적이지만, 결국은 그것에 침참하지 않고, 그것을 한번 비틀어 대는 넉넉한 위트가 <유희열의 스키치북>의 또 다른 본연의 맛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잘 발현된 특집이 바로 27일의 '솔로 특집', '오빠 한번 믿어봐'이다. 

출연한 유민상이 연병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말이 솔직한 감상이듯, 27일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관객석은 오로지 남성들로만, 그것도 이른바 자칭타칭 '솔로'라는 남성들로 가득찼다. 진짜 연병장에서만, 혹은 남고에서만 울려퍼질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선사한 걸 그룹의 노래의 후렴을 불러제낀다. 

(사진; 리뷰스타)

크리스마스를 연인 없이 홀로 보내는 남성들을 위해, 걸그룹 천사들이 등장해 그들을 위로하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안생겨요' 팀은 화룡점정이다. 심지어, 솔로'왕'까지 뽑는다. 거기서 그치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니다. 늘 그렇듯, 무엇을 상상하든, 그 상상을 뒤트는 출연자가 등장한다. 바로, 남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가수, 성시경의 등장이다. 하지만 '우~'하는 원성을 기대했던 제작진의 야무진 기대와는 달리, 그간 <마녀 사냥>을 통해 이 시대 대표적 솔로남의 심정을 잘 대변했던 성시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솔로남들의 환영을 받는다. 유희열과 함께 막간 <마녀사냥>버전으로, 솔로남들의 고민을 들어주기까지 하며, 솔로 특집을 풍성하게 만든다. 

'솔로왕'으로 뽑혔던 24살의 남자가, 그 전날 다음 날 할 일이 없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는 말처럼, 언제인가 부터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최대 명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작년에 '솔로 대첩'이 실행되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명절은, 곧 솔로들에게는 쓰디쓴 인고의 시간이 되어 버린 걸 의미한다.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자의건, 타의건 누군가 함께 해줄 사람이 없이 연인들의 명절을 홀로 보낸다는 고통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역설적 제목, '오빠 한번 믿어봐'를 통해 승화시킨다. 걸그룹의 노래를 듣고, 성시경과 유희열의 연예 코치도 들으며, '안생겨요'의 고통을 나누고, '진짜 사나이'를 부르며 의지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그렇게 슬픔을 위로하고 나누고, 즐기다 보니, 슬픔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함께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게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가진 본연의 맛이다. 


by meditator 2013. 12. 28.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