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가 돌아왔다. 하지만, 대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중의 관심이 저조하다. 첫 회 4.0%(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시작해서, 4회를 마친 현재 6.5%에 불과하다. 주말 드라마라 하면 20%를 오르내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공중파에선 무참한 성적표라 할 수있다. 




하지만, 꼭 그럴 것도 아니다. 용감하게 시작했지만 대가에게도 잔인한 편성시간대였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 최강자인 <부탁해요 엄마>가 무려 38%를 넘나들고, 노년의 로맨스로 화제몰이를 한 mbc의 <엄마>도 20%를 넘기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토요일까지 방영하는 tvn의 <시그널>조차도 <그래 그런거야>의 불안한 위치를 위협한다. 그러나 진검승부는 어쩌면 이제 부터일지도 모른다. <부탁해요 엄마>의 후속작 <아이가 다섯>이 호평을 받지만,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 해프닝에서, 큰아들 결혼까지 시끌벅적한 사건들이 관심을 끈다. mbc의 <가화만사성>이 새로 시작하니, 이젠 <그래 그런거야>가 선점한 태세다. 조만간 <시그널>도 끝이 난다. 이러다, <그래 그런거야>가 장렬히 전사했던 sbs주말 드라마를 수렁에서 끌어올릴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노병은 죽지 않듯, 매회 터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지뢰는 만만치 않다. 

여전히 익숙한 자기 변주
막상 <그래 그런거야>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익숙하다. 일찌기 <사랑이 뭐길래(1991)>에서 부터 시작된 대가족 소동극이 변주된 노래마냥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용탕집 남자들(1995)>이래 자수성가한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딸들이라는 구도는 이제 외울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끼인 세대로 살아온 아들 세대의 회의와, 성공한 자식 농사이지만 아롱이 다롱이로 속을 썩이고 결국은 가족이란 속에 풀어지는 자식 세대의 구성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냉혈한 의사 자식에 그에 목매는 부잣집 여자에 이르면 슬그머니 신물이 올라온다. 

그 지겨운 자기 복제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또 늘 새롭다. 노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족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인생은 아름다워, 2010), 미혼모 를 당당한 주체로 내세웠다(무자식 상팔자, 2012). 그런 김수현 작가이기 때문에 대가족이란 뻔한 울타리 속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도발적인 가족 문제를 들고 나올지 지레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여타 막장 드라마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타 가족 문제를 말 그대로 '문제'로 소비하는 반면, 김수현 작가는, 작가의 장담답게, '막장스럽지 않게' 진지하게 우리의 문제로 고민하고 화해해 가는 화두로 삼기 때문이다. 

매번 가족극을 쓰며 김수현 작가의 화두가 도발적임에도, 결국은 여전한 것은, 그 모든 말썽들(?)이 가족이란 제도 안에서 융해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남자가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은 혜량이 넓은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수용되고, 원조를 받게 된다.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던 처연한 태섭(송창의 분)과 경수(이상우 분)의 사랑도 가족의 이름을 얻게 된다.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소영(엄지원 분)의 아이도 결국은 가족 모두가 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를 지각있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할아버지도, 지겹도록 말이 많은 둘째 아들도, 술만 취하면 침을 뱉어대는 큰 아들도, 그리고 매사에 허허거리며 다 좋다는 식인 막내 아들도,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도, 자기 자식을 삶의 제일 목표로 살아온 평범한 어른들이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해온 그래서 노년의 삶이 허무해지는 인생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자식에 '갑질'을 하지는 않는다. 간섭하고 노심초사하지만, 결국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 그들을 품어주는 것이 바로 김수현 가족극의 본질이다. 

죽음보다 허무한 어른들의 지혜로움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른다운 어른. <그래 그런거야>에서 어른들은 종종 무언가를 읽는다. 시간이 남은 할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고, 그 신문을 다시 아들이 읽는다. 그런데 그 신문이, 이른바 조선, 동아가 아니라, 경향 신문이란 점은 소품 하나에도 철저한 김수현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홀로된 큰 아들은 자신의 깊은 시름을 달래기 위해 시를 읽는다. 그리고 대가족에 시달린 며느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녀는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다. 말 끝마다 아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둘째 아들 부부는 영화를 보러 간다. 비록 가서 잠들지언정. 비록 여자만 보면 얼굴이 풀어지는 할아버지이지만, 결정적일 때 할아버지의 지혜는 대범하다. 세상사를 달관한 노년의 해탈이 보인다. 

김수현 작가가 생각하는 어른들의 힘은,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섬세하게 그리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채곡하게 쌓여진 내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막돼먹지 않은, 지각있음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래서, 2016년의 <그래 그런거야>가 더 허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수현 드라마 속 어른들은 <사랑이 뭐길래>에서 <목용탕집 남자들>을 거쳐, <무자식 상팔자>에서 <그래 그런거야>로 오는 동안, 마치 철이 들어가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지각있어 졌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어닥쳐 오는 문제들은 점점 더 난감해지지만, 그런 문제에 대비하기라도 하듯, 더 지혜로워지고, 더 생각들은 깊어지면, 더 인생에 대해 회의하며 반성한다. 마치 어른들이 점점 더 어른답지 않은 세상에 대한 반작용이기라도 하듯. 

김수현 작가는 <그래, 그런거야>의 집필을 시작하며, '막장'을 쓸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드라마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는 어른들의 존재론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어른들답지 않아지는 세상에서, 그 어른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세상의 논리로 젊은이의 세상마저 재단하지 못해, 작품 속 어른들이 보지않는 종편 언론을 통해 어른들이 살아왔던 세상의 논리를 소리 높여 외치고, 그 어른들의 대표가 정치를 주무르는 세상에, 김수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각있는 어른들은 환타지를 넘어, 허무함을 준다. 

<그래 그런거야>가 허무한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노년의 부박한 삶때문이 아니다. 젊은이의 문제 조차도 어른들의 품 안에서 용해시킬 수 있는 그 넉넉함이 사라진 세상때문이다. 대학 병원 교수까지 하던 집안에서 아들을 결혼시키며 집을 마련조차 해주지 못하는 검소함은 재산 비리로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 인사 청문회의 세상에서 웃프다. 돈 앞에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초연함을 자랑하는 가족들의 당당함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마다 집칸이나 가지고, 가게라도 번듯하게 하며 사는 중산층이상의 삶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먼저 눈치챈다. 어른들의 세대가 벌이는 갑질이 폭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래 그런거야> 속 지혜로운 어른들은 무상하다. 
by meditator 2016. 2. 22. 17:04

사전에서 골목의 뜻을 찾아보았다. 

골목; 큰 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있는 좁은 길
이 '골목'은 요즘 획일적으로 도시화된 도시 문화 속에서 고유의 색깔을 지닌 '골목 문화'로 각광받는다. 그래서 '무슨무슨 골목'하며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진 골목이 등장했고, 거기에 '골목길 상권이 나타났고, 결국엔 그 개성있는 이름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시대 '유적'의 다른 이름으로 우리 시대에 출현하고, 사라져가는 골목은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시대의 역사로 돌아온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과 <시그널>의 골목길이다. 

응팔과 시그널의 같고도 다른 골목길
<응팔>과 <시그널>에는 동일한 서울 변두리 지역의 골목길이 등장한다. <응팔>에 등장한 쌍문동이 아직도 유효한 서울 지역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따온 반면, 포탈 사이트에 그 지명을 검색하면 경상북도의 어느 곳이 뜨는 <시그널>의 홍원동은 1994년 서울 변두리 가상의 지역이다. <응팔>이 구체적 지명을 등장시킨데 비해, <시그널>이 가상의 지명을 쓴 것은 바로 드라마 속에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즉 드라마 속에서는 홍원동이라고 지칭되지만 그 사건에서 시청자들이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을 떠올리는 사건의 비극성이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여전히 미해결로 남은 사건의 결과가 <시그널> 속 지명을 가상화한다. 



두 드라마 속 골목은 각각 1988년과 1997년 거의 10년의 간극을 가진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통해 지켜보게 된 두 서울의 변두리 골목길이 주는 정서는 전혀 다르다. 쌍문동의 골목길이, 골목길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칭될 정도로 도시화된 서울에서 잔존한, 사람 냄새 그윽한 인간적 유대의 장소라면, <시그널>의 골목은 연쇄 살인을 무려 10년간 움켜쥔 불온한 공간이다. 1988년에는 공동체적 문화가 살아있던 골목길이 불과 10년이 흘러, 인간성 상실의 증거인 연쇄 살인을 품은 공간으로 전화된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골목길을 바라보는 두 드라마의 상이한 시각, 그리고 골목길을 배경으로 풀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심한 빈부 격차의 역사가 이런 현격한 결과를 낳게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 

동일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지만 막상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골목길은 그 넓이에서 부터 다르다. <응팔>의 골목길이 심지어 자가용은 물론, 트럭 한 대가 들어서고도 공간이 한참 남는 널찍한 공간인 반면, <시그널> 속 사건이 벌어지는 골목은, 그 자체가 폐소 공포증을 느끼게 할 만큼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로 막혀있다.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은, 그 어느 후미진 곳에서 '납치'가 벌어질만큼 외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르다. <응팔>의 골목은 그 자체로 사람이다. 피 한 방울도 섞지 않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람들이 한 골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피붙이처럼 엉켜 살아간다.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대로,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대로 틈만나면 뭉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이들은 친구가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아이를 같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백'을 포기할 만큼 형제애를 나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뒷담화'대신 진심으로 이웃의 안녕을 걱정할 뿐만 아니라, 거리로 나앉게 된 선우네를 경제적으로 돕는 굵직한 부조에서부터, 용돈, 식사, 심지어 쓰러진 택이 아빠의 간호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기 힘든 일까지 너끈히 해내는 곳이다.

반면에 <시그널>에 등장한 골목은 같은 서울이되 서울이 아니다. 홍원동 골목길을 홀로 가던 여성들은 그곳에 움크리고 있던 연쇄 살인마에게 납치된다. 그저 다리 다친 불쌍한 강아지가 애닮아 발을 멈췄던 여성들은 연쇄 살인마(이상엽 분)의 어미가 강아지에게 했듯 검정 비닐 봉지가 머리에 씌워진 채 세상과 이별한다. 하지만 십 여년에 걸쳐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 역시나 사람들이 사는 그 골목엔 목격자가 없다. 어디 목격자만 없나? 그녀들의 실종조차도 백골 사체가 발견된 이후에야 드러날 만큼, '의문의 실종'이 가능한 곳이다. 심지어 '납치'되었던 점오 여경 차수현(김혜수 분)이 검정 비닐 봉지를 쓰고 거리로 나뒹굴고, 거기를 질주할 때, 그리고 연쇄 살인마가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를 때 골목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른 건 그뿐이 아니다. 어미를 잃고 아비를 따라 쌍문동 골목길로 온 불쌍한 소년 택이는 비록 불면증 약을 한 움큼 씩 먹으며 성장했지만, 봉황당이라는 금은방을 하는 아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어린 시절 부터 바둑이라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함께 자란 골목길 아이들 덕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설움도 잊은 채 우정을 쌓았고, 심지어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여자 아이와 결혼까지 한 성공의 삶을 산다.

하지만 <시그널> 속 골목길에서 자란 소년은 다르다. 엄마와 둘만 남겨진 소년, 하지만 봉황당을 하는 택이 아버지와 달리, 가난한 소년의 어미는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을 소년과의 동반 자살로, 그리고 소년에 대한 학대로 푼다. 바둑 기사로 어엿하게 자기 앞가림을 하는 택이를 아빠가 아프다고 여자 친구가 중국까지 따라가서 보호를 해주고, 그 여자 친구의 부모는 어린 딸을 남자 친구를 따라 중국까지 보내주는 결정조차 흔쾌히 하는 쌍문동 골목 공동체와 달리, 수시로 어미에게 목이 졸리고, 독을 탄 음식을 먹고 변기에 토해내야 하는 소년에게 손길을 내미는 이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소년이 데리고 온 강아지도차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약을 먹으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견녀내기 위해 여자들을 죽이며 살아간다. 



골목의 풍경은 다르지 않다. 쌍문동 골목길에도 야한 섹규얼리티를 강조한 영화의 포스터가 흩날리고, 홍원동 역시 삭막한 골목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색채는 그 포스터의 짙은 색감이다. 그러나 똑같은 삭막한 콘크리트 담벼락과 거기에 붙은 조잡한 포스터이지만, 쌍문동의 그것들이 그저 시대를 나타내는 데코레이션에 불과한 반면, 홍원동의 그것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했던 20세기 정신 문화의 세계를 대변한다. 쌍문동의 소년들은 그저 의례로 소비했던 그것들이 홍원동 소년에게로 가면 트라우마의 실현으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용이한 문화적 기반이 된다. 

골목, 경제적 빈부 격차가 낳은 다른 풍경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응답하라 1988>이 우스꽝스럽게 조명했던 야한 포스터가 나붙고 상영되던 그 시대는, 이른바 3s 문화 정책이 구체화되던 시대다. 군부가 민간 정부로 자기 변신에 성공하고, 경제적 호황이 그 성공을 뒷받침할 때, '독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것은 바로 sex, screen, sports의 3s이다. 

그에 따라 19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 축구, 86년 아시안 게임, 그리고 88년 올림픽으로 sports 정책은 정점을 이루었다. 또한 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거리는 불야성의 환락의 도시로 번쩍이기 시작한다. 또한 80년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되었고, 영화는 그런 컬러 tv에 대응하는 자구책인 양 tv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성인용 19금 영화들을 양산해 낸다. 그리고 그렇게 3s의 우민화(愚民化)정책이 벌어지는 동안, 사회적 비판 의식이 무뎌지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삶에 매몰되고, 그 과정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일한 서울의 골목이지만, 그 골목길에서 배태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응팔>을 매개로 등장한 이야기는 철저한 서울 중산층의 자기 성장 스토리이다. 단칸방에서 끼니를 굶었던 정팔이네의 복권 당첨. 덕선이네 보증이라는 극적인 스토리까지 끼얹었지만, 결국은 전자대리점, 은행원, 금은방을 하는 당시 좀 살만했던 중산층의 약간은 굴곡있는 부의 에스컬레이션, 그리고 그런 안정된 기반 위에서 탄생한 아이들의 성공을 그려낸다. 골목길에서 위협이래봐야 바바리맨같은 위협적이지 않은 변태일 뿐이다. 심지어 그 마저도 미래의 남편감이 구해준다. 안온한 중산층다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그런 중산층의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응팔>을 보며 향수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골목길의 그 누군가가 안정된 경제적 기반과 그에 따른 성공적인 자식 농사를 지었던 반면, <시그널>의 연쇄 살인마처럼 그런 경제적 기반을 누리지 못한 그 누군가에게 골목은, 상실과 범죄의 태반이 된다. 이미 사전에 제작된 <시그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지력이라도 가진 듯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아동 학대와 범죄를 다룬 데서 보여지듯, 2016년에 드러나고 만 아동 학대의 시초는 이미 저 1997년, 아니 <응팔>이 다루고 있지 않은 1980년대의 그 어느 골목길에서 비롯된다. 아니, 만약에 정환이네가 복권을 맞지 않아다면이라는 단 하나의 물음표만으로도 가능하다. 과연 그래도 여전히 쌍문동 골목길의 그들은 형님, 아우하면서 즐겁게 지냈을까? 거리로 나앉게 될 선우네를 택이 아빠가 돕지 않았다면 선우는 무사히 서울대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가족도 없이 홀로 공장을 다니다 수은 중독이 된 여공과 다른 삶을 살수 있었을까?

by meditator 2016. 2. 21. 18:02

이제 8회를 맞이한 mbc의 수목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은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아시아 국가 중 1위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현실은 이혼율이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 남녀들을 배경으로 드라마는 '한번 더 해피엔딩'을 꿈꾸고자 한다. 


그러니 당연히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각자 한번씩 이별의 아픔을 가진 남녀들이다. 여주인공 한미모(장나라 분)도, 그녀와 엮이게 되는 송수혁(정경호 분)도, 구해준(권율 분)도 다 한번씩 다녀온 '돌싱'들이다. 유수한 아침 드라마들이 이혼한 그녀들에게 멋진 총각을 배필로 선물한 것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인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8회에서 보여지듯이 한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전부인과 이제 새로이 만난 연인과의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혹은 아들 때문에 지레 여자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하는 홀애비 송수혁의 사정을 등장시켜, '재혼' 과정에서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 '한번 더 해피엔딩'의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렇게 매회 등장하는 해프닝과 사건들, 그리고 그를 보충 설명이라도 하듯 한미모의 재혼 컨설팅업체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이 엇물리며 '재혼' 과정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지수를 높이려 하지만 <한번 더 해피엔딩>의 시청률은 좀처럼  6%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재혼'을 둘러싼 상황 설정은 그럴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로맨틱물들이 지겹도록 반복한 여주인공과 그녀와 엮이게 되는 남자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울궈먹듯이 되풀이 한 점이 크지 않을까 싶다.



<섹스 앤더 시티>의 2016년판?
그러나 '사랑'이야기의 진부함만이 아니라, 어쩌면 <한번 더 해피엔딩>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드라마가 동지애적 연대로 등장시키는 한때 최고의 걸그룹이었던 '엔젤스', 그녀들에 대한 공감 부재가 크다는 것이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은 재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한미모이지만, 극중 스토리는 그녀의 재혼 해프닝을 중심으로, 한때 그녀와 걸그룹을 이뤘던 고동미(유인나 분), 백다정(유다인 분), 홍애란(서인영 분)의 이야기로 채워져 간다. 

틈만 나면 브런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고동미의 집에 모여 술잔을 나누는 그녀들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2004년까지 무려 여섯 시즌에 걸쳐 제작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가 그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여성들의 솔직한 '성' 담론을 펼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와 <한번 더 해피엔딩>의 구도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늘 해프닝을 만들던 캐리 역의 사라 제시카 파커는 역시나 첫 회부터 술로 인해 송수혁과 결혼 해프닝을 벌인 한미모와 흡사하고, 자유분방한 사만다(킴 캐트럴 분)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결혼을 미룬 홍애란이 겹쳐진다. 사회적으로는 능력있지만 여성적 매력이 부족한 미란다(신시아 닉슨 분)는 당연히 고동미가 연상되고, 소극적 여성성이 강조되었던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은 어쩐지 백다정같다. <섹스엔더 시티>의 그녀들처럼 <한번 더 해피엔딩>의 네 여성들은 모여앉아 허심탄회하게 '섹스'마저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심지어 역할은 사만다와 백다정으로 달라지지만 '유방암'에 걸려 여성성의 상실을 고민하는 에피소드처럼 비슷한 상황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왜 2000년대 뉴욕을 사는 네 명의 젊은 여성들의 성과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와 달리, <한번 더 해피엔딩>은 이혼율 2위의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하려 애쓰는 데도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쉬이 얻지 못할까. 물론 <섹스 엔더 시티>를 방영할 당시 트렌디한 패션 리더의 대명사가 되었던 캐리처럼, 한미모 역의 장나라의 여전한 미모와 아름다운 옷차림새가 화제가 되기는 한다. 마찬가지로 권율이 잘 생기고, 정경호는 역시나 귀엽지만 그 또한 그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드라마는 그럴 듯하게 서른이 훌쩍 넘은 여성들의 삶을 드라마로 재현한다고 했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며 그녀들의 현실적 삶에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역시나 같은 방송사의 <그녀는 예뻤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한 것은, 한때는 이뻤을 지는 몰라도 이제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모도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하고, 심지어 매번 입사 시험에 미끄러지는 '루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외모도, 스펙도, 가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열정적인 김혜진(황정음 분)이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치즈 인더 트랩>의 홍설(김고은 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통해 연기력 논란이 되었던 김고은이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현실 대학 교정 어디선가 마주칠 거 같은 고군분투하는 대학생 홍설의 모습이 김고은을 통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랑만 하는 그녀들의 부실한 삶의 이야기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의 한미모는 정말 이름답게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동료 백다정과 함께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로 오랫동안 일해오며 실제 드라마 속에서도 숱한 고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사리 '일하는 여성'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늘 고객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오버랩시키는 그녀, 하는 일이라곤 직원이 가져다 주는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지시를 내리는 것이 다인 그녀에게서 그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결혼 컨설팅 업체의 ceo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극중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공주처럼 이쁜 옷을 입고 찾아오는 고객들과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사랑을 헤아려 보거나, 자신과 엮인 두 남자와의 밥 먹고 술 마시는 등 사랑 만들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애초에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임에도 자신의 사랑에는 여전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비현실적 설정답게, 한때 걸그룹이었다가 겨우 서른 중반 나이에 잘 나가는 재혼 컨설팅 업체대표가 되기 까지의 내공이, 드라마 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한미모만이 아니라, 동업자 백다정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녀들이 하는 일은 한미모가 '재혼'을 하기 위해서 '재혼 컨설팅 업체'가 필요할 뿐, 꽃집을 하거나, 까페를 해도 별무 상관일 상황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그녀들의 동지 고동미와 홍애란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생님인 고동미와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도 일하지 않는다. 한때 걸그룹이었던 그녀가 비키니 차림으로 '호객'을 해 인기를 끌었다는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이 드라마 상에서 유일하게 업무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인기가 떨어진 자신의 홈쇼핑 제품을 들고 방송국에 가다가 후배를 만나 면박을 받고 방문 배달을 하다 팬을 만나기 위한 설정때뿐이다. 역시나 한때 걸그룹이었던 전력이 무색하게 양배추 인형같은 차림새로 바람둥이에게 당하고야 마는 고동미는, 흡사 <b사감과 러브레터>의 사감처럼, 여성성이 상실된 전문직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연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들은 한가롭게 브런치 까페에 앉아 자신에게 찾아올 진실한 사랑을 부르짖지만, 결코 현실에서 자신들을 괴롭힐 잘 안되는 사업 고민이나, 혼자 사는 삶의 경제적 고달픔 따위는 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이혼 현실에서 실제 가장 문제가 되는 이혼 후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에게는 논외의 이야기이듯, 자신에게 다가올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들에게 현실은 그저 장식이다. 당연히 그들과 엮이는 남자들도 고동미처럼 재수없게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전처가 있더라도 의사이거나, 아들이 딸렸어도 기자라는, 심지어 아내의 투병을 알고 눈물 흘리는 자산가이다. 그저 하릴없이 나이 먹어가며 방치되는 자신의 성적 홀몬이 문제일 뿐, 홀로 사는 삶에 닥칠 경제적 위기나 어려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클리셰를 덮을 '공감'지수조차 부족하니, 한미모의 미모만으로는 시청자의 관심 얻기는 역부족이다. 

by meditator 2016. 2. 12. 16:13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남편찾기 전략은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우정, 가족애 에피소드로 화력이 딸리던 드라마에 '남편찾기'란 노이즈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등장했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란 신조어가 무색하게 일대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접전'은 그저 드라마 속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정환과 택의 신경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배우조차도 자신이 못내 이룬 사랑을 자신보다 더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할 만큼, 시청자의 대리전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겐 <응팔>은 애청자를 배반한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지일관 엄마도 없이 불쌍한 택이네의 가족 만들기라는 뚝심있는 주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응팔>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의 남편감조차 흐트러 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고 나면 어줍잖게 응답하라의 복고적 분위기를 따라한 드라마가 우후죽순 등장했던 <응답하라> 낙수 효과(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고 맨 꼭대기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흘러가듯, 영향력의 확산을 노리는 전략)와도 같은 현상이다. 즉, <응팔>의 전략을 따라하면 '중간'은 가겠다는 안이한 제작 방식이, 복고 전략에 뒤를 이어 드라마 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 찾기 
<응팔>을 연출한 신원호 피디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예능 피디'라 재확인했다. 그런 그의 예능 피디 커밍 아웃이 어색하지 않게 <응팔>이란 드라마는 예능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이다. 일찌기 드라마계에선 볼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면 등장하는 '매에에~~'하는 양의 울음 소리에서 부터, 거의 두 시간을 육박하는 방영 시간을 채우는 상당부분의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중심의,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트콤과 같은 내용, 거기에 무엇보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남편찾기'에 둔 마치 한 편의 게임 관전과도 같은 전반적인 드라마의 구조가, 여느 드라마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실제 거의 두 편의 미니 시리즈를 방영하는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응팔>을 보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응팔>은 앞선 <응사>나, <응칠>보다 더 노회한 '남편 찾기' 전략이 등장했다. 이미 전작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어남류'란 신조어를 만들며 그간 제작진이 했던 방식을 간파하자, 드라마는 '어남류'로 낚으며, 그 아래 '어남택'의 복선을 깔면서, 시청자를 희롱한다. 즉, 카메라의 시선은 정환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그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된 곳에서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반응, 혹은 제작진의 의향에 따라, 정환과 택이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된다. 만약에 정환이 남편이 된다면, 역시나 <응답하라>의 전통에 따랐다고 할 것이요, 택이가 남편이 되었다면 마치 '숨은 그림찾기'처럼 사전에 깔아놓았던 복선을 들먹이며 이것을 몰랐나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시청자들은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남편이 누구였는가를 추적하려고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견은, 바로 어차피 남편감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아니 그것보다 시청자를 낚기 위해 철저하게 밑밥을 깔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한 밑밥 덕분에 덕선은 '금사빠'가 되었다가, 모성이 충만한 택이 바라기가 되었다가의 이중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 덕선의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정해지지 않은 남편감 때문에 '덕선'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언제나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 그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십대 소녀의 캐릭터로 대체하기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기엔 미흡한 캐릭터가 되었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명하기엔 해프닝을 넘어선 '내면'의 묘사가 미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흡한 덕선의 마음은 '남편찾기'의 불을 붙이는 데 충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 채 휘둘리는 덕선을 따라,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를 하느라 눈이 벌개진다. 결국 덕선은 게임 속 보물을 찾아가는 캐릭터처럼, 시청자를 대신해 남편이란 보물을 찾는 여정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응팔>이 88년 당시의 골목 공동체를 매개로 여전히 소중한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에 있어, '불손'함은 거기에 휘둘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쉬이 침잠할 수 없게 만든다. 



<응팔>의 전략을 되풀이 하는 로코들- <치즈 인더 트랩>, <한번 더 해피엔딩>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인터뷰 토씨 한 자를 가지고 여전히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설전은 이후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부러운 전략이다. 그러니 당연히 따라할 밖에. 

1월 4일 부터 방영되는 tvn의 <치즈 인더 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이다. 원작의 팬들 중에 드라마화 된 <치즈 인더 트랩>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원작인 웹툰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유정 선배와, 거기에 쥐덫에 걸린 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된 홍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걸출한 피디 이윤정에 의해 작품화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은 이윤정의 장기인 전형적인 청춘 연애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웹툰의 원작이 드라마화 되는 과정에 '각색'을 거치고 원작과 다른 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 심리물이, 연애물로 탈바꿈되는 것은 연애물이 융성한 드라마계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전략이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조차 훼손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즉 원작은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유정 선배와 홍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된 <치즈 인더 트랩>은 <응팔>처럼 팽팽한 남녀 관계를 대두시킨다. 즉, 원작에서 그저 주요한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백인호(서강준 분)가 유정(박해진 분)과 홍설(김고은 분) 사이에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호는 로맨틱 물의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로 홍설이 어려울 때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홍설을 돕는 홍설 바라기의 인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렇게 백인호가 홍설 바라기로 그려지는 동안, 드라마 방영 초기 원작의 유정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로 찬사를 받았던 유정이란 존재가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치즈 인더 트랩>이란 원작이 가진, '심리적 질감'을 고스란히 반영된 유정이란 존재가 미미해 지면서, <치즈 인더 트랩>이란 드라마가 그저 재벌남과 가난한 피아노 천재 사이에 낀 대학생 홍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홍설 역시 그 캐릭터의 진실성 대신 점점 이 남자는 이래서 좋고, 저 남자는 저래서 좋은 어장 관리녀가 된다. 

이렇게 대놓고 두 남자를 내세운 전략을 드러내는 것은 <치즈 인더 트랩>만이 아니다. 1월 20일 시작한 mbc의 새 로맨틱 코미디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다짜고짜 첫 회부터 송수혁(정경호 분)과 한미모(장나라 분)의 결혼식 해프닝을 벌이는가 싶더니, 다음 회에선 상황을 확 뒤집어 한미모를 구해준(권율 분)에 빠진 금사빠로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르른 드라마는 한미모를 놓고, 일찌기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가꿔 온 두 싱글남의 팽팽한 싸움을 예고한다. 이 드라마 역시 '우정'이냐, '사랑'이냐 전략까지 놓치지 않을 기세다. 드라마는 한 회에서는 한미모를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청순한 여자라며 자신의 친구와 결혼식 해프닝까지 벌인 그녀의 금사빠를 거뜬히 받아넘긴 구해준에 집중하는가 하면, 또 한 회는 그런 구해준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앓이를 하면서 속정깊게 한미모를 챙기는 송수혁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한 회에는 송수혁이 괜찮았다, 또 다른 한 회에는 구해준에 마음이 쏠린다. 한미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예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트콤처럼 두 남자와의 갖가지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채운다. 



이렇게 <응팔>에서 전염되기 시작한 '남편 찾기', '사랑찾기' 전략은 달라진 철저히 리모컨을 쥔 '고객 만족 서비스'이다. <응팔>의 배경이 되던 시대 한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두고, 순정파의 여주인공과 악녀 조역과의 피말리는 '사랑과 전쟁'에 집중하던 tv는 좀 더 적극적으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실은 이러면 이래서 잘 나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양 손의 떡을 쥐어준다.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싸우지만, 쌍문동 골목길의 공부도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했던 덕선이가 잘 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공군 파일럿이랑,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체가 환타지의 끝판왕인 것이다.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같지만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순정파인 재벌집 자제랑, 가난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자신바라기인 두 남자나, 비록 아들은 딸렸지만 자상하면서도 능력있는 기자랑, 뭇 여인들이 흠모해 마지 않는 역시나 마음마저 따뜻한 잘생긴 의사라니, 그 나열만으로도 '므흣'해지는 구도인 것이다. 사실은 누가 된들 동화같은 환타지이지만, 게임을 시작 한 순간 쉬이 로그오프를 할 수 없는 게이머처럼, 시청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감을 향해 치달린다. 

by meditator 2016. 2. 4. 16:49

1월 23일 새로이 시작된 ocn의 장르물, <동네의 영웅>의 배경은 말 그대로 동네이다. 거기에 중앙정보부 활동 중 명령 불복종으로 수감 생활을 마친 요원 출신의 백시윤(박시후 분)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팔려서 폐점 위기에 놓인 바 '이웃'을 사들여 동네 주점 사장 노릇을 시작한다. 그런데, 말 그대로 '동네 장사'를 시작한 이 전직 요원, '복수'를 꿈꾸는 그에게, 그가 사들인 주점 '이웃'도, 그가 웅크리고 앉은 이 동네도 심상치 않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시작된 현실감있는 서사의 시작
예고편 영상에서 동네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발 차기를 선보이며, 로봇 태권 V음악을 깔며, 유치한 동네 영웅으로 시청자를 '호객'했던 <동네의 영웅>, 하지만 이제 2회를 마친 이 드라마가 가진 포부가 심상치 않다. 
우선 1편의 시작은 한국 경제계에서 포식자로 등장한 중국 검은 돈의 뒷배를 캐기 위해 투입된 백시윤을 비롯한 중앙 정보부 요원들의 활약으로 시작된다. 상대측 인물의 핸드폰에 스파이웨어를 깔고, 여성 요원을 투입하여 그를 파악해 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것도 잠시, 알고보니 이미 '미인계'로 다가섰던 요원의 정체는 들통나있었고, 몰래 추적해 가던 백시윤의 차에는 트럭이 들이닥쳤다. 심지어 그 이후 이들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백시윤이 아끼는 동료가 살해되고, 백시윤은 그 일련의 책임을 지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백시윤은 말로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놀고 먹겠다고 하지만, 자신의 동료를 죽인 자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런 그가 선택한 곳은 우연히 들르게 된, 그런데 우연치 않게 그와 같은 전직 요원들의 안식처인 바 '이웃'이다. 은퇴를 앞둔 황사장(송재호 분)의 술집을 사들여, 그곳에서 그를 도와줄 전문 요원들을 결집하고자 하는데, 정작 사들인 '술집 동네'의 자질구레한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곳에서 알바로 일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배정연(유리 분)의 친구가 하는 카페에 '철거'를 명목으로 깡패들이 드나들며 24시간 괴롭히는데 무술 좀 하는 백시윤이 그걸 두고 볼 수 없어 나서며, 말 그대로 '동네의 영웅'으로 첫 테이프를  끊게 되는 것이다. 

허름한 동네의 폐점 위기의 술집이 전직 요원들의 암묵적 아지트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된 <동네의 영웅>, 하지만 2회에 들어서며 정작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동력이 되는 건, 바로 그 '동네의 영웅'이다. 즉, 바 '이웃'이 자리잡은 동네에 중국 자본이 투입된 한류 쇼핑몰이 들어서고, 그걸 건설할 세력들은 동네에서 스스로 터전을 잡은 토착 상인들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몰아내고 한다는데 바로 장르물 '동네의 영웅'이 탄생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보증금 5천만원을 내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영세 상인을 단 돈 천만원을 주며 폭력배를 동원하며 몰아내려는 중국 자본, 거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이곳을 얼어붙게 하기 위해 '아리랑 치기범'까지 동원하는 조직적인 개입은 짜임새 있다. 특히나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생적 문화 콘텐츠로 성장한 '홍대', '가로수길'에 이어 '북촌' '서촌' 등의 문화의 거리가, 그곳에서 고생하며 자리잡은 토착 상인들이 주인들의 집세 폭거로 인해 쫓겨나고, 이제 그 주인들조차 거대 중국 자본의 공세에 손을 들고 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은 점이 무엇보다 신선하다. 매회 얼마나 더 못되어 지는가 내기라도 하듯, 사이코패스 재벌 경쟁을 벌이는 드라마들 속에서, 우리 사회 속 현실 모순을 배경과 사건의 원인으로 섬세하게 배치한 구도가 섬세하다. 

제 2의 내부자들? 아니 제 2의 추노?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짜임새 있는 설정으로 시작된 <동네의 영웅>이 드라마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 받기에 발목을 잡는 인물이 있다. 바로 주인공 백시윤으로 분한 박시후이다. 사회적 물의와 논란이 되었던 그의 개인적 사건은 결국 법적으로 해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박시후는 3년간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하는 본의 아닌 자숙의 기간을 거쳤지만, 이병헌처럼 그 과정에서 박시후에게 박힌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동네의 영웅>이란 드라마 이전에 박시후가 나오는 드라마로 이 드라마가 평가받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그런데 박시후의 필모를 보면, <가문의 영광>, <검사 프린세스>, <공주의 남자> 등 그가 선택했던 작품들이 평작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 2회에 불과하지만, <동네의 영웅> 역시 짜임새있는 설정과 박시후를 제외하고도 기대할 만한 출연진들이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배가시킨다. 그런 점에서 <동네의 영웅>이 <내부자들>이 이병헌의 스캔들을 덮어 주었듯이 세간의 박시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하지만, 진짜 기대해 봐야 하는 건, 스캔들의 박시후가 아니라, 그를 주연으로 삼아 배수진을 친 <추노>의 곽정환 피디이다. 우스개 소리로 공중파의 스타 감독으로 유일하게 실패한 인물로 꼽히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곽정환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kbs를 나온 이후 곽정환 감독의 작품은 늘 신선한 시도를 거듭했다. <추노> 이후 <도망자 플랜 b>로 악평을 들었던 곽감독은, 이후 kbs를 나와 생뚱맞게도 그가 잘하는 '액션' 대신 '농구'를 꺼내들었다. 일제 시대 농구팀와 농구 스타를 통해 그 시절 젊음을 조명하고자 했던 <빠스껫볼> 하지만, 그의 시도는 그런 포부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신인 연기자군의 어설픈 연기와, <추노>처럼 뒷심이 부족한 대본, 그리고 생소한 주제와 소재에 냉정한 시청자들로 인해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오래도록 칩거했던 곽정환 감독이 들고 나온 작품이 <동네의 영웅>이다. <동네의 영웅>은 <추노>처럼 곽정환 감독이 잘하는 <액션>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도, 그 뒤를 받쳐줄 서사와 인물 관계가 촘촘히 짜여진 듯이 보인다. 과연, '박시후'라는 장벽을 넘어, 장르물의 전문가로, <추노>로만 기억된 그의 낙인을 뒤집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이것이 진짜 <동네의 영웅>의 볼거리이다. 
by meditator 2016. 1. 25. 16:09

1월 22일 첫 방영된 tvn의 금토 드라마 <시그널>은 마치 <응답하라>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그 시대들의 뒤안길을 파헤쳐간다.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라는 조동진의 노래를 따라, 그 시절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유괴된 아이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오는 날 운동장에서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산을 든 여자와 사라진 아이,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이제 그 아이, 김윤정 유괴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될 시점이 다가왔다. 하지만, 젊은 윤정이의 엄마가 초로의 나이가 되도록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 박해영(이제훈 분)이 우연히 집어든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온 15년전 그 시절 사건에 뛰어들었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공소 시효가 다가온 김윤정 양의 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갑동이>와 <시그널> 같은 듯, 다른 듯
이재한이 제공한 단서로 범인 윤수아(오연아 분)를 잡았지만, 박해영과 차수현(김혜수 분)을 가로막은 건 바로 공소시효다. 2014년 방영된 <갑동이>처럼, 범인을 눈 앞에 놓고도 공소 시효로 인해 눈 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상황이 다시 한번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갑동이 때처럼, 공소 시효는 범인을 잡는 또 다른 트릭으로 작용한다. 결국 김윤정 유괴 사건의 공소 시효를 넘겨버린 사건, 그리고 미소를 띠며 유유히 조사실을 걸어나가는 윤수아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살해한 또 다른 사람, 서형준의 살해 공소 시효였다. 하지만 여론은 윤정이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도 놓아줘야 하는 이 상황에 분노하고, 공소 시효법 자체가 개정된다. 그리고 경찰 안에 미제 사건 전담팀이 생기고, 윤정이 사건을 덮으려 했던 수사국장 김범주(장현성 분)는 보란듯이 윤정이 사건에 뛰어들었던 박해영, 차수현 등을 미제 사건 전담팀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던져진 첫 번째 미제 사건은 바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은 우리에겐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으로 더 익숙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미 2003년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영화 속 형사의 몸서리쳐지는 대사를 통해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2014년 드라마 <갑동이>를 통해 재연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대표적 미제 사건으로 박해영, 차수현의 미제 사건 전담팀에게 던져졌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을 다시 한번 파헤치는 <시그널>의 주체는, <갑동이> 때처럼 형사들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갑동이>가 그 시절 80년대의 막무가내 식 수사로 희생자가 되었던 희생자의 아들이 형사가 되어,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정신과 의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 들어간다면, 이제 2년만에 다시 <시그널>을 통해 재연된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주체는 그 시절의 신참 순경 이재한과, 미제 처리 전담반의 박해영, 차수현이다. 드라마는 과거로 부터 온 무전이라는 '환타지적 모티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이재한이라는 인물의 전사를 자유자재료 오간다. 김윤정 유괴 사건에서 서른 중반의 이재한으로 부터 무전이 왔다면, 이제 경기 남주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이재한을 그 시절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신참 시절의 이재한이다. 그렇게 이재한의 전사를 씨줄로 한 드라마는, 그와 무전을 하는 박해영을 매개로, 유족들을 '통한'으로 몰아넣는 '미제 사건'이라는 날줄로 이 사건을 엮어간다. <갑동이>가 제목에서 처럼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사건 자체와 그 사건의 범인에 집중해 들어갔다면, <시그널>은 앞서 1회에서 김윤정 유괴 사건을 시작으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으로 사건을 이어가며, '미제 사건' 이라는 줄기 자체에 집중한다.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 또 다시 <시그널>을 통해 재연된 이유는?
똑같이 재연된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이지만, 그 온도는 다르다. <갑동이>가 드라마 전체를 통해 이 사건에 집중하듯, 드라마는 현재에 되살아난 '갑동이'의 카피캣을 통해 특수 수사대가 만들어 질 정도로 경찰의 중심 사건으로 풀어진다. 그에 반해, <시그널>은 이미 김윤정 사건을 들춘 형사들이 6개월 뒤에 사라질 미제 사건 전담팀으로 보복성 배치되듯, '미제' 사건을 만든 경찰의 '정의롭지 않음'을 드라마의 한 축으로 끌고간다. 거기엔 아직 드러나지 않은 2회에 총성으로 끊긴 이재한 형사의 부재도 미스터리로 자리잡는다. 



즉, 이미 전작 <쓰리데이즈>를 통해, 위기의 대통령과, 다수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협조한 대통령을 경호해야 하는 경호원의 딜레마와, 그들이 찾아가는 정의를 통해,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2014년의 암울한 정의의 세상에, 한 줄기 '정의'의 가치를 강직하게 논했던 김은희 작가는, 이제 '미제 사건'을 통해, 돌아오지 않는 아이와, 그 아이의 죽음을 은폐하는 '정의'의 문제를 끄집어 낸다. 그리고, 홀홀단신 대통령과 그를 목숨을 바쳐 경호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으로 가능한 '정의'의 문제를 논했던 작가는, 이제 다시, '아이'의 생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여전한 피해자들의 '진혼곡'을 울릴 또 다른 정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하다. 600일 하고도 다시 반이 지나도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정의'가 배제된 다른 사건들의 기억을 복기시킨다. 부디,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의 진범 '갑동이'를 잡고 싶다 절규했던 <갑동이>가 아쉽게도 사이코패스 갑동이와 그의 카피 캣에 짖눌려 버린 <갑동이>의 전철을 밟지 않고, 과거에 침잠되지 않은 채 무전을 보내온 이재한 형사의 이야기로 귀결될, 현재의 정의를 제대로 풀어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6. 1. 24. 02:21

결국은 '남편찾기'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19회 케이블 드라마로 17%가 넘는(19회, 19.597% 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공중파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중박이라 치는 세상에서 놀라운 성과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는 확연히 세대별 시청 프로그램이 갈리는 tv 콘텐츠에서, 10대에서 50대까지 거의 전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이 시청률을 넘어서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이런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50대의 세대가 20대의 삶을 살았던 1988년이라는 '추억'과, 시대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화두가 절묘하고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혹은 엄마와 딸이 '덕선이의 남편감'을 두고 격의없는 설전을 벌이는 '세대간 화해'를 이루는 성취를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응팔이라는 세대 공감의 드라마의 비등점을 끓게 만든 것은, 두 말 할 것이 없이 '덕선의 남편찾기'이다. 극이 중반에 들어서며 현격하게 떨어지는 서사의 빈 공간을 가족 에피소드와, 제작진이 매회 던지는 남편 찾기의 떡밥으로 채워져 갔던 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도, <응답하라 1997>에서도, 그리고 이제 <응답하라 1988>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화두'로, 제작진의 초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력한 '클리셰'가 되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 진부한 '남편찾기'라는 그래서 극 초반, 전작을 '독파한' 시청자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정의를 지레 내리는 불상사에 대처하고자, 전작과는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응팔>은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의 고전적 클리셰를, 전작과는 다른 결론으로 '진부함'을 피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제작진의 선택은, '어남류'라 철썩같이 믿었던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응답하라>시리즈가 가진 고유성마저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제작진의 새로운 전략, 어남택? 
2012년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응팔>처럼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커징텅(가진동 분)을 비롯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쌍문동 골목길의 소년들처럼 같은 반의 여주인공 션자이(진연희 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응팔>의 정팔(정환, 류준열 분)처럼 마음과 달리 자꾸 그녀와 어긋나기만 한다. 두 사람은 잠시 사귀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응팔처럼>. 아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은 말 그대로 그들의 십대 시절의 풋풋함과, 그 시절과 상황이 달라진 나이 먹어감을 두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응팔>의 정환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징텅처럼 그 시절의 대표적인 남학생인 듯 하다, 어느 순간 심지어 20회에 들어서는 존재조차 없는 존재로 <응팔>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타이밍'을 놓친 죄로, 자신을 찾아온 택에게 '덕선을 사귀라는' 잔인한 덕담이나 하는 존재로 소모된다. 

물론 덕선의 남편이 택이로 정해진 후, 그리고 시리즈의 후반 제작진이 확고하게 택이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덕선과 택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밝은 시청자들은 거기서 부터 유추해 들어가, 덕선과 택이의 '사랑'이 어느날 갑자기 결정된 제작진의 결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진 '세월'이라고 확인사살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덕선의 '관점'에 대한 해석이 덧대어지며 '택이'만이 덕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결론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남류'라 믿었던, 혹은 정팔의 관점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저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의 연기가 너무도 극진하여, 그게 아니면 류준열이란 배우의 매력에 빠져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극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남류'는 그저 '남편찾기'의 바램이 아니었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아왔던 시청자들이 터득한 나름의 <응답하라>의 정서이자, 과도하게는 '주제'였던 것이다. 



그저 '어남류'가 아니라, <응답하라> 당대성의 표현이었던 정환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은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17살 그들처럼, 94년에, 97년에, 그리고 88년에 살았을 '평범한' 녀석들이다. 비록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 분)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 분)가 대한민국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되었어도, 그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같은, 싸가지 없는 평범한 그 시대의 녀석들일 뿐이다. 그에 비해, 그들의 연적이 되었던 <응사>의 칠봉이(유연석 분)나, 윤태웅(송종호 분)는 당대의 영웅이었다. <응답하라 1988>의 이창호가 연상되는 최택처럼. 그래서 그들은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처럼 잠시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해서, 한껏 여주인공의 러브 환타지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어느덧 그들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제 아무리 잔인한 이별을 고해도, 그들에게는 당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그들만의 서사가 남아있으니까. 그들에게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위로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잠시 그녀를 사랑했던 영웅은, 그들답게 그들의 '마이웨이'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응팔>은 이미 시청자들이 익숙해져 버려서, '어남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이 시리즈의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해 전작이 하고자 했던 '당대성'을 파괴한다. 즉, 당대의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최택이라는 당대의 영웅같은,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주인공과 맺어짐으로써, 그 시대 보통 소년이었던 정환의 존재가 공중으로 붕 뜬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 시리즈가 가져왔던 '당대성'도 함께 공중으로 붕 뜨게 된 것이다. 그저 당시의 시대상이나 소품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청춘'의 당대성'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여주인공인 덕선이가 사랑을 찾았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제작진이 남편찾기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트릭이었던 것인지, 드라마는 거의 16부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정환'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 언제나 카메라의 시선을 정환을 향해 있었고,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는 그런 정환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정환에 중심을 맞춘 카메라의 외곽에 에피소드처럼 다루어 졌다. 그러니 드라마에 골몰한 시청자들은 정해진 미로를 탐구하는 모르모트처럼 제작진이 프레임 안에 가두어 둔 정환의 풋사랑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덕선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정환의 마지막 고백 장면에 등장했던 '정환'의 순애보의 전사를 덕선보다도 잘 안다. 거기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정환은 '가족애'의 현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무뚝뚝하지만, 라미란 여사네 아들로써 그 누구보다 속깊은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심장병에 걸린 형 대신 공사까지 가는 '가족애'의 주인공이다. 가족뿐인가, 그가 첫 번째 존재감을 드러낸 선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 씬 이래 정환은 좋은 친구 이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이런 '공동체'를 봉합하려 종종 자신마저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그 보상으로 '사랑'을 선사했는데, 이번 시리즈에선, 그런 정환에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고백'조차 거짓으로 하게 만드는 '진따'로 만들어 버렸으니, <응답하라>에 '모범생'처럼 제작진이 주는 받아먹는 충성을 바쳤던 시청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배신이 된 것이다. 착한 아들, 착한 동생은 심지어 착한 친구로 남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환만이 아니다. 그만큼 평범했던 동룡이마저 실종되었다. 어느 시리즈보다 가장 혈육같았던 친구들은 그저, 덕선과 택이의 러브 메신저로만 소비되었다. 

그런데 이제 원래 '어남택'이었다니, 이것을 <응답하라>의 변경된 전략을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남편찾기'로의 재미로 해석할지, 그게 아니면 덕선이에 대한 일편단심 택이의 순애보로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남편찾기에 골몰하다 스스로 궤도 이탈해 버린 시리즈의 궤멸로 받아들일지조차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번에도 역시 '남편찾기' 흥행을 대성황이라며 삼페인을 터트리는데, 제작진에 순종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허무'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분명 다음에 또 <응답하라>가 만들어 지면 볼테니,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by meditator 2016. 1. 17. 02:01

9회 <리멈베-아들의 전쟁> 앞이 보이지 않던 진우 아빠의 서재혁씨(전광렬 분)의 재심 재판, 하지만 진우(유승호 분)가 전주댁의 살인자가 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청부 살해 업자를 찾아 맨몸으로 돌진한(?) 검사 이인아(박민영 분)의 살신성인으로 진우를 옭아맸던 음모로부터 진우가 자유로워지고,  뜻하지 않게 아빠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 살해를 당한 전주댁의 남겨진 영상으로 '재심'의 결정적 증거가 확보되어 진우는 아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 선다. 전주댁의 영상에 이어 또 다른 결정적 증인인 의사를 호명하는 도중, 그만 진우는 기억을 잃으며 쓰러진다. 그의 과잉 기억 증후군의 반전인지, 아버지에 이은 알츠하이머의 유전인지, 다음 회를 기약하면서. 




언제나 '고꾸라지는'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 진우가 기억을 잃는다는 충격적인 정황의 구체적인 상황에 거리를 두고 이 씬 자체의 틀을 보면 어딘가 익숙하다. 과잉 기억 증후군에, 기억력 못지 않게 명민하고 똑똑한 판단력에 일호 병원 부원장을 위협할 정도의 담대한 기지, 거기에 자신을 잡으려 들이닥친 경찰관 무리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도망치는 액션까지, 도대체 안가진 것 없는 이 능력자 주인공이지만, <리멤버-아들의 전쟁> 1회 이래 이 능력있는 주인공은 늘 이렇게 결정적 상황에서 '고꾸라지고'만다. 

4년전 처음 아버지가 '서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법정에 섰을 때도, 군중의 계란 세례에도 의연했던 진우, 그리고 아버지의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도박장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진우지만, 정작 그가 믿었던 변호사 박동호(박성웅 분)가 결정적 순간 그를, 그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만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재판이라며. 그렇게 아들의 전쟁 서막에서 진우는 박동호로 하여금 대리전을 치룬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렇게 믿었던 변호사에게 배신을 당한 진우는 그래서 이제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변호를 맡기는 대신 자기 자신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의 똑똑한 머리로 변호가가 되었다. 심지어 박동호를 벤치마킹한 듯한 처신으로 일호 그룹의 변호를 맡으며, 그룹의 비리 장부까지 챙겼다. 그렇게 야심차게 아버지의 재심을 위해 에돌아 왔던 진우, 하지만 그런 그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지켜보던 남규만(남궁민 분)은, 진우가 '재심'을 위한 도정에 나서자, 단번에 그를 살인자로 옭아매고 만다. 비밀의 방까지 만들고, 일호 그룹 조직도며, 아버지 사건을 도표화하면서 재심을 준비하던 진우는 하루 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겨우 이인아와 박동호의 도움으로 살인자 누명에서 벗어난 진우가 주도면밀하게 '재심'을 준비해 가지만, 정작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가 준비한 재심이 아니라, 그의 '기억 상실'이다. 
이렇게 9회에 오는 동안 <리멤버-아들의 전쟁> 속 아들은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이지도 못하고, 언제나 완전 군장을 하고 전쟁을 하려는 순간, 고꾸라지고 만다. 그렇게 아들이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이지도 못하는 반면, 그런 아들에 위협을 느낀 서촌 여대생 살인 사건의 진범 남규만은 회를 거듭할 수록, 그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의 도를 업그레이드한다. 그저 한 여대생을 범하려다 죽이고 만 사건은 4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그 사건을 덮기 위해 전주댁을 청부 살해하고, 진우를 그 살해범으로 만들고, 사건과 관련된 숱한 인물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오히려 사건을 확산시킨다. 즉, 진우가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하지 못하는 동안, 남규만은 계속 무언가를 하며, 그의 악행을 쌓아간다. 



끊임없이 시도되다 허무하게 주저앉는 복수, 에스켈러이션 되는 악행, sbs 수목극의 클리셰
이렇게 야무지게 '복수'를 시도하지만, 늘 '고꾸라지고'마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도 불구하고 쫄아서 나날이 악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악역의 구도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만이 아니라, 최근 시청률이 잘 나오는 sbs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구조이다. 잘 나가는 sbs수목 드라마의 전통을 만든 <가면>이 그랬고, <용팔이>가 그랬다. 거기엔 억울한, 그래서 복수를 해야 하는 주인공이 있었고, 그 주인공의 상대편엔, 주인공을 저지하고자 나날이 능력치가 만랩이 되어가는 '악의 화신'이 있었다. 매회 주인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 하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까지는 늘 악인의 함정에, 혹은 자기 자신의 한계로 인해 고꾸라진다. 그리고 그 동안 드라마의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회를 거듭할 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악행이다. 

이들 드라마의 또 다른 공통점은, 결정적 순간이 오기 까지, '발암'이 될 정도로 무언가를 해보려다 고꾸라지는 주인공과 능력치를 거듭해가는 악역과 더불어, 속도감넘치는 전개이다. 하지만, 그 속도감 넘치는 전개에 개연성은 따라붙지 않는다. 한 회 동안 숨가쁘게 많은 사건들이 전개되고, 주인공은 늘 사건에 휘말리고, 그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횡무진하고, 그런 주인공에 대적하는 악역은 자신의 불안을 <리멤버> 9회 남규만이 자신의 길을 막는 소형 자동차에 골프채로 화풀이를 하듯 '사이코패스'적 행태로 표출한다. 고등학생이었던 진우가 그의 과잉기억 증후군을 이용하여 도박장에 홀홀단신으로 뛰어들고, 사시에 붙는가 하면, 살인자가 되어 경찰을 피해 도망자가 되는가 싶더니, 이제 재판을 이끄는 등, 도저히 한 장르가 보기에도 '스펙타클'한 내용들이 이제 9회가 된 드라마에서 벌어진다. <리멤버>만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죽었다 살아나서 재벌 안주인이 된 여주인공의 해프닝이나, 왕진 의사에서 재벌가의 딸내미의 연인이 되어 병원에서 어드벤처 액션씬을 찍은 용팔이까지, '개연성'이란 말을 붙이기도 무색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러는 동안 시청자들은 '고꾸라지는'주인공에 답답해 하면서도, 결국은 이 주인공이 저 천하무적 악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며, 매회 벌어지는 깨고 부수고 죽이고 이합집산하는 이야기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비단 최근 sbs 수목극만의 클리셰가 아니다. 아침 드라마에서 수난사를 날마다 새로 쓰는 여주인공들이며, <내딸 금사월>을 비롯한 시청률 높은 주말 드라마의 내용이 또한 그러한 것이다. 오히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sbs 수목극은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통속극'의 단순하지만 자극적인 사건 전개를, 장르만 바꾸어서 확장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면>, <용팔이> 그리고 이제 <리멤버>까지 높은 시청률로 이어진 ,sbs 수목극의 성취는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범용되고 있는 '복수'의, 그리고 악의 에스컬레이션에 기댄 통속극의 확산이다. <리멤버>의 전개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을 들먹일 것이 아니라,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 속 눈을 부릅뜨며 갖가지 악을 진열했던 악역들의 '모사'라 하는 게 정확한 것이다. 마치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느끼는 이 '갑을'의 사회 구조에서 억눌린 감정을 대리 배설하듯, 극중 나날이 심해지는 악행의 에스컬레이션을 보며 '욕을 퍼부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 또한 현실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절망감을 반영하듯, 주인공은 똑똑하고 야무지며 언제나 선하지만 그 선함을 '악의 절벽'에 부딪혀 최후의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고꾸라짐'으로써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는 마지막 순간, 처절하게 악을 응징하는 '환타지'로 보상받는다. 

이들 드라마는 그 배경이 재벌가의 백화점이건, 병원이건, 그리고 이제 법정이건 상관이 없다. 계약 결혼으로 그만 재벌가의 남자를 사랑해 버린 여자이건, 재벌가의 딸을 사랑한 의사이건,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잃을 위기에 놓인 젊은 변호사건, 마치 게임 배경만 바뀐 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적을 향해 몇 번의 죽임을 당할 기회를 놓고 싸움을 벌여가는 '게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날마다 게임에 빠져있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그들이 tv 속에서 빠져드는 드라마는 그들의 자식들이 빠져있는 게임보다도 단순한 서사의 '게임'같은 드라마로 매일을 채운다. 그저 주인공은 자신을 휩싼 비극적 운명 속에서, 그 비극을 제칠 '복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게임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게임 운영 방식을 본딴, rpg 사극이 퓨전 사극의 새 형식으로 도입되었던 그 때가 무색하게 이젠 모든 드라마가 rpg(roll playing game)이다. 

거기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천착, 사회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재벌과 거기에 종속된 검찰과 여타의 권력들이 등장하지만 소모적이다. 어쩌면 매일 매일 닥쳐오는 삶의 물결에 허우적거리는 우리네 삶을 가장 닮아 친근해 하는 것일일지도 모르지만, 이쯤이면, 게임 중독 못지 않다. 

by meditator 2016. 1. 14. 15:43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무협(武俠)은 무술에 뛰어난 협객을 뜻한다. 그렇다면 협객(俠客)은 또 무엇인가? 역시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의롭고 씩씩한 기개가 있는 사람이란다. 막연하다. 좀 더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 <사기>를 쓴 사마천의 정의가 등장한다. '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 이미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행하며 자신의 위급함을 돌보지 않은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 사생존망의 위급함을 겪었어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도 어쩐지 추상적이다. 좀 더 상세히 들어가서 ' 의를 쫒으며 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거는, 요컨데 범죄라도 가리지 않고 행하는 개인 혹은 집단들. 의병, 영웅 등과 같이 위기상황이 올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하는 패턴을 즐겨한다. 사실 단어 자체는 중국에서 나왔지만 그 범주 자체는 세계 곳곳의 역사에 존재하고 있다.  즉,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하는에 방점이 찍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에 이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또한 무림(武林)이란 그런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말한다. (나무 위키 참조 )




사회적 질서로 부터 튕겨져 나온, 무협
'협객'의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처음 시작한 이는 위의 사마천이다. 그가 쓴 <사기>에는 협객들을 다룬 <유협 열전>이란 범주가 있다. 혹자는 <자객 열전>  또한 협객의 이야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들 좀 과거에 한가락 한 인물들의 그 과거 '한 가락'은 결국 '협객'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또 다른 동양 고전, <수호지>는 협객사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정의가 된다. 여기서 보듯이, '협객'은 우리나라보다는, 동양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의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당시 시대 기준으로도 엄연히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스스로가 내세운 '대의명분'에 의거, '의롭고 기개가 있는'인물로 캐릭터의 변이가 이루어 지는 것은, 삼국지의 배경이나, 수호지의 배경으로 보건대, '국가 권력이 사회 전반을 관할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국면'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칼부림이나 하는 양아치들이 될수도 있는 인물이 당대의 영웅으로, 이른바 '협객'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꼭 국가 권력의 영역에서만 '협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보는 중국의 무협 영화 다수를 보면, 개인의 원한에서 부터 국가에 대한 환멸, 의리까지 무협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건, 기존의 사회 질서가 그의 검을 혹은 다른 무기를 다스릴 수 없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어쨌든 무협은 그 서사의 시작이나, 서사의 융성은 '중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무협지'는 다수의 마니아를 구축한 문학 장르이지만,  정통이 아닌 '하위 문화'장르로 취급받아왔었으며, 심지어 메이드인 코리아의 '무협지'의 배경 역시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의 어떤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의에 근거하여  2015년에서 2016년에 걸쳐 대두되기 시작한 tv 무협을 살펴보자. 1월 11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월화 드라마 <무림 학교>는 말 그대로 '무협'을 배우는 학교이다. 산속에 신비스러운 결계에 가려져 있는 이 학교는 소림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모여 '무'(무)에 근거한 심신 수련을 하는 곳이다. 이미 <드림 하이> 1, 2를 통해 정규의 학교 과정 외에 '신선한' 배움의 장을 마련해 왔던, 그리고 방학마다 '학교' 시리즈를 통해 학생 시청자들에 호응해 왔던 kbs2가 마련한 신선한 '고육지책'이다. 첫 회에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두 주인공들 면면에서 보여지듯이, 재벌 회장의 서자이지만 전 세계 어느 학교에서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말썽꾸러기 왕치앙(홍빈 분)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핸디캡으로 그가 속해있던 곳에서 방출되다시피한 윤시우(이현우 분) 등 아웃사이더들에게 마지막 비상구로 열려진 곳이 바로 '무림학교'로 설정된다. 



2016년 tv로 온 무협 
그런가 하면 고려말 국가적 혼란기라는 <육룡이 나르샤>의 시대적 배경은 '무협'이 득세하기엔 더할나위없는 상황이다. 이제 슬슬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고려 건국에서 부터 왕실의 뒤에서 고려를 도와왔던 '무명'이라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그런 무명에 대항하여, 정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갈 <뿌리깊은 나무>까지 이어질 '밀본' 역시 그 행동책에는 '무협'들이 다수 자리잡는다. 극의 기본 줄기는 이제 이방원을 내세워 정권의 뒷배가 되려는 무명과, 그에 맞서 왕이 중심이 아닌, 백성과, 백성의 뜻을 받든 '신하'들의 민주적 집합체이자, 유교적 구현을 이루고자 하는 '밀본'의 대결로 이어져 가지만, 그들의 구체적 행동 양태는 그들의 수하인, 각 조직의 '무협'들의 대결로 실현된다. 그 무협들은 중국 제일검 장삼봉과, 그의 제자로 삼한 제일검이 될 이방지, 그리고 여성으로서 장삼봉의 제자를 살한 척사광, 그리고 홍대홍의 제자로 홍대홍을 넘어선 훗날 조선 제일검이 될 무휼 등은 기존 왕 중심의 역사극에서 탈피하고자 한 <육룡의 나르샤>의 진짜 용이 되어 조선 건국이라는 격동에 휘말려 들어간다. 

이렇게 기존 학교 교육의 권태라는 공간에 드밀고 들어온 <무림 학교>나, 고려 말 격동의 아노미 속에서 한 획을 그을 무협들의 쟁투로써의 <육룡이 나르샤>의 설정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 그럴 듯한 서사가 막상 드라마로 구체화되는 지점에서는 아직은 '실험적'이란 것이 정확한 평가일 듯하다. 

결계에 쳐진 무림 학교 라는 공간으로 들어온 재벌 아들과 아이돌이라는 설정부터 청소년 환타지의 진부한 클리셰를 답습한다. 또한 무림학교 라는 공간에서 이들을 굴러온 돌처럼 여기는 기존의 자부심 강한 학생들과 이들의 갈등, 거기에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은 '학교', 혹은 '청소년' 물에서는 신물나도록 되풀이 되었던 설정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을 둘러싼 어설픈 삼각 관계까지. 그런 '납작하고 또 납작한 갈등'을 어설픈 'cg'를 곁들여 펼쳐냄으로써 '어린이 드라마'같다는 평가를 받고야 만다. 이범수, 신현준, 신성우까지 묵직한 조연들과, 무림이라는 신선한 구도가 보여주는 기대는 크지만, 기본적으로 무림이건, 학교건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는 청소년에 대한 전개가 '청소년'에 대한 일천한 이해, 혹은 설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무림학교>의 가장 큰 난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영 당일, 그리고 다음 날까지 이어진 화제성에서 보여지듯이, 어설픈 cg로 나마 구현한 무협의 세계는 신선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화제성이 높은 것은 안타깝게도 작가들이 이 비천한 육룡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도 이미 본말이 전도된듯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무협'의 세계인 것이다. 즉, <육룡이 나르샤>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과연 누가 진짜 조선 제일검이 될 것인가? 그들의 무협 순위 등이 관심이 높은 것이다. 정도전이 구현할 세계와, 이방원의 뜻이 어떻게 어긋날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손잡을 조직, 그리고 거기에 이합집산할 무협들의 한판 싸움이 드라마의 볼거리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정작 '밀본'의 프리퀼이어야 할 <육룡이 나르샤>에서 가장 존재감없는 캐릭터는 분이가 도와야만 힘을 발하는  '밀본'의 본산 정도전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2016년초부터 한국의 tv 드라마에서 b급문화였던 '무협'과 '무림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과연 콘텐츠의 신선한 기획인지, 아니면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얕은 설정인지는 모호하다. 또한, <드림하이>처럼 신선한 학교 시리즈의 개척일지, 그저 <블러드>와 같은 괴작의 탄생일지 미지수다. <육룡이 나르샤>도 마찬가지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시작된 밀본의 탄생의 성공적인 프리퀼일지, 역사에 대한 어설픈 해석으로 귀결될 본데없는 퓨전 사극일지는 역시나 가늠하기 어렵다. 얕은 수로 시작된 시도라 하더라도 부디, 그 얕은 수가 신선하고 새로운 기획의 분수령이 되길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6. 1. 13. 15:42

2016년 새해를 들어 두 명의 여배우가 tv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바로 <치즈 인더 트랩>의 김고은과 <육룡이 나르샤>의 한예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계에서 '유망주'였던 이들 두 배우는 이제 그 활동 영역을 스크린을 넘어 tv로 확장했고, 그 반응은 호의적이다.



김고은의 재도약

2015년 한 해 김고은에게는 잔인한 한 해였다. 2012년 <은교>를 통해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스크린 데뷔식을 치룬 후, 스크린의 유망주로 2014년, 2015년 <차이나 타운>, <몬스터>,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까지 질주를 하였지만, 그녀가 받아든 성적표는 '재수강'에 가까운 처참한 성적이었다. 은교에서 70대 노인에게 미혹된(?) 10대의 도발적이면서도 순수한 소녀로 뚜렷한 각인을 남긴 그녀였지만, 그 이후의 작품에선 기억에 얹히는 캐릭터 대신, 연기력 부족, 발성 미흡'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차이나 타운>에서는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져 야생의 들개처럼 자라났지만, 사랑에 흔들리다 결국 자신을 거둬준 엄마와 같은 걷게 되는 여보스 역할이 위태위태하면서도 김고은 특유의 날 것의 이미지로 버텨냈지만, 이후의 <협녀, 칼의 기억>과 <성난 변호사>로 작품을 거듭하면서, 그간 그녀에게 부여된 '유망주'의 칭호가 '거품'이라는 곤란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그런 김고은이 웹툰계의 기대작 <치즈 인더 트랩>의 여주인공 홍설에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이 작품을 아끼는 팬들은 찬성보다는 반대의 우려를 앞세웠다. 하지만 이제 3회에 들어선 김고은은 <커피 프린스>를 통해 선머슴같은 매력의 순수한 여성으로 윤은혜를 스타덤에 올렸던 이윤정 감독의 도움으로, 원작보다 더 홍설같은 홍설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치즈 인더 트랩>에서 보여진 홍설로써의 김고은의 매력은 정형화되지 않은 정말 대학에 가면 만날 것 같은 여대생과 같은, 날 것같은 연기이다. 그리하여,<치즈 인더 트랩>을 통해 다시금 맺히기 시작한 그녀의 매력으로 보건대, 그녀가 <은교>이후 선택한 작품들이, 20대 초반이었던 그녀에겐 '유망주'란 이름으로 얹혔던 버거운 과속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치즈 인더 트랩>처럼 자기 또래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충분히 그 누구보다 생기있는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배우에게, '유망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과중한 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홍설로써 자신이 가진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김고은의 재발견이 반갑다.


한예리의 야심찬 도전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된 1월 11일, 그리고 하루가 지난 12일까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다. 바로 '척사광', 척준경의 후손으로 무당파의 장삼봉의 제자조차 그 앞에서 무릎을 끓게 만들었던 숨겨진 무림의 고수가 다름아닌 여성, 그것도 바로 왕으로 옹립될 후에 공양왕이 될 왕요의 여인인 윤랑(한예리)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저 그동안 그토록 정체가 궁금했던 척사광이 여자였으며, 그것도 윤랑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한예리는 뒤늦게 <육룡이 나르샤>에 합류했지만, 한예종 무용과 출신의 능력을 맘껏 살린 춤사위와, 그보다 더 설득력있는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약간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빚어내는 그녀의 대사는 안정적이며 매력적이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 속 한예리의 '씬스틸러'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다수의 독립 영화 출연을 통해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라는 칭송을 얻을 정도였던 한예리는, 국내에서는 소수의 개봉관, 뜻하지 않은 해프닝과 더불어 비극적인 결말로 인해 다수 관객과 만나지 못했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은 <해무>에서도 홍일점 연변 처녀 역할을 거뜬히 해냈으며, 최근 개봉한 <극적인 하룻밤>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어냈던 진짜 '영화계의 숨은 고수'였던 것이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 그녀가 출연했던 단막극 < 연우의 여름>도 단막극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렇게 무모한 작품 선택으로 고전하던 김고은의 재도전이나, 이미 좋은 연기로 인정받던 한예리의 tv 진출은 반가운 일이다. 비록 <치즈 인더 트랩>에서도 대놓고 김고은의 쌍꺼풀없는 가는 눈을 희화화시키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인조인간'이 판치는 tv 화면에서 '말 그대로 자연미인'이 가지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자연 미인'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그녀들의 연기는, 신선한 활력소로 드라마계에 작용할 듯하다.

by meditator 2016. 1. 12.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