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홍상수의 영화를 봐온 건 아니지만  2000년대부터 거의 빠짐없이 홍상수의 영화와 함께 시간을 흘러왔다. 그런 그가 만든 2019년작 <강변 호텔>은 그렇게 홍상수의 영화와 함께 시간을 보내온 관객에겐 색다른 감회를 줄만한 영화일 것이다. 김상중과 이선균과 유준상 등에서  어느덧 권해효, 정진영, 기주봉으로 감독의 페르소나가 변화되어져 가는 시간조차 흘러 어느덧 그 '영원할 것 같던 치기'의 시절조차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시간의 엄정함에 말이다. 

 

 

호텔의 노시인, 아버지, 그리고 
영화의 시작은 겨울 풍경이 스산하기 이를데 없는 한강 주변의 호텔이다. '노인네'인 주인공은 아들의 전화를 받고 주섬주섬 자신이 벗어놓았던 양말과 바지를 추스려 입는다. 아버지의 방으로 찾아오겠다는 아들을 굳이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 할 만큼 아버지는 안다. 막상 그 방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레한 가를. 

모처럼의 호출, 호텔 커피숍에서 이루어진 부자들간의 해후는 쉽지 않다. 방에 핸드폰을 두고 나와 서로 다른 자리에 앉은 아버지와 두 아들은 같은 공간에서도 쉬이 조우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엇갈려온 시간처럼. 

아들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던 아버지는 밖으로 나와 호텔 주변을 거닐다 강변에 서있는 두 여성을 발견한다. 잠깐 사이에 내린 눈으로 다른 세상으로 변해버린 그 눈 속에 서있는 두 여성에게 다가간  '시인'이라는 노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찬사를 다하는데. 

그리고 다시 돌아와 발견한 두 아들에게 노시인은 뜬금없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두 아들을 불렀다는 생뚱맞은 유언의 현장 분위기를 조성한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사이라지만 새삼스레 이름을 풀어주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던 이 부자들의 사이의 속내는 얼른 보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과 달리 늦은 시각 주변 음식점에서 이루어진 거나한 막걸리 잔의 순배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버린 아버지, 그 아내의 정의로는 '인간적으로 가치가 1도 없다'는 아버지,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아들들은 '아버지'라며 아버지의 호출에 응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는 연배가 되었다. 물론 이혼을 했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는 처지이며, 아버지 때문인지 본인의 경험때문인지 결혼에 대한 회의를 달리할 생각은 없지만.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 책임감 대신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소신으로 대신한다. 결혼과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 대신, 굴레 대신 '자유'를 택했다는, 그 소신으로 택했던 사람과의 시간 역시 결국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으로 족하다는 아버지. 

 

 

제 버릇 개 못준다는 홍상수의 인생론 
어쩐지 죽음을 예감하고 아들들을 불러 한번 보고 싶었던 아버지인 남자는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해묵은 회한 대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예우로 찾아와준 아들들보다, 당장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두 여인에 '미혹'된다. 심지어 아들들을 빨리 보내고 싶을 만큼. 그리고 결국은 아들들을 내버려 두고 두 여인에게 다가가 시인지, 끄적거림인지, 묘사인지 모를 글자들을 늘어놓구 그녀들의 '환심'을 얻으며 함께 자리를 하는 목적을 달성한다. 그녀들이 강변 호텔을 서성이던 그때부터 내내 줄곧 그의 마음을 집요하게 사로잡았던 그 '욕망'의 성취이다. 

영화는 결국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르기는 커녕, 죽는 날까지 가장은 둘째치고, 아버지로서의 존재보다, 숫컷으로서의 욕망이 우선하고 열중했던 한 남자의 생애를 '관조'한다. 일찌기 아내의 정의처럼 사람 고쳐쓸 수 없다더니, 제 버릇 개 못주고 죽는 날까지 그가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여자 주변을 추근거리다' 생을 마감한다. 그래도 사람이 죽는 순간에는 자기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홍상수 감독은 그럴 여지의 싹을 잘라버린다. 자기 세대인지, 아니면 남성일반인지, 그도 아니면 '인간 일반'인지, 저렇게 살다 죽는 게 인간이란다.  묘하게도 바로 그런 죽음의 순간까지 '변하지않는', 아니 '변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감독이 통쾌하게 '관철'하고 나니 뜻밖에 거기서 하나의 철학이 탄생한다. 

물론 그 맞은 편의 철학도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두 여성, 송선미와 김민희가 분한 관계에서 상흔을 입은 두 여성은 끊임없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그 상흔을 보다듬고 부연 설명하고자 애쓴다. 아니 어쩌면 노시인의 뻔뻔한 자기 변명이나, 두 여성의 마치 상처입은 개가 자기 상처를 핥듯 애처로운 자기애나 결국은 '인간'이란 종족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자존'의 다른 표현일 지도.  가장 본능적이고, 혹은 '관계 중심적'이라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기 포장적 속성까지 하얀 눈으로 포장된 세상과 달리 인간들의 모습을 나신처럼 드러낸다. 마치 원효가 해골의 물을 마시고 저잣거리로 나가 득도하듯, 홍상수는 충실하게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그걸 변명하지 않고 줄기차게 말해오다 보니 어느 덧 '통찰력 넘치는 득도'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유망주 감독으로 등장하고, <극장전>, <오 ,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통해 당대성의 한 축을 대변하는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인간, 그 중에서도 남자의, 특히 지식인 남자의 위선을 까발리고 '도덕'의 포장을 벗겨낸 본능에서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모습을 그려내며 권위에 도전했던 젊은 감독은 25년을 바라보는 시간 동안 줄기차게 그 '가감없는 남자'의 모습에 천착해 왔다. 날카로운 비판자였다가, 집요한 스토리텔러였다가, 어느덧 달관한 담론자가 되어버린 홍상수와 그의 영화, 되돌아 보면 언제나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솔직했고, 언제나 주류인 적은 없었지만, 심지어 최근엔 그의 사생활과 겹쳐 더더욱 '아싸'를 넘어 '부도덕'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지만,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 앞에서 뻔뻔하게 자신은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강변하는 노시인처럼, 홍상수와 그의 영화는 '도덕'이 기승을 부릴 수록 '부도덕'이 범람하는 2019년이기에 더더욱 그 단단한 솔직함이 서늘하게까지 느껴지는 삶의 '촌철살인'이다. 

by meditator 2019. 3. 31. 14:03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평범했던 어머니가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아들을 따라 '혁명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며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삶에 지쳐 배웠던 글조차 잊었던 닐로브나, 그녀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정작 그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가 아들이 '헌신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되고 우려와 걱정을 넘어 '동지'가 되어가는 '비등점'을 한 여성이자, 한 사람의 어머니의 관점에서 막심 고리끼는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먹고사니즘'의 승화, 그 과정은 언제나 숭고하지만 그 질적인 비등점을 설명하는 건 막상 쉽지 않다. 캠페인이나 계몽적 선언이나 명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작이 된 것일 터이다.

 

 

<열혈 사제>는 이미 김남길의 몸이 부서져라 작두를 타는 듯한 혼신의 연기로 시청률이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열혈 사제>를 김해일 신부로 분한 김남길만으로 정의내리는 건 섭섭하다. 충분 조건이 되고도 넘치는 많은 이들의 열연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선 <열혈 사제> 그 화려한 조연진들 중에서 이제 김해일 신부와 함께 '어벤져스'로 활약할 캐릭터들의 '비등점'을 다루며 영웅기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구대영, 다시 열혈 형사가 되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모처럼 몸에 맞는 캐릭터로 돌아온 김성균의 구대영 형사이다. 그도 한때는 열혈 형사였다. 하지만 이제 그를 '호구, 모지리, 쫄보, 쪼다' 취급을 한다. 오죽하면 그가 소속된 형사팀이 현장을 급습할 때 그는 홍보 요원이 되어 거리를 헤매게 할까. 그 과정에서 조폭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웃음거리가 되고 그에게 그런 '수모'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나체가 되어 거리를 헤매도, 조폭들에게 얻어터져도 참는다. 왜냐하면 그의 파트너였던 후배 형사가 죽어가며 그에게 어떻게 하든 살아남으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수모를 겪을 수록 그 후배 형사의 아내와 아이들은 안전할 것이라 그는 믿는다. 

그런데 그의 앞에 그의 그런 신념을 흐트러뜨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영준 신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김해일 신부가 그에게 골칫덩어리이다. 팀장은 어수룩하고 만만한 그에게 김해일 신부를 '커버'하라 하지만, 어느 틈에 김해일 신부는 그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라 강권하고 있다. 그 '입장', 매일밤 집에 돌아오면 뒤척이며 모처럼 찾아간 후배의 납골당에서 몸은 편한데 마음이 안편하다던 구대영 형사는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김해일 신부의 '뒷배'가 되고 있다. 황철범에게 맞는 김해일 신부를 위해 119 구급대를 부르는 것에서 부터 바야바 분장을 하고 함께 별장을 찾아든다. 신경 쓰임이, 마음 쓰임으로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김해일 신부의 안위를 걱정하던 그가 김해일 신부가 후배 형사를 죽어가게 했던 러시아 조폭 무리가 연루된 라이징 썬을 향해 돌격하려 하자, 자신이 짊어졌던 짐을 고백하고 예전의 구대영 형사로 돌아가고자 한다. 

 

 

부장검사의 '꼬붕'에서 김해일 신부와의 '공조'로 
이영준 신부님을 존경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그런 종교적 신념이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의 '성공을 향한 광녀 모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영준 신부님의 죽음이 석연치 않았지만 그보다는 이제야 검찰 내에서 윗선의 눈에 들어 양 날개를 달 듯한 자신의 입지가 먼저였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강석태 검사 앞에 무릎을 끓고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해결사가 되는 길을 기꺼이 택하려 했다.

그런데 등장부터 그녀의 남다른 '얼빠' 감각을 홀리더니 그녀의 고해 성사를 거부하는가 하면 대놓고 신자인 그녀의 성당 출입마저 거부하는 김해일 신부에게 그 누구라도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 욕부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제쳐버리던 그녀가 자꾸 머뭇거린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의 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집 탁자 위에 여전히 인자한 웃음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이영준 신부님이 계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그녀에게 암살자를 보냈다.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다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앞에서는 한낮 바람 앞에 촛불 신세였다. 그런데 그 순간 신부님이 나타났다.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한다더니, 이젠 목숨까지 구해줬다. 자신의 뒷배가 된다던 부장 검사가 자신을 고향으로 좌천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도 다르다. 말로는 한껏 으르렁거리지만, 김해일 신부에게 자꾸 믿음이 간다. 말로는 자신을 죽이려던 그 세력이라면 그 누구라도 라며 '복수'를 내세웠다. 그녀가 살아왔던 방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신부님은 그녀의 허를 찌른다. 그녀가 해왔던 비겁함과 오욕의 시간에 대한 '회개'의 한 방식이 아니냐고. 회개면 어떻고, 고해면 어떻고, 혹은 복수면 어떠리. 이제 박경선 검사는 그 누구도 감히 손대려 하지 않은 라이징 썬으로 대변되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뛰어들고자 한다. 그녀에겐 김해일이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오요한과 쏭샥, 사랑보다 더한 커플의 동지애 
시작은 악연이었다. 김해일 신부가 이영준 신부를 대신해 미사를 집도한 날 배가 고파서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먹던 오요한(고규필 분)은 성당에서 쫓겨났다. 배가 고프면 잘 안들린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는 없지만 독실한 신도였던 그는 성당도 날선 훈계를 하는 김해일 신부도 멀리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성정답게 그 누구도 그는 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팠던 천체 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불철주야 어떤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오요한이 밤마다 지키는 편의점을 찾는 태국에서 온 쏭삭마저 그에게 '친구'였다. 서로 남은 삼각 김밥과 식은 군만두를 나누어 주는. 

김해일 신부의 청으로 자신의 장기를 살려 왕맛 푸드의 비밀 장부를 꺼내오는 임무를 함께 하는 작전에서도 몸이 무거운 오요한을 도운 건 쏭삭이었다. 생전 처음 그런 임무를 맡아 '도움'을 실천한 오요한은 생전 처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고백한 것도 쏭삭이었다. 하지만 쏭삭은 그런 오요한의 고백에도, 그로 인해 오요한이 장룡 무리에게 심하게 매타작을 당할 때도 쏭삭은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다. 그저 늘 장룡 무리에게 '간장 공장 공장장은' 하며 조리 돌림을 당해던 그 '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요한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고백에도 쏭삭은 자신이 지켜야 할 태국의 가족이 그를 주저앉혔다. 오요한이 뜨거워져도 쏭삭은 냉정했지만 막상 오요한이 '냉담'해지자, 그런 그에게 찾아와 '우정'의 뜨거운 눈물로 그 마음을 녹여준 건 쏭삭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더는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 고백한다. 

그 '고백의 실천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가슴에 '돼지 새끼'와 '옹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라이징 썬의 알바가 된 두 사람, 그곳을 덮친 김해일 신부와 박경선 검사의 공조팀이 공격을 당하고, 구대영이 쓰러지고, 서승아가 쓰러지고 박경선 검사를 향해 야구 방망이가 날아갈 때 박경선 검사를 흠모하던 오요한이 그 방망이를 자신의 몸으로 막고 쓰러지자, 쏭삭은 그동안 자신을 숨겼던 만만한 동네 배달맨의 꺼풀을 벗어던진다. 왕을 지키던 옹박 저리가라할 고수의 실력으로 말 그대로 일당 백의 무술인으로서의 진정한 풍모를 드러냈다. 

 

 


구대영, 박경선, 오요한, 그리고 쏭삭, 그들 모두는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혹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리고 혹은 순탄한 재외 외국인으로서의 생활을 위해 그들은 '비겁'을 눈감으며 '불의'를 감수했다. 하지만 비록 단단한 무쇠로 만들어진 듯했지만 그래도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김해일 신부의 '열혈' 투신이 그들을 변화시켜 나간다.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을 한결같이 보다듬었던 이영준 신부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자꾸 들쑤셨다.

결국 그들은 한 걸음이 자신을 주저앉혔던 먹고 사니즘의 장막을 걷어제치고 나선다. 박경선이 복수를 핑계로 '누구라도 나와'라며 호기롭게 '주님'못지않다는 검사로서의 본분에 나서고, 구대영이 과거의 짐을 덜고 비로소 형사로서의 거침없이 떨쳐일어서고, 쏭삭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숨겨두었던 무공을 뽐내는 25,6회야 말로 그간 은근히 지펴졌던 <열혈 사제>의 비등점이 끓어오르며 폭발했다. 김해일 신부의 분노와 그 분노로 추동되었던 헌신이 불쏘시개가 되어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열혈 사제>를 끓어 올렸다. 

by meditator 2019. 3. 30. 06:07

김상중, 채시라, 유동근, 안내상, 서이숙, 출연진의 면면만 봐도 <천추태후>, <정도전> 쯤 되는 대하 사극인가 싶다.  그런데 mbc 수목 미니 시리즈다. 거기다 사극이 아니라 '금융권' 이야기를 다루는 일본 만화 리메이크작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건 이런 쟁쟁한 출연진으로 이미 '대박'이라는 이 드라마의 출발이 4.5,6%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심지어 이 '쟁쟁한' 출연진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타 방송사 경쟁작은 외려 시청률이 상승했다. 그러나 예단은 금물이다. 1,2회 아기자기한 농촌 휴먼 스토리인가 드라마는 2회 말 공주 지점이 폐쇄된 후 주변에서 앞날을 걱정해 주던 노대호 공주 지점장이 대한은행 감사로 승진하게 돼 본점으로 들어오며 이야기의 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던 일본의 1990년대 일본의 금융계는 '금융 빅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정이 넘쳐 지역의 대소사까지 챙기던 오오조라 은행의 지조도리 지점장 노자키 슈헤이는 지점 폐쇄를 맞닦뜨리게 된다. 이렇게 <감사역 노자키>는 시작되고, <더 뱅커>는 이런 설정을 공주 지점의 노대호 캐릭터로 그대로 들여온다. 

지방 지점장에서 하루 아침에 감사가 된 '노대호'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출신,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지고, 그가 속한 사격단이 해체되며 그는 '별정직 사원으로 은행에 특채되었다. 운동 선수 출신이라는 우려 속에 뜻밖에도 '주산'부터 배우기 시작해 강삼도 은행장의 기억에 자신을 새겼던 노대호(김상중 분), 그는 '성실하게 충실히' 대한은행맨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은행원으로 살아온 시절이 그에게 보상한 건 가족의 붕괴였다. 리먼 사태의 여파로 그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한 은행'과 거래했던 장인은 그의 눈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낸 아내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그 역시 지방으로 좌천되고, 하지만 그는 '공주'에서도 여전히 충실한 '대한은행맨'으로 살아간다. 

<더 뱅커>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속도전 대신, 1,2회에 걸쳐 진득하게 노대호를 설명한다. 은메달리스트의 사격 실력으로 잡아준 멧돼지, 폐점 위기의 은행도 구하고, 귀농인과 농민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협동 조합 개설 등 흡사 농촌 계몽 드라마라도 보는 듯한 '고지식한' 설정으로 노대호를 설명하는데 공들인다. 거기에 이미 이혼한 사인지만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의 병원비마저 기꺼이 감당하는 책임감까지. 실소를 자아내는 아재 개그는 덤이다. 

 

 

시청률 대신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득하기에 고심한 <더 뱅커>만의 방식은 바로 노대호란 인물이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는 '은행, 그 중에서도 육관식(안내상 분), 도정자(서이숙 분) 등 첨예하게 대립되는 파벌과 그 파벌을 노련하게 운영하며 3번째 행장직을 연임하고 있는 강삼도(유동근 분)의 성채와도 같은 대한 은행 속에서 '강직한 감사'가 될 기초를 쌓아올리는 시간이었다.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의 공주 버전과도 같이 충청도 사투리가 아닐까 싶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노대호 캐릭터를 지켜보는 건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그런 그였기에 3회 초반 감사가 된 그가 비싼 연회로 이루어진 주주들의 모임에서 값비싼 포도주를 힐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또한 감사가 된 후에도 공주 지점의 직원의 곤란한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한은행 옥상에서 돈을 뿌리며 자살을 기도하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끝내 애쓰는 노대호의 캐리터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벌이는 '공명정대하고 원칙적인 감사'의 여정에 믿음이 가게 되는 것이다. 

대한 은행, 그 복마전에 뛰어든 감사 노대호 
그렇다면 노대호에게 '전가보도'가 된 감사란 무엇일까? 주식회사의 감사는 조직의 업무 상황을 감독하고 조사하는 '감사'를 주요한 직무 권한으로 하는 '상설 기관'으로 이를 위해 회계 및 영업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각종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직책이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 회장직을 내려놓은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그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아시아나 항공의  '감사' 보고서였다. 

하지만 꼭 이렇게 순기능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뱅커>에서 보여지듯이 노대호를 감사로 뽑은 사람은 다름아닌 행장 강삼도이다. 강삼도는 첫 출근한 노대호에게 공명정대한 감사 업무를 부탁한다. 이에 노대호는 그 대상이 그 누구라도 괜찮겠느냐며 반문하자 멈칫한다. 이렇게 대주주, 혹은 <더 뱅커>에서처럼 최고 경영자의 손에 의해 뽑힌 '감사'는 자칫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되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더 뱅커>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노대호, 그가 속했던 대한 은행의 공주 지점을 폐점으로 이끈건 바로 육관식 부행장과 정치인간의 불법 비자금 커넥션이었다. 부행장은 호시탐탐 강삼도 행장의 자리를 노리며, 또 도정자 전무와 파벌 싸움 중이다. 말로는 '공명정대'함을 요구했지만 과연 강삼도 행장은 그런 '순수한' 목적만으로 노대호를 발탁했을까? 이렇게 이해가 충돌되는 세력 들 사이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간 '원칙적이며 정의로운 휴머니스트' 노대호의 행보가 바로 <더 뱅커>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 된다. 즉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그 위치가 모호한 '감사'와 '은행'을 배경으로 '공명정대'한 사회를 향한 싸움의 여정 그 자체가 아마도 그 무엇보다 <더 뱅커>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노대호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 바로 '마녀'라 불리는 한수지(채시라 분)의 존재이다. 고지식한 노대호의 오랜 동료로 여상을 나와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부장, 본부장을 거쳐 이제 강삼도에 의해 임원으로 발탁된 한수지, 부행장의 라인이면서, 동시에 강삼도 행장을 존경하는 그녀가 '성공'과 '멋들어진 대한은행원'으로써의 길에서 겪는 딜레마와 선택 역시 노대호와 다른 지점에서 <더 뱅커>의 볼거리가 된다. 

일본 만화 혹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계몽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시작된 <더 뱅커>, 금융이라는 우리 드라마계에서는 생소한 분야를 소개하기 위해 드라마는 노대호란 '인간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유동근, 채시라, 안내상 등 중견 배우들의 굵직굵직하고 힘있는 연기에 기대어 '드라마'를 추동하고자 한다. 하지만 '연기신'이라 불리는 김상중의 캐릭터 설정조차도 아직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또 다른 버건같다거나, 어색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상황, 거기에 요즘은 드라마의 한 축으로 확고해진 ost마저 생뚱맞게 튀어나오고,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마저도 때로는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진행이 과연 애초의 의도대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갈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틀리지 않게 3,4회에 들어서며 그 어색했던 나른한 말투하며 어설픈 아재 개그마저 친숙해 져가는 가운데 역시나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김상중의 발군의 연기와 못지 않은 채시라 등의 기세가 <더 뱅커>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by meditator 2019. 3. 29. 05:17

마르세이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 겨우 스무 살에 그는 선주의 눈에 들어 선장이 되고 약혼녀와의 결혼식을 앞둔 꿈에 부푼 청년이었다. 하지만 가장 행복해야 할 약혼식 장에서 음모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무려 14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서 만난 신부의 도움으로 갖은 지식을 얻고 천신만고 끝에 감옥을 빠져나온 그는 숨겨진 재산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신분 세탁을 한 후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 

이 '복수'를 위해 자신을 지우고 새롭게 거듭난 복수의 화신이 2019년 우리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로 '열일'한다. 자신이 당한 만큼 되갚아 주기 위해 자신을 지우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이 '복수'의 클리셰가 21세기의 봄에 우리 사회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노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로망'으로서일까? 과연 그들이 '복수'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복수를 위해서라면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 <닥터 프리즈너> 나이제 
태강 병원 응급의학센터 나이제(남궁 민 분), 그는 고지식한 의사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만으로 버틴 그곳에서 자신의 월급을 털어 노숙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가난한 농아 부부에게 직원 할인이란 핑계로 도움을 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올곧은 의술은 가난한 농아 부부를 사고로 내몰고도 자신의 동생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하라 길길이 날뛰는 태강 그룹의 아들 이재환(박은석 분)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농아 부부는 골든 타임을 놓쳐 죽음에 이르렀고 자신의 말을 안들었다는 이유로 이재환의 농간에 나이제는 의료 면허가 취소된 채 감옥에서 3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가 3년 후 자신이 머무렀던 서서울 교도소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번에는 죄수가 아니라 교도소 의무 과장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곳엔 곧 그에게서 의사 면허를 뺏고 두 부부와 뱃속에 든 한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던 이재환이 마약 복용 혐의로 수용될 예정이다. 그가 감옥으로 들어오는 날 차량 전복 사고가 나고, 그 현장에 나타난 나이제는 이재환의 어머니가 기획한 형 집행 정지 판정으로 이끌 이재환의 부상을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이재환과 그의 어머니 모이라의 적대적 세력인 이재준(최원영 분)의 신임까지 얻는다.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던 전직 교도소 의무과장 선민식(김병철 분)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며. 죽어가는 이재환에게 이제야 너때문에 죽어가던 이의 마음을 알겠냐고, 그러면서 그를 살린다. 그리고 그냥 죽이는게 아니라, 이재환이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장소 감옥에서 차근차근 그를 괴롭히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수라, 나이제 식의 '눈눈이이'다. 

병원장의 회유와 재벌의 강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돌아섰던 강직하고 고지식했던 의사 나이제,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형집행정지를 바라는 여죄수의 없는 병도 만들어 주고, 자신의 자리에 예정되어 있던 의료과장 후보자를 납치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감옥의 죄수들 재벌이든 그 누구라도 손을 잡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정의로운 의술을 펼치려던 그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술을 잃고, 자신이 보살피던 환자들마저 잃게 되며, 마치 '착한 사람이 돌변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닥터 프리즈너>는 4회에 걸쳐 나이제란 인물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서울 교도소 의무 과장이 되는 과정을 그려내며 분노하지만 차마 복수하지 못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청자들의 통쾌한 탄성을 자아낸다. 

 

 

참회의 길이 복수의 길로 - <열혈 사제> 김해일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신분 세탁이 된 케이스다.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던 김해일(김남일 분)은 위르키스탄 반군들에게 붙잡힌 한국 봉사원들을 구하던 도중 그가 던진 폭탄에 어린이들을 살상하게 된 사건을 겪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해일은 국정원을 나와 이영준 신부의 인도를 받아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전력은 기록 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구담구 카르텔의 이권을 위해 성당을 차지하고자 한 세력들이 이영준 신부를 살해하고, 신부님이 애써 보살폈던 복지원마저 저들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분노 조절 장애 신부님이었던 김해일은 자신의 전력을 활용하여 수사에 돌입한다. 그는 구담구 신부이지만, 본의 아니게 그가 신부라는 존재가 그의 지난 전력을 숨기는 방패가 된다. 자신을 숨긴 채 하지만 가장 예리한 국정원 요원의 자세로 존경했던 신부님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의 분노는 조절 장애가 아니라, 가장 성스러운 수단이 된다. 

신부님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신부님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증인'들을 찾기 위해 국정원 시절 알았는 해커를 다그쳐 그들이 숨어있는 아지트를 터는가 하면, 국정원 시절의 수사 능력으로 구담구 카르텔의 약한 고리였던 복지원 급식 업체 왕맛푸드의 비밀 장부를 입수하고, 국정원 요원의 실력으로 그를 막아섰던 공무원과 황철범의 똘마니들을 압도한다.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한 구담구 쪽에서는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지만 기록에서 삭제된 그의 과거는 오리무중이다. 이제 사건 당일 황철범의 별장에 이영준 신부님이 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해일은 신부복을 벗는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오게 될 일이 없기를 기도해 왔다'던 자신이 국정원 시절 장비들로 무장한 채 바이크를 타고 결전의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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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딜레마 - <바벨> 차우혁
어린 그의 앞에 다정했던 아버지는 차가운 시체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찾아온 거산 회장이 전해준 무언가를 보더니 다음 날 아침 목을 맸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차우혁(박시후 분)은 '복수'로 돌렸다. 거산을 쓰러뜨리기 위해 기자가 되었다. 거산의 비리를 파헤쳤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신문사의 가장 큰 광고주였던 거산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연예부 좌천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거산가 둘째 아들과 여배우 한정원의 밀회를 목격했다. 연예부 기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형태로 '스폰서' 운운하며 기사를 써제꼈다. 데스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리고 그날 신문사에도 사표를 던졌다. 거산을 무너뜨릴 수 없는 도구가 되지 않는 기자직에 미련이 없었다. 

대신 검사가 되었다. 서부 지검 칼잡이가 되었고, 인도적인 정보를 통해 거산가의 둘째 딸 태유라의 마음을 샀다. 덕분에 거산 태회장의 눈에 들어 거산 변호사가 될 기회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헬기 사고로 태회장이 사경을 헤매고, 둘째 아들인 태민호가 살해당했다. 그 수사가 차우혁에게 배당됐다. 거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자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려던 그의 오랜 '복수'의 집념이 스스로 파열음을 낸 거산 덕에 탄탄대로를 걸을 일만 남은 듯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태민호의 아내다. 그가 살아돌아온 태민호로 인해 오열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맞추었던. 

<바벨>의 서사는 여느 복수극과 톤을 달리한다.  드라마는 부도덕한 재벌의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한 복수극을 향해 질주하지만, 그 질주의 속도를 제어하는 건 뜻밖에도 '복수의 딜레마'이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거산이라 생각했던 차우혁은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기자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방법들이 이제 그를 옭죈다. 자신의 기사로 인해 태민호와 결혼했던 한정원의 불행한 처지를 알게된 차우혁은 그만 마음이 흔들린다. 자신의 서류에 '접근하기 용이할 것'이라던 그 대상 한정원에게 '복수의 대상' 이상으로 마음을 줘 버린 것, 스스로 '죄책감인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말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재벌 가의 희생양이 되고만 한정원을 두고 볼 수 없다.

자신의 복수가 낳은 도덕적 '딜레마'는 '사랑'으로 치환되어 차우혁을 고뇌에 빠뜨린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했던 행위들이 낳은 불행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사랑'을 매개로 논한다. 그런 차우혁의 맞은 편에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사랑하는 이에게 마저 칼을 꼿는 신현숙(김혜숙 분)이 있다. 드라마는 그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사랑의 도덕적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그가 달려왔던 복수가 흔들린다. 아버지가 했던 사업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는 태회장과 신여사와의 치정의 피해자였던 것, 과연 그럼에도 거산을 향해 계속 칼을 겨누어야 할까? 이렇게 <바벨>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부도덕한' 이슈로 문제가 되고 있는 tvchosun을 통해 '의도와 행위의 도덕적 딜레마'를 논한다. 

by meditator 2019. 3. 22. 16:45

스페인이 축구의 나라라는 건 이른바 '축알못'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스페인에서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외인 구단'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실제 이루어 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페인 7부 리그 소속인 꿈 fc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기한 스페인의 외인구단을 이영표 선수가 소개한다. 

7부 리그? 3부 리그까지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한국 축구가 인프라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7부 리그라니, 하지만 축구 선수만 80만 명 우리나라의 40배인 스페인은 7부 리그까지 지역 주민의 호응을 받으며 활성화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축구'하면 유명한 지역이 카스티야 라만차, 그곳의 작은 도시 이에스까스의 7부 리그 팀 꿈 fc는 현재 7부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꿈을 찾아 스페인으로 온 한국인들 
그런데 이 이에스까스의 Qum(꿈) fc의 구성이 선수 19면 전원이 한국인이다. 감독과 코치진만 스페인이다.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운동장, 페드로 벨라스코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의 강점이 한국어, 상대가 못알아 들으니 시합 도중 얼마든지 서로 소통하라고. 이렇듯 전원 한국인인 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따라 만리타국 스페인까지 왔다. 

2017년 여름 올라온 sns 공지, '꿈을 이루고 싶은 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분'이란 문구 하나로 모여든 선수들, 구혁균 선수는 치킨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다 왔다. 고현철 선수는 브라질 유소년 리그 출신이다. 21살의 원승현은 신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과 꿈 fc의 두 길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26살의 구성은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이 없다. 25살의 허준호는 프로로 활동했지만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을 법한 사람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거미줄을 뚫기조차 힘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인정해준 이역만리 스페인 이에스까스로 날아와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무모한 도전을 벌인 사람은 누굴까?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 한 켠의 작은 방, 태극기가 덩그러니 달린 그곳에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이는 46살의 김대호 씨, 그는 폭발물 전문가로 한때 토목 현장을 누볐던 사람이다. 축구라고는 남들 다 그렇듯이 국가 대표 경기가 보던, 알고 있는 축구 상식이라 봐야 '오프 사이드' 정도였던 그가 이 구단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스페인 유소년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들, 스페인에서는 18세 이하 미성년의 경우 스페인의 체류 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케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회계사인 아내 대신 아들을 케어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김대호 씨는, 아들과 같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에 왔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의 적응 문제로 자신의 꿈조차 접게 되는 사례를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지내면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을까라고 해법을 떠올리게 된 김대오씨, 딸의 평가처럼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무모했던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낯선 스페인 땅에 한국인 외인 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의 노후 자금은 이제 선수들의 용돈과 숙식비, 훈련비가 되고 있는 중이다. 

 

 

전설의 시작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캐치프레이드를 내건 꿈fc는 한국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19명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왔고 함께 합숙하며 지금 그들에게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얼차려 등 군기 잡기에 익숙했던 선수들, 납조끼를 입고 새벽부터 구보를 했던 선수들, 중앙 수비수로 칭찬보다는 욕 먹는 게 일상이었더 선수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던 선수들은, 스페인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축구는 선수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구랑 공도 선수들도 챙겨주며 선수들을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주는  감독과 코치진의 한국과는 다른 '케어'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그저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스페인 어학원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일과다, 스페인 유소년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축구를 매개로 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접하기도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맘껏 드리블하다.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으면 된다. 한 골을 먹으면 한 골을 넣으면 된다'는 축구란 꿈을 찾아온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축구만을 바라보는 꿈은 위험하다며 인생에는 사랑도, 가족도 여러 가지 다른 꿈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새로운 사고 방식들이 그간 이들을 짖눌렀던 '축구', 혹은 '꿈'에 대한 강압적 의식을 해제하자 이들은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나날이 승승장구, 7부 리그 기간 동안 안타깝게도 마지막 경기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스페인의 공포의 외인 구단이다. 아직도 인조 잔디 구장용 축구화가 따로 없어 가혹하게 실격을 당하지만 원정 경기의 일방적 홈팀 응원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7부 리그 1,2위를 다투고 6부 리그 승격을 결정지었다. 4부 리그의 팀들이 '스타웃'할 인재를 물색하는 팀, 이제는 이에스까스 사람 누구나 알아보고 격려 해주는 팀, '예의 바르다'며 선수도 동네 사람들도 칭찬해 주는 팀, 자칭 '국뽕' 김대호 구단주의 말처럼 이곳 스페인의 한국 대표팀인 이들은 현재 승승장구, 4부 리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페인 국왕 컵 참가를 팀의 목표가 어쩌면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뛰는 19명 선수들이 일궈내고 있는 '기적'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꿈이 여의치 않는가를 점검해 주는 시간이 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돈과 학벌과 지연과 인맥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저 단순한 문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작은 도시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9. 3. 19. 14:28

1945년 해방, 1960년 6.25, 1980년 5.18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비극적 역사들이다. 하지만 2019년에 이른 우리는 여전히 저 과거 사건들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과거사 해결'의 숙제를 안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해석 이전에 , 그 해석에 따른 해결과 단죄 이전에, 상식적인 반성과 결자해지가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80이 넘은 과거사의 짐을 안고 있는 전직 대통령은, 고령의 나이와 알츠하이머란 병명을 핑계로 여전히 '과거'를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그뿐인가. 우리 현대사를 이끌었던 주역들 중 상당수는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 저 전직 대통령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갖은 핑계를 대며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몽니'를 부리며 '아전인수'격으로 오리발을 내밀거나, 배짱을 부린다.

그런 '선대'들의 부도덕하고 비겁한 태도들이 줄곧 우리 사회가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서는데 걸림돌이 되고 우리를 과거에 묶어 두고 있다. 바로 그런 '선대'들에게 보여주고픈 영화가 있다. 90살을 먹은 크린트이스트우드가 굽은 등과 휘청휘청한 걸음걸이로 하지만 강단있게 보여준 그가 살아온 당대의 삶에 대한 단호한 마침표, <라스트 미션>이다. 

 

 

87세 노인의 라스트 미션
그의 나이 87세, 얼 스톤은 파산을 했다. 평생 집밖으로 떠돌며 말 그대로 꽃에 미쳐 살았다. 아니 꽃을 핑계로 가족 대신 자신의 명망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환호에 정신이 팔려 살았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그가 무시했던 인터넷 거래를 융성하게 했고, 더 이상 그의 농장은 건재할 수 없었다. 압류된 농장에서 자신의 물건을 오래된 트럭에 싣고 이제야 가족들을 찾아나선 얼, 하지만 그가 찾아간 그 날이 손녀 딸의 약혼식 날이었다는 것조차 그는 몰랐다. 얼은 평생을 가족에게 그렇게 살았다. 딸의 결혼식도, 가족들에게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는 언제나 시기를 놓쳤다. 그에겐 그보다 더 그를 미혹시키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뒤늦게 짐을 싣고 돌아온 그를 아내와 딸은 외면한다. 

추레하게 뒤돌아 서는 그에게 다가선 남자, 그는 평생 신호 위반 딱지 한번 받은 적 없다는 얼에게 기묘한 제안을 한다. 바로 의문의 물건을 옮겨주기만 하면 되는 것. 오갈 곳조차 없던 그에게 단 한 번이었던 제안은, 곧 87세 그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를 마법사 지니와 같은 것이 된다. 그만큼이나 오래된 트럭은 곧 최신식 사양의 트럭이 되었고, 그의 트럭 트렁크는 익숙하게 물건(?)을 실어나르기 시작한다.

 

 

그가 잠시 차를 비운 사이 두고 간 두툼한 봉투로, 그는 화재로 전소한 재향 군인회를 복원하고, 그곳에서 파티를 열고, 손녀 딸의 미용학원 비용을 대는 등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87세의 평생 동안 그랬듯 여자와, 술과 , 파티와, 사람들로 다시 그의 삶을 북적이게 만든다. 그에게 물건을 배달하도록 만들었던 마약 거래상의 우두머리의 파티도 그 중 하나다. 마약 카르텔의 우두머리에서 처음엔 총을 들이밀고 윽박지르던 조직원, 그리고 그가 다시 살려낸 재향 군인회 동료들, 그리고 그가 만난 여자들까지 얼을 다시 반긴다. 

그러던 그에게 위기가 닥쳐온다. 노익장의 마약 배달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종종 그가 벌이는 일탈조차 저들의 눈을 피하기에 외려 적절한 파열음이라 생각했던 마약 조직의 보스가 처단되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그룹은 얼에게 오직 '복종'과 '규율'을 강요한다. 그렇게 그의 일이 그에게 가져온 위기의 순간 울린 전화, 평생 그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던 아내, 이제 조금만 더 그가 번 돈으로 환심을 사면 그에게 다시 마음을 열 것도 같던 아내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예정된 마약 배달이냐, 가족이냐의 기로에서 그는 지금처럼 그래왔듯이, '지금은 일이 있어서 안된다'는 말을 전하고, 그 말에 유일하게 그의 편이었던 손녀 딸마저 그에게 미처 못하고 가슴에 담아왔던 말을 퍼붓는다. 

조금 후 가족 앞에 나타난 얼, 이번에는 늦지 않고 아내의 마지막 길을 챙긴다. 그 덕에 딸도 마음을 연다. 그리고 뒤늦게 돌아가 잔뜩 얻어터진 그의 배달 길은 그만 마지막 미션이 되고 만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아버지 
재판정에 선 얼, 나이 많은 그를 애써 변호하려던 변호사의 말을 막고 'guilty'라 말한다. 체포되는 순간, 얼은 말한다. 자신이 돈으로 많은 것들 되돌리려 했지만, 시간만은 그럴 수 없었다고. 흡사 이 장면은 스티브 맥퀸의 명작 <빠삐용>을 연상케 한다. 이유도 없이 수용소에 갇혀 자유를 향해 수도 없이 탈옥을 감행하던 빠삐용이 영화 엔딩에서야 알게 된 죄, 바로 시간을 낭비한 죄. 그 장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버전이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얼은 마약 배달로 돈을 벌어 많은 것을 되돌렸다. 트럭을 사고, 압류된 농장두 풀고, 아마도 재판 후 손녀 딸의 말을 빌면 농장도 다시 예전 처럼 되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도 돈을 보내주고, 하지만 그가 마약 배달 여정 중에 만난 수사관과 마약 카르텔 동료에게 충고를 하듯, 정작 그 자신이 잘못된 인생에서 다른 선택을 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돈이 그의 수중에 들어와서도 그가 돌려놓으려 했던 시간 속에 당장의 파티걸보다 여전히 가족은 먼 미래의 몫처럼 보인다. 그의 말처럼 그쪽 세대, 즉 얼의 세대 남자들이 살아왔던 방식에서 얼 역시 쉽게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얼이 스스로에게 내린 'guilty'는 바로 이런 자신의 세대에 대한 '판결'이다. 일에 정신이 팔려 한 평생 밖으로 떠돌던 아버지, 그리고 뒤늦게 그걸 '부당한 방법'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을 달리하지 못한 책 아내의 부음 즈음에서야 가족에게 돌아간 아버지, 그 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얼은 뒤늦었지만 용기를 낸다. 잘못된 것이라고. 

영화는 그가 돈으로 사서 복구한 농장의 아름드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체포의 순간, 돈으로 시간을 다시 살 수 없다는 그의 회한과 일맥상통한다. 제 아무리 그 농장이 화려하다 한들 마약 배달로 산 농장이다.  그가 돈으로 그가 속했던 재향 군인회를 되살렸다 한들, 이제 그곳을 채울 동료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 마지막을 함께 한 아내는 그를 용서했다. 그렇게 뒤늦게서야 나타난 그였지만, 아내는, 딸의 소망은 그렇게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마저 용서할 만큼 소박했다. 하지만 그는 그 소박한 가족의 꿈을 평생 외면했다. 

 

 

90세의 클린트 이스트 우드 감독이 그 자신이 등이 굽고 걸음걸이마저 휘처휘청한 노인이 되어 말하고자 한 <라스트 미션>은 마약 배달을 해서라도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 했던 노인의 노력이었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단호하게 말했던 'guilty' 아니었을까. 노익장의 감독이 말한 건 자신의 세대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단정이자, 속죄이다. 뒤늦게 부도덕한 방식으로 라도 되돌릴 수 없었던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자신의 동상을 만들려 노력한 대신에 클린스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기꺼이 자신이 살아온 세대적 삶에 대해 통한의 반성을 했다면 오늘의 우리 역사도 조금은 편안해 지지 않았을까. 

기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들어간 감옥, 그는 거기서 편안하게 웃으며 꽃을 가꾼다. 마치 얼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꽃은 어디든 핀다. 농장이든, 감옥 안이든, 어디든 무엇이 중요하랴, 꽃을 한평생 좋아했던 내가 꽃을 가꿀 수 있으면 된 거지. 마치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엇이 중한디?'랄까. 

by meditator 2019. 3. 18. 05:12

3.1운동,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독립 운동에 대한 조명과 환기가 융성하다. 이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고 이 영화들이 박스 오피스의 상위권을 점유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다양한 사례의 다큐들이 방영되었다. kbs에서는 비록 5분 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 유공자들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물들이 알리는 100부작의 야심찬 기획을 실행 중이다. 이렇게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독립운동', 과연 이런 행사를 넘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ebs 다큐 시선- 100년만에 부르는 노래>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에
숨어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에 소식을 네가 아느냐
여기서 저기까지 몇 리 되는지
아차차 가슴 답답 이내 신세야
 
만주 딸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해외에 널려있는 백두산 하에
나의 일가 동포형제 저곳 있건만
나는 소식 몰라 답답하구나
 
만주 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셔라 왜놈들 죽여라.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정작 안중근 의사가 만드셔서 회자되어 일제가 치안법 위반의 금지곡으로 통제했다던 노래 <옥중가>, 당시 사람들이 안의사를 기리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 감옥에 갇힌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전투적 항일 의지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는 4분의 2박자의 민요풍의 씩씩한 리듬을 가졌다. 

 

 

항일 음악 330곡, 그러나 교과서엔 단 한 곡
이 노래가 실린 곳은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그 시작은 2018년에 개최된 <2018 항일 음악회-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독립군 아리랑>에서 였다. 이 음악회에 참석하게 된 <다큐 시선>의 제작진들은 왜 이런 노래들을 몰랐을까 싶게 음악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항일 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평생에 걸쳐 항일 음악을 발굴하다 돌아가신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안중근 의사가 만드신 <옥중가>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제작진의 탐구는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배우면서 자라는가로 귀결된다. 과연 이런 항일 음악들이 우리 교과서에는 있는가라는 의구심에서이다. 

음악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던 교원대 민경훈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찾아본 2009년, 2015년 개정 음악 교과서,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제명의 '그집앞', '희망의 나라로'가 실려있다. 최근 3.1운동 기념식장은 물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불려 논란이 된 대표적 친일 음악 '희망의 나라로', 하지만 기념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듯,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 밝고 경쾌한 노래가 일제 말기 친일에 앞장섰던 현제명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려지는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와 비슷한 정서의 노래(민족 문제 연구소)라는 것을 알 수 없다. 

현제명만이 아니다. 홍난파, 이흥렬, 조두남 등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곡이 9곡이나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실려있다. 아니 친일 음악가의 곡만이 아니다. 다양한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의 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 거기에 더해 조용필의 곡도, 장범준의 '벚꽃 엔딩' 등 유행가까지 풍성하게 실린 교과서, 하지만, 그런 교과서에 항일 음악은 2009, 2015년 음악 교과서에 '독립군가' 등 단 2곡 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과서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는 현 '검인정' 교과서의 딜레마를 든다. 즉 교과서에 실리는 음악에 대해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지침, 혹은 통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한계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항일 음악보다는 친일 음악을 즐겨이, 심지어 국가적 행사에서도 듣고 연주하고 부르는 현실에 놓여있다. 

 

 

애국가 대신 국기가? 
멀리 갈 것이 뭐 있는가. 전국민이 제창하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에, 최근 나치 협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이런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라는 딜레마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군 제 2지대에서 불려졌던 '국기가'가 눈길을 끈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삼천만의 정성 쇠같이 뭉쳐
맹세하네 굳게 태극기 앞에 
빛내려고 길게 배달의 역사  -국기가, 한형석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은 한형석 선생이다. 독립군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신화 예술대를 졸업하신 선생은 전장의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셨다. 1940년 당시의 전시적 상황에 대한 현실을 고발하고 공동체적 결의를 다지고자 우리나라 최고 가극인 '아리랑'을 만드셨던 분, 연기에서 부터 감독까지 1인 7역을 두루 해내시며 공연했던 가극 아리랑은 20여회의 공연으로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수익금 4100원을 모금했고, 이는 광복군 등의 군자금으로 쓰였다. 한형석 선생이 만드신 곡들은 '우리는 대한의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80년대 운동가로도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항일 음악 중 유일하게 2003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압록강 독립군가를 비롯하여, '여명의 노래' 등 다수의 곡들이 있다. 

그러나 한형석 선생 같은 분의 항일 음악이 지금 우리 곁에서 즐겨이 불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저 현재의 교과서를 만드는 체제의 맹점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광복군 제 7대에 소속 oss훈련까지 받았던 항일 운동가였지만,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 해방된 고국에서 환영은 커녕,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음악을 묻고, 중국어를 가르치며 전쟁 고아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나머지 일생을 바치셨다. 심지어 '한유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그의 기록은 묻혀져 중국의 한 교수가 그의 음악과 그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뒤늦게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 역사의 격동 속에 사라져간 항일 음악가는 또 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 선생이 그 분이다. 팔로군 행진곡으로 알려진 중국의 두 번째 국가와도 같은 곡을 만든 정율성 선생은 3대 중국 혁명 음악가이자, 중국의 100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곧 사상으로 인해 얼룩진 우리 해방 후 역사의 비극 그 자체이다. 4남매가 모두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집안, 그 중에서도 좌파 계열의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선생은 마오쩌뚱의 군대에서 활약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연안송','중국 청년 격동가' 등 항일 음악을 만드셨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하여 조용히 살아가셨던 한형석 선생과 달리, 그가 소속된 연안파 동지들과 북한으로 넘어가셨던 선생, 하지만 연안파는 곧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숙청되고 이를 피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셨지만 선생을 기다렸던 건 '문화 혁명', 결국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던 선생은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운 강남(강남제비) 가사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래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그리운 강남, 안기영 


또 다른 선택도 있다. 일제 시대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일제 말기 일본의 극심해 지는 친일 강권에 친일을 피해 절필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칩거하셨던 '그리운 강남'의 안기영 선생의 노래는 장사익 씨의 '아리랑'으로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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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가자/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로/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원쑤를 소탕하러 나가자//(후렴)총칼을 메고 결전의 길로/다 앞으로 동지들아/독립의 기발은 우리 앞에 날린다/다 앞으로 동무들아//무거운 쇠줄을 풀어헤치고/뼈속에 사무친 분을 풀자/삼천만 동포여 모두 뭉치자/승리는 우리를 재촉한다//(후렴).'


조선 의용대의 대표 군가였던 '최후의 결전'은 어떤가? 의열단에 이어 조선 의용대에게 활약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돌아가신 윤세주 열사가 폴란드 민요 바르샤마 노래에 가사를 입힌 곡이다. 

우리가 몰랐던 항일 음악들, 평생에 걸쳐, 혹은 자신의 천직을 때려치우고서까지 지키고 발굴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갔던 항일 음악들, 이제 3.1운동의 100주년, 우리가 할 일은 이 음악들이 다시 회자되고, 불리울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음악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 장범준과 함께 이런 음악들도 '버젓이' 실릴 수 있는 음악 교과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9. 3. 15. 13:18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최강 빌런 타노스의 등장으로 지구의 반이 사라졌다. 어벤져스의 전사들 역시 반이 사라졌다. 모두가 힘을 합쳤지만 인피니티 스톤을 끌어 모은 그의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끓었다. 과연, 지구의 운명은, 아니 전 우주의 운명은 이대로 타노스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인가? 사라지기 전 닉 퓨리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낸다. 그 누군가가 바로 캡틴 마블, <캡틴 마블>은 바로 왜 지구의 가장 긴급한 위기에 캡틴 마블에게 연락을 보내게 되었는가 그 '이유의 역사'를 그린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외계인? 
크리족의 전사로 살아가는 비어스(브릿 라슨 분), 때때로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이 그녀를 잠못이루게 하지만 크리족 최강 부대 스타포스의 일원으로 나서기를 주저치 않는다. 수백만 년 째 크리 족과 전투를 벌여왔던 스크럴 족들 가운데 암약했던 스파이를 구출하기 위해 나선 작전, 리더인 욘 로그(쥬드 로 분)의 지침과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비어스는 자신의 본능적 판단에 따라 스크럴과 대치하다 그만 뜻밖의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의 시작은 우주 최강 크리족의 전사가 되기에는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는 존재, 하지만 전투에 있어 그 누구보다 열혈적인 전사 비어스로 부터 시작된다. 과연 비어스는 문제가 있는 것일까? 

외계인으로 도착한 행성, 알고보면 지구에서 그녀는 스크럴을 쫓는 과정에서, 아니 늘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95년의 닉 퓨리를 만나게 된다. 최강 크리족의 전사,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이래 비어스라는 크리족의 전사를 '충동'하는 건 그녀의 기억과 즉각적인 판단이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대해 크리족은 전사로서의 능력이 미흡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녀가 자신의 귀 뒤에 붙여진 크리족의 낙인을 떼어버리듯 그 '미흡'한 그녀의 특징은 바로 행성 지구에 사는 '인간'의 특성이다.

크리족은 그녀를 판단할 때 그녀가 여자이냐, 남자이냐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전사'로서의 적절함 여부뿐이다. 선배이자 리더인 욘 역시 마찬가지다. 즉, 충동적인 듯하지만 알고보면 우리가 흔히 '인간적'이라 하는 그 '특성'으로 비어스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을 찾아가고 미 공군 기지에 먼지 쌓인 기록물 속에서 공군 장교 캐럴 댄버스를 찾아낸다. 

 

 

비행은 평등하다, 하지만 
비어스가 찾아낸 과거의 자신은 바로 미 공군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이다. 하지만 그녀가 공군에 소속되어 있던 1989년 아직 미 공군에는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없었다. 이제는 준장이 된 지니 레빗, 그녀가 온갖 차별과 편견과 제약을 뚫고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이 1993년이니 당연히 1989년 캐럴에게 그런 기회가 있을 리가 없다. 

여성이 전투기를 몰았던 것이 지니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의 여성 독립 운동가 권기옥 열사는 조선 총독부와 천황궁을 폭격하겠다며 김구 선생께 비행기를 달라던 최초의 여류 비행사였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여성 전투 비행사들은 목재로 만들어진 동체 위에 캔버스 천을 두른 비행기를 몰고 전장에 나섰다. 미국 역시 여성 조종사들이 활약했다. 

그러나 여성 조종사들이 한 몫을 했다고 해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소련의 여 조종사들은 그녀들이 꼼꼼하고 철저하게 일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정비한 비행기에 대해 남성들은 탐탁치 않아했다. 심지어 그녀들이 폭탄을 싣고 나선 비행기는 연습용, 낮이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이 비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들은 '밤의 마녀들'이 되어야 했고, '마녀들'은 쉬이 돌아오지 못했다. 참전한 전쟁에서 자신의 몫을 찾으려 했던 미국의 여성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건 보다 많은 남성들이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후방에서 전투기 이동을 돕는 정도였다. 

2차 대전 당시 열악했던 여성 조종사의 지위는 시간이 흘러 달라졌을까? 1993년에서야 지니 레빗이 사상 최초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는 사실, 아니 1993년만이 안다. 우리나라에 도입한 f-35기종에서는 2015년에서야 첫 여성 조종사가 탄생했다. f-35의 첫 여성 조종사가 된 크리스틴 마우 중령의  '비행은 평등하다. 비행기는 조종사의 성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던 소회는 몇 십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은 '기회의 평등', 그 멀고도 멀었던 길을 설명한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에야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캡틴 마블>은 바로 이런 아직까지도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건 특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흑인의 신화적 서사를 그린 <블랙 팬서>처럼, 또 하나의 '인간 종족'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인간'이다. 크리 족에 비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비어스, 하지만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 속 1989년의 캐럴 댄버스는 같은 '인간 종족' 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그녀의 꿈조차 살리지 못한 채 웃음거리가 되고, 배척 당했다.

가장 가난한 대륙의 흑인 국가가 세계 최강의 지하 자원을 활용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되듯이, 1989년의 비행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캐롤은 크리족 '마벨'이었던 로슨 박사의 위험한 비행에 조종간을 잡게 됨으로써 우주 최강의 전사로 거듭난다. 더 이상 전투기가 필요없는 전사, 그녀를 제약했던 크리 족의 딱지마저 떼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힘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크리족 전사를 넘어 우주 최강의 '캡틴 마블'이 된다. 마치 흑인 부족들의 와인 블랙 팬서가 어벤제스 중 최강 전사가 되는 것과 같은 마블 환타지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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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막강 전사 캡틴 마블 
동시에 그렇게 지구에서 기회를 잃었던 여성 캐롤이 크리족 마벨 로슨 박사를 통해 체득한 우주의 힘을 통해 캡틴 마블의 시작이 되고 동시에 우주의 공격에 맞선 쉴드의 시초가 된다. 그렇게 <캡틴 마블>은 마치 <스타워즈>4,5,6 편 이후에 <에피소드1>을 통해 별들의 전쟁과 그 속에 얽힌 인연, 혹은 악연이 시작을 다루듯, 이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통해 마치 노아의 홍수처럼 세계의 반과, 영웅들의 반을 휩쓸어 버리고 나서야 에덴 동산의 전설을 이야기하듯, 젊은 날의 퓨리가 만난 캡틴 마블을 통해 <어벤져스> 그 유래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동등한 인간으로 자신의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한 여성, 그 여성의 '인간적인 노력'의 성향이 외계의 힘을 얻어 극강의 전사로 거듭한 <캡틴 마블>의 이야기는 그간 마블 시리즈의 히어로들처럼 전형적 성장 서사의 원형을 가진다. 그녀를 인정했던 로슨 박사의 죽음, 또한 그녀를 품었던 크리 족의 정체를 알고 거침없이 크리족을 배척하며, 자신의 사부인 욘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로서의 캡틴 마블은 거침없다.

하지만, 그런 거침없음은 동시에 캡틴 마블의 '인간적 매력'을 반감시킨다. 그간 대부분의 마블의 히어로들이 지난한 개인적 서사를 통해 고통받고 단련받으며 하나의 전설적 존재로 성장해 왔던 것과 달리, 캡틴 마블의 서사는 당대의 '페미니즘'이라는 추세의 무게 때문일까, 거침없는 용감함에 방점을 찍는다. 그녀의 과거 동료로 등장하는 마리아 램보와 그녀의 딸 캐릭터 역시 전형적이다. 그런 것이 최강의 히어로의 장점임과 동시에,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단점이 되고 만다. 또한 그녀의 거침없는 질주 과정에서 정작 그녀와 애증의 갈등을 일으켜야 할 욘의 캐릭터를 결국 '찌질하다 싶을'만한 결론으로 이끌면서 <캡틴 마블> 자체의 갈등의 깊이를 얕게 만들어 버리는 것, 이건 캡틴의 막강한 힘으로 인해 싱겁게 끝나버린 전투와 함께 역시 마블 시리즈로서 <캡틴 마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9. 3. 12. 23:54

대한민국 입시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하지만 이 드라마의 효과는 아이를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거기서 등장한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우리의 학부모들, 그 현실은 이제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이어 아빠들의 '바짓바람'을 불러온다. 
3월 10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바람'에 대해 다뤄본다. 

 

 

아빠들의 바짓바람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현창 씨,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자녀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잠시 그 역시 고된 치과 일을 마치고 온 몸을 이끌고 아이 방 책상 맞은 편에 앉는다. 그동안 내주었던 중국어 과제를 시험하는 아빠, 곧잘 대답하는 큰 아이,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미소는 역시나 아빠가 내준 일본어를 읽지도 못하는 작은 아들로 인해 곧 지워진다. 

한때는 아이의 학업에서 아빠가 할 일은 '무관심'이란 정의가 유행했었다. 엄마가 맡아서 하는 아이의 공부, 그저 아빠는 atm 노릇만 잘 하며, 가급적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잔소리는 커녕 말도 되도록이면 적게 시키는 것이 아빠 노릇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웬걸 아빠들이 달라졌다. 입시 교육 설명회에 어떤 엄마들보다 눈을 빛내며 간간히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열성적으로 집중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찾는게 더는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와 함께 마주 앉아서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걸 넘어, 김주영 쓰앵님처럼 아이의 학업 스케줄을 관리한다. 심지어 퇴근 후 한 잔 술은 옛 말, 아이들 공부에 관심있는 아빠들끼리 차를 마시며 정보를 나눈다. 

한때 유행하던 스칸디 대디, 과거의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을 지양하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성, 책임, 정서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했던 새로운 교육 양식의 아버지 유형 들, 가족 중심의 문화가 대두되며 어릴 적 아이와 놀아주고 캠핑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입시 교육에 동참하게 되는데,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입시 교육에 총력을 다하는 우리 나라 가족의 특성상 아이에 관심을 가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아이의 입시 교육 전선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아빠들이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 방향을 강력하게 추종하게 되면서 이제 '바짓 바람' 아빠들이 되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를 살아가는 아빠들
그런 '바짓 바람 아빠'들의 <스카이 캐슬> 시청 소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드라마 속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거침없이 '차민혁 교수'를 꼽는다. 세상을 계급에 따라 나뉘는 피라미드로 표현한 그의 정의에 공감한다. 아빠들이 살아본 세상은 바로 차교수의 정의 그대로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란다. 그러니, 차교수처럼 아이들에게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차지하도록 독려할 수 밖에 없다고. 

사회에 잘 적응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아빠, 지금 고생이 그래도 적게 고생하는 거라 생각하는 아빠,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사는게 벼랑 끝에 선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아빠, 사회 생활을 해보니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 주의를 '절감'하고 보니 그 학벌 에스컬레이션의 보증 수표를 주고싶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아빠.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사는 삶, 아이들에게만은 이 고단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아빠. 

박재원 교육 전문가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 바람의 근원을 그저 계층 상승 욕구가 아니라 계층 하강 공포, 낙오에 대한 불안감에서 찾는다. 각자가 느꼈던 낙오 공포에 대한 체감도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매달리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낙오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그 '안정된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올려놓기 위해 아빠들은 어떤 사다리라도 구해주고픈 마음이 '바짓 바람'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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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쉽지만 그 어려운 말
하지만 아빠 맘처럼 될까? 쉽지 않다. 김현창 씨의 경우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미 좀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시간 붙들고 앉아 공부를 시킨다. 학습 스케줄을 짠다 1년 정도 아빠 스케줄 대로 해봤는데 외려 아이들과의 갈등만 깊어진 듯하다. 아빠는 공부를 시킨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안한다고 화만 내는 아빠로 받아들인다. 엄마는 아이들이 충분히 열심히 한다지만 아빠 눈에는 영 아니다. 그러니 자꾸 잔소리만 늘어나고. 아이들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할 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고, 바짓바람의 딜레마다. 

혹시 아빠가 공부하는 노하우를 잘 몰라서일까? 두 아이를 각각 포항 공대와 서울대를 보낸 아빠 배은철씨, 초등 3,4학년 때부터 아빠 은행을 만들어 은행의 역할과 복리 계산법을 가르치는 등 남달랐던 공부 비법을 가진 아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건 '공부'보다 중요한 게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 그리고 아이 스스로 자기 통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못하게 하기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유도해줘 그걸로 영재고를 갈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학교를 가기 싫다는 아이를 무조건 존중해 스스로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를 찾도록 만들었다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공부 잘했니 대신 뭐하고 놀았니?를 물었다던 아빠?

이 아빠의 경우는 특별한 것일까? 160명의 서울대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를 해봤다. 10명의 학생 중 8명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갈등을 겪지 않고 심리적 안정을 줬다고 답했다. 또 77.2%가 성적과 입시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는 태도롤 일관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빠는 '자상하고, 수시로 아재 개그를 하며 아이들을 웃기려고 노력했으며,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들이 애초에 공부를 잘해서 였을까? 하지만 서울대 생이라고 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 하던 건 아니다. 가출을 밥먹듯 하기도 하고, 재수를 했으며, 내신 4,5등급이던 시절이 있거나, 애초에 대학 갈 생각이 없었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들은 일관되게 '공부를 안해도 되니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는 식으로 독려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상한 아빠의 독력을 받은 서울대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자기 주도 학습 전문가'라는 것이다. 즉 아빠들의 따뜻한 울타리 덕에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하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대 아빠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부'만이 답일까? 교육 전문가 박재원 씨 아들은 일찌기 우리 나라 교육 제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아버지가 믿어준 아들은 sky에 간 아이들이 부럽지 않다는 북유럽식 목조 주택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 아빠는 말한다. 떄로는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평생을 잘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떠올리며 아이가 스스로 경험을 통해 체득해 나가기를 기다려 줬다고. 

교육학자인 신종호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가 많다고. 이미 아이들도 체감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세상, 화려한 지옥에 갇힌 아이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건, 이미 자신들을 위해 많은 것을 주고 있어 미안한 부모들이 먼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가 돌아와 던지는 질문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다. 스스로 사다리에서 떨어질 불안에 떠는 부모가 과연 아이에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어쩌면 어른들이 먼저 괜찮아지는 게 진짜 '바짓바람'의 출발점이 아닐까. <스카이 캐슬>의 결말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3. 11. 15:17

스테디 셀러였던 kbs2 저녁 8시 주말 드라마와 밤 10시 주말 드라마라는 두 양대 산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었던 sbs 주말 드라마,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언니가 살아있다>를 편성하며 기존의 토, 일요일에 걸쳐 방영하던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연방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보려 했지만 mbc의 맞짱 편성으로 그 야심찬 기획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에 전통의 가족극 중심의 주말 드라마에 대해 sbs는 스릴러 장르 <시크릿 마더>,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에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드라마 버전인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을 통해 채널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순위의 변동은 쉽지 않았다. 

이에 sbs는 배수진의 편성을 꾀한다. 금요일 밤의 효자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주말로 시간을 바꾸고 그 자리에 기존의 주말 드라마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스릴러였지만 '가족'극의 내용을 띠던 작품 대신 <귓속말>, <펀치>의 이명우 피디와 <김과장>의 박재범 작가가 의기투합한 본격 '장르물'인 <열혈 사제>를 편성했다. 그리고 이런 벼랑 끝 전술은  sbs 드라마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처음엔 <정글의 법칙> 시청자들을 이어받은 게 아닐까였지만, 이제 14회 이른 드라마는 <정글의 법칙>의 후광을 걷어내고 <열혈사제> 그 자체로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중이다. 

 

 

열렬히 웃겨드립니다. <극한 직업> 못지 않게.
10.4%로 시작하여 단 한 회를 빼고 계속 두 자리 수, 이제 16, 17%를 거뜬히 넘기고 있는, 최근 주중 공중파 시청률로 보자면 '대박'에 가까운 <열혈 사제> 그 성공의 요인은 무얼까? 그건 무엇보다 '웃음'이다. 사심없이 열심히 웃겨드립니다로 천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영화 <극한 직업>처럼, <열혈 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한 시간 내내 '매우' 웃기다는 것이다. 도대체 웃을 일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극한 직업>이 그랬듯이,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열혈 사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재미를 선사한다. 

10여년 전 대 테러 특수팀으로 활동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전직 국정원 직원 김해일(김남길 분), 그는 그 사고의 트라우마로알코올 의존증에 걸려 폐인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던 중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을 만나 사제의 길을 걷게 되지만 여전히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폭력적 성향'의 신부로 결국 자신의 교구에서 쫓겨나 다시 이영준 신분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같은 이영준 신부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천주교 신부로 불명예를 당하고 성당과 성당이 보살펴 온 보육 시설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상황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 놓여진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이 보이는 '행위'들은 매우 코믹하다. 다혈질에 말은 물론, 주먹조차 조절이 되지 않는 하지만, 어쩐지 그의 거친 언어와 행동들이 장르물 특유의 '하드 보일드'하기 보다는 '해프닝'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허당'미가 드라마의 톤을 '코믹'하게 만든다.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가진 비극과 코믹을 자유롭게 오가는 특유의 유연한 연기, 거기에 더해진 그의 길쭉한 자태를 활용한 액션이 우선 시청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거기에 진지했던 이영준 신부의 죽음 이후에 김해일의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 한 '코믹을 한다. 욱하면 마구 욕이 튀어나오다 스스로 '하느님'을 소환하며 자제하려고 애쓰는 김인경 수녀님(백지원 분)에서 부터 본의 아니게 그의 파트너가 된 형사 구대영은 이미 코믹한 캐릭터로 여러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김성균이고, 그의 파트너가 된 신참 형사 서승아(금새록 분)의 뜬금없는 '힙합' 감성에, 아직은 단역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중국집 배달원인 외국인 노동자 쏭싹(안창환 분)과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놓치지 않는 오요한(고규필 분)의 깨알 등장 역시 빠질 수 없는 코믹 요소이다. 

김해일 측근만이 아니다. 여주인공이지만 <극한 직업>에 이어, 아니 <극한 직업>보다 본격적으로 갖은 욕을 장착하고 '스트레스~'를 연발하는 속물 검사 이하늬의 박경선이 보여주는 물만난 듯한 코믹한 모습에, 김해일의 맞상대로 조폭 우두머리인 고준의 황철범은 <극한 직업>의 신하균, 오정세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그가 모시는 정동자 구청장(정영주 분), 강석태 검사(김형묵 분), 경찰 서장 남석구(정인기 분)에 고준의 똘마니로 사이비 교주로 돌아온 이문식에, 카포에라 발차기 한번으로 대번에 화제가 된 음문석이 분한 장룡에, 스모키 화장만으로도 돋보이는 김원해의 어설픈 러시아 킬러까지 악당 군단의 코믹한 면면 역시 만만치 않다. 

 

 

주구장창 웃기긴 하지만
이런 '코믹' vs. 코믹의 구도는 바로 <극한 직업>을 천만으로 이끌어 낸 결정적 요소이다. 즉,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아직은 '을'의 처지에서 보여주는 어설픈, 혹은 부족한 코믹 캐릭터들은 바로 만년 반장에 어딘지 덜떨어져 보이던 <극한 직업> 내 강력반의 면면을 벤치 마킹한 듯하다. 아직은 다들 그 부족한 면으로 밀리고 치이며 심지어 그로 인해 발목잡히는 신세지만, 14회 '간장 공장 공장장'으로 인해 장룡에게 맞던 쏭싹이 당당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간장 공장 공장장'을 읊어 상대를 머쓱하게 하는 순간의 사이다처럼 언젠가 모래알같던 이들의 한 방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도록 만든다. 

반면에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지만 그의 태도 하나하나가 위압적이기 보다는 조롱하고 싶게 우스꽝스러웠던 <극한직업>의 신하균이나 오정세처럼 , 14회 알고보니 구담 경찰서장이 대대로 '친일파'라는 설정 하나 만으로 그의 얍삽한 캐릭터가 한결 더 살아났던 장면에서 보여지듯, '거악'의 카르텔이지만 위협적이기 보다는 알고보면 별 거 아니게 조롱할 만한 악의 축들이 보여지는 '만만함'이 여전히 '변변찮은 선'과 우세한 악의 전선에도 시청자들이 편하게 웃으며 이 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는 기조가 된다. 

 

 

거기에 아직은 김해일을 감시하는 처지인 구대영, 그리고 스스로 속물임을 자처하는 박경선이란 캐릭터가 가진 가능성이 이 '고구마일변도'의 코믹 서사에 또 다른 기대치가 된다.

분명 극의 전개로 보면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며 그들이 뻗어간 영역은 치밀하고, 그에 맞선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선의 세력들은 지지부진하지만, 그 지지부진한 코믹의 행력에 매회 빠지지 않는 비록 아직 성과는 없지만 김해일 신부의 '분조 조절 장애' 액션이 '단비'같은 역할을 하고,  거기에 이 지리멸렬한 캐릭터들의 연합, 그리고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 변화 조짐들이 코믹을 넘어선 <열혈 사제>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그렇다면 <열혈 사제>의 아쉬운 점은 없을까? 수원 왕갈비 통닭? 실감나는 먹방? 아니 그보다는 장르물로 16부작을 이끌어가는 호흡의 느슨함이다. <극한 직업>이 두 시간의 런닝 타임 동안 화끈하게 웃기는 것으로 승부를 봤지만, 16부작의 드라마는 웃고만 있기에는 긴 시간이다. 수없이 날려지는 웃음의 잽들 사이를 채우는 서사의 공백이 길다.

여전히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의욕을 그의 주먹만큼 앞서지만 그 주먹은 허공을 가른다.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은 애매해서 답답하고, 쏭삭, 오유환 등의 숨겨진 능력치와 활약은 아직 저만치 있다. 이제 캐릭터가 가진 웃음 포인트가 뻔해져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결국 이를 채울 건 '장르물'로서 서사의 전개뿐, 하지만 구담시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고 해결의 기미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등장한 보육원 급식 사건이 과연 고구마 줄기처럼 코믹을 넘어선 장르물의 쾌감을 선사할지. 웃음만이 아니 장르물로서의 충실한 전개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길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3. 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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