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인격 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즉 사이코패스라는 정신 의학적 용어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일상 용어가 되었다. 허긴 아이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 그 순간 머리 롤을 말고 있는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전횡을 부렸던 모녀의 행태를 보면, '사이코패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tv 드라마들은 극의 가장 결정적 역할을 '사이코패스'인 악인에게 맡겨 드라마를 굴러 가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고인>의 차민호(엄기준 분)으로 한 주를 열고, 종영한 <미씽 나인>의 최태호(최태준 분)가 그 바톤을 받고, 그 뒤를 새로이 시작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미지의 마스크 쓴 연쇄 납치 살인마와 <보이스>의 모태구(김재욱 분)가 어깨를 겨룬다. <미씽 나인>이 종영해서 섭섭하다고? 걱정마시라. 아마도 분명 그를 능가할 또 다른 사이코패스가 등장할 것이고. 여전히 '사이코패스'와 함께 하는 일주일을 완성해 줄 것이다. 




측은과 미친 놈을 오가는 차민호 
적을 잡기 위해 스스로 감옥 행을 택하는 살인마라니! 검사 박정우(지성 분)와 차민호의 숨막히는 대결은 <피고인>의 주요한 동력이다. 형을 죽이고 스스로 형 차선호인 척 하는 차민호에게 박정우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박정우를 차민호는 그의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아 '사형수'로 만들어 버리며 승기를 쥔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재심을 포기한 박정우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겠다면 형의 아내가 벌인 교통 사고의 죄를 핑계로 감옥 행을 택한 차민호의 기상천외한 선택은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며 <피고인> 시청률 상승에 견인차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박정우의 아내를 죽이고 딸을 뒤쫓는 파렴치한 차민호지만, 늘 형의 우월한 존재에 밀려 사랑하는 이까지 빼앗기고 결핍된 애정에 목말라하는 차민호는 뜻밖에도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딸을 다시 빼앗긴 박정우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의 친자식을 이용하고 그 수에 무방비하게 당하는 그는, 묘하게 '인간적'인 사이코패스이다. 



태호가 또!!
중국 순회 공연을 떠난 연예 기획사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시작된 <미씽 나인>은 일찌기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이래 또 하나의 신선한 괴작의 탄생을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무인도에 갇힌 생존자들 사이에서 발군의 생존력를 보인 '최태호'로 인해 또 한 편의 <왔다 최태호>가 되고 말았다. 

부상당한 기장에 이어 동료 열, 윤소희, 서지아, 김기자, 선원 등 그의 살인 행각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무인도 행 이전에 그는 서준오의 잘못으로 알려진 재현의 죽음도 사실은 그의 책임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살인으로 덮으려는 최태호, 그의 능력치는 '살인 병기'에 그치지 않고, 절벽에서 떨어져도, 돌에 맞아도, 칼을 맞아도, 심지어 홀로 무인도에 남겨져 있어도 'I'll be back'한다. <미씽 나인> 속 그는 막장 드라마 <왔단 장보리>처럼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동력으로 작동한다. 심지어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마지막 회 그의 참회까지. 드라마는 <불사의 최태호전>이 되고만다. 

본투비 사이코패스 
하지만 박정우의 머리 위에서 노는 듯한 차민호도, 죽인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죽이고 보는 최태호도 어쩐지 <보이스>의 모태구 앞에서는 '쫄'리는 듯 하다. 아마도 그건 박정우나, 최태호에게는 일말의 '인간적' 지점에 보이는 반면, 모태구는 일찌기 어린 시절 자신을 보고 짖었다는 이유만으로 키우던 개를 마구 때려죽이던 어린 시절 이래, '살인' 충동을 위해 '인력'까지 조달하고, 조력자를 두었던 '본투비 살인마'라는 설정 때문이다. 

피해자의 피에 목욕을 하고, 피해자를 죽이는 과정을 즐기며, 자신의 목적에 따라 시신을 훼손하고, 피해자의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유린'하는 그의 행태는 앞서 두 사람의 사이코패스와 궤를 달리 한다. 아마도 이들 사이코패스의 '레벌'을 서로 견준다면, <보이스>의 모태구가 가장 앞지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예단은 금물이다. 새로이 등장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마스크 납치범도 만만치 않다. '파놉티콘' 형태의 사설 감옥을 만들어 놓고, 마치 푸른 수염처럼 '신부'들을 납치해 감금하는 그의 행태는 또 다른 새로운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알린다. 





이렇게 월화수목금토일, 우리의 드라마 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는 사이코패스들. 하지만 이젠 그들이 정치 세상 속의 사이코패스들처럼 이젠 낯설지 않게 당연한 '악의 주구'로 다가온다. 덕분에 드라마들은 '쉽게' 그들의 악행에 기대어(미씽 나인) 드라마를 꾸려가고, 새로운 드라마들은 보다 더 잔인하게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기 위해 고민하다 도를 넘기도 한다.(보이스) 또한 이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한결같이 '권력'의 비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비록 형을 죽였지만 형인 척 차명 그룹의 그늘 아래 숨은 차민호, 아들이 잔인한 살인마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있는 한 아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태구의 아버지이자 성운 통운 회장은 바로 우리 사회 '사이코패스'들의 온상이 '돈'과 '권력'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된 그 사람과 그의 소울메이트의 온상이 청와대였던 것처럼. 

물론 조금 더 색다른 사이코패스, 조금 더 잔인한 사이코패스를 들고 나오며 사이코패스의 진기명기를 벌이는 드라마들, <미씽 나인>은 스스로 자충수를 두고 말았지만, 결국 더하냐, 덜하냐의 차이일 뿐, '악인'에 기대어 드라마를 이끌어 나간다는 지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우병우나 김기춘 등의 모습에서 제기되고 있듯 '특별한' 사이코패스 보다 어쩌면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배태하는데 문제가 된다는 반성이 잇따르고 있는 시점에서, 드라마들도 조금 더 '평범한', 하지만 '구조적인' 악의 문제에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란 바램을 가져본다. 
by meditator 2017. 3. 10. 15:56

11시대로 시간대를 옮긴 탓일까? 아니면 역시 박보영일까? '커밍순'까지 방영하며 홍보를 했던 ,힘쎈 여자 도봉순>이 방송 2회만에 시청률 5%를 넘었다.(닐슨 유료 가구 기준 5.798%) 박보영의 전작을 함께 했던 유제원 피디의 <내일 그대와>가 매주 시청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나 '박보영'이라는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8시 반의 시간대를 포기한 것일까란 설레발이 나올 정도다. 




도봉순과 나봉선의 박보영 표 연기 
박보영은 <힘쎈 여자 도봉순> 여자 주인공 도봉순을 연기한다. 행주대첩 당시 행주 치마에 돌멩이 대신 바윗돌로 적을 내려쳤다는, 모계로 이어내려진 괴력의 소유자다. 이 '걸크러쉬'한 능력의 슈퍼 히어로지만, '괴력 오용'의 경우 '괴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징크스로 인해 늘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에 급급하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현실의 도봉순은 그저 고졸 출신에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으면서도 게임 기획자라는 포부를 지닌 '아프니까 청춘'일 뿐이다. 하지만 늘 그녀 주변에서 벌어진 뜻하지 않는 해프닝들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괴력을 숨길 수 없게 만드는데, 드라마는 바로 그 '괴력'의 남발로 인해 얽혀진 '아인 소프트'ceo 안민혁을 비롯한 갖가지 사건으로 엮어져 간다. 

이렇게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박보영이 맞은 역할은 현실에서는 영락없는 88만원 세대의 청춘이지만, 알고보면 '현실을 뛰어넘는' 히어로급의 존재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이 설명은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2015)>의 캐릭터에 입혀보면 어떨까? 고시원을 전전하며 28살의 나이에 주방 보조를 하게 되는 나봉선과 상당히 흡사하지 않은가? 나봉선 역시 '귀신들이 자꾸 말을 거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을 보던' 나봉선은 이제 '귀신 대신 괴력'이란 특이한 캐릭터 도봉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봉선이든, 도봉순이든 현실에서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치이고, 사회적으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점에서 또한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힘쎈 여자 도봉순>과 <오 나의 귀신님> 역시 기본적으로 '로코'에 '빙의물'과 '범죄물'이 결합된 복합 장르다. 그래서 주인공인 박보영은 '빙의'되어 누군가의 사연을 해결해주며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던 셰프 강선우와 사랑을 엮어 나갔다. 마찬가지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도봉순 역시 그 '괴력'을 빌미로 아인 소프트 ceo 안민혁(박형식 분)의 보디가드가 되는가 하면, 어릴적 친구이자 짝사랑인 형사 인국두(지수 분)와는 사건을 매개로 얽히게 된다. 이렇게 드라마는 기본적 구성에 있어서는 '연애물'이지만, 그 전개 방식은 신선한 소재의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접근한다. 실제 1회 각 캐릭터를 소개에 치중했던 드라마는 2회에 들어서며 연쇄 살인범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극의 긴장감을 높여간다. <오 나의 귀신님>이 서브남 캐릭터 대신 빙의된 최성재(임주환 분)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박보영의 영리한 전략 
실제 <힘쎈 여자 도봉순>이나,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이 연기하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고통받지만, 사랑하는 이 앞에선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보영이라는 이름을 아로새기는 그 시점부터 어쩌면 박보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박보영이 스스로 연기 변신으로 시도했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2015>와 같은 작품은 외면받았다. 그렇다고 박보영 만의 아우라가 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속 스캔들(2008)>로 이름을 알리고, <늑대 소년(2012)>으로 흥행의 정점을 찍었지만, <피끓는 청춘(2013)>, <열정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로 박보영의 캐릭터는 '소진'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랬던 박보영이 뒤늦게 tvn의 <오나의 귀신님>으로 돌아와 박보영만의 사랑스러움을 한껏 만개한다. 물론 사랑스러움못지 않게 김슬기인지 박보영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천연덕스러운 현실 연기 또한 맛깔나게 살려냈다. 그리고 빙의된 천연덕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을 천하장사 괴력을 가진 아르바이트생 도봉순을 통해 재연된다. 캐릭터는 흡사하되, '귀신'과 '괴력'이라는 조건을 달리하며, 박보영 표 '로코'의 지루함을 피해가는 영리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2회의 시청률에서 보여지듯 박보영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해 내고 있다. 이 전략이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도 먹힌다면, 어쩌면 박보영 역시 공효진처럼, 자신만의 로코 연기로 명불허전의 역사를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의 '쿵'한 사랑스러움을 조정석의 원맨쇼급 셰프 연기와 김슬기의 천연덕스러움이 뒷받침한 반면에, 이제 2회를 마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박형식과 지수의 풋풋함과 멋짐 이상 박보영의 연기를 '에스컬레이션' 해준 상대방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보여진다. 그 덕분일까? 이미 2회지만, 박보영 표 연기가 드라마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덕분에 박보영은 빛나지만, 그 빛의 지속성이 걱정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1회에서 '걸크러쉬'했던 도봉순이, 2회에서 짝사랑 연인을 돕다 피해자를 놓치듯 '민폐적' 소인을 드러내는 것 역시 <힘쎈 여자 도봉순>의 과제가 될 듯하다. 

물론 이런 우려조차도 <욱씨 남정기(2016)>를 통해 신선한 '걸크러쉬' 캐릭을 창조해냈던 이형민 피디가 있는 한 접어두어야 할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선한 여성 캐릭터의 <욱씨 남정기>든, 혹은 신선한 소재의 로코 <오나의 귀신님>이었든 결국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밀고 나간 것은 신선하지만, 탄탄한 이야기였다. 부디 <힘쎈 여자 도봉순> 역시 이들 작품처럼 박보영 표 연기의 성공작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7. 2. 26. 15:32

'감옥'은 폐쇄적 공간이다. 그러기에 그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낸 일찌기 스티브 맥퀸의 <대탈주(1963)>에서부터, <쇼생크 탈출(1994)>까지 탈출의 감동을 다룬 영화들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감옥'을 배경으로 시즌 5까지 이어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도 있으니까. 그러기에 상고를 포기하고 '탈출'을 기획하기 시작한 박정우(지성 분)의 결심으로 이제 <피고인>은 본격적으로 '프리즌'을 '브레이크'하고, 바깥 세상에서 통쾌한 복수극을 벌여나가나 했다. 그런데 웬걸, 16부작의 딱 반을 넘긴 8회, 바깥 세상에서 박정우를 옭죄이던 차민호(엄기준 분)가 그의 두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아버지의 순애보 
여전히 박정우의 '수난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살인 혐의는 재심 공판에서 친구 강준혁(오창석 분)이 튼 '자백' 동영상으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결국 '상고'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제 사형수 낙인과도 같은 붉은 3866번호가 박힌 푸른 죄수복을 받은 처지의 박정우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 그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덜어졌다. 

무엇보다 기억도 잃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박정우가,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며 비록 이젠 재심마저 포기한 사형수의 처지지만, 그러기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형이 왜 죽어요'라는 의문의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성규(김민석 분), 다시 찾아온 그를 보고 박정우는 자신의 딸 하연이가 생존해 있으며 그가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자백 동영상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비록 아내는 죽었지만 딸 하연을 살리기 위해 피치못하게 자백을 해야만 했던 사실을 이젠 박정우가 깨닫게 되며, 그는 여전히 감옥에 갇힌 처지이지만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탈옥'마저 감행하려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즉 박정우의 상고 포기는 그를 지켜보는 '적'들에게 '포기'라는 항복 선언을 통해 그에 대한 안심을 주려는 '페이크'인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자 하는 일타이피의 '작전'이다. 비록 아내는 지키지 못했지만 딸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곡진한 아버지의 순애보다. 


살인자의 일타이피 순애보 
그렇게 이제 '박정우'버전 '프리즌 브레이크'가 시작되나 했는데 박재범 작가는 보기좋게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며 8회를 마무리한다. 그간 노심초사하며 죽은 형 코스프레를 하며 차명그룹 장남 행세를 하던 차민호. 하지만 그가 전혀 몰랐던 형의 여자 제니퍼 리(오연아 분)가 등장하자, 결국 예의 '사이코패스'적 행태를 되풀이하고야 만다.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도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던 형의 애인을 흔한 '매수' 대신, 영원히 입을 다물게 만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 그가 걱정한 것은 '자신의 살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살인 과정이 중계된 핸드폰을 듣고 있던 형의 아내이자 자신의 첫사랑 나연희(엄현경 분)였다. 

살인자의 순애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충격으로 술에 취해 음주 운전을 하다 사람에게 친 아내를 대신하여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물론 운전대를 잡고, 경찰서 취조실에 들어설 때까지 차민호가 감옥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수사를 강준혁이 맡은 것처럼 그는 무사히 '법망'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취조실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그는 '법꾸라지' 대신, 자신의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 8회 드디어 드러났듯 박정우의 아내를 죽였듯, 그리고 오연아를 죽였듯, 이제 '도발'을 포기한 박정우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기 위해 감옥행을 택한 사이코패스 재벌이라니! 신선하다. 


8회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박정우 vs. 그런 박정우를 손아귀에 틀어쥔 차민호에 의해 조종된 조력자들간의 일종의 대리전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박정우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온 차민호 vs. 사건의 전말을 자각한 박정우의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감옥 속 조우는 차선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차선호인척 하는 차민호를 쫓는 검사 박정우의 추격전에서, 감옥에 갇힌 박정우와 차민호 조력자의 대리전을 지나, 본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탈옥의 기회가 되는 이감까지 1주일, 그런 박정우를 죽이려 드는 차민호와의 숨막히는 대결에서 박정우는 목숨을 보전해야 탈옥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중의 딜레마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이 제법 돌아온 박정우라니 기대해 봄직하다. 덕분에 지난 8회 동안 '사이다' 한 잔을 마다하고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은 애청자들에겐 서광이 비친다. 


by meditator 2017. 2. 15. 05:54

'닭장 속에는 고양이, 야옹야옹' 그것으로 족했다. 박정우(지성 분)가 기억을 헤집어 어렵사리 찾아낸 메모리칩에도 불구하고 강준혁(오창석 분)이 내놓은 박정우의 자백 동영상으로 '사형' 판결을 뒤엎을 수 없었던 <피고인>. 6회를 달려오며 되풀이되는 박정우의 수난사는 이번 회차에도 어김없이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그 동영상으로 자신이 아내를 죽였음을 받아들인 박정우. 그가 숨겨온 검은 비닐 봉지로 교도소 방 철장에 올가미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목을 넣으려 발돋움을 할 때, 들려온 성규(김민석 분)의 나즈막한 목소리. '형이 왜 죽어요? 형이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건데' 그리고 이어진 정우만이 아는 고양이를 사달라고 조르던 딸 하연이의 노래. 죽음으로 몰린 정우에게 비친 서광이요, 도돌이표같은 정우의 수난사에 지친 시청자에게 주어진 1주일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토네이도처럼 확장되어 가는 사건,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첫 회 거대 로펌의 회유에도 의연했던 그래서 재벌가를 향해 저돌적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로서의 활약이 무색하게, 사형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박정우의 수난은 끝이 없다. 제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주장해 보아도, 마치 '리셋'되는 '루프'처럼 하은의 생일 날로 되돌아 가버리고 마는 그의 기억은 '설상가상'으로 '검사' 박정우에게 또 다른 '함정'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확신할 수 조차 없는 지워진 기억, 그를 옭죄어 오는 악재의 연속. <피고인>은 재심을 앞둔 기억상실증 검사 박정우의 수난사로 방영 시간의 많은 부분을 채워간다. 

이른바 호청자들 사이에서 '고구마'로 지칭되는 이런 주인공의 수난사, 그러면 채널이 돌아갈만도 하건만, 1회 14.5%를 시작으로 5회 18.6%(닐슨 코리아)까지 꾸준한 상승세다. 김상중의 명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2위 <역적>과의 격차도 생각보다 크다. (5회 10.5% 닐슨 코리아) 과연 '사이다'도 없이 꾸역꾸역 '고구마'만 먹는데도 호청자들의 증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피고인>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박정우의 수난사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저 수난만은 아니다. 1회였다면 아내를 죽인 혐의에 주기적 기억 상실을 겪는 박정우와 그런 그와 대립각을 보이는 형까지 죽인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엄기준 분)에 대한 소개, 2회는 그런 수난사에 이어 마지막 10분 캐리어를 차에 실은 범인의 얼굴, 즉 박정우를 드러내며 시청자를 그에 대한 의심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분명 정의로운 검사였는데, 캐리어를 싣고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살인 사건의 용의자, 보는 사람조차도 그에 대한 의심을 무럭무럭 키워가는 과정에, 4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용의자로 강준혁을 등장시킨다. 박정우와 함께 그의 아내 윤지수(손여은 분)를 짝사랑했던 강준혁, 이제까지 우군인 듯했던 그의 등장으로 여전한 박정우의 수난사에 대한 각도가 달라진다. 이렇듯 드라마는 박정우의 수난사를 줄기로 도돌이표를 그리는 듯 하지만, 그 도돌이표는 새로운 용의자를 등장시키며 점차 확장되어 가며 사건의 본질을 향해 간다. 마치 토네이도처럼. 이제 조금씩 커져가는 사건의 동심원은 6회 드디어 성규가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르며, 두텁게 드리웠던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이렇게 드라마는 '고구마'인 듯 하지만, 느린 듯하지만, 차곡차곡 그날의 진실을 향해 간다. 물론, 그 날의 진실 저편에 차민호라는 살인마가 존재함은 '노골적인 스포'다. 하지만 그의 위력은 압도적이고, 그에 반해 박정우는 너무도 미약하다. 심지어, 초반 가장 친한 벗이던 강준혁이 알고보니 그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인물이었고, 이제 6회 마지막 그에게 가장 친절했던 감방 동기가 자신이 진범이라 하듯, 그가 진실에 다가가려 하면 할 수록 박정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그의 조력자들은 차민호에 의해 죽어간다. 이 아득한 상황 속에서도 '진실'의 빛은 그럼에도 <피고인>을 다시 봐야할 가장 큰 '유인'이 된다. 

'가족'으로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장르물과 달리, <피고인>은 이젠 sbs 장르물이라고도 명명할만한 '특징'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바로 '가족'이란 '주제이다. 

<피고인>은 강직한 검사 박정우와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의 대립 구도를 가져가지만, 그 구도를 재벌가의 비리 척결이란 일반적 구조 대신, 정의의 역할을 맡은 박정우를 '살인범'으로 몰아 감옥에 가두는 극단적 장치를 등장시킨다. 생소한 장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프리즌 브레이크>를 통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장치는 신선한 서사로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솔깃한 장치'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바로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유기했다는' 극단의 범죄이다. 다른 것도 아닌 가장 정의로웠던 검사가 가장 파렴치한으로 둔갑한 이 사정은 '가족'이란 문제에 예민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더할 나위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가족'의 관련은 박정우만이 아니다. 

형을 죽인 차민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내에서 그의 처지는 분명 그가 나쁜 놈임에도 '측은지심'까지 끌어오르게 만들 정도로 안쓰럽다. 이렇게 '가족'은 <피고인>의 곳곳에서 '사연'을 피어오르게 만든다.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매달 박정우에게 10만원을 차입금으로 넣는 장모와, 조카를 찾아 교도관도 마다하지 않는 윤태수(강성민 분)의 애증의 관계도 '가족'이다. 강준혁의 모호했던 하지만 알고보니 '배신'인 처신의 이면에 드러난 또 다른 애증의 가족 관계나, 몰래 찾아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지닌 국선 변호사 서은혜의 가족도 빠져서는 섭섭한 '혈연'의 늪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라는 씨실에, '가족'으로 얽히고 설킨 범죄 사건을 날실로 엵어가며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장르물을 만들어 간다. 박정우의 사랑과 부정이, 차민호와 강준혁의 애증이, 그리고 서은혜의 트라우마가 <피고인>의 숨겨진 흡인 요소이다. 

by meditator 2017. 2. 8. 05:58

황경일(이주승 분) 일당에게 납치된 강권주, 그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겨울 저수지 숲을 헤치고 조금씩 다가가는 무진혁(장혁 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음 시간에'라는 무지막지한 협박을 남기며 사라진 4회의 <보이스>.  매회 범인과의 일전을 눈 앞에 둔 순간 끝나버리는 드라마에 '내가 범인도 못잡고, 아니 안잡고 끝내버리는 이런 드라마를 보려고 '닥본사'를 했나'하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보이스>를 시청했던 대다수 시청자들은 다음 시간 '또 오늘도 그러면 안본다!'이런 부질없는 협박을 날리며 리모컨을 <보이스>에 고정하고야 만다. 무엇때문에?




강권주의 납치, 김홍선 표 연출의 전화위복
아마도 매회 범인을 코 앞에 놔두고 시청자를 회롱하듯이 끝내버리는 이 야속한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를 기약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이 누군인가? 혹은 '범임'이 잡히는가라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때문일 듯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 요건에 덧붙여 5%를 가뿐히 넘긴 <보이스>(닐슨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평균 5.5%)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박진감넘치는 장르물에 독보적인 김홍선 감독의 연출력에 있지 않을까? 첫 회 맨 발로 쫓기던 장혁의 아내와 그 무기력한 아내를 쫓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내가 한숨을 돌리던 그 순간 울리는 벨소리로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대립각을 김홍선 감독은 대중적으로 장르물을 각인한 <시그널>의 속편인 양 재현한다. 

김은희 작가와 김원석 피디의 <시그널>이 그런 쫓고 쫓기는 범죄 현장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인물들간의 얽힘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악에 집중한다면, 김홍선 표 장르물의 방점은 바로 그 '쫓고 쫓기는 자의 숨막히는 추격전'에 찍혀있다. 첫 회 결국 희생자가 되고 만 무진혁의 아내의 도망씬에 이어, 바로 뒤이어 그 시간 형사 반장으로 큰 수확을 거둔 무진혁의 범죄 현장 추격씬은 바로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김홍선 표 범죄 스릴러가 112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한 범죄 골든 타임을 내걸고 등장한 것은 수학 특기자가 '수학 경시 대회'에 나간 모양새라고나 할까? 하지만,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여주인공인 112 신고 센터장이라는 내근직의 한계였다. 어릴 적 사고로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청취해내는 탁월한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능력을 지녔지만, 바로 그 능력치가 김홍선 표 스릴러의 박진감에는 딜레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딜레마를 <보이스>는 4,5회 강권주 팀장의 납치 사건을 통해 갇혀있는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무리한 1인 행동이라 했지만 신고 센터 직원의 뜻밖의 친절한 안내로 자신이 들통난 황경일의 도발로 안타깝게도 골든 타임을 지휘해야 할 강권주는 납치를 당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드라마는 늘 신고 센터 안에서 전화선을 통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강권주의 능력을 밖으로 뻗어나가도록 한다. 자신을 구하러 온 무진혁의 발소리부터 폐교에서 무진혁과 함께, 그리고 심지어 무진혁보다 먼저 그녀의 능력를 활용해야 피해자를 구해내는 강권주의 활약상은 그간 우려했던 112 신고 센터 골든 타임 팀의 활약에 기대를 더하게 한다. 

이렇게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보이스 프로파일러 강권주와 함께, 김홍선 표 연출은 숨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간다. 스산한 갈대밭의 추격씬, 그리고 '호러물' 못지 않은 공포심을 자아내는 공간감, 그리고 암흑의 페교 교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리 추격은 <보이스>라는 드라마의 매력을 한껏 살려낸다. 

<시그널>의 차수현과는 또 다른 매력의 강권주 
이렇게 <보이스>가 자신의 장르적 매력을 살려가는 것과 더불어 커져가는 건 강권주 팀장의 캐릭터다. 이미 김혜수가 <시그널>을 통해 장기미제 전담팀 팀장으로 그리고 이재한 형사의 '쩜오' 후배로 양수겹장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해석해 내며 늘 범죄 수사물에서 피해자이거나, 주변 보조자로서의 역할에 그쳤던 여성 캐릭터의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거기에 이제 <보이스>의 이하나에 의해 풀어지고 있는 강권주 팀장은 또 다른 영역을 펼쳐낸다. 112 신고 센터의 초짜 직원 시절 벌어진 연쇄 살인으로 아버지까지 잃은 강권주,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얻어진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보이스>란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런 능력치 외에, 첫 회부터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피해자를 인도해가던 그녀의 캐릭터는 이제 4,5회 현장을 통해 활동의 폭을 넓히며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시그널>조차 여성 캐릭터의 '감성'에 강조를 둔 것과 달리, <보이스>의 강권주는 오히려 상황에 휘둘리는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가장 이성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존재로 지금까지의 문화 컨텐츠 속의 여성들과는 다른 면모을 보인다. 황경일이 그녀를 묻으려 하는 순간에도 자신대신 은별을 살려달라 말하는 책임감, 그리고 폐교를 폭파하겠다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황경일 앞에서도 프로파일러로서의 분석력을 놓치지 않는 강권주는 요즘 '걸 크러쉬'라는 유행어에 가둬두기에도 아쉬울 만큼 신선한 여성상이다.

강권주만이 아니다. 황경일의 도발 앞에 쓰러진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납치당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용감하게 황경일을 덥친다던가, 어머니의 외도을 자신의 범죄의 핑계로 삼은 황경일에게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강력하게 어필하는 박한별의 캐릭터 역시 1회의 복님과 함께 피해자의 한계에 갇히지 않은 여성상을 구현한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 캐릭터의 선전과 달리, 무진혁 등 남성 캐릭터들은 아쉬움을 남는다.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 되면 <추노>의 대길이가 되고 마는 거야 장혁의 트레이드 마크다 싶어 한 수 접는다 하더라도, 매번 여성 캐릭터들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그의 '어티튜드'는 투박한 무진혁의 캐릭터라 접어주기엔 무례함의 여운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왜 매번 그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맞추는지, 그의 맨몸 활약을 위해서라기엔 형사 반장 무진혁의 사격 실력이 아쉬운 건 사족일까. 

폐교에 불이 날 상황 앞에서도 굳이 언니와의 눈물어린 전화 상봉을 하고야 마는 등 아쉬운 감정씬의 늘어짐을 차치하고, 늘 결말이라기보다는 다음 회의 떡밥이 더 큰 '자괴감'을 견뎌낼 만큼 <보이스>의 약진은 매력적이다. '대길'이 대신 무진혁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장혁의 개과천선과 강권주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7. 2. 5. 16:55

이변이다. 방영 전부터 이영애의 10여년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이 4회만에 kbs2의 <김과장>에게 역전되었다. (닐슨 코리아 기준, <사임당> 12.3%, <김과장> 13.8%> 물론 <사임당>이 억울한 면도 있다. 이영애의 복귀작이라지만, 아직 방영 분량의 대부분은 젊은 사임당인 '박혜수'가 타이틀롤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극'에 '애절한 운명'을 버무린 '사랑' 이야기 대신 <김과장>이란 이 소박한 타이틀의 드라마에 끌리는 관심이라니, <사임당>을 변명해 볼 수록, <김과장>이 어떤 드라마인가가 더 궁금해 진다. 




남궁민에게 절정을 선물한 박재범 작가 
타이틀롤이 김과장인 만큼, 주인공 김과장 역을 맡은 남궁민을 빼놓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가 없다. 남궁민은 일찌기 연기 잘 하는 배우였다.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서도 장중하- 봉마루로 악과 선의 경계에서 흔들렸던 캐릭터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그의 존재감도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우리 결혼했어요>란 예능을 시작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악역으로 변신하더니<리멤버-아들의 전쟁>, <내 마음이 들리니>까지 그 연기의 진폭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김과장>을 통해 그렇게 물오른 남궁민 표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방영 전부터 <직장의 신(2013)> 속 미스 김을 떠올리게 했던 작명 김과장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남궁민의 김과장, 지방 '덕포 흥업'에서 그의 천재적 능력을 '즐기며' 소소하게 장부 조작이나 하며 덴마크 이민의 꿈이나 꾸던 그가 그 꿈을 앞당기기 위해 던진 로또 TQ 그룹 경리 과장, 아니나 다를까 미스 김처럼 '사이다'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의 현실적 속물주의가 어쩐지 끌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김과장>을 이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해도 그 연기를 담을 그릇이 마땅치 않다면, 연기가 충분히 빛나기는 힘들 것이다. 물오른 배우 남궁민의 연기를 '절정'으로 만든 건 바로 드라마 <김과장>이다. 

<김과장>에서 배우 남궁민의 절정의 연기력을 이 뛰어놀 수 있는 풀을 만들어 준 것은 다름아닌 OCN장르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신의 퀴즈네 시즌을 집필했던 박재범 작가이다팬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즌 4를 끝으로 더 이상 <신의 퀴즈>를 집필하지 않았던 박재범 작가는 이후 KBS2의 <블러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자 했지만 아쉬움에 그쳤다그랬던 박재범 작가가 이전의 그가 했던 장르와 전혀 다른 오피스물’ <김과장>을 통해 와신상담의 역전극을 펼친다.


다양한 층위의 동상이몽  

<김과장>의 매력은 이런 박재범 작가의 절치부심이 돋보이는 겹겹의 층위가 쌓인 구성에 있다앞서 말한 이나 ’, 혹은 도덕과 부도덕의 잣대가 모호한 소박한 속물(?)’ 김과장이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그가 이민의 꿈을 펼치기 위해 들어간 TQ그룹이 드라마의 주된 격전장이 된다그리고 격전장이란 말이 가장 적절하게도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해 관계를 통해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이 바로 <김과장>이란 드라마가 매 회 휘몰아치며 시청자를 사로잡은 진짜 이유다.

 

지방 소도시에서 장부 조작이나 하던 김과장사실 그가 TQ기업의 경리 과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간 경영을 외치지만실상은 비리의 온상인 TQ그룹의 썩은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현재 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현도(박영규 분)는 가족적이며 인간적인 경영을 외치지만 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의 부실을 키워가는 주범으로 창업주이자 장인의 딸인 아내 장유선(이일화 분)와 경영권을 놓고 이해를 달리한다여느 부부처럼 어디 갔나 왔느냐아들 걱정을 하던 이 부부가 서로 돌아서며 표면하는 그 표정과 뒷조사를 부탁하는 그 이면의 엇갈림이 <김과장>의 동상이몽그 첫 번째 포인트이다.


 

그렇게 경영을 놓고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부부그 중에서 현재 실권을 쥐고 있는 박현도의 수하에는 기존 그의 오른 팔이었던 상무이사 조현영(서정연 분)과 새로이 스카우트 된 서울지법 회계 검사 출신의 재무 이사 서율(준호 분)의 박힌 돌과 굴러온 돌 버전의 동상이몽이 그 두 번 째 포인트가 된다.

 

드라마는 소박한 이민의 꿈을 꾸고 로또라 생각해서 들어갔던 TQ그룹에서 생각지도 못한 분식 회계의 조작팀의 하수인으로 기용된 김과장의 운명과 그 운명을 틀어쥔 서율그리고 애초에 타이타닉 호에 타지 않은 가장 운좋은 이의 방식을 도모하는 김과장의 해고 작전그리고 그런 그를 의혹과 혼돈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대리 윤하경(남상미 분)의 헤치고 모여’ 식의 이합집산이 <김과장>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자기 앞의 이해관계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이기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감그런 그들이 진짜 사회 구조적 비리와 악에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려내어 가고 있는 <김과장>은 재벌가의 분식 회계가 익숙한 세상이 드라마의 공감을 도모해주는 서글픈 현실이 낳은 역설적’ 흥행 코드이다. 직장 생활 좀 해봤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다양한 '부정'들, 그리고 사회 전반이 탄식해 마지않는 가진 자의 '부도덕'을 <김과장>은 TQ그룹 내 인물 군상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간다. 특히나 <직장의 신>이래 멈칫했던 오피스 사회물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가 반갑다.   마치 '만인 대 만인'의 전장같은 TQ그룹그룹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미덕'을 찾아가는 김과장 및 동료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건, 마치 복마전 같은 세상에서 ;희망'을 구도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by meditator 2017. 2. 3. 15:18

도깨비도 가고, 인어도 갔다. 휘몰아쳤던 '환타지' 로맨스의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그리고 그 바톤을 조선판 '개츠비'가 잇겠다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간대 경쟁작 김과장의 바튼 추격(김과장 12.8%, 사임당 13.0% 닐슨 코리아)에 고전하는 모양새다. 아직 본격적으로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젊은 시절 이야기였으니, 4회의 약진을 기대해 볼까?




환타지로서의 로맨스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극 내용이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신사임당의 '가상' 일기다. 남성중심 사회인 조선에서 여성임에도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예술가를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뿐이면 섭하다. 빠질 수 없는 사랑, 그를 위해 '이겸'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역적으로 몰려죽은 왕족의 손자이자, 훗날 도화서의 수장이 될 이겸은 어린 사임당과 '안견의 금강산도'를 매개로 인연을 맺고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운명으로 인해 '혼인'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평생 사임당 바라기로 살아가는 '조선판 개츠비'이다. 이렇게 <사임당>은 실존 인물 사임당의 주변에 지고지순한 순정남 이겸을 배치하여 '환타지'로서의 구성을 완성한다. 

이처럼 최근 '로맨스' 드라마에서 추세는 '환타지'이다. ost의 한 소절만으로도 대번에 연상되는 붐을 일으킨 tvn의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러했고, 최근 종영한 sbs의 <푸른 바다의 전설>이 그랬다. '미니 시리즈'에서 화제가 된 로맨스 드라마치고 '환타지'요소를 피해간 드라마가 없다. 혹자는 <태양의 후예>를 들지도 모른다. 

16회 시청률 38.8%의 2016년 최대의 히트작 <태양의 후예>는 전장터를 배경으로 파견 군인과 의료 봉사단 의사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을 다루었다. 하지만 극 초반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이국의 전장터에서 격투씬까지 벌이며 작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대한민국 군인이야말로 '솔직히' '전작권'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캐리터보다 '환타지'적이 아니었을까. <태양의 후예>는 헬기를 타고 신출귀몰은 물론, 총을 맞고 절명하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날 작전에서 펄펄 나는 유시진을 통해 이 인물이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히어로못지 않은 캐릭터임을 시인한다. 왜 굳이 대한민국을 놔두고 우르크라는 이방의 장소를 배경으로 삼았을까. 심지어 극중 배경은 중앙 아시아의 난민이 발생하는 국가라고 설정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비경으로 소문난 그리스이듯이, 배경부터 시작하여 캐릭터의 활약상까지,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입은 로맨스라는 신 장르를 개척한 드라마라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김은숙 표 드라마 = 환타지 로맨스의 역사 
물론 일찌기 우리의 '로맨스'는 환타지였다. 가난한 여성과 사실은 평생 가야 그녀가 마주칠 일조차 희귀한 재벌가의 자제가 '사랑'을 나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꿈'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이 시대를 타고 '현실적'인 양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드라마의 개연성'이었다. 앞서 <태양의 후예>에 이어 <도깨비>로 '갓은숙'으로 칭송받기에 이른 김은숙 표 로맨스를 되돌아 보면 바로 '환타지'로서의 로맨스의 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57.6% 20회)을 기록한 여전한 김은숙 표 드라마의 아성 <파리의 연인>을 비롯하여, 2012년 <시크릿 가든>에서 2013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까지, 특히나 김은숙 드라마 중 신드롬 급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은 '재벌' 혹은 '재벌'가의 자제들이었다. 여전히 인기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속 주된 캐릳터들만 봐도, 재벌가는 여전한 '사랑'의 근거지가 된다. 

이렇게 로맨스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 되었던 '재벌', 그들의 빈번한 드라마 출정은 배금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백'도 잦으면 싫증이 나는 법,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까지 남자 주인공을 독점하는 '재벌'가 남자들에 대한 '진부함'이 쌓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자본의 독점과 과점이 전사회적으로 체제화 되어가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은 부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고착화된 계급사회화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그 경제적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반응 또한 도출한다. 

그래서 재벌은 여전히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사랑'이 주요한 배경이자, 주인공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장르물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서 '주된 악'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최근 시작한 <피고인>을 비롯하여 도덕적 의식이 부재한 사이코패스 악인은 대부분, 그 존재가 '재벌'인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부'의 쓰임새가 사이코패스적 체감을 가져올 만큼 부도덕하다는 광범위한 대중적 인식에 기인한다. 



로맨스물의 궤도 수정= 업그레이드 재벌
그러니 발빠른 트렌디 로맨스 물의 궤도가 수정될 밖에. 주말 드라마나 주부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를 썼던 박지은 작가는 영생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을 주인공을 등장시켜 2014년의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재벌'을 넘어선 존재로 외계인이 등장한 것이다. 도깨비 못지 않게 오랜 시간을 인간 세상에 산 도민준은 그의 외계적 능력을 이용하여 재벌못지 않은 부를 지녔으며, 위기의 천송이(전지현 분)를 구해낼 기상천외한 능력을 지닌다. 이제와 비교해 보면 도깨비 김(공유 분)와 외계인 도민준은 도깨비와 외계인이라는 이질적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신묘한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여 재벌에 버금가는 부와 재벌같은 인간 따위가 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서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능력에서 상당히 유사한 버전이다.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만약에 영생을 사는 외계인과 도깨비가 가난한 백수라던가, 취준생이었다 해도 지금과 같이 그들의 슬픈 운명으로 인한 여운에 시달렸을까?

재벌못지 않은 캐릭터가 또 있다. 역시나 김수현이 분한 <해를 품은 달>의 왕 이훤과 역시나 왕못지 않은 세자인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박보검 분)이다. 이들은 권문 세족의 핍박을 받는 불우한 왕족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불운을 넘어 사랑을 지켜 낼 '왕족'의 권위가 있다. 현대의 어느 재벌인 들 신분제 국가의 왕을 넘볼 수 있겠는가. 

2012년 <해를 품은 달>부터 2017년을 신드롬으로 연 <도깨비>까지 화제가 되었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 로맨스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재벌' 대신, 마치 재벌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돈은 물론 권력을 가졌거나, 권력은 저리 가라할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신묘한 남자 주인공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현실의 신분 상승은 점점 암담해지고 신 신분제 사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빈익빈 부익부가 고착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재벌은 로망 대신 사이코패스적 부도덕의 상징이 되어가는 '암울한 현실'인식이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이런 시기의 극강의 환타지는 위로하고 마취하며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는 지렛대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7. 2. 2. 16:06

첫 방 시청률이 최고 시청률이 되고만 불야성(1회, 6.6% 닐슨 코리아), 그 뒤를 이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0)은 가뿐히 전작의 부진을 딛고, 단 2회만에 10%의 고지를 넘었다. (10.2% 닐슨 코리아) 물론 상대작인 <피고인>이 20%를 육박하는 가운데 2위라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18.7% 닐슨 코리아) 동시간대 또 다른 상대작인 퓨전 로맨스 사극 <화랑>을 단번에 제치며 10%의 고지를 돌파한 점에서 양호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적>이 반가운 것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민중' 사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허균의 손에 의해 각색된 인물 홍길동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서의 홍길동을 다루겠다며 포부를 밝힌 이 드라마는 조선의 3대 도적 중 1인, 그래서 전설이 되고, 결국 유구의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 도적 홍길동을 다룬다. 조선의 3대 도적이라 일컬어 지는 임꺽정, 장길산, 그리고 홍길동, 이들이 전설적 도적이 된 것은 그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잘해서가 아니라, <역적>의 부재 '백성을 훔친 도적'처럼 '백성의 편에 선 의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이들 중 '임꺽정'과 '장길산'은 이들의 일대기를 다룬 문학 작품은 물론, 드라마로 이미 만들어진 바 있지만, 이들과 달리 '허균'에 의해 각색된 홍길동은 언제나 그 본 인물이 가진 서사보다, 율도국을 만든 귀신같은 영웅 홍길동으로 '둔갑'되곤 했다. 그러던 홍길동이 뒤늦지만 이제서야 연산군 시절 조선을 호령했던 의적으로 제대로 돌아온다. 

황진영이 그려낼 신선한 사극
<역적>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 황진영이다. 일찌기 2007년 kt 디지털 공모전 대상으로 그 필력을 인정받기 시작, 영화 <쌍화점(2008)>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황진영'이란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특집 단막극 <절정>에서였다. 2011년 8월 15일 방영된 <절정>은 동명의 시를 쓴 시인 이육사의 일대기를 비록 단막극이지만, 일제 시대를 살아간 젊은 지식인의 고뇌를 그 어떤 드라마보다 실감나고 감명깊게 다루었단 평가를 받았다. 



이어 황작가는 2013~2014년에 방영된 MBC수목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을 통해 고증이 어려운 백제사의 영역을 '사극'의 궤도에 맞춰 적절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100회가 넘는 일일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주제 의식을 관철시켜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감독의 영역이 강조된 <쌍화점>과 달리, 작가의 시각이 두드러진 <절정>과 <수백향>에서 기존 역사극과는 다른 구성을 가지면서, 시대적 과제에 충실한 주제 의식을 되살려내는 장기가 황인영 작가의 장점이다. 또한 황인영 작가는 <쌍화점>에서, <절정>, <수백향>까지 역사물이지만, 결코 '역사'란 테두리엔 두루뭉수리하게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시대를 각각 그 시대적 특징을 잘 살려낸 작가라는 점에서 <역적>이 더욱 기대를 크게 한다. 

이렇게 안정된 필력과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황인영와 함께 <킬미힐미(2015)>의 김진만 연출이 합류했으니 <역적>은 든든한 양 날개를 얻은 것인 셈이다. 그런 역적의 든든한 날개에 힘찬 발짓으로 비상의 날개를 펴도록 한 사람은 다름아닌 1, 2회를 이끈 아모개 김상중이다. 

아기 장수 설화와 아비 아모개 
아모개, 이름이 아모개라는 말은 이름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말로 '아무개야'라고 막 부르던 그 '아무개'를 노비 문서에 써넣으려다 보니 '아모개'가 된 아모개, 그는 양반가의 씨종(대대로 내려가며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비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도 주인을 하늘이라 생각하며 그 그늘에서 움츠려 살았다. 그의 아내는 우는 아이를 두고 주인집 아이에게 젖을 물렸고, 그는 주인집 아이를 다치게 한 자기 자식의 손을 짖이기려 했다. 그리고 그처럼 그의 아들도 주인집 아들 대신 회초리를 맞았다. 

그렇게 씨종으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살던 아모개, 하지만 주인집 자식을 다치게 한 자식의 손을 차마 돌로 내려칠 수 없는 그 순간 그의 삶은 다른 선택의 길에 들어선다. 

어느 '의적' 드라마에서나 그렇듯 가지지 못한 삶의 운명을 타고 난 그들은 자신을 겁박하는 운명에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다 못해 그 사슬을 깨뜨리고 만다. 그 '클리셰'의 '의적' 서사를 <역적>은 우리 전래의 '아기 장수' 설화를 통해 개연성을 더한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장수' 아기, 백성에게서 태어난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화는 이를 '반역'의 징조라 해석했고, 그를 두려워한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의 힘을 숨기려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법, 아모개의 아들 길동이 아비의 당부를 받고 스스로조차 힘이 죽었다 느껴질 정도로 숨기려 애를 썼지만 어미의 위기에서 참을 수 없었듯이, '장수'가 될 수 없는 아기는 '반역'의 길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슬픈 영웅의 서사인 것이다. 체제를 뒤집어 엎을 수 없었던 비극적 운명을 '아기 장수'를 통해 풀어냈던 이 설화는 여러가지 버전으로 전해내려져 온다. <역적>은 이 설화의 모티브를 아모개 네 집안을 통해 영웅의 탄생 설화의 새로운 버전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아기 장수' 설화를 통해 길동이란 캐릭터의 개연성을 부여한 드라마는 그 비극적 운명을 위해 이름조차 없는 아버지,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애비'로서의 그 몫을 다하려 한 아모개란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내내 씨종으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그, 하지만 길동의 힘이 '씨종'으로서의 운명을 뛰어넘는다 깨닫자, '종'으로서의 숙명을 벗어던지기로 결심한다. 주인댁 썪은 명태를 한 궤 짊어지고 길을 떠난 그는 잠깐의 저어함도 없이 개성 도둑패의 앞잡이가 된다. 



그렇게 담을 넘기를 주저하지 않고 돈을 모은 그는 아들들이 원하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 힘이 장수인 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면천'의 기획을 주도한다. '외거'의 삶까진 순조로웠지만, 결국 어음까지 넘긴 면천의 길목에서 아모개가 숨겨놓은 재화에 눈이 먼 '주인 내외'의 획책이 아모개네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삼시 세끼 뜨신 밥 먹고, 자식들 하고 싶은 거 하고, 위험한 운명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도적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비의 행보는 결국 '노비'라는 운명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발이 부르트고, 바람처럼 떠돌면서도 가족을 지키려 했던 아비는 결국 낫을 든다. 뒤늦게서야. 그러곤 말한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이렇게 <역적>은 '아기 장수' 설화와, 아모개의 부정을 통해 1,2회만에 홍길동이란 의적의 탄생 설화를 완성한다. 양반이 자기 필요에 의해 주욱 늘어서게 만들고 파는 물건, 노비, 하지만 드라마는 그 '노비'로 규정지어진 '인간'이 삶을 곡진하게 그리며 민중 사극으로서의 <역적>에 든든한 시동을 건다. 
by meditator 2017. 2. 1. 13:17

<낭만 닥터> 후속으로 첫 선을 보인 <피고인>, 1회 14.5%, 2회 14.9%(닐슨 코리아 기준)로 순조롭게 동시간대 1위의 자리로 안착했다. 30%를 육박했던 전작의 수혜였을까? <낭만 닥터> 시청자들을 흡인할 타 채널 드라마들의 매력이 약하거나, 이질적 장르라 이동이 용의치 않은 면도 있다. <낭만 닥터>의 시청자들 중 강동주& 윤서정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에 더 집중했던 사람들은 <화랑>으로 시선을 옮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대 병원을 상대로 한 돌담 병원 팀의 통쾌한 한 판 승의 귀추에 주목했던 사람들이라면 <피고인>으로 한번쯤은 관심을 기울일 듯하다. 하지만 재미를 주지 못한다면 가차없이 리모컨을 눌러버리는 시청자들의 특성 상 전작의 의리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보다는 <피고인>은 장르물이지만, 그간 장르물 가운데서 인기를 끌었던 <추적자 The chaser(이하 추적자)(2012)>, <리멤버(2015)>의 계보를 이어 가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물로써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또 한 명의 전무후무한 악인, 차민호 
<별에서 온 그대>의 이재경(신성록 분), <리멤버>의 남규만(남궁민 분), 그리고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 <기억>의 신영진(이기우 분)를 넘어서는 사이코패스 재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섣부른 예단은 하는 게 아니었다. 단 한 회만에 다시 전무후무한 악인이 또 한 사람 등장했다. 바로 엄기준이 연기한 <피고인>의 차민호다. 

엄기준에서 악역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kbs2의 <골든 크로스>에서 '식인 상어'라 불리는 미구계 헤지펀드 대표로 '악'의 테이프를 끊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호연이었지만, 이제 햇수로 3년만에 다시 돌아온 그의 악역은 피를 나눈, 심지어 이름조차 민호, 선호 헷갈리는  자신과 같은 dna를 가진 쌍둥이 형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기는 커녕, 미소를 띠는 사이코패스로 단박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피고인>은 극중 주인공인 박정우(지성 분)의 서사와 거의 비슷하게 차민호의 악행을 나열하며 드라마의 동력을 당긴다. 이런 방식은 극 초반에 뺑소니 사고와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며, 그 사건을 일으킨 '악'을 제시하고, 그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를 드라마의 추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추적자>와 <리멤버>와 다르지 않다. 특히나, <별에서 온 그대>나, <리멈버>, 그리고 <기억> 등에서 주인공만큼이나 시선을 집중시켰던 전무후무해 보이는 악인, 거기에 재벌이라는 '공분'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악의 축'을 확고하게 구축시킨다는 점에서 최근 인기를 끈 재벌 악인의 스토리를 재연한다. 이런 어찌보면 익숙한 재벌가 사이코패스의 서사에 있어 결국 관건이 되는 건 얼마만큼 충격적인가인데, 그 점에서 첫 회에 야구 방망이로 여성을 죽이는 것에 더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수를 권하는 쌍둥이 형을 죽인 차민호는 그 '악행'에 있어 전례에 한 수를 더한다. 

거기에 <피고인>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바로 그 자신의 형을 죽인 차민호가 그와 달리 모범적으로 그룹의 대표 역할을 맡아왔던 형 행세를 한다는 지점이다. 바로 그의 거짓된 행세와 그런 그의 거짓을 눈치채고 파고드는 박정우와 갈등이 <피고인>의 또 하나의 흥미 유발 지점이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박정우 
그런 재벌가의 상대가 된 주인공은 검사 박정우다. '법피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세상에, 박정우는 우리가 정치 사회면을 통해 만나는 그런 검사가 아니다. 로펌의 스카웃 제의를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검사, 불의를 보면 양말 바람으로 홀로 뛰어들어서라도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검사, 바로 그런 정의로운 인물이 주인공 박정우다. 

하지만 그런 그의 꼿꼿함이 부딪힌 곳은 당연히 형을 죽이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차민호, 첫 눈에 차민호의 거짓말을 알아챈 그의 집요한 추적은 잠에서 깬 그가 눈을 뜬 곳이 교도소라는 극한으로 그를 몰아붙인다. 마치 뺑소니를 당한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던 형사가 거지꼴이 되어 쫓기듯, 영재 소년이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그의 절대 기억으로 로펌 변호사가 되는가 싶더니 역시나 쫓기는 신세가 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르다면, 직계 존비속의 죽음을 쫓는 형사와 변호사에서, 이제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이 되어 교도소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신세랄까? 물론 시청자들은 첫 회만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차민호를 보았기에, 그가 누명을 썼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알지만 마치 크레타의 미궁처럼 그 누명을 풀 길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 비슷한 처지임에도 다른 <피고인>의 묘미이다, 



그렇게 누명이지만 미궁같은 처지의 박정우에게는 안타깝게도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으니 그건 바로 <리멤버>의 서진우의 발목을 잡은 기억이다. <리멤버>의 서진우가 천재적인 기억을 가지고 대번에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입지전적 능력, 하지만 그 기억이 아버지처럼 '치매'를 불러오는 불리한 조건이라면, 박정우는 그와 반대로, 어떤 이유에선지 주기적으로 기억을 잃는다. 정신과 의사는 사건 당시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는 그의 범죄 심리로 인한 것이라 하지만, 거기엔 또한 어떤 음모론이 존재치않겠는가란 의심이 <피고인>의 또 더해진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이런 박정우에게 마치 <리멤버> 이인아(박민영 분)의 현신인 듯한 정의롭지만 열정이 넘치는 서은혜(유리 분)까지 등장하면 마치 맞춤 세트처럼 조합이 완성된다. 올가미에 갇힌 주인공, 그의 곁에서 정의롭게 그를 지키는 여주인공, 그런 그들을 돈에 기반한 권력을 가지고 옭죄어 오는 사이코패스 재벌, 이 익숙하지만 여전히 솔깃한 구도를 <피고인>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교도소라는 공간을 더해 이야기의 각을 벌려간다. 
by meditator 2017. 1. 25. 15:09

외람되지만 딴 나라 단막극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2017년 무려 3년만에 <셜록 시즌4>가 찾아왔다. 시즌 3가 2014년이니, 햇수로만 치면 무려 3년만이다. 하지만 마치 어제 본 듯 셜록 애청자들은 열광했고, 그 짧은 3회 방영 동안 매 회의 내용을 놓고 탄성과 한숨이 오갔다. 심지어 이번 셜록 시즌이 마지막이란 '루머'에 시작도 전에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딸랑 3부작, 그것도 매 년도 아니고, 해를 건너건너 뛰고 가물에 콩나듯 하는 이 드라마를 놓고, 전 세계 셜록 드라마 팬들은 일희일비한다. 


이런 <셜록>의 예를 놓고 보면 드라마의 회차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니 외려 3부작이란 그 감질나는 회차가, 밑천이 그다지 두둑하지 않은 이 드라마의 가치를 더 높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른다 '영드', 영국 드라마에서 4부작은 그리 낯선 장르가 아니다. <제인 에어(2006)>를 비롯하여, 제인 오스틴 <엠마(2009)> 등의 유명한 원작 소설 등이 4부작 드라마로 재탄생 되었으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05)>의 원작 소설인 <핑거 스미스> 역시 3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단막극'의 부흥을 고심해 온 kbs2 <드라마 스페셜>이 연작 시리즈에 이어 4부작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행보다. 지난 해 김용수 감독의 <베이비 시터(2016,3)>가 비록 시청률면에서는 아쉬웠지만 독보적인 미쟝센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어 <백희가 돌아왔다(2016, 6)>는 4부작임에도 심지어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대하 사극을 가뿐히 누르고 시청률 10.4%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4부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어제쳤다. 

지분을 확보해가는 4부작 드라마 
이에 고무된 kbs2s는 수목 드라마 <오 마이 금비> 후속으로 다시 4부작 드라마 <맨 몸의 소방관>을 편성했다. 물론 <맨몸의 소방관>의 편성은 현재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전지현, 이민호 스타들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종영까지 시간을 벌어 다음 수목 드라마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기획인 바가 크다. 물론 그런 늘 '꿩대신 닭'인 처지는 아쉽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전작 <오 마이 금비>에 그리 낮지 않은, 그리고 동시간대 mbc의 <미씽 나인>과 드리 차이나지 않는 4회, 5.2% (닐슨 코리아)로 <맨몸의 소방관>은 제 몫을 해냈다. 

1월 12일 첫 선을 보인 <맨 몸의 소방관>은 <베이비 시터>의 실험성보다는 <백희가 돌아왔다>의 대중성은 택했다. 사고뭉치 소방관 강철수(이준혁 분)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그와 맞부딪치게 되는 과거의 사연을 가진 한진아(정인선 분)의 '스릴러'와 '로코'를 버무린 <맨 몸의 소방관>은 과거에 한 발을 담그되, 그것에 잠기지 않고, 두 개성있는 주인공들의 해프닝의 연속으로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찍으며 진행시킨다. 

과거의 악연을 가진 주인공들, 그리고 현재에선 부유하지만 외로운 공주같은 여주인공과, 가진 것없지만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의 얽혀지는 관계는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그 가진 것 없는 남자에게 고등학생 시절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이제 개과천선한 울뚝불뚝 성질의 정의로운 소방관이란 캐릭터가 입혀지며 <맨 몸의 소방관>은 신선해진다. 특히나 실제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부딪치게 되는 억울한 사례들이 주인공 강철수의 캐릭터와 맞물려 돌아가며 드라마는 그 활기를 더한다. 


생생하고 신선한 캐릭터, 예측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맨 몸의 소방관>의 미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것은 '공주'대접이나 받을 것같던 수십 억 재산의 상속녀 한진아를 '역동적'인 캐릭터로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어릴 적 저택에 도난 사건이 있었을 때도 어린 나이에도 악착같이 도둑을 쫓아 가던 그 '악발이' 정신은 당시 사고의 후유증으로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는 현재에서도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며 극의 동인이 된다. 그녀의 주문으로 그녀 앞에 반 누드 모델로 본의 아니게 등장한 강철수, 악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서사는 대부분 '로코'들이 멋진 남성에 의해 '구조'되는 '공주'의 캐릭터로 소모하는 경우가 많은 한진아를 주도적 캐릭터로 승격시킨다.

덕분에 한진아는 그 작은 덩치로 위기의 강철수를 구하며 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강철수조차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는 감동을 느끼게 하며, 사건의 구비구비마다, 퍼즐의 주도적 해결자로 나선다. 물론 마지막은 강철수의 죽을 힘을 다한 괴력이 그녀를 구하지만, 그건 이후 권정남(조희봉 분)에로 이어지는 강철수의 '소방관'의 사명감에 방점을 찍힌 바가 크다. 오히려 그 앞 장면, 정신을 잃었던 그녀가 강철수가 등장하기에 앞서 스스로 정신을 추켜세워 자신의 천식 약을 구하는 장면이라던가, 강철수와 권정남의 격투신에서 권정남의 머리끄댕이를 잡는 등 약진하는 모습인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4부작이란 짧은 시간 속에 사랑도 하고, 사건도 해결하려다 보니 정작 극의 모티브가 된 저택 화재 사건에 대한 해결이나, 고모인 한송자(서정연 분)와 오성진(박훈 분)의 음모는 둘러리가 된 느낌이다. 형사이지만 돈 앞에 살인 사건까지 불사하는 폭력남편 권정남과 방화범의 욕망을 거침없이 내보였던 금고털이범 오성진의 의리있는 면모 등이 4부작의 여정 속에 휘발된 부분이 아쉽다. 아마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스릴러 대신, 호응이 쉬운 '사랑 이야기'에의 강조를 택한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4부작이라면 좀 더 신선하고 실험적인 도전을 기대해보고 싶은 건 공중파 드라마에선 무리일까? 


by meditator 2017. 1. 20.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