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에 이어 '빵'이더니, 이번엔 양복이다! 

바로 <월계수 양복점>의 작가 구현숙이 그려내고 있는 소재들의 이야기이다. 2013년 mbc 주말 드라마였던 <백년의 유산>은 삼대에 걸쳐 운영되는 국수집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이듬해 역시나 mbc 주말 드라마였던 <전설의 마녀>에서는 부모와 자식대가 '빵'을 매개로 어울려 졌다. 그리고 이제 자리를 바꿔, kbs2 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월계수 양복점>에서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을 통해 화해하고 모색하는 부자의 삶을 그린다. 

구현숙 작가가 그려내는 전통 
구현숙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장인'과 '전통'이 그 중심에 있다. 산업화가 극대화된 세상에서, 그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기술'을 밑천으로 우직하게 '전통'을 꾸려낸 명장들이 등장한다. '국수', '빵', '양복'이라는 소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소재들은 바로 근대 문명이 우리 땅에 들어오며 받아들인 문물들이다. 즉 근대사의 증거물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산업화'라는 새로운 조류 앞에서 기계화되고, 공장 제품화 되면서, '장인'을 밀쳐버린 제품들이기도 하다. 구현숙 작가는 바로 그런 명장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놓쳐버린 지난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사연과, 그 사연의 결과물로 등장한 자식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주말 드라마의 가족사의 영역를 구축해 왔다. 



<월계수 양복점>은 그렇게 구현숙 작가가 기존에 그려왔던 근대적 전통으로서의 소재라는 지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되, 기존 mbc주말 드라마로써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가졌던 <백년의 유산>과 <전설의 마녀>와는 좀 다른 궤도를 보인다. 즉 전통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악연'과 복수극이라는 구조를 가졌던 전작들과 달리, 최근 등장하고 있는 '슬로우 라이프'라는 새로운 조류의 삶의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과 절묘하게 조응한다. 

선친에 이어 월계수 양복점을 운영하는 이만술씨(신구 분)는 공장제 기성복이 대세를 이루는 세상에서 여전히 맞춤 양복을 고집한다. 당연히 그의 양복점은 운영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양복점을 운영했던 그지만, 패션 회사 부사장이 된 아들은 가업에 뜻이 없다. 

비스포크와 대를 이은 양복점 
여기서 이만술씨가 고집하는 맞춤 양복을 뜻하는 말이 비스포크(bespke)이다. 비스포크는 been spoken for의 줄임말로, 이른바 '말하는 대로'라는 뜻이다. 고객의 취향에 맞춘 '나만의 양복'을 뜻하는 말로, 고객의 취향에 따른 원단과 디자인을 상담 결정하고, 신체 사이즈를 재서 가봉(몸에 맞는 지 보기 위하여 듬성듬성 대강 꿰매어 맞춘 상태)을 하여 고객의 몸에 맞는 지 확인 한 후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뜻한다. 공장제 양복, 기성복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양복은 당연히 양복점에 가서 맞추는 것이었지만, 기성복이 야곰야곰 맞춤 양복 시장을 잠식하며, 어느 덧 거리마다 한 두곳씩은 있던 양복점은 이제 구시대의 유산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더불여 '소비'적 부분에서 '명품', '한정판' 등 '하이엔드'한 물건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양복을 비롯한 '비스포크'한 물건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월계수 양복점>은 바로 양복의 변천사를 드라마적 배경으로 담는다. 

그런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거기에 따라 맞춤 양복의 수요가 달라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면서,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담는다. 패션 회사 사위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이만술 씨의 아들 이동진(이동건 분)은 아버지의 초라한 양복점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배다른 형제와 그 어머니의 음모로 졸지에 밀려나고 급기야 사표를 쓰고 이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성공'을 화두로 '사랑'도 없는 결혼을 꾸려가던 그가 자신의 삶에서 튕겨져 나왔을 때, 비로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의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아버지는 이유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수석 제자였던 배삼도(차인표 분)가 다시 돌아와 아버지 대신 양복점을 사수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스러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이제 그 아버지의 전통을 잇기 위해 돌아온 두 명의 남자들을 등장시킨다.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밀려나는 맞춤 양복 시장 때문에 실패하고 아내의 닭집이나 도왔던 배삼도와, 역시나 성공이라는 담론으로 자신을 밀어부쳤던 이동진, 두 사람 그들은 이만술의 가출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꿈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로 양복점을 삼는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듯 돈을 벌고, 성공을 따르던 두 남자가 삶의 속도에서 튕겨져 나와 돌아온 곳, 그 본의든, 본의 아니든 선택한 '다른 속도의 삶에는 '느리게 만들어지는 양복' 비스포크가 있다. 

15회, 아버지와 똑같은 양복을 부탁했던 청년은 배삼도만 만든 가봉한 양복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버지의 단벌 양복, 자신의 퇴학을 막기 위해 선생님 앞에서 무릎 끓고 벌을 섰던 그 양복, 그래서 아들을 개과천선 시켰던 그 양복을 이제 아들은 첫 출근의 양복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진은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살피고, 그와 똑같은 원단을 구하기 위해 원단 시장을 헤매고, 그러고도 배삼도는 여전히 스승님의 양복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한숨을 쉰다. 원단을 찾고, 치수에 맞춰 가봉을 하고 완성품까지 대략 두 달여가 걸린다는 과정, 기능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아직도 멀었다는 완성품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가 써놓은 메모의 뜻을 헤아리는 아들의 모습은 흡사 '수련'의 과정과도 같다. 

이렇게 드라마는 '속도전'의 시대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고집스레 전통을 고수하던 아버지, 뒤늦게 나마 그 아버지대의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뒤를 따르려는 제자와 아들, 그 철 지난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최근의 비스포크 붐에 편승하여 드라마의 힘을 준다. 그리고 더불어 그 철 지난 이야기에 가능성을 연다. 전통이라지만, 새로운 전통이다. 독짓던 늙은이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자신을 불에 놓았고, 방망이를 깍던 노인은 뒤늦은 사과를 받을 사이도 없이 자리를 떴다. 그렇게 오래전 전통이 사라진 사이, 서구의 문물이 우리 땅에 와서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마저도 밀려났던 근대적 전통이 새로운 삶의 스타일에 힘을 얻어 돌아온다. 

 



by meditator 2016. 10. 16. 01:27

양심과 소신 대신 이익을 쫓는 전문가는 

   연쇄살인범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악한 존재, 가장 나쁜 사회 악입니다.
                                                             -표창원

10월 11일 방영된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이 법정에 올랐다. 극중 야구선수 강현호가 수술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사인을 '의료 사고'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의료 과실이라는 아내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과실의 주체가 되는 의사 및 그의 재판을 맡은 오성 측이 남편 강현호가 1차 수술 뒤 무리하게 음주를 했다는 주장을 하여 강현호 선수의 죽음이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뜻밖의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씨의 죽음이 떠올려지는 사건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는 신해철 씨의 사건 외에도 최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무고'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k-fact의 대표 함복거가 억울하게 연루된 범죄로 고스란히 재연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그 피해자인 연예인들만이 그 이름이 까발려지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사건, 그리고 그에 이어 신해철 씨의 억울한 죽음과 같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극중 주인공들이 맡은 사건의 내용으로 등장하며 시선을 끈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시의적'이어서 접근성이 좋지만, 동시에 '소재주의'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즉 최근 이슈가 되는 사건을 다루는 것만으로 '화제성'에 기대어 가고자 하는 안이한 의도말이다. 더욱이 아직도 신해철 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아픔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더더욱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이런 '소재주의'의 함정을 넘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주제 의식을 북돋우는 소재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의료 사고의 화제성을 넘어 '쯩'의 존재론을 묻다
즉 사건 그 자체로써의 화제성을 넘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전문가와 비전문가,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구축된 기득권층의 비리'와 '존재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11일자 경향 신문의 김민아 논설 위원 칼럼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법학자 손기병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로, 지능 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에 전형적인 메리토크라시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5,6회에 걸쳐 벌어진 사건 강현호 선수의 죽음과 관련된 의료 과실 사건은 위의 '메리토크라시'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술 시 과오로 인해 강현호 선수의 몸에 ;천공(perforation 장기의 일부에 어떤 병적변화가 일어나거나, 또는 외상에 의하여 구멍을 만들어, 장기외의 부분과 통하는 것) 을 만든 심원장(김원해 분),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원 내 권력을 이용하여 조수였던 강선생을 비롯한 수술방의 스태프들에게 함구를 요구한다. 이런 심원장의 파렴치한 부인과 왜곡은 최근 백남기씨 부검 논란과 관련하여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와 오성의 사건 연습을 거듭한 작전 앞에 골든트리의 반격은 쉽지 않다. 심원장과의 의료 분쟁에서 진 피해자들을 방청성에 앉히고 거듭 심원장에게 천공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지만 결정적 증거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이었던 강선생이 심원장의 결백에 동의하고 법정을 빠져나가자, 방청석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증인을 자처하며 재판은 판도가 달라진다. 심원장의 잘못된 시술로 인해 생긴 천공으로 잘려지게 된 소장을 스스로 폐기했다고 증언하는 간호사, 하지만 앞서 강선생의 증언을 들먹이며 오성은 '간호사'와 '의사',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격을 들먹이며 반발한다. 

물론 드라마는 차금주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온 강선생으로 인해 골든 트리의 승소, 강현호 선수의 명예 회복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결정적 순간, 똑같이 수술방 스태플로 참여했음에도 '간호사 주제'라며 제쳐지는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메리토크라시'에 의한 계급 폐해를 고발한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 차금주의 문제로 회귀된다. 

차금주를 통해 '쯩'을 반문하다. 
도망치다시피하는 강선생을 맨발로 쫓아간 차금주, 그녀는 자신을 사시만 5번 떨어져 '면허'의 중요성을 모를 수도 있다며 말문을 연다. 그에 앞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의 집에 찾아갔다가 배가 부른 남편의 동거녀를 마주하게 된 차금주, 그 이혼의 울분을 남편의 차에 마구 퍼부은 바람에 경찰서 신세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그 무언가를 묻고, 그런 경찰에게 차금주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꼭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이냐고 반문한다.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여주인공 차금주는 사시는 비록 5번이나 떨어졌지만, 가장 유능한 변호사 사무장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그녀는 밀려나고 무시당한다. 그런 그녀의 울분이 응축되어 그녀의 신분을 묻는 경찰에게 '아무것도 아니면 어떠냐고' 반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차금주의 설움은 바로 다음 장면 디스패치가 연상되는 가쉽지 함복거가 등장하자, k-fact가 안기부 소속이 아니냐고 굽실거리며, 마치 그녀가 정부 요원일 지도 모른다며 운을 띠우는 함복거의 한 마디에 허리가 꺽어지는 경찰. '면허'쯩과, 그 면허 쯩을 가진 전문가에 약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한 발 더 나아가 그간 암약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해결사의 뒷배가 어쩌면 오성의 이동수(장현성 분)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며, <캐리어를 끄는 여자> 속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범죄의 최종 보스가 결국 로펌, '법조계의 신성 가족'임을 드라마는 암시한다. 

결국 심원장도, 그리고 이제 그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는 이동수도, 의사 면허를 따고, 변호사 쯩이 있는 메리토크라시의 핵심인 그들이야말로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 놈みんな泥棒です) 이며 연쇄살인범 저리가라할 파렴치범이자, 진짜 사회악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추악한 관료를 빗댄 저 단어가, 1982년 드라마 <거부실록>을 통해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빗댄 단어로 회자되었고, 이제 2016년 한국 사회을 좀먹는 연쇄살인범보다 더 악독한 기득권층이 되어 고발당한다. 결국 그간 법조계를 다룬 다른 드라마들처럼 결국 기승전 최종 보스로서의 로펌을 등장시킨 <캐리어를 끄는 여자>, 하지만 그저 사회악의 고발과 폭로만이 아니라, 쯩이 없는 여주인공을 통해 '면허'의 존재를 묻는다. '쯩'에 약하지만, '쯩'이 '의무'보다는 '권리'로 쓰이는, 어쩌면 그저 종잇장에 불과한 허상은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어서 설움을 받은 차금주에게 함복거는 '억울하니 출세하라'고 권유한다. 즉 다시 변호사 시험을 보라는 것이다. 실력에 없어서가 아니라,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포기했던 차금주, 그 쯩이 없어 설움을 당하던 차금주, 도망치던 강선생을 붙잡고 면호는 '권리'이자, '의무'라며 의사로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호소하던 차금주는 과연 변호사가 될까? 


by meditator 2016. 10. 12. 06:23

2015년 간통법이 폐지되었다. 그 이전 간통법이 폐지되기 전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것을 피해 배우자가 신고하면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 간통법은 '개인'의 결혼에 대해 '국가'가 법적으로 개입하는 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법'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불륜'은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대표적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불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의 속내는 무엇일까? 거기엔 최근 성과 관련된 보고서(2016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남성의 53.7%, 여성의 9.6%가 외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확률은 연령대 별로 4%씩 증가하며 40대에서는 6%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에 성실한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고, 결국 그로 인해 여성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륜'에 대한 노골적 불편함은 이런 여전한 결혼제도를 둘러싼 남녀의 '불평등'한 관계의 반증이다. 그러기에 여성들이 주된 시청층인 tv에서 불륜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진짜 사랑이 뒤늦게 찾아온다면?
이런 조심스러운 '불륜'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공항 가는 길>이 취한 해법은 바로 '사랑'이다. 그것도 뒤늦게서야 찾아온 진정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핵심은 '소울 메이트'이다. 말 그대로 당신 영혼의 짝이 뒤늦게서야 나타난다면? 이다. 효은 엄마, 애니 아빠로 애니의 죽음을 매개로 얽히게 된 두 사람, 최수아(김하늘 분), 서도우(이상윤 분)은 각자 아이들로 인해 겪게되는 가정의 위기 속에서 정작 각자의 남편, 아내 대신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서로에게 공감한다. 
서도우는 딸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딸을 지워버리려는 아내와 달리, 빗속에서 잠시 차를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을 대신하여 '애니'의 유골이 든 가방을 꼭 끌어안고 기다려주는 최수아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마음 둘 곳 없는 시어머니의 집에서 뛰쳐나온 수아의 다친 마음을 쉬게 해주는 건 서도우이다. 

하지만 그 정도론 이들의 '사랑'을 진척시키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느꼈을까? 아니, 그 보다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유부남', '유부녀'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경계'를 그리기 위해, 드라마는 한번 더 에돌아 간다.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도 굳이 만지지도 말고, 애써 만나려 하지도 말고 운운하는 3무의 관계를 설정한다. 서로의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만나면 죄책감이 느껴지는 관계에 대한 일말의 책임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3무란 경계선은 흐르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을 조장하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 드라마는 애니의 죽음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가정이란 경계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서도우 어머니의 죽음이란 '극단적 상황'을 통해 감정의 봇물을 터트린다.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의 죽음이란 극약 처방을 통해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애니의 죽음 앞에서 냉정한 아내 때문에 홀로 딸의 죽음을 가슴에 접어두어야 했던 서도우, 그런 그가 달려오는 수아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애니의 죽음에서부터 참고 참았던 모든 설움을 한껏 토해낸다. 서도우의 불행을 두고 물불 안가리고 달려온 수아와, 그런 그녀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서도우, 이 절정의 공감과 위로가, 이들이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는 진짜 '사랑'임을 드라마는 역설한다. '불륜'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아닌 불가항력의 인간적 감정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사랑, 그리고 결혼 
거기에 이런 이들의 '금기'에의 도발에 대한 '알리바이'를 위해, 두 남녀의 파트너에 대한 '신뢰'에 먼저 금이 가게 만든다. 서도우는 애니의 죽음 앞에 동요하기는 커녕 애니의 기억조차 없애버리려 애쓰는 아내를 보며,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애니에 대한 기억의 조작을 보며, 이제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한 발 나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네'라며 아내에게 문자로 지시하는 '시드니의 신사' 최수아의 남편, 그가 가진 이중성이 자꾸 삐져나온다. 그렇게 드라마는 두 사람의 순애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미 그 이전에 '신뢰'가 무너진 결혼을 그려간다. 즉 사랑에 빠진, 그리고 이제 '불륜'으로 들어설 두 남녀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애써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에서 불공정한 '불륜'대신에 가장 아름다운 환타지로서의 '사랑'을 통해 결혼에 찾아든 변수를 질문한다. 



불성실한 배우자, 심지어 애초에 '신뢰'할 수 없었던 결혼, 그리고 이제 서로의 세계관조차 엇물리는 배우자, 그리고 그런 배우자와 달리,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소울메이트의 출현, 드라마는 뒤늦게 찾아온 '진짜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소통'을 얻는 관계를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던져지는 반문은 '결혼'에 대한 것이다. 아마도 최수아와 서도우의 사랑이 아름답고 공감되면서도, 쉽게 그들의 손을 들 수 없는 건 여전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제도 때문일 것이다. 과연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은 무엇일까? 여전히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일까? 공정한 불륜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불성실한 상대방을 어디까지 참아내며 지속시켜야 하는 제도일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파트너와의 결혼 생활은 불가능한 것인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은 파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이 곡진할 수록, 이 반문도 깊어진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소울 메이트와의 사랑에 빠져든 두 사람이 봉착할 문제도 결국 '제도'로서 그들이 얽어매어진 결혼이다. 
by meditator 2016. 10. 7. 05:26

얼마전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은 자신이 tvn의 열혈 시청자라며 그 이유를 새로운 것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단 윤여정씨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아예 tvn에 채널을 고정해 놓는 사람들도 있다. <시그널>이 tvn에서 방영했으니 망정이지, 공중파에서 했다면 아마도 '러브 라인'에 치중했을 것이라는 우스개처럼 공중파 드라마하면, '사랑 이야기'라는 공식이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조기 종영한 <뷰티플 마인드>의 경우 애청자들은 차라리 ocn이나 tvn으로 갔다면 드라마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 안타까워 했으니. '신선한 시도'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tvn 을 비롯한 케이블 드라마의 성공은 곧 공중파의 위기가 되었다. 주중 미니 시리즈가 20%를 넘기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쉽지 않은 상황, 안되면 심지어 케이블보다 낮은 3%의 수모를 겪는 상황에서, 그 위기를 타파하고자 공중파가 꺼내든 칼은 바로, 케이블의 인기 작가들의 공중파 유입이다. 




<W>의 송재정 작가 
그 대표적 작가가 바로 얼마전 종영한 <W>의 송재정 작가다. 송재정 작가는 1998년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똑바로 살아라(2002)>, <거침없이 하이킥(2007)>, <크크섬의 비밀(2008)> 등 공중파에서 시트콤을 주로 집필해왔다. 그러던 중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를 시작으로 TVN으로 자리를 옮겨 미니 시리즈를 전환을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의 인연이 현대에 다시 만나 이어지는 '운명적 사랑'을 통해 방영 당시는 물론, 종영이 된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TVN의 작품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의 송재정을 있게 한 것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2013년 방영된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이다. 향 9개로 20년전 과거로 돌아가 미스터리한 인연의 끈을 풀어가는 이 드라마는 '시간'을 매개로 삼는다는 점에선 <인현왕후의 남자>의 바통을 이어받지만, 흔한 역사적 시간과 현재의 타임워프물 대신, 주인공의 주변 인물과 얽힌 20년이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얽히고 설킨 '인연'과 '운명'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왕세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활약을 다룬 <삼총사>의 부진을 딛고, 송재정 작가는 2016년 MBC로 자리를 옮겨 <W>를 인기몰이를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역사적 인물의 타임 워프를  다뤘던 송재정 작가는 <나인>을 통해 주인공 가정사의 비밀이 벌어진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송재정 작가가 <W>에선 시간 대신, 현실과 웹툰이라는 '공간'적 상황을 등장시켜 다시 한번 젊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다. 2016년 서울이라는 공간은 같지만 만화 속 등장인물인 강철(이종석 분)과, 그의 열혈 독자 오연주(한효주 분)가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과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이렇듯 송재정 작가의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미스터리와 운명적 사랑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나인>에서 미스터리한 운명을 풀기 위해 진력했던 주인공은 이제 공중파로 오면, '사랑'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웹툰과 현실 세계를 오간다. 덕분에 <나인>의 치밀한 전개를 기대했던 전작의 시청자들은 <W>의 전개가 어설프다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양한 연령대를 흡인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전개와 스타 배우들의 러브 스토리가 <나인>과 다른 <W>의 장점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간 공중파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송재정 작가의 공중파 재입성은 의미있다. 엉성하던 혹은 단순하든 <W>는 일부 매니아 층을 거느렸던 <나인>과 달리, 최고 시청률 13.8(7회 닐슨 코리아 기준)를 찍으며 동시간대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 가서 9.3%(16회)까지 하락한 시청률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이는 송재정 작가의 차기작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권음미 작가
송재정 작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역시나 MBC 월화 드라마로 돌아온 권음미 작가이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살인을 <시그널>에 앞서 다루어 화제를 일으켰던 <갑동이>의 작가이다. <살인의 추억>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갑동이, 그 진범과 카피캣의 물고 물리는 흥미진진한 스릴러는 TVN 장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권음미 작가 역시 송재정 작가처럼 공중파 출신이다. 2008년 <종합병원>으로 첫 발을 내딛은 권작가는 이후 이제는 범사가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재벌가의 이면을 파헤친 <로열 패밀리(2011)>를 집필했다. <로열 패밀리>에서 크리에이터로서 박상연, 김영현 작가의 도움을 받았던 권작가는 이후 TVN으로 이적하여 드디어 자신의 색채가 듬뿍 담긴 <갑동이>를 통해 권음미라는 작가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연 권음미 작가는 역시나 공중파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9월 26일부터 <캐리어를 끄는 여자>를 시작했다. 



독특하게도 사법 시험에 매번 미끄러져 사무장이 된 여자 차금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권작가는 앞서 <갑동이>처럼 잡히지 않는 연쇄 살인마를 최종 보스로 선정한다. 경찰의 손아귀를 비웃듯 그 뒤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주인공을 지켜보며 그의 목을 죄어오는 설정은 <갑동이>에서 <캐리어를 끄는 여자>로 이어진다. 하지만 좀 더 장르물의 색채가 강했던 <갑동이>와 달리, 역시나 공중파라는 다중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캐리어을 끄는 여자>는 그보다는 말랑말랑하게 로맨틱 코미디와 법정 드라마, 그리고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이혼녀가 된 차금주(최지우 분)와 그를 스카웃하여 함께 미지의 범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파파라치 언론 대표 함복거(주진모 분), 그리고 풋내기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의 삼각 관계와 협업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다. <원티드> 등의 스릴러 드라마들이 고전했던 것과 달리,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런 미스터리물의 단점을 로코라는 당의정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고, 이제 3회에 불과하지만 압도적 <구르미 그린 달빛>을 제치지는 못하지만 동시간대 2위까지 치고 오르는 성과를 보건대 어느 정도 그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듯보인다. 


이에 앞서 TVN에서 <로맨스가 필요해>시즌을 썼던 정현정 작가가 이미 KBS2로 넘어와 <연애의 발견>에 이어 주말극 <아이가 다섯(2016)>을 선보이는가 하면, 일찌기 JTBC를 통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하명희 작가는 그 이후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 사회>, <닥터스>까지 공중파의 인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정현정 작가나 하명희 작가가 특유의 '사랑 이야기'로 케이블에서 공중파로 재진입에 성공했다면, 위의 송재정 작가나, 권음미 작가의 경우는 그간 공중파가 시도하지 않았던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공중파 드라마의 경직된 영역을 뚫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작가들이 애초에 그 시작이 대부분 공중파였고,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케이블을 통해 드러냈듯이, 그 반대의 경우로 그간 공중파에서 작업을 하다, 편성이 여의치 않자 케이블로 가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청춘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할 수 있다. 

by meditator 2016. 10. 4. 06:22

10월 2일에서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을 넘어가는 밤 11시 40분, kbs 드라마 스페셜  2016 두 번 째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 주 80년대의 학교로 갔던 단막극은 이번 주 또 다른 시대, 현재의 학교로 시선을 옮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말도 안되는 학칙으로 학생들을 얽어맸던 학교는 이제, 그 보이는 규칙 대신, 이른바 '짱'이라는 학교 폭력의 또 다른 권위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다.


클리세가 된 유구한 학교 폭력 
<빨간 선생님>이 그 배경을 여자 고등학교로 삼아서 그랬을 뿐이지, 이제는 전설이 된 영화<말죽거리 잔혹사>의 그 '잔혹'한 배경이 바로 개발 열풍이 한참 불어제치던 80년대의 말죽거리, 오늘의 양재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고 보면, 정권보다 그 생명력이 유구한 게 '학교 폭력'인 셈이다. 그리고 <학교> 시리즈를 비롯하여 주로 남자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치고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루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으니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학교 폭력은 이제 거의 '클리셰'에 가깝다. 이 '뻔한 소재'에 대한 고민을 <전설의 셔틀>은 '희극(comedy)'이라는 장르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소개에 따르면 '명실상부, 자타공인' 명성 고등학교의 짱 조태웅(서지웅 분), 그의 천하독존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는 빵 셔틀을 위해 달리는 학생들의 급박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빵을 토스하며 조태웅 앞에 빵과 딸기 우유를 대령하는 학생들, 하지만 조태웅은 그런 학생들의 단말마적 경주에 대해 시간을 재며, 다음에는 좀 더 분발하라 으름짱을 놓는다. 그렇게 '권위'의 조태웅이 선생님 앞에서도 여유롭게 빵을 베어무는 그 반에, 이미 소문으로 17대 1로 학생들을 때려눕혔다 하는 서울의 강찬(이지훈 분)이 전학을 온다. 대뜸 새롭게 등장한 '전설의 주먹'을 눈빛으로 선제 공격하고 나선 조태웅과 달리, 피씨방에서부터 조태웅과 실랑이를 벌이던 조폭인 듯한 다짜고짜 끌고나가 때려눕히는 것에서부터 강찬은 태웅의 세계에 친밀하게 스며들어 온다. 하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기 힘든 법, 찬의 관용적인 태도는 태웅의 강팍한 태도와 대비되며 태웅 일인독재 하에 신음하던 학교 아이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데.....

'희극'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풍자'와 '해학'이다. 나아가 '페이소스'도 좋은 희극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런 그저 웃기는 것을 넘어 진짜 희극의 맛을 위해 <전설의 셔틀>이 등장시킨 캐릭터는 바로 한때 빵 셔틀로 자살까지 생각했었으마 전학이라는 인생 역전의 계기를 통해 다시는 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17대1의 일진으로 자신을 조작한 전학생 강찬의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태웅과 아이들 앞에서는 강한 눈빛을 부라리며 전설의 짱인 척 하다가 뒤돌아 서며 그 상황을 모면했다, 혹은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안도, 혹은 기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찌질한 한때 빵셔틀이었던 이면을 보여주는 강찬의 이중적 캐릭터가 이 학교 폭력을 희화화한 <전설의 셔틀>의 묘미이다. 

하지만 그저 잘 속아넘겼던 안도의 묘미는 기존의 태웅과 달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 어쩔 수 없이 태웅에게 당하는 아이들을 위기에서 번번히 구출해 주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강찬에 대한 아이들의 호의, 그리고 뜻하지 않게 조우하게 된 찬이로 인해 빵 셔틀이 되었던 서재우(김진우 분)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순탄하게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 일진 흉내를 냈던 강찬이 결국 조태웅과 맞장을 떠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캐릭터는 흥미롭고, 이야기가 재밌긴한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 다시 빵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작하고 소문을 퍼뜨려 17대1의 전설적 영웅이 되어 나타난 강찬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하지만 극 초반 그런 강찬의 캐릭터와 그가 조태웅 그룹의 일원으로써 겪는 해프닝으로 끌고가는 전개는 어쩐지 좀 버거워 보인다. 그의 지난 빵 셔틀로서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이제 일진으로서 난처한 상황이 빚어내는 아이러니와 거기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강찬의 고군분투는 분명 신선하지만, 그런 서사의 반복 혹은 점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끌고가기엔 좀 버거워보였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를 선생님의 대사로 되풀이하여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유오성으로부터 신입생 유준상 등의 카메로 군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것이 애초의 서사의 단조로움인지, 연출의 단순함인지, 아니면 연기의 단면성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는다. 



외려 조태웅과 일전이 끝난 후 그때야 비로소 서재우와 둘이 앉아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이야기들, 공부만 하던 엄친아였던 서재우가 먼저 학교에서 늘 얻어터지던 강찬에 대한 폭력을 외면해서 미안했다던 속내와 그런 서재우에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빵 셔틀의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던 강찬의 피치못했던 상황에 대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서재우 역시 강찬이 떠넘긴 빵 셔틀, 즉 학교 폭력의 희생자로 전학을 택한 듯한데, 그 사연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강찬의 보조적 캐릭터로만 소모된 점이 극을 단조롭게 만든데 일조한 듯 보인다. 

<전설이 셔틀>이 학교 폭력을 그려내는 방식은 <목포는 항구다> 등의 조폭 코미디와 같은 방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주인공이 다른 집단에 들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그로 인해 해프닝을 버이게 되는, 즉 극 속의 폭력은 심각하지만, 몇 번의 해프닝을 통해 희화화되고, 쉽게 마음을 나누고 해소되는 갈등들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전설의 주먹으로 속여낸 강찬은 조태웅과 맞짱을 뜨게 되는 위기에서 뜻하지 않은 서재우를 비롯한 학생들의 도움과 역시나 우연히 내지른 발차기로 조태웅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런 강찬과의 일전에서 패자가 된 조태웅은 '보복' 대신 곱게 강찬의 친구로 거듭나고, 학교는 평화를 되찾았다는 '동화'같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런데 한때 옥상에 올라가 자살마저 생각했던 강찬의 인생역전을 '가볍게' 그려내는 방식이 그 상황을 그저 타자로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그 당자사에겐, 그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소모하는 방식이 아닌가란 우려를 덧붙이고 싶다. 특히나 현재 사회문제로서 '폴리스'가 학교 안에 상주해도 쉬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소재적'으로 접근한 방식이 아닌가에 대한 노파심이다. 

by meditator 2016. 10. 3. 15:32

지난 1월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변함없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사라진 '골목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일으켰고, 추억이 된 그 시절의 학창시절과 문화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왜 하고많은 80년대의 시간 중에 88년이었을까? 그저 그리운 '추억'만의 이름으로 그 이전 시대를 불러올 수 없었던 이유를 9월 25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빨간 선생님>이 답해준다. 




<빨간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장소는 문화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 경상도의 한 여자 고등학교이다. 85년은 3s 정책(섹스, 스포츠, 스크린 등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배기 정책')의 정점이 된 '어우동(감독 이장호 )'이 흥행에 성공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정책과 달리, 일상의 삶은 <빨간 선생님>에서 인터넷도 없던 시절 솟구쳐오르던 학생들의 호기심이 학교 훈육의 대상으로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통제의 눈을 피해 '성'에 대한 궁금증을 이른바 '빨간 책'을 통해 풀었고, 그 '빨간 책'을 둘러싼 웃지못할 해프닝을 드라마 스페셜 <빨간 선생님>은 풀어낸다. 

변태남 사랑에 눈뜨다. 
주인공은 김태남(이동휘 분) 선생, 노총각 선생, 웬만한 여학교의 노총각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인기남일 만도 하지만, 그의 별명은 '변태남', 한창 호기심많은 여학생들에게 그는 고루하고 완고한 '단속'의 상징일 뿐이다. 게다가 가르치는 과목조차도 '수학'이다. 교감 선생님에게 '총애'를 받는 그는 앞장서 학생들을 '다잡았'으며, 그 수단으로 '매'는 일상이었고, 온갖 언어적 모욕과 수모는 그의 특기였다. 아, 노골적인 촌지와 편애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제 아무리 노총각 선생이라 해도 여학생들에게 그는 '로망'은 커녕 '원흉'일 뿐이다. 특히 아버지가 안계신 장순덕(정소민 분)에게 다음에는 아버지를 모셔오라며 가슴에 못을 한번 더 박는 말을 무신경하게 내뱉는 그에게 반골 기질이 다분한 순덕은 '선생' 취급을 아예 하지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머리 길이를 가지고 한바탕 학생들을 뒤집은 그가 퇴근 후 우연히 들른 책방, 거기서 그의 눈에 띤 한 권의 '빨간 책'이 있었으니 바로 장군의 아내와 부하가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제목에 솔깃해 몰래 책을 사온 김선생, 문제는 그가 독서 이후 함부로 버린 그 책이 순덕의 손을 거쳐 성문화에 갈급한 전교생에게 순식간에 퍼져 버린 것. 장군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서재 앞에 등장하는 그 순간에, '계속'이라는 말로 1권을 마무리한 그 책의 다음 편에 대한 갈증은 결국 아버지의 타자기를 유품으로 가진 순덕에게 2편을 쓰는 동력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순덕의 창작 생활은 태남의 눈에 띄게 되는데. 

지금까지 태남의 방식대로라면 당연히 순덕을 비롯한 그 '빨간 책'을 돌려 본 학생들을 '취조'하듯 닥달하며 처벌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1권에 감동받았던 독자 태남은 예의 그 훈육 방식 대신, 순덕에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도 하라는 말까지 돌려 말하며 순덕 버전 '빨간 책'의 또 한 사람의 독자가 된다. 심지어 '좀 더 야하게'라는 후기까지 적으며. 

하지만 독자였던 태남과 달리, 그 빨간 책을 알게 된 교감은 그 책의 저자를 색출하고자 하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뒤져 타자기를 가진 순덕의 집으로 선생들과 향한다. 하지만 정작 순덕의 집에서 찾은 타자기는 빨간 책 속편을 친 그 마침표가 없는 타자기가 아니었다. 순덕의 타자기가 무사했던 이유는 바로 애독자 김선생의 기지 덕분. 그 일로 김선생은 순덕의 가정 형편을 알게 되고 순덕을 이해하고 이제 비밀 친구로 순덕과 편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쩌면 순덕의 신변에 닥칠 지도 모를 일이 걱정된 김선생은 책을 소각시키며 순덕의 잠시 잠깐의 재능을 좋은 길로 유도하고자 한다. 

변태남에서 참 스승으로의 비극적 행로
하지만 김선생의 우려는 그가 태워버린 책으로 잘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순덕의 학교를 벗어난 빨간 책은 날개를 달고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어느날 학교에 들이닥친 국가안전기획부, 이른바 안기부 요원은 장군에서 국가 원수가 된 그 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군 아내의 부정이 담긴 이 책을 국가 원수 모독의 혐의가 있는 '금서'라며 지은이를 색출하고자 한다.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갈 뻔한 빨간 책이 이제 금서와 불순분자가 되어 되돌아 온 것이다. 그 해프닝의 중심에 서게 된 김선생, 여전히 순덕에게 김선생은 교감 바짓가랭이 사이까지 들어가는 속물이지만, 김선생은 위기의 순간 자신을 던져 순덕을 구한다. 결국 '빨간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버린 김태남, 그의 진실이 순덕에게 닿기까지는 몇 년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학생이 쓴 빨간 책에 반해버린 웃긴 해프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해프닝이 벌어진 1980년대라는 시공간을 드러내며 웃지못할 비극으로 귀결된다. 교감에게 잘 보이면 장땡이었던 속물 선생님은 학생이 쓴 책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뜸과 동시에,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했고, 그가 되찾은 인간미는 그에게 '진정한 선생'으로서의 길을 되찾게 함과 동시에 처절한 댓가를 선물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순덕의 아버지에 이어, 좋은 스승이 된 김태남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행로는 바로 '인간적인 선택'이 비극을 담보할 수 밖에 없는 80년대 한국을 상징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응답하라>가 그리움과 추억만으로 그 시절을 소환할 수 없는 진짜 이유다. 

몇 달만에 돌아온 드라마 스페셜은 극본 공모 가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그간 tv 드라마가 그려내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와 시절을 담으며,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응답하라>의 그저 웃기는 이웃 친구였던 이동휘는 노총각 변태 선생님에서부터 참 스승으로의 성장을 '페이소스'넘치게 그려낸다. 웃음과 연민, 그리고 슬픔을 넘나드는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빨간 책이란 소재를 통해 비극적인 80년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 권혜지 작가와 유종선 피디의 조합은 최근 kbs 드라마 약진의 저력을 증명한다. 
by meditator 2016. 9. 26. 11:29

oecd 이혼율 1위의 국가, 하지만 현실에서 맞닦뜨리는 것은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융통성있는(?) 사고보다, 그 반대급부적인 '강고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 높아지는 이혼율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은 '가족'이요, '결혼'이다. 하지만, 그 '신봉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현실은 어떨까? 연예인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심만 들어도, 혹은 그 '바람'의 대상이었다는 의혹만으로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보다 욕으로 불리워지는 세상이지만,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드라마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은 숱한 불륜들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가 주중 미니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얼마 전 종영한 <굿와이프>, 미드를 각색한 이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 여주인공 김혜경(전도연 분)이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과 옛친구이자 현재의 동료인 서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애정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극중에서 김혜경은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중원과 키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작 미드 굿 와이프가 몇 시즌에 걸쳐 여주인공 앨리시아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과 달리, 단 16부작으로 김혜경의 일과 사랑을 다룬 <굿 와이프>는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보다, 결국 두 남자 사이에 불륜과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치중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사랑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굿 와이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륜'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이 화제가 되면서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네'라고 불리는 아내와 아내 몰래 딸을 그리는 아빠의 만남
9월 21일 시작한 <공항 가는 길>은 심지어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유뷰남, 유부녀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어차피 불륜 드라마'라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두 남녀의 두 번째 사춘기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두 기혼자가 주인공인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제작을 맡은 김철규 피디는 '불륜 드라마라고 확정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다.며,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위로'와 '관계'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21일 1회에 이어, 22일 방영된 2회는, 김철규 피디가 공언한 '위로'와 '관계'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승무원인 최수아(김하늘 분), 직장에선 똑부러지는 그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녀를 '자네'라 부르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그녀의 관계는 '부부'라지만 상하 관계에 가깝다. '기내식'처럼 아내가 랩으로 싸놓은 반찬으로 만나는 이들 부부는 하나있는 딸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빠의 욕심이 먼저다. 아내의 의견을, 그저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는 시어머니 앞에, 워킹맘 수아의 딸 수호작전은 역부족이다. 

그런 그녀 앞에 서도우가 나타난다. 국제 학교에 보내진 딸과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의 아빠, 그리고 그 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고통받는,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내와 소통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사소하게 그를 배려해주는 수아와 서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 1,2화의 내용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 하지만 부모라는 공통점만으로 함께 나눌 수 없는 부부, 거기서 벌어진 틈을 드라마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항공사 기장으로 국제화 시대에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욕망에 충실한 박진석과, 자신의 일에 열심이지만 소박한 가정을 꿈꾸는 그의 아내가 빚어내는 긴장과 딸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미스터리하게 딸을 어떻게든지 멀리하려하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그런 상황에서도 잔인하리만치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독기 사이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드라마는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런 소통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외로워진 두 영혼이 서로를 들여다봐주는 작은 소통을 통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으로서의 만남 이전에, '위로'와 '관계'를 전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관계'의 전제 속에,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이들 '부부'는 무엇일까? 하고. 

<공항 가는 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요즘 흔한 드라마의 템포에서 한 발짝 비껴선다. 남과 여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대신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눈 밝은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열리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반문한다. 아마도 이 느리게 감정을 쌓아가는, '욕망의 전차'로서의 불륜 드라마로서의 화제성도 부족할 지도 모를  이 드라마가 이 가을의 대표작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허허로운 마음에서 솟아오른 질문 한 자락이 있다면 한번쯤 귀기울여볼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게한다. '불륜'이라는 방패가 아니라, 김철규 피디의 바램대로, '성숙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드라마로 끝까지 완주해 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9. 23. 05:44

추석에 연이어 주말이 이어져 유독 길고 긴 연휴,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두 번 째로, 최근 <무한도전>무한상사로 파트너쉽의 건재를 보여준 장항준, 김은희 부부다.

 

<무한도전>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능이다. 언제나 화제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늘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들을 창출해 내왔다. 그런 <무한도전>의 여러 콘텐츠들 중 출연 멤버들이 회사원으로 등장하여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무한상사는 스테디셀러이다. 2011년 첫 선을 보인 무한상사탄생에서부터, ‘야유회’, ‘종무식과 새해인사’, 신입사워 gd, 그리고 뮤지컬 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2015년에는 나는 액션 배우다를 예고했지만 선보이지 못했던 <무한도전>은 그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듯 2016년 액션 블록버스터 무한상사를 방영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대장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2016년 무한상사를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이다.

 



1.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부부의 또 다른 콤비 플레이가 궁금하다면?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가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방영된 <싸인>을 통해서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범죄 스릴러물에 신선했던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싸인>은 이 새로운 설정을 뛰어넘어, 매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심지어 마지막 회에 주인공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기상천외한 엔딩으로 25.5%의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감독으로, 후반에는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며 협업을 펼친 두 사람의 <싸인>은 아직도 범죄 스릴러물의 대표적 작품으로 오르내린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호흡을 함께 한 것은 <싸인>이 첨이 아니다. 불운의 괴작으로 이 드라마를 봤던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위기일발 풍년빌라>tv 드라마로는 첫 작품이다. 2010년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케이블 방송국 tvn의 초창기 작품으로 풍년빌라라는 음산한 빌라를 배경으로 아버지에게 3000만원짜리 빌라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도 원치 않았던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오복규(신하균 분)의 해프닝을 그린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장항준 감독 특유의 기발함과 초창기 김은희의 스릴러적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풍년빌라>을 주행해 볼 일이다.


싸인        위기일발 풍년빌라

 

2. 김은희 작가하면 역시?

암만해도 최근 김은희 작가라 하면 올 한 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그널>이 떠올려 질 것이다. <미생>의 김원석 피디와 만나, 조진웅, 이제훈, 김혜수라는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 그리고 과거와의 대화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아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하지만 인간미넘치게 그려낸 수작이다.

하지만 <시그널>만이 아니다. 김은희 작가는 이미 <싸인> 이래 줄곧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또한 그 방식과 서사에 있어서도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싸인>에서 법의학자를 내세워 의 견고함에 자신을 내던지도록 했다면, 2012<유령>에서는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소지섭 분)을 내세워 사이버 세계권력에 대항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2014<쓰리데이즈>에서는 단 3일간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경제적 권력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손현주 분)과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경호원(박유천 분)을 통해 당시 세월호 사건 등으로 침통했던 상황 속에서 국가지도자에 대해 질문한다. 2016무한상사에서도 이어진 작가 김은희의 질문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묻혀져서는 안될 사회의 근본에 대한 물음들이다.

몇 편의 김은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재미로 보는 관전 포인트 하나, 김은희 장항준 부부의 친구이기도 한 장현성은 김은희 작가 작품에는 단골 손님이다. 그것도 주로 악역으로, 변호사로, 경찰국장으로, 경호원으로, 다시 경찰로 장현성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역 열전 또한 숨겨진 볼거리라 할 수 있다.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드라마의 제왕




 

3. 장항준의 단독 플레이는?

장항준은 김은희 작가와 함께 <풍년빌라>, <싸인>을 감독하기에 앞서 이미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후 <전투의 매너(2008)>등 몇몇 작품을 연출했지만 대중들의 뇌리엔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했던 장항준 감독은 tv로 넘어와 김은희 작가와 함께 연달아 두 작품을 한 후 서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달라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은희 작가와 작품적으로 이별한 장항준 감독의 첫 작품이자, ‘무한상사이전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의 제왕(2012)>이다. 최고 시청률 8.9%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김명민의 코믹한 연기와 드라마판의 까발린 이면으로 그 이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벤치 마킹할 정도로 아직도 종종 이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현실 사건으로 등장하며 종종 언급될 정도의 리얼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우리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블랙코미디를 맛보고 싶다면 장항준 감독의 <드라마의 제왕>을 권해본다

by meditator 2016. 9. 17. 15:05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드라마

 

추석에 연이은 주말,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몰아볼 수 있잖은가.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첫 번째로, 요즘 한참 상종가를 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구르미 그린 달빛

822일부터 kbs2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츤데레 왕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궁중 위장 로맨스 사극

<응답하라 1988>의 저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로 모성 본능을 울렸던 박보검이 왕세자로서 한껏 매력을 풀어내고,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왕세자 이영과 내시 홍라온의 감옥씬이 키스씬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했던 김유정의 성숙해진 면모, 그리고 남장을 할 여인네를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세자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 그것들을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내며 20%의 고지를 앞두고 있다.(6회 닐슨 코리아 18.8%)

 

구르미 그린 달빛

 

1-1.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사극이 궁금하다면?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란 드라마의 재미는 내시로 궁궐에 들어온 여자 홍라온이 가져온 긴장감이다. 궁궐에서의 만남 이전에 서로 해프닝처럼 얽혀진 인연, 그리고 궁궐에서의 조우, 친구인 듯, 신하와 왕세자인듯하며 위기를 겪어가며 이영과 홍라온의 맘이 깊어져 가는 이야기는 궁궐이라는 배경이 성균관으로 다를 뿐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로맨스 사극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다. 금서 배달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이선준(박유천 분)과 김윤희 아니 김윤식(박민영 분)이 과장에서 다시 만나 성균관의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은 로맨스 사극의 원형이 되었다. 운종가의 연애 비법서를 쓰고, 정치적으로 이영과 척을 지게 되는 가문의 자손 홍라온의 캐릭터는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홍라온의 키다리 아저씨역할을 하는 김윤성(진영 분)과 이영의 오른 팔 김병연(곽동연 분)이 이 두 사람과 엮어가는 이야기 역시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유아인 분)와 여림(송중기 분)와 두 주인공이 엮어가는 우정인 듯, 남녀간의 연모인 듯, 그리고 브로맨스를 연상케하는 지점, <성균관 스캔들>의 재미 포인트를 <구르미 그린 달빛>은 고스란히 옮겨오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의 참 스승이자, 김윤식 아버지와 함께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김윤식의 보호자로 등장했던 정약용이 같은 역할을 했던 안내상에 의해 다시 한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등장한다. 과연 이번에도 정약용은 <성균관 스캔들>에서처럼 참 스승과 여주인공의 보호자가 될까?


성균관 스캔들

 


1-2. 왕세자의 사랑이 궁금하다면?

똥궁전이라 칭해질 정도로 예와 법도따위는 나 몰라라 궁궐의 골칫거리인 세자 이영, 그런 이영과 비슷한 또 한 사람의 세자가 있다? 바로 신예 김수현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2012년작 <해를 품은 달>이 그것이다. <해를 품은 달><구르미 그린 달빛> 벌써 제목부터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두 작품은 정은궐의 로맨스 소설과 유지수의 웹소설로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이다. 하지만 골칫덩어리 세자 이영과 스승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악동 왕세자 훤은 비슷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무기력한 왕과 세자의 위치를 넘보는 무리들까지, 그런 정치적 위협 속에서 운명적으로 세자는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지만, 원치않는 사람과 결혼까지 해야하는 설정까지 두 작품은 흡사하다. 과연 이영은 이훤처럼 왕이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영으로 못다한 왕세자의 사랑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최고 시청률 42.2%라는 기록을 세웠던 <해를 품은 달>에 도전해 보심이!


해를 품은 달


 

 

2. 원작이 궁금하다고? 각색도 만만치 않다.

유지수가 쓴 <구르미 그린 달빛>웹 소설 1, 누적 조회수 42백만, 평점 9.9’를 기록하며 웹소설계의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총 다섯 권의 장편이다. 현재 바영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단 18부작, 장황한 서사의 원작 소설을 18부작의 깔끔한 스토리로 뽑아 낸 것은 바로 김민정, 임예진 두 사람의 작가다. 이들 두 사람의 작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앞서 역시나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성윤, 백상훈 피디와 함께 <후아유-학교 2015>를 집필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진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장담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평가받았던 <후아유>, 김민정, 임예진 작가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강추!

양념으로 김민정 작가가 쓴 드라마 스페셜 <happy 로즈데이(2013, 8, 14방영)>,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2013, 11,3)>도 한번 찾아보시길!



 

3. ‘예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연출이 궁금하다고?

150억이라는 엄청난 규모와 이미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보보경심-><구르미 그린 달빛>의 대결을 앞두고 세간에서는 전자의 압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유려한 화면에 담긴 두 젊은이들의 풋풋한 만남은 단박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같은 마치 청춘을 화면에 담은 듯 녹음이 흐드러진 화면은 청춘 로맨스 사극으로 <구르미 그린 달빛>에 걸맞는 배경 그 이상으로 작동한다. 보고있는 시청자들이 광합성이라도 하게 만들 기세의 푸른 화면만이 아니다. 라온이와 세자가 풍등 축제에서 조우하는가 하면, 거기서 또 윤성마저 얽힌 관계, 그리고 그런 젊은이들의 인연 위로 날아가는 풍등을 바라보는 왕의 근심까지,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감정을 절묘하게 배치하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이렇게 150억 대작을 소소한 준비로 대번에 ko시킨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전작은 무엇이었을까? 각색을 한 김민정, 임예진 작가와 함께 한 <후아유-학교 2015>가 그것이다. 그에 앞서, 김성윤 피디는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피디와 함께 2014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연애의 발견>도 연출했다. , 드라마 스페셜 4부작 <사춘기 메들리>도 놓칠 수 없다. 김성윤 피디와 함께 <연애의 발견>을 연출했던 이응복 피디는 또 다른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백상훈 피디와 함께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일찍이 2011<드림 하이 1>에서 백상훈 기획, 이응복, 김성윤 연출로 함께 팀웍을 갈고 닦은 사이다.

 

by meditator 2016. 9. 16. 18:11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최근 빈번하게 제작되고, 흥행에 있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연 '과거'를 보는 '시각'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과거'의 알려진 일부 사실을 '현재'의 잣대로 '편집'할 수 밖에 없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왜곡' 혹은 '오역'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e.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명제에 대해 주인공 에드워드가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해석을 내놓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최근 개봉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과거'를 빌미로 '민족'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근대적 산물인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것이 탄생하기도 전인 '조선'이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 가의 문제이다. 즉, 현재의 '민족적 감성을 부추키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에서 최근 한국 영화들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역시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진왜란 1592>는 현답을 제시한다. 




조선의 바다를 지킨 사람들
1회에서 선조는 도읍 한양을 버리고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평양성을 향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왜군에, 2회 선조는 다시 평양성을 버리고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이미 유성룡의 <징비록>을 통해 이미 알려졌듯이, 조선의 임금 선조는 서슴없이 자신의 나라 조선을 버리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다. 망한 조선의 왕족들처럼 그래도 자신은 강국의 그늘에서 거둬질 수 있으니 라며. 그렇게 임금조차 떨어진 짚신 짝처럼 버리는 나라, 과연 그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군에 의해 도륙당하는 조선의 바다에, 단 한 사람 아직 지지않는 장수가 한 사람 있었다. <임진왜란 1592>는 그 한 사람의 장수 이순신에 대해 굳이 설명을 덧대지 않는다. 그가 남긴 징한 기록 <난중일기> 속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었을 뿐인데,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1회 이순신의 몇 마디 말로, 그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려는 그 심정과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2회, 그런 이순신을 따라,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그려낸다. 

2회에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1회 도륙당하는 경상도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들을 짊어진 채 이순신의 군영을 찾은 막둥이 아빠(조재완 분)를 등장시킨다. '군영'이니 당연히 '민간인'을 들일 수 없는 형편, 하지만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짊어 진 아버지는 읍소한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런 그를 막아서는 병졸들, 하지만 이순신의 수하 이기남(이철민 분)이 호통을 친다.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 경상도에서 전라도 좌수영까지 그 먼 길을 찾아온 백성을 여기서 내치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며. 그리고 그런 이기남의 '군율'에 어긋난 행동을 이순신은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미 이기남이 보기에도 죽어가던 아이는 좌수영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귀선(鬼船), 즉 거북선의 첫 출정, 이순신과 좌수영의 야심작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배는 홀로 전장의 선봉에 서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기남이 귀선의 격군들에게 이 출정이 '죽을 자리'일 수도 있음을 알리고 살 길을 터놓는다. 그때 격군이 아닌 막둥이 아빠가 귀선을 뛰어 들어와 노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미 아이는 죽어버린 상황, 아내 역시 일찌기 왜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에게 귀선에 노를 젖는 일은 곧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왜군과 싸우는 일이었다. 막둥이 아빠가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받는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귀선의 격군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왜군을 향한 '복수'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노에 자신의 손을 묶는다. 

'민족'의 어설픈 이데올로기 대신, '민초'들이 지켜낸 나라 
바로 이 지점이다. 어설픈 민족주의 사관은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그와 그를 따라 전장으로 나갔던 이들을 '민족'이란 테두리로 묶어 세우려 하지만, <임진왜란 1592>가 그려낸 그날 전장의 그들을 묶어낸 것은 다름아닌 내 사람들을 잃은 그 '울분'이며, '통한'이다. 그리고, 임금조차 버린 나라에서, 군복을 벗지 않아 쉬이 낫지 않은 상처를 무릎쓰고 지지않고 싸우려는 이순신은 바로 그들이 '조선'이라 일갈한다. 그들이 죽지 않아야, 죽지 않고 이겨 살아돌아와야 조선이 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나랏님이 버린 조선에서 바다에서 이순신과 그의 군사들이 7년동안 단 한번도 지지않는 가운데, 도륙된 육토를 지키려고 나섰던 사람들은 바로 '의병'들이다. 신분제 사회 조선, 늘 양반에게 빼앗기기 바빴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땅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떨쳐일어선 것이 '의병'이다. 역사는 그들의 지도자중 일부였던 '양반'을 중심으로 '의병'을 기록하지만, 그 지도자들을 따라 목숨을 바쳤던 다수의 '의지'들은 바로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임진왜란 1592> 2회가 그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 '의병'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그 마음을 드라마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1회에 제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역전될 수 있는가를 이순신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2회에는 그 한 사람의 지도자를 뒷받침해주는 '그들'의 헌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애쓴다. 이순신의 전과가 커져갈 수록, 그를 상대하고자 하는 왜군의 규모도 나날이 커져만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곱 장수 중 한 사람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111척의 배을 이끌고 이순신을 향해 온다. 그런 왜군에 대항해 싸울 이순신의 배는 불과 26척. 

1회에서도 양 측의 전술과 무기 배치를 통해 이순신의 승전을 재해석해냈던 <임진왜란 1592>는 2회에서도 그 '사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 아직 전열이 채 다듬어 지지 않은 조선 수군, 선봉장인 귀선과 이기남을 비롯한 귀선의 군사, 격군들은 이 선봉에서 자신들의 귀환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주먹질을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던 이기남 장군의 저돌성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홀로 79척의 적진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철심과 단단한 송판으로 무장을 했다해도 왜군들이 쏘아대는 조총의 물량 공세에 결국 귀선의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는 목숨을 잃고만다. 



그렇게 귀선이 목숨을 던져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 뒤를 이순신이 뒤따르고, 26척의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이순신의 대장선은 불과 50보의 사이를 두고 첫 포성을 울린다. 하지만 그도 잠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시 한번 포를 장전하는 사이, 왜군의 전략 '키리코미' (배에 올라타 칼로 사람을 베어 죽이는 전술)명령을 내린다. 이미 사전 함포 사격 연습에서 일본의 키리코미에 장전이 이겨낼 수 없음이 드러난 상황, 바로 그때 이순신은 배를 돌리고, 반대편에 장전되어 있던 함포를 포격한다. 불과 26척의 배로 학익진을 만들어 낸 그 전략이 가장 절묘하게 진가를 발휘하는 그 지점, 그 결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59척을 배을 잃고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승전보의 팡파레 대신, 이순신이 그의 난중일기에 남긴 귀선에 탄, 그리고 죽어간 병사들의 모습과 그 이름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 승전이 바로 순천에서 온 이기남을 비롯하여 막둥이 아빠, 박개춘, 조언부 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출전 전의 잠시나마 흥겨웠던 그 순간들을. 이순신이 장궤에 자신의 이름을 뺀 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승전이 그들로 인해 가능했음을 조정에 올리고, 난중일기에 남겼듯 드라마도 이 장면을 통해 조선의 바다에 있던 '그들'을 증명해 낸다. 나랏님도 버린 나라를 지킨 '민초'들을. 나라의 진짜 주인들을. 시대를 구한 영웅 이순신의 필요충분 조건이 된 사람들을. 

by meditator 2016. 9. 9. 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