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로 <2016 kbs드라마 스페셜> 10부작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2016에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단막극 10편,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2008년 3월 종영으로 사라졌던 kbs의 단막극은 2010년 5월 <kbs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노희경 작가의 <빨간 사탕>을 가지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토요일 밤의 11시 황금 시간대는 다음 해 일요일 밤 11시로 밀렸고, 2014년 잠시 주중 수요일 밤 11시의 고지를 확보하는가 싶더니, 결국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모를, 즉 단막극을 보라는 건지, 출근을 위해 일찍 자라는 건지 모를 시간대 11시 55분이 방영시간이 되었다. 고군분투 끝에 금요일까지 노오력(?)해보던 <2015드라마 스페셜>은 같은 해 10월 방영분은 토요일로, 결국 2016시즌이 되면 일요일 밤으로 복귀(?)하고 만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정 투쟁의 시간 
인정투쟁과도 같은 시간대의 전쟁만이 아니다. 회차의 전쟁으로 보자면 지난 몇 년간의 드라마 스페셜의 역사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생존사와도 같다. 그래도 처음 <드라마 스페셜>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매주 방영이었다. 그러나 2010년 24부작, 2011년 23부작에서 2014년 27부작까지 매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각종 특집 등에 밀려 스무 편 남짓을 방영하고 만다.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손현주 배우 등 배우들의 단막극 회생을 위한 출연료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드라마 스페셜>에 돌아온 것은 명목상이나마 '매주' 방영 대신 '시즌제'라는 이름의 회차 감소였다. 2015년 연작제 시도까지 합쳐서 총 15부작을 방영했던 <드라마 스페셜>은 2016년 9월에 이르러서야 단 10편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2017년에도 <드라마 스페셜>이 생존할 수 있을지? 결국 일요일 밤이란 외곽 지대에서 숙명이 된 낮은 시청률, 당연한 낮은 제작비로 다음 해엔 몇 편의 단막극이 만들어 질 수 있을지? 마치 생존의 의지를 가졌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시한부 환자를 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바로 <드라마 스페셜> 애청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애잔한 생존사에 비해 작품의 내용으로 들어서면 입장이 달라진다. 9월 25일 드라마 극본 가작 <빨간 선생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수작 11월 27일 <피노키오의 코>로 마무리된 10편의 단막극들은 드라마 애호가들에게는 갖가지 장르가 구비된 풍성한 밥상이었다. 또 한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 시절 선생님과 학생들간의 해프닝으로 시작된 <빨간 선생님>은 뜻밖에도 시국사범 아버지 때문에 불순분자로 몰리게 된 제자를 위해 희생하는 선생님을 통해 비극의 시대를 돌아본다. 그렇게 뜻밖의 수작으로 시작된 <드라마 스페셜>은 왕따 문제를 코믹하게 풀어낸 <전설의 셔틀>, 미혼부 문제를 휴머니틱하게 풀어낸 <한 여름밤의 꿈>, 사이보그란 첨단 과학적 소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 <즐거운 나의 집>, 사랑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 <평양까지 이만원>, 발칙하고 대담한 성장 스토리 <동정없는 세상>, 한 편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국시집 여자>, 웃음의 해학을 통해 고된 삶을 논한 <웃음 실격>, 연극과 드라마의 콜라보라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 <아득히 먼 춤>, 그리고 15년 동안 묻혀진 진실을 통해 살펴본 가족애 <피노키오의 코>까지 중첩되지 않은 주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선보였다. 



10가지 진수성찬의 희열 
극본 공모 우수작인 <피노키오의 코>가 뜻밖의 반전을 선보였지만 '가족'이라는 주제 의식에 머물러 있는 반면, 상투적일 수 있는 스승의 은혜를 시국에 얹어 신선한 작품이 된 <빨간 선생님>처럼 수상작의 우열과 작품의 우열은 또 다른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단막극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전설의 셔틀>이나 <동정없는 세상>이 그간 <드라마 스페셜>에서 줄곧 그려왔던 성장 서사와 궤를 함께 하고, <한 여름 밤의 꿈>이 역시나 <드라마 스페셜>만의 '따로 또 같이'의 가족애적 전통을 따른다면, 동시대 청년의 삶을 다룬 <아득히 먼 춤>이 시의적이었지만 실험적 터치로 신선했다면, <평양까지 이만원>은 청년의 삶이지만 본원적 질문에 가까웠다. 빠질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즐거운 나의 집>과 <국시집 여자>로 두 편이었지만 두 편 모두 '사랑'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 내며 '사랑' 그 이상의 영역으로 드라마를 확장시킨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10편의 드라마를 통털어 보면 장르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없고, 주제 의식 면에서도 단막극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구현했다. 하지만 1년에 단 10편이라는 제한된 편수에서 오는 다룰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덕분에 <간서치 열전(2014)>, <붉은 달(2015)>와 같은 신선한 사극을 볼 수 없어 아쉬웠고, <원혼(2014)>, <라이브 쇼크(2015)> 등의 공포물의 흔적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가만히 있으라(2015)> 와 같은 본격 사회물이 적었던 것이 아쉽다. 다양한 진수성찬을 즐긴 거 같은데 되돌아 보니 <드라마 스페셜>만의 특색있는 찬이 빠진 거 같은 서운함이랄까?



그러나 서운함은 서운함일뿐, 늘 시청률에 애달복달하여 뻔한 이야기만 돌려막는 듯한 주중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스페셜>은 마치 상업 소설에 지친 독자가 모처럼 집어든 순수 문예 창작물의 희열을 전해준다. 아마도 2015년 11월 이후 거의 1년만에 만나는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 '순수한' 행복의 기쁨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고 싶다. 공영 방송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그 시간을. 
by meditator 2016. 11. 28. 11:29

드디어 2016 드라마 스페셜도 그 '대미'를 향해 가고 있다. 벌써 9번 째 작품, 그 어느 때보다도 장르와 형식면에서 풍성했던 2016 드라마 스페셜, 아홉 번째 작품 <아득힌 먼춤>이야말로 드라마 스페셜이기에 가능했던, 드라마스페셜의 존재의 의의를 가장 드러낸 작품이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을 채운 건 마치 현대 무용처럼 난해한 몸짓으로 가득한 연극의 한 장면이다. 그 뜻모를 몸짓이 끝나고 나면, 한 예술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신파랑, 스물 여덟살, 젊은 연극 연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안그래도 순수 연극이 동토인 이 시대에 sf물인 <로봇의 죽음>이다. 당연히 무대에 올리기도 전에 단원들은 '망했다'를 대놓고 입에 올리고, 아니 그 이전에 연극을 공연하는 단원들도 결말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그보다 더 심했던 것은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연출이었지만 술에 취해있거나, 잠에 취해있었던 신파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한 반목과 불신이 더 컸었던 연극, 그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신파랑은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버렸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제 죽은 젊은 예술가를 추모하는 동문 후배들과 졸업 작품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하는 작가이자 후배 최현(이상희 분)에 의해 다시 무대에 올려질 작품<로봇의 죽음>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에 따라 첫 공연 당시 자신이 납득할 수 없었던 <로봇의 죽음> 결말을 이제 자신의 졸업 공연이란 명목으로 다시 뜯어 고치기 위해 고민하며, 부모님의 부탁을 받고 본의 아니게 파랑의 남은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 현의 시선과, 파랑이 무대에 올렸던 <로봇의 죽음>이 '극중 극'으로 전개되며 드라마를 끌어간다. 

연극의 배경은 태양이 과열되기 시작한 먼 미래, 그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인류는 절멸하고 만다. 살아남은 건(?) 태양의 에너지를 자원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 하지만 인류를 절멸시켰던 태양의 열기도 그 생명을 다해가고, 안드로이드들 역시 인류와 마찬가지로 '멸종'의 길에 접어든다. 이에 류적 사망선고를 받은 안드로이드들 중 역사 기록소 소장, 행정과장, 테이터 팀장은 사멸한 인류를 통해 자신들의 방전에 대처하고자 한다. 이들은 금지된 구역에 남겨진 인류의 테이터베이스를 탐험하고, 거기서 만난 인류의 흔적에게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에너지를 충전하여 절멸에 대응한 답을 얻고자 한다. 

안드로이드들이 인류에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과 달리 '유한성'의 삶을 살았던 인류가 그 유한성의 불안함을 어떻게 벗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이미 죽음이 예견되어 있는 삶, 그럼에도 불안과 공포로만 점철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안드로이들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며 답을 구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그들의 절박한 질문에 인류가 남긴 지혜는 '춤을 추라'였다. 



이 황당한 연극의 결말, 연출가 파랑은 이를 고집했지만, 작가 현, 그리고 단원들, 후배들 중 그 누구도 이 결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추모 공연이자, 자신의 졸업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이 연극의 결말을 현은 당연히 자신의 이해할 수 있는 결말로 바꾸려 한다. 

누구나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던 장례식 과정에서 너무도 담담했던, 아니 심지어 유서 한 장 남겨놓지 않고 죽음 파랑에 화가 났던 현은 누군가 먹으라고 줬던 개 염소를 키우며 살았던 파랑의 집을 찾으며 파랑과의 지난 일을 다시 반추한다. 

후배 현을 찾아와 함께 연극을 하자던 파랑, 하지만 그는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불성실했다. 그런 파랑을 불신했던 현과 동료들. 철거 현장이었던 조연출 슬기의 집에 찾아갔다가 파랑이 철거단원으로 일한 전력이 드러나자 그 갈등은 극에 달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다그치는 단원들에게 꼬박꼬박 쥐어준 월급이, 브로슈어와 밥값을 위해 돈을 많이 주는 일이 필요했었다고 소리친다. 그런 그에게 슬기는 철거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조만간 월급이 나올꺼라 위로했다며 울부짖고, 철거한 돈으로 받은 월급으로 철거한 집을 고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파랑의 죽음 이후 슬기의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연극 내내 선문답같은 질문을 던진 파랑에게 현은 냉담하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 답한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 차기작을 하자고 찾아온 그에게 야멸차게 다시 한번 도장을 찍듯 답한다. 그의 옷에 낀 머리카락을 라이터불로 지져서 끊어내듯이. 

연극 속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에너지를 나누어 얻은 '춤을 추라'는 답에 당혹스러워했지만 결국 손과 손을 맞대어 춤을 추며 방전된다. 마치 그 모습은 선사 시대 인류들이 남긴 벽화를 연상케 한다. '죽음'으로 그들은 '유한함'을 넘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은 영생을 얻었듯이 말이다. 먼 미래의 안드로이드들을 통해 연극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서의 본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철학적 명제에 도달한다. 



하지만 파랑이 공연했던 연극과 달리, 현실의 젊은 예술인 파랑은 좌절한다. 그가 올리고 싶은 공연을 위해, 단원들의 열정 페이 대신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정당한 열정을 위해 철거반원 일까지 감내해야 했지만 동료는 물론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연극을 포기할 수 없었고, 돌아온 건 함께 할 수 없는 불통, 결국 그는 홀로 쓰러져 간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쓰러지는 소리를 그 누군가 들어주길 원했던 나무처럼. 

'닿을 일 없는 각자의 궤도를 도는 사람들, 온몸으로 판독 불가의 춤을 춘다. 당신에게 닿기를 원하며'

<아득히 먼춤>은 극중 극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인간을 정의내린다. 하지만, 그 정의가 2016년으로 돌아오면 '현실'이라는 거세된 태양아래 젊은 예술가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의 순수한 예술혼은 이해받을 수 없으며, 세상은 순수를 품을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예술가는 자신의 증명을 죽음으로 밖에 해낼 수 없다. 비극적 2016년판 젊은 예술가의 초상,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파랑의 삶에 끼어든 현은 동물 보호소로 갈 운명의 파랑의 개를 구해내듯, 파랑의 연극을 그의 의도대로 무대에 올린다. 아득히 멀었을 뿐, 닿을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예술과 존재, 그리고 그걸 풀어나가는 sf형식의 전위적 연극과, 초라한 현실, 그리고 주인없는 파랑의 공간이 상징적으로 엇물린 <아득히 먼 춤>은 드라마로서는 참 '아득'하다. 하지만, 그 '아득'함이야말로 드라마 스페셜만이 해낼 수 있는 당위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익숙한 이야기, 뻔한 주제를 말해야 하는 '드라마'라는 대중적 공간에서, 가장 철학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주제와 형식을 선보인 <아득히 먼 춤>은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던 그 분의 취미가 회자되는 이 시점에 대중의 눈높이에 안주하지 않는 이 실험적 도전으로서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낸다. 1.3%의 <아득히 먼 춤> 이야말로 아무도 없는 숲에서 홀로 쓰러져 가는 나무요, 닿을 길없는 궤도를 도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판독 불가의 춤이다. 
by meditator 2016. 11. 21. 16:08

드라마계에는 공공연하게 '버리는 카드'란 말이 통용된다. 적지않은 비용이 투자된 드라마에 '버리는 카드'란 말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지만, 상대작이 워낙 압도적 위용을 드러낸다면, 그에 상대하는 경쟁사들은 무모하게 붙어서 처절하게 터지느니 차라리 누가 보기에도 '버리는 카드'같은 드라마를 편성하여 무안함을 덜자는 '보신'의 전략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로이 시작되는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이다. 


sbs의 신작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푸른 바다의 전설>에 누가 감히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이에 kbs는 어린 금비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웠고, mbc는 주연이 처음인 신인들을 앞세웠다. 결과도 예상대로 였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첫 회부터 16.4%(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치고 나간 반면, 그나마 금비 역의 허정은과 아빠 역의 오지호의 뜻밖의 '캐미'가 5.9%(닐슨 코리아 전국)의 양호한 결과를 도출했다. 반면에 mbc의 신인들은 3.3%(닐슨 코리아 전국)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혹자는 차라리 조용히 망해서 사라지면 이런 드라마가 있었는 줄 몰라 주인공들에게 부담이 적을 것이라 하지만, 2회까지 마친 <역도 요정 김복주>더러 조용히 사라지라 하기엔 그 '청춘의 서사'가 아깝다. 



물론 처음부터 <역도 요정 김복주>가 볼만했던 건 아니다. 1회 시끌벅적하게 드라마를 연 것은 체육대학 학생들이다. 한얼 체대 그리고 거기에 역도부와 리체부의 알력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역도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행사만 있으면 의자를 날라야 하는 역도부의 수모로 시작되었다는게 더 정확할까? 그리고 그 역도부에는 '역도'라는 종목으로 연상되는 체형과는 좀 다른 체형을 가진 꺽다리 김복주(이성경 분)란 체대 2학년 학생이 있다. 김복주의 전국 체전 우승이란 영광도 잠시 역도부의 일과는 '리듬 체조' 선수들의 운동에 방해되지 않게 의자를 나르고 정리하는 '수모'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수모는 세탁실에서의 두 운동부의 알력과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힘을 쓴 김복주의 사과와 이어진 행운의 운동복 실종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김복주를 둘러싼 해프닝 한 편으로 이 드라마의 또 한 명의 주인공 수영부 정준형(남주혁 분)의 되풀이되는 스타팅 실수와 그 실수로 인해 의기소침한 준형의 일상이 엇갈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세탁실 빨래 도둑을 쫓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쫓는 사람과 쫓기는 변태로 조우하게 되는데. 

이 장황해보이는 1회, 하지만 학교에서 인정받는 운동부와 그렇지 못한 운동부의 알력과 애환은 언젠가 보았던 '운동' 드라마의 데자뷰처럼 느껴지고, 매번 경기에만 나가면 실수를 되풀이 하는 에피소드 역시 어디선가 본듯하다. 꼭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춘 드라마의 첫 회라기엔 어쩐지 맥이 빠지는 출발인 것이다. 



2회, 청춘의 서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고 
하지만 2회로 들어선 드라마는 1회에 왜 그랬어? 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로 비로소 이 드라마가 본래 내려고 했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무지 호감이라고는 쉽게 느껴지지 않던 빽빽거리던 <치즈 인더 트랙>의 이상한 백인하같던 이성경도 2회에 들어서니 키가 자랐지만 여전히 어릴적 뚱이었던 그 아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의식에 쪄들어 겉멋만 들려보였던 준형도 김복주가 뚱이인 걸 알게 되면서 뚱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그 유악한 아이의 면모를 찾아간다. 씩씩한 소녀 복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외롭고 고통스러운 하지만 이제 뚱이 복주를 만나 어린 시절의 그 청량함을 되찾아 가는 준형과 그들과 맞물려 들어가는 체대생들의 일상이 드디어 공감가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뚱이라 부르는 준형이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던, 하지만 거침없이 스쿠터를 타고 바쁜 아버지 대신 치킨 배달을 하는 여전히 '소녀'인 복주가 우연히 자신을 '여자' 취급해주는 재이(이재윤 분)을 만나 설레이며 드라마는 청춘 드라마로서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늘 침잠해 있던 준형이 복주를 만나며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는 그 시점부터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복주와 준형은 이제 저마다 청춘의 입문 과정에 서서히 한 발씩을 내딛으며 드라마도 함께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청춘의 빛만 있는 건 아니다. 학교 행사를 위해 그리 의자를 날랐건만 돌아오는 건 운영비 30% 삭감으로 인해 교수와 코치의 눈물겨운 사연과, 태릉에서 돌아온 시호(경수진 분)의 불안한 연습 등은 성과 중심주의 엘리트 체육정책 아래 힘겨워하는 체육대생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전 여친, 남친이던 그들이 일상에서 웃고 떠들지만 각자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잔잔하게 <역도 요정 김복주>는 띠운다. 



운동을 매개로 한 드라마가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보면 <마지막 승부(1994)>에서부터 꽤 많다. 그 중 체대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체대생은 아니었지만 태릉 선수촌에 입소한 운동 선수들의 청춘담을 그렸던 홍진아, 홍자람 자매 작가와 이윤정 피디를 청춘물의 대명사로 만들어 준 <태릉 선수촌>이 <역도 요정 김복주>와 가장 흡사한 구조를 지녔다. 그래서 <태릉 선수촌>을 그리워했던 시청자들은 체육대학이란 공간적 배경만으로 <역도 요정 김복주>가 그못지 않은 청춘과 우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첫 회 보여준 상투적인 에피소드는 그 기대마저 무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진 그 누군가가 있어 2회를 본다면, <태릉선수촌> 못지 않은 2016년찬 청춘서사가 도래할 것이란 예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1. 18. 05:31

11월 15일 16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늦게 방영된 jtbc 뉴스룸을 상대로 10.0%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는 주욱 8~9%로 주중 월화 미니 시리즈 중 2위를 유지하며 미묘한 포지션을 유지해왔다. 소위 쉽게 '망했다' 거나, '흥했다'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경계선의 성과이다. 





이 성과를 좀 더 파고들어가 보자.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장르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나름 '선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지우'라는 '스타'를 내세운 '로맨스'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흡족한 성과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지난 몇 십년간 '멜로'의 대명사로 '발음' 문제가 그녀를 따라붙었던 연기력 논란의 배우 최지우가 능력있는 사무장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거듭난 전문직 드라마를 깔끔하게 이끌어내다는 지점에서 본다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최지우라는 배우에게 있어서는 또 한번의 질적 전환을 가능케 해준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가 한 편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그걸 꼭 편가르듯 가를 필요가 있겠냐 싶지마는 그래도 그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볼 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생각해 볼 많은 여지를 남긴다. 

선방한 스릴러 
올 한 해 여러 편의 장르 드라마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두 저조한 시청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 최고 시청률 7.6%(16회), <원티드>가 역시나 최고 시청률 7.8%(2회), 그리고 <뷰티플 마인드>로 가면 최고 시청률이 4.7%(3회)였다. 심지어 요즘 대세라는 박보검, 서인국이 주연으로 나온 <너를 기억해>도 최고 시청률이 5.3%(14회)였으니 누가 나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심각한 드라마 기피증'으로 인해 아니 진지하게 주제에 천착하면 천착할 수록 드라마의 시청률은 반비례하는 암울한 성과를 올 한 해도 넘지 못했다. 이 상황이라면 공중파에서 주제에 천착한 장르물의 시도는 더더욱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법정 드라마'에 '스릴러'를 가미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평균 8~9%대의 시청률,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 두 자리를 찍은 성과는 굉장히 흡족한 결과물이다. 결국 <시그널>이 공중파로 오면 '사랑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우스개를 '법정 로맨스'라는 장르물로 나름 넘어선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증명해 버린 셈이 된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능력있는 사무장이었던 차금주(최지우 분)가 의도치않게 노숙 소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백마탄 왕자, 아니 찌라시 언론사주 k팩트의 함복거(주진모 분)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양식을 띠기 시작한다. 거기에 순정어린 연하남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까지 합류하면서 삼각 관계의 구도는 완벽해진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직 검사였던 함복거가 사표를 던지게 했던, 그리고 차금주의 모든 것을 빼앗은 노숙 소녀 살인 사건과 그 배후의 '오성'이라는 로펌, 그리고 재벌가, 그리고 그들의 부도덕한 성스캔들을 '법정'을 배경으로 풀어내며 '법정'과 '사랑'이라는 양 날의 검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벼려진 두 날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기 위해 배후의 사건은 다분히 '음모'적이고, 매우 구조적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에서는 찌라시 언론사 사주가 남자 주인공이고, 짝퉁 빽에 연연하는 속물 사무장이 여주인공이듯,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절히 코믹하게 강온 전략을 쓴다. 

결국 '법정'과 재벌가의 부도덕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정의'를 다룬 장르물이라는 지점에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달달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새로운 '법정 로맨스'방식은 시청률 면에서 그 이전 장르 드라마들과 달리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아쉽다. 노숙 소녀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결국 재벌가의 부도덕한 성스캔들, 나아가  스폰서 의혹의 상징 '미식회'라는 드라마를 끌고 갔던 굵직한 줄기가 속시원하게 풀어졌는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볼 때 물론 15,6 회 마지막까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주제에 천착하려 했지만 어쩐지 아쉽다.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의 주범과 배후와 미식회의 핀트가 어긋나며, 시청자들이 '분노'의 촛점이 애매모호해졌고,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쓴 소년은 재심으로 굴레를 벗어났지만 과연 무엇이 해결되었는지 어리둥절한 채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과연 그 악의 주체가 오성이라는 재벌이었는지, 그 재벌가를 장악한 며느리의 위악이었는지, 그게 아니면 재벌의 개라는 오성 로펌이었는지, 정작 드라마는 '개'들만 이리저리 몰다 끝난 건 아닌지 고개가 꺄우뚱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잔뜩 심각하게 벌여놓고 마치 실밥 풀리듯 쉬운 마무리에 결국은 '로코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의 원인이 드라마 중반부에 들어서서 작가가 천착한 '로맨스'가 오히려 이들 장르물의 사건 전개에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공중파'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렇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갑동이>에서도 이와 같은 갈짓자 행보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남긴 바 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은 연쇄살인, 그 와중에 등장한 모방범,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가장 가까이에서 암약했던 진범,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에 드라마가 천착했던 연쇄 살인의 본질에 다가가는 대신, 카피캣이었던 류태오(이준 분)과 갑동이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형사 하무영(윤상현 분)과 오마리아(김민정 분), 마지울(김지원 분)간의 지리한 애증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궤도를 이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참 차금주에 의한 '오성' 로펌에 대한 수사로 속도를 붙여할 드라마는 뜬금없이 함복거와 마석우 사이의 애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해 버린다. 물론 애초에 <갑동이>와 다르게 '법정 로맨스'라는 취지를 내세운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로맨스'에 천착한다는 게 어패는 없지만 최소한 드라마가 이끌어 가는 본래의 궤도에서는 이탈하지 말아야 하는데, 권음미 작가는 <갑동이>에 이어 또 한번, 드라마를 전혀 다른 드라마로 만들어 버리며 호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갑동이>에서 양철곤(성동일 분) 형사의 활약이 아쉬웠든, 초반에 흥미진진했던 이동수(장현성 분)나, 강 프로(박병은 분)의 캐릭터가 서사의 횡보와 함께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와 그녀보다, 오히려 신선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그 뻔한 첫 눈에 반한다는 식의 함복거와의 오글거리는 사랑도 그렇고, 다짜고짜 순정파인 연하남 변호사의 저돌적 애정도 그러려니 하면서 보긴 했지만, 오히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신선했던 것은 '여성'들이다. 

최지우라는 배우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 사랑스러운 속물 사무장 혹은 변호사 차금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그녀와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다 동료가 된 구지현(진경 분), 그리고 16회까지 애증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배다른 동생 박혜주(전혜빈 분)의 캐릭터도 신선했다. 거기에 재벌가의 며느리에서 재벌가의 비자금을 장악하고 안주인이 된 조예령(윤지민 분)도 매력적이었다. 차라리 어설픈 '로맨스' 대신 이들 여성들의 '육박전'으로 드라마를 치열하게 전개했다면 더 신선하고 멋진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마석우가 가장 멋있던 장면은 안타깝게도 16회 마지막 그가 검사가 되어 차금주와 법정에서 팽팽하게 대립했을 때였다. 차금주가 멋졌던 것도 함복거처럼 법정에서 능력자로 그 능력을 십준 발휘할 때였다. 물론 장르물로써의 고심을, 그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지만, 좀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위해, 권음미 작가가 잘 하는 것에 좀 더 천착한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11. 16. 16:55

계절은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다시 피어난다. '오겡끼데스까'라는 절규가 하얀 설원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겨져 있었을까? 얼마전 종영한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청춘 남녀의 사랑을 '엽록소'가 터져나오는 봄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 싱그러움이 한껏 돋보일 수 있었을까?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 속 계절은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중요한 배역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 계절에는 편애가 존재한다. 청춘의 봄이거나, 이별의 가을이거나, 혹은 겨울이거나, '삼복더위'의 그 무더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리 흔치 않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라면 모를까? 그런데, 여름, 그것도 딴 곳도 아닌 경상분지에 위치한 무더운 안동이라니. 하지만 그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 추운 안동이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를 통해 싱그러운 여름의 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왜 하필 여름이었을까?
드라마 속 안동에서 만나게 된 두 남녀, 좀 더 정확하게 미진(전혜빈 분)의 국시집에 들렀다 첫 눈에 안동 촌구석 국시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 분위기의 미진에게 시선을 빼앗겨 안동에 내려올 때마다 참새가 물레방앗간 드나들 듯 국시집을 들른 진우(박병은 분), 왜 하필 이들은 여름에 안동을 휩쓸고 다녔던 것일까?

두 사람은 국시집에 안동 국시를 먹으러왔다는 핑계로 드나드는 진우와, 그런 진우의 속이 빤히 보이는 추근거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미진과의 안동댐을 비롯하여, 도산 서원 등 안동의 주요 명소를 연애인지, 동행인지 모를 행보로 돌아다닌다. 그 쨍쨍한 여름날에. 드라마는 '여름'의 햇빛을 화사한 화면에 잔뜩 머금고, 그 빛을 반사해 안동을 비춘다. 

그러나 그 쨍쨍한 햇빛 속의 두 남녀의 처지는 그리 밝지 못하다. 일단 유부남인 진우, 아내와 결혼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어, 병원을 가보자는 요청을 받는 처지의 그가, 죽은 선배의 원고 정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안동에 내려온다. 그런 그가 들른 국시집 미진도 도대체 이런 곳에서 국시집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모호한 존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진의 이름도 모른 채, 진우의 정체도 모른 채 안동의 여름을 거닌다. 진우가 사준 양산까지 쓰고. 

여름은 '욕망'의 계절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은 더운 여름의 열기를 업고 청록빛의 녹음을 발산한다. 온도가 올라가는 만큼 생명력을 그 속에서 저마다 한껏 자신을 열어제친다. 바로 그런 '욕망'의 계절에 미진과 진우는 안동이란 고장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모른 척 방기하며 관계를 지속시킨다.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솔직해진 욕망
하지만 사랑인 듯 불륜인 듯 관계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의 존재는 물을 막아선 안동댐의 수문처럼 닫혀있다. 진우가 들려준 선배 도근(김태우 분)의 소설 속 사랑하는 연인의 자살을 목격하고 후각을 상실한 조향사가 미진이듯이, 진우 역시 도근의 소설을 통해 드러나듯 한때 소설을 써보려했던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후각을 잃고 도시의 삶을 포기한 미진과 꿈을 덮은 채 도시에서 살던 진우가 여름의 안동에서 만나, 짖눌렀던 '욕망'의 한 자락을 슬며시 내보이기 시작한다. 병원에 가는 대신 조금 더 노력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슬그머니 뒤돌아 눈을 감던 진우가 미진과의 모텔행을 꿈꾸고,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잃고 사랑을 포기했던 미진이 그와 같은 체취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아슬아슬하던 욕망인지, 욕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관계는 유부남이었던 진우, 미진과 상규(오대환 분)의 관계를 오해한 진우를 통해 어긋나기 시작한다. 손 한번 잡지 못했던 그저 흘러오는 체취만으로도 아찔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해와 어긋남이 드러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솔직해 진다. 



그리고 파탄 이후에 비로소 솔직해진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찌질하게 미진 앞에 아내까지 데리고 와서 호기를 부리다 이혼까지 당해버린 진우는 이제 좀 어른이 되어보라는 아내의 말에 비로소 '소설'이라는 진짜 욕망을 마주설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후각을 잃었다는 이유로 안동까지 도망쳤던 미진 역시 진우와의 알듯모를 듯한 관계가 깨진 후 여전히 삶을 내던질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인정한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열기 속을 기꺼이 거닐던 두 사람은 그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여전한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비록 이제 거리에서 마주쳐도 그저 스쳐지나갈 인연이 되었지만, 여름, 그리고 안동의 한 시절은 두 사람을 비로소 자신으로 드러내게 만든다. 

이렇게 여름이라는 계절과 안동이라는 아름다운 고장을 배경으로 탄생된 <국시집 여자>는 마치 고등학교 미전의 수채화같은 드라마다. 지난 여름의 열기를 망각하고, 여름의 안동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여름이, 그리고 안동이 이렇게 싱그러운 계절이었으며, 아름다운 고장이었는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드라마는, 그저 계절과 고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배경과 그 배경 속의 이야기를 절묘한 상징의 고리를 통해 설명하고 드러내 줌으로써, 완성도 높은 단막극으로 탄생된다. 특히 빗속에서 안동댐 수문의 방류와, 그런 모습을 보며 삶의 욕구를 되찾는 미진이라던가, 여운을 잔뜩 남긴 두 사람의 재회 장면 등은 드라마 스페셜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단막극의 묘기를 한껏 풀어낸다. 물론 이런 배경과 서사의 절묘함을 더욱 맛깔나게 만든 건 분위기있는 전혜빈과 모호한 박병은의 안정감있는 조화이다. 
by meditator 2016. 11. 7. 17:09

또 한 편의 불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불륜이라도 새로이 시작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대한 반응은 앞서 방영된 <공항 가는 길>에 대한 반응과 온도 차가 난다. 김하늘, 이상윤 주연의 <공항 가는 길>은 방영 전부터 '불륜'을 미화하는 것이냐는 '정서적 반발'에 부딪쳤다. 제작진은 부디 예단하지 말고 작품을 보고 판단해 달라 읍소하며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진화하는데 고심했다. 하지만, 같은 불륜을 다루는데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는 그런 풍문이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제목에서 부터 노골적으로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데? 벌써 '불륜'에 익숙해 진 걸까? 아니 그것보다는 로맨틱한 멜로로 그려진 불륜인 듯한 <공항 가는 길>과 달리, 피해자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적 상황을 고심한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jtbc 금토 드라마, 이는 이미 2007년 일본에서 방영된 바 있는 동명의 드라마 리메이크 작이다. 일찌기 <여왕의 교실(2013)>에서부터 최근 김희애 주연의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의 반응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적 실정에 맞지 않은 무리한 각색의 일본 드라마는 시청률은 물론, 출연한 배우들에게조차 부담을 안기며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에 어두운 기운만 불어넣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외주 제작사의 피디 도현우와 슈퍼우먼인 그의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라는 현실적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또한 아내가 바람을 피게 된다는 도현우의 개인적 위기와 그가 소속된 외주 제작자가 지금껏 해오던 영화 프로그램 대신 '자극적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불륜을 소재로 한 아침 방송을 준비하게 되는 것으로 '불륜'을 끌어들인다. 거기에 도현우의 친구이자, 이웃 사무실을 쓰고있는 바람둥이 최윤기(김희원 분)을 등장시켜 '불륜'을 다각화시킨다. 일본 원작 드라마가 있음을 알고 보면 상당히 '일본 드라마적' 설정이지만, 1회에서 부터 이선균 특유의 권태로운 생활인으로서의 연기 톤을 앞세워 아내의 불륜을 끌어들인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 자체로 한국적 상황에 걸맞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도치않게 아내의 불륜으로 의심된 문자를 보게된 남편 도현우, 기존 한국 드라마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아내의 '배신감'에 촛점을 맞추거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공항 가는 길>처럼 불륜보다는 사랑을 부각한 드라마들이었던 데 반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최근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신선하게도 피해자가 된 남편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정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를 더욱 신선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 남편보다, 그가 아내의 바람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이 드라마가 2007년작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이라지만, 일본 드라마 역시 2005년 한국에서도 발간된 바 있는 동명의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리얼 스토리'이다. 고민과 답변을 주고 받는 일본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goahead란 아이디로 올린 고민에 2주만에 1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언론에 화제가 되어 '부부의 사랑'에 대해 일본 사회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네티즌과 함께 불륜을 고민하다. 
한국 버전의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역시 원작 리얼 스토리의 방식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고민 상담 사이트 대신, 최근 우리 사회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디씨 인사이드의 주식 갤러리라는 익숙한 인터넷 공간을 배경으로 도현우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고민을 털어놓은 남편, 그리고 그가 소속된 불륜 프로그램에 고민을 호소해온 남편, 이 상황은 '해프닝'이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는 우리 사회 남자들의 막막한 사회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술자리에서 가장 솔직한 듯하지만, 정작 자기 가정의 솔직한 이면을 고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지 못한 남자들의 현실적 모습을 드라마는 솔직하게 까발린다. 



또한 그런 익명의 게시판에 토로된 남편의 고민에 연달아 달리는 댓글들의 양상은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한 사람들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묘한 공감대를 얻어 간다. 함께 한강에 가자부터, 시시껄렁한 농당 따먹기, 그리고 가장 진지한 댓글까지, 현재 각 인터넷 게시판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모습을 드라마는 복기한다. 드라마는 주, 조연 배우들과 함께, 그 댓글을 다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우리 시대의 풍경을 묘사해 간다. 그러면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도현우 개인의 바람에서 마치 그 예전 이웃집 사건에 감놔라 배놔라 했던 마을 주민처럼, 인터넷 마을의 이웃들의 참견을 통해 부터 우리 시대의 만화경으로 구도를 확장해 간다. 정작 도현우 본인은 심각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의 심각함보다 그에게 참견하는 직장 동료를 비롯한 미지의 이웃들의 면면이 더더욱 관심을 끄는 인터넷판 시트콤이랄까. 

<송곳(2015)>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청담동 살아요>의 김석윤 피디가 연출이라 하면 그도 그럴만 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처음 이선균-송지효로 시작된 한 가족의 평지풍파는 김희원-예지원을 넘어, 이선균 네 사무실 식구들로, 이제 김영옥, 김혜옥, 우현 등의 쟁쟁한 특별 출연진들의 네티즌들로 확대되며 신선한 드라마적 시도가 된다. 도현우네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직간접적 참견들을 통해,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도현우는 부화뇌동하며, 아내의 불륜을 추적해 간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원작 리얼 스토리가 익명의 게시판 댓글들을 통해 부부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듯이, 도현우 역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며 분노와 배신을 넘어, 불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현우네가 만드는 '불륜' 프로그램과 함께 이런 일련의 해프닝들이 이혼율 세계 1위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된 '불륜'을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by meditator 2016. 11. 5. 06:19

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별 일이 아닐 수 없덨다던 최수아(김하늘 분)는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트린 서도우(이상윤 분)와 이별을 한다.  3무 사이라, 그리고 2무 사이라 애써 자신들을 변명하며 서로를 놓지 않으려던 했던 두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몰려온 개인사들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를 핑계대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불륜'을 핑계대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11회 제주의 공항에서 결국 다시 조우하고 만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드라마는 '불륜'을 정당화하기 위해 '운명'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운명적 재회를 통해 <공항 가는 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처럼 보이는 '재회'의 필연이 아닐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10월 10일에서 13일까지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3부작은 대한민국 부부의 현실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전통과 개인의 중간 지점에 놓인 한국의 결혼, 그래도 현재 한국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남녀의 결합이다. 하지만 '사랑'의 관계로서 결혼은 아이의 출산과 함께 그 '사랑'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해 간다. 즉 대한민국 부부는 사랑하는 개인의 결합을 넘어 남편은 돈을 벌어다주고, 아내는 아이를 키우는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부부의 성격은 아이가 다 성장해서 부모의 품을 떠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부부로서 살아가는 만족도는 현격하게 떨어진다.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 부부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서도우-김혜원 부부, 두 사람은 비록 서도우의 친자는 아니지만 '애니'라는 아이를 매개로 시작된 부부이자, 애니를 아껴주는 할머니, 형과 같은 민석(손종학 분)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이룬다. 민석이 친형은 아니지만, 도우가 돌아가신 어머니만큼 믿는 형이듯이, 애니가 친자는 아니지만 도우도, 애니도 가장 애틋한 부녀지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진짜못지 않던 유사 가족은 친모 혜원의 도발로 인한 애니의 죽음으로 파괴되어간다. 애니가 죽고, 애니의 죽음을 애처로워하다 자신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애니에 대한 아내의 배신을 알고 분노하며, 결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수아네 역시 마찬가지다. 애니와 룸메이트였던 수아의 딸 효은(김환희 분)은 애니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런 딸의 고통을 공감한 수아는 무작정 말레이시아에서 딸을 데리고 귀국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을 내세우던 현실주의자인 그는 아내의 무모한 결정에 분노하고 아내의 직업으로 인한 육아의 공백을 아내와 딸을 시어머니 집으로 강제 입주시키는 것으로 분풀이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 홀로 남겨지는 딸을 견디지 못한 수아는 결국 사표를 쓰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국제학교' 행이라 거짓말을 하고 딸과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의 부부, 그 이면엔?
이렇게 드라마는 '자녀 양육 단위'로서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부부로서의 그 기반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 때 두 부부를 들여다 본다. 

애니의 죽음이후 급격하게 파괴되어져가는 서도우 부부, 하지만 그건 '애니'라는 의붓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딸 애니를 미혼모로 자신이 어렵게 키워왔던 딸이라 속인 혜원은 딸을 이용하여 서도우와 결혼해야 할 만큼, 서도우, 그리고 재벌가와 막역한 인간문화재 그의 어머니 고은희 여사(예수정 분)의 그늘이 필요했다. 결국 애니와 고은희 여사의 죽음 이후 벌어진 사이는 이 부부를 부부로 포장해 왔던 포장지가 사라진 부부로서의 민낯을 드러낸다. 

수아와 진석의 부부도 다르지 않다. 딸 효은의 육아로 인해 번번이 충돌하는 부부, 아내를 자네라 부르며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는 남편 진석은 아내의 의사는 커녕, 아내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조차 짜증내 한다. 아내와 딸이 없는 집에서 홀로 자유로워하는 남편, 그리고 오래전 연인이었던 아내의 친구 송미진(최여진 분)에게 거침없이 도발하는 남편, 무엇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양육과 아이의 생각을 먼저인 양육 태도를 상징으로 대립되는 두 사람의 가치관은 자녀 양육의 단위로서 부부의 삶조차 충실해 질 수 없게 된다. 

결국 드라마는 '자녀'라는 대한민국 부부의 허울을 벗겨버리고 난 자리에 이질적인 두 사람으로 남겨진 두 부부의 민낯을 펼쳐보인다. 불륜이 문제가 되었을 때, 과감히 둘의 관계에 공백을 제시할 만큼, 최수아나 서도우에게 있어, 불륜이 가정 파괴의 주범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파괴된 부부'가 있었음을 드라마는 설득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아내가 외면한 애니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수아에게 마음이 열렸던 도우,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수아를 품어주었던 도우처럼 서로의 '정서'만으로 무작정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이 이제 제주에서 다시 조우하게 함으로써, <공항 가는 길>은 그저 불륜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교감으로서 불륜을 생각하고자 한다. 

물론, 아직도 박진석의 아내이고, 김혜원의 남편인 두 사람은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놓여있다. 그러기에 그래도 불륜은 불륜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저 막연한 끌림으로 혼돈에 빠졌던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을 '느리게', '새롭게' 시작하는 제주에서의 만남은 삶의 방향을 정한 이후의 또 다른 각도의 불륜을 전개하게 한다. 과연 삶의 태도에서조차 결단을 내린 두 사람은 이제 다시 운명적으로 찾아온 이 필연의 만남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런 수아와 도우의 이후의 행보를 통해, 드라마는 '자녀'라는 허울에 씌여 사는 부부들을 거울 앞으로 내몬다. 

by meditator 2016. 10. 27. 18:41

10월 23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평양까지 이만원>은 어쩐지 반갑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산다는 정체불명의 청년, 그 청년의 숨겨진 사연을 풀어가는 단막극은 일찌기 <베스트 셀러 극장> 혹은 <tv문학관>을 통해 소개되었던 익숙한 플롯의 작품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래전의 단편 소설을 읽은 듯 '고전적인 소재와 주제 의식'을 깔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시대와 엇물리지 않은 구름잡는 이야기같을 수도 있겠지만, 출생의 비밀과 그로 인한 청춘의 고뇌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음을 고통받게 하는 가장 '본원적'인 주제 중 하나이니, <평양까지 이만원>은 서가에서 고전을 꺼내 통독하는 느낌으로 오래된 듯하지만, 그래서 신선한 감상으로 다가온다. 



구부러진 못, 영정 
대리 운전을 하는 한 청년이 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규칙을 위반한 다른 대리운전 기사에게는 씨알도 안먹히게 단호하던 그가, 사장조차도 의심스럽다는 서울 한복판의 산동네 길에서 만난 아줌마가 꽃을 한 송이도 못팔았다고 하자 선뜻 지갑을 연다. 화장실은 수리중이고, 방안 전등은 댕강 끊어졌는데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한다. 도대체 왜?

그의 모호한 정체가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은 그를 찾아온 신부님으로부터이다. 그를 동생처럼 여기는 차준영 신부(김영재 분), 그와 함께 술을 먹으며 사제를 하지 않겠다고 뛰쳐나간 그가 그렇다고 세속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놀린다. 하지만 그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듯 연신 걸려온 전화에 당황한 듯 자리를 뜬 신부의 뒤로 나타난 소원(미람 분)과 뜻하지 않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부제직까지 수여받은 후 뛰쳐나온 박영정(한주완 분), 그리고 그의 주변에 느닷없이 등장한 여성 소원과, 그녀로 인해 가장 그와 막역하던 관계에서 불편한 긴장이 팽배한 관계로 변한 차신부의 현실적 갈등은 이후 드러날 박영정의 환속의 사연과 맞물린다. 그가 본의 아니게 얽혀든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사랑의 굴레는 그로 하여금 환속을 풀어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계기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구부러진 못'이다. 박혀있다 뽑혀나온 못, 그 형상은 흡사 사제의 길을 가다 이제 하루하루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영정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렇게 속에 머무르지만 정처없는 영정처럼 구부러져 쓸모가 없어진 못을 그가 만난 소원은 기꺼이 거둔다. 그것이 악마를 쫓아주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이라며. 

하지만 소원이 말한 그 구부러진 못의 부적의 주문은 이후 차신부의 입을 통해 재연되고, 술자리에서 그의 토로에 따르면 그건 그가 외면했던 어머니의 미신이었던 것으로 인연의 끈을 풀어간다. 그는 외면하지만 소원과 차준영을 통해 그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게 되는데, 거기엔 지금 그가 얽힌 관계처럼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과거의 악연이 있다. 그리고 그 '악연'은 그로 하여금 사제직을 떨치고,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라 외면하는 현실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리고 용서 
가장 간절한 순간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 기도를 하게 되는 영정, 그로 인해 그는 비로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도망치려 한 그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어깃장을 놓으려 했지만 차신부와 소원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영정, 그들을 통해 그는 비로소 '사랑'을 용서하게 된다. 차신부와 소원의, 그리고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하지만 아버지였기에 자신을 신부직에서 토해놓았던 또 한 분의 신부님과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고 뒤늦게 펼쳐본 아버지로써의 사랑을.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다. 구부러진 못 그 전설의 시작을. 마치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사랑했다는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 사랑은 '구부러진 못'을 행복의 메신저로 변화시켜, 자신을 구부러진 못으로 내던져버린 영정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 미신과도 같았던 전설은 그가 차신부와 소원,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으로,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한다. 그의 아버지는 마치 그가 그럴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겨진 편지에 구부러진 못을 그려놓았었다. 결국 우리에게 '용서'라는 힘을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평양까지 이만원이란 제목답게 드라마의 마지막은 처음과는 다른 밝은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영정의 모습을 마무리된다. <평양에서 이만원>은 그 흔한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고전적인 주제이지만, 2016년에는 가장 생경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 생경하고도 고전적인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현실에 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있는 '신부'라는 소명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드라마는 종교직으로서의 신부 이전에 '인간'의 사랑을 논한다. 그리고 로만 칼라를 벗어버린 차신부와, 영정을 잉태하였음에도 신부로서의 소명을 성실히 수행한 존경받은 신부로 남은 그의 아버지를 통해, 용서와 사랑의 한계를 묻는다. 그리고 출생으로 인해 소명으로 부터 튕겨져 나온 영정의 방황은 성과 속의 포용을 반문한다.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에 생뚱맞은 하지만 언제나 영원불멸한 진리인 '사랑'과 '용서'를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6. 10. 24. 05:55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란 속담이 있다. 

일찌기 유교 문화권이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죽은 조상은 확실히 모셨지만,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한 존중이라기 보다는, 그 '죽은 조상의 음덕'으로 현실 세계를 잘 살게 해달라는 현세주의적 욕망이 앞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단 속담은 바로 그런 우리 문화의 현실적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주고 있다. 

첫 회 다짜고짜 여주인공에게 '암선고'를 내렸던 <판타스틱> 16부의 대장정을 마치며, 그래도 여전히 여주인공을 살려놓는다. 개똥밭은 커녕, 사랑도, 일도, 삶도 '행복'에 겨워. 하지만 그저 '살려놓았다'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라고 한다면 <판타스틱>이란 드라마에 대한 '오독'이 될 것이다. 남녀 주인공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때론 그가 진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었던 홍준기(김태훈 분)을 통해 인생의 끝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남긴다. 



암선고를 받으며 시작된 '시한부 로코'
잘 나가는 방송 작가 이소혜(김현준 분), 하지만 방송 작가로서 성공적인 외양과 달리 그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작가라지만 막상 새로 들어가는 작품에는 '발연기'의 대가라는 한류 스타 류해성(주상욱 분)이 주인공을 맡아서 대본 리딩에서부터 실소가 터지게 만드는가 하면, 개인사에 있어서도 유일한 혈육인 오빠와 언니는 늘 그녀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바쁜 삶, 기댈 곳 없는 인간 관계, 그런 그녀에게 느닷없이 '암'이라는 재앙이 찾아왔다. 

그렇게 드라마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여주인공에게 '암'이라는 데미지까지 주며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생의 암담한 종착역이라 생각되었던 '암'선고 이후 그녀의 삶은 오히려 '역전'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이 드라마 <판타스틱> 16부의 여정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삶을 달리 만든 건 바로 그녀의 주치의 홍준기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 도움을 받으러 찾아간 그, 그의 권유로 생각지도 않았던 건강 검진을 하게 되고 '암'선고를 받아 망연자실해 있는 그녀에게 홍준기는 전무후무한 서브남으로 찾아온다. 그녀의 주치의지만, 그 역시 암 투병 환자임을 밝힌 홍준기는 '암'으로, 그리고 그 보다 더 막막한 삶으로 주저앉아버린 그녀에게 '암' 선고가 인생의 끝이 아님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때론 그녀 앞에 발연기 남주로 등장하여 첫사랑의 사연을 지닌 지고지순한 해성과의 연적으로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좌절하고 절망하는 암환자 그녀에겐 때론 환우로, 때론 주치의로, 그리고 결국은 '죽음'의 멘토로 16부의 여정을 함께 했던 홍준기를 통해 이소혜는 변화한다. 

이소혜보다 앞서 암을 선고 받았기에 결국 이소혜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 그, 하지만 '죽음에의 여정조차, '소풍'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홍준기는 '웰다잉'의 표본을 보여주며 앞서간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소혜에게 선물한 앨범을 통해 드라마 초반 우울한 가정사에 쉴새없이 사건 사고가 터지는 일 속에서 삶의 활기라고는 없던 그녀가 오히려 암 이후 얼마나 밝아지고 활기차 졌는가를 보여주며 결국 삶은 '어떤 병이나 사건'이란 외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죽은 이후 조차도 이소혜의 '섬망'으로 등장하여, 삶에의 의지를 북돋는다. 그리고 그런 홍준기를 통해 시청자들조차 그를 멘토로 삼아, 삶과 죽음을 반추해보도록 드라마는 유도한다.

죽음의 멘토,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삶의 멘토가 된 홍준기를 통해, 삶의 절망에 빠져있던 이소혜와, 소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던 해성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로코'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드라마는 '암'과 '죽음'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울하거나 칙칙하지 않고 그 어떤 로코보다 역동적인 사랑과 삶의 과정을 다룬다. 결국 홍준기는 멘토와 서브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한 후 그의 보람된 인생을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으로 설명하며 생을 마감한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웰다잉, 그리고 소풍같은 삶 
홍준기를 웰다잉으로 이별한 대신, 드라마는 '로코'의 본분을 살려, 여주인공 이소혜를 사랑의 힘으로 살려낸다. 홍준기는 소풍을 마치고, 이소혜의 소풍은 끝나지 않았지만, 끝나고 끝나지 않고 여부를 떠나 암과 죽음을 화두로 삼았던 드라마는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 의지를 개진한다. 그저 자신에게 몰아닥친 삶에 휘말려 한 세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소풍'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즐기고 보람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그런 잘 죽기 위한 건강한 여정으로서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해, 암과 죽음을 담은 드라마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삶에 대한 생생한 의지로 가득찼다. 

그 덕분에 일 중독이었던 이소혜는 홍준기, 류해성의 사랑을 통해, 일도, 사랑도, 관계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되찾았고, 철부지같았던 한류 스타 류해성은 연기 변신은 물론, 최진숙의 손아귀를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사랑의 주체로 거듭났다. '로코'답게 사랑하고 성공했지만, 암' 투병을 넘어설 만큼 건강했다. 그것이 가능케 한 것은 이제는 그 어떤 역할에서도 안정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는 김현주의 연기와, '발연기 한류 스타'라는 배우로서는 난감한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며 연기 지평을 넓힌 주상욱,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연적이자, 멘토로 판타스틱이란 드라마의 주제를 넉넉하게 이끌어낸 김태훈의 변신에 힘입은 바 크다. 

앞서 <청춘 시대>를 통해 2016년 현실에 걸맞는 청춘에 대한 신선한 해석으로 화제가 되었던 jtbc 금토 드라마는 그 뒤를 이어 또 한번 '죽음'이란 화두를 '로코'로 변주해 내며, 치열한 주말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 특히나 <추적자>, <황금의 제국>의 조남국 피디가 jtbc로 이전하며 <라스트>에 이어 새로운 장르로 선보인 <판타스틱>은 여전히 최진태(김영민 분) 일가를 둘러싼 비리를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그의 날선 감각이 변함없음을 아낌없이 보여주는가 하면, 발연기 남주에, 시한부에 작가인 여주인공, 거기에 멘토이자 서브남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버무린 신선한 '로코'로 조남국 월드의 가능성을 확장해 보였다. 


by meditator 2016. 10. 23. 11:57

사이보그(cyborg), 이 단어는 사이버네틱스(cynetics 인공 두뇌학)와 생물(organism)의 합성어이다. 여러 영화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이들은 진화하는 기계인 '로봇'과 달리, 인간이 '기계'와 일체화되어 진화를 이룩한 존재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보그'의 문학적 경계가 형성된다. '인간'이지만,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선 존재.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거듭 놀라운 성과로 '로봇'을 만들어 내지만, 늘 그 '기계적 존재'는 '인간'의 영역에는 함량 미달인 결과로 나온다. 물론 '알파고'처럼 이제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존재인 인간에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에 대해 '인간은 자부심을 느낀다. 즉 인간과 닮았지만 아직은 인간에 한참 못미치는 존재, 하지만 '인간을 닮거나, 넘어설까 위협을 주는 존재, 이 아이러니한 이중성이 우리가 '기계 인간'에 대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실체가 아닐까?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에서 시간에 맞춰 등장한 사이보그 남편에 대한 감정도 바로 이런 미묘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날마다 8시 29분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남편, 천재 과학자인 아내가 맞춘 메뉴얼에 따라, 아내를 사랑해 주는 남편, 하지만 첫 장면부터 아내 세정(손여은 분)은 그 다정한 남편이 건네는 하얀 국화를 뿌리친다. 메뉴얼에 맞추어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남편, 하지만 그 메뉴얼의 빈틈을 발견한 세정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아니다. 그녀의 불안함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다. 

미스 프랑켄슈타인, 세정, 그리고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름이 있다. 1818년 메리 셸리가 썼던 <프랑켄슈타인>,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의 대학 시절 별명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살리려 했지만 그것이 오해가 되어 자신의 실험을 위해 강아지를 죽였다고 오해를 받은 그녀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대학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스치듯 지나간 이 별명, 하지만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과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성민(이상엽 분)의 관계는 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버전과도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괴물'을 일컬어 쉬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 원작 속 '괴물'은 피조물(the creature)라고 불려졌다. 그게 아니면 괴물이나, 악마로, 정작 그 '괴물같은 피조물을 만든 사람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불려지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오히려 이 어긋난 명명은 이 소설의 진실을 말한다. 시체를 조각조각 이어붙여 생명으로 탄생된 피조물, 그는 그 흉칙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 흉한 몰골에 자신을 탄생시킨 프랑켄슈타인은 물론 사람들은 그를 '괴물'로 치부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그의 소원마저 묵살당했다. 즉 세상은 그저 '생명'인 존재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자신이 저질러 놓은 '생명'의 과업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방기한 프랑켄슈타인, 어쩌면 그가 진짜 괴물이라는 것을 '오명'은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즐거운 나의 집>은 그 원작의 슬픈 사연과 오명의 역사를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이야기로 옮겨온다. 학우들에게 외면받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성민, 그런 성민에게 세정은 이미 그 이전부터 마음이 가있었다. 거기서 부터 시작된 그와 그녀의 인연, 그 결과물은 지금 여기서 사이보그가 된 남편 성민과 그런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세정의 불안한 관계이다. 

드라마는 '미스터리'하게, 그리고 '호러틱'하게 성민과 세정의 불안한 관계를 그려낸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성민과, 그것을 안간힘을 써서 막으려 그를 조정하는 세정의 초조함, 그들의 어긋난 기억 속에 삽입되는 등장하는 과거의 진실 들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한껏 북돋은다. 서로의 다른 기억과 진실들이 배우들의 혼란스런 표정과 겹쳐지며, 즐거우려 했지만 결국 즐겁지 않은 결혼의 이면을 들춘다. 사이보그 남편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에게 그럼 아버지는 인간인 어머니에게 왜 그랬냐고 반문하는 세정처럼, '인간'으로서의 결혼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처음엔 남편을 불신했지만, 결국 자신이 꿈꾸던 '즐거운 나의 집' 속에서 자신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세정은 극단의 결정을 내린다. 세정을 배신하고 또 배신했던 성민, 그런 성민을 갖기 위해 그의 생명을 난도질한 세정, 드라마는 '사이보그 남편'이란 불안한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로 마무리 된다. '사이보그'가 되어서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 인간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한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슬픈 사랑 이야기, 그 원작에 걸맞게 한껏 커튼이 드리워진 아파트, 밀실과도 같은 방, 그 속에서 벌어지는 스토커와 같은 '통제'시스템, 그리고 정작 그런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해 약으로 버티는 세정의 모습과 불안함은 이 즐겁지 않은 결혼 생활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리고 이런 '결혼'과 '사랑'에 대한 '사이보그'라는 신선한 소재를 도입한 '미스터리 호러' 장르는 드라마 스페셜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김지현 피디가 작가도 겸업한 mbc의 <퐁당퐁당 러브>처럼, <어셈블리>의 연출 최윤석 피디의 작가 겸업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한 신선한 시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어셈블리>에서 열연을 펼쳤던 송윤아, 옥택연, 정희태의 까메오 출연을 반갑게 만든. 
by meditator 2016. 10. 17.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