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다수의 드라마들이 어긋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한다. 그 방향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람사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변형된 로맨틱 멜로<태양의 후예>마저도. 결국은 사랑꾼이었던 유시진의 입을 빌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무릇 국가라는 전체보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의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가 본래적 의도가 어떻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맘도 흔들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맘도 흔드는 사상적 정체성에 애매모호함을 지녔지만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 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적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드라마들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진행시킨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 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를 달리해도 한결 같다. 1980년에서 90년대를 살아냈던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그리고 이제 한때 잘 나가던 검사였던 조들호(박신양 분)든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하지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은 화성 살인 사건, 홍제동 살인 사건 등에서 이제 거대 자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을 밟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에서 그저 하나의 사건이나 패배로 끝난 기록들을 복기하고 새로이 써간다.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비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제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 싸움의 방식은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아직 결론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환타지이다. 뿐만 아니라 환타지라지만 현실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을 드라마를 통해 복기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전복을 시도하고자 하는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의 방식에 고민한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처럼 작가는 작정하고 썼지만, 그 작정하고 쓴 대사들이 당국자들조차 감동시키는 광범위한 보편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고, <리멤버>처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악'에 매달리는 본말이 전도된 형국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통쾌한 선을 선보자니 <동네 변호사 조들호>처럼 실소가 나오고 마는 어설픈 기승전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원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놓여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일신상의 입신양명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심지어 사전 제작이었음에도 아쉽게도 유시진의 멋짐에 편향되어 버렸지만 진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출세의 지름길인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주제는 아들의 전쟁이고, 유승호의 미모에 기댔지만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은 초반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 민 분)의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이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하여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통쾌한 반란으로 꾸려져 가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여긴 집요한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은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그리고 그 편에 기꺼이 함께 설 '사람들'이 필수다. 매 사건마다 '미담'이나 '감동 스토리'로 귀결되는 어설픈 법정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조들호 앞에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서 그 해결의 키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 사람의 '변심'이 아니고서는 결국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고 드라마들을 입을 모은다. 




비행기 테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인간의 선의 
이런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이제 종영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비록 안타깝게도 최근 불거진 드라마 공모전과 관련된 '표절' 논란이 안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에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내세운 문제 제기와 의식은 가치가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도 최근의 여느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자각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 k그룹의 기업 협상가로 잘 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는 경찰 무선을 따던 주성찬이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 드라마로 변신한다. 하지만 정작 '협상'과 '대화'를 내걸었던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이었다. 그를 밝히기 위해 철거 현장의 총알받이로 차출된 전경 윤희상(유준상 분)이 도심 테러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15,6회 비행기 테러까지 자행한다. 



13년전 일어났던 철거 현장의 무모한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던 당사자들을 하나씩 밝혀가며, 그뒤에 k 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향한다. 마치 법정에서 소환되지 않는 증인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양은냄비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환타지 노선으로 급회항한다. 그토록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상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한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되었고,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길어진다는 것을,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6. 4. 27. 13:14

4.13 총선이 치뤄졌던 그 주말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여 <세타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 문서>를 방영했다. 이 방송을 통하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가 국정원이 관리하던 배였으며, 사고가 일어 난 후 해경 및 청와대는 승객들의 구출보다는 vip에 대한 보고가 우선이었다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렸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건 2014년,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에야 방송을 통해 숨겨졌던 의혹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본 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며칠 전 치뤄진 총선에서 현재와 다른, 선거날 당일에도 빨간 색을 입고 투표장을 향하던 vip의 노골적인 마음에 드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과연 16일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방영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진실의 포기가 강요된 기자, 괴물이 되다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언론'에 투신한 젊은이가 세월의 때를 묻히며 '정권의 나팔수'나 '개'가 되어가는 건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라고 <피리부는 사나이>는 말한다. 일개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딜'을 통해 나이트 라인 앵커가 되는 것이 '출세'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를 마비시키는 테러범들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는 길고 긴 여정을 에돌아 14에 이르러 비로소 이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된 다음 날 이 충격적 보고에도 불구하고 포털엔 이 프로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리트윗이 안되거나, 검색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기사도 등장했고, 검색어 연관도 되었다지만, 여전히 다큐의 충격적 진실이 세상에 펼쳐지기엔 어쩐지 언론의 반향이 적극적이지 않다. 드라마의 '한류' 기사는 너도 나도 하루에 몇 수십 개씩 쏟아내는 거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적은 수이다. 

윤희상도 그랬다. 14회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듯이 그는 용산 참사가 연상되는 13년전 철거민 참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의 일원이었다. 이젯 갓 대학에 들어가 전경으로 차출된 그는 철거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곤봉을 두들겨야 했던 청년이었다. 철거민이 있는 곳에 올라가 피 흘리며 쓰러진 철거민들과 부모를 잃고 절규하는 어린 여명하(조윤희 분)를 보고 주저앉아버린 순수한 젊음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어린 명하에게 기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약속했던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배경으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앞세워 13년전 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도시 테러를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의 신념은 변함없지만, 그 신념의 실현이 여명하 말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서건일과 다르지 않은 배후 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거민들의 목숨을 삼켜버린 가해자가 된 청년, 그 청년은 그 '가해'의 트라우마를 '진실'을 알리는 것으로 갚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에서 헛발을 짚었듯이 피해자 가족도, 피해자도, 피해자의 연인도 아니었지만, 그저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젊은 청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을 '기자의 사명감'으로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언론'의 현장에서 맞닦뜨린 것은 '정권의 시녀'로서의 '막힌 언로'였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그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로 시대의 비극에서 비껴설 수 없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설정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나 순수했던 첫사랑을 간직했던 청년 영호(설경구 분)는 5.18 진압군으로 복무한 이후 윤희상과는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연인을 망가뜨려 버린 그는 결국 막다른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렇게 영호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갔던 것에 비해,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헌신한 윤희상은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방식, 하지만 수세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방식이다. 

13년이 지나, 여러 사람의 희생을 바치고서야 알려진 진실
'진실'을 알리겠다고 명하에게 약속을 했던 청년은 13년이 지난 후에야, 경찰들이 들이닥칠 스튜디오,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될 나이트 라인의 마지막 멘트에서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잡히기 직전이 아니라면, 그에게 방송국에서의 입지가 좀 더 남아있었더라면 그의 약속은 어쩌면 더 지연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비로소 발설한 13년의 진실을 위해, 그는 주성찬(신하균 분)의 애인과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 그리고 결국 자신의 수족이었던 정수경(이신성 분) 등의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런 도발이 없었다면, 과연 13년전의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났을까 란 질문이 돌아온다.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진 용산 참사를 비롯하여, 이제 세월호의 진실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신의 방송을 잃었던 여러 언론인들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미처 다하지 못한 임무를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말하고자 애쓴다. 19일 방영된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아동 학대 사건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선 조들호(박신양 분)는 다수의 침묵에 대해 소리높인다. 분명 유치원 비리 내부 고발자 보복 사건인 아동 학대 사건,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침묵'에 진실은 덮여진다고 말한다. 다수의 침묵이 바로 진실을 덮게 되는 것이라고 법정의 방청객,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한다. 

물론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는 슈퍼맨같은 조들호의 활약과, 그의 진심에 사람들은 쉬이 감복하고, 법정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 용이한 감동이, <피리부는 사나이>로 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한 청년의 진심이, 13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리고 여러 사람의 희생이 더해진 도심 테러 사건으로 변한다. 법정에서 조들호의 호소는 속시원했지만, 그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진실을 알리려는 움직임은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힘들 정도로 침울한 시대라고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by meditator 2016. 4. 20. 05:54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모두들 투표를 하느라 애쓰고, 투표를 해야 한다 독려하고, 투표율이 얼마인가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마도 오늘 하루가 지나면 당락에 따라, 어느 당과 어느 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십일의 투표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현실은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그들의 출사표가 얼마나 담아냈는지 점검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저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 의원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살 길을 제대로 살펴줄 것인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 선거 당일 SBS 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방영 그 자체가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다. 한마음당(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국회의원 납치 사건을 둘러싼 한바탕 해프닝으로 펼쳐진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은 그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 아니 청렴하지 않은 의원만 청렴하지 않는게 만천하에 드러나는 속시원한 소동극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국회의원을 납치하는 철거민들
극중 나청렴 의원이 납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배경이 되는 건 그의 지역구 행복구 낙원동이다. 미당 건설이 이곳을 재개발하려고 하고 그런 재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며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장을 내놓으라 못내놓겠다 철거 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민들을 나청렴 의원을 찾아와 도와달라 요청하고 그런 주민들에게 자신이 건설사 사장을 만나보겠다며 의원은 주민들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그날밤 철거 '알바'들이 들이닥쳐 낙원동을 마구 때려부수고 그 과정에서 희경(전미선 분)의 아들이 철거 용역에게 상해를 입혀 감옥에 갇히고, 영란(김현숙 분)의 남편은 의식을 잃는다. 정작 영란의 남편에게 상해를 입힌 용역은 무죄로 풀려나고. 결국 희경과 영란은 철거는 둘째치고 아들의 합의금과 남편의 병원비가 발등에 불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막무가내 영란의 시누이 슬기(이수경 분)는 은행을 털거나 납치를 하자고 하지만 희경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말린다. 그러나 정작 다음 날 하루 벌이를 위해 골프장 잔디를 뽑으러 간 곳에서 사실 이 일련의 철거 과정이 모두 그 뒤의 실세 나청렴 의원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의원 납치를 모의한다. 

납치 과정에서 부터 나청렴 의원과 박사장의 알력으로 얻어걸린 세 사람의 '납치'는 '납치'를 하기에는 모질지 못하고 어리숙한 세 사람과 납치를 당해서도 '갑질'의 기력을 다하는 나청렴 의원, 그리고 그의 하수인 박사장과 김사장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다. 드라마는 이름부터 아이러니한 나청렴 의원을 통해 말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자금을 불리기 위해 철거마저 무자비하게 강행하는 국회의원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소동극답게 경찰서까지 잡혀갔던 희경과 슬기는 영란의 지혜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고, 오히려 나청렴 의원을 협박하여 그의 비자금으로 철거민들에게 나눠주고, 그의 비리는 밝힌 후 다시 돌아온 행복한 일상으로 마무리된다. 일장춘몽처럼. 물론 당신들이 제대로 뽑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거라는 암시는 명약관화하다. 

클리셰같은 조들호의 승리 
또 한 편의 철거민의 승리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도 이루어 졌다. 조들호(박신양 분) 변호사가 평소그 사장님을 어머니라 부르던 시장 순대굿집에 철거반원이 들이닥친다. 건물주인이 재개발을 빌미로 순댓국집을 철거하려 했던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건물주의 뒤에는 대화 그룹의 아들, 바로 조들호가 밝히고자 하는 3년전 뺑소니 사건의 범인 마이클 정이 있다. 그는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주들을 내쫓은 뒤 리모델링하여 집세를 올려받고자 현재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을 밝혀낸 조들호는 법정에서 그 사실을 밝히려 하지만 그의 편에서, 순댓국집 할머니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조들호의 진심, 그리고 몇 십년간 시장 상인들의 어머니처럼 인심을 쌓아왔던 순댓국집 주인의 마음이 시장 상인들을 움직여 재판을 승소로 이끈다. 이런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승리는 철거민의 클리셰처럼 익숙하다. 2014년 방영된 <빅맨>에서도 주인공 김지혁(강지환 분)은 조들호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 상인들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 심지어 극중 중심이 되는 곳도 조들호의 그곳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어머니처럼 여기는 분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10여년이 지나도 쉬이 나아지지 않는 철거의 상흔 
하지만 늘 철거민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은 드라마 속 그들처럼 기분 좋은 승리를 맛보거나,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고발하지 못한다.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철거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 등장한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갈등의 근원지는 바로 13년전 k그룹의 철거 현장이다. 이제는 카지노가 들어서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이곳이 13년전에는 여명하(조윤희 분), 정수경(정수경 분)이 그의 가족들과 경찰들과 대치하던 곳이요, 가족들을 잃은 곳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명하는 위기 협상팀이 되었고, 정수경은 정반대로 피리부는 사나이의 하수인이 되어 각종 사건의 배후로 암약한다. 13년이 흘러도 '철거'의 상흔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을 지배한다. 

12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트라우마 센터 사람들을 인질로 삼은 이철용 형사(이원종 분) 사건에서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유준상 분)과 하수인 정수경의 입장은 어긋난다. 이철용의 도발로 생방송 토론에 나온 양청장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윤희성은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생각했지만, 정수경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트라우마 센터에 독극물을 푼다. 공지만 팀장(유승목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기 협상이 주가 되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위기 협상팀 주성찬(신하균 분)의 활약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기에 드라마는 사건과 그 해결 과정에 집중하지만, 12회에 드러난 윤희성과 정수경의 대립은 주목할 만하다. 정수경을 찾아가 각목으로 피가 흐르도록 그를 팬 윤희성, 그는 말한다. 니가 이렇게 맞아도 니 생각이 변하지 않듯이, 사람들은 이철용의 인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양청장의 비리 대신, 피리남이 저지른 횽포한 사건에만 주목한다고. 윤희성은 일련의 테러를 통해 k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 언론 법이 함께한 카르텔을 폭로하고자 하는 반면, 정수경은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질주한다. 폭로를 위해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 윤의성도, 당한만큼 갚아주어야 한다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정수경도 결국 13년전 k그룹 철거의 상흔이다. 비록 드라마는 철거의 희생자였던 두 사람을 이제 최종 보스와 그 희생자로 한정해 가지만, 가장 현실과 가까웁게 '철거'를 다룬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철거의 희생자들은 그렇게 상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국회의원 납치 소동극이 등장한 단막극도, 그리고 월화 드라마 1위에 빛나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그리고 신하균과 유준상이란 걸출한 배우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분위기,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부진한 <피리부는 사나이>도 모두 우리 시대의 '철거'를 다룬다. 물론 이제는 클리셰처럼 '소재주의'의 경계에서 간당간당해 보이기도 하고, 통쾌한 소동극이 되기도 하고, 주객체가 뒤바뀐 듯 고민이 깊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선거판에서 활개를 치는 발전과 개발의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철거를 동시대의 드라마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4. 13. 16:56

언제인가부터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ppl을 논하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높아진 제작비와 군소 제작사, 그리고 열악한 제작 환경은 주어진 제작비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이른바 협찬이란 이름의 ppl(product placement)은 드라마 제작비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고, ppl을 적절히 쓰는 것이 작가의 능력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시청자들조차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홍삼 엑기스를 빨아대거나, 가방을 주렁주렁 매다는 게 다 ppl때문이라는 건 애교처럼 넘어가는 정도에 이르른 것이다. 




ppl 잘 쓰기로 정평이 난 김은숙 작가 
김은숙 작가는 ppl을 잘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언제나 쓰는 작품마다,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은 물론, 이른바 '대박' 작품을 늘 생산하고 있는 김 작가에게 자사 작품을 홍보하고 싶은 기업들이 줄을 잇는 것는 따논 당상이요, 스타 작가답게 김은숙 작가는 절묘하게 ppl을 드라마 안에 야무지게 버무려 넣는 것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은숙 작가의 ppl은 이런 식이다. <시그릿 가든>에서 김주원(현빈 분)은 하고많은 회사 중 모 백화점 사장이고, 김주원과 길라임(하지원 분)은 하고많은 장소 중에 제주도의 모 고급 펜션에서 영혼이 바뀐다. 심지어 보건복지부조차 금연 캠페인을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조연들을 통해 할 정도다.  <상속자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에스더 여사가 운영하는 회사가 원래 시놉과 다르게 의류 회사로 바뀌었고, 제국고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으로 저마다 당시 붐이 일기 시작한 '골프 웨어'를 빼어입고 골프를 친다.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 재회가 이루어지는 곳은 여주인공이 일하는 프랜차이즈 까페 등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입고, 먹고, 움직이는 동선의 배경 모두가 ppl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의 2016년 작 <태양의 후예>는 주인공이 군인이다. 심지어 군인인 남자 주인공 유시진(송중기 분)과 의사인 여자 주인공(강모연 분)이 사랑을 이뤄가는 곳은 지진과 분쟁의 중심인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이다. 하지만 분쟁지역이든, 작전 지역이든 ppl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역만리 서대영에게 온 소포에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하도 봐서 정이 들 정도인 홍삼이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역시나 준전시 상황의 제한 때문이었을까? 이전 김은숙 작가 드라마에 비해서는 <태양의 후예> ppl은 애교 수준이었다. 

13회 그동안 못다한 ppl 한풀이라도 하듯
하지만 그 애교는 우르크라는 지정학적 한계 때문이었다는 것을 두 주인공이 고국으로 돌아온 13회 드라마는 증명한다. 귀국 후 모처럼 편안하게 연인의 시간을 보내는 두 주인공, 하지만 드라마는 이게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ppl이 만연한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강모연, 서대영-윤명주 못지 않게 언제 이루어질까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송상현(이승준 분)-하자애(서정연 분) 커플, 이들의 옥상 데이트 아닌 데이트에서 실론에서 왔다는 차가 함께 한다. 어디 이들뿐인가, 13회의 장면, 장면 함께 하는 것들은 즐비하다. 휴가를 나갈 군인들은 피부를 관리해야 한다며 다같이 팩을 두르고, 모처럼 휴가 나온 유시진은 강모연을 만나러 가는 대신 소줏집을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류한 송상현은 좋은 안주 다 놔두고 아몬드를 먹는다. 술에 취한 강모연을 데리고 집으로 온 유시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강모연의 어머니와, 그녀가 앉아있는 식탁의 중탕기이다. 무박 삼일을 작정으로 술을 마신 유시진과 역시나 주사를 할 정도로 취했던 강모연이 다음 날 해장으로 먹은 것은 종종 드라마를 통해 등장하는 햄버거요, 유시진-강모연 커플이 서대영-윤명주 커플과 만나 서로 닭살돋는 애정을 과시하는 곳은 가게 상호가 유난히 도드라지는 커피숍이다. 



그나마 이젠 커피숍이나 햄버거집은 ppl의 여사가 되었다는 듯, 이어진 서대영-윤명주의 키스씬에서 ppl은 화룡점정을 찍는다. 최근 '자동 주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모 자동차를 타고 윤명주를 집으로 바래다 주는 서대영, 신중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격과 다르게, 윤명주에게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을 밝히기 위해 차를 자동 주행으로 모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그녀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동 주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씬의 신천지를 연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라면 길 한 가운데를 달리던 차가 급격하게 핸들을 꺽어 급정거를 하고 이어졌던 키스씬을, <태양의 후예> 속 신차는 자동 주행으로 놓은 채 행한다. 

당혹스럽다. 과연 이 장면을 신개념의 키스씬으로 봐야 하는 건지, 제ooo의 놀라운 성능으로 감탄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를 위한 자동 주행을 무개념으로 봐야 하는 건지, 다중을 상대로 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심지어 해외에서도 다시 한번 한류 붐을 이루었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사를 내는 이 드라마의 이 장면을 그저 ppl의 신세계로 넘겨야 하는건지. 공중도덕의 무개념으로 봐야 하는건지, 과연 조만간 길거리에서 <태양의 후예>의 이 장면을 뽄따서 자동 주행으로 놓고 키스를 하는 커플이 있다면 이들은 교통 법규 상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머리가 복잡해 지는 순간이다. 

그까이꺼 뭐 머리가 복잡할 게 뭐 있냐고, 그저 드라마로 보면 되는거라고? 허긴 조만간 주인공이 총을 맞고 쓰러지기 5분전, 국빈을 위한 경호에 나선 특전대 상사가 여친과 헤어졌다며 초코바 두 개를 연달아 먹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거리의 자동 주행쯤이야 뭐 그리 대수겠는가 싶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목우촌'의 깃발이 휘날리는 ppl 세상에서 안되는 게 뭐 있겠는가. 그런데 13회는 드라마를 본게 아니라 마치 영화 상영 전 주구장창 틀어주는 광고 방송을 본 기분이 드는 건 어째야 하나.  
by meditator 2016. 4. 7. 05:43

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개구리들을 넣어 놓은 뒤 불을 땐다. 개구리들은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 오를까? 답은 개구리들은,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의 열기에 뜨거운 줄로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이다. 

이 우화적 문구는 <피리부는 사나이>10회에서 등장했다. 극중 윤희성(유준상 분)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들을 죽이고야 말 끓는 가마솥, 드라마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 끓는 가마솥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이제 4회를 맞이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익숙한 사회적 현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갈등의 진원지는 k그룹의 철거 피해 현장이다.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현장에 경찰들이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길이 번져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k그룹의 신입 사원이었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강제 진압의 불가피함을 설파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강제 진압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진압 작전에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과 양청장(김종수 분)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명하(조윤희 분) 등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도,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로 수배를 받게 된 정수경(이신성 분)도 모두 그 강제 진압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극중 주요 인물들을 얽히고 설키게 만든 뉴타운 재개발 철거 현장은 시청자의 뇌리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를 남긴 용산 철거 현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인명 피해까지 생긴 용산 참사를 기본 얼개로 하여, 매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10회 오랫동안 별러왔던 용역 우두머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정수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은 그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끓는 가마솥에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돕자며 정수경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매개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곳으로 몸을 던지게 유도한다. 

9,10회에 등장한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인질 사건이다. 드러난 사건은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을 볼모로 삼은 공장 점거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는 수시로 때리고 모욕을 주는 인간 이하의 대우는 물론, 결국 임금까지 체불한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와 그 하수인들이 있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부터,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피리부는 사나이> 속 사건들은 이미 우리가 시사 다큐를 통해 익숙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현실이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인들의 몰락
자신이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대화 그룹 회장 아들이 벌인 사건인 줄 알면서도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덮었던 사건으로 인해 보육원 시절 동생처럼 강일구(최재환 분)가 죽고, 노숙자 변지식(김기천 분)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로 살아가던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제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그가 변호해야 하는 변기식 씨는 설렁탕 집을 내고 가족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장사가 잘 되자 집주인이 그들을 내모는 바람에 결국 가족과 헤어진 채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다. 그의 아들까지 증인으로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1심에서 실패하고, 조들호는 방향을 바꿔 목격자인 치매 할머니를 등장시켜 항소심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동내 변호사 조들호'란 간판까지 걸고 본격적인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동네 변호사가 된 그의 첫 사건은 모처럼 함께 회식을 하러간 감자탕집에서 시작된다. 

줄 서서 먹었다는 단골집이란 말이 무색하게 파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감자탕집, 그곳에서 조들호 일행이 식사를 하려하자 집주인이란 사람이 빈 소주 박스를 말로 차며 시끄럽게 등장한다. 침을 찍찍 뱉으며 식탁에 발을 올리는 등 불손한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이곳을 재개발하려 하니 얼른 집을 비우라고 독촉을 한다. 분개하는 감자탕집 아들에게 '임대자 보호법'까지 운운하며 법대로 하잔다. 이어 철거 용역까지 등장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들호는 설렁탕집에 이어, 감자탕집 주인을 위한 본격 동네 변호사가 된다. 

4회 조들호 일행에게 밀린 가게 주인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조들호가 해결하지 못한 뺑소니 사고의 범인 정회장의 아들이 있는 룸싸롱이었다. 그는 그 일대의 가게를 모조리 사들여 또 하나의 '뉴타운'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노숙자가 된 변씨도, 이제 조들호의 단골 감자탕집도, 그저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서 살려고 하는데, 좀 살만하게 놔두지를 않는 또 하나의 끓는 가마솥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경찰 위기 협상팀과 변호사라는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목이 졸려가는 서민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터전은 빼앗기고, 그래서 가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범죄자로 몰리거나,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대한민국 을들의 강팍한 현실을 드라마는 극의 주요한 갈등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한때 자신의 영달에 눈이 멀어, 애꿏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던 '앞잪이' 노릇을 하던 주인공들의 '개과천선'이 더해져 정의의 싹이 핀다. 끓는 가마솥의 불길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성과 위로를 주기 위해 드라마가 솔선수범한다. 

by meditator 2016. 4. 6. 05:32

3월 28일 첫 방영된 sbs의 월화 드라마 <대박>은 살아서는 안될 왕의 아들과 왕이 될 수 없는 왕의 아들, 두 남자의 운명적 삶을 '한 판 승부'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 낸 조선판 타짜이다. 하지만 아직 그 비극적 운명을 타고 난 두 왕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이 드라마를 이끄는 것은 숙종과 그에 대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인좌라는 사내의 역심이다. 이 두 사내의 연심과 역심은 투전을 비롯한 각종 노름의 세계 속에서 피고진다. 




조선조의 사극에서 숙종과 숙빈만큼 빈번하게 다루어진 인물들이 있을까? 잊을만 하면 한번씩 다시 만들어 지는 장희빈을 통해 늘 그녀를 사랑하고, 내치는 변심의 아이콘으로 숙종 역시 빈번하게 역사 속에서 불려 나왔다. 숙빈 최씨 역시 마찬가지다. 장희빈이란 비극의 조역으로,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인물로, 그리고 2010년 만들어진 <동이>에서는 천민 출신 무수리에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입지전적 인물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사극의 중심으로 한발씩 다가섰다. 그렇게 희대의 악녀, 혹은 운명적 삶을 살아낸 여성, 혹은 입지전적 인물로 장희빈과 숙빈 최씨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는 동안, 그 상대방으로 숙종은 사랑꾼이었다가, 당파와 궁중 어른들에 휘돌리는 우유부단한 지아비였다가, 지어미를 당파 싸움의 희생양으로 삼은 야비한 정치꾼이 되는 등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인물로 그려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은 사약으로 인생을 마무리지은 장희빈이나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 영조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숙종은 상대적으로 그 캐릭터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해석된 숙종과 최숙빈 
그런데 그렇게 늘 조선의 격동적 인물 장희빈과 최숙빈의 뒤켠에서 조역으로 자리 매김했던 숙종이란 인물이 드디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나타났다. 바로 최민수가 연기하는 <대박>의 숙종이다. 

극중 숙종은 그 시대를 다루었던 사극에서 처럼 무수리 출신 최 숙빈(윤진서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 임금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대박>이 이전 사극과 다른 것은 궁중 비사로 남겨진 최 숙빈의 기혼설을 스토리로 끌어들이고 남의 여자인 그녀를 취하기 위해 <대박>의 아이템인 '한 판 승부'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최 숙빈이 기혼녀였다는 것은 야사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백만금(이문식 분)과 도박판을 벌인다는 것은 제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상당히 무리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 설정을 설득해 낸 것은 뜻밖에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연기력을 돋보이게 만든 연출력이다. 



왕가의 피가 흐르지만 왕이 될 수 없었던 사내, 그래서 부조리한 세상을 뒤짚어 엎겠다는 역심을 가진 이인좌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최숙빈을 선택한다. 그는 그 어떤 권력도 가진 바 없지만, 대신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으로 왕가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좌우하며 자신의 실권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왕을 백만금과의 도박 판으로 끌어들인다. 역시나 조선판 타짜다운 이 설정을 설명해 내는 것은 뱀처럼 나긋나긋한 어조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오른팔이었던 김이수(송종호 분)를 거두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전광렬의 연기다. 

모든 판을 쥐고 흔드는 배후의 야심가, 하지만 그가 두려워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하였으니 그는 바로 숙종이다. 그리고 이인좌가 두렵다 할 만큼, <대박>이 그려낸 숙종은 지금까지 우리가 조선조 사극에서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의 군주이다. 

최숙빈에게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녀에게 지아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숙종은 백만금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물론 승부는 조작된 것이다. 조선판 타짜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왕이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남편과 승부를 벌인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왕은 굳이 그렇게 애써 도박판을 조작할 필요가 없는 절대 군주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도모해 여인을 빼앗는 대신, 백만금을 궁지로 몰고가 결국은 판돈을 아내를 걸게 만들어 최숙빈이 스스로 왕의 곁으로 오게 만드는 묘수를 쓰는 지혜(?)를 보인다. 

물론 최숙빈이 숙종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전반의 과정은 이른바 이인좌의 설계이다. 하지만, 그 이인좌의 손아귀에서 놀아남에도 불구하고 백만금과의 한판 승부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3회, 이인좌가 유일하게 두려운 존재가 숙종이라고 하는 그 장면 뒤로, 드라마는 설계자 이인좌의 판 위에서 기꺼이 놀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이인좌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두 알고 있었던 노회한 군주 숙종을 드러낸다. 



새로운 숙종에 혼을 불어넣은 최민수의 연기 
3회의 사건은 극적이다. 숙빈 최씨는 이인좌와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 백만금의 도움으로 아이도 되찾고 자신의 목숨도 보전한다. 하지만 생환의 기쁨도 잠시 대궐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중전 장씨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전의 도발, 결국 그 도발의 끝은 중전 장씨는 물론 그녀의 일가와 남인들이 처분되는 갑술환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중심에 최숙빈의 모든 허물을 덮고, 정실 아내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치는 군주 숙종이 있다. 

자칫 사랑에 빠져 몰지각해 보일 수도 있는 숙종의 캐릭터를 최민수란 배우의 무게감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뽑아낸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가 궁궐에서 밀려날까 배후의 이인좌를 묵인해주고, 심지어 그녀가 낳은 아이의 생존마저 인정해 주는 넉넉한 품을 가졌는가 싶은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여, 중신들의 거듭된 항소가 있었다 하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중전을 하루 아침에 내쳐 버리는 최민수의 숙종은, 보기에 따라 이중인격자이거나, 싸이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배우의 연기로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조선판 타짜를 내세운 퓨전 사극에서 이인좌는 매양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운운하지만, 그 실감은 깊지 않고, 정작 이야기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궁중 사극처럼 결국 숙빈 최씨를 둘러싼 음모와 갈등으로 진행된다. 장희빈은 하루 아침에 중전 자리에서 내쳐지지만 경술환국을 둘러싼 설득력은 부족하다. 극 속의 모든 갈등과 해소는 타짜답게 투전판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의 깊이있는 연기력과 그걸 중심에 둔 연출은 시청자들을 그 퓨전 사극의 맛에 끌어들인다. 
by meditator 2016. 4. 5. 15:11

부모,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절대 언어'이다.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그 시절부터, 그리고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까지, '가족'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본 단위가 된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자식의 삶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하여, 여전히  tv 속 여러 프로그램들은 '가족애'와 '효'와 '내리 사랑'의 지극함을 찬양한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의 존재로 '성공'을 향해 치달려온 박태석(이성민 분)의 알츠하이머 투병기를 다루고 있는 <기억>은 그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아버지를 복기한다. 




박태석, 또 다시 아들을 잃을 위기에 처하다
<기억> 속 박태석은 이미 아버지의 자격을 한번 잃은 아버지이다. 전처와의 결혼 생활 동안 유치원생이었던 여섯 살 아들 동우를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 헤맸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그는 마치 그 아들의 죽음을 잊기라도 한듯이 전처와의 이혼 이후 동우 아버지로 살던 그 시절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태선 로펌 최고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박태석이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고, 기억 속에 묻었던 동우가 자꾸 그에게 되살아 남과 함께, 종종 그가 술이 취하면 동우라 부르는 지금의 아들 정우에게 위기가 생긴다. 말수를 잃고 편의점에서 술을 훔기기도 하던 정우는 친구의 시계를 훔쳤다기도 하고, 심지어 친구의 머리를 돌로 치는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우리 정우'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성공 가도를 달리느라 가족은 뒷전으로 밀쳐둔 채 아이들의 일을 아내에게 맡겨 둔 박태석은 도둑을 누명이라 호소하는 정우의 애원에도 '변호사'로서의 객관성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던 아들 정우가 사라졌다. 

정우를 찾아헤매던 박태석은 다시 한번 자신이 큰 아들 동우때처럼 또 한번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는 점을 깨닫는다. 뺑소니 사고로 순식간에 놓쳐버린 아이, 그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어찌할 수 없었던 사고라는 박태석의 말을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은 거부한다. 아니라고 동우는 우리가 죽였다고. 아빠인 당신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엄마인 자신이 사법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 나은선의 자책어린 목소리는 이제 박태석의 귓전에 울리며 박태석은 자신이 놓쳤을 지도 모를 정우의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가 달려간 곳엔, 자신의 진심을 그 누구도 몰라줘서 홀로 빌딩 옥상에 올랐던 정우의 외면당한 진실이 있다. 



이찬무, 아들을 구하려 아들의 목을 조이다
그렇게 잃어버릴뻔한 아들을 가까스로 찾은 박태석의 이야기 한편으로 또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로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인 범인인 이승호(이회현 분)의 아버지 이찬무(전노민 분)가 바로 또 한 사람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이찬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수치를 느낄 사이도 없이'.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동우의 아버지였던 박태석이 그를 형으로 부르며 태선 로펌에 합류한 것도 동우 사건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마치 볼모이자 보상인듯. 

이제 15년전 동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자 이찬무는 경솔하게 그 자리에 나타난 아들 승호를 닦아세우지만 발빠르게 cctv를 삭제하는 등 범죄를 숨기기에 급급한다. 그런 이찬무의 모습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국회 인사 청문회를 비롯한 각종 가족 비리 사건에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 지도층의 상징적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 이찬무가 아들 승호를 닥달하고, 그를 감싸려 들면 들수록 아들 승호는 흐트러진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처음 자신이 사고를 쳤던 그때 진실을 알렸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과거에 매여 살지 말라고, 잊으라 하지만, 그의 아들 승호는 말한다. 자신에게는 오직 그날 그 사건만이 있을 뿐이라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사건은, 아버지가 부정으로 덮은 사건은 아들 승호에게서 미래를 빼앗아 갔다. 

박태석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아다면?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동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박태석도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도 이제 막 세상에 박태석이란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기 시작한 그도, 이찬무처럼 아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아들의 사건을 덮으려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려 불가피하게 과거를 돌아보게 된 그는 아들의 진심을 헤아려 아들을 구한다. 



6회까지 전개 된 <기억> 속 두 아버지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사회 아버지들은, 어른들은 드라마 속 이찬무처럼 하는 걸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어긋난 방법이라 한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 가는 길에 걸릴돌을 제거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 우리 현대사 속 가족내 어른들의 몫이었다. 그건, 전쟁과 산업화의 속도전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우리네의 생존 본능이기도 했고. 

하지만 드라마 <기억>은 박태석의 알츠하이머를 통해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들의 발을 잡아챈다. 당신들이 본능적으로 살아온 그 부모 노릇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냐고 반문한다. 아들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았냐고 묻는다.두 아버지 박태석과 이찬무의 얼굴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우리 함께 이 시대의 아버지, '어른'들의 자리를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알츠하이머란 가장의 병을 통해 최루성 가족사를 쓰는 대신, 회한의 복기를 선택한다. 

by meditator 2016. 4. 3. 15:02

배우들 중에는 그가 출연했던 작품보다 배우 그 자신이 더 앞서 존재하는 몇몇의 사람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박신양이 아닐까? 그 박신양이 2011년 <싸인>이후 오랜 칩거 끝에 kbs2의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로 돌아왔다. 첫 회를 본 소감? 역시 박신양이다. 몇 년의 칩거가 무색하게 <동네 변호사 조들호> 첫 회에서 박신양은 펄펄 날았다. 드라마는 미지수이지만, 그저 박신양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 여가 후딱 지나가 버린다. 



모처럼 박신양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첫 회 
오랜 침묵을 깨고 박신양이 tv에 얼굴을 비친 것은 뜻밖에도 드라마가 아니라 tvn의 <배우 학교>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중후한 이원종에서 부터, 앳된 아이돌 남태현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등장했다. 첫 회 '예능'이란 프로그램의 목적에 걸맞게 자기 소개를 눙치던 유병재에게 박신양은 정색을 한다. 그런가 하면 능숙하게 출연의 변을 늘어놓은 이원종에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직언한다. 예능 한번 해보겠다고 출연을 결심했던 학생들을 첫 회부터 오금이 저리게 만든 건, 바로 선생 박신양의 '진정성'이었다. 제 아무리 '예능'의 탈을 써도, 결국 '연기'는 진정성이 없다면 거짓이라는 박신양의 신념이 졸지에 프로그램을 다큐로 만든다. 결국 예능 <배우 학교>는 '예능'과 '다큐'의 경계선에서 선 진정성의 딜레마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예능이 되건, 다큐가 되건, 그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 박신양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의 실현은 바로 오랜만에 그가 출연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첫 회를 통해 입증된다. 선배 연기자 이원종조차도 그 앞에서 쫄게 만들었던 박신양의 진정어린 연기는, 드라마 이전의 박신양을 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을 채운다. 법정씬이라는 묵직한 장면을 이제는 클리셰가 된 휠체어에 앉은 회장을 전동 벌레 한 마리로 펄쩍 뒤게 만들며 그의 거짓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 역으로 회장의 뇌물 수수로 검사에서 노숙자로 급전직하고,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서기 까지의 드라마틱한,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만화 원작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내용을 박신양의 연기로 설득해 간다. 회장 앞에서 '바다의 왕자'를 부르며 재롱을 떠는 검사도, 그리고 그의 거짓을 벌레 장난감 하나로 드러내는 의로운  검사도, 그리고 한 끼의 밥을 위해 줄을 서는 노숙인도, 그리고 다시 법정에 나타난 변호사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지만, 박신양의 연기로 그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완성되어 조들호가 된다.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한 정의로운 변호사라 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2014년작 <개과천선>이다. 그리고 개과천선에서 최고 로펌의 가장 속물적인 변호사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로 변신하여 역시나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하는 김석주를 연기한 김명민은 박신양처럼,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이다. <개과천선>에서 김명민은 가장 비도덕적인 로펌 최고의 변호사에서 부터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어리숙한 김석주까지 종횡무진 김명민이란 진기명기를 펼쳤다. 첫 회부터 종횡무진 활약을 보인 박신양의 장르는 <개과천선>의 김명민을 떠올린다. 두 배우 모두 가장 자신을 돋보이는 장르로 '법정'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박신양만이 아닌 좋은 작품으로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 종영을 하다시피한 <개과천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갑갑한 사회 상황에서, 한 줄기 빛처럼 갑갑한 세상을 속시원하게 뚫어 주었다면, 역시나 비슷한 설정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역시 그것이 가능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신양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캐릭터 등 원작인 만화와 많이 달라진 내용, 심지어 원작에는 없었던 이은조(강소라 분)의 등장이 과연 원작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 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첫 회 보육원 동생의 죽음으로 노숙자였던 조들호가 다시 변호사가 되는 계기는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작위적이란 느낌이 강해 작품성에 있어 의문 부호가 달린다. 

특히나 <개과천선> 이래, 최근 <리멤버>까지 정재계 커넥션을 상대로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사이다'성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그런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어느 정도 선보일지가 또한 관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 첫 회부터 기구한 인생 유전을 보인 조들호에게서 작가 이향희 작가의 전작 <쩐의 전쟁>의 기시감도 느껴지니, 이 점 역시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발목을 잡는 숨겨진 복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첫 회에선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연기로 돌아온 박신양을 보는 맛에 즐거웠다. 부디 이 즐거움이 작품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3. 29. 06:02
대한민국에서 역시나 시즌제의 길은 험란한다. 시즌2를 끝으로 애청자들의 시즌3에 대한 열망을 접어 둔 채 <뱀파이어 검사>는 <뱀파이어 탐정>에게 그 바톤을 이어준다. <뱀파이어 검사>를 이끌었던 이승훈 피디는 2년여의 준비 끝에 3월 27일 또 하나의 뱀파이어 물 <뱀파이어 탐정>으로 돌아왔다. 

공중파의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했던 <블러드(2015)>나 <오렌지 마말레이드(2015)>가 주인공들의 어설픈 연기와, 그 보다 더 공감하기 힘들었던 '뱀파이어'라는 이국적 소재를 융화치 못한 채 졸작으로 마무리 되었고,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화 했던 <밤을 걷는 선비(2015)> 역시 사극과 흡혈귀라는 이질적 융합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저조한 시청률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2015년이 '뱀파이어'의 해라도 되는 듯이 공중파의 각 방송사들은 신선한 시도로서 '뱀파이어물'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공중파에서는 무리였는지, 아니면 의도에 걸맞는 내용성을 답보하지 못한 어설픈 시도였는지, 그저 '붐'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기사 관련 사진



장르물로서의 뱀파이어 물의 전통
그에 반해 장르물을 꾸준히 제작해 온 ocn의 경우 이미 2011년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매력적인 뱀파이어 물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대부분 '뱀파이어'라는 이국적 캐릭터를 설득해 내지 못한 공중파 드라마와 달리, <뱀파이어 검사>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뱀파이어'가 된 검사 민태연(연정훈 분)을 통해 그 개연성의 늪을 피해간다. 거기에, 어설픈 사랑 이야기나, 뱀파이어 종족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타인의 피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간다는 '범죄 수사물'로써 그 장르물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이미 '미드' 등을 통해 뱀파이어 장르물에 익숙한 애청자층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시즌 1에 이어, 시즌2의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 민태연 본인의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에 천착해 가면서, 범죄 수사물로써의 통쾌함 대신, 얽히고 섥힌 악연의 고리에 드라마 자체가 빠져들고 말았다. 시즌이 거듭하면서, 이야기의 밀도가 더해져 가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자충수가 되어, <뱀파이어 검사>가 가졌던 수사물로서의 장점을 많이 잠식해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런 시즌2의 지지부진했던 비극성을 탈피하기 위해서였을까, <뱀파이어 검사> 제작진은 시즌3 대신, <뱀파이어 탐정>이라는 새로운 뱀파이어 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30대의 민태연 검사보다 젊은 20대의 윤산(이준 분)을 내세워 드라마에 젊은 피를 수혈한다. 또한 '검사'라는 공적 신분에서 보다 자유로운 타칭 흥신소, 자칭 탐정 사무소를 배경으로, '공권력과 법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변이다. 

기사 관련 사진



다르고도 같은 <뱀파이어 탐정>과 <뱀파이어 검사>
하지만 검사에서 탐정으로 돌아온 <뱀파이어 탐정>에서는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1회 대번에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자 윤산, 하지만 그는 역시나 민태연처럼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뱀파이어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뱀파이어 검사>의 형사 황순범(이원종 분)처럼 약방의 감초같은 용구형(오정세 분)가 파트너로서 함께 한다. 여성 파트너도 빠뜨릴 수 없다. 미모가 뛰어나지만 그 어떤 남자 저리가라할 배포를 가진 검사 유정인(이영아 분)처럼, 검사는 아니지만 검사 못지 않은 야생의 능력을 가진 한겨울(이세영 분)이 합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인의 총에 맞아 과도한 운동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된 윤산, 그리고 눈 앞에서 애인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의 트라우마는, 이제 1회 그녀의 목걸이를 한 의문의 여성으로 인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고, 그의 파트너가 되는 한겨울 역시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오빠의 죽음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동생의 실종과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무리를 쫓던 민태연의 개인사 못지 않은 구구절절한 개인사가, '탐정물'로서의 <뱀파이어 탐정>의 또 다른 복선이 된다. 법과 공권력에서 자유로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물이면서, 동시에 <뱀파이어 검사>처럼 뱀파이어의 검은 조직을 상대로 한 끈질긴 싸움이 역시나 이번에도 <뱀파이어 탐정>의 굵직한 줄기가 될 듯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뱀파이어 탐정>은 <뱀파이어 검사>의 다른 버전이라 할만하다. 시즌을 예견하기엔 섣부르지만, 장르물의 원조로서, ocn의 뱀파이어 물이 순항하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3. 28. 05:48

<시그널>의 후속으로 tvn의 금토일을 책임지는 <기억>의 반향은 미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로 먹는 것에서부터 화끈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다짜고짜 잘 나가는 변호사 남자 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소재는 그다지 동할만한 소재가 아니다. 거기다, 마치 시청자들에게 리모컨을 돌리라고 던져주기라도 하는 듯한 개개인의 표정을 들려다보는 듯한 느린 화면과 구성은 속도감있는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참을 인자를 요한다. 박태석을 연기하는 이성민을 비롯한 배우진들의 연기는 매력적이지만, 그 매력을 견디기에 드라마가 짊어지고 가는 무게감이 녹록치 않다. 




질주하는 거리 위의 박태석
<기억>을 처음부터 본 시청자 중 눈 밝은 누군가 기억을 할른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은 '거리'이다.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서있는 도시의 광활한 거리, 그 곳에 차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여느 드라마라면 그  도로를 채운 차들의 속도감을 잡았을 카메라는 <기억>에서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분명 차들은 거리를 바삐 움직일 터, 하지만 그 움직임과 높은 빌딩은 그 자체로 이 도시를 그린 정물화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차들 속에 우리의 주인공 '박태석' 변호사가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그는 번번히 거리를 질주한다. 때론 바삐, 때론 기쁨에 들떠, 때론 분노하며, 그의 희노애락은 그 '거리의 도로'위에서 변주된다. 

즉, <기억>에서 이렇게 종종 잡히곤 하는 도시의 거리는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저마다 바쁘게 차를 타고 움직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대한민국을 드러내는 정물화와 같은 정경. 그 속에 번번히 차를 타고 움직이는 주인공 박태석은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저 주인공 박태석이 매양 거리 위를 질주하는 바쁜 도시인이라서만이 아니다. 그의 면면이 수상하다. 그는 속물 변호사이다. 재벌 기업의 하수인이 되어 그 사위가 저지른 살인죄에 해당하는 의료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그 사건을 폭록한 교수의 지병과 유학 간 딸의 숨겨진 약물 복용 사실까지 들추어 내며 '협박'하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 도덕적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반기를 든 젊은 변호사가 그에게 양심을 운운하지만, 그런 그의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그 댓가로 받은 차를 타고 큰 소리로 승리를 자축하는 인물이다. 어느덧 성공을 위해 살다보니, 누군가의 목숨값에 무뎌져버린 박태석의 일상은 그걸 보는 갑남을녀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그를 바라보는 우리도, 부모의 원을 이루기 위해, 성공을 하기 위해, 어느덧 그처럼 무뎌져버린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이 짓밟은 누군가의 진실보다, 지금 자기 앞에 던져진 새 차 앞에 환호작약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으니. 

그런데, 그에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그림자는 알츠하이머란 그의 병과 함께 자꾸 그에게 드리워진다. 바로 그가 잊고 살고 싶은 과거, 술만 먹으면 지금 자신의 아들인 정우를 동우라 부르며, 이젠 자신의 옛집을 찾아가는, 그 회귀의 기억말이다. 그의 외아들이었던 동우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지금껏 그 범인을 잡지 못했다.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의 사고로 그와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태선 로펌과 손을 잡은 그는 재혼까지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술과 병은 자꾸 그를 과거로 회귀시킨다. 



박태석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자신의 아이를 잃은 아버지, 하지만 그 과거를 잊고 성공을 위해 여전히 질주하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란 병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평범한 한 가장의 비극사 같지만, 어쩐지 박태석이란 인물이 상징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세월호 등 우리의 숱한 아이들을 사고로 잃고도, 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채 여전히 성공과 발전을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는 '성공'과 발전'을 욕구하지만 결국 주저앉아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또한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박태석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는 그가 하늘에 대고 '나 한테 왜 이래요?'라고 원망을 쏟아내지만, 결국 '트라우마'를 삼키고 달려온 '성공'과 발전'의 '급브레이크'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시그널>에 이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 보는, 또 하나의 '반추'작이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성공을 쫓으며 발전을 바라며 과거를 덮으며 살아왔던 우리를 과거에서 온 무전 대신. '알츠하이머'가 잡는다. 당신이 지나쳐 온 것을, 당신이 짓밟아 온 것을 다시 되밟아가라고. 
by meditator 2016. 3. 27.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