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소신 대신 이익을 쫓는 전문가는 

   연쇄살인범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악한 존재, 가장 나쁜 사회 악입니다.
                                                             -표창원

10월 11일 방영된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이 법정에 올랐다. 극중 야구선수 강현호가 수술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사인을 '의료 사고'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의료 과실이라는 아내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과실의 주체가 되는 의사 및 그의 재판을 맡은 오성 측이 남편 강현호가 1차 수술 뒤 무리하게 음주를 했다는 주장을 하여 강현호 선수의 죽음이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뜻밖의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씨의 죽음이 떠올려지는 사건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는 신해철 씨의 사건 외에도 최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무고'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k-fact의 대표 함복거가 억울하게 연루된 범죄로 고스란히 재연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그 피해자인 연예인들만이 그 이름이 까발려지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사건, 그리고 그에 이어 신해철 씨의 억울한 죽음과 같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극중 주인공들이 맡은 사건의 내용으로 등장하며 시선을 끈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시의적'이어서 접근성이 좋지만, 동시에 '소재주의'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즉 최근 이슈가 되는 사건을 다루는 것만으로 '화제성'에 기대어 가고자 하는 안이한 의도말이다. 더욱이 아직도 신해철 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아픔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더더욱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이런 '소재주의'의 함정을 넘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주제 의식을 북돋우는 소재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의료 사고의 화제성을 넘어 '쯩'의 존재론을 묻다
즉 사건 그 자체로써의 화제성을 넘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전문가와 비전문가,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구축된 기득권층의 비리'와 '존재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11일자 경향 신문의 김민아 논설 위원 칼럼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법학자 손기병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로, 지능 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에 전형적인 메리토크라시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5,6회에 걸쳐 벌어진 사건 강현호 선수의 죽음과 관련된 의료 과실 사건은 위의 '메리토크라시'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술 시 과오로 인해 강현호 선수의 몸에 ;천공(perforation 장기의 일부에 어떤 병적변화가 일어나거나, 또는 외상에 의하여 구멍을 만들어, 장기외의 부분과 통하는 것) 을 만든 심원장(김원해 분),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원 내 권력을 이용하여 조수였던 강선생을 비롯한 수술방의 스태프들에게 함구를 요구한다. 이런 심원장의 파렴치한 부인과 왜곡은 최근 백남기씨 부검 논란과 관련하여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와 오성의 사건 연습을 거듭한 작전 앞에 골든트리의 반격은 쉽지 않다. 심원장과의 의료 분쟁에서 진 피해자들을 방청성에 앉히고 거듭 심원장에게 천공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지만 결정적 증거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이었던 강선생이 심원장의 결백에 동의하고 법정을 빠져나가자, 방청석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증인을 자처하며 재판은 판도가 달라진다. 심원장의 잘못된 시술로 인해 생긴 천공으로 잘려지게 된 소장을 스스로 폐기했다고 증언하는 간호사, 하지만 앞서 강선생의 증언을 들먹이며 오성은 '간호사'와 '의사',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격을 들먹이며 반발한다. 

물론 드라마는 차금주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온 강선생으로 인해 골든 트리의 승소, 강현호 선수의 명예 회복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결정적 순간, 똑같이 수술방 스태플로 참여했음에도 '간호사 주제'라며 제쳐지는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메리토크라시'에 의한 계급 폐해를 고발한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 차금주의 문제로 회귀된다. 

차금주를 통해 '쯩'을 반문하다. 
도망치다시피하는 강선생을 맨발로 쫓아간 차금주, 그녀는 자신을 사시만 5번 떨어져 '면허'의 중요성을 모를 수도 있다며 말문을 연다. 그에 앞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의 집에 찾아갔다가 배가 부른 남편의 동거녀를 마주하게 된 차금주, 그 이혼의 울분을 남편의 차에 마구 퍼부은 바람에 경찰서 신세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그 무언가를 묻고, 그런 경찰에게 차금주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꼭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이냐고 반문한다.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여주인공 차금주는 사시는 비록 5번이나 떨어졌지만, 가장 유능한 변호사 사무장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그녀는 밀려나고 무시당한다. 그런 그녀의 울분이 응축되어 그녀의 신분을 묻는 경찰에게 '아무것도 아니면 어떠냐고' 반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차금주의 설움은 바로 다음 장면 디스패치가 연상되는 가쉽지 함복거가 등장하자, k-fact가 안기부 소속이 아니냐고 굽실거리며, 마치 그녀가 정부 요원일 지도 모른다며 운을 띠우는 함복거의 한 마디에 허리가 꺽어지는 경찰. '면허'쯩과, 그 면허 쯩을 가진 전문가에 약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한 발 더 나아가 그간 암약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해결사의 뒷배가 어쩌면 오성의 이동수(장현성 분)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며, <캐리어를 끄는 여자> 속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범죄의 최종 보스가 결국 로펌, '법조계의 신성 가족'임을 드라마는 암시한다. 

결국 심원장도, 그리고 이제 그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는 이동수도, 의사 면허를 따고, 변호사 쯩이 있는 메리토크라시의 핵심인 그들이야말로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 놈みんな泥棒です) 이며 연쇄살인범 저리가라할 파렴치범이자, 진짜 사회악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추악한 관료를 빗댄 저 단어가, 1982년 드라마 <거부실록>을 통해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빗댄 단어로 회자되었고, 이제 2016년 한국 사회을 좀먹는 연쇄살인범보다 더 악독한 기득권층이 되어 고발당한다. 결국 그간 법조계를 다룬 다른 드라마들처럼 결국 기승전 최종 보스로서의 로펌을 등장시킨 <캐리어를 끄는 여자>, 하지만 그저 사회악의 고발과 폭로만이 아니라, 쯩이 없는 여주인공을 통해 '면허'의 존재를 묻는다. '쯩'에 약하지만, '쯩'이 '의무'보다는 '권리'로 쓰이는, 어쩌면 그저 종잇장에 불과한 허상은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어서 설움을 받은 차금주에게 함복거는 '억울하니 출세하라'고 권유한다. 즉 다시 변호사 시험을 보라는 것이다. 실력에 없어서가 아니라,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포기했던 차금주, 그 쯩이 없어 설움을 당하던 차금주, 도망치던 강선생을 붙잡고 면호는 '권리'이자, '의무'라며 의사로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호소하던 차금주는 과연 변호사가 될까? 


by meditator 2016. 10. 12. 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