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도 '트렌드'인가? <창궐>, <킹덤>에 이어 <기막힌 가족>까지 변주된 '좀비'이야기가 줄을 잇는가 하면, <손 the guest>에 이어 <프리스트>, 이제 <빙의>까지 '악령 퇴치 스릴러'가 연달아 찾아왔다. 문제는 이 '트렌드'가 서로 서로 '윈윈'이 된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승자 독식의 결과가 되기 십상이니, 수작과 그 '아류작'이라는 멍에를 비껴가는게 쉽지 않다. 바로 3월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빙의>가 짊어진 숙명이다. 

 

 

시청률과 별개로 <손 the guest>는 센세이셔널했다. 우리의 토속 신앙으로 부터 시작하여, 천주교 구마 의식 이들 종교를 매개로 영매와 신부와 형사가 그들이 강력한 악령 '박일도',에 맞서는 이야기는 생소했던 '엑소시즘' 장르를 단박에 설득해 냄은 물로, 그 자신이 하나의 모범, 혹은 전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결국 <손 the guest>이후의 '엑소시즘'을 다루는 장르물들은 자신의 서사가 <손 the guest>와 얼마나 차별성을 가지는지부터 시작해서 이 작품의 만들어 놓은 전통을 뛰어넘어야 하는 버거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런 과제에 대해 이미 앞서 <프리스트>는 그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의 벽 앞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첫 회에 이미 <손 the guest>의 구마 의식 씬과 비교 하위를 점해 버리고, 서사와 연기에서 설득력 대신 복잡함과 지지부진함을 선택한 <프리스트>는 그나마의 장르물 애청자들마저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모처럼 붐이 될 수도 있는 '엑소시즘' 장르가 주저앉아버린 순간이었다. 

 

   

 

'엑소시즘'의 바통을 이어받은 <빙의>
그리고 이제 그 바통을 다시 <빙의>가 이어 받는다. <빙의> 첫 회는 전설의 시작이다. <손 the guest>가 바닷가 마을에 찾아든 악령 박일도가 그 악령에 씌인 이가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어 자신의 눈을 찌르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면, <빙의>의 시작은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 황대두이다. 1990년대 5년 여에 걸쳐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한 '신념어린 사이코패스' 황대두,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간 피해자 앞에 거울을 놓는 등 선과 악, 쾌락과 고통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범죄로 실천하고자 한다. 그런 그를 베테랑 형사 김낙진(장혁진 분)이 쫓는다.

피해자에게 도끼를 막 휘두르려는 상황, 김형사는 어떻게든 그걸 막아보려했지만 황대두의 악의가 빨랐다. 결국 김형사의 눈 앞에서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그런 상황에서 김형사는 '황대두'에게 살의마저 느끼지만 결국 그를 법의 심판 앞에 넘겨주고 만다. 사형대 앞에서도 사형 당하는 순간의 쾌락을 강변하던 살인마, 법은 그의 생명을 거두지만, 세월이 흘러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김낙천 형사를 '황대두'가 연상되는 누군가가 잔인하게 죽인다. 

그리고 20여년, 다시 살인이 일어났다. 승용차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여성, 그 시신 앞에 떨어진 백미러에 촉이 빠른 강필성(송새벽 분) 형사는 의아함을 느낀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반가이 인사를 받던 선양우(조한선 분)는 병원 로비에서 한 여성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아내를 물리치고 혼자 남겨진 서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황대두와 관련된 기사를 본다. 선양우가 아닐까 추정되는 범죄, 그리고 황대두를 무슨 이유에선지 흠모하는 외과 의사 선양우, 이렇게 <빙의>는 황대두의 '환생(?)'을 그려낸다.

 

 
악령으로 돌아온 '황대두', 그리고 그에 맏설 영매들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오수혁(연정훈 분)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박일도와 그를 따르는 매회 달랐던 악령의 추종자 혹은 악령에 물든 자들로 구성되었던, 그리고 궁극적으로 과연 누가 박일도의 숙주였는가를 찾아내야 했던 <손 the guest>와 달리, <빙의>는 명확한 악의 축을 구축하며 그에 의한 연쇄 살인의 형식으로 극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과연 선양우,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오수혁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풀릴 지가 '박일도'와 '황대두'의 차별성을 가를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영매여서 박일도 마저 받아들여야 했던 윤화평(김동욱 분)은 이제 <빙의>에서 영이 맑은 형사 강필성이 된다. 어린 시절 박일도로 인해 엄마와 할머니를 잃었던 윤화평처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목도했던 강필성은 뜻밖에도 귀신을 무서워하는 하지만 촉이 남다른 형사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진짜 영매 홍서정(고준희 분)가 알아본다. <손 the guest>의 쎈 형, 아니 언니 강길영(정은채 분)은 이제 자신의 방안 가득한 영기들을 부적이 다닥다닥붙은 블라인드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막아내리는 막강영매가 되어 찾아온다. 

 

 

겁쟁이지만 촉이 남다른 강필성과 귀신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막강 영매 홍서정의 조합, 비록 아쉽게도 신부님이라기에 너무도 매혹적이었던 최윤은 없지만, 과연 어떤 인물이? 혹은 어떤 귀신이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악령으로 돌아온 황대두를 추적할 지 궁금해 진다. 물론 아직은 코믹인지, 직업 모드인지, 멜로인지 이 캐미의 실체가 모호하지만. 

승용차 속 여인 시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강필성이 찾아낼 또 다른 사건들로 드러나게 되는 연쇄 살인 사건, 그렇게 강필성 형사와 그 팀이 수사하는 형사 사건으로 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역시 강길영의 사건 수사 모드였던 <손 the guest>를 연상케 하는 지점이다. 반면 피해자들의 연합체였던 <손 the guest>와 달리, 영매와 영매의 조합인 <빙의>의 발걸음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나의 아저씨를 통해 다시 한번 날개를 펴기 시작한 송새벽이 예의 그 허허실실한 캐릭터를 <빙의>를 통해 살려나갈 것인지 그 귀추도 주목된다. 거기에 악역을 장전하고 돌아온 연정훈, 조한선의 변신도 주목된다. 이들의 신선한 조합이 만들어갈 <빙의>, <손 the guest>의 아류작을 넘어 엑소시즘 장르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by meditator 2019. 3. 7. 14:41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조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이다. 흑인들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동등하게 타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인권'을 향해 지난한 과정을 걸어왔듯이, 여성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접받기 위해 111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엔은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했다. 

 

 

mbc스페셜은 이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인 윤석남을 이 시대 여성의 워너비인 모델 한혜진이 찾았다.

1939년 만주 봉천 출생, 팔순이 넘었다.  팔순이 넘은 어르신하면 떠오르는 모습들, 하지만 그 상투적인 예상은 한혜진을 맞는 윤석남 화가의 모습에서 대번에 깨어진다. 히끗히끗하지만 자유분방하게 휘날리는 퍼머넌트된 커트, 검버섯은 피었지만 팔순이 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생기가 넘치는 표정, 우리가 연상하는 '노인 패션'과는 다른 조거 팬츠에 패딩 조끼 등등 활력넘치는 화가의 작업복, 그리고 툭툭 마디가 불거져 나왔지만 웬만한 목수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두툼하고 단단한 그녀의 손. 한혜진을 맞이한 건 당신은 총기가 허락되는 한이라 하지만 여전히 ing 중인 작업의 세계 속에 흠뻑 빠져있는 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핑크를 찢다.
3남3녀의 셋 째,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서 석남이라 지어준 이름, 하지만 그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다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나이 서른 아홉,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다. 집안을 어렵게 이끌어간 어머니를 보며 석남은 학교도 마다하고 가정일을 돌보려 했다. 하지만 학교는 마쳐야 고집하셨던 어머니,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녀는, 그녀 또래의 여성들처럼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그림, 꽃과 풍경 대신 그녀는 어머니와 자기 주변의 여성들을 그렸다. 그저 그게 눈에 들어왔다던 윤석남, 그렇게 그린 그림이 아이 키우랴, 돈 벌려, 살림하랴 경황이 없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손이 열 개라도'였다. 그렇게 윤석남의 여성주의 화풍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대표작에는 핑크색 소파가 있다. 화가가 되기 전 그녀인듯한 화려한 자개로 장식된 여성이 앉아있는 소파, 하지만 그 형광빛 화려한 핑크색 소파 한 켠에는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는 소파, 하지만 그 소파에 앉을 때마다 그녀의 삶은 그녀에게 가시방석이 되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삶이지만 이게 과연 나의 삶인가 고민하던 그녀는 그 화려한 소파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윤석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다. 윤석남의 여성주의는 곧 그녀의 삶이었다. 

남편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들고 화방에 가서 화구를 샀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제부터 그림을 그릴 건데 그게 싫으면 이혼을 하라 선언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에 12시간 씩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를 넘어선 화가의 길을 걸었다. 3년만의 개인전 '추상화풍'이 지배하던 당시의 화단에서 '여성'을 그린 그녀의 화풍은 주목을 받았다. 그림을 그리던 것을 넘어 그녀는 '나무'를 활용하여 설치 미술 작업을 시작했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 등 해외 미술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유화로 시작하여 나무, 드로잉, 설치 미술까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얼개만 남기고 종횡무진 다양한 시도를 했던 윤석남 화백, 그런 그런 그녀의 활동이 인정받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이중섭 미술상과 국무총리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화가로서 
하지만 그저 자기 주변의 여성,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에 천착해 있지 않았다. 이매창, 허난설헌, 김만덕 등 재능은 있었지만 뜻을 펼치지 못한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이 그녀 그림 속에서 살아난다. 

페니미즘 작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 '명예'에 대해 그녀가 고심한 결과물이다. 또한 사회적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드러나기 이전에 관심을 기울여 나눔의 집이 만들어 질 당시 자신의 설치 작품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을 넘어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서 유기견 1025마리를 나무에 아로새기느라 허리 수술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여전히 그녀는 고민한다. 혹시 자신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만족에 빠진 미친 사람들'이라며 자신과 같은 예술가를 허심탄회하게 정의내린 윤석남 화가,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마무리 짓는다. '어쨋든 난 최선을 다했다'고. 

 

 

이제 팔순을 넘어선 작가는 다시 40년 동안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우리의 채색화를 그리느라 자신의 자화상으로 연습만 1000장을 넘게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원처럼 매일 일정한 시각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일상. 주변에서는 하던대로 예술적 감흥이 더 큰 설치 작품을 하는게 작가의 명성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생애에 기억이 남는 관계들을 남기고 싶다. 우리의 전통 그림 중 여성의 초상화가 없다는 사명감도 있다. 

그렇게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의 삶을 예술로 알려, 그 자신이 여성의 대표가 된 윤석남의 이야기는 또 다른 여성, 그리고 여성의 딸인 한혜진이라는 대상을 통해 친근하게 전달된다. 

또한 그렇게 윤석남이란 화가를 소개하는 걸 넘어, 윤석남이란 화가의 작품을 들고 찾아가는 전시회를 마련하여 세상과 소통을 도모한다. 

 

 

그녀가 그렸던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전북 남원 구룡마을을 찾아들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미술 관람, 하지만 할머니들은 곧 '내 모습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포항 공대 미술관을 '개판'으로 만든 1025마리의 '사람과 사람없이' 작품들은 고상한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대상이기에, 그들의 눈빛을 통해 곧 사람들로 하여금 버려진 생명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무에 새겨진 서로 다른 표정의 여성들, '빛의 파종'은 청주 여성을 찾아, 이제 곧 사회에 나서야 하지만 도전보다는 제약과 한계에 고민이 많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는다. 

111주년을 맞이한 여성의 날, 선언이나 캐치프레이드, 담론이 아니라, 삶에서 부터 시작된 '여성주의'를 우리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화가를 통해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9. 3. 5. 15:57

한때는 암이었다. 드라마 속 해결의 만능키 말이다. kbs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황금빛 내 인생>으로 정점을 찍었다.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암이었다가 상상암이었다가, 아니었다가 다시 결국 암이라며 그 목숨을 거둘 때까지 드라마는 '암' 담보를 통해 시청률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항변하지만 '암'을 통해 시청자를 볼모로 삼았다는데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렇게 상상암까지 동원해 버린 드라마, 더는 '암'만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일 꺼리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식'을 들고 나왔다.

 

 

문제는 그 '이식'이 한 드라마 만이 아니라는 거다. 간이식이 의학적으로 그리 흔한 사례가 아닌데, 공교롭게도 kbs의 드라마들 중 세 드라마가 '간이식'으로 극의 갈등을 점화시키고 있다. 바로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을 넘었다는 46.2%의 주말 드라마 <하나 뿐인 내 편>에 이어, kbs 주중 미니를 늪에서 구원해준 시청률 20%의 <왜 그래 풍상씨>, 그리고 지지부진하다 '간 이식'을 통해 화제성을 회복한 주중 일일 연속극 <비켜라 운명아>이다. 



간마저 주는 극진한 부정 
태생이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 하지만 하늘은 그의 착함을 돌봐주지 않았다. 부모를 모르는 고아였으며 동생같은 동철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다녀온 소년원 이후로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겨우 결혼을 하고 딸까지 얻어서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아픈 아내로 인해 살인범이 되어 오랜 감옥 생활을 했다. 여기가 드라마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종영을 10회 남겨둔 <하나뿐인 내편>은 세상에 법 없이도 살 것같은 착한 사람 강수일(최수종 분)의 시련기이다. 

애초에 감옥에 가게 된 계기도 이제 와 보니 살인 누명을 쓴 거였고, 그로 인해 드라마 내내 피해자 가족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딸은 이혼까지 당했다. 그런데 이제,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피해자의 아들이 간경화 말기이고, 그에게 맞는 간이 바로 강수일의 간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아버지의 암-상상암- 다시 암이라는 질병 서사를 통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곡진한 부성애의 개연성을 설득하려고 했다면, <하나 뿐인 내 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간'을 떼어주고 생사의 기로에 선다. 이 두 드라마가 극단적인 질병을 통해 설득하고자 하는 건, 여전히 지금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정'의 대상들은 안타깝게도 상실된 가부장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는 한때는 사업으로 잘 나갔지만 보증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날리고 가족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빠뜨려 아내가 딸 바꿔치기를 하게 만들고 큰 딸이 그런 아내의 거짓에 기꺼이 놀아나게 만든 주범이었다. <하나뿐인 내 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강수일은 아버지였던 적이 없다. 딸이 아버지를 인지하기도 전에 감옥에 들어가 이제 성인이 된 딸 앞에 나타난 아버지. 그렇게 가부장의 자리를 상실한 아버지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병에 걸리고, 자신의 간을 떼어주고 의식 불명이 된다. 죽음, 혹은 죽음에 버금하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야만 회복될 수 있는 가부장, 실종된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부활하려는 안간힘, 그는 여전히 kbs2의 주말 드라마의 투철한 주제 의식으로 다양한 변주를 통해 드러나고 <황금빛 내 인생>에 이어, <하나뿐인 내 편>까지 시청자들의 화답을 얻고 있다. 

 

 

변주된 가부장의 부활 
그런가 하면 가부장제의 아버지는 형의 모습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바로 <왜 그래 풍상씨>의 경우이다. <왜 그래 풍상씨>의 맏형 풍상씨 역시 <하나 뿐인 내 편> 속 강수일에 버금가는 질곡어린 인생이다. 간이식이 필요했지만 차마 자식들에게 말할 염치가 없어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다른 동생까지 만들며 집안에 문제만 일으킨 어머니를 그래도 어머니라 보듬으며 대신 가족들을 돌보려 애쓰며 누더기와도 같은 가족 관계을 책임지려 했던 맏형 풍상(유준상 분).

심지어 그 자신이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도 동생들 몸에 생길 흉터에서 부터 , 치료 비용 등등까지 지레 걱정을 껴안고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런 형의 걱정과 달리, 간이식이 필요한 형, 오빠의 처지를 알게 된 동생들은 각자 친형제가 아니란 이유로, 혹은 그동안 받아왔던 가족내 차별 대우에 대한 설움 등등의 이유로 풍상에 대한 간 이식을 거부한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대가인 문영남 작가는 예의 내공으로 '간이식'을 둘러싼 콩가루 집안의 갈등을 절정으로 이끌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그 '간이식'를 통해 가족 화합이란 해피엔딩의 극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그 간, 내 간을 떼어준다는 건, 강수일처럼 타고나기를 착하다는 사람은 피 한 방울 안섞인 심지어 그간 자신을 가해자라며 온갖 수모를 준 가족의 일원에게도 주는 '극강의 선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왜 그래 풍상씨>에서 보듯 가족이라 하더라도 선뜻 내 간을 떼어주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비켜라 운명아>로 가면 이 '간 이식'이 가족 간의 '딜'로 등장한다. 현강 그룹이라는 재벌 그룹, 그 가계에서 승계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두 남자 양남진(박윤재 분)과 최시우(강태성 분), 그들은 이른바 첩의 자식과 본 혈통이라는 전통적 왜곡된 가족 구도 속에서 이복 형제가 된 그들은 극중 회사의 일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물론 그 갈등은 언제나 우리 드라마가 그렇듯 정통성이 약한 첩의 자식 최시우와 그 어머니에 의해 조장된 해프닝이기 십상이다. 그러던 중 최시우가 급성 간경변으로 쓰러지고 간 이식이 필요한 위기라 발생한다. 이에 최시우의 엄마 최시우(김혜리 분)는 양남진의 전 여친과 자기 자신을 정략 결혼을 시키거나 남진의 회사 내 일을 빌미로 삼아, 간 이식을 종용, 심지어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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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지키려는 남자들,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 
간암에서, 간경변 등 다양한 병명, 하지만 해결책은 오로지 남자 주인공의, 혹은 남자 주인공에 대한 간 이식만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하나 뿐인 내편>, <왜 그래 풍상씨>, <비켜라 운명아>.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지점은 '간 이식'의 기로에 놓인 당사자들이 남자이며, 그들이 대부분 '가부장적 관계'의 복원, 혹은 승계자라는 지점이다. 상실된 가부장의 자리를 온갖 어려움을 뚫고서도 회복하려 했던 <하나 뿐인 내편>의 강수일, 역시나 형이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심지어 온갖 가족 내 트러블 메이커인 어머니까지 품어내며 가족을 이끌어 가려했던 <왜 그래 풍상씨>의 맏형 풍상,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현강 그룹의 유일한 적통 손자 양남진까지. 

반면에 극중에서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하나 뿐인 내편> 속 소양자(임예진 분), 나홍실(이혜숙 분), 오은영(차화연 분) 등 중견 연기자들의 캐릭터에서 부터 젊은 장다야(윤진이 분), 김미란(나혜미 분)까지 그 누구도 '긍정'적 역할의 캐릭터가 없다. 그들은 모두 극중에서 강수일의 고난에 등장한 지뢰들이다.  <왜 그래 풍상씨>라고 다를까, 무엇보다 이 가족이 이토록 콩가루 집안이 된 근원이 바로 엄마, 이름부터 노양심이다. 둘째의 대학 등록금을 나꿔채고, 딸을 술집에 팔아넘기는가 하면, 아들의 합의금을 가로채 재활의 기회를 놓치도록 만든다. <비켜라 운명아>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임에도 첩이라는 열등감으로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며 자신의 아들을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마 최수희 역시 이 드라마 속 주된 악역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들, 심지어 그를 위해 동원된 극단적 설정 '간 이식', 물론 인생사 병을 피할 수는 없으니 극중 병이나 죽음이 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세 드라마 속 '간 이식'은 개연성없는 극중 관계들을 어거지로 봉합시킬 수 있는 '치트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객관적으로 이런 관계들에서 '간 이식'이 가능할까. 어쩌면 '간 이식'이라는 깜짝쇼를 통해서만이 구원될 가족이라면 결국 논리타당한 설정으론 불가능하다는 걸, 2019년 대한민국에서 '가부장'의 귀환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능한 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파편으로 흩어진 가족과 관계를 봉합하며 '해피엔딩'의 팡파레를 울릴 것이다. 그리고 그 팡파레에 여전히 시청자들이 '막장'이라면서도 시청률로 화답하니 과연 '상상암', '간이식'에 이어 또 어떤 기상천외한 병명이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by meditator 2019. 3. 4. 17:56

3.1 운동 100주년이다. 유관순 열사, 그리고 일제 시대 인물인 엄복동을 독립 운동과 연관시킨 영화 등이 만들어지고 개봉되는가 하면, 방송사에서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다큐 및 작품들이 100년의 그날을 기념하고자 한다. 100년 전 그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총칼을 뚫고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의 우리,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들의 뜨거운 독립에의 의지와 열망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동시에 과연 우리가 100년 전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되돌아 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야 당연히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겠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켜간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깨닫게 되는 만큼, 3.1운동 100주년에 신념을 지켰던 조상들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 다가온다. 지난 2월 25일과 3월 1일 양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된  <3.1주년 100주년 특집 마지막 무관 생도들 2부작>은 바로 이런 반추로 부터 시작된다. 대한 제국 마지막 무관 생도였던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통해 독립 운동의 삶을 살았던 선열들의 신념어린 삶을 역설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 다큐는 이원규 씨의 마지막 무관생도들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피를 나눈 맹세- 첫 번째 엇갈림 
1896년 대한제국은 무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대한 제국 육군 무관학교를 만들었다. 이응준, 홍사익, 지청천... 이들이 바로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들이다. 1909년 위태로워져가는 나라, 무관학교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한 제국 무관 학교는 문을 닫게 되고 무관 생도들 중 50 명이 일본의 육군 중앙 유년 학교로 보내졌다. 그리고 1910년 강제 합병 소식이 전해지고, 일본에 남겨진 무관 생도들은 아오야마 묘지에 모였다.

다함께 천황궁 앞에서 자결하자며 울분을 토하며 이응준 등이 무조건 싸우자며 결의를 다지는데, 홍사익은 때를 기다리자 했고, 지청천 역시 홍사익의 의견에 따라 일본군과 싸우려면 지휘관이 필요하다며 이곳에서 일본의 선진 지식을 습득하며 조국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자 했다. 이들은 결의를 다지기 위해 다시 육사 23기 였던 김경천의 주도 아래 '우리 민족이 떨쳐 일어나는 날 다 함께 모이자며'요코하마 한 술집에 모여 서로의 피를 나눈 술잔을 나눠 마시며 피의 맹세를 했다. 이들이 이 때 정한 암호는 '요코하마'

1919년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난 3.1 운동 김경천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피를 나눈 동지들에게 '요코하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보를 보내고. 지청천이 합류했다. 육군 현역 장교였던 두 사람의 탈출에 일제는 체포망을 좁혀갔지만 두 사람은 그 허를 찔러 무사히 조국을 탈출하여 서간도의 신흥 무관학교로 갔다. 

반면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이응준과 홍사익, 당시 홍사익은 일본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고, 이응준 역시 홍사익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 이렇게 피를 나눈 맹세의 길은 서로 갈라졌다.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는 이 넓은 만주 벌판을 베게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지청천 


 

 
독립군과 그 독립군을 진압하는 장교로 마주선 동지들 
1919년 6월 이회영 등이 사재를 털어 만든 무장 항일 투쟁 교육 기관 신흥 무관 학교, 여기에 육군 현역 장교 출신이 김경천, 지청천 두 사람의 합류로 독립 투쟁의 기세는 불타올랐다. 

신흥 무관 학교 출신으로 북간도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신동천과 함께 김경천, 지청천은  '남만 삼천'이라 일컬어졌으며 이들의 합류로 독립 투쟁은 한 단계 승화된다. 일본군을 나오며 군 교재와 지도를 갖춰 나온 지청천 덕분에 현대적 군사 지식과 지도를 얻게 되었으며 이런 전문적 군사 지식에 따라 신흥 무관 학교는 대한 제국 무관 학교의 편제에 따라 14시간 훈련과 학과를 병행하는 체계를 갖춰 나갔다. 

이들 졸업생은 대부분 만주 지역 독립군 부대의 교관과 장교로 활약했고 이들이 이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이들 '남만 삼천'은 지청천은 서간도로, 김경천은 러시아 연해주로, 신동헌은 북간도로 흩어져 독립 운동의 외연을 넓혀가며 각 지역 독립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홍사익과 이응준은 일본군이 되었다. 홍사익은 만주 사변에서 공을 세우고 관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가 접한 조선 항일 조직의 서류에서 그는 한때 동지였던 지청천의 이름을 발견했다. 또한 어느날 그에게 온 인편을 통해 지청천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그의 투항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군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사익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 이는 더는 내가 아니네'라며 지청천의 청을 거절한다. 

장부가 응당 취하고자 하는 건
만고에 떨칠 이름인데
어찌 하찮은 망아지 구유에 기대어 .....
풍운은 아직 그치지 않고 눈보라 휘날리니
어찌 큰 민족을 세울 용사를 얻을 수 있으랴     -김경천 <경천아일록> 

 

 
소비에트 혁명으로 인한 비극적 생애- 김경천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집안, 사직동 일대에 1000 여평의 집터를 가진 집안, 하지만 가장 김경천이 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고 남은 가솔들은 그 가옥을 처분하여 근근히 살아가야만 했다. 

러시아 연해주로 온 김경천은 수청 고려 의용대를 만들어 우리 이주민들은 물론 그 지역 토착민들을 괴롭히는 그 지역 마적들을 토벌하는 등 혁혁한 성과로 '백마탄 김장군'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숨쉬기 조차 힘든 그곳의 사정'을  <경천아일록>으로 남겨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비견되는 전쟁 기록의 산 증인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강대국의 정세에 휩쓸리는 우리의 운명이 그렇듯 김경천 장군의 생애 역시 그 비극에서 비껴서지 못했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숙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 다수가 체포되었으며, 김경천 장군 역시 블라디보스톡에서 체포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영향에서 조선이을 분리하고자 한 소련의 정책에 따라 18만 명의 조선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는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역시 카자흐스탄의 집단 농장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하지만 집단 농장 이주도 잠시, 1939년 다시 '인민의 적'이란 명목으로 카라간다 정치범 수용소에 8년 금고형에 처해졌고,  이어 모스크바로, 다시 시베리아 코틀러스 강제 수용소로 보내져 철도 건설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백마탄 조선의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독립의 영웅 김경천 장군은 그렇게 소비에트 혁명의 희생자가 되어  1942년 러시아 북부 철도 부설 수용소 병원에서 병명은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하지만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친일의 결말 - 이응준과 홍사익 
일본군 고위장교가 된 이응준은 가야마 다카토시로 창씨 개명을 하고 매일 신보 등의 강연회에서 '충성'을 강변하는 등 일제에 앞장선다. 용산 조선군 사령부 대좌까지 지내던 중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원산항 병참 책임자로 있던 이응준은 '조선인으로 돌아간다'며 원산을 탈출한다. 

하지만 미군정청은 해방 후 칩거하던 그에게  조선 임시 군사 위원회 군사 위원장 직을 맡긴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던 그는 하지만 '일본, 만주, 중국 등지에서 군사학을 전공하고 그 나라에서 각각 군인 노릇을 하던 그 경섬이 신생 조국에서 건국의 역군이 될 '것이란 소회로 건군의 주역이 되고 초대 육군 참모 총장 등의 직위를 역임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할 당시 필리핀 포로 수용소장으로 있었던 홍사익은 그해 12월 b급 전범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 당시 재판을 받던 22명의 장성 중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홍사익,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수재로 입신양명의 길을 걸었던 그, '조선인이 일본에 협력하면 조선인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이씨 왕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창씨 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조선인 권리를 지키겠다던 그의 최후는 일본군의 전범이었다. 

이응준 등, 심지어 김원봉조차 조국 건설에 필요한 인물이라며 구명 운동을 펼쳤지만 항소를 거부했던 그가 형장으로 가며 부탁한 건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로 시작하는 시편 51편, 그렇게 조선인으로 일본인과 동등하게 살고자 했던 일본군 대좌 홍사익은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응준과 홍사익은 반민족 친일행위자로 친일 인명 사전에 그 이름이 올랐다. 

 

 

마지막 무관 생도들, 그 후 
충칭 임시정부로 간 지청천은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어 국내 진공 작전인 독수리 작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황의 항복, 태극기, 광복군기를 앞세워 귀국하려던 지청천, 하지만 미 군정은 이를 허락치 않았다. 결국 개인 자격으로 28년에 귀국한 지청천 장군은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해방 후 청년 단체 규합에 힘썼다. 

일제 합방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이건모는 퇴교 후 조선 총독부 서기가 되었다. 일본군 장교가 되었던 이종혁은 자신으로 인해 독립군 투사가 죽음에 이르는 걸 목도하고 항일 독립 투쟁에 헌신,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았다. 44명의 마지막 무관 생도들 중 단 5명만이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중 7명이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남은 32명, 그중 일본군 장교가 13명, 관료가 6명, 은행 직원이 3명, 교사가 4명등이다. 일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 3.1운동 100주년에 저 다섯 명의 독립 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삶, 그 지난했던 선택 더더욱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9. 3. 3. 15:04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만큼 한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설명해줄 말이 있을까? '백년지대계'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교육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생산'해주는 인력풀로 요구되어져 왔다. 유학자들이 모여 이상적 군주 체제를 지향했던 조선 사회는 그러기에 '과거'라는 학문의 능수능란한 익힘 정도를 '관리'의 요건으로 삼았다. 수출과 개발 입국을 내세웠던 지난 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그 '산업'의 역군을 담당할 '기술'과 '기능'을 잘 익히고 숙달한 지식인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잘 알고 익힌 지식'일 필요치 않다면? 그 실재의 유무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고 도래할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지금까지 인간이 수행했던 '지적으로 숙련된 영역'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화된 기계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자명해 지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우스개로 시작하여 이제 체감이 되기 시작한 사라질 인간의 직업들이 회자되고 있다. 거기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 변리사, 의사 등의 직업군마저 그 역량의 상당 부분을 빼앗길 태세이다. 과연 지금까지 사람들이 책임지던 일을 일군의 AI들에게 넘기고 만다면 다은 세대에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각국은 저마다 '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집'으로 마련된 <EBS다큐-교육 개혁, 성공의 조건>은 바로 이에 대한 모색이다. 

 

 

일본 교육의 20년 대계 
이제 중학생이 된 히로토는 카이세이 중학교에 다닌다. 학교 수업을 마친 그는 집에 돌아와 여유롭게 엄마와 식사를 한다. 암기하고 문제를 푸는 식으로 공부하던 형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상. 

카이세이 중학교의 오전 수업, 히로토가 속한 조는 일본과 외국의 의료 제도를 비교하여 파워 포인트로 작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같은 반 다른 조는 다른 주제에 대해 토론 중이다. 사회 시간, 함께 사는 세상이란 주제를 놓고 아이들이 정보화 시대,복제양 돌리 등의 장, 단점에 대해 토론을 하는 '탐구식 수업'을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을 접하고, 다양한 테마와 문화를 발견하는데 교사 중심의 설명식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두드러진다. 

일본은 2001년 일찌기 문부 과학성의 조직을 개편하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수용하여 교육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 20년을 준비해온 정책은 2018년 문부성 교육 개혁안으로 결실을 맺었다.  입시에서 객관식 문항을 없애고, 논술, 서술형 시험을 확대했다.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일본 교육이 선택한 건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 중심의 '탐구식 수업'이다. '덜 가르치고 더 학습하자'는 모토의 새로운 교육 방식, 스스로 생각하고 학생들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이 새로운 방식에 맞춰 2020년 수능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핀란드의 일관된 교육 개혁 
지금이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통하는 핀란드이지만1970년대만 해도 그저 유럽의 변방 국가 중 한 나라에 불과했었다. 국민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처지였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교육을 받는 교육 개혁을 실시했다. 물론 이런 개혁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교육 개혁 정책은 2000년대 국제 학업 성취도에서 핀란드를 당당하게 1위로 만들었고, 이러한 교육 정책의 변화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당당하게 한 몫을 하는 핀란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를 선도한 교육 정책에 핀란드 국민들은 신뢰도 80%로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핀란드 교실, 학생들의 책상 모양은 5각형이다. 각자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언제든 모여 앉아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상. 종교에 대해 배우는 학생들은 지금까지 역사를 배우는 일반적 방식이던 '시대순' 대신 종교의 성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 선생님의 역할도 다르다.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에서, 학생들 스스로 사실에 접근하는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로 역할이 변화했다. 대신 방과 후 보다 나은 커리큘럼과 접근 방식을 위한 연구자로서의 부담은 커졌다. 

이렇게 변화된 핀란드 교육의 주역은 행정부에서 독립된 '국가 교육 위원회'이다. 정당의 정치적 결정에서 배제된 교육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국가 교육 위원회, 거기에 교사들은 개혁 대상자가 아니라 현장 지휘자이자 동반자, 그리고 전문가로 개혁 과정의 주체가 된다. 또 빠질 수 없는 주체로 학생이 있다. 요리 학교를 다니는 엠마는 현재 학교를 휴학하고 국가 교육 위원회 이사가 되어 각 실업 학교를 찾아 다니며 자신과 같은 자신과 같은 실업계 학생은 물론,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분주하다. 성적 평가 방법이 3단게에서 5단계로 바뀌는 등 현장의 목소리가 학생 이사를 통해 반영되었다. 학생, 선생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16명의 이사진은 정치적 환경에서 자유롭게 교육 현장을 반영하여 교육 목표를 수립하고, 과정을 설계하며, 그 내용을 이행하는 교육 전반의 과정을 책임진다. 

 

 



프랑스의 새 바칼로레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 시험의 전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바칼로레아를 통과해도 대학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속출, 입학생의 26%만 졸업장을 받는 게 프랑스 교육의 현실이 되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2013년 교육 과정 최고 심의 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교육 과정을 분석하고, 41개의 새로운 과정을 설계하고, 이의 실행을 자문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비난과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6년간의 과정을 거쳤다. 

일본, 핀란드, 프랑스 등 각국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교육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나라는 달랐지만 이들 나라 교육 개혁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촛점이 맞춰진다. 그 첫 번 째는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의 암기식 지식, 그리고 그에 기반한 설명식 수업을 지양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방식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정책과 방식을 입안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김영삼 정부에서 수능 체제가 도입된 이래 크고 작은 교육 정책의 변화가 19번이나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 개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가 십상이다. 교육 개혁의 '개'자가 나와도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오죽하면, 지난 해 교육 공론화 과정의 결과는 시대적 흐름에 위배되는 듯한 정시 확대, 수능 절대 평가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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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교육 개혁의 현실 
그건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새로운 시대에 부응한다는 개혁이 오늘날 우리 교육 시장에서 보여지듯, 잘 사는 학생들이 대학을 잘 가는 온갖 편법적 제도를 양산해놓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능 수시의 다양한 제도들이 애초의 취지인 다양한 교육 기회가 아니라, 이른바 자사고, 외고 등 교육 기관들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입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제도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결과 우리의 학교 교육은 외고, 과학고, 자사고가 상층 레벨을 형성하고, 그 아래 일반고 등이 자리한 신분 서열 체제가 되었다. 사람들이 보이는 교육 개혁에 대한 반발은 이러한 결과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시대적 변화는 다시 우리 사회에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를 한다. 과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교육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 할까? 이에 다큐는 '백년지 대계'를 내세운다. 실제 국가 교육 위원회 위원장인 김진경 씨 역시 조급하기 보다는 100년을 갈 수 있는 교육적 합의를 최선의 요건으로 든다. 또한 이를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절대적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일본 카이세이 중학교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해 한다. 학교의 새로운 교육이 대학에서 공부하는데는 좋은 학습 방법이지만, 대학을 가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갸웃거린다. 프랑스의 새로운 교육 정책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과 함께 학생, 교사들로 하여금 정부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를 입는 시위 대열에 합류케 했다. 

또한 핀란드처럼 정부의 기부와 독자적인 기구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국가 교육 위원회는 취지와 달리 위원회 의원을 뽑는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의 배제 여부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대두된 가운데, 교육부와 상치된 조직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도 등장한다. 이런 가운데 연내 출범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by meditator 2019. 3. 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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