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송의 단 두 회를 남긴 지난 한 주 동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이하 상속자들)>과 관련하여, 과연 마지막 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와 관련된 기사들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들은 썰렁했다. 여러 포털 사이트의 댓글처럼, 그 누구도 <상속자들>의 마지막 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30%를 넘나드는, 역시나 김은숙이라는 찬사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상속자들>의 현실이다. 누구나 다 안다. 김탄과 차은상의 해피엔딩으로 드라마가 끝날 거라는 걸, 그리고 그건, 이미 오래 전 부터 예견 된 일이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진리이다. 


<상속자들>과 같은 로맨틱 멜로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은 진리에 가깝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7시15분에 찾아드는 <오로라 공주>의 경우는 애초에 시청자들이 예상했던 남자 주인공 황마마를 제치고 설설희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극했으며, 심지어 남자주인공이었던 황마마는 작가의 '데스토스'에 기록되는 기상천외한 결말로 시청자들을 놀래킨다. <상속자들>과 같은 드라마가 뻔한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두 남녀의 애정의 롤러코스터에 시청자들이 기꺼이 합류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오로라 공주>는 스토리부터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롤러코스터 그 자체다. 

(사진; 상속자들; SSTV)

하지만, 전혀 다른 재미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2013년의 마지막 팡파레를 화려하게 울리고 있는 두 드라마는 매우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정서로 우리 곁에 자리 잡는다. 
우리나라 속담에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우리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 세대들의 인생을 관통했던 저 속담이, 2013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드라마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로라 공주>의 여주인공 오로라는 잘 나가던 사업가 집안의 금지옥엽 막내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이은 가업의 몰락으로 하루 아침에 식구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는 처지에 이른다. 기업의 중견으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된 오빠들 대신에 밥벌이를 하겠다면 연기의 길로 나서던 그때가지만 해도 오로라의 행보는 주도적이었다. 자기 엄마뻘 어른에게도 결코 말상대를 해서 지지않는, 심지어 가정사와 관련한 식견에서는 그에 앞서기도 하는 오로라는 그 당당한(?) 품성을 앞세워 세상사도 헤쳐가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 이후, 그녀의 모든 일들은 그녀의 매니저로 등장한 설설희의 보살핌이요, 그녀와 다시 조우한 황마마의 어루만짐이다. 언제 배우를 했냐 싶게 황마마와 결혼을 하게 된 그녀는 혹독한 시집살이에 이혼을 하고, 결국 설설희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애정 행보에 거추장스런 어른들은 슬그머니 드라마에서 사라져간다. 드라마 속 그녀는 늘 고난에 시달리지만, 결국 모든 것이 그녀의 행복을 향해 움직인다. 

<상속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재벌의 집안 일을 돌보는 어머니의 딸 차은상은 어린 나이에도 갖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사회성과 말 못하는 어머니가 하지 못하는 일마저 감당하는 가장으로서의 면모까지 지녔다. 하지만 미국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쳤던 김탄을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간 제국고에서 다시 조우하고, 최영도와 얽히며 20부작 내내 거의 한 회도 거르지 않고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물론, 그 서러운 눈물의 댓가는 값지다. 김탄은 서자의 아픔을 지녔지만, 그 가족사의 극복은 곧 두 사람의 사랑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내 차은상은, 김탄의 고독을 낳은 가족사에 휘둘리거나, 김탄과 최영도의 신경전으로 인해 상처받는다. 애초에 어린 나이부터 야무지게 자기 앞가림을 하던 차은상은 가련한 여주인공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불행한 운명에 휩쓸린 가련한 여주인공과 그녀를 보살펴 주는 멋진 남자 주인공, 그에 못지 않게, 심지어 때로는 남자 주인공보다도 더 여주인공의 맘을 잘 살펴 남자 주인공의 자리인 그녀의 옆자리를 넘보는 또 다른 남자 캐릭터로 연명하는 드라마의 전략은 여전히 드라마 채널의 결정권이 여자인 세상에서 유효하다. 어릴 적 보던 순정만화의 클리셰는 그저 주된 연령층이 누군인가에 따라 버전만 달리할 뿐, 여전히 드라마를 보는 그녀들을 설레이며 만화책을 집어들던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제 아무리 김은숙의 드라마가 매번 보다 빠른 전개와 보다 맛깔나는 대사로 시청자의 관심을 받았다 한들, 그리고 임성한의 마력이 무시무시하다 한들, 결국은 변주요, 본질에 있어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며,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타 작가들의 드라마 운용 방식이다. 

(사진; 오로라 공주; OSEN)

게다가 최근 관심을 얻고 있는 '브로맨스' 열풍은 더더욱 여주인공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결혼을 한 오로라에 대한 열병을 앓다 못해 불치병을 얻게 된 설설희는 그녀와 결혼을 한 후, 그의 집에 쳐들어온 마마에 대해 형제애라 하기엔 도를 넘은 감정에 빠진다. 설희의 병이 나은 후, 누나들의 성화에 못이겨 집을 나간 마마를 그리워하다 못해, 오로라와 함께 누운 자리에서도 그를 그리워한다. 마치 허용이 된다면 셋이 손 잡고 사이좋게 살고 싶다는 식이다. <상속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은상을 얻기 위해 혈투를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던 최영도는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조력자로 변모한다. 차은상은, 그가 사랑의 이름으로 가하던 정신적 폭력을 감내하다가, 이제 그의 무뚝뚝한 도움에 눈물을 흘리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남자 주인공들이 여주인공을 둘러싼 사랑의 쟁투도, 혹은 이제 화해의 국면에서 빚어내는 므흣한 감정도, 여주인공은 그저 바라보고 감당할 뿐이다. 

그러기에 <오로라 공주>와 <상속자들>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다고는 할 수 있어도, 좋은 드라마라고, 다음에 또 이 작가의 작품이 기대된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외려 좋은 시청률로 인해, 이런 식의 드라마가 양산될 가능성이 우려되기 까지 한다. 어린 시절 한 때 보고 지났어야 할 '순정 만화'를 평생 내내 즐기는 건, '취미'나 '오락'이라고 합리화시키기엔 정신적 정체의 시간이 길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텔레비젼을 끄고 바라본 세상에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런 남자들은 없다. 제 아무리 눈물을 흘리고 발버둥을 친다 한들 현실은 그녀 자신들의 몫이다. 그런 현실을 차치하고, 텔레비젼 속 환타지에 위로를 받는 건 순간의 위로라기엔, 일일 드라마에, 주중 미니 시리즈까지 너무 중독이 길다. 리모컨을 끈 현실조차 퇴행의 마인드로 헤쳐갈 우려가 있는 것이다. 불황의 시대를 사는 여자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불량식품이다. 

 실제로 <오로라 공주>의 거듭된 작가의 연장 요청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방송사의 모습은 그를 증명한다. 아마도 시청자들의 연장 반대 서명 운동이 없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연장을 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데스노트'를 지켜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임성한 작가는 일찌감치 차기작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비밀>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김은숙 작가 역시 내용이 없다는 한 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세등등하게 차기작을 준비할 것이다. 단지 인기리에 팔리는 불량 식품들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드라마가 설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3. 12. 14. 15:13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다신 그렇게 살지 않겠다' 혹은 '지금과는 다르게 살겠다'라고.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들이 대부분 아쉬워하는 것 중 대부분이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가 아닐까. 그렇듯이 시간은 늘 우리에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으로 점철되어 남는다. 
그래서 <백투더 퓨처(1985)>이래 수많은 타임 슬립 영화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인생을 바로 잡기에 애쓴다. 하지만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면? <어바웃 타임>은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이 뒤꼬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로 쓰였던 타임 슬립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나무]를 보면 타임 슬립에 관한 짦은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미래의 어느 시점 휴가로 타임 슬립을 즐길 수 있을 만큼 과학 문명이 발전된 시기이다. 글의 주인공은 여름 휴가을 이용해 중세 시절로 타임 슬립한다. 그런데 낭만적으로만 생각되었던 중세의 유럽 거리에서 주인공을 '멘붕'에 빠뜨린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냄새'였다. 20세기의 사람들과 다르게 자주 목욕을 하지 못한 중세인들의 쪄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 하수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거리를 흐르는 오물들에게서 나는 냄새, 그리고 '냉장'이나 '냉동'따위는 당연히 없어 죽임을 당함과 동시에 썩어들어가는 저잣거리 고기들에게서 나는 냄새 등 전혀 생각지도 못한 '냄새'의 공격에 주인공은 휘청거린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환타지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장치가 실제화 되었을 때 현실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가장 예민한 감각을 통해 비판한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나인>은 또 어떤가. 주인공은 사라진 형을 되찾고자, 그리고 의문으로 남은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고자 과거로 향하지만 그때마다 주인공의 삶은 달라진다. 심지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조카가 되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타임 슬립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소기의 성과를 얻은 채 작품을 종료시킨다. 

하지만 그런 일회성의 타임 슬립이 아니라, 타임 슬립이 전 생애 걸친 운명이라면?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나 과거를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어떤 결과에 도달할까?

<어바웃 타임>은 바로 그 운명에 대한 철학적 답을 논하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바라는 그 문제, 삶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이란 문제에 대해 담담하게 설득하고 있다. 



아버지(빌 나이 분)가 우리 집안의 내력이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다 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아들(돔놀 글리슨 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젊은 그에게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여자'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른다고 여자가 쉽게 만나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첫사랑 샬롯(마고로비 분)의 방에 마지막 날 들어갔건 중간에 뛰어들었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섣부른 호의로 인해, 운명이 될 여자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놓칠 뻔하기 까지 할 뿐이다. 

뻔질나게 어두운 곳을 찾아들며 청춘 사업에 골몰하던 팀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그의 남다른 운명을 활용하는 회수가 적어진다. 시간에 순응해 가는 것이다. 아니 여동생을 구하기 위한 그의 호의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이후, 그는 자신의 장기를 그저 인생의 잔재미 정도로만 쓸 뿐 덮어두게 된다. '전가의 보도'같았던 타임 슬립이 창고 속에 처박히게 되는 인생의 묘미를 영화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한 순간의 운명의 장난으로는 되돌이킬 수 없는 긴 항해라는 것을 영화는 설득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초반 한때 교수였다던 아버지는 영화 내내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싶게 등장한다. 그저 열을 내는 것은 아들과의 탁구 시합이요, 한가롭게 영화를 보거나, 차를 마시고 바닷가로 나들이 가는 것이 그의 삶에 전부다. 속도의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의 모습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못해 무기력해 보일 만큼. 하지만 영화 후반, 그 아버지의 비밀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여유없이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던 아들에게 전수된다. 굳이 비밀이라 할 것도 없이 우리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도 감동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지상 난제다. 'Carpe Diem'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대단한 능력자인데도 아들의 삶 별거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키우고 아내랑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별거 아닌 이 삶이 어렵다. 이게 진짜 어려운 거다. 인생 별 거 아니다 가 아니라, 진짜 소중한 것이 지금 바로 당신이 사는 삶이라는 걸 쉽게 받아들일 인간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에 비범한 진실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알려준다. 한 해를 무겁게 마무리 하는 우리들 등을 마치 팀에게 아버지가 그러했듯 툭툭 두드려 다독여주는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는 행복을 상기시켜주는 크리스마스 선물같다. 올해도 변함없이. 


by meditator 2013. 12. 10. 11:06

흔히 우리나라 속담에 '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라는 말은 일이 되려고 하면 뭘 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1박2일>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속담이 떠오른다. 아, 이 <1박2일>시즌3 집안은 되겠구나 싶은.


일찌기 김c를 홀따 벗겨 박스 하나를 던져 주었던 <1박2일>의 시즌1 혹한기 캠프이래로 <1박2일>에서 혹한기 캠프 미션을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까나리 복불복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닌데 12월8일 <1박2일>의 혹한기 캠프 미션은 모처럼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선했다. 멤버 몇 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리고 제작진에 변화가 있을 뿐인데, 같은 미션, 같은 복불복인데도 다른 맛의 웃음을 준다. 

무엇보다 <1박2일> 시즌3의 재미는 신선함에서 오는 것이 크다. 그것은 1차적으로는 다수의 멤버가 변화된 것에서 기인하지만, 혹한기 캠프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제 와 뒷말 하는 거 같아서 그랬지만, 시즌2의 초창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즌 1을 고스란히 빼어다 박은 진행 방식이 전혀 달라진 멤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자아냈었다. 즉,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하는 시즌2이지만, 시즌1의 잔여 멤버 이수근은 여전히 시즌1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갔었다. 기가 센 mc 강호동이란 존재를 배경으로 사사건건 제작진과 힘겨루기를 택하는 방식이었다. 조금이라도 힘든 미션이 주어지면, 이제 막 예능을 시작한 멤버들은 그것을 하기 보다, 우선 그것을 어떻게든 꼼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좀 덜해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런 방식이 되풀이 되다보니, 점점 1박2일은 미션을 수행하지 않고 놀고먹는 예능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기에 이르렀다. 사실 들여다 보면, 시즌2의 멤버들이 안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늘 꾀를 부리며 빼는 듯한 그 태도들이 1박2일 시즌2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지배했다.

(사진; osen)

이수근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가장 관록을 자랑하며 진행을 하던 사람이 시즌3에서는 없어졌다. 남은 김종민은 하는 일이 없다고 욕을 먹을 지언정, 나서서 분위기를 흐트려 놓는 사람은 아니다. 차태현은 그가 가진 무한한 예능의 재주와 상관없이 더더욱 앞에 나서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분위기는 새로운 멤버 쪽으로 넘어오고, 테프콘을 덩치로 보나, 진행으로 보나 섣부르게 강호동을 이어갈 재목으로 점치는 가능성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막 kbs에 첫 선을 보인, 데프콘이 섣부르게 제작진과 딜을 하진 않는다. 오랜 시간 라디오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관록을 쌓은 그의 예능감은 과도한 딜 대신, 적절한 정리와 한 줄 정리로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 낸다. 새로운 1박2일 시즌3를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 마무리는 데프콘의 한 마디로 정리된다. 생뚱맞은 한 마디라도 그의 멘트로 상황은 명확해지거나, 승화되는 것이다. 8일 방송의 마지막 오래된 별 다방에 들어선 멤버들은 저마다 시킨 메뉴를 자랑한다. 김주혁이 커피는 믹스야 라고 하자, 정준영은 자신이 직접 조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커피는 블랙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웃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데프콘의 한 마디가 들어간다. '따자하오 쌍화~'에 '오겡끼 데스까' 금상첨화다. 

사실 시즌3의 멤버가 결정되었을 때 일반적인 인식으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활약을 할 사람으로 김준호가 예상됐을 것이다. 하지만 8일 방송에서 김준호는 아침을 차려주러 온 수지에게 하소연을 한다. 트럭 뒷자리에서, 웃통 벗고 등목하기 등 갖은 힘든 일은 다했는데 김주혁에게 밀렸다고. 그의 그런 말이 없었다면 잊혔을 김준호인데, 막상 그가 그렇게 하소연하니 정말 그런게 떠오르고 그래서 또 한번 웃음을 자아낸다. 

만약, 시즌2처럼 경험이 많다고 해서 시즌2에서 있었던 김종민이 진행을 하고, 지금 <인간의 조건>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준호가 나서서 웃긴다면 <1박2일>시즌3는 지금처럼 2회만에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시즌2에서 있었던 김종민과 차태현이 있고, 타 버라이어티에서 활약을 하는 김준호가 있지만, 그들이 나서지 않고 시즌3의 멤버들과 함께 묵묵히 미션을 수행할 뿐인 것이 시즌3에서는 보약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찌기 <남자의 자격>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철인 3종 경기를 해냈던, 그리고 비호감이라 욕을 먹으면서도 <인간의 조건>의 웃음을 살려내기 위해 애쓰던 김준호이기에, 김주혁과 똑같이, 하지만 지금은 김주혁이 빛날 때라 생각해서 나서지 않고 미션을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차태현과 김종민도 보이건 보이지 않건 열심히 한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피디가 이들을 잔류시킨 이유가, 시즌2에서 가장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을 해냈던 멤버였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1박2일>은 집단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기에 거기에 임하는 집단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당연히 힙합 비둘기로 거듭나며 예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데프콘이나, 1년 뒤에 보자며 이를 가는 김주혁이야 열심히 할 것이다. 정준영은 막내니까, 나서서 분위기를 어찌해볼 군번이 아니다. 문제는 '으쌰으쌰'하며 의지가 분기탱천하는 신입들을 컨트롤하는 예능을 해봤거나, 해왔던 멤버들이다. 그런데, 김종민이나, 차태현, 심지어 김준호까지, 자신이 열심히 할 뿐이지, 남들에게 '감놔라, 배놔라'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 새로운 1박2일에는 효자가 되고 있다. 말 한 마디라도 내가 해봤어가 아닌, 묵묵히 미션을 수행하고, 기껏해야 입고 잘 옷이나 챙겨주고, 그도 아닌 나도 열심히 했는데 라는 애잔한 하소현을 하는 예능 좀 하는 병풍 멤버들이 있어 신입들이 빛난다. 

그 덕분에 <1박2일> 시즌 3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리는 형국을 보인다. 아마도 예전 1박2일이었다면 혹한기 오덕 테스트 같은 것을 통해 멤버들이 라면과 밥을 얻어 저녁을 먹었다면 실패라며 시시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라면과 밥, 심지어 멧돼지 고기 뒷다리까지 얻었는데, 시원하다. 제작진의 얼굴이 찌그러지고, 말을 잃었는데 통쾌하다. 그것은 아마도 사사건건 딜을 통해 꼼수를 부리기 보다, 어떻게든 열심히 그 미션을 통과하려 했던 멤버들의 열의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해져 그들을 응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멤버 전원이 얼음물 웅덩이을 건넜을 때 환호가 절로 나올 만큼. 게다가 복불복 잠자리 미션에서 데프콘과 김주혁, 김준호 뽑히듯이 이제 막 예능의 분위기를 타고 있는 김주혁은 무엇을 해도 걸려 애잔한 웃음을 유도해 낸다. 마치 예능신이 있어 이 프로그램을 도와주는 것 같이. 김주혁은 나이가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영구에서 부터 그 어떤 미션도 마다않고 몸으로 부딪쳐 이겨낸다. 그러니 그의 투덜거림이 더 애잔하고 저절로 마음이 간다. 부디 이 응원의 마음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해 시즌3에 임해주시길~


by meditator 2013. 12. 9. 10:10

곰곰히 다시 되새겨 보면 12월 6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에는 많은 내용들이 다뤄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는 쓰레기와 나정의 알콩달콩한 이야기에, 그런 나정이를 바라보며 쓸쓸히 눈물 지으며 일본으로 떠나야 하는 칠봉이, 그리고 군 생활하는 해태에,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수술을 바로 마친 상황에서도 의대생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로 인해 복학을 결심하게 되는 빙그레에, 다음 회의 내용이 될 윤진이의 서태지바라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서너줄이 되는 장황한 내용들이 다뤄졌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는 내내 14회는 지금까지 <응답하라 1994> 중 가장 지루하고 장황하기만 했던 회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중간에 딴 채널에서는 뭘 할까 확인하게 될 만큼. 


6일 오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나정(고아라 분)은 쓰레기(정우 분)의 키스를 받고 그간 맘 고생을 했던 것이 생각나 눈물을 보였다./tvN 응답하라 1994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활기찬 동력을 빼앗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쓰레기-나정- 칠봉이 로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던 긴장감이 쓰레기의 나정에 대한 마음 고백으로 느슨해 졌기 때문 일 것이다. 여전히 칠봉이는 나정이를 두고 만약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네 옆에 아무도 없다면 나랑 사귀자 할 만큼 나정바라기이지만, 그 말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나정-쓰레기 커플이 조만간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쓰레기 이종 사촌의 말만큼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진다. 즉, 가장 속된 말로, 사람 일이란게 어찌될 지 모르니, 지금 나정이랑 쓰레기가 사귀게 된 들 앞으로의 일은 장담못한다는 평범한 속설에 기대어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쓰레기 나정 커플을 그들을 질시하는 운명의 여신이 호시탐탐 지켜보는 느낌? 

하지만, 14회에 오는 동안, <응답하라 1994>가 드라마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나정이의 남편은 누구인가에 의존하여 오다보니, 결혼식날 입장해 봐야 나정이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정이와 쓰레기가 막상 사귀게 되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여전히 나정이바라기인 칠봉이의 마음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쿨하지 못해 보이기 까지 한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극적 장치라도 있었지. 별다른 사건 없이 삼각관계 만으로 14회를 끌고 온 레이스도 길다 싶었는데, 이제 다시 무언가 새로운 레이스를 시작해야 하는 느낌은 버겁기까지 한다. 1회 연장까지 얹어, 21회로 종료되는 나정이의 남편 찾기 게임이 길고 지루하단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14회를 가득 채운 해태의 군생활 이야기는 양념을 넘어 이게 <푸른 거탑>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장황했다. 더구나 맨날 후임 괴롭히는 재미로 시간을 때우던 선임이 알고보니 능력자였다는 이야기는 상투적이어도 너~무 상투적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병장의 가방을 채운 신문지라는 '깨는'요소가 있었음에도, 군대에서 계급은 날로 먹는게 아니라는 정설은 마치 공부를 열심힌 한 아이가 대학에 잘 간다는 논리처럼 원론적이어도 지나치게 원론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원론은 정작 군대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할 요소가 크다. 일 못하는 병장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다. 그리고 그 일못하는 병장을 커버하느라 고생하는 상병의 고생담이 군대 이야기의 주류라는 점에서 엄밀히 그저 한 속설에 불과할 뿐이다. 

6일 오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유연석 분)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성나정(고아라 분)과 오붓하게 술을 마셨다./tvN 응답하라 1994방송 캡처
(사진;스포츠 서울)

이런 해태의 이야기는 함께 등장하는 빙그레의 복학 결심과 함께 <응답하라 1994>를 뻔한 스토리로 만든다. 심장 수술을 앞둔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고서도 은행에 가서 송금을 했다는 빙그레의 등록금, 싫어하던, 말이 통하지 않는다던 아버지였지만, 채 마취가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대생인 아들의 공부 걱정을 하는 아버지로 인해 빙그레는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을 접는다. 하지만 이런 감동적 상황에 이은 빙그레의 결심은, 그것을 설명하는 장황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해가 몇 번이 바뀔 동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빙그레라는 인물의 속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아르바이트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찾았지만, 그것이 무언인가 분명치도 않고, 거기에 가닿지도 않는 막막함이 그간 조금이라도 비춰졌었다면, 이제 와 복학을 결심하는 빙그레의 결정이 좀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빙그레의 방황은 그저 방황이요, 이제 방황을 할 만큼 했으니 복학을 한다는 설정처럼 보이는 14회의 결론은 어쩐지 허무하다. 

<응답하라 1994>가 중반에 들어서서 어쩐지 조금씩 드라마를 보다 시계를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전작에 비해 행간의 여백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나정이를 비롯한 대학 새내기들의 대학 생활 초반만 해도 1994년이란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에 기반한 젊음의 생기가 느껴졌다면, 이제 중반에 들어선 드라마는 몇몇 당대의 소재를 채용하는 것 외에, 대학 1년생, 2년생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현장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점점 더 궁색하게 사랑 이야기에 의존하게 되고, 이제는 진부하다 느껴지는 상투적 감동 스토리를 채용해 오게 된다. 남편 찾기의 낚시밥이 아닌, 1990년대 중반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쫀득한 이야기로 남은 회차를 채워주면 안될까?


by meditator 2013. 12. 7. 10:53

뚜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서 16살 소년 블라디미르는 옆 집에 이사온 지나이다를 보고 첫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감정을 40살이 넘은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고,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제 <하늘재 살인 사건>에서 스무 살의 윤하(서강준 분)는 동급생의 어머니 정분(문소리 분)에게 [첫사랑]책을 건네며 이 문장에 붉은 줄을 그어 놓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윤하에게 수줍은 러브레터를 보낸 정분의 외동딸 미수(이세영 분)는 첫사랑에 붉은 줄 그어진 글이 자신의 연서에 대한 답신이라 오해한다. 미수에게는 책 [첫사랑]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고, 마지막 줄의 고통은 그저 사랑의 산통에 불과한 것이었다. 비극이 잉태된다. 


드라마의 마지막 [첫사랑] 소설 책과 코티 분을 하늘재에 묻으며 미수는 혼잣말한다.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녀와 소년에게 침을 뱉겠다고. 아마도 미수의 관점에서 보면, 엄마와 윤하는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은 블라디미르의 난봉꾼 아버지와 그에게 농락당한 지나이다와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재 살인 사건>은 딸조차 침을 뱉어 덮은 정분과 윤하의 사랑 이야기, 총을 맞아 죽어가는 정분을 따라 아내인 미수를 아랑곳않고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윤하의 속사정을 헤집는다. 

전쟁은 사람들에게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빼앗을 뿐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 보호받던 울타리조차 깡그리 날려버린다. 남이 해주던 뜨신 밥만 받아먹던 아내 정분이 바로 그 처지다. 시부모님과 남편과 살던 집조차 빼앗기고, 어린 딸과 아픈 동생을 건사해야 하는 정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떡을 만들어 저자거리에 나와 파는 것이다. 하지만 곱디고운 아내였던 정분은 전쟁통의 저잣거리에 서는 것자체가 고통이다. '떡 사세요'라는 말 한 마디조차 힘들다. 그런 그녀에게서 윤하는 아기인 동생을 맡긴 채 떡 좌판을 들어 뺑소니친다. 거기까지는 흔한 거리의 도둑놈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그 다음부터이다. 끝내 자신의 떡을 훔쳐간 소년을 뒤쫓아간 정분은 소년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의 머리채를 잡고 악다구니를 쓰는게 아니라, 어른이라고 다 어른인 게 아니라고. 떡 사세요 한 마디로 못하는 내가 무슨 어른이냐고. 순간 배고픔을 못이겨 떡을 훔쳐 달아나던 소년과, 시장에 나와 말 한 마디 못하던 새댁은 나이를 건너뛰어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제 소년은 잔술을 팔러 새댁 옆에 나란히 서고, 말 한 마디도 못하는 그녀를 위해 소리쳐 준다. '떡 사세요!' 소년의 독려에 새댁의 목소리도 높아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전쟁이 네 꿈을 빼앗가 가면 안된다'던 새댁의 말대로 선생님이 되고자 사범학교에 들어간 소년은 거기서 동급생의 어머니 정분을 다시 조우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와 함께 하기 위해 동급생이었던 미소와 결혼까지 감행하는 희대의 막장극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소년의 숨길 수 없었던 무모한 사랑은, 코티분 하나로, 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늘재 살인사건> 세 남녀의 비밀스러운 '러브 스토리' 이미지-5

소년의 사랑을 집착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새댁 정분이 나타나지 않은 저잣거리에서 목놓아 정분을 찾던 소년의 울음은 애처롭다. 마찬가지다. '난 엄마야, 엄마야'라며 가슴을 쥐어 뜯던 정분의 자학을 이겨버린, 결국 코티분을 자신의 장롱 깊숙이 숨겨버린 여자, 아니 딸 미소의 정의대로 소녀 정분의 마음도,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윤하뿐이었어'를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꽃물로 얼룩진 옷을 입혀 그대로 묻어달라던 잔망스런 소나기의 소녀와, 자기 슬픔에 못이겨 시냇물을 튕겨대던 소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그저 치기어린 수준을 넘지 못하는 사랑이라 담아두기엔 두 영혼의 간절함이 깊다. 전쟁이 그들에게서 그렇게 많은 것을 앗아가버리지 않았다면 순탄했을 그들의 삶이, 전쟁으로 인해 잃은 많은 것들로 인해 왜곡되고 끔직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 담아야 하기에 저잣거리에서 동지애를 나누는 듯한 두 사람의 관계가, 소년소녀의 남녀 관계로 곧바로 치환되는 과정의 개연성이 좀 부족해 보였던 것이 굳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하지만 그렇게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공감가게 만드는 <하늘재 살인 사건>은 정분 역의 문소리와, 윤하 역의 서강준에게 의존하는 바가 크다. 엄마이면서, 여전히 소녀같은 여인을 표현해 내는데, 문소리는 더할 나위 없다. 그녀의 애처로운 연기로 인해, 딸이 불쌍한 처지라는 것조차 염두에 두기 힘들다. 어른이 되어서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상태에 여전히 머무는 듯한 서강준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사립문을 나서면 자박자박 낙엽 소리가 들려올 듯한 늦가을의 정취가 흠씬 느껴지던 배경도 적절했고. 그 예전 <베스트셀러 극장> 때의 잔향이 그득했다면 오바일까.


by meditator 2013. 12. 6. 09:13

12월 4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는 김구라의 속죄부와도 같은 방송이 되었다.

최민수는 말한다. 김구라는 불량식품이라고, 그렇다고 우리가 불량식품을 안먹는게 아니지 않느냐고, 내내 먹어왔으면서, 이제 와 새삼스레, 불량 식품이 불량하다고 토를 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못박는다. 거기에 덧붙여 그저 불량식품인 줄로만 알았던 김구라가 아주 진행을 잘 한다고 칭찬을 얹는다. 

물론 이 말은 4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최민수의 수많은 어록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많은 어록 중에서 유독 김구라와 관련된 말들에 여운이 남는 건, 방송 시작과 함께 김구라 스스로 반성한 그간의 '오만방자'했던 진행 태도때문이다. 
그 전 주, 김구라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케이 윌등을 향해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하여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중독 특집이란 명목으로 케이윌 등은 평소 자신이 즐겨하는 피규어를 가지고 출연했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미에 대핸 무지했던 김구라는, 케이윌 등이 아껴하는, 심지어 한정판인 피규어를 그저 아이들 장난감으로 취급하였다. 심지어, 만지지 말라는 케이윌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마구 만져대다가 부숴뜨리고, 그에 화를 내는 케이윌에 뭐 그까짓 걸 가지고 그러냐고 다르치기까지 했었다. 
4일 방송에서 규현이 밝혀듯이, 그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의 거의 대부분이 김구라와 관련된 시청자들의 불만이었던 것처럼, 김구라의 그런 행동은 숱한 원성을 불러왔다. 그리고 문제는 그저 케이윌의 경우만이 아니라, 마치 '자숙'이후의 복귀를 개선장군의 금의환양이라도 된 양, 나날이 독선적이 되어가는 김구라에게는 결국 사필귀정이었던 결과였다.

(사진 ; 마이데일리)

4일 방송에서 김구라는 그간 자신의 발언 수위가 정도를 넘었음을 사과한다. 좀 더 겸허한 자세로 방송에 임할 것을 각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케이윌에 대한 다그침은 자신이 피규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도, 케이윌을 폄하하려고 한 것도 아니라, 그저 예능의 한 작법이었다고 사과 끝에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그가 핑계로 제시한 예능의 작법은 4일 방송 중에 종종 그 용례를 들어 등장했다. 
여전히 내가 다 잘못한 것은 아니다, 혹은 사실 당신들이 오해한 면도 있다는 식의 반성은 남자 어른들이 비겁하게 자신의 잘못에서 도망가려 할 때 종종 사용하는 수법이라 뒷맛이 쓰기는 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김구라를 비롯한 제작진이 독선적으로 흘러가던 <라디오 스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반성한 것은, 또한 <라디오 스타>이기에 가능한 프레임이라 생각되어 다음을 기대해 보게 된다. 

반성 덕분인지, 4일 방송은 한결 출연자들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물론, 그 어느 mc도 감히 거스리기 힘든 최민수라는 절대 포스의 출연자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가 아니라도, 효린이나, 그외에 대놓고 '약'이라 했던 b1a4의 산들, 언터쳐블의 슬리피에 대한 배려가 다른 때에 비해 돋보였다. 물론 여전히 종종 김구라는 출연자들의 발언을 평가하려 들었지만, 그 빈도 수가 한결 덜해 보였으며, 그에 비해 좀 더 성의있게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매력을 끌어내려 애썼던 한 회 였었다. 덕분에 가장 큰 수혜를 얻은 것은, 이번에 나와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안절부절하던 서른 살이 넘은 예능 초짜 슬리피였다. 

최민수는 수많은 어록 중에 <라디오 스타>를 시궁창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자, 김구라는 그 말을 받어 유재석에 비하면 나는 시궁창이라고 말한다. 김구라의 이 언급을 통해 보건대, 김구라는 여전히 자신이 1인자가 되지 못한 b급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김구라를 포함한 다른 mc들과 제작진의 생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무르팍 도사> 뒤꽁무니에 붙어 10분을 채 방영되지 못한 채 '제발~'을 외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 <라디오 스타>는 어엿한 수요일 공중파 예능 시청률 1위의 대표주자이다. 프로그램 뿐인가, 새로운 방송이 만들어 질 때마다 가장 유력한 mc로 언급되는 김구라는 어떻고. 이제 <라디오 스타>는 A급의 MC들이 진행하는 A급 방송이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스타>는 여전히 B급이다. 그건 최민수가 말한 시궁창에서 해학을 길어올렸다는 표현과도 통한다. 여전히 <라디오 스타>는 슬리피나 산들처럼 사람들이 누구야? 하는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에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십 수년을 무명에서 구르던 많은 연예인들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인지도를 높이고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기회를 얻어갔었다. 
이제 <라디오 스타>의 과제는 더 이상 B급이지 않은 제작진과 MC들이 진행하는, 하지만 B급을 지향하는, 그리하여, B급도 되지 못한 모래알 중에서 보석을 길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바로 지난 번 케이윌 출연과 관련된 홍역은 바로 그 궤도 수정에 대한 시청자들의 강한 요구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담 A급이 시궁창에서 해학을 길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모범 사례는 바로 4일 출연한 최민수가 보여주었다. 방송이 시자되자 마자 김구라를 싫어한다고 대번에 직설을 날리더니, 결국, 마지막에 진행이 좋다는 칭찬으로 김구라를 구제해 준 이가 바로 최민수였다. 구설 속의 <라디오 스타>에 대해 시궁창 론을 내세우며 새삼 면죄부를 던져 준 것도 역시 최민수이다. 

하지만 이런 언급 외에, 방송 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MC가 아닌 후배들을 향한 최민수의 태도였다. 자신의 말을 자르는 규현에게는 거침없이 찌르는 듯한 눈빛을 쏘던 최민수였지만 옆 자리에 함께 한, 그저 그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린다는 후배들을 향해서는 한없이 인자한 미소로 일관했다. 

겨우 타 방송에서 한번 마주쳤을 뿐인 산들을 불러들인 것도 최민수요, 장황한 자신의 발언에 조는 슬리피에게 눈쌀을 지푸리지 않고 괜찮다고 자라고 한 것도 최민수다. 자신의 반지를 내보이며 협찬하고 싶다고 하자 성의있게 그걸 받아들여주고, 후배들이 어설픈 행동이나 말에도 한결같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봐주는 최민수의 모습은 그간 그의 어떤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 보다도 멋있었다. 그리고 이런 대인배 최민수의 모습이야 말로 이제는 A급이 된 <라디오 스타>가 가져가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 최민수만큼 연륜으로 넉넉해진 <라디오 스타>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12. 5. 09:53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송미경(김지수 분)은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줄곧 말한다.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런 아내의 애닳은 사랑 고백에 대한 지진희의 반응은, '부담스러워'이다.

반면, 유재학과 밀어를 나누었던 나은진(한혜진 분)은 비를 맞으며 유재학에게 말한다. 어떻게 당신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냐고. 단 한 마디도 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던 남편 김성수(이상우 분)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울음을 쏟아 놓고서는 내가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고백한다. 
단 2회에 불과했지만, 이미 이혼을 들먹이고 있는 성수, 은진 부부와 달리, 오히려 보면서 저 부부는 어떻게 살까 라는 마음이 드는 건 재학, 미경 부부이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성수, 은진 부부에게는 연민이나마 서로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는데, 정작 결코 이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재학, 미경 부부 사이에는 온기가 없어 보이니까. 그러면서 드는 질문은 부부는 무엇으로 살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학자들에 따라 지금과 같은 부부와 아이 중심의 소가족 형태가 인류가 인류이던 그 처음 시절부터 가지고 왔던 모양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형태와 상관없이, 이른바 '사랑'이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의 탄생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탄생과 맞물리는 것으로 학자들은 정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거개가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가 싫어 도피를 하거나, 자유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은 그저 서양 조류에 따른 유행이 아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그저 경제적 제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 경제적 제도를 담당하는 인간들의 모양새조차 그에 맞게 변화시켰으니까. 근대 이전의 농업 중심 사회가, 그것을 효율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대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관계를 추동시켰다면, 근대 이후의 핵가족 관계는 산업노동자로 재편된 근대적 인간형에 맞는 가족 구도인 것이다. 해체된 대가족을 등지고 도시로 흘러들어온 개별의 인간군상들을 맺어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지상 최고의 이념으로 간주하는 '사랑'인 것이다. 개인의 자아가 공동체 속에서 함몰되어 살아가던 집단 일부인 개인을 일깨운 근대의 자명종이었다면, '사랑'은 그 개인을 근대사회의 근간으로 묶어놓는 '팡파레'였다. 

네 이웃의 아내
(사진; tv데일리)

그래서 우리는 철썩같이 부부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랑'이라고 믿으며,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사랑업이 집안의 강원으로 결혼한 재학과, 그를 목숨을 다해 사랑할 것 같은 미경 부부를 '불행'의 편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네 이웃의 아내>에서 일찌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한 상식(정준호 분)과 경주(신은경 분) 부분가 문제를 원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간주하게 된다. 경주의 선물을 낚아채 자신의 사랑의 증표로 만들어 버린 채송하(염정아 분)에 이르르면, 뒤틀린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공공연히 떠도는 속설이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데? 그렇다면 그 나머지 장구한 기간 동안 부부를 채워가는 것은?
흔히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은 그 나머지를 채워가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세대들은 웬지 징그러워한다. 마치 집안의 강요로 다시 만난 정혼자를 보듯이, 예전 같으면 소닭보듯 하는 게 당연한, 일찌거니 결혼을 했으면 손주 볼 나이가 된 부부조차도,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

'사랑'이라는 지상 최고의 이념으로 뭉쳤다지만, 근대 이후에 탄생된 가족은 우월한 남성 노동력을 과시하며 가정을 지탱하는 돈을 벌어오는남편과, 그 남편 아래에 복무하는 아내라는 가부장적 구조를 가져왔다. '정'으로 살아오셨다고 하지만,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자면 '홧병'이라는 대한민국 여성만이 가진 고뇌의 시간을 넣지 않고서는 구성되지 않는 인고의 시간을 줄줄이 읊어야 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만 보아도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대신 어머니들은 밖으로 도는 아버지 대신 가정을 장악하며 늘그막에 실권자로 등극하는 궁극의 권위를 얻는다. 

(사진; 세번 결혼하는 여자 은수 역의 이지아; 오마이 뉴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 이후의 자식들은 더 철저하게 '사랑'으로 뭉친다. 이제 월급 봉투를 가지고 위세를 떨 남편은 없으며, 남편과 아내는 동등하게 '사랑'으로 만나고, 가정 내의 관계도 동등하다. 동등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데, 이제 그 '사랑'이 문제다. 남편과 아내로 만나 사랑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세계 최고의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가진 남편과 아내들에게 집은 그저 머물 뿐, 대부분의 삶이 직장에서 이루어 진다. 그래서 오피스 와이프라는 단어가 탄생된 것이다. <네 이웃의 아내>의 상식과 경주처럼, 직장 내에서 만난 이들이 정작 '사랑'으로 이루어진 부부보다 더 알뜰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빈둥지 같은 집은 완벽한 아내 경주를 흠모하는 선규와 같은 증상을 발생하기도 한다. 꼭 필요만이 아니다. '사랑'과 같이 불현듯 찾아오는 감기와 같은 증상은,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은진의 밝은 모습에 마음이 활짝 열리는 재학처럼 어쩔 수 없는 열병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을 드라마는 대신 물어주고 있는 중이다. 

3일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이혼을 결심한 은진을 흔들어 놓는 건 '불행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딸의 애절한 말 한 마디였다. <세 번 결혼한 여자>에서 처럼 이제 이 시대의 부부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건, 개인의 행복과 개인을 희생한  가족에 복무하는 집단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다. 은수(이지아 분)는 자신의 행복을 짓밟는 시댁을 떨치고 이혼까지 감행했지만, 여전히 은수의 발목을 잡는 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다. 
대부분의 부모 세대들이 이럴 때 시댁과의 갈등을 인고하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세월을 살았다면, 이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다른 선택을 한다. 아이보다 자신의 행복이 먼저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미경의 배경이 되는 것은 완벽한 주부로써의 모습이지만, 이제 그것은 우리에게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까지는, 아이들을 품고 기르며 온기를 나눠가질 공동체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해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자는 아이의 모습을 고민스레 바라보는 은진처럼.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 월,화 드라마로 방영되는 <네 이웃의 아내>와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 부부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저 남의 집 부부 바람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 부부의 속살이자 바로미터인 것이다. 


by meditator 2013. 12. 4. 11:05

<따뜻한 말 한 마디>는 sbs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 드라마이다. 

분명 방송국도 다르고, 출연진에 연출진은 더더욱 다르다. 그런데도, 첫 방송인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보는데 <비밀>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 드라마도 <비밀>같을까?란 기대를 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기대의 상당 부분은 <비밀>이라는 드라마가 차지했던 자리가 워낙 컸던 탓이 클 것이다. 더구나, <비밀>이 종영된 이후, 그 드라마를 보고 느끼던 맛을 도무지 다른 드라마에서 찾을 수 없었던 공허감이 이제 막 오프닝을 마친 새 드라마에 대한 조급한 기대로 들이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막무가내식, <비밀>같다는, 혹은 <비밀>같은 드라마라는 건 뭘까?


<비밀>의 시작은 그저 그런 통속극같았다. 곧 검사 임용을 앞둔 전도양양한 사법연수원생, 그와 미래를 약속한 조그만 빵집 딸내미, 그리고 그들이 결혼을 약속한 날, 그들의 차에 숨져간 재벌집 자제가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사랑하던 여인. 한결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닌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 대신 교통사고를 낸 죄를 뒤집어 쓰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의 배속에 있던 자신의 아이를 비명횡사하게 만든 사람에 대해 끝없는 저주를 퍼붓던 재벌집 자제는 복수를 다짐하는데......하지만, 드라마는 제목으로 내세운 <비밀>처럼 마치 끝없이 벗겨지는 양파껍질처럼, 통속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성공에 눈이 멀은 한 남자의 외면은, 눈덩이처럼, 사건을 키워가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마음의 본질과, 상식적 관계의 뒷면, 심지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까지 짚어보고자 했다. '비밀'이라는 드라마의 자막이 매회 화면 속에 출렁 떨어질 때 마다, 우리는 생각지 못한 비밀을 파헤치는 탐험가의 심정이 되어 가슴이 조여져 왔다. 

그렇듯, <따뜻한 말 한 마디> 역시 시작은 통속극의 모양새를 고스란히 보전한다. 은진(한혜진 분)과 성수(이상우 분), 그리고 재학(지진희 분)과 미경(김지수 분) 두쌍의 부부가 등장하고, 누군가의 외도로 또 다른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사귀고 있고. 하지만, 통속극의 보편적 코드, 외도와 불륜은 <따뜻한 말 한마디>의 첫 회부터 색다른 변주의 모양새를 보인다. 그저 '외도'와 '불륜'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제목에서부터 제시하고 있는 부부 사이의 소통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것임을 충분히 첫 회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 회 내내 은진과 성수 부부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많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결국 첫회 마지막에 가서 은진은 말한다, 왜 서로 하나도 대화가 되지 않느냐고,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런 은진의 절규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반사'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속에 담겨있는 말을 쏟아내면 낼 수록 외로워진다, 그런가 하면, 재학과 미경 부부는 살얼음판 같다. 미경은 계속 재학을 눈빛으로, 말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미경에게 돌아온 대답은 결국 미안하다였다. 상황상으로는 사랑한다는 대답을 추궁한 미경에 대한 미안함이지만, 그 상황은 미경과 재학의 관계를 고스란히 상징한다. 

이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통속극의 소재가 된 사건을, 그 사건을 넘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그 무엇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웰메이드 드라마 <비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비밀>처럼, 첫 회부터 서신으로 협박을 당하는 은진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벌어진 은진 부부 차량 사고 처럼, 미스터리의 영역을 장착함으로써, 통속극 이상의 재미를 열어두고 있다. 


(사진; 헤럴드 경제)

뿐만 아니다. 드라마 <비밀>을 통해 조토커 등 수많은 별명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극하게 된 지성과, 이제서야 연기파로 인정받게 된 황정음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에는 새롭게 혹은 본좌의 모습을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그들이 새삼스럽게 연기를 하는 게 아님에도, <비밀>이란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진가를 인정받게 만든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말 한 마디>1회에서 선보인 은진 역의 한혜진의 연기는 왜 그녀가 결혼을 한 지 얼마 안된 새색시 임에도 이 작품에 욕심을 내었는지를 충분히 보여준 모습이었다. 한혜진은 빼어난 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첫 히트작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하게 연기로 주목받은 적이 없어 안타까웠었다. 그런 한혜진이었는데,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첫 회 한혜진은 마치 그녀가 <굳세어라 금순아>의 그때로 돌아간 듯 통통 살아 움직인다. 모처럼 제 몸에 맡는 역을 얻은 듯하다. 
이상우도 마찬가지다. 항상 남의 아내와 바람이 나는 서브 불륜남으로 고착되는 듯한 그의 이미지가, 말이 안통하는 아내를 향해 막말하는 성수 역을 만나니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다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한혜진과 이상우가 그간 보여주던 연기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지진희와 김지수는, 그들이 가장 잘 하는 연기를 통해, 극의 분위기를 잡아주고,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김지수의 알듯모를 듯한 표정을 띠며 인내하는 정갈한 연기와, 마지막에 홀로 스탠드를 켜고, 남편의 불륜이 증명된 사진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최고로 드라마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연기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에 덧붙여, 언제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와 연출이겠다. 이미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인정받은 하명희 작가는 <사랑과 전쟁>을 통해 갈고닦은 내공을 이미 1회 만에 넉넉히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밀>의 절묘했던 연출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어찌보면 뻔할 수 있는 은진과 재학의 밀회를 감성 넘치는 장면으로 연출하여 '불륜' 그 이상을 생각해 보게 만든 최영훈 피디의 연출력에 새삼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1회 만에 많은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부디 그저 그런 결말이 아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로 하여금 부부 관계를 넘어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2. 3. 08:53

11월 30일 <응답하라 1994> 13화, 먼저 고백을 하고 마음 조리던 나정이(고아라 분)에게 드디어 쓰레기(정우 분)가 답을 했다. 자신을 밀어낼까 쓰레기 곁에 다가가지 못했던 나정이에게 달려와 그녀의 입에 키쓰로 답을 했다.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거의 첫 회부터 줄곧 쓰레기만을 바라보던 나정이의 일편단심이 보답을 받았는데, 그래서 이 둘의 키스씬을 보는 마음이 행복하고 설레여야 하는데, 어쩐지 찜찜하다. 심지어 불안하기 까지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하라 1997>에서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 한 것은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후, 다 큰 어른이 된 후, 드라마가 거의 끝날 때쯤이었다. 그런데, 1회를 연장한다는 <응답하라 1994>는 이제 겨우 중반을 넘어 13회다. 그런데 남녀 주인공의 교감이라니? 불안하다. 이러다 결국 헤어지는 거 아냐?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텔레비젼 화면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칠봉이가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그러자, 이제까지 쓰레기가 남편감이라고 철썩같이 믿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럼 칠봉인가?


	응답하라 1994 키스신, 쓰레기 나정 키스/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 캡처
(사진; 조선.COM)

<응답하라 1994>를 보는 시청자들은 매회 자신들이 낚시 바늘 앞에서 무기력하게 입질을 하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난 쓰레기가 좋다. 난 칠봉이가 좋다. 우겨봐야, 매회 제작진이 던져주는 떡밥에 따라 이리 휘돌리고, 저리 휘돌리는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사랑에는 철칙이란 게 없으니까. 우리는 첫사랑을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첫사랑은 다 안이루어지는 거라야'라고, 하지만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의 뇌리 속에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이 떠오르는 건 어쩐담. 지난 회, 뜬금없이 남편감의 다크호스로 해태가 등장했을 때도 그렇다. 그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이해해 주던 친구가 남편이 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지금까지는 쓰레기와 엮이던 빙그레가 마음을 돌이켜 나정이가 좋다는 설정으로 바뀌어 등장하면, 시청자들은 아마 욕을 하면서도 또 혹시나 빙그레야? 할 수도 있겠다. 천 쌍의 커플에, 천 개의 사연이 있듯이, 사랑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에, 그 누구라도 나정이의 인연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파닥파닥 그저 제작진의 처분에 따라 낚이게 되는 것이고. 

1994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응답하라 1994>를 추동하는 동인은 바로 나정이의 남편 찾기이다. 이것은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 주효했던 전략이기에, 보다 능수능란하게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떡밥을 던지며 유인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응답하라 1994>가 여느 멜로 드라마처럼 주인공의 심리에 천착하며 관계를 추동중이지는 않다. 회마다, 한 계절을 건너뛰는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감정선도 함께 건너뛴다. 

지난 겨울 한 해의 마지막 날 추운 터미널에서 나정이에게 입을 맞추며 사랑을 고백했던 칠봉이의 외사랑은 내내 대답이 없다. 나정이의 방문을 수시로 열어제끼며, 들락이는 칠봉이에게 나정이는 그저 덤덤하다. 기껏해야 드러난 반응이란게 너랑 둘이서 뭐 먹으러 가지 않겠단 말로 친구 사이 이상을 넘어가지 않겠단 답을 13회에 이르러서야 시청자들은 겨우 얻어낼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나정이가 그렇게 애태워하던 쓰레기의 반응이었다. 칠봉이가 신촌 하숙에 등장하고, 나정이를 좋아하게 되기 까지, 쓰레기는 나정이의 감정에 묵묵부답이었다. 오죽하면 쓰레기를 연기하는 정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부러 그의 감정을 누른다는 음모론이 퍼질 만큼. 

(사진; 스포츠 월드)

하지만 계절을 건너뛰듯 감정선을 잘라먹는 <응답하라 1994>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13회에 이르러 정우가 자신의 감정을 한껏 내보이고, 그걸 다시 칠봉이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맞받는 것처럼. 제작진이 던진 떡밥을 언젠가는 회수하는 <응답하라 1994>의 묘미 때문이다. 어쩌면 쓰레기와 나정이가 저렇게 한껏 키스를 하고도, 다음 회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개와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하는 남매처럼만 그려질 지도 모른다. 그러다 또 성큼 곤충이 변태를 하듯, 관계가 진전되고. 그렇게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 질지도 모르기에 시청자들은 뻔히 알면서 <응답하라 1994>에 낚인다. 마치 그것은 청춘의 열병은 교통사고와도 같다는 문구를 되새기게 만들듯이 말이다. 사고처럼 맞닦뜨리는 주인공들의 연애 사건에 우리는 당황해 하면서도, 거기서 빚어지는 뜻밖의 '낭만성'에 또 환호하며 드라마를 열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매회 낚이고 낚이다 보니, <응답하라 1994>가 끝나고 나면 허무해 지는 경우가 점점 빈번해 진다. 뭐 그렇다고 별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새삼 1994년의 청춘이 이랬는가 되돌아 보게 된다. 
우스개로 80년대의 대학 생활을 한 나는 아들에게 엄마의 시대는 결코 <응답하라 1994>와 같은 드라마로 만들어 질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했었다. 처음 대학에서 만난 것이 강의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형사들이요, 교정에서 만난 것은 매캐한 최류탄에, 선배를 만나 곳은 그가 유인물을 뿌리던 건물 옥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응답하라 1994>를 보면 어쩌면 이 제작진이 80년대의 시대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저런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을 신청하면 들려주는 DJ가 있는 음악 다방에, 고고장에, 민속 주점에,  그리고 거기에서 흐르던 이선희 'J에게', 정수라의 '바람이었나'에, 퀸과, 스팅, 에어서플라이의 팝송이 흐르는 또 다른 청춘 연가가 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하라 1994>의 연세대 학생들이 다니던 바로 그 연세대 캠퍼스에서 1996년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정권 대선자금 공개' 데모를 하던 학생 노수석 학생이 죽었다. 여전히 대학에서는 매캐한 최류탄 연기가 떠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응답하라 1994>의 캠퍼스에는 그런 자욱이 없다. 
물론, 꼭 추억을 논하는 드라마가 당시의 모든 것을 그려내야 할 의무는 없다. 더더구나, 대학을 다녔다 해도 다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제작진의 눈으로 본 90년대의 대학 생활은 드라마와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90년대는 운동을 했던 학생들 조차도, 자신들의 세대는 80년대처럼 운동권이 주류도 아니었으며, 끼인 세대라고 자조적으로 평가하는데, 굳이 그걸 다 그려야 한다고 강권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의 대학 시절에는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일 수 있으니까. 아니 꼭 그 시대 화두를 다루지 않아도 좋다. 어쩌면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한 그들의 젊은 시절의 고민들은, 정작 드라마에서는 쉽게 쉽게 넘어간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빙그레의 고민이 13회나 될 동안 그저 아르바이트를 하면 떠돌듯이. 사랑을 빼놓고서는 드라마의 중반을 넘긴 지금까지 <응답하라> 젊은이들의 젊은 날은 순탄하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세한 물품 하나가 그 시대의 것이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나정이의 남편 찾기에 골몰하다 허무해지면, 문득, 우리가 보는 1994년이 정말 1994년이 맞는가 싶은가 반문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건 '젋은 날의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이 아니라, '첫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뿐인가 싶은 거다. 


by meditator 2013. 12. 1. 10:26

여행을 떠나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

여행에 가지고 갈 것들 빠뜨리지 않기? 여행지의 정보? 편안한 숙박 시설, 볼만한 풍경, 맛있는 먹거리, 그리고 원활한 교통 수단?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혹은 여행 과정에서 순탄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 모든 것들에 우선하여 마련되어야 할 것들은 바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아닐까? 즉 나와 함께 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 맘에 드는가 아닐까 말이다. 제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 여행이라도 여행지에서는 별 일이 다 생기고, 그래서 인생을 길고 긴 여행에 빗대듯이, 짦건 길건, 여행이라는 행로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우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산해진미가 차려지고, 화려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여행이라도 내내 불편하기가 그지 없을 것이다. 
<꽃보다 누나>를 만든 제작진은 바로 이 여행의 가장 큰 관건을 제대로 아는 듯하다. 아니 <꽃보다 할배>의 여행 과정을 통해 더더욱 여행의 결정적 요소가 무엇이라는 걸 확실히 절감한 듯하다. <꽃보다~> 시리즈는 출연하는 배우들이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지만, 시청자들 역시 그들과 내내 함께 여행을 하는 마음이 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러기에,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꽃보다 할배>에 이어, <꽃보다 누나>시리즈 첫 회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를 데리고 어디를 여행해도 재미있는 여행기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꽃보다 할배>가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은 건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할배들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여행이라는 컨셉이었다. 다리가 아픈 걸 꾹꾹 참으며 어쩌면 다시 못볼 지도 모를, 젊어서는 일하느라 차마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을 풍광에 감탄하며 바라보는 할배들의 모습은, 많은 설명이 필요없이 감동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투덜거리면서도 할배들이 부르면 그 어떤 토를 달지 않고 '네'하며 달려가는 말 그대로 국민 짐꾼 이서진의 매력 또한 할배들의 여행의 조력자로서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할배들의 여행은, '할배들'이란 말 그대로 특수한 사정을 지닌 것이었기에 일단 접어 주고 들어가는 것이 있었다. 그에 이어 '할매'도 아니고, '누나들'의 여행을 그것도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조합의 여행을 한다고 할 때 과연 저 여행도 할배들 만큼 성공할까란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무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두 달 전부터 '짜~'하게 반복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는, 케이블의 불리함을 홍보로 이겨내겠다는 시도를 넘어, 마치 빈수레가 요란한 거 아냐 라는 의구심을 살 정도였었다. 

그렇게, 아직도 이 프로그램이 시작조차 하지 않았어? 라는 반문을 할 정도로, 몇 번의 티저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기사들을 뒤로 하고, 드디어 11월 29일 <꽃보다 누나>의 첫 방송이 방영되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지켜본 사람들은, <꽃보다 할배>를 보았던 그 감동을 다시 누리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어디 그만큼 재미있을까? 라며 가재미 눈을 뜨고 바라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함께 한 멤버 중 누군가는 일전에 다른 여행에서 여행 컨셉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바도 있었으니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의심은 무색하게 <꽃보다 누나>는 <꽃보다 할배>만큼 재미가 있을 듯하다. <꽃보다 할배>가 그러했듯 <꽃보다 누나> 역시 방송 첫 회만에 함께 여행을 떠날 멤버들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으며, 심지어 그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롱이 다롱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저 마다 생긴 것이 다른 만큼, 성격도 다 다르다. 그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함께 만나면 부딪칠 일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꽃보다 ~> 제작진이 어느 누구를 데려다 놔도 푸근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바로 그들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간미 넘치는 관점이다. 


투덜거렸지만 능수능란했던 짐꾼 이서진과 달리, 제작진이 '짐'이라고 명쾌하게 정의내린 이승기는 여행 가이드로서는 서투른 게 첫 방송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고등학생 시절 연예계에 들어와서 본인 말 대로, 늘 남들이 준비해놓은 것을 착실하게 한 것으로 이 자리에 온 사람이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이국의 공항에서 맞닦뜨린 상황은 스타로 살아온 그의 이력을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걸 여행의 불편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짐꾼'이 아니라, '짐'이라는 애교 섞인 정의를 내리더니, 곧 이 여행이 이십대 후반의 젊은이 이승기의 홀로서기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꽃보다 누나>의 관전 포인트가 또 하나 생긴 것이다. 그저 못하는 애을 짜증내며 보는 게 아니라, 저 애가 얼마나 성장할까 라며 관점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시청자들이 그를 응원하며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다.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 보다 깐깐 할 거 같은 여정쌤이 승기가 나타나지 않자, 스스로 길을 물어 나선다. 가장 연장자이지만, 연장자로써 우세란 찾아볼 수 없다. 30분을 넘게 걸어야 한다는 승기의 난감한 안내에, '난 누나가 아니라, 할머니야'라며 그저 지긋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드라마 속 펄펄 뛰던 할머니는 없다.
알듯 모를듯 우아한 미소를 띠며 여행을 함께 하던 김희애는 호텔로 가는 교통편을 결정하는 과정만으로 그녀의 모든 매력을 어필했다. 이미연과 윤여정이 승기가 오지 않는다고 걱정이 늘어질 때도 가만히 있던 그녀가 시간이 지체되자 조용히 인포메이션을 찾아 정보를 알아내더니 다시 가만히 있는다. 결국 나타났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쩔쩔매는 승기를 은근히 인포메이션으로 안내하고, 다시 결정을 하지 못하는 승기를 도와주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줄  뿐이다. 지쳐가는 급한 상황 속에서도, 가이드 승기의 낯을 세워주는, 처음 여행을 하니 당연히 서툴거라고 두둔해 주는 김희애의 모습은 그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반면 김희애와 다르게 이승기처럼 처음 홀로서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미연은 괄괄하다. 늦는 이승기를 제일 못기다리는 것도 이미연이요, 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도 이미연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런 이미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미연의 괄한 성격을 상쇄시킨다. 그녀가 이승기만큼이나 허당이라는 것과, 괄한 성격만큼이나 씩씩하게 앞장서 짐도 들고, 나이든 언니들도 챙기려 애쓴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그저 이승기를 못미더워하지 않고 그의 옆에서 힘이 되 줄 거라는 예고를 보여줌으로써, 이미연에게 혹시라고 가질 수 있는 '미움'을 불식시키려 한다. 
제일 압권은 김자옥이다. 연기 생활을 쉬어야 할 정도로 재발된 암으로 인한 투병 생활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건강은 둘째치고, 다른 멤버들이 난리법석을 부리는데도 고요히 앉아서 글을 쓰는 그녀의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공주'라는 별명이 그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그게 또 미워보이지 않는다. 모두다 법석을 떨어봐야, 사실 어수선하기만 한 상황에서 누구 한 사람, 잘 되겠지 하는 그런 사람 한 사람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모습들은 보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짐꾼일 줄 알았는데, 짐이 돼! 라며 한심해 하던가, 뭘 이승기를 기다려 빨리빨리 결정해 버리지 라든가, 어린 동생 시켜놓고 참을성이 없다던가,  혼자 한가하게 뭐하고 있어? 등등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싫어질 수 있는 꺼리들이다. 백 사람이 백가지 미운 짓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치 언제나 '허허' 거리는 나영석 피디와, 슬몃슬몃 비칠 때마다 언제나 웃는 낯인 이우정 작가의 모습처럼, <꽃보다 누나> 첫 회의 모든 좌충우돌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라며 넉넉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람사는 냄새가 난달까. 
그러고 되돌아 보니, <1박2일>의 까나리 볼불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냄새조차 역해서 마실 수 없는 그것을 전국민이 해보고 싶은 게임으로 만든 그것으로 만든 역사 역시 '까나리'를 먹는 게 결코 '패배'라거나, '나쁜 것'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던 제작진의 기막힌 노하우였었단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저 세상의 모든 고됨이, 이 제작진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해볼 만한 것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꽃보다 누나>의 크로아티아 여행도 새삼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11. 30.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