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oecd 이혼율 1위의 국가, 하지만 현실에서 맞닦뜨리는 것은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융통성있는(?) 사고보다, 그 반대급부적인 '강고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 높아지는 이혼율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은 '가족'이요, '결혼'이다. 하지만, 그 '신봉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현실은 어떨까? 연예인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심만 들어도, 혹은 그 '바람'의 대상이었다는 의혹만으로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보다 욕으로 불리워지는 세상이지만,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드라마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은 숱한 불륜들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가 주중 미니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얼마 전 종영한 <굿와이프>, 미드를 각색한 이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 여주인공 김혜경(전도연 분)이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과 옛친구이자 현재의 동료인 서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애정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극중에서 김혜경은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중원과 키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작 미드 굿 와이프가 몇 시즌에 걸쳐 여주인공 앨리시아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과 달리, 단 16부작으로 김혜경의 일과 사랑을 다룬 <굿 와이프>는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보다, 결국 두 남자 사이에 불륜과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치중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사랑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굿 와이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륜'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이 화제가 되면서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네'라고 불리는 아내와 아내 몰래 딸을 그리는 아빠의 만남
9월 21일 시작한 <공항 가는 길>은 심지어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유뷰남, 유부녀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어차피 불륜 드라마'라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두 남녀의 두 번째 사춘기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두 기혼자가 주인공인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제작을 맡은 김철규 피디는 '불륜 드라마라고 확정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다.며,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위로'와 '관계'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21일 1회에 이어, 22일 방영된 2회는, 김철규 피디가 공언한 '위로'와 '관계'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승무원인 최수아(김하늘 분), 직장에선 똑부러지는 그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녀를 '자네'라 부르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그녀의 관계는 '부부'라지만 상하 관계에 가깝다. '기내식'처럼 아내가 랩으로 싸놓은 반찬으로 만나는 이들 부부는 하나있는 딸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빠의 욕심이 먼저다. 아내의 의견을, 그저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는 시어머니 앞에, 워킹맘 수아의 딸 수호작전은 역부족이다.
그런 그녀 앞에 서도우가 나타난다. 국제 학교에 보내진 딸과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의 아빠, 그리고 그 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고통받는,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내와 소통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사소하게 그를 배려해주는 수아와 서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 1,2화의 내용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 하지만 부모라는 공통점만으로 함께 나눌 수 없는 부부, 거기서 벌어진 틈을 드라마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항공사 기장으로 국제화 시대에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욕망에 충실한 박진석과, 자신의 일에 열심이지만 소박한 가정을 꿈꾸는 그의 아내가 빚어내는 긴장과 딸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미스터리하게 딸을 어떻게든지 멀리하려하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그런 상황에서도 잔인하리만치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독기 사이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드라마는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런 소통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외로워진 두 영혼이 서로를 들여다봐주는 작은 소통을 통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으로서의 만남 이전에, '위로'와 '관계'를 전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관계'의 전제 속에,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이들 '부부'는 무엇일까? 하고.
<공항 가는 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요즘 흔한 드라마의 템포에서 한 발짝 비껴선다. 남과 여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대신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눈 밝은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열리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반문한다. 아마도 이 느리게 감정을 쌓아가는, '욕망의 전차'로서의 불륜 드라마로서의 화제성도 부족할 지도 모를 이 드라마가 이 가을의 대표작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허허로운 마음에서 솟아오른 질문 한 자락이 있다면 한번쯤 귀기울여볼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게한다. '불륜'이라는 방패가 아니라, 김철규 피디의 바램대로, '성숙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드라마로 끝까지 완주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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