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일 공중파 주중 미니 시리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월화 드라마 쪽은 <낭만 닥터(sbs)>가 21.7%로 20%의 고지를 넘기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반면, 시청률 불패의 수애에게 3.5%를 안기는 <우리집에 사는 남자(kbs)>와 6.2%의 <불야성(mbc)>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목 드라마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허술한 스토리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지현, 이민호 두 스타를 앞세운 <푸른 바다의 전설>이 18.9%로 20%의 고지를 노리고 있는 반면, <역도 요정 김복주(mbc)>와 <오 마이 금비(kbs)>는 각각 4.6%와 5.5%로 좀처럼 반등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대중적인 스토리, 의학 드라마와 로맨티 코미디, 그리고 스타라는 잘 짜여진 조합의 부익부의 점령으로,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잘 기획된 상품의 독점이라는 공중파의 주중 드라마 라인으로 퉁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 있다. <오 마이 금비>가 그중 한 작품이다.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에 빛나는
<오 마이 금비>는 kbs에서 주최한 경력 작가 대상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이다. 그 당사자인 전호성 작가를 도와 <장영실>의 이명희 작가가 합류한 드라마로, 3회부터는 전호성 작가의 단독 집필로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할 사람도 있겠다. 극본 공모 당선작이라는데, 겨우 '치매'와 '시한부'를 다룬다고? 그렇다. <오 마이 금비>는 그 명칭조차 생소한 니만피크 병에 걸린 열살 소녀 금비가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노인 치매도 아니고 아동 치매를 등장시킨 이 드라마는 벌써 그 설정만 봐도, '누선'을 작정하고 자극하겠다는 '신파' 드라마인 듯하다. 그런 뻔한 드라마가 당선작이라니?
이제 6회를 마친 <오 마이 금비>, 여전히 시청률은 6%의 고지조차 좀처럼 넘지 못한 채 5%의 영역에서 머물고 있지만, 왜 이 드라마가 극본 공모 당선작이었는지는 충분히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니만피크 병에 걸렸다는 열 살 소녀 금비(허정은 분), 하지만 아픈 소녀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기억을 잃을까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는 아이이지만, 일찌기 어른답지 않은 보호자들을 만난 소녀는 웃자라 어른 뺨치게 어른스럽다. 그 '어른스럽다'는 방식이 되바라지거나, 당돌하게 말을 어른 뺨치게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여전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 돌보기를, 아니 심지어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돌보기조차 '성숙'하게 해내어 '누선'을 자극하는 아이 어른이다.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니만피크 병 주치의는 보호자로 추정되는 모휘철(오지호 분)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사기도 제대로 못치는 휘철의 사정을 아는 금비는 보육원 행을 스스로 결정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올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스스로 담담하게 처리해 나가고자 한다. 이미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조들호의 딸로 나와 간절한 부녀애를 재연했던 똘망한 허정은의 돋보이는 연기로 대번에 금비는 안쓰럽지만 대견한 아이의 사연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저 처연한 아이 어른의 사연만으로 드라마가 채워지는 건 아니다. 커다란 한옥에서 값나는 고미술품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로 웃음을 잃은 고강희(박진희 분)와 모휘철의 수목과학원 연구사와 사기꾼이 조합이라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도, '가끔은 빛날 때가 있다'는 그 대사 한 마디를 '상실'이란 공통 분모로 설득시켜낸다.
아이같은 어른과 어른 아이가 빚어내는
드라마 속 어른들은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들이지만, 그들은 어른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을 짖누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그 시절을 넘어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아이 어른이다. 그런 아이 어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어른 아이 금비를 통해, 금비를 어쩌지 못하다가 아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 '아빠'라 부르라며 '어른'이 됨을 수용하는 과정을 드라마는 차분하게 그려간다.
'치매'라는 불가항력의 병을 다루는 만큼, 매회 드라마는 누선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흘리는 눈물은 그 예전 '엄마없는 하늘 아래' 식의 애 어른을 보며 흘리는 '신파'의 눈물과는 다르다. '상처'를 지켜봐주는 눈물,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담담하게 수용하는데서 오는 안쓰러움의 눈물이 한 해를 마감하는 몇 안되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즉 상처를 드러내어 토해내는 '한풀이'가 아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데서 오는 교감과 수용의 '힐링'이 뜻밖에도 아동 치매를 다룬 <오 마이 금비>의 힐링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파'조의 드라마가 '힐링' 드라마로 거듭난 것에는 여주인공 금비 역의 허정은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김영조 피디의 감성 가득한 연출이 한 몫을 한다. 뜻밖에도 <징비록>, <장영실> 등의 사극을 주로 연출했던 김영조 피디는 <오 마이 금비>의 전작 <공항 가는 길>이 드라마의 주제를 돋보이는 연출로 드라마 속 등장했던 도시와 제주의 감성을 한껏 살려냈듯이, 다시 한번 '신파'을 '감성'으로 전환하는 연출의 묘를 재연해 낸다. 덕분에 늦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정취와 함께 금비와 휘철의 부녀, 그리고 강희의 상처는 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비록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로 빛을 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이 저물지 않을 은근한 매력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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