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물론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1인 시위'의 경우처럼, 한 개인이 주체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시위'는 '대의 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현대 정치에서, '대의'로 표현되지 않은 국민들의 이익을 현장에서 표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19를 비롯하여, 5.18, 6월 항쟁까지  민족사의 구비구비마다, 역사적 전환점이 된 그 고비에서 대중들의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왔다. 가깝게는 광우병 촛불 시위를 통해, 다수의 학자들이 '네티즌 직접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을 예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장기간 펼쳐진 '미국 월가의 시위' 역시 곪아터진 금융 자본주의의 현실을 고발했다. 이렇듯, 세계 역사에서, 혹은 우리의 역사에서 '시위'는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문화, 혹은 현실 속 '시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니 여전히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치와 사회가 보수적, 혹은 개인주의화 되어갈 수록, 공공의 목적을 위해 분출하는 '시위'에 대해 '불편한 심리적 기제'를 조장한다.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정의로운 주인공의 도구가 된 제 정신이 아닌 1인 시위자
7월 30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끝에서 두 번째 사랑>,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고상식에 대해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는 안전 무사고 주의의 5급 공무원이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책임감이 투철한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사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디에서나 발 벗고 나서는 믿음직한 인물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고상식(지진희 분)'이란 인물의 믿음직한 면모를, 아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를 뛰어넘는 그의 헌신성을 설득하기 위해 뜬금없이 '개념없는 아니 거의 제 정신이라 보기 힘든 1인 시위자'를 등장시킨다. 구청에서 한참 업무와 관련하여 후배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고상식, 그때 주변이 웅성거리며 한 명의 시위자가 등장한다. 얼굴을 우스꽝스런 가면으로 가리고, 온 몸을 피켓팅한 그는 양 손에 불을 붙인 화염병을 들고 등장하여 다짜고짜 시장을 나오라 외치며 구청 복도를 질주한다. 시청에는 지키고 있던 사람들도 없었던 양,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고상식의 활약상을 위해 모두들 앞다투어 소리를 지르며 피해가고, 시위자는 순조롭게 계단을 올라 고상식이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복도에 이른다. 화염병을 든 시위자를 발견한 고상식, 당연히 그는 말로 그와 대화를 나누려 한다. 하지만, 그런 고상식에게 시위자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고, 고상식은 그런 폭력에도 주저치 않고 온 몸으로 화염병을 든 그를 저지라려 하고, 그러다 화염병이 떨어져 불이 붙고, 그 과정에서 고상식은 어떻게든 그 피해를 막아보려다 다치게 된다. 이 장면이 1회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고, 다음 장면 고상식은 응급실에서 여자 주인공 강민주(김희애 분)와 나란히 눕는 것으로 이들의 남다른 인연이 예고된다. 

왜 하고 많은 드라마를 놔두고, 그저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시위자'를 건드냐고?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왜 하고 많은 설정을 놔두고, 남자 주인공의 정의로움을 들먹이기 위해,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 응급실에서 여주인공과의 인연을 설정하기 위해 애꿏은 1인 시위자를 도구로 사용해야 했냐고? 

드라마는 마치 1인 시위자에 대한 편견을 피해가기라도 하는 듯, 시위의 내용을 '농작물 피해주는 캣할머니'로 희화화시켰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동물 보호에 대한 혐오'를 앞세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위자가 뒤집어 쓴 피켓의 내용이 아니다. 과연,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 그 문구가 먼저 들어왔을까? 오히려 그 보다는, 그가 1인 시위자라는 점, 화염병을 들었다는 점, 거기에 '대화'는 통하지 않고 무작적 자기 목적을 위해 '폭력'도 불사한다는 점이 우선 시선을 끌지 않았을까? 그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항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든 화염병을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상해를 입히는 도구로 소모한다.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시위'자는 자신의 목소리만 높일 뿐, 타인과의 대화에는 소통 불능인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그려낸다. 바로 이런 무의식적으로 다루어 지고 있는 1인 시위'자에 대한 편견이, 주말 10시대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의 정의로움을 설득해 내기 위해 '소모적', '편의적'으로 다루어 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우리 사회 시위 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드라마 속 '시위'는 대부분 그 집단 행동이 긍정적이거나, 드라마의 전개 상 개연성을 가지고 등장하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인 비일비재하다. 

즉자적이거나, 무기력한 반응으로서의 '시위'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의 아들 유괴 사건을 빌미로 방영되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을 그리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 <원티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범인의 요구에 맞춰 리얼리티 방송을 마련한 정혜인을 비롯한 원티드 팀, 그들에 반대하여 방송을 하게될 ucn 방송사 앞에는 '시위'대들이 상주한다. 현실적으로 범인의 요구에 맞춰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에 반대하는 '시위'는 있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시위대'는 어쩐지 그런 시의적절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의식적 목소리라기 보다는, '대중의 감정적이고 즉자적인 반응'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하동민 원장이 출연하는 회차에서, 시위대는 그의 사주를 받은 그로부터 호혜적 시술을 받은 환자의 엄마가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등장하여, '시위'의 목적성을 훼손한다. 물론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이른바 '관제 시위' 등의 현상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런 부정적인 일면을 지적하고자 하기엔, 그에 반한 '시위'의 긍정성에 대한 주목이 드라마의 전개 상 취약했다. 그저 <원티드> 속 '시위대'는 배려심없는 대중의 즉자적 반응이거나, 조작된 반응으로 다루어 지며, 대중에 대한 '냉소'를 깊게 한다. 

그런가 하면 <38사기동대>에서의 시위는 무기력하다. 극중 최철우 회장은 '마석동'을 재개발 하려고 하고, 이에 마석동 주민들은 철거 반대 시위를 한다. 그 중에는 백성일(마동석 분)과 양정도(서인국 분)가 즐겨찾는 국밥집 주인 할아버지도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마석동을 찾은 천성일 시장(안내상 분), 하지만 최철우 회장의 계략에 따라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천성일 시장에게 달걀을 투척하고, 그 과정에서 국밥집 할아버지는 '폭력 시위' 주동자로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38사기동대>는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시위 현장에서의 '불순 과격 시위' 조장자에 대한 이면을 까발리며, 철거 시위의 속내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잃은 마석동 주민들이 하는 일은 없다. 시위를 하지만, 국밥집 할아버지처럼 억울한 법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현대판 홍길동을 그려내는 <38사기동대>의 활약을 위해, 철거민들의 애닮은 사연과 무기력함은 드라마를 위해 한껏 조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힘없는 자들의 반격을 위해, 힘없는 주체들을 '소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선 피해갈 수 없다. 



물론 지난 4월 13일 방영되었던 sbs의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 처럼, 철거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 납치까지 감행하는 역대급 슈퍼 을들의 반란을 통쾌하게 그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막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시위'에 나선 군중이나 개인은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서처럼 도구적이거나, <원티드>에서처럼 즉자적이고 감정적인 우중이거나, <38사기동대>에서처럼 무기력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미지들인 반복되다 보니, 이미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지배되어 있는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개선될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통치 방식은 '분할주의'이다. 우리 사회 세월호에 이어, 최근 성주 군민들처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나서는 사람들을 대다수의 군중으로 부터 고립시키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고, 특히나 군사적 전체주의 문화에 아직도 길들여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분할 통치 방식은 매우 잘 먹히고 있는 편이다. 그리하여 세월호든, 성주군민들의 사드 시위 등은 모두,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 그래서 좀 있다보면 듣기 지겨워지는 남의 소리로 우리 사회에서 '매장'되어져 간다. 그런 분할주의 통치 방식 이면에는, 우리 역사에서 분명 '혁혁한 역사적 도화선으로' 자리 매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위 문화'에 대한 대중 매체의 표현 방식도 한 몫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by meditator 2016. 8. 1. 16:11

애초에 기획된 16부작을 14부작으로 '조기 종영'하기로 결정난 <뷰티플 마인드>, 하지만 끝없는 '부진'이라는 말에 아랑곳없이, '조기 종영'이라는 불명예가 무색하게, 이제 12회까지 종주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의 서사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주제 의식은 명징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괴물의 아이, 이영오
그의 눈을 가렸던 선그라스를 벗고, 계진성에게 '사랑'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다짐했던 이영오, 묵직했던 이야기가 드디어 말랑말랑한 '연애사'로 참기름 칠이라고 하는가 싶더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처럼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그의 욕심을 의사 이영오(장혁 분)가 처한 상황이 다시금 뭉개버린 것이다. 레지던트 동하가 살려낸 친구가 햇빛을 피해야 하는 루푸스라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뜨거운 햇빛 아래 실외기를 달기 위해 건물을 오르다 추락하여 응급실에서 젊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의 철부지 친구였던 동하를 비롯한 응급실의 모든 스텝은 오열하고 만다. 하지만, 그 순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단 한 사람, 이영오는 결국 다시 김민재가 권했던 뇌 ct를 찍고 자신의 전두엽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다. 계진성을 만나 두근거렸던 심장조차 결국은 '학습'이라 결론내린 이영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사랑'마저 포기하고 만다. 



'평범한 사람'과 '사이코패스'의 간극에서 좌절하고 만 이영오, 하지만 <뷰티플 마인드> 12회는 그 이영오의 좌절,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괴물의 슬픔, 그 이면의 진실을 폭로한다. 이미 앞선 회차에서 이영오의 사이코패스성이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의 의료 과실이었음을 드러낸 바 있었던 드라마, 하지만 12회, 그 알려진 비밀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아버지 이건명은 '보통 사람'처럼 '확률'이 아닌 '마음'으로 환자를 지켜보는 아들 이영오를 통해 '사람'을 학습시킨 자신의 교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건명은 아들 이영오에게 그랬듯이, 이번에도 줄기 세포의 연구에 대한 신념 대신 해외 자본 투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해외 자본을 등에 업고 나타난 그의 예전 동료는, 그가 예전 이영오에게 그랬듯이 여전히 '정의'를 가장한 채, 자신의 이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임을 폭로한다. 이영오는 이건명의 의료 과실이 아니라, 예전의 미흡한 의료 기술로 말미암은 오진이었던 것이다. 즉, 이영오는 전두엽에 장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두엽에 장애가 있다고 믿은 이건명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키워진 것이다. 결국 이건명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이영오를 장기간에 걸쳐 '교육'이란 명목으로 '정신적 학대'를 했고, 그 결과 이영오는 진짜 전두엽의 장애를 가진 인물로 자라난 것이다. 

누가 진짜 괴물일까?
12회에 드러난 사이코패스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린 이영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애써 예를 들려 하지 않아도 '자식을 위해서'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의 입신양명에만 힘쓴 많은 부모들이 떠올려진다. 결국 그들은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자식을 위해서의 본심은, 드라마에서처럼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에서 부터 자신의 명예, 자신의 위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걸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폭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이건명을 '괴물'이라 지칭하면 끝날까? 그러기엔, <뷰티플 마인드>를 통해 드러난 괴물들이 너무 많다. 당장 이건명은 평생을 받쳐, 더 이상 '외과 의사'가 필요없는 세상을 위해 신약 계발에 매진해 왔다. 이건명이나, 현석주(윤현민 분)가 자신, 혹은 누군가의 명예를 위한 이기심에 휩쓸렸다지만, 하지만 그를 비롯한 연구진의 열정은 '현성'이라는 자본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자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원장이 된 이건명을 과거의 오명으로 흔드는 건, 외국 자본의 앞잡이가 된 친구요, 그와 손을 잡은 건 당연히 '자본' 현성이다. 

11회, 한때는 중학교 같은 반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았던 급우가, 이제는 병원에서 실려온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되듯,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의사가 '우정의 선심'으로 고쳐놔도, 몇 시간 만에 결국 생계의 전선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듯,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은 한 개인을 넘어선다. 드라마는 곳곳에서 개인들의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갈등들을 분출해 내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건, 안타깝게도 시스템이다. 개인의 명예도, 자식을 위한 사랑도, 순수한 열정도 모두 '자본'이란 시스템 속에 휘말려 버린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코패스,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의사가, '인간적 유혹'에 무딘 가슴이 뛰지 않는 의사가, 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직하고, 가장 선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술'을 펼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아니, 이런 것은 비단 드라마 내적인 문제 만이 아니다. 4%조차 넘기 힘들어 조기 종영당하는 <뷰티플 마인드>의 곳곳에서 만나는 문제들, 그리고 툭툭 내뱉어 지는 대사들은, 마치 이 드라마가 현 시점에서 '조기 종영' 당할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인 양 시의적이다. 드라말 속 현성이란 자본 속의 의사들은 '환자'를 생각하기 전에, 서슴없이 '돈'을 떠올리고, 의사로서의 위상을 앞세운다. 

<뷰티플 마인드>는 올림픽을 이유로 해서, 애초에 기획되었던 16부대신, 14부로 조기 종영된다.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에 붙인 기사는, 마치 12부로 조기 종영할 것을 선심쓰듯이 14부로 마무리할 것이라 언급한다. '자본'으로 돌아가는 드라마 시장에서, '광고'가 붙지 않는, 그래서 ppl조차 감사한, '젊은 한류 스타'가 붙지 않아 해외 시장 판매조차도 쉽지 않은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은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당연한 듯이 치부된다. 초반의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책임이 물어지기도 한다. '자본'의 시장에서, '예술'이나, '고상한' 주제 의식은 사치인 양 손가락질 받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kbs2는 '시청료'를 받는 방송국이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공영 방송인데, 이곳에서 '광고'니, '자본'이니를 들먹이며, '조기 종영'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일련의 조기 종영을 둘러싼 불협화음들은 묘하게도 현성 병원 속 자본의 논리와 맞물리며, 그 속에서 사람답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영오는, 사람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주제 의식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조기종영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뷰티플 마인드>에 겹쳐진다. 사이코패스 이영오 뒤에 그를 키운 괴물 아빠 이건명, 그리고 그의 명예심을 가지고 그를 뒤흔드는 '자본' 현성, 그리고 20부작이래도 아쉽지 않을 드라마를  몇 프로의 시청률을 들먹이며 '완주'를 발목걸고만 방송국, 과연 끝판왕 괴물은 누구일까? 
by meditator 2016. 7. 27. 13:46

<운빨 로맨스>에 이은 <w>가 첫 선을 보이고, 새로운 수목 드라마 대전이 시작되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던 <함부로 애틋하게>가 12.9%로 안정적으로 1위를 선점한 가운데, 이종석, 한효주 두 배우를 앞세운 <나인>의 송재정 작가의 야심작 <w>가 전작에 바통을 받아 8.6%로 희망적인 출발을 했다. 두 드라마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스타급 배우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가거나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의 접전이 점쳐진다. 




그런 가운데, 그렇다면 새로운 수목 드라마 대전의 희생자는? 안타깝게도 '미스터리'한 구조에 있어 <w>와 시청층이 겹쳐있는 sbs의 <원티드>이다. 그간 7%대의 안정적 시청층을 유지하던 <원티드>는 7월 20일 5.4%로 내려앉았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유난히 7회 방영분이 재미없었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사랑' 놀음을 기대하기 힘든, 이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진실 찾기' 게임보다는 미스터리해도, 그래도 선남선녀의 '사랑'이 예고된 새로운 드라마가 더 구미가 당긴 것이리라. 

시청률은 떨어졌지만, 주제 의식은 명징
하지만 시청률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20일 방영된 <원티드> 7회는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회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공기'처럼 우리와 호흡하는 '방송'과 나아가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의 아들 현우 납치 사건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범인의 요구에 따라 실시간 생방송 리얼리티 쇼로 미션을 수행해 나간다. 가정내 아동 학대로 시작하여,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임상 약물 시험 등 아동과 관련된 듯한 사건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여, 드디어 7년전 정혜인의 전남편이자 sg그룹 막내 아들 태영의 죽음으로 모아진다. 그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조남철, 경찰청장의 죽음이 이어진다. 사건의 가닥은 잡혀가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폭로와 죽음이 이어지고, 정작 범인에 대한 추적은 모호해지며, 이제 8회를 앞두고 방송사 건물에서 한 여인이 떨어져 죽음으로써 이 사건과 방송국 내의 인물과의 관계가 좀 더 부각되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사건만 보면 대략 이렇다. 하지만 정작 <원티드>라는 드라마가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우 납치 사건과 그 이면의 거대한 음모들을 밝혀가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이 미디어의 민낯이다. 



자신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리티 쇼를 감행할 것을 요구한 범인은 시청률 20%를 마지노 선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현우를 찾고자 하는 정혜인 이하 방송팀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20%의 고지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걸 위해 정혜인은 아들이 납치당한 상황을, 그리고 그 상황의 해법인 리얼리티 쇼를 홍보하기 위해 또 다른 리얼리티 쇼에 게스트로 참석하는 것은 물론,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리얼리티 쇼의 현우의 새아빠이자, 정혜인의 현 남편인 ucn의 사장 송정호(박해준 분)의 협조로 가능해진다. 거기에 합류한 정혜인의 지인인 ucn 드라마 국장 최준구(이문식 분), 방송국 파워 게임에서 밀려난 전직 피디 신동욱(엄태웅 분), 최고의 방송 작가 연우신(박효주 분) 등이 합류한다. 

괴물이 된 방송, 하지만 그 '괴물'을 키우는 건?
현우 찾기라는 의로운 목적으로 시작된 방송, 하지만 방송은 20%라는 시청률, 즉 시청자의 시선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로 변해간다. 아들을 잃은 엄마 정혜인은 아들을 찾기 위한 방송의 사활을 위해, 그룹은 물론, 이제는 검사까지 찾아가 sg그룹의 고문 변호사 자리를 놓고 딜을 하는 막후 교섭자가 된다. 방송을 책임진 신동욱 피디는 이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기 위해서는 범인에게 인질로 잡힌 동료을 구하기 보다 카메라를 먼저 들이대는가 하면, 조남철이 죽은 현장조차 가감없이 방송을 통해 내보낸다. '현우'를 찾아야 하는, 그래서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방송에 참여한 저마다의 인간 군상의 민낯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원티드>는 인질에 잡혔던 연우신을 통해, 그리고 가장 어린 스텝 박보연(전효성 분)의 갈등을 통해, 방송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의문은 7회에 드디어 직격탄으로 제시된다.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 무난하게 시청률 20%를 달성했던 <원티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터져나온다. 애초 방송 시작과 함께, 방송사 앞을 점거하며 왜곡된 수단으로써의 리얼리티 쇼에 대한 시위는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현우를 납치한 범인이 나수현(이재균 분)으로 드러나면서, 나수현에 대한 동조 여론은 이제 그를 '주군'으로 받드는 인터넷 모임까지 결성되며 뜻밖의 파문으로 번진다. 그간 <원티드>를 통해 보여졌던 범죄가 '유전무죄'라는 시민적 각성이 왜곡되어 드러난 현상이다. 그리고 그 파급의 결과, 7회 모방 범죄까지 저질러 지는 결과에 이른다.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이를 데려다 주려 유치원에 간 연우신이 목격한 아이들의 원티드 놀이이다. 시청률 20%, 어느덧 전국민적 방송이 된 <원티드>는 유치원 아이들조차, 범인으로 삼은 아이에게 밧줄을 묶어 꿇어 앉혀 놓고 재밌다고 웃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원티드>는 지난 7회 현우 납치 사건과 그 사건의 미션으로 진행된 리얼리티 쇼 <원티드>를 통해 우리 사회 벌어지는 미디어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방송을 이용하는 범인,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방송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사연이 밝혀질 수 없는 '유전 무죄'의 사회, 하지만 이런 비리와 모순이 방송이라는 '프레임'을 거치며 때로는 좀 더 자극적으로, 때로는 왜곡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드라마 <원티드>를 통해 고발된다. 



하지만 <원티드>가 놀라운 것은 그저 방송 현실, 미디어의 속성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원티드>는 그렇게 '괴물'이 되어가는 방송, 미디어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 대한 의문을 남긴다. 시청률 20%를 제시한 범인, 그리고 그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동료도, 잔인한 시신의 모습도, 절체절명의 순간도 방송으로 내보내는 제작진, 과연 그것이 가능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말이다. 아들을 잃은 모성도, 매회 벌어지는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미션조차도, 그제 '게임'처럼 소비하는 주체, 대중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한 아이의 생사가 달린 리얼리티를 대중은 그저 '쇼'로 소비한다. 드라마 속 거리의 소녀는 <원티드>를 '재밌다'고 반응한다. 모방 범죄에 가담한 자들 역시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혹은 어줍잖은 흑수저의 분노로, 혹은 자신도 tv에 주목을 받고자 또 하나의 범죄를 모의한다. 방송 초반 진실을 폭로한 간호사의 목적이 알고보니 5억원이었다던가, 나수현의 반지를 제보한 사람이 보상금에 대한 요구를 당당히 하는 장면, 그리고 결국 아이들조차 '재밌다'고 원티드 게임을 하는 상황에 이르른 드라마 속 현실은, 클릭 수에 목매달아 '각종 찌라시성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과, 공공의 전파를 통해 아니면 말고 식의 '황색 보도'를 일삼는 방송들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by meditator 2016. 7. 21. 15:52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올린다. 하지만 이건 거짓이다.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고 느끼게 하는 건 바로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전두엽의 감정 중추이니까. 하지만 그런 과학적 사실을 다 알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심장이 울리는 내 가슴에 손을 얹어 내 마음을 표현한다. 어쩌면 '과학' 이전에, 심장의 떨림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공감'의 느낌에 솔직한 건 아닐까. 




이영오식 인간학, 인간을 헤집다 
이영오(장혁 분), 은혜원의 205번째 아이,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살리기 위해 이영오를 수술하다, 자신의 아이를 잃고 이영오의 전두엽 감정 중추까지 손상시킨 이건명(허준호 분)은 자신의 의료 사고를 책임진다며, 이영오를 이영오란 이름으로 입양한다. 그리고, 책임이란 이름 아래,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흉내를 내도록 이영오를 '훈련'시킨다. 하지만, 그는 이영오가 자신과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감정이 없는 너는 불가능하다고 반대한다. 그 누구보다 이영오를 잘 아는 이건명은, 이영오가 환자의 복잡한 감정을 공감하지 못해 시한부의 환자를 살려내고, 결국 그의 아내가 그를 죽이는 결과에 이르자, 서슴없이 이영오에게 '괴물'이라 칭한다. 아버지의 허물마저 덮어주려 애썼던 이영오에게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괴물'이었고, 애써 사랑을 노력했던 김민재(박세영 분)에게서 되돌려 받은 것은 사이코패스 이영오에 대한 폭로와 치밀한 연구였다. 그렇게 보통 사람으로 더불어 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며 따돌림을 받는다. 그와 함께, 그가 쌓아왔던 읽어서 도달했던 '인간들 마음'의 세상도 흐트러진다. 

첫 회 병원을 난입한 강철민의 테이블 데쓰와 국회의원 김명수의 라이브 서저리, 그리고 이어진 신동재 원장의 죽음, 심은하 사망 사건으로 <뷰티플 마인드>는 현성 재단이 운영하는 현성 병원에서 벌어진 새로운 신약 계발에 따른 임상 실험의 부작용을 둘러싼 비리와 음모라는 굵직한 갈등으로 진행된다. 거기서,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화려하게 현성 병원으로 입성한 이영오는 '공감 능력 제로의 사이코패스'이기에, 각자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현성 병원 속 잇달은 '연쇄 살인' 속에서, 오히려 '의사'로서의 평점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이 평생 이루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진실' 대신,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거짓'의 진실을 추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공감'할 수 없었던 이영오는 그들의 거짓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고, 그런 이영오는 그가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그가 그들이 덮어두고자 하는 '진실'을 끄집어 내는 불편한 존재라서 외면받게 된다. 

<뷰티플 마인드>는 의학 드라마로 시작하여, 병원 내 신약 계발 비리와 관련된 스릴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질문한다. 그것도 바로 우리가 가장 경외시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통해. 드라마 속 이영오는 각자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진실만 보는 인간 세상의 '리트머스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어떤 가치 판단에 흔드리지 않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의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의로움'은 편의적인 인간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배척받는다. 마치, '모난 돌이 정맞는다'라는 속담을 비껴가지 못하듯이, 김민재를 내세운 현성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영오가 사이코패스라 돌팔매를 던지지만, 사실은 그들의 '거짓'된 속내가 들통날까 두려운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 마음을 표현하듯, 이영오 마음을 배우다
그렇게 지난 시간 사람이 되기 위해 '학습'했던 '인간학'의 붕괴를 경험한 이영오, 자신이 학습해온 인간에 대한 논리, 확률의 세상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다행히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뷰티플 마인드> 첫 회부터, '진상' 노릇을 톡톡히 했던 계진성, 그 '진상'이, 여전히 '진상'답게 남들이 다 외면한 이영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진상'이 희망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진상'의 '희망'을 통해, 이영오는 '와이파이'처럼, 그가 놓쳐버린 인간 세상의 숨겨진 신호를 찾아간다. 그가 '학습'을 통해서 외웠던 도식,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또 은밀한 '마음'의 신호들을. 

여전히 그는 스스로의 입으로 덤덤하게 말하듯 자신은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 하지만, 그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는, 현성에서 폐암 말기의 자포자기 환자도, 가정 학대를 받은 어린 환자에게도 '공감'이 넘치는 의술을 펼친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와이파이가 필요해서라고 하지만, 이영오는 '희망'을 전해준 계진성바라기가 되어있다. 이제 '사랑'까지 시도해 볼 용기를 낼 정도로. 비록 그는 전두엽의 상흔으로 공감할 수 없지만, 아버지 이건명으로 부터 받은 기억으로 어린 가정학대 환자의 마음을 짚어내듯이, 그가 경험했던 '역지사지'로 가장 지혜로운 의사로 거듭난다. 마치 마음이 없는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가 마음을 경험하듯. 



숨가쁘게 현성 병원을 둘러싼 음모와 그 음모에 따른 인간 군상의 이합 집산을 사이코패스 이영오를 통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인간에 대한 회의와 질문으로 집요하게 따라붙었던 <뷰티플 마인드>는 이제 중반, 7회에서 10회차를 거치면서, 리트머스 시험지의 자가 발전을 위한 '쉼표'와 같은 시간을 가진다. 더불어, 단선적인 캐릭터였던 계진성에 대한 존재 이유도 더해진다. 덕분에 '비인간적'이었던 확률 기계 이영오는 이제 여전히 사이코패스라지만, 어쩐지 귀엽기까지 한 종종 그가 공감 능력 제로가는 것이 의심스럽기까지 한 현명한 의사로 거듭났고, 고지식해서 답답했던 계진성은 그래서 이영오의 와이파이가 될 수 있는 순수한 진짜 첫사랑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과 달리, 복잡한 갈등 구조에, 첫 회에 단번에 매료시키는 주인공들은 아니었지만, 회차를 거듭할 수록, 볼 재미가 깊어지는 드라마이다. 부디, 남은 회차동안, <뷰티플 마인드>의 건투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6. 7. 20. 15:12

도대체 누가 편성을 했길래?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kbs2와 sbs는 월화 드라마로 동일하게 의학 드라마로 격돌했다. 하지만 '의학'이라는 동일한 소재에도 두 드라마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sbs의 <닥터스>가 19.7%로 20%를 목전에 둔 채 '대박'의 찬스를 맞은 반면, <뷰티플 마인드>는 애국가 시청률을 벗어나 4%를 회복한 게 자랑(?)인 된 처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라는 외피를 벗어내고 보면, 두 드라마의 행보는 판이하다. 애초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거기에 '키다리 아저씨'까지 토핑으로 얹어 결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닥터스>의 시청률 고공 행진은 '순리'이다. 그에 반해, 역시나 매력임을 강조했으나, 졸지에 민폐가 되고만 여주인공의 고군분투가 붕 떠버린 <뷰티플 마인드>는 그저 여주인공의 캐릭터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이 드라마가 목적하고자 하는 바가,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목엣 가시'같은 껄끄러운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1,2회의 전개가 아쉽긴 하지만, 그 이후라도 제 아무리 이영오 선생의 장혁이 발군의 연기력을 보인다 하더라도, 애초에 대중적으로 선호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트렌디한 맛집과 쓰디쓴 독초로 만든 자연식의 비교랄까? 그러기에, <닥터스>와 <뷰티플 마인드>를 시청률만 놓고 비교한다는 건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너를 기억해>의 계보를 잇는 <뷰티플 마인드> 
오히려 <뷰티플 마인드>의 기조는 2015년 방영되었던 <너를 기억해>의 정서를 연상케 한다. 안티 소셜 디스오더(anti social disorder), 결국 사이코패스(psycho-pass)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뷰티플 마인드>와 <너를 기억해>는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으로 '공감'할 수 없는 정서를 가진 이들이 '범죄자'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나,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또한 동일하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척받아 마땅한 그 특징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일에 '천재'가 된다. 사이코패스이기에 범죄자의 심리에 능통한 <너를 기억해>의 이현(서인국 분)은 그래서 '범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없는 이영오는 다른 이들이 '이해'와 '편견'으로 뒤틀린 현상을 꿰뚫어,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으로 환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주인공이, 가장 '인간적인' 일을 해내는 스릴러라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이들로 가득찬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현재의 인간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 주인공의 불행한 성격에, 물론 태생적 '낙인'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 '비인격적인' 대우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인간'의 책임을 묻는다. 



거기에, 이들의 조력자, 혹은 상대역으로서, 상처받았지만,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은 '성처녀'와 같은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의 상실된 캐릭터를 부추기고, 보듬어 안는다. <뷰티플 마인드>의 계진성(박소담 분)이 그러하고, <너를 기억해>의 차지안(장나라 분)가 그 역할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과, 그의 조력자로서 가장 '인간적'인 여성 캐릭터의 합주로, 그들에게 닥치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며, 결국 부조리한 '인간' 사회의 허물을 벗겨간다. 

이렇게, <너를 기억해>와 동일한 캐릭터의 범주로 진행되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 <너를 기억해>가 범죄를 매개로 했다면, <뷰티플 마인드>는 좀 더 복잡하게, 의학 드라마인 듯 하다가, 범죄 드라마인 듯 하다가, 이제 조금 더 한 발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발을 디딘다. 

마음에의 탐구, 인간 그 본연에 대한 질문
강철민 살인 사건에서, 신동재 원장 테이블 데쓰로, 그리고 심은하 사망까지 이어진 사건들을 통해 드라마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안티 소셜 디스오더 이영오를 통해, '이익'을 위해 인간의 목숨까지 거두는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폭로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렇다고 해서, 쉬이 이영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마음이 없어 '인간'의 무리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에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영오, 하지만, 결국 그의 '텅 빈 마음'은 '사고'를 치고만다. 강철민 살인 사건에서 부터 늘 언제나 제일 처음으로 '용의자'로 몰리며, 심지어 공개 석상에서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폭로되며, 거짓말 탐지기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이영오는 돌아왔다. 하지만, 응급으로 들어온 교모 세포종 환자의 '심정지' 상황에 대한 그의 '판독'은, 복잡한 '인간사'를 읽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학습했지만, 그의 학습으론 도달할 수 없었던 '김민재에 대한 '사랑'과 함께, 노력하면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영오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그렇게 무너진 이영오, 그리고 그런 이영오를 거침없이 괴물로 지칭하는 그의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 그리고 현성 병원의 사람들을 통해 <뷰티플 마인드>는 그저 흔한 병원 속에서 벌어진 부도덕을 넘어, '인간'의 모습을 탐구해 간다. 그래서, 모호하고, 그래서 어렵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이렇게 깊숙하게 인간에 대한 질문을 언제 던졌나 싶게 신선하다. 그래서 용기있다. 그 어렵고 모호한 퍼즐에 동참한 자들은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 박수를 치는 사람이 적을 뿐. 모두가 환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섣부르게 한 여배우에게 희생양을 씌우거나, 작품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6. 7. 6. 15:19

비록 고현정이 합류했지만, 온전히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드라마,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히 시청률 지상주의 '공중파'에서는 그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대신 '시청률'과 무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tvn이 '어르신'들의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가 할배만큼,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듯, <디어 마이 프렌즈>도 '어르신'들보다, 오히려 '어르신'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젊은, 혹은 어른신이 될 세대에게 공감을 얻었다. 4%~8%를 오르내리는 tvn 드라마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는 설명할 길 없는, 어설픈 '로맨스 그레이'가 아닌 '어르신들'의 진솔한 속내만으로 이어간 16부의 이야기는 '꼰대'로 시작하여,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어르신들의 적나라한 사연으로 시작하여, 
노희경의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는 가장 적나라한 '어르신'들의 현실적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골 마을 동창인 '어르신들', 그들 각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법한 그분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바람을 핀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를 동창에게 푸는 딸에 집착하는 열혈 가장인 엄마(장난희-고두심분), 시골마을 동창으로 만나 70평생 부부로 살았지만, 시부모로 부터 남편까지 이어지는 '구박'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이골이 난 엄마(문정아-나문희 분), 그리고 남편마저 떠난 빈 집에서 자식들 부담주지 않으려 고독과 싸우는 엄마(조희자-김혜자 분), 이혼한 자식이 남겨놓은 그리고 엄마도 되지 못한 채 한평생 가족들 뒤치닥거리를 하다 처녀로 늙은 여전한 미스(오충남-윤여정 분). 화려한 배우이지만 그 뒤편에 남겨진 것은 고독과 병과의 싸움인 이혼녀(이영원-박원숙 분), 그리고 그들의 딸이라 칭해지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 못간 늙다리 노처녀(박완-고현정 분). 그들은 노희경 드라마답게 만나자마자 왁자하게 으르렁거리고 시끌벅적하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길위에서 죽자고 다짐했던 오랜 우정, 정아와 희자가 길을 떠나며 그저 여느 우리네 어르신들의 시끌벅적한 사연은 각도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거치적거릴 것이 없다며 기꺼이 친구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가려했던 고운 우정은, 치매로 이어지며 밤마다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만 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희자 이모의 다하지 못한 애닮은 모정의 사연으로 구비구비 전개된다. 그저 늘 말많은 가부장 남편의 그늘에서, 요구많은 딸들의 하루에서 방패막이 처럼 살며, tv를 보며 미련하게 언젠가 훗날 세계 일주를 꿈꾸기만 하던 정아 이모의 일상은 평생 고생만 하다 결국 하루의 여행조차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정 엄마의 죽음으로 자유를 향한 무한한 일탈로 귀결된다. 극성스러웠던 난희 엄마의 열혈 모성은, 암이라는 브레이크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제 딸을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남긴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충남의 무한 예술 사랑은 그녀가 그토록 멀어지려 했던 늙은 벗에대한 돌아봄으로 귀결되고. 

때로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손바닥을 마주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환타지인듯한 늙은 그녀들의 행보는, 그저 완이만 만나면 1.4 후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한'을 풀어놓지 못해 입에 모타를 다는 기자(남능미 분) 이모의 한풀이가 아니다. 치매가 걸린 희자 이모가 회귀하듯 죽은 아이로 여겨지는 베개를 등에 업고 한없이 젊은 시절의 그 길을 찾아 가듯, 그래서 뒤늦게 그 자리를 헐레벌떡 찾아간 친구 정아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그 시절 못다했던 설움을 폭발하듯, 그저 이제는 '어르신'이던 그들도, 지나온 인생 구비구비에서,  지금을 사는 젊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똑같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부등켜 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 '사람'.



늙은 사람일 뿐, 친구가 된 어르신들
그러기에, 그들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거침없이 딸 완이 엄마 난희에게 '우리 이제 친구하자'라고 말할 수 있듯이, 그리고 엄마의 늙다리 친구들을, 기꺼이 '나의 늙은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어르신'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친구'로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그들에게 '친구'의 이해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친구'가 되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나이든'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16회,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난희는 그토록 집착했던 딸을 놓아준다. 자신의 동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때문에 장애인은 안된다고 했던 '고집'에서 벗어나 딸 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희자 이모도 마찬가지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을 자식 대신 기꺼이 요양원을 택한다. 자신의 평생을 '희생'이라 정의내린 완에게 완강하게 저항했던 희자 이모였지만, 끝까지 엄마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15회까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줄곧 우리가 외면했던 늙은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전하려 애썼다. 15회, 암에 걸린 엄마 앞에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 스스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완의 모습은, 곧 늙은 사람들, 어르신의 삶에 냉정했던 우리들에 대한 단죄였다. 그렇게 15회까지 '이해'를 위해 달려왔던 드라마는, 16회, 이제 이해를 받은 '어른들'에 대한 당부로 끝을 낸다. 젊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삶을 이해받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이라 집착하지 말고, 기대려 해서는 안된다고. 품위있는 난희와 희자 이모의 선택은 그래서 사실은 단호한 작가의 어른들에 대한 당부의 말씀이 된다. 물론 그 '슬픈' 당부에 '에필로그'도 있다. 이제, 당신들이 살아온 평생의 그 '짐'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살라고,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추신. 그래서, 늙고 병들어 함께 살 수 조차 없는 늙은 벗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비록 정아 이모가 원하던 세계 일주는 아니지만, 기꺼이 그들이 힘닿는 그곳으로. 



늙음에 대한 이해와 당부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디어 마이 프렌즈>가 가능했던 것은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전제가 되지만, 그것의 완결 조건은 결국 '프렌즈'를 설득했던 어르신 배우들이었다. 진짜 희자인지, 정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희자와 정아와, 난희와 충남, 영원, 그리고 석균과 성재, 오쌍분 여사로 열연했던 어르신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늙은 꼰대들을 '친구'로 다가오게 만들어 주신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여전한 열정의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by meditator 2016. 7. 3. 16:18

공교롭게도 두 편의 의학드라마가 동시에 시청자를 찾았다. 그것도 같은 월,화 드라마로, 그리고 둘 다 '의사'라기엔 '부적절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sbs의 <닥터스>와 kbs2의 <뷰티플 마인드>, 하지만 같은 의학 드라마인 두 드라마의 결과는 희비가 엇갈렸다. 아니 '희비가 엇갈렸다'란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14.2%(닐슨 코리아 기준) <닥터스>에 비해 <뷰티플 마인드> 4.3%(닐슨 코리아 기준)는 처참하다. 




희비가 엇갈린 두 편의 의학 드라마 
같은 의학드라마이고, 비슷한 캐릭터의 주인공이라지만, 두 드라마의 진행은 전혀 달랐다. 요즘 인기를 끄는 '걸크러쉬'한 여의사 유혜정(박신혜 분)가 응급실에 들이닥친 깡패 일당을 물리치는 화끈한 소동극으로 부터 시작된 <닥터스>는 어찌보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위한 뻔한 에피소드이지만, 그런 익숙한 해프닝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불량 소녀의 방황과 성장이라는 서사 또한 흥미롭다. 

그에 반해, <뷰티플 마인드>의 시작은 비행기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의학 드라마가 그렇듯 감자기 응급 환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 도와줄만한 승객을 찾던 승무원은 vip 석에 앉아있는 이영오(장혁 분)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예상되었던 바의 스토리, 하지만 여느 의학드라마같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자에게 달려갔을 의사 이영오는 반문한다. 내가 왜 그 환자를 돌보아야 하지요? 라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읽던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다. 바로 이 지점, 여기서 <뷰티플 마인드>라는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생기는 동시에, 의학 드라마로서 이질감, 거부감의 발생지가 된다. 

의학 드라마로서 <닥터스>가 아직은 의사가 아닌 불량 소녀의 '성장담'과 '개과천선'에 방점을 둔 서사라면, <뷰티플 마인드>는 일반적으로 의사가 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역설적 의문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편한 유입이 쉽지 않은 드라마다. 서번트 증후군의 자폐 의사였던 <굿닥터>가 떠올려지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던 순수 청년 박시온(주원 분)과 달리 냉정한 눈빛의 이영오는 어쩐지 쉽게 동화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대중적으로 호응이 좋은 '의학 드라마'이지만 쉬이 호감을 느끼기 힘든 주인공 안티 소셜 디스오더(반 사회적 인격 장애 분)이영오를 당차게 대중적 접근성이 좋은 걸크러쉬 유혜정의 상대로 편성한 건 시청률만 놓고 보면, 무모하다. 하지만, 그런 시청률의 성과를 차치하고 보면, 그래서 <뷰티플 마인드>의 가치가 있다. 



안티 소셜 디스오더, 마음이 없는 의사 
첫 회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를 보고도 냉담하게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던 이영오에 대한 의문은 1,2화의 에피소드를 통해 혹시 이 사람이 '테이블 데스(수술 도중 환자 사망)'의 주범이라는 의문으로 부풀려 졌고, 그런 의혹은 결국 2회 말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을 통해 그의 아들 이영오가 '텅빈 마음'을 가진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 social disorder)라는 것이 판명났다. 애초에 '마음'이 없기에 환자에 어떤 감정 이입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가장 유능해진 의사, 마치 환자에 대한 의술을 '게임'처럼 접근할 수 있는 냉철함을 무기로 할 수 있는 의사 이영오에 대한 설명을 뒤늦게야 설명해 낸다. 

그렇게 장황하게 에돌아 주인공 이영오에 대한 설명을 한 이유는 당연히 쉽사리 호감을 얻지 못할 주인공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대신, <뷰티플 마인드>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주인공 대신, 그리고 '도덕성'이 부재한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해, '대비' 효과로 다른 등장 인물을 설명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람이 1화에 다짜고짜 병원으로 들이닥친 순경 계진성이다. 

1회 말 이영오가 다짜고짜 그녀를 향해 메스를 들이대듯 그녀의 심장은 정상이 아니다, 애초에 수술 조차 무리였던 그녀를 그녀의 '선생님'인 현석주(윤현민 분)의 용기로 살려냈다. 그런 그녀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연애도 못한 채' 7년을 보내며 이제 겨우 '순경'이 되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자신이 목격한 교통 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에 맹목적으로 뛰어든다. '마음'이 없는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 '아픈' 심장을 가진, '마음'이 뜨거운 여주인공의 등장, 하지만, 그 '마음'이 뜨거운 그녀의 행보는 '그 뜨거움만큼, 드라마의 톤에서도 튄다. 



<뷰티플 마인드>의 현석주와 계진성의 '바른 행보'와 그 '바른 행보'를 위해 절차를 무시한 해프닝들은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없는 이영오의 행보보다 쉬이 고개가 끄덕여 지지 않는다. 정황상 의심은 받을 수 있는 모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이영오를 살인범 취급하며, 회의장까지 난입하는 '순경'의 수사 방식과 같은 형태로, 계속 <뷰티플 마인드>의 이영오를 설명해 내는 식이라면, 이영오가 아니라, 계진성이 <뷰티플 마인드>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의심은 가지만, 그렇다고 계진성에게 범인 취급 받을 해프닝은 무리수다. 

그렇게 계진성이란 순경의 어설픈 수사로 이영오 캐릭터를 설명해 내는 어설픈 '선악 대비'로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는 그래서 불안하다. <닥터스>가 불량 소녀 유혜정(박신혜 분)을 키다리 아저씨 같은 홍지홍(김래원 분)을 통해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로 편하게 드라마에 흡인시킨다면, 안타깝게도 이영오에 대한 흥미를 계진성의 어설픈 정의로움이 반감시킨다. 뿐만 아니라 병원 외부인인 계진성이 자꾸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병원 내부의 갈등만으로 흥미로운 서사가 흐트러진다. 이미 아버지와 이영오, 이영오와 현석주, 그리고 병원 내부의 쟁쟁한 인물들만으로 충분한 서사에 계진성은 옥상옥같은 존재다.

'마음'이 없으며,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 부터 '인간'에 대한 훈련을 받은, 그래서 유능해진 의사, 이영오에 대한 집요한 천착, 그 자체만으로도 <뷰티플 마인드>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부디, 이 '괴물'같은 주인공의 매력을 잘 살려내길. 

by meditator 2016. 6. 22. 15:54

제 아무리 '마요미' 마동석'이라지만, 그 덩치하나로 여러 사람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던 <나쁜 녀석들>의 박웅철이었던 그가 어깨를 한껏 접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공무원이 되어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은 그래도 어쩐지 어색했다. 반전의 매력이라지만, 소심하다 결국 참지못하고 세금을 포탈한 악덕 고액 체납자 마진석(오대환 분)을 한 대 치고는 그 뒷수습에 쩔쩔매는 그가 답답하기 까지 했다. 1회는 이렇게 한껏 덩치가 곧 캐릭터였던 마동성이 변신한 소심한 세금징수 3과 백성일 과장의 애환을 그려내는데 치중했다. 마동석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세금 징수 공무원이지만, 결국은 돈있는 사람 앞에서는 물론 집안 식구들 앞에서조차 주눅들어 사는 백성일존재는, 제 아무리 어깨를 좁혀도 드러나고 마는 마동석의 덩치기에 더 옹색해 보였다. 




반전 매력을 가진 마동석의 백성일 세금 징수 3과 과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답답했던 백성일 과장의 캐릭터는 2회에 일관되었지만, 그 소심한 백성일 과장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나며 <38사기동대>의 가능성이 열렸다. 알고보니 욱하던 시절에 동네 일진이었던 그는, 단촐하게 형사인 친구 박덕배(오만석 분)와 함께 쳐들어간 대포업자 사무실(심지어 그 대포업자 우두머리가 신세계의 박성웅과 아저씨의 김성오다)의 이른바 '깍두기'들을 가볍게 제압해 낸다. 박성웅이 코피를 흘리며 백성일 옆에서 다소곳이 짜장면을 비비고, 김성오가 얌전하게 군만두를 입에 넣는 장면에서, 이미 공무원 백성일의 숨겨진 능력이 무시무시함은 충분히 제시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저 소심한 공무원의 애환으로 일관되던 드라마 <38사기동대>의 가능성이 열린다. 

<39사기동대>는 이미 예고를 통해 알려진대로 <나쁜 녀석들> 제작진의 작품이다. <뱀파이어 검사> 시즌1,2에 이어 <나쁜 녀석들>을 집필했던 한정훈 작가가 <나쁜 녀석들> 제작진과 다시 한번 합을 맞추었다. 하지만, <38사기동대>에서 <나쁜 녀석들>의 그 어둡고 음습한 기운을 찾기란 쉽지 않다. 1회에 욕을 하며 등장하던 나쁜 놈들보다 더 나쁜 형사 오구탁(김상중 분)도 없고, 그런 오구탁이라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같던 사이코패스 이정문(박해진 분)도, 살인 청부업자 정태수(조동혁 분)도 없다. 대신 하급 공무원이 된 마동석의 애환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작품 시작전 작가 한정훈의 인터뷰처럼 핏빛과 어두움으로 충만했던 19금 <나쁜 녀석들>의 암울한 기운을 한껏 빼어 버린 채 모두가 함께 공감할 드라마로 가겠다는 의지로 마누라의 한 마디에 바로 등돌려 누워버리는, 그러다 결국은 비상금 500만원으로 중고차를 사려다 사기를 당하고 마는 서민 백성일로 <38사기동대>는 시작된다. 

'사기꾼'이 전혀 이물감없는 서인국의 유연함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녀석들>의 한정훈 작가가 어디간 건 아니다. 마치 <나쁜 녀석들>의 착한 버전인듯, <38사기동대>는 '나쁜 녀석들'이 '더 나쁜 녀석들'을 징벌하는 그 주제 의식을 일관되게 이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제 의식의 중심에, 또 다른 주인공 양정도(서인국 분)가 있다. 교도소에서 출감하기 바쁘게 그를 위해 준비된 차에 몸을 싣고, 역시나 준비된 핸드폰으로 여유롭게 시청 세금 징수과 비리 공무원들을 단박에 '사기'쳐 버리는 양정도는, '사기꾼'이지만, 박덕배의 말처럼 '의적'처럼 등장한다. 단지 몇 마디 말로 거뜬히 '사기'를 치는 양정도의 그 프로젝트에, 동명이인 백성일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다. <응답하라> 출신 중 가장 순탄하게 그 '저주'를 피해간 배우인 서인국은, 이미 <고교 처세왕(2014)>, <너를 기억해(2015)>를 통해 다진 유연한 연기로 단박에 양정도를 표현해내며 이물감없이 '사기꾼'으로 드라마 속에 흘러든다. 

집요한 백성일의 추적 끝에 양정도는 교도소에서 출감한 지 며칠 만에 다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그런 양정도가 던진 악덕 체납자 마진석을 두고 던진 '딜'에 비도덕적 동료들로 인해 궁지에 몰린 백성일이 손을 잡는다. <나쁜 녀석들>이 다크한 분위기와 그보다 더 다크한 캐릭터의 진열로 대번에 드라마의 톤을 설득해 낸 반면, <38사기동대>는 말단 서민 과장 백성일의 애환과 반전, 그리고 궁지에 몰린 그를 통해, 공무원과 사기꾼이라는 기상천외한 조합의 설득력을 차곡차곡 설득해 낸다. 
by meditator 2016. 6. 19. 03:15

3월 22일 종영된 <베이비 시터>에 이어, kbs2는 또 다시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를 편성했다. 김용수 감독의 예술적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았던 <베이비 시터>, 하지만 그 제 아무리 김용숙 감독의 독보적 예술은 주연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갉아먹었고, 거기에 4부작=땜빵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채 3%대 시청률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비 시터>에 이어 다시 한번,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에, 퐁당퐁당 편성된 <백희가 돌아왔다>는 실험작이었던 <베이비 시터>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작품성과 재미, 그리고 시청률까지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더불어, 4부작 드라마는 '땜빵 드라마'라는 오명을 벗고, 드라마 형식의 새 장을 안착시킨다. 


<베이비 시터>의 실험, <백희가 돌아왔다>로 안착하다. 
<베이비 시터>는 자체의 역량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좋지 못했다. 전작 <무림학교>가 웬만해서는 조기 종영 카드를 꺼내지 않는 kbs2에서 결국 20부작을 16부작으로 마무리하는 4~5%의 시청률로 고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간대 상대작들도 sbs의 <육룡이 나르샤>, mbc의 <화려한 유혹>으로 버거운 상대였다. 하지만 비록 낮은 시청률이었지만, '예술주의' 드라마라는 측면에서 <베이비 시터>는 장편 드라마에서는 욕심내기 힘든 시도를 감행했다. 

그에 반해, <백희가 돌아왔다>는 전작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동시간대 1위를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작들이 비록 1위라지만 내내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 밀리다가, <백희가 돌아왔다>에 겨우 0. 몇 프로 내의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몬스터>와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 조차 버거운 <대박>으로 도토리 키재기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희가 돌아왔다>의 성취는 그저 동시간대 경쟁작들의 미미한 성과로 퉁치기엔 작품의 깔끔한 만듬새가 돋보였다. 


드라마의 시작은 흡사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드레스 메이커>를 연상케 한다. 영화 <드레스 메이커> 속 케이트 윈슬렛은 25년전 억울한 사건의 범인으로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난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화려한 디자이너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마찬가지로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강예원 분) 역시 18년전 '빨간 양말'이라는 미성년자 추문 비디오로 인해 도망치다시피 고향을 떠났다가, '홈쇼핑 젓갈 완판 여왕이자 자연요리 연구가 양소희가 되어 고향 섬월도로 돌아온다. 

영화 <드레스 메이커>의 케이트 윈슬렛이 다시 돌아온 고향 마을에서 재봉틀 대신 총을 들고 '화려한 복수'를 시작하는 반면, 양소희, 아니 양백희는 조용히 살고 싶어하지만 하나뿐인 딸이자 트러블 메이커인 18살 옥희(진지희 분)로 인해 이야기는 <맘마미아> 식 아빠 찾기로 변화한다. 

좋은 배우들,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
여기서 등장한 세 아빠 후보, 우범용(김성오 분), 차종명(최대철 분), 홍두식(인교진 분)와 과거의 백희와, 현재 옥희를 둘러싼 해프닝들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맘마미아> 이상의 재미를 준다. 1,2회 돌아온 백희, 그리고 과거 천방고 백희파 창단주였던 전설적 인물 백희, 그리고 이제 핏줄이 땡긴 아버지들의 혈육 찾기를 둘러싼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달렸던 드라마는 3회, 백희와 범용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사연이 풀어져 가면서 감동적인 순애보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4편 전편에 걸쳐, 옥희의 아빠 찾기라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와, '백희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빨간 양말' 비디오에 얽힌 스릴러가 종합 선물세트처럼 빼곡하게 4편을 채운다. 

이렇게 잘 버무려진 연기와 스토리만이 <백희가 돌아왔다>의 다가 아니다. 18년전 일진이었던 백희, 홈쇼핑에 나와 젓갈을 팔지만 고등학교도 채 나오지 못해 '무식'이 들통난 백희지만, 알고보니 18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게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미혼모의 의연한 삶이 담겨있다. 거기에 호시탐탐 섬을 떠나 가수의 꿈을 키우려하는 백희를 꼭 빼닮아 천방고 18대 일진이 된 딸 옥희의 아빠 찾기와 숨겨진 엄마 사연을 안 이후의 반응은 18살 나이에 용감하게 딸을 키운 엄마 백희 만큼 당당하다. 미혼모였던 엄마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든 딸을 위해 도박꾼 남편이라도 붙들고 살려했던 엄마를 대번에 이해하는 당찬 품성을 지닌 것이다. 

흔히 숨겨진 출생의 비밀과 그 속에 숨겨진 한 여성의 비극사를 다룬 드라마들이 쉬이 '신파'로 경도되는데 반해, <백희가 돌아왔다>는 감동적인 순애보의 순간에도, 숨겨진 출생의 비밀의 순간에도, 감동의 온도를 '신파'로 휘젓지 않는다. 오히려 내내 도박으로 백희를 괴롭혀 왔던 남편이 18년전 백희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주범이라는 걸 안 이후, 진짜 '백희'가 돌아오며 유쾌, 상쾌, 통쾌한 응징으로 캐릭터의 일관성을 멋들어지게 승화시킨다. 4부의 못다이룬 백희와 범용의 순애보와 나머지 두 아빠의 후일담은 사족 그 이상의 훈훈함으로 드라마를 마무리한다. 그 과정에서 때론 아빠 후보로 갈등하며, 때론 첫사랑을 못잊은 순애보로 쩔쩔매다, 이제 돌아온 백희파로 한 몫을 하는 세 아빠 후보생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4부작 드라마로 스토리와 재미, 그리고 연기의 삼합을 잘 이루어 10%가 넘는 시청률적 성취를 도달함으로써 땜방 드라마 이상의 가능성을 확고히 했다. 무엇보다 잘 만들기만 한다면 4부작이라는 형식적 한계도, 스타급이 아닌 배우들이 주연을 하더라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는 점에서 그 성취는 놀랍다. 
by meditator 2016. 6. 15. 05:39

인기리에 방영되는 tvn의 월화 드라마 <또 오해영>, 주인공들은 '전쟁'같은 사랑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절실한 '사랑'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주인공 오해영(서현진 분)과 박도경(에릭 분)은 '이성적' 시각에서 따지고 보면 '미친 년, 놈'이 따로 없다. 자신의 결혼을 파탄냈는 그 놈을 못잊어 하는 오해영도 제 정신이 아니고, 그런 그녀를 연민으로 바라보다 이제 자신으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피해자 오해영 전 남친에게 다짜고짜 주먹다짐을 하고 마는 박도경도 만만치 않다. 굳이 다른 드라마에서 찾을 게 뭐 있겠는가.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이 장애인이라 자신이 없다며 외면했던 애인 연하를(조인성 분) 첫사랑과 키스를 해가며 잊으려 몸부림치다 결국 몇 년만에 18시간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 해후하고 마는 사랑은 또 어떻고. 


기꺼이 양보도 가능한 노년의 사랑
이렇게 '미침'을 거부하지 않는, 아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열정적인 '젊음'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알아왔던 동생이 좋아한다 하면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노년'의 사랑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성당에서 희자(김혜자 분)는 성재(주현 분)을 만난다. 아니 희자가 성당에 다니는 걸 알게 된 성재가 희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성재는 바로 희자의 첫사랑, 하지만 우연한 엇갈림이 두 사람 사이에 몇 십 년의 이별을 낳았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삶을 살아내고, 이제 정신이 까무룩하는 노년이 되어서야 해후를 하게 되었다. 

속되게 노년의 사랑을 인생의 마지막 행로에서 다시 오지 못할 사랑이기에,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이 한 분의 할아버지를 두고 머리 뜯고 싸울만큼 '열정'의 사랑으로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낭만적인 희자와 성재의 해후를 환타지같은 낭만을 뚫고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희자의 앞에 나타난 성재, 이 로맨틱한 설정에, 희자는 성재를 소닭보듯한다. 첫사랑의 그 시절, 그녀를 홀로 남겨두어, 사별한 남편과 인연을 만들 빌미를 주었던 성재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이제 72세의 치매끼와 싸워야 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성가신 배 나온 노인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 앞에 나타난 성재는 다시 만난 그녀를 보고 설레어 하지만, 희자는 오히려 정아와 벌인 교통사고 수습으로 인해 성재가 내뱉는 말들이 성가실 뿐이다. 

그러나 자꾸 그녀 앞에 나타나 보고싶다는 성재, 조금 솔깃해질까 싶은데, 오랜 벗이나 다름없는 동생 충남(윤여정 분)이 성재가 좋단다. 그러자 희자는 기꺼이 양보한다. 심지어, 성재와 함께 떠나겠다던 여행조차 대번에 포기하고 만다. 

불타오르지 않아도 사랑은 사랑 
머리뜯고 싸울 노인정 할머니들의 애정 삼각 전선이 등장하는가 싶었던 희자-충남-성재의 삼각 로맨스는 충남의 사랑 선언에 기꺼이 포기를 선택한 희자의 우정과, 희자의 외로움을 이해한 충남의 호쾌한 포기 선언으로 싱겁게 마무리된다. 희자는 오랜 시절 가족을 돌보느라 결혼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충남을 안쓰러워하고, 충남은 이제는 홀로 남아 시간과 싸우는 희자의 고독을 이해한다. 



결국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희자와 성재, 하지만 로맨스 그레인인 줄 알았더 이들의 여행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아침부터 꽃단장했던 성재의 의도와 달리, 달리는 차 속에서 흩날리는 건 봄바람이 아니라, 성재의 흑채 가루였고, 그 시절 흔연히 희자 정도는 엎어줄 수 있었던 기력은 차가 끊겨서가 아니라, 늙어서 더는 운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하룻밤이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가방을 가운데 두고 한 방에 누운 두 사람, 이 로맨틱한 정취 속에 토로되는 건, 곱게 늙은 노년의 얼굴 속에 숨어있는 이제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을 신산한 삶이다. 젊었다면 어찌 해볼 이 운명의 시간, 달콤한 사랑의 운명을 방해하는 건 노년의 다한 기력이 몰고오는 잠이다.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난 첫 사랑, 그들의 하룻밤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로맨스의 소재는 노희경 작가에 의해 가장 현실적인 노년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희자와 성재의 만남이 무위가 된 건 아니다. 이제와 다시 만나 어쩌겠냐고 외면하는 희자에게 성재는 그저 늙어서 치구가 되자고 한다. 그리고 친구처럼 요의를 참을 수 없는 희자를 위해 차를 세우고, 치매끼에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사온다. 그런 성재의 성의에 조금씩 긴장이 풀린 희자는 입가에 묻은 검댕이를 닦아주고. 함께 선 일출의 정상에서 '지금만으로도 좋다'며 그의 손을 잡아준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같은 낭만적인 로맨스대신, 70여년의 삶을 지고온 시간고 그 시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만남이 이어진다. 굳이 '전쟁'처럼 불타오르지 않더라도, 때론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해프닝과 잔잔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우정으로 인해 은은하게 온기를 느끼게 하는 사랑이다. 

by meditator 2016. 6. 12.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