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까지 진행된 tvn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거기엔 매회 억울한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테러범으로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추이를 따라잡은 주성찬(신하균 분)은 그들이 사건을 벌일 때마다 범죄 신고 센터에 휘파람을 불며 발빠르게 이들의 사건을 신고한 '피리부는 사나이'가 있음을 알아챈다. 즉,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사람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억울한 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심지어 해결해 주겠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유혹에 사람들은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저마다 사건을 일으킨다. 


첫 회 동남아시아 인질 협상 과정에서 형을 잃은 동생, 2회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은행에 들어간 인질범, 그리고 가스통을 싣고 카지노롤 돌진한 심신미약자 등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그 누구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사람들이, 이른바 사건을 일으키는 '위기자'로 등장한다. 



화염병을 들고 방송국에 난입한 해직 기자 
하지만, 5회 사건이 달라진다. 해직된 기자가 방송국에 화염병을 들고 난입한 것이다. 물론 방송국에서 '해직'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앞서 다른 사람들처럼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것은 다를 바없다. 하지만, 방송 노조 위원장이었던 노기자의 억울한 사연은 앞서 위기자들의 개인적 사연과 궤를 달리한다. 한때 TNN 채널의 기자였던 노경석은 이제는 선배 이국장의 손발 노릇을 하며 그가 하라는 대로 하던 기사를 엎으라면 엎던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방송국에 반기를 들고 이에 해직을 당하자, 방송국 측에서 기자들을 사찰했다며 방송국 로비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말리던 후배 윤희성(유준상 분)과 몸싸움을 하는 척하며 그의 방송국 출입 카드를 손에 넣고, 화염병을 잔뜩 만들어 가방에 숨긴 채 방송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장실을 찾아가, 국장을 볼모로 삼아, 방송국에 숨겨진 기자 사찰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 맞서 다시 위기 협상팀으로 뭉친 주성찬과 여명하(조윤희 분)가 맞선다. 

국장을 인질로 삼은 노경석에서 언제나 그렇듯 여명하가 다가선다.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시냐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런 여명하의 설득에 눈빛이 흔들리던 이전의 위기자들과 달리, 노경석은 그런 여명하를 비웃는다. 그래서 여명하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냐고 반문하며, 심지어, 들어주는 척하며 결국 너도 다르지 않다고 일침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자신도 너와 다르지 않았다고, 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막는데 앞장섰다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론을 반성하다
그렇게 노경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저 기자, 해직 기자 노경석의 개인적인 토로가 아니라,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이국장의 개가 되어, 그가 지시를 내리는 대로, 세상에 알려야져야 할 소식들을 묻어버렸던 노경석, 그는 그가 해왔던 대로, 한 부실 건설사의 비리 기사를 덮었다. 하지만, 그저 그가 덮어버린 그 건설사가 지은 터널이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붕괴 현장을 본 노경석은, 마치 그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국장의 개 대신,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노조 활동에 앞장 섰고, 이제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기사들이 숨겨진 그곳에서, 언론인들의 목줄을 죄 흔적인 기자 사찰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애인이 테러 현장에서 죽는 바람에 기업 협상팀에서 경찰청 위기 협상팀이 되어 테러 현장에서 배후를 쫓는 주성찬과 여명하의 활약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건 현장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에 주목한다. 처음, 주성찬의 진실을 유일하게 다루었지만, 그 진실을 자신의 앵커 자리와 맞바꾼 윤희성에서 부터, 은행 인질이 되어서도 뉴스 속보에 마음이 앞서 위기를 초래한 신참 기자, 그리고 이제 노경석 기자의 참회까지 드라마는 줄곧 언론의 속살과, 그 속살을 통해 우리 시대 언론의 의미를 짚는다. 

특히, 권력에 편승했던 노기자가, 해직 언론인이 되는 그 계기가 되었던 터널 붕괴 사건은, 그의 말처럼 자극적인 사건들에 덮인 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어져가고 있는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이 오버랩된다. 사람들은 지겹다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억울함'의 이면에는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끈질기게 따라가고 있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할 언론의 자기 방기가 있음을 드라마는 드러낸다. 

더구나 5회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사연을 가진 소외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세상 그 누구도 없어, 음지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고, 그것을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에 의해 이용당해 테러 위기자의 처지에 놓인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테러까지 초래되는 사건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그 '소통'의 매개자여야 할 기자가 이제 가진 자에 야합하여 진실을 막는 주체가 된 방송사에 화염병을 들고 그 자신이 위기자가 되어 뛰어드는 5회의 사건은 더더욱 우리의 왜곡된 언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by meditator 2016. 3. 22. 06:03

또 한 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3월 16일부터 mbc를 통해 방영한 <굿바이 미스터블랙>이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순정 만화 작가인 황미나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추억이 된 <여학생> 잡지에 1980년대 초중반에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이다. 


만화 원작은 1800년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다. 세포이 항쟁에 가담으로 몰락한 가문의 아들 에드워드 다니엘 노팅 그라함이 주인공으로, 호주에서 영국으로 이어지는 그의 유배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숨긴 그의 기구한 행적은 알렉산드로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한 청년의 운명적 삶을 그린<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모태로 하여 19세기 식민지를 경영하던 대영제국을 배경으로 창작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새로운 드라마로 탄생된다. 



황미나의 원작보다 문희정의 그림자가 짙은 
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작가의 작품이고, 식민지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드라마로 돌아온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는 만화의 근간이 되었던 한 청년, 그리고 그의 가족의 비극적 운명은 그대로 담아내지만, 원작의 향내를 쉬이 맡을 수 없다. 오히려, 첫 회부터 남자 주인공 차지원(이진욱 분)보다도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그의 친구 민선재(김강우 분)을 통해 이 작품이 문희정 작가의 작품이라는 각인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문희정 작가는 2014년 <기분 좋은 날>, 2009년 <그대 웃어요>, 2008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등의 가족극으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이다. 하지만, 이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통해 문희정 작가를 복기하려면 이들 가족극보다는, 2011년 <내 마음이 들리니>, 2012년 <보고싶다>의 작가을 살펴보는 것이 정확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첫 회, 선우 건설 회장 아들이자 해병 특수 부대 장교인 차지원의 매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드라마는 바로 그의 친구이자, 그의 아버지 품에서 자라난 민선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욕망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교도소를 나와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를 미친 사람이라며 외면했던 어린 시절, 늘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선우 건설의 아들 차치원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해병에 입대했지만, 자신을 따라온 차지원에게 군대에서 조차도 늘 2인자가 되어야 했던 민선재는 결국 아버지를 핑계로 자신을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없었던 군을 떠난다. 지원 부의 배려로 선우 건설에 입사한 그, 지원 부는 지원 동생의 배필로 그를 흡족하게 바라보지만, 민선재의 억누를 길 없는 욕망은 백은도(전국환 분)의 마수에 기꺼이 영혼을 팔아넘기는 처지가 된다. 

악을 통해 선을 설득하다. 
마치 카인과 아벨처럼 태생적으로 다른 듯한 두 사람, 하지만 드라마의 동인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악의 영역인 민선재, 그의 욕망과 그를 조정하는 백은도의 숨겨진 야망이다. 그리고 이것은 문희정 작가가 미니 시리즈물에서 즐겨 해오던 전개 방식이기도 하다. 

2011년작 <내 마음이 들리니> 바보 아빠와 청각 장애인 새 엄마를 부끄럽게 여긴 영리한 소년 마루(남궁 민 분)는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동주(김재원 분)네 집으로 들어가 의붓 형 장준하로 살아간다. 동주에겐 수호천사 같은 형처럼 보이지만, 늘 그는 청각 장애를 가진 동주를 향한 연민과 부유하고 선한 동주를 향한 질투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런 그에 비해 주인공 동주는 후천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태생적 선함을 숨길 수 없는 사람, 드라마는 당연히 자신의 신분을 버린, 숨긴 마루의 얽힌 인연으로 풀어진다. 

2012년작 <보고싶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열 다섯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헤어진 두 남녀의 14년의 순애보를 그리려 했던 드라마였지만, 정작 극은 14년의 순정을 저돌적으로 표현해낸 '미친 토끼' 한정우(박유천 분)의 상대편에, 그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이수연(윤은혜 분)대신, 그와 삼촌조카관계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어린 의붓 동생,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를 빼앗기고 평생 다리를 절게 된 강형준(유승호 분)을 등장시킨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다루려 했던 <내 마음에 들리니>, 그리고 역시나 성범죄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최초의 사회적 멜로를 시도했던 <보고싶다>였지만, 애초의 의도는 매력적인 악역에 대한 천착으로 신음하며 드라마는 애초의 주제 의식을 상실한 전례가 되었다. 

문희정 작가의 이런 전개 방식은, 최근 <용팔이>, <가면>, <리멤버> 등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답습한, 악역의 향연을 통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다. 매력적인 악역, 그의 진기명기한 악행, 심지어 그런 그에게 사연마저 있다면, 드라마는 저절로 자기 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굿바이 미스터 블랙> 역시 차지원 일가의 불행은 고스란히 민선재라는 인물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배태된 배신으로 시작된다. 드라마는 선과 악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거기에 심지어 민선재의 어두운 욕망은 충분히 개연성마저 드러낸다. 작가가 전작을 통해 보여주었던 장기가 십분 발휘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부디 이번에는 선을 무력화시키지 말고, 비록 악에 의해 잉태된 선과 그의 복수일 망정, 충분히 그 진가를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3. 18. 05:53
3월 16일 방영된 7회 <태양의 후예>는 우르크 현지를 강타한 지진 피해를 입은 평화 재건 사업 현장에서 긴박하게 재난 구조 활동을 펼치는 특전사 부대와 의료 봉사팀의 활약을 그렸다. 물론 드라마는 그 생명이 오가는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며 깊어지는 유시진(송중기 분)과 강모연(송혜교 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참 군인 유시진 대위와, 고뇌하는 인의로서의 강모연의 직업 윤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쌍곡선 
그 직업 윤리를 돋보이기 위해 군인과 의사 두 사람의 직업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우르크 지진과 평화 재건 사업 현장의 피해 상황은 긴박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에피소드는 바로 서로 다른 장소이지만 결국 하나로 꿰어진 붕괴된 건물 더미에서 목숨의 줄다리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고반장님과 현지인 직원의 삶과 죽음의 쌍곡선이다. 

이미 강모연과 훈훈하게 안면을 익힌 고반장님, 하지만 강모연이 고반장님을 다시 만난 것은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 더미 아래서이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발을 움직여 보라고 한 강모연,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고반장님의 대답과 달리, 콘크리트 더미 아래로 나온 발은 요동이 없다. 하지만 강모연은 포기하지 않고 콘크리트 더미를 옮길 것을 독려하는데, 그때 다가온 유시진 대위는 또 다른 환자에게 그녀를 데리고 간다. 반대편에 있는 현지인 직원, 그는 가슴에 철근이 관통된 상황이다. 그를 본 강모연은 역시나 얼른 철근을 뒤에서 절단할 것을 주문하는데, 그런 그녀의 주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시진을 그녀을 데리고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유시진이 그녀에게 주문한 것은, 바로 두 사람 중 누굴 살릴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장소이지만, 한 무리의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리고 관통상을 입은 두 사람, 둘 중 한 사람을 구하려 하면, 다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밖에 여유 시간이 없는 상황, 그 상황에서 강모연은 생과 사의 심판자가 되어야만 한다. 



익숙한 장면, 클리셰일까 표절일까
그런데, 이 장면, 그간 미국과 일본의 의학 드라마를 많이 본 눈 밝은 시청자라면 낯설지가 않다. 2010년작 일본 드라마 <코드 블루>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서는 거의 판박이같은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2 6화, 사고로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들 사이에, 금속 막대기 하나에 관통된 두 남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남녀도 <태양의 후예>의 고반장님과 현지인 직원처럼, 한 명을 살리면 또 다른 한 명이 죽는 그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명에 대한 판단은 당시 응급실에 있는 젊은 여의사 메러디스에게 돌아간다. 강모연처럼 갈등하던 여의사는 극중 강모연처럼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하고, 발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 이에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 챈 가망이 없는 환자가 의사의 짐을 덜어준다. 

이렇게 <그레이 아나토미>와 유사한 설정이 <태양의 후예>에 등장한 것을 두고 발빠른 시청자들은 어느 의학 드라마에서나 종종 등장하는 클리셰인가, 그게 아니면 노골적인 표절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중이다.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으로 환자의 생명 유지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은 흔한 클리셰일 수 있지만, 교묘하게 위장했지만 결국 한 사람이 살면, 또 다른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사고에 꿰어진 두 명의 환자 에피 자체는 흔하기 힘든 것이며, 그것이 여의사의 판단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을 눈치 챈 환자가 의사가 내릴 결정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것과 그의 죽음 이후, 여의사 앞에 죽은 사람의 환영이 나타나는 장면이 똑같이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표절'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태양의 후예>의 표절이 아쉬운 것은,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미니 시리즈라는 점, 거기에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 조차 이른바 '대박'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가 된다. 

더우기 보도에서도 등장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별에서 온 그대> 이후 모처럼 중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별에서 온 그대> 역시 방영 당시 만화 '설희'에 대한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는 점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나,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타 드라마 작가인데, 이 두 사람의 히트작에 공교롭게도 '표절'이란 꼬리표가 붙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다. 또한 <태양의 후예>를 함께 집필한 김원석 작가는, <태양의 후예>의 모작이라 할 수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로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탄 바 있는 입봉 작가로서 그 창작적 역량에 아쉬움을 남긴다. 


by meditator 2016. 3. 17. 06:14

kbs2에서 다음 주까지 4부작으로 방영되는 <베이비 시터>는 <무림 학교> 종영 이후 <동네 변호사 조들호>까지의 공백 기간을 때우는 이른바 땜방용 단막극이다. 하지만, 그저 땜방이라기엔 이 4부작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공은 거의 '프랑스 예술 영화' 저리가라다. 


<베이비 시터>는 첫 회에 이어, 2회 연속 3.1%의 시청률을 보였다. 호흡이 짧은 단막극답게 저조한 시청률이다. 하지만 시청률로만 이 드라마를 다 설명할 수 없다. 방영되는 시간 내내 드라마와 관련된 내용들이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고, 재생 사이트인 네이버 tv 캐스트와 다음 팟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막극으로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2부작 <퐁당퐁당 러브(mbc)>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베이비 시터>의 화제성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극중 베이비 시터로 등장하고 있는 장석류 역의 신인 배우 신윤주의 어색한 발성과 표정이 '발연기' 논란을 일으키켜 그 화제성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불협화음을 차치하고 보면, <베이비 시터>의 화제성은 온전히 감독 김용수의 '예술주의'로 귀결된다. 



영상미가 돋보인 단막극의 계보를 이은 
1991년에서 2007년까지 방영되었던 <mbc베스트 극장>이나, 1980년에서부터 1987년까지 <tv문학관>을 통해 다수의 유려한 단막극을 만나왔었다. 황인뢰 감독의 나뭇잎에 맺힌 이슬마저 싱그러웠던 화면이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소외된 삶을 리얼하게 그려냈던 <삼포 가는 길>이나, 처연한 한의 정서를 다뤘던 <배따라기> 등 kbs들 대표했던 걸출한 연출가들의 진면모를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가 점점 더 중시되면서 실험적이고 영상미 위주의 단막극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이제는 <퐁당퐁당 러브>처럼 방송이 종료되는 밤 12시 이후나, 아니면 <베이비 시터>처럼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에, 그게 아니라도 시즌제로 가물에 콩나듯 땜방을 하는 처치로 전락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단막극의 침체는 제작비와 함께 한국 문학의 침쳬와 맞물려 좋은 원작의 고갈이란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tv 문학관> 의 예술이 가능했던 것은 그 화면을 채울 근, 현대 문학이란 든든한 서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mbc 베스트 극장>의 실험성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소재의 고갈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공모전과 웹툰 등의 새로운 장르이다. 화제가 된 <퐁당퐁당 러브>는 연출 김지현의 자작 극본이고, <베이지 시터>는 2014년 극본 공모 우수작이다. 

하지만 정작 <베이비 시터>를 가득 채운 것은 스토리보다는 김용수라는 연출의 족적이 뚜렷한 영상이다. 드라마는 발연기 논란이 드러난 신인 배우의 부족한 연기력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운 주연들의 불협화음을 온전히 화면으로 채운다. 일찌기 영상미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 영화처럼 <베이비 시터>는 영상을 통해 한 가정의 행복을 깨나간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의문스러운 눈빛의 푸른 빛 여성 얼굴이 그득한 화면으로 차를 몰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천은주(조여정 분)의 모습에서 이미 시청자들은 불안감을 충분히 감지한다. 그리고 화목한 등장 인물들을 쉴사이 없이 가르는 화면들은 그들 사이에 드리운 존재의 간격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말 한 마디 없이, 서로 스치는 인물들 사이의 공기 조차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의 지문을 드러낸다. 화면을 가로 세로 혹은 사선으로 나누는 건물, 그리고 인물들의 발, 손짓 하나하나가 말을 건넨다. 





그저 영상미의 문제가 아닌 
전작 <아이언 맨>이라는 도저히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시도되기 힘든 실험적인 장르를 연출로 설득해 낸 김용수 감독 답게, 19금이라는 드라마의 영역 표시에 어울리게 한 가정에 등장한 베이비 시터로 인한 파열음이라는 치정을 눈이 시릴 정도의 현란한 색감과 그 색감을 멋드러지게 어울러낸 구도로 표현해 낸다. 비록 배우들의 감정은 아쉽지만, 그 부족한 감성조차 화면이 설득하니, 진수성찬을 먹는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사랑과 전쟁>판이지만, 그 표현이 다르니, '미친 년'도 절로 순화되어, 그들의 속내를 살펴보게 된다. 드라마의 표현에 따라 시청자들의 감정의 파고도 달라진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 만약 tv 드라마들이 모두 이렇게 예술을 한다면 어떨까? 얼마 전 막장으로 높은 시청률을 올리던 드라마 이후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는 혹독한 한국 드라마의 촬영 환경을 막장 드라마의 원인으로 삼았다. 시청률 지상주의과 핍박한 제작 환경은 기승전결의 논리가 상실된 감정만이 극에 치달은 막장 드라마를 양산하고 만다. 하지만, 똑같은 '치정'의 감정이라도, 담긴 그릇이 다르니,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tv 드라마들이 모두 김용수 연출처럼 연출을 한다면, 그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감성도 조금은 덜 강팍해 지지 않을까? 그저 한 장면이지만, 바닷가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주인공들이 한없이 아름다워던 <베이비 시터>의 한 장면처럼. 김용수의 예술 주의는 그저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와 정서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김용수 연출에게 예술 활동을 허하라의 논제는 그저 간식처럼 간간히 3%라도 단막극을 허하라라는 허용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국회를 생중계로 보여줘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영국의 bbc처럼 방송의 정서와 구조의 문제이다. 3%의 예술로 드라마가 가득 찬다면,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조금은 순화되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말이다. 

by meditator 2016. 3. 16. 15:30

16부작인 <시그널>이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다. 아니, 이 글이 기사화되는 그 시점에는 이미 종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종영을 앞둔 <시그널>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바로 '누가 죽을까'인가 이다. 과연 과거로부터 무전을 보내온 이재한(조진웅 분)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건지, 그리고 이제 현재에서 차수현(김혜수 분)을 대신해서 총을 맞고 목숨이 경각에 이른 박해영(이제훈 분)이 목숨을 건질 건지, 혹시나 이재한을 구하려다 차수현이 대신 죽을 런지 그 귀추에 모든 애청자들의 촉각이 곤두서있다. 그래서 이 글을 그렇게 누군가의 목숨의 결과가 내려지기 전에 쓰고자 한다. 결국 누가 살고 죽느냐의 그 결론 이전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에 대해. 







타나토스 김은희
김은희 작가는 마치 타나토스같다. 김 작가의 드라마에는 언제나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물이라는 드라마 장르에서 기인하는 누가 죽고 사는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의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인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해결하는 데서 오는 '죽음의 그림자'이다. 

2011년작 <싸인>에서 천재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 분)은 공소시효가 지나 유유자적 법망을 빠져 나가려는 강서현(황선희 분)를 잡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2012년작 <유령>에서는 심지어 극초반 주인공인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소지섭 분)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2014년 <쓰리데이즈>에서 비록 목숨을 건졌지만, 무려 대통령인 이동휘(손현주 분)가 김도진(최원영 분)의 도발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 결국 누구도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시그널>처럼 과연 김도진을 막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질 사람이 이동휘인가, 한태경(박유천 분)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는 <시그널> 못지 않았다. 비록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지만, 대통령이었던 이동휘는 대통령직은 물론, 스스로 법의 심판대에 나설 처지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에는 왜 유독 '죽음'의 그림자가 깊을까? 작가가 유독 '죽음'을 두고 드라마적 트릭을 쓰는 것을 즐겨해서? 아니 그것보다는, 김은희 작가 드라마 주인공들이 맞부닥치는 강고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싸인>의 윤지훈이 상대한 것은 그저 서윤형을 죽인 사이코패스 강서현이 아니다.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 강준혁 의원의 딸 강서현이다. 이미 처음 서윤형 살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권력의 비호를 받아 유유히 법망을 도피했던 그녀, 그리고 이제 다시 윤지훈이 하는 수사망조차 '시간'이라는 비호를 받아 도피하려는 그녀를, 윤지훈은 어이없게도 자신을 던져 방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강서현을 잡아넣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를 비호하는 권력에 대한 투쟁의 자기극한적 몸부림이다. 

<유령>도 마찬가지다.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은 제대로 수사도 해보기 전에 정재계의 담합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빈 자리를 그를 흠모했던 친구 해커 박기영(최다니엘 분)이 대신한다. <쓰리데이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조차 쥐락펴락하는 정치군사경제 카르텔, 그리고 그 대표 김도진을 상대로 대통령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임에보 위태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대통령이 싸움의 자리에 선 순간, 그를 경호하던 몇몇의 사람을 제외하고, 권력의 심층부에 있던 거의 모든 이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미 금권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제도와 법망, 심지어 군부조차 손아귀에 쥔 세력에 대해 싸움은 그가 법의학자건, 사이버 수사팀장이건, 대통령이건, 이제 한낯 형사건 결국 자신을 던지는 '무리수'가 될 수 밖에 없는 바위에 계란 던지기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성경의 기적이 행하지 않는 현실의 싸움에서 무기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의 '목숨걸고 싸우기'밖에 없다. 그러기에 늘 김은희 작가의 주인공들은 죽거나, 죽을 위기에 빠지게 된다. 

21세기 부조리한 대한민국이라는 벽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김은희 작가 주인공들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니, 문든 얼마전 본 영화 <동주>가 떠오른다. 영화 <동주>의 주인공 송몽규와 윤동주는 강고한 식민지 체제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이다. 때론 독립군이 되어, 때론 임시정부의 일원이 되어, 그리고 일본 유학생을 규합하려 '실천'했던 송몽규나,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었으나 시절이 하수상하여 그로 하여금 시을 삼키게 만들었던 윤동주나 결국 식민지 일제의 희생양이 되었다. 





<동주>에서 <시그널>까지 젊은이를 죽이는 역사 
<동주>를 보고 외람되게도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했다는 부푼 품도 무색하게 강의실 밖에 상주하는 경찰들, 그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 목청껏 외치기도 전에 잡혀가는 선배들로 인해 시대를 먼저 느껴야 했던 그 시절,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 대학을 다녔던 우리에겐 대학의 낭만 대신, '억압'이라는 시대가 먼저 짖눌렀을 것이다. 대번에 신춘 문예에 당선하고야 마는 글 재주를 지녔던 문사도, 고이고이 자신 속에 시를 간직했던 청년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전에 시대라는 무게에 짖눌려 애초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선택을 하고 유명을 달리했던 동주의 주인공들과 비록 그 삶과 죽음의 경계는 달리하지만, 여전히 현대사를 살아냈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시대가 지닌 무게는 강고했다. 

그리고, 그 시대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했다지만,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김은희 작가의 주인공들은 증명한다. 동사무소 여직원을 말 한 번 못건네보고 짝사랑하던 순경 이재한은, 차수현의 마음조차 외면하며 전출해야 하는 외곬수 형사가 되었다. 그를 그리 만든 결정적 조건은 그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그를 그렇게 되도록 만든 배경은 억울한 죽음을 양산하는 체제이다. 박해영도 다르지 않다. 과외한번 받지 않아도 형의 가르침으로 문제집의 문제를 만점 받던 영민한 소년은 형의 죽음과 가족의 붕괴로 외톨이가 되어 형의 복수를 향한 일념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15년을 기다린 차수현은 어떻고. 아니, 그들 이전에, 그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 <시그널>의 배경이 된 '밀양', '성수대교', '신정동'이란 지명으로 남은 사건의 피해자들은 또 어떻고. 애꿏은 젊은이들이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가 되어 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죽어간다. 

<동주>에서 <시그널>은 몇 십년의 간극을 지닌 우리의 근 현대사를 다룬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들에게 죽음을 가하는 대상은 달라졌다. 일제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권력의 카르텔로. 하지만, 그것이 1940년대이건, 1990년대이건, 그리고 2010년대이건, 여전히, 우리의 땅에서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젊음을 볼로모 잡힌 채,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죽임의 방식이 노골적이냐, 교활해졌냐의 차이만 달라졌을 뿐이지. 아마도 그 공포를 일찌기 경험한  우리의 어른들은 일찌기, 청년들에게 '나서지 말라'라는 교훈을 주입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6. 3. 12. 17:58

초등학교 시절 무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자라서 남자 아이는 자신이 사진을 찍던 결혼식 부케를 나꿔채서 여자 아이에게 결혼 신청을 했고, 이에 여자 아이는 자신이 먼저라며 반지를 주며 프로포즈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생리적 현상으로 이루지 못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은 어른이 되어 비로소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 나름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재혼'이었다. 결국 하늘이 맺어준 진정한 짝을 만나기 위해, 두 남녀는 각자 한번의 결혼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해 온 것이다. 3월 10일 종영한 <한번 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아침드라마에서 주말 드라마까지, 재혼의 범람
그리고 보면 <아침 드라마>는 드라마계의 트렌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숱한 아침 드라마들이 '이혼'과 '재혼'을 드라마의 주된 내용으로 삼아왔다.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주부가 남편의 불륜 등으로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고, 하지만 '똑순이'같은 그녀는 일은 물론, 먼저 남편보다 훨씬 더 잘난 남자를 만나, '재혼'에도 성공을 거둔다는 스토리는 이제 벌써 아침 드람에서는 '늘어난 테이프'가 될 정도로 흔해빠진 소재가 되어간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가 선두 주자 격으로 울궈먹던 그 소재가, 어느 덧 주중 미니 시리즈, 주말 드라마에까지 영역을 넓히며 다종다양하게 변주되어 방영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재혼'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을 드러낸 <한번 더 해피엔딩(mbc)>의 주인공 송수혁(정경호 분), 한미모(장나라 분)는 물론, 이들과 엮이게 된 구해준(권율 분)은 모두 사별이나 이혼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다시 한번 결혼에 애닳아 있는 한미모를 통해 재혼에 이르기 까지의 여러 해프닝들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만이 아니다. '재혼'을 다룬 드라마들이 즐비하다. 주말 드라마의 왕좌를 굳건하게 고수한 <내딸 금사월>의 후속작 <결혼 계약>의 여주인공 강혜수(유이 분)는 일곱 살 짜리 딸과 사는 싱글 맘이다. 그런 그녀가 비록 나이는 한참 차이 나지만 미혼인 서른 일곱 살의 한지훈과 엮이며 벌이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10시 드라마 만이 아니다. 8시 45에 방영되는 <가화만사성>에는 '재혼' 예상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한다. 무려 그들은 현재 다 이혼은 커녕, 결혼 상태이다. 하지만 벌써 남편의 외도가 들통난 한미순(김지호 분)에, 역시나 죽은 아이로 인한 채워질 수 없는 불화에 외도가 겹친 봉해령(김소연 분), 거기에 오랜 시간 가부장적인 남편에 시달려온 배숙녀(원미경 분)까지, 모두 잠재적 이혼 예상자들이고, 재혼 대상자들이 된다. 드라마는 이들의 바람잘 날 없는 이혼과 재혼 스토리를 다룰 예정이다. 심지어 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봉해령에게는 상대남 서지건(이상우 분)이 등장했다. 



mbc만이 아니다. kbs와 sbs도 뒤질세라 '재혼'을 화두로 삼는 드라마가 등장한다. kbs 주말 드라마 <아이가 다섯>은 아이가 둘 딸린 남자와 셋 딸린 여자의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는 재혼 스토리를 극의 골간으로 삼는다. 대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을 다룬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재혼을 빼놓을 수 없다. 몇 주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아내를 잃은, 그래서 한 집에 살다 '불륜'으로 오해받기까지 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제 서로 먼저 재혼를 하라며 권하는 사이다. 결국 방송 3사,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시간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재혼'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디한 소재, 재혼
왜 재혼일까? 두말 할 필요 없이 늘어나는 이혼율 때문이다. 한때 세계2위였던 정확하게는 2015년 기준 OECD9위, 아시아 1위의 현실이 바로 '재혼' 유발 드라마의 배경이 된다. 심지어 서울의 경우 황혼 이혼율이 신혼 이혼율을 앞지를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이혼이 일상화되어 가는 세태를 드라마는 반영한다. 하지만 그저 이혼율이 높은 것만으론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 한미모가 재혼 컨설팅업체 '용감한 웨딩'의 대표 이사로 등장하는 것처럼, '재혼'이라는 것이 전문 컨설팅 업체가 등장할 만큼 '여사'가 된 세태도 뒷받침한다. 즉, 이혼을 하지만, 한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희망이 여전함을 드라마는 반영한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15%가 급증한다는 통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우리 나라 이혼 이유의 상당수는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에 기인한다. 즉 노후한 가족 제도와, 그 제도에 더는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높은 이혼율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대부분 사람들은 한번의 결혼에서 얻은 경험을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그리 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재혼'은 여전한 불씨를 안고 있다. 그런 한에서 드라마가 '권하는 재혼'이란, 마치 이전 드라마들이 백마탄 왕자와의 행복한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꾸려온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해결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재혼' 권장 캠페인과 같은 드라마의 범람 안에는 '불온하게도' 위기의 가족 제도를 '재혼'이라는 장치로 봉합하려는 '가족주의'의 음흉한 의도 또한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이혼'은 '가족 제도' 속에 꾸려져 있는 일원이 한 개인으로 방출되어져 가는 과정이다. 그런 개인이 많아질 수록, 즉 이혼율이 높아져 갈 수록, 우리 사회가 지탱해 왔던 '가족'이라는 제도가 붕괴되어져 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혼이 여사가 된 세상에서, 다시 한번 결혼이라는 환타지를 통해 '가족' 제도를 꾸깃꾸깃 꿰어 매고자 한다. 



하지만, 거기엔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에 대한 반성은 그리 깊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재혼'을 다루지만, 그 방식이 여전히 이전에 '결혼'을 다루던 드라마적 방식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던 데서 분명하게 보여진다. <그래, 그런거야>에서 상처한 장남은 늙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눈을 못감으실까봐 못이기는 척 재혼 맞선 자리에 나선다. 이는 마치 예전에 노총각을 둔 부모님들이 하던 걱정과 다르지 않다. <한번 더 해피엔딩>이 어린 시절 첫사랑을 재혼의 과정에서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가화 만사성>에서 처럼 지금 남편보다 더 자상한 남자를 만나면 해결될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선택'은 쉽지 않다. 그저 트렌디한 요깃감을 넘어, 이제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가 된 이혼과 재혼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6. 3. 11. 18:32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가 침체된 kbs드라마에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야심차게 선보인 장혁 주연의 사극<장사의 신-객주 2015>를 편성했지만, 동시간대 sbs의 드라마에 고전했던 kbs는 3월 동시에 시작한 sbs의 <돌아와요 아저씨>를 가볍게 물리치고, 14.3%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가 싶더니, 무려 3회만에 20%를 넘는 시청률로, 고전하는 kbs 드라마를 구제한다. 역시 김은숙이라는 감탄이 나올만 하다. 


2004년 최고 시청륙  57.6% <파리의 연인> 이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온에어(2008)>, <시크릿 가든(2010)>, <상속자들(2013)>까지 지난 10여년간 언제나 '베스트셀러'의 무게를 견디며 '왕좌'의 자리를 지켜왔다. 과연, 지난 10여년간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은숙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웃통 벗어제친 군인을 관음하듯
병원 이사장에게 밉보여 우르크 의료 봉사단으로 발령을 강모연 일행을 맞이한 것은 바로 우크르에 주둔하고 있는 유시진(송중기 분)의 모우루 중대였다. 총상을 입은 유시진을 치료한 일을 계기로 잠시 사랑의 설레임에 빠졌던 두 사람, 하지만 언제나 출동을 대기하는 군인 유시진과 어긋남을 참을 수 없었던 모연은 결별을 선언했지만,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이역만리 우르크라는 곳에서 이어진다. 

이슬람 권의 가상 분쟁 지역인 우르크를 배경으로 풀어지는 강모연과 유시진의 사랑 이야기는 풍광이 아름다운 지중해의 나라, 그리스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에머랄드' 빛 바다, 그리고 그 바다 만큼이나 맑은 하늘,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폐허의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랑'에 빠지기 좋은 장치가 된다. 우르크에서 첫 날을 맞이한 강모연과 일행, 그들을 맞이한 건, 웃통을 벗어제친 채 건강한(?) 몸으로 구보를 하는 유시진의 수하 병사들이다. 강모연과 측근들은 그런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심지어 그리워했던 유시진에게 시야를 가리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다. 바로 이 장면, 두 눈 크게 뜨고 웃통을 벗어제친 근육남들을 한껏 관음하는 이 시선, 이것이야말로, 시청자들이 김은숙 드라마에 빠지는 본질을 드러낸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멋진 풍광과, 비극을 잉태한 국제 분쟁 거기에 끼인 두 순수한 열정의 젊은 남녀, 그리고 그 젊은이의 사랑을 한껏 더 아름답게 만드는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데, 겨우 웃통 벗어제친 군인들을 한껏 관음하는 시선이 명장면이라니 어불성설 아니냐고? 하지만 어쩐다, 엎어치건 제치건, 결국 김은숙 드라마의 본질은 바로 그 장면에 있는 걸!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 
<태양의 후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겐 여러 반응들이 있지만, 그 중 공통적인 것을 추려보자면, '군인이 멋지다', '송중기가 멋지다', '우르크가 아름답다'로 추려진다. 이 감상의 공통점은 '멋지다', '아름답다'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과 멋짐이 불온하다. 

그 누구도 잘 생긴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대위의 하얀 얼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 몇 회를 통해 보건대, 육사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생과 사가 오가는 야전에서 굴러먹은 그인데, 그의 수하 서대영(진구 분)이나, 여타 군인들과 다른 그의 외모에 대해 감탄을 할 지언정,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뭐 그건 제 아무리 전장을 헤매고, 훈련을 거듭해도 절대 타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이상체질이 있다 치자. 

문제는 그 아름다운 군인 송중기의 사랑 이야기를 벌이기 위해 풀어놓은 대한민국 부대의 활약상이 더 불온하다는 점이다. '테러 방지법' 통과를 두고 국회의원들이 밤을 새서 국회 연단을 지키고, 하루가 멀다하고 종편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각종 기사가 도배되고 있는 이즈음, 가장 인기있는 주중 미니 시리즈가 '군인이, 그것도 가장 멋진 군인이, 군대에 대한 로망을 한껏 부풀리며 사랑하는 이야기'라니, 70년대 간접 잡는 실화 극장은 저리 가라할 국책 드라마 아닌

그런데 그 부대가 활약하는 곳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가상의 이슬람 국가 우르크다. 그곳에서 가장 인본주의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군대로 유시진의 군대는 등장한다. 특전사인 그의 부대는 미군과 힘겨루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이슬람 국가와 미국의 신경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슬람 정부 요인의 목숨을 구하는데 솔선수범하는 진정한 정의의 군대다. (작전지휘권도 없는 한국의 민망한 처지를 포장하기 위해 이슬람 주요 인사는 우연한 사고로 유시진의 부대에 불시착하는 드라마의 미덕을 발휘한다) 드라마는 작전 지휘권을 미국이 가진 남한의 상처난 자존심, 거기에 신흥 강대국 G20에 속하게 되었지만 선진국으로서의 삶과 질을 담보하지 못한선진국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한껏 내보인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군인들의 액션 어드벤처가 아니다. 제 아무리 유시진이 자신의 군인 생명을 내걸고 작전을 수행하고, 강모연이 불가능한 수술을 감행한다 해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한 '결정적 장치'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맘 편하게 드라마 속 국제적 위기와 군대 내부의 갈등을 지켜본다. 오히려 특전사 사령관을 아버지로 둔 윤명주(김지원 분)와 겨우 특전사 상사에 불과한 서대영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더 애절하게 다가올 만큼. 

문제는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 유시진 대위의 모험과 강모연의 도발을 위해 사용되는 장치에, 가상의 이슬람 국가와 그 국민들이 대상화되었다는 점이다. 극중 유시진 대위는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이런 좌우명을 멋들어지게 드러내기 위해, 지뢰밭에서 마구 뛰어노는 우르크의 아이들이 '사용'된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납이 잔뜩 든 쇠붙이를 빨기 까지 한다.(먹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무방비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한 술 더 떠서, 유시진의 부대에 와서 먹을 것을 구걸하고, 그러다 납중독으로 인해 응급 상황을 만든다. 

그 잘생긴 군인과 아름다운 의사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점령지의 아이들은 한껏 구질구질해졌다. 그들의 구질구질함과 구차함은 흡사, 6.25 전쟁 당시 미군을 향해, 'give me a gum'을 외치던 우리의 아이들과 같다. 그 시절 미군의 눈에 비쳤던 가난하고 남루한 우리의 모습을 드라마는 이제 타국의 아이들을 통해 '보상'받는다. 마치 이제 우리도 느네들을 도울만큼 살만 해 라고 자화자찬하듯.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을 상대로 한껏 폼을 잡으며 사랑의 계기를 만들던(솔직히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첫 눈에 반하다시피 한 두 사람은 굳이 이국의 아이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았어도 사랑에 빠졌을 터이다)두 사람은 이제 한 술 더 떠 이국의 정부 요인을 치료하며 사랑을 다져간다. 우리 정부도, 군대도, 그리고 그 우르크의 그 누구도 그의 목숨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유시진과, 메스를 놓은 지 한참된 속물 의사 강모연이 뜻을 맞춰 그를 구한 것이다. 상명하복이 중요한, 그리고 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우리 군대야 그렇다 치고,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조차 생명보다 절차를 중요시하는 굳어빠진 조직으로 만들며, 두 주인공은 '정의'의 승리를 일궈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시진이 이끄는 우르크 중대는 세상에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군대다. 오토바이 털이범조차 개과천선 시키는, 육사 출신 중대장과, 군대 짬밥이 높은 선임 상사 사이는 '브로맨스'인 듯 돈독하며, 중대를 이끄는 책임자가 종종 의료 봉사 온 의사 여친이랑 데이트를 즐겨도 절대 불만을 표시하기는 커녕, 일사불란하게 전장에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불사하는 이상적인 군대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종종 빚어지는 군대 내 왕따나, 상명하복의 불협화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상처받은 우리의 자존심을 부추켜 세워주는
이렇게 드라마는 실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빚어지는 군대 조직의 현실을 그려내는 대신, 풍광 좋은 그리스를 이슬람 그 어딘가의 국제 분쟁 지역으로 치고, 거기서 일어나는 국제간 불협화음에서 신출귀몰한 활약을 벌이는 한국 군인의 무용담을 배경으로, 한 술 더 떠 의료 봉사진의 활약까지 얹어, 가장 환타지스러운 전장 속의 사랑을 만들어 낸다. 외국의 눈치를 보느라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조차 구렁이 담타넘듯 외면하는 폭좁은 대한민국의 입지는 미국과 힘을 겨루는 파견군으로, 구질구질한 대한민국 병영 대신 그리스의 풍광으로, 종종 사회면 기사로 등장하는 군대 내 문제들은,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는 웃통 벗어제친 군인들로, 현실에서 한껏 주눅들었던 시청자의 어깨를 펴준다. '군인이 이렇게 멋진 줄 몰랐었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희어멀건한 군인도, 잘 나가는 의사도, 입을 여니,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한껏 잘 난체 하는 듯 하더니,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란다. 잔뜩 새침한 거 같더니, 나 이쁘지 않냔다. 때로는 순수했으나 속물이 된 여자의 세태 적응은 익숙하고, 그런 여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속물로 살아가는 시청자의 존재조차 긍휼히 여기는 듯하다. 군인이건 의사건 사람살이 거기서 거기라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사랑밖에 모르는 남자도, 속물이라는 여자도, 결정적일 때, 정의롭고 바르니, 속물로 살아가는 우리도 본디 그 마음은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지레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순수하고 소박한 세계관이다. 이 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by meditator 2016. 3. 9. 16:09

3월 7일 tvn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2014년의 화제작 <라이어 게임>의 김홍선 피디와 류용재 작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카이타니 시노부의 일본 만화 원작에 대한 우려를 가장 잘 각색된 번안 드라마라는 평가로 응답했던 <라이어 게임>은 그 화제성과 함께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김홍선, 류용재 콤비가 선택한 건, <라이어 게임>이 아니라, 3월 7일 첫 선을 보인 <피리 부는 사나이>이다. 


물론 전작인 <치즈 인더 트랩>이 용두사미의 결말로 인해 물의까지 빚는 상황을 자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중파에 비해 다양한 장르와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믿고 보는 tvn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거기에 전작 <라이어 게임>으로 인한 기대, 거기에 역시나 믿고 보는 배우 신하균의 tvn최초 출연, 덤으로 시도때도 없이 거의 홍수 수준으로 cj 케이블 각 채널을 통해 쏟아진 홍보 영상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기대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첫 선을 보인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땠을까?
드라마의 시작은 두 갈래로 시작된다. 동남 아시아에서 발생한 인질극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급파된 기업 협상가 성찬(신하균 분)과 경찰 특공대에서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긴 여명하(조윤희 분)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화면은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볼거리와 인질 협상의 긴밀한 상황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극의 비중면에서 결코 성찬의 이야기에 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여명하의 이야기로 보았을 때, <피리부는 사나이>를 이끌어 가는 건 서로 다른 칼라를 지닌 주성성찬과 여명하 두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회 마지막 경각에 따른 애인의 목숨을 앞에 두고 자신이 동남 아시아 인질 협상에서 했던 진실을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고백하는 주성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을 볼모로 잡은 인질은 물론, '피리부는 사나이'에게도 '협상'의 기계라고만 오해받듯이, 극중 성찬은 능수능란한 협상전문가이지만, 1회 마지막이 애인의 죽음이듯이, 그것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자초하고 만다. 그런 그에 비해, 이제 막 위기 협상팀에 배치된 여명하는 훈련 과정에서 인질과 인질범의 숨겨진 진실을 간파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본능적으로 '진실'에 대한 밝은 눈을 가진 인물임을 통해 성찬에 대비시킨다. 

능수능란한 성찬과, 아직은 풋내기에 불과하지만 '진실'에 밝은 여명하, 이 두 대비되는 캐릭터에서 연상되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라이어 게임>의 천재 사기꾼이었던 교수 하우진(이상윤 분)과 무직의 고액 채무자이지만, 진심으로 그 모든 역경을 헤쳐가던 남다정(김소은 분), <라이어 게임>의 두 주인공이다. 마치 '버전이 바뀐' 하우진과 남다정처럼, '협상'이라는 판에 전혀 다른 캐릭터 주성찬과 여명하가 등장한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만이 아니다. 익숙한 목소리도 돌아왔다. 
<라이어 게임>은 몰래 카메라와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선출된 참가자들의 최종 라운드 100억을 향한 진실 게임을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거기서 매 라운드 게임의 진행을 알리던 그 목소리, 강압적이며, 단호했던 그 낮은 목소리가, <피리 부는 사나이> 1회, 주성찬의 핸드폰 속에서 울려 나온다. 매 라운드 참가자들의 목줄을 쥐락펴락 하던 그 목소리가, 이제 주성찬의 애인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며 주성찬의 멱살을 잡으며 '진실'을 운운한다. 진행자의 자비없는 목소리 뒤로 벌어지던 생과 사를 가르던 '라이어 게임'은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익명의 존재로 주성찬과 곧이어 여명하까지 역시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또 다른 게임의 전선에 내몰듯하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협상'이라는 소재를 차용해 왔지만, 1회에서 애인의 생명 앞에서 무기력한 협상 전문가 주성찬과, 그런 그는 물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인질범조차 쥐락펴락하며  '게임'과도 같은 한판 승부를 펼치는 어떤 인물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피리부는 사나이>가 단순한 협상 어드벤처물이 아닌, 협상이라는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라이어 게임>과 같은 심리 추적극이 될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 원작 보다도 훌륭하다는 평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라이어 게임>의 주제 의식도 이어진다. <라이어 게임>은 드러난 현상은 100억 상금을 둘러싼 인간들의 쟁투였지만, 매 라운드라운드를 통해 드러난 것은, 승자 독식 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그저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피리부는 목소리라는 상징적 존재만이 아니라, 극중에 삽입된 피리부는 사나이 우화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용산 참사 혹은 쌍용차 진압 작전이 연상되는 장면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저 협상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아님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주제 의식은 극중 협상의 사례로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이 '유전무죄' 지강헌의 영상을 사용한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오정학 팀장은 지강헌 사건을 당대의 화제가 된 인질 사건이 아니라, 자신들의 억울함을 그 어느 곳에서도 호소할 수 없는 극한에 몰린 가지지 못한 자의 '한풀이'로 설명해 낸다. 또한 주성찬의 인질 협상의 이면에서도 우리 사회 가진 자의 전횡과, 가지지 못한 자의 억울한 죽음은 이어짐으로써,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런 우리 사회의 폐부를 <라이어 게임>이 강도영(신성록 분)을 통해 그러했듯,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위악적 존재를 통해 풀어낼 것임을 예고한다. 

시즌2에 대한 부담 대신, 판을 달리 벌리면서, 시즌1의 캐릭터와 주제 의식을 이어간, 1회의 '<피리부는 사나이>, 김홍선, 류용재 콤비의 또 다른, 버전을 달리한 <라이어 게임>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6. 3. 8. 05:59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시리즈'는 주로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드라마나 영화가 시리즈가 될 수 있는 주요 관건은 바로 '시리즈'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존재감이다. 물론, 영화 <배트맨>이나, <슈퍼맨>처럼 오랜 시간 다시 만들어 지면서 원작 나이대의 캐릭터 유지를 위해 주인공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만 64세가 된 마크 하먼이 여전히 건재하게 리로이 제스로 깁스 역을 유지함으로써, 13까지 가는 시리즈의 건재를 증명하는 <ncis>처럼 대부분 주요 배역들을 중심으로 시리즈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출연 배우들의 저간의 사정이라던가, 제작비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시즌2의 제작이 용이치 않다. 심지어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마무리된 드라마나 영화들 조차, 그 이후 편이 종무 소식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환경을 '변주'을 통해 개척해 간 드라마가 있다. 바로 3월 5일 첫 선을 보인 sbs의< 미세스 캅2>이다. 




최영진이 떠오르지 않는 고윤정의 압도적인 존재감 
김희애가 강력반 형사 반장 최영진으로 분해서 강태유(손병호 분) 회장과의 대를 이은 악연을 종결했던 <미세스 캅>은 최영진 반장의 강력반이 풀어갈 이야기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하지만 시즌2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김희애가 고사를 하며, 순조롭게 풀려가던 최영진 반장의 강력반 이야기는 좌초되고, 시즌2이지만, 주인공이 바뀐 전혀 다른 시리즈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전혀 다른 캐릭터의 강력반 여성 형사 반장인 고윤정의 등장이다. 보이쉬한 매력을 드러내 보였던 전작 최영진 반장에 대한 부담을, <미세스 캅2>는 전혀 다른 버전의 형사 반장 고윤정을 통해 풀어간다. 

즉, 딸 하나를 둔 싱글맘에 워커 홀릭이었던, 그래서 털털하기 그지없던 여성이었지만, 가급적이면 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최영진과 달리, 선그라스에 화려한 털 코트, 거기에 하이힐까지 장착하고 경찰서를 들어가려다, '아줌마'라며 대번에 입구의 경찰에게 볼 일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며 걸리고 마는 고윤정의 모습에서, 전작의 흔적은 찾을 길없다. <여왕의 꽃>의 레나정에서의 연기 논란이 무색하게 김성령 버전의 여성 형사 반장은 김성령이 가진 연기적 색채에 천착한다. 

여전히 전작 <미세스 캅>을 연출했던 유인식 감독과 황주하 작가가 힘을 합친 시즌2이고, 시즌1의 형사반장 박종호(김민종 분)가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시리즈는 최영진을 떠올리기 힘들만큼 새로운 버전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자칫 외모에서 부터 차별성으로 인해, 형사 반장이라는 본분에 어긋날 수 있는 지점을, 고윤정의 '폼생폼사' 제일주의 로 피해간다. 그리고, 그와 대번에 통한 팀원 배대훈(이준혁 분)을 통해, 고윤정이 보기에만 화려할 뿐, 알고보면 내공이 만만치 않은 역시나 강력반 형사 반장을 할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시킨다. 그리고 고윤정의 이런 겉다르고 속다른(?) 면모를 시즌2의 새로운 재미 요소로 제시한다. 거기에 남편과 이혼만 하지 않았을 뿐, 한 명의 자식과 친정 식구에게 얹혀 살다시피하는 가족 설정도 시리즈를 이어간다. 



전형과 차별성의 적절한 구성
최영진과 다른 하지만 일관된 능력자 형사 반장 고윤정에서도 보여지듯이, <미세스캅2>가 가진 묘수는 시리즈로서의 전형과 차별성을 적절하게 섞어낸 데 있어 보인다. 형사 반장 박종호는 여전하지만, 시즌1에서 최영진을 흠모해 그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였던 그가, 낙하산인 고윤정에게 매사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 시즌2의 새로운 갈등요소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시즌1과 출연진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인물의 캐릭터에서 통일성을 유지한다. 즉, 어수룩해 보이지만, 능력있는  조재덕 에서 배대훈으로 이어지는 고참 수사관의 존재이다. 그리고 이들 배역은 타 드라마에서 걸출한 조연으로 인정받은 허정도와 이준혁이 맡았다는 점에서 일관되지만, 이들의 연기 색채가 다른 데서 오는 질감의 차이가, 두 시즌의 색다른 감초로서의 색채를 다르게 만든다. 

또한 고지식한 남자 수사관과 저돌적인 여수사관의 존재도 한진우(손호준 분)-민도영(이다희 분)에서 오승일(임승올 분)과 신여옥(손담비 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 더구나, <미세스 캅> 시리즈에서 여성 반장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인 여성 팀원의 캐릭터 경찰대 출신에서 일진 출신으로 역시 시즌1에 이어, 단 2회지만 충분히 매력적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팀원들만이 아니다. 3월 5,6일에 방영된 1,2회에서 보여지듯이 주인공 여성 형사 반장은 야무지게 팀원을 이끌어 가는 능력자이지만, 마치 원죄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사건의 트라우마로 고뇌하는 인물로 시작하는 것 또한 시즌1과 일맥상통한다. 거기에 역시나 시즌1에서 처럼 부도덕한 재벌의 등장 역시 동일하다. 

이제 2회를 방영한 <미세스 캅2>는 신선한 캐릭터와 시리즈의 통일성을 이어갈 여러가지 설정들로 기대가 된다. 물론 압도적 우세의 mbc 주말 드라마와의 대결에서 시청률로 선방할 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동시간대 차별성있는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선 신선한 편성이다. 물론 우려가 되는 점도 있다. tvn의 <시그널>처럼 화제가 된 수사물이 선점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1,2회에서 보여준 차별성있는 캐릭터에 이은 성공적인 수사물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거기에 무엇보다 발목을 잡는 것은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나, 얼마전 종영한 <리멤버>의 남규만(남궁민 분)으로 정점을 찍은 재벌 사이코패스의 재등장이다. 결국, 그 차별성은 다짜고짜 손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더 악랄한 존재감인데, 과연 이것이 이제는 슬슬 진부해져 가는 재벌 사이코패스의 트렌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by meditator 2016. 3. 7. 05:40

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몸 담고 있던 이승을 떠나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용이하지는 않다. 최근 '삼우제'라 하면 장사 지낸지 삼일 째 되는 날 산소를 잘 살펴드리며 지내는 제사란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삼우제의 '우제'(虞祭)는 원래 고인의 혼이 방황하지 않고 편안하게 계시도록 안정시켜 드린다는 의미의 제사였다. 돌아가신 분과의 이별은 슬프지만, 혹여라도 그 분이 저승에 자리잡지 못하고 이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낭패(?)가 되니 말이다. 


이런 조상들의 의식은 불교적 윤회 사상에 기반을 둔다. 즉 불교에서는 죽은 자는 바로 저승을 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7일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심판을 받고, 마지막 49일 째에 염라대왕의 심판에 따라 지옥과 극락행이 정해진다는 불교식 죽음에 대한 해석에 기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결국 사람은 죽고 나서도, 49일에 이르를 때가지는 죽었으나 죽은 게 아닌 상태로, 49재(齋), 즉 무사히 좋은 곳으로 돌아가길 기원해 주는 제사를 통해 죽은 자의 극락왕생(윤회의 세상을 벗어나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됨)을 기원한다. 



죽음 앞에 유예된 삶
그래서 이 삶도 죽음도 아닌, 49일간의 유예 기간은 종종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문화적 콘텐츠로 차용되어 왔다. 중국의 유명 작가 위화는 <제 7일>을 통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통해, 죽음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되찾게 되는 교훈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가 하면, 소현경 작가의 2011년 작품 <49일> 역시 49일의 유예 기간 동안 삶을 갈구하며 진실을 향해 가는 젊은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그려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15년 인기를 끌었던 tvn의 <오 나의 귀신님> 역시 3년이란 기한제 귀신의 한풀기 프로젝트란 점에서 콘텐츠적 유사함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제 2월 24일 첫 방영된 <돌아와요 아저씨> 역시 죽음에서 유보된 두 남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일본 영화 <츠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각색한 <돌아와요 아저씨>는 하지만 앞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작품들과 좀 다른 선택을 한다. 즉, 대부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죽은 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에게서 죽은 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란, '우연' 혹은 '해프닝'과 같은 '보너스'의 시간이다. 하지만 한국판으로 각색된 <돌아와요 아저씨>의 두 주인공 김영수(김인권 분)과 한기탁(김수로 분)는 적극적으로 삶의 세계를 선택한다. 즉, '보너스'가 아니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삶에 대한 '결자해지'가 강조된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돌아와요 아저씨>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된다. 

<돌아와요 아저씨>의 첫 회는 바로 이 적극적 이승 선택권에 대한 해명을 위해, 엉크러진 두 남자의 삶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이 그러하듯이,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가족과 삶을 희생하며, 암묵적 자살 행위를 도발했던 백화점 과장 김영수나,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간직했던 첫사랑을 구제하려 했던 한번의 선택이 자신이 일구어 왔던 모든 것은 물론, 그녀의 삶조차 더 헝크러뜨려버진 한기탁의 선택은 이들이 천국행 열차를 마다할 개연성을 충분히 설명한다. 

하지만 적극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유예된 이승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슴 근육이 불룩불룩한 평소에 로망이었던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김영수 과장은 자신이 남편이었다는 것을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심지어 한기탁은, 평소 그의 캐릭터와는 상반된 여자의 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첫 회에 처연했던 극은 그래서, 2회에 졸지에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돌아온 두 남자의 해프닝으로 인해, 배꼽을 잡을 만큼의 코믹한 극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죽은 남편의 뒤를 이어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내와의 조우, 평생을 통해 일구워온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현실의 목격 등, 극적인 지뢰밭을 내보인다. 



신윤섭 연출, 또 한번의 야심작 
그런데 비극적 전사, 그리고 이어진 2회의 뜻하지 않는 해프닝에서 떠올려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돌아와요 아저씨>의 신윤섭 연출의 2012년작 <옥탑방 왕세자>이다. <옥탑방 왕세자>는 죽음 앞에 유예된 삶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세자빈의 죽음 뒤에 비밀을 풀기 위해 300년의 시간을 타임슬립한 왕세자 일행의 해프닝을 담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특히, 1회가 세자빈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고, 그 죽음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비극적 구조를 선보인 반면, 2회가 왕세자의 신분으로 현대로 타임 슬립하여 옥탑방의 군식구가 되어 벌이는 코믹한 해프닝의 역전은 <돌아와요 아저씨>와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동시간대 대결 구도조차 전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적옥킹'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kbs의 <적도의 남자>와 mbc의 <더 킹 투 하트>, 그리고 sbs의 <옥탑방 왕세자>의 쟁쟁한 대결은 여러 해가 지나서도 언급이 될만한 화제작들의 대결이었다. <돌아와요 아저씨>의 대전도 만만치 않다. 비록 현재는 송중기, 송혜교 두 스타에 김은숙이란 스타 작가를 내세운 kbs의 <태야의 후예>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만, 첫 회 6.6%에서 다음 회 7.6%로 상승 기조를 탄 <돌아와요 아저씨>의 기세는 흡사 첫 회 꼴찌로 시작하여, 1위로 마무리 한 <옥탑방 왕세자>의 기세를 연상케 한다. 심지어, 결국은 타임 슬립물 <옥탑방 왕세자>와, 역시나 유예된 삶을 살아야 하는 <돌아와요 아저씨>는 슬픈 이별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결정적 한 방이 예고된 셈이니, 마지막에 웃을 자가 누군지는 쉽사리 예단 할 수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2. 26.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