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한일 합방 이후 9년, '국치'를 견뎌내지 못한 우리 민족이 들고일어난 3.1 운동, 유학생들의 2.9 독립 선언에 이어, 일부 선각자들의 비폭력 선언은 전민족적 저항 운동을 발화시켰고, 강대국들의 아전인수격인 민족 자결주의와 일제의 폭압적 진압으로 미완의 혁명이 된 3.1운동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 운동에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런 열망의 결실로 국내외에 만들어진 7개 이상의 임시 정부가 세워졌고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바로 이렇게 선열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용트림을 했던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 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행사가 준비되는 가운데, 드라마 속 기억에 남는 독립운동가를 되살려 본다. 

 

   

  

<절정> 그리고 이육사가 된 눈이 맑은 아이 이원록 
과연 그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100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기억의 저편 속에 사라져가는 인물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추앙받는 영웅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 이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립 운동가가 살아가신 그 궤적의 실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감'에 가장 근접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2011년 8.15 특집극으로 방영된 2부작 <절정>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 전문


<절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육사 시인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마흔의 생애 동안 17번의 옥고를 치룬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이 분의 생애야 말로 우리가 일제 시대 지식인의 삶을 가장 알 수 있는 본보기가 아닐까. 

김동완이 이육사로 분한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육사로 부터이다. 퇴계 이황의 집안, 안동에서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던 어린 시절의 육사를 드라마는 '눈이 맑은 아이'로 그린다. 

폼나게 살고 싶었던 아이, 부모님을 모시고 아메리카를 여행하고팠던 꿈에 부풀었던 아이, 형제들과는 어려서 부터 다르게 멋도 좀 알았던 아이, 무엇보다 눈이 맑아 세상을 투영하게 바라보려 했던 아이,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삶이 고달플까봐 걱정했다. 

그 눈이 맑았던 아이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시로 썼다. 드라마의 마지막 그토록 집요하게 육사를 쫓던 박이문 형사는 육사의 시에 마음을 허물고 육사를 설득한다. 자신에게 당신이 나르던 군자금의 배후를 알려주면 당신을, 당신의 시를 놓아주겠다고. 그러니 제발 살아나가서 시를 쓰라고. 당신의 시가 아깝다고. 그러자 육사는 초연하게 답한다. 내가 살아서 나가면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라고 .  이 육사의 한 마디가 바로 시인 이육사의 삶을 대변한다. 

이창동 감독이 만든 <시>라는 영화가 있다. 2015년까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이 영화는 미자라는 늦깍이 시인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지방 소도시 손자와 함께 사는 미자라는 할머니는 우연히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듣게 되며 삶이 변한다. 지금까지는 상투적으로 살아왔던 시간, 시를 배우며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하며 감수성을 북돋우려 했던 미자 할머니의 노력이 맞닦뜨린건 뜻밖에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세상, 그리고 부조리한 자신의 삶, 결국 '시인'이 되어버린 할머니는 세상의 부조리, 자기 삶의 모순을 자신의 온 몸으로 감수해 내고야 만다. 

바로 이 이창동 감독 영화 속에서 정의된 시인, 그 시인의 모습이야말로 눈이 맑았던 아이 시인 이육사의 모습이 아닐까.  감옥에서도 칙칙한 수의가 싫었던 소년, 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너는 일찌기 독립에 눈떴던 집안의 형제들과 달리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소년 역시 형제들과 다른 길을 가지 못했다. 

 

  

시인이기에 비타협적 독립 운동가가 된 이육사 
한학을 배우던 집안을 넘어 영천과 대구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좀 더 너른 세상을 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젊은이 원록은 그곳에서 관동 대지진의 참상을 몸소 겪게 된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처지, 그런 위기의 순간 원록의 앞에 윤세주라는 또 다른 식민지 시대의 청년 운동가가 운명처럼 등장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일찌기 3.1운동 만세 시위를 주동했으며 훗날 의열단원에 신간회를 거쳐 조선 의용대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윤세주, 관동 대지진을 배경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식민지 청년의 만남이 이루어 졌다. 자신때문에 윤세주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이육사는 관동대지진 이후 무차별적 조선인 학살의 충격으로 고향에 칩거해 있던 중 자신을 찾아온 윤세주를 반기며 기꺼이 그를 따라 독립 운동의 길에 나설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앞선 건 일제의 검속, 1926년 대구 은행 폭파 사건에 연류된 혐의로 3년 형을 받고 복역하며 17차례 징역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모진 고문의 시간을 견디며 3년 형을 살고 나온 청년 이원록, 하지만 일제의 고문과 감옥은 그의 의지를 꺽이게 만들기는 커녕, 외려 그의 의지를 강고하게 해 그를 북경으로 가도록 만든다. 

1932년 드라마에선 윤세주를 따라 갔다는 식으로 표현된 이육사가  선택한 건 조선 혁명 군사 정치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은 그는 각종 훈련을 거쳐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한다. 신문사 일도 잠깐 곧 군사 학교 출신이라는 게 밝혀져 감옥으로 가게 된다. 

드라마는 고뇌하는 식민지 청년 원록으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청년은 관동 대지진과 의열단 윤세주를 만나며 눈맑은 청년에서 부터 세상에 눈을 감지 않으려 했던 고뇌의 지식인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고뇌는 펜 대신 총을 드는 선택으로 결단을 내렸던 청년, 자신의 이름 원록 대신 수인 번호 264번을 필명으로 선택했던 식민지 지식인의 비타협적 선택에 대해 드라마는 지긋이 천착하여 그려간다. 

그와 함께 가문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양과의 혼인, 짧은 신혼 그리고 긴 이별, 거기에 잦은 징역으로 인한 어렵게 얻은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아내의 고통 등, 가정사의 슬픔을 기꺼이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독립 운동을 선택한 한 개인의 신산스러운 삶을 드라마는 애절하게 더한다. 

동시에 극중 노윤희로 등장한 최정희, 서진섭으로 등장한 서정주와 윤태주, 강문석 등 일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그들 가운데에서 고뇌하고 그럼에도 결국 일제와의 타협보다 끝내 다시 총을 든 이육사의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의 비타협적 삶의 가치를 제대로 설파해 넨다. 내고향 칠월, 청포도가 익어가던 시절의 문구를 아끼던 윤태주의 선택, 일제에 의해 희생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독립의 실천으로 다했던 강문석의 또 다른 선택은 이육사의 헌신적 삶과 함께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山脈)들이 /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이육사 

 

   

   

  

이육사는 살아생전 시집 한 편 펴내지 못한 시인이었다. 그가 북경의 감옥에서 죽고, 그의 아우가 그의 유고 작품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 오늘 회자하는 이육사의 시가 되었다. 그가 회유하는 일경에게 말했듯 그의 삶은 오롯이 그의 시가 되어 오늘날 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극 중 노윤희는 말한다. 자신은 태어나면서 부터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았다고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독립 운동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였던가, 극중 서진섭이었던 서정주는 해방을 맞이하며 일제가 그리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 했었다. 일제 36년 누군가에게는 나고 자랐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더구나 이기기 보다는 17차례의 끊임없는 투옥에서 처럼 일제에 의해 끝도 없을 것같은 억압의 시간, 다시 일제에 잡혀 고문을 당하는 게 싫어서 윤태주 같은 사람들도 자결할 독약을 지니고 다녀야 했던 시절, 그 시간을 견디며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었다는게 얼마나 힘겹고 엄청난 일인지, 그 삶의 무게를 <절정>은 애써 표현하려 노력한다. 

by meditator 2019. 2. 26. 19:01

2019년 아카데미 상의 결과가 드러났다. 아카데미가 선택한 작품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모았던 피터 패러리 감독의 <그린 북>에 돌아갔다. 또한 이 영화에서 돈 셜리 역을 맡았던 마허살랴 알리에게 2017년 <문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남우 조연상을 안겼으며 각본상까지 거머쥐며 3관왕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미 지난 6일 열린 76회 골든 그로브 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수상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던 <그린 북>, 하지만 올해 <블랙 팬서>, <로마> 등 인종 차별과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여러 편 노미네이트 된 가운데 특히 다수의 매체와 평론가들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의 수상을 점쳤기에 <그린북>의 수상을 '이변'으로 보기도 한다. 

참가자들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거나, 수상 과정에 박수를 치지 않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 <그린북>의 수상, 거기엔 그저 '이변'을 넘어 논란이 되는 지점 또한 담겨 있다. 

사실 왜곡인가, 영화적 상상력인가 
1956년 하나의 버스에 흑인과 백인의 좌석이 나뉘어져 있고 흑인은 뒷문을 이용해서만 버스를 타야하던 시절, 26세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차별에 반기를 들었고 '버스 보이콧운동'이 벌어졌다. 그해 5월 미 연방 법원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는 불법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6년여, 하지만 세상은 법의 판결을 그리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특히나 미국 남부는 여전히 해가 저물어 흑인이 돌아다니는 것이 '불법'이라 여겨지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1962년 미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인종 차별이라는 구습에 젖어 있었다.

바로 그 시절 입담과 주먹 하나로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는 자신이 다니던 클럽이 그의 주먹 해프닝으로 영업 정지를 먹는 바람에 당장의 호구지책이 급한 처지가 된다. 그런 그에게 들어온 임시 일자리,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남부 순회 공연에 운전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까짓 운전 쯤이야 하고 찾아간 면접장, 뜻밖에도 그를 고용한 사람은 '흑인'이었다. 토니에게 흑인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집에 잠시 전기를 고치러 온 흑인 기사가 잠시 사용했던 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인종 차별적 편견'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흑인의, 그것도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 순회 공연 동안 그를 에스코트할 운전수를 해야 하다니. 하지만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매달 내야 하는 집세 등 '목구멍이 포도청'인 처지가 그에게 기꺼이 그 일을 맡긴다.

당연히 순탄하지 않은 여행, 흑인을 차별하는 남부를 무사히 여행하는 지침서 '그린북'을 가지고, 그를 고용한 사람은 돈 셜리지만, 흑인을 위해 편안한 안식처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때로는 운전사인 그가 더 좋은 호텔에 머물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어가며 그는 맡은 바 임무를 넘어, 그리고 흑과 백 차별적인 그의 편견을 넘어 돈과의 진실한 우정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토니 발레롱가의 시점에서 그려진 이 남부 순회 공연 그 시작이 된 건 바로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 닉 발레롱가의 시나리오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돈 셜리가 이 여행을 계기로 흑과 백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고 평생의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 하지만 돈 셜리의 유족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찌기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 음악 재능을 드러낸 돈 셜리, 이미 10대 때 보스턴 팝스와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을 했으며 1961년 발표한 '워터보이'로 빌보드 차트에 오를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섭렵했던 음악가, 유족들은 <그린북>이 그리고 있는 백인들에게는 어릿광대이며, 그렇다고 흑인들 사회에도 융합하지 못하는 고독한 천재라던가, 게이로 표현되는 등 확인되지 않는 사생활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엔딩 크레딧 자막에 표기된 돈과 토니의 50여 년간의 우정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하며 영화적 감동의 기반이 된 '사실'에 문제 제기를 했다. 

돈 셜리의 유가족들이 문제제기한 '사실'으로 인해 흠집이 난 <그린북>, 감독은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함에 사과를 하면서 그럼에도 자신이 '흑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백인'이 아니며 이 영화가 그런 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점진적 변화를 위한 작품이라며 영화적 가치를 항변했다. 

결국 아카데미는 피터 패럴리 감독이 '세상의 변화를 향한'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아마도 그건 <그린북>이 가진 차별을 넘어 화합해 가는 과정이 오늘날 다민족 사회 미국에 있어 가장 '모범 답안'이라 생각해서가 아닐까.

 

 

차별의 다양한 층위, 그 해결을 향한 모색
영화의 배경은 흑과 백의 인종적 갈등이 여전한 미국 사회이지만, 거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토니라는 인물이다. 그는 백인이다. 하지만 그는 클럽에서 '기도'일이나 하거나, 그도 마땅치 않을 때는 먹기 시합이라도 해서 벌이를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가장이다. 이탈리아 이민계, 말투는 그가 머무는 거리의 세계를 반영하듯 거칠고 단절적이며,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아내의 간청으로 편지를 써보지만 맞춤법은 젬병이다. 

말이 백인이지, 백인 사회 내의 계층에서 최하위층에 속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결핍을 백인 남성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흑인에 대한 사회적 적개심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영화 속 토니라는 인물로 표현된 하층 백인 남성이 가지는 차별적 시선은 결국 자기 방어 기제로 부터 출발한다. 즉 그 자신 역시 한 사회의 계층적 스펙트럼에서 결코 고지를 점할 수 없는 계층이 그 차별적 분노를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유럽과 미국 등 백인 중심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차별적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는 심리적 기제이다. 

이러한 토니와 그가 만난 천재 뮤지션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고립된 흑인 돈 셜리의 만남을 통해, <그린 북>은 흑과 백으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우리 사회 속 다양한 차별과 구분의 층위를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적 구분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사실은 그 성적인 구분의 스펙트럼만큼 한 젠더 내의 스펙트럼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다는 학문적 조사처럼, 사회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구획을 나누지만, 구획의 층위는 실제 사회 내에서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토니와 돈 셜리를 통해 접근해 들어가는 차별의 해법은 흑과 백 그 이상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고민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며, 많은 이의 박수를 받는 이라 하더라도 '흑인'이라는 자신이 구분지어놓은 편견에서 쉬이 나가지 못했던 토니, 심지어 그가 음악 외의 학문에서도 조예가 깊은, 심지어 자신을 고용할 만큼의 부가지 가진 우리로 치면 '양반입네' 하는 듯한 행세가 못마땅했던 토니, 그랬던 그가 우연히 듣게 된 돈 셜리의 연주에서 마음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굳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될 그가 여전히 강고한 흑과 백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형식적인 보디 가드의 경계를 넘어선다. 

돈 셜리도 다르지 않다. 백인, 자신을 경원시하는 세계의 사람이라고만 밀쳐 두었던 토니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그의 너스레, 자신의 정체성 등으로 인한  위기의 순간 의협심인지, 정의감인지 모호하지만 그의 의지가 되어주는 토니의 모습에 어느덧 돈 셜리의 경계도 흐트러진다. 그리고 그 흐트러진 경계는 위험한 순회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를 넘어 우정의 세계로 두 사람을 인도한다. 흑인과 백인,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배운 자와 덜 배운 자, 위태로운 음악의  여정 속에 이 다양한 층위의 모순들이 다르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으로 승화되어 간다. 그리고 그 승화된 우정의 해법에 아카데미가 작품상으로 화답했다. 

by meditator 2019. 2. 26. 04:20

아직도 사극에 있어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병훈 김영현 콤비의 <대장금>,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당시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웰빙', 그 중에서도 '먹거리 웰빙'으로 촛점이 맞추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병훈 감독의 사극은 곧 '트렌드'였다. 동양 의학에 대한 관심이 <허준>으로 북돋아졌고, 수의의 인술 성공담 역시 21세기의 기술 혁명과  함께 였다. 남성의 대상이 아닌 여성의 독자적 삶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나 이병훈 감독의 작품들이었다. 특히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절묘하게 사극 속 시대에 조응해 내는데 있어 독보적이었다.  당연히 이병훈 감독과 함께 한 김영현, 최완규, 김이영 작가들이 바로 그러한 이병훈 감독의 사극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낸 장본인들이다. 김영현 작가는 박상연 작가와 손을 잡고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정치 사극이 대표가 되었고, <동이>, 이산>, <마의>를 함께 한 김이영 작가 역시 <화정>으로 그 필력을 이어갔다. 

 

 

2월 11일부터 sbs를 통해 방영된 <해치>는 바로 이러한 이병훈 사단의 사극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현실로 부터 역사를 길어낸다.  즉 2019년의 과제, 사법부 개혁으로 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을 드라마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숙종 연간 정치 투쟁의 결과는?
숙종 연간, 우리는 사극을 통해 장희빈과 인현 왕후의 궁중 비사를 되풀이 학습하여 왔다. 하지만, 이건 두 여인의 집안 싸움이 아니라, 장희빈과 인현 왕후를 앞세운 서인과 남인의 붕당 정치의 처절한 정치 투쟁이었고, 그건 또 다른 측면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세를 굳히기에 들어간 서인, 그 중에서도 노론을 견제하기 위한 숙종의 당쟁 정치였다.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며 기득권층으로 성장한 '훈구파'와 달리, 영남 등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사림파'는 조선 중종 이후 조광조 등을 필두로 정계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 세력에 대해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조광조'의 난 등 각종 사화 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통해 조선 중앙 정치계에 자리잡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사림파는 각 집단의 학연, 지연, 그리고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인해 동인과 서인, 다시 남인과 북인, 그리고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가 가며 조선 중기 정치적 세력, 그리고 파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찌기 정도전의 이상,  플라톤의 철인 정치처럼 유학자들에 의해 이상적으로 구성된 의정부 등에 의해 왕권이 조정되고 견제받는 정치적 대의제로 구상된 조선은 곧 그 정치사가 왕권과 신권, 그리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신권 사이의 갈등의 역사가 되고 만다. 

숙종의 시대, 우리가 알고 있던 여인의 치마 품에 휩싸였던 유약한 왕이 아니라, 일찌기 왕권 강화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던 숙종은 이 문제를 인현왕후를 폐비로 만들며 당시 정계의 주축이었던 서인을 축출, 즉 노론과 소론의 힘을 약화시키며 당시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인을 등용하며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하였지만, 우리가 역사적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희빈의 폐출, 인현왕후의 복권으로 그의 정치적 모험은 서인, 그 중에서도 노론의 강화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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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가 그려내 적폐 청산, 사법 개혁 
드라마 <해치>는 바로 이런 숙종기 후반, 서인 그 중에서도 체제를 구축한 노론과, 이제 그들이 왕권 계승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통해 오늘의 '적폐'를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오늘날 사법부에 비견되는 당시의 사헌부, 관리를 감찰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이 기관은 하지만 애초의 설립 의도와 다르게 노론의 시녀가 된 처지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노론에 의해 다음 왕좌의 주인으로 예정된 밀풍군, 하지만 밀풍군은 훗날 왕이 될 것이라는 권력에 취해 자신의 감정조차 조절못해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파렴치한이다. 비록 장희빈의 아들이지만 엄연히 훗날의 경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밀풍군의 등장은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결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치>는 역사적 상상력으로 밀풍군을 통해 왕가의 적통마저 뭉갤 수 있는 당시 노론의 위세를 그려내고자 한다. 

이렇게 권력과 그 권력의 하수인이 된 공공의 기관들, 그리고 그걸 등에 업고 광폭하게 날뛰는 후계자, 이렇게 비관적 시절에 그 상황을 우직하게 돌파하는 사헌부, 이미 노론의 하수인이 된 조직 속에서도 조선의 궁궐을 지키는 해치처럼 자신의 원래 직무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스스로 노론임에도 가문과 거리를 두면서 밀풍군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정석(이필모 분)과 그를 신뢰하며 따르는 다모 여지(고아라 분)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헌부의 세력들과 가난한 노론 집안의 자제로 오늘날로 치면 만년 고시생인 훗날의 그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권율 분)와 천민 출신의 어머니로 인해 왕족이지만 언제나 뒷전인 연잉군이 합세한다. 

해프닝처럼 엮인 이들이 밀풍군이라는 공통의 이해로 뭉치고, 한정석이 제기한 밀풍군의 비리에 연잉군이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제물로 삼아 증인으로 나서며, <해치>속 '사법 개혁'의 싹은 움트기 시작한다. 

왕자 연잉군이 스스로 제주 유배까지 자청하며 밀풍군의 살해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폭군으로 예약된 밀풍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권력은 녹록치 않다. 민진헌(이경영 분)으로 대표되는 노론은 기꺼이 그들이 선택했던 밀풍군을 버리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한 한정석을 '뇌물'의 함정으로 밀어넣는다. 즉, 한 말 물러선 듯 하지만 감히 자신들의 권력에 더 이상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노론은 연잉군에 대한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권력의 위세를 휘두른다. 적폐 청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연잉군을 위시하여 여지, 박문수,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 만났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해치> 속 영조는 우리가 알고 있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 영조를 떠올리기 힘들다. 천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하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불우한 젊은이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노론의 시대지만, 여전히 정의를 향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역사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현재, 우리의 시대다.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 시대가, 젊은 영조가  선택되었다. 

by meditator 2019. 2. 19. 16:10

20회 23.779%, <스카이 캐슬> 마지막 회 시청률이다. 히트메이커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2016)> 16회가 20.5%, <미스터 션샤인(2017)>24회가 18.129%이었으니 <스카이캐슬>이 얼마나 신드롬급의 시청률이었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jtbc에서. <스카이 캐슬>이 신드롬급이었던 만큼, 과연 그 후광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에 당연히 관심이 집중되었다.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금요일 밤에서 부터 일요일까지, 주말 드라마라 하면 8시엔 kbs, 밤 10시엔 전통의 mbc주말 드라마 거의 독주 체제이다시피 했었다. 거기에 무엇을 해도 역부족이었던 던 sbs가 토일로 나뉘어져 있던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2시간 연방으로 편성을 변경하며 아성에 도전하였지만, 마찬가지로 토, 일로 편성을 바꾼 전통의 mbc엔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tvn이 주말 드라마를 9시로 편성하여 주말 드라마의 양대 산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tvn의 주말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 ocn이 장르물로 시청자들을 공략하니 주말의 선택은 풍성해졌다.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알함브라 궁전> 등 스타급 배우와 스타급 제작진의 콜라보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공중파 주말 드라마의 아성을 위협했고, <터널>, <라이프 온 마스> 등이 장르물의 지평을 넓혀갔다. 이미 이 정도로도 시청자들의 선택지는 꽉 찼다 싶었다. 

 

 

<스카이 캐슬>이 밝힌 금요일 밤 
그런데 <나혼자 산다>의 독주 체제이다시피했던 금요일 밤 11시 타임, 후발주자였던 jtbc가 <제 3의 매력>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지 않았다. 16회 2.934%, 그 바톤을 이어받은 <스카이 캐슬>의 시작은 1.727%로 초라했다. 그러던 것이 2회 영재 엄마의 처절한 자살은 세간에 이슈가 되었고, 부유층들이 모인 스카이 캐슬이라는 고급 빌라촌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가장 민감한 관심사인 교육 문제를 건드리며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마저 이겨 버렸다.

<스카이 캐슬>의 성공으로  무엇보다 밤 11시 금토 드라마 체제가 성공적으로 안착되게 되었다. 이에 tvn이 발 빠르게 17시즌에 이른 <막돼먹은 영애씨>를 금요일 밤 11시로 편성했다.  sbs는 고전하던 주말 드라마를 <정글의 법칙> 시간대를 옮기는 강수를 두며 금토일 밤 10시로 옮겼다. 거기에 김남길을 앞세운 장르물 <열혈 사제>를 편성, 그간 주말 드라마로서는 성취해 내지 못했던 13%(2회)의 시청률 수확을 거둬들였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tvchosun이 가세했다. 2018년 초 방영되었던 <대군> 이후 거의 1년 만에 <바벨>로 이 격전지에 참전을 선언했다. 토일 밤 11시, <대군> 당시만 해도 드라마로서는 볼모지에 가까웠던 시간대였지만, 이제 <바벨>은 달궈진 핫플레이스에 도전장을 내민 처지가 되었다. 그런 <바벨>이 내민 비장의 무기는 19금, 대중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19금을 통해 <스카이 캐슬> 등을 통해 드러난 성인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단 포부를 펼쳤다. 

 

 
 

 
<스카이 캐슬>의 빈 자리를 채운 건 예능? 
그렇다면 과연 <스카이 캐슬>의 빈 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아직 이렇다할 승자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아니 가장 유력한 승자는 '예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스테디 셀러인 <나혼자 산다>와 정우성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전지적 참견 시점>이 13.3%, 14.3%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런 가운데 <스카이 캐슬>의 후속작인 <리갈 하이>는 원작과 다른 해석으로 원작의 개성적인 구성을 기대하던 원작팬들은 물론, <스카이 캐슬>을 통해 채널을 고정했던 시청자들마저 놓치며 3.26%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2.497%까지 하락세를 보이며 스스로 왕좌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금요일 단 하루 방영되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7>은 전업맘에서 이제 직장으로 돌아간 영애씨와 새로운 사장으로 등장한 정보석, 그리고 기존의 라미란 등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1,2회 모두 2.6% 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틱 장르 드라마로 화제성을 모았던 ocn의 <트랩>은 이서진, 성동일 등 쟁쟁한 출연진에, 재방에 이은 연방, 거기에 11시 50분까지 편성된 시간을 넘긴 방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전작인 <프리스트>보다는 낫지만, 아직은 <터널>이나, <라이프 온 마스> 등의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19금 성인 드라마를 표방했던 <바벨>은 격정 멜로라 표방했던 차우혁과 한정원의 멜로가 '신파적 순애보'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박시후, 김해숙, 송재희, 장신영 등 거산 가를 둘러싼 관계의 긴장감이 외려 15금 이후 살아나며 7회 3%의 고지를 탈환, tvchosun이라는 채널의 한계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불금에서 부터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까지 11시까지 꽉 채운 드라마들, 공중파에서, 케이블, 거기에 종편까지 합류하며 이젠 어느 요일이라 구분할 것도 없이 격전지가 되어버린 tv 채널들 시청자들의 밤을 밝힌다. 장르물에서 부터 성인용 드라마, 시트콤, 일드 리메이크 법정물까지 풍성한 주말 밤, 실시간 시청률까지 낱낱이 드러나는 편성의 전쟁에서 결국 살아남는 건, <스카이 캐슬>에서 보여지듯이 재밌게 잘 만든 드라마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9. 2. 18. 15:39

금요일 밤 10시, 이 시간대 공중파 tv 채널의 선택폭은 넓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도록 스테디셀러 <정글의 법칙>의 독재 체재이다시피 했으니까. 굳이 이미 고정층이 확고한 <정글의 법칙>에 도전을 하는 악수를 둘 방송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정글의 법칙>이 토요일로 시간을 옮기고 그 시간대에 드라마 <열혈 사제>가 편성되었다.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9시부터 연방으로 편성했지만, 김순옥 작가의 <언니가 살아있다> 이후로 이렇다하게 주목받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던 sbs가 금토 드라마로 편성의 변화를 주며 주말 드라마 격전지에 한 시간 빠른 도전장을 냈다.

<열혈 사제>의 첫 방송, 당연히 <정글의 법칙>을 기대하며 채널을 돌렸던 고정 시청자층을 대상으로 1회 10.4%, 2회 13.8%로 그 후광 효과를 톡톡히 노렸다.  후광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3회 8.6%, 4회 11.6%로 앞서 1,2회에 비해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떨어졌다 해도 앞서 주말드라마였던 <운명과 분노>가 자체 최고 7.7%로 종영한 거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타 방송사가 색다른 편성을 하지 않는 한 당분간 금요일은 <열혈 사제>의 독주다시피 할테니 11시대의 피튀기는 전쟁을 피해 <열혈 사제>의 성공은 편성의 성공적 한 수가 될 듯하다. 

 

 

박재범 작가의 핸디캡 히어로 
그렇다면 편성의 한 수는 그렇다치고 작품으로서 <열혈 사제>는 어떤가? 우선 <굿닥터>, <신의 퀴즈 4>에서 <김과장>에 이른 박재범 작가를 주목해야 한다. 그간 박작가는 굿닥터의 박시온(주원 분), 신의 퀴즈의 한진우(류덕환 분), 그리고 김과장의 김성룡(남궁민 분)까지 신체적 장애라던가, 질병이라던가, 혹은 신분상의 오류라던가 저마다의 핸디캡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과 맞서 히어로적 활약을 보이는 내용을 주로 써왔다. 물론 <블러드>라는 예외적 사례도 있지만, 그리고 이러한 박재범 작가의 서사는 대부분 시청률과 작품성 두 가지 면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즉 대중적 장르물에 있어 가장 성공한 작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박재범 작가가 <펀치>, <귓속말>의 이명우 피디와 만났다. 이번에 박재범 작가가 내세운 히어로의 핸디캡은 '분노'이다. 

2014년 정지우 작가는 <분노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책을 펴낸 그 때만 해도 '분노 사회'라는 말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생경하던 때, 하지만 그로부터 5년 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분노'와 그로부터 비롯된 '증오'가 팽배해있다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n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현실'이다. 사랑조차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 대학을 나와도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며, 부모 세대보다 결코 잘 살기 힘든 자녀들의 세대, 그런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모들, 그렇게 현실에서의 팍팍한 삶이 '사랑'을 포기한 자리에 분노를 자리하게 한다. 

그런 현실적인 분노에, 변화하지 않는 남여 차별의 가부장적 구조, 상명 하복의 위계적 질서 등 구조적인 사회적 문제들이 뒤얽혀 서로가 서로를 경원시하다 못해 '증오'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히어로라니 기가 막힌 선택이다.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던 김해일(김남길 분), 테러 작전 중에 의도치 않은 폭파 사고로 민간인, 아이들을 살상하게 된 그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술에 의존도도 높다. 그런 그를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가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분노 조절 장애 안티 히어로와 흥미로운 조연진 
하지만 첫 장면, 조폭의 사주를 받아 사이비 무속인으로 동네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으려던 무속인들을 비롯하여 그 배후인 조폭들을 거침없이 '손봐주던' 김사제는 예의 '조절되지 않는 분노'의 구원 행위(?)로 인하여 그가 속한 교구의 정의 구현을 실현했지만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결국 구담시를 찾게되고 그런 그를 피붙이처럼 이영준 신부가 피붙이처럼 따스하게 맞아주지만 그만 그 아버지같던 이영준 신부는 '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심지어 그를 부도덕한 신분로 몰아가기 까지 한다. 

'사고치지 말아라'며 두 손을 꼭 잡고 당부하던 이영준 신부의 명을 어떻게든 거스르고 싶지 않아 노력하지만, 대신 집전한 미사 시간에 몰래 빵을 먹던 요요한(고규필 분)을 내쫓는가 싶더니, 하느님께 죄를 사해달라기 전에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찾아가 먼저 용서를 빌라는 말로 신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심지어 고해하러온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내치기까지. 

이미 <김과장>에서 사기꾼에 가깝지만 어쩐지 정이 갔던 김성룡 이래, 막무가내 분노 조절 환자지만 어쩐지 그의 분노가 공감되고, 막말이지만 그 말이 통쾌한 또 한 명의 '반영웅적(안티 히어로) 히어로'의 탄생이다. 


이렇게 2019년에 가장 공감할 만한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은 <열혈 사제>는 <김과장>에서처럼 매력적인 조연진을 통해 주연의 캐릭터를 보완한다. 이준익 감독의 <변산>속 용대의 드라마 버전과도 같은 고준의 대범무역 대표 황철범, <변산>에서 용대가 조폭이지만 학수와 철천지 원수지만 어딘가 어수룩한 동네 조폭이었다면, <열혈 사제> 속 황철범은 용대처럼 어수룩하게 사투리를 쓰며 폼은 비슷한 듯하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 목숨마저 눈깜짝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인물로 김해일의 맞수다. 

거기에 이제는 천만 배우가 된 <극한 직업>을 통해 코미디가 몸에 붙기 시작한 이하늬의 박경선이 첫 회 부터 펄펄 난다. <응답하라> 이래 어쩐지 부진했던 김성균이 모처럼 몸에 맡는 옷을 입은 듯한 구대영도, 이 사람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그 사람인가 싶은 쏭삭의 안철환도, 백지원의 김인경 수녀도, 이미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있었던 요요한의 고규필도, 구당 청장의 정영주나, 부장검사의 김형태, 경찰 서장의 정인기까지 쟁쟁한 조연진이 포진되어 있다. 

이렇게 첫 회부터 분노 조절장애 캐릭터 김해일의 원맨쇼에 가까운 만화적 설정에, 조연진들의 개성있는 호흡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열혈 사제>, 과연 이러한 신의 한수 편성만큼이나 내용성있게 이끌어 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2. 17. 14:03

그래도 셋까지는 골라볼만 했다. 드라마 얘기다. 공중파 3사의 드라마가 동시간대 격돌을 벌이는 것만 해도 불꽃이 튄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에 tvn이 가세를 했다. 심지어 30분 먼저 선방을 날렸다. 그렇게 시작된 4파전, 거기에 밤 11시 한갓지게 자리잡았던 jtbc 월화 드라마가 심기일전 <뷰티인사이드>로 도전장을 날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최종회 5.181% 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그렇게 시작된 월화 드라마 5파전, 2월 11일 jtbc, mbc, sbs가 동시에 새 드라마를 선보이며 5파전의 2라운드가 불타올랐다. 과연 5채널의 선택, 무려 사극만 두 편에, 장르물도 두 편, 거기에 환타지 로맨스까지, 골라보는 재미와 선택 장애를 오갈 수 밖에 없는 드라마의 풍년, 풍성하다해야 할까, 범람이라 해야 할까. 

 

 

선점, <왕이 된 남자> 
5파전임에도 2월 11일 방송 결과는 이미 선점한 <왕이 된 남자>의 압승으로 끝났다. 무기력하지만 폭주했던 진짜 왕 이헌과 광대 출신의 왕이 된 남자 하선, 여진구의 기가 막힌 2인 1역으로 하선과 이헌, 그리고 왕비 유소운의 삼각 관계 아닌 삼각 관계로 이어졌전 팽팽했던 끈이 이헌의 허무한 죽음으로 일단락되고, 그 극의 동력을 애닳은 하선과 유소운의 순애보가 이어받으며 절정으로 달려가며 '로맨스 사극'으로서의 인기를 이어갔다. (8.24% 닐슨 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 물론 거기에는 일찌기 <돈꽃>으로 발화한 김희원 연출 팀의 공력이 큰 바탕이 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일찌기 동지들을 잃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개혁에의 꿈을 이헌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가면서까지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이수의 정치와, 그런 그의 적이 된 좌의정 신치수의 세도, 거기에 '왕이 유고시 대통을 정할 수 있다는 권한'을 향한 계비의 끊임없는 계략 등, 왕권을 둘러싼 정치적 대결의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헐겁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선과 유소운의 러브 스토리, 거기에 수구와 개혁의 정치 드라마를 잘 버무려 내어 로맨스 정치 사극으로 유종의 미를 마무리하여 영화 <왕이 된 남자>의 후광을 떨쳐내고 드라마 <왕이 된 남자>로 기억되게 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신선한 장르의 사극, <해치> 
과연 조선조에서 왕이 아닌 연산군과 광해군이 없었다면 우리 사극은 어떻게 되었을까 란 반문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극, 그 중에서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진폭은 좁다. 현재 월화 드라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왕이 된 남자> 역시 가상의 왕을 배경으로 하지만, 알만한 사람이라면 그 왕이 광해군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풀이 되는 사극의 소재들에서 김이영 작가는 독보적이다. 이병훈 감독과 손을 잡은 <이산>, <동이>, <마의> 그리고 <화정>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를 차치하고 김이영 작가가 역사 속에서 길어낸 소재는 신선했다. 

그 김이영 작가가 이번에 역사 속에서 길어올린 인물은 뜻밖에도 영조다. 늘 이미 권좌를 차지해서 노회한 왕이 되어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논란의 대상 영조가 아니라,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나 왕좌를 차지하게 된 젊은 영조가 <해치>의 주인공으로 들어왔다. 그러기에 <해치>는 무엇보다 신선한 역사 속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신선한 소재인 만큼 방송 첫 회에 이미 밀풍군 등에 대한 역사적 고증의 논란이 있다. 또한 안타깝게도 <해치>를 이끌어 갈 주역 연잉군 이금 역의 정일우, 여지 역의 고아라에 대한 부족한 사극 발성과 연기에 대한 평도 따랐다. 또한 이병훈감독이 없는 김이영 작가만의 내공을, 그리고 완성도 있는 서사를 마무리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신선하지만 짐이 무거운 <해치>, 그 시작은 지상파 1위로 순조롭다 .(7.1%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 장르는 뭐지? <아이템> 
또 한편의 웹툰이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었다. 시즌2를 마무리하고 현재 79화까지 진행된 민형, 김준석 작가의 웹툰 <아이템>은 흔히 영웅물이 특별해진 사람들을 소재로 삼은 것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넣은 초능력을 가진 물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려낸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미 웹툰으로 장르물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 거기에 <신과 함께>, <공작>, <암수살인> 등 영화에,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주지훈의 귀환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의 시작은 폭주하는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초능력을 가진 팔찌를 차고 막아내는 주지훈으로 주목시키며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감옥에서 나와 무릎끓고 사죄를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노인네들이 똥오줌을 못가린다'며 거물 법조인들을 카리스마로 꼼짝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비밀 공간에 들어서는 아이템수집가로 변모하는 다양한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보이는 김강우의 합류도 반갑다. 

하지만 웹툰의 실사화는 아직은 버거워 보인다. 1, 2회의 이야기들은 흡인력있게 장르물의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대신, 산만한 전개로 신선한 소재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킨다. 거기에 '잘 해야 본전'이라는 김강우의 인터뷰답게 소시오패스 재벌 김강우도, 검사 주지훈도 어쩐지 새롭기 보다는 기시감을 일으킨다. 거기에 열심히는 하지만 늘 어쩐지 겉도는 듯한 신소영 역의 진세연의 호흡도 아직은 미지수다. 

과연 익숙한 배우들, 낯선 장르,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초인간이 아닌 초능력을 가진 물건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득해 낼 수 있을지. 대세 주지훈이 과연 드라마에서도 통할 지 4.9%의 시청률로는 갈 길이 멀다. 

 

 

김혜자가 된 한지민, <눈이 부시게> 
평범한 가족이 있다. 아니 있었다. 셈이 밝은 아내는 답답하지만 모범 운전자 표창을 받은 딸바보 아버지 김상운 씨(안내상 분), 손이 부드트도록 염색약을 만지지만 그게 그녀의 낙이고 삶인, 아니 그보다도 하나 밖에 없는 미모의 딸이 희망인 미용사 엄마 이정은(이정은 분) 씨, 취미가 동생 놀려먹기인 세상 태평인 오빠 김영수(손호준 분), 그리고 지금은 비록 백수지만 언젠가는 아나운서가 될 꺼라는 이쁜 딸 혜자(한지민 분), 그랬는데 그 이름 하나가 딱 문제라던 젊고 이쁘던 혜자가 진짜 김혜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눈이 부시게>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새로운 변주로 시작된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발견한 시간 여행이 가능한 시계를 한때 맘껏 사용했던 25살의 여자가 그 마구 사용했던 시간의 댓가로 하루 아침에 늙어버린 역환타지, 거기에 <송곳>의 김석윤 피디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이남규 작가의 내공이 만나 새로운 '휴먼 드라마'를 예고한다. 

첫 회 집안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첫 사랑도 못이루고 꿈도 저만치인 25살의 혜자의 지지부진한 인생이 이어진다. 여전히 이쁘지만 그래도 굳이 왜 한지민이었을까 라는 물음표를 남긴 캐스팅에, 싱그럽지만 여전히 어색한 이준하 역의 남주혁의 만남은 그 자체로 아직은 물음표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진짜 시작하는 건, 그런 장황한 서론을 끝내고 젊은 혜자가 나이든 혜자가 된 3회 부터일 것이다. 이미 김혜자 선생의 등장만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드라마, 과연 김석윤, 이남규, 김혜자의 조합이 월화 드라마 대전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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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들호 2> 
'드까알'이란 속어가 있다. '드라마는 까봐야 안다'는 말이다. <조들호2>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박신양 고현정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 드라마가 모든 월화 드라마를 제압할 것이라 예측되었다. 40%를 넘는 <황금빛 내인생>의 주인공 박시후도 구제하지 못한 월화 드라마의 침체를 드디어 두 카리스마의 주인공 박신양, 고현정의 구해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시즌 1에서 처럼 거지 꼴로 등장하여 분기탱천한 조들호 변호사의 박신양은 여전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지만, 그래서 더 서늘했던 고현정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했지만 거기까지만 이었다.  이른바 재벌가의 부도덕한 행태와 그에 대항하는 조들호의 분전은 '분전'이라기엔 '클리셰'를 넘어서지 못한 듯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신양의 디스크 수술에, 변희봉 중도 퇴장 등으로 드라마는 동력을 잃었다. 심지어 아직도 이 드라마를 하느냐고 한다.  

14회 드디어 재기에 성공한 변호사 조들호, 하지만 14회의 지루했던 조들호의 고전에 기대했던 많은 시청자들이 떠났다. 그래도 주지훈의 <아이템>를 꺽은  5.7%의 시청률은 그나마 두 배우에 대한 이름값이다. 하지만 이름값이라기엔 그 댓가가 너무 크다. 박신양, 고현정 두 배우의 작품마다 따라다니는 제작진과의 불화를 이번에도 피해가지 못했다. 심지어 작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라니. 꼴찌가 아니라고 면피를 하기엔 두 배우의 이름값 그 상흔이 깊다. 

by meditator 2019. 2. 12. 15:55
설 연휴가 끝나고 ocn의 선택은 하드보일러 추적물이다. <트랩>, 무려 7부작이다. 장르물임에도 일반적인 미니 시리즈의 긴 호흡으로 인하여 장르물의 묘미를 손실시키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미니 시리즈의 반 정도 분량인 7부작으로 찾아온 <트랩>의 도전이 그래서 반갑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젠틀한 나영석 예능의 에이스 이서진이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왔다. 2016년 <결혼 계약>이후 햇수로만 3년만이다. 그의 모처럼의 복귀는 2018년 <완벽한 타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이재규 감독과의 인연이다. <역린>의 고전을 <완벽한 타인>이라는 신선한 기획으로 일소시키며 2018년 영화계에 흥행의 파란불을 빛냈던 이재규 감독, 총괄 프로듀싱으로, 그의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으로 <트랩>을 들고 찾아왔다. 

 
트랩ⓒ ocn
 

다시 만난 이서진과 이재규 
이서진과 이재규 감독의 인연, 거기에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 <백야행>의 박신우 감독과, 역시나 명불허전 <별순검 시즌3>와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남상욱 작가가 합류하며 애초에 영화로 기획되었던 작품을 7부작으로 개작하며  '드라마틱 시네마'의 첫 주자가 되었다. 거기에 성동일, 김광규, 윤성호 등 믿고 보는 조연진들과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눈도장을 찍은 임화영이 합류했다. 

시작은 국민 앵커, 아니 전 국민 앵커 강우현(이서진 분)의 가족 여행이다. 가족 여행이라지만 스산한 겨울, 결혼 10주년 여행이라는데 어딘가 긴장감이 감도는 남편과 아내는 아이와 함께 신혼여행 때 그 산장 까페에 들른다. 

신혼 여행 시절과 달리 스산한 까페, 옆 자리의 이상한 무리들, 서둘러 그곳을 뜨려하지만 사라진 아들, 그 아들을 찾으려하지만 아내조차 없어지고, 두 사람을 찾으려 고구분투하던 이서진은 자칭 '사냥꾼', 그 중에서도 최고의 묘미는 '인간 사냥'이라는 까페 사장(윤성호 분)의 '사냥 트랩'에 걸려든다. 사장한테 칼로 찔린 다리로 작은 칼 하나만 들고 사장한테 몰려 나선 이서진,

 
트랩ⓒ ocn
 

믿기 힘든 의문의 사건 
여기까지가 얼마 후 전신골절에 입까지 다쳐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경찰에 발견된 이서진이 어렵사리 손으로 타이핑한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 이서진의 진술에 따라 이서진의 아내와 아이를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이 시작되고, 형사 반장은 고동국 형사를 호출하고, 그런 그의 눈 앞에서 그를 믿고 따르던 후배 형사 배남수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1회에서 보여준 사건, 거기에 보호자라며 등장한 강우현의 비서 김시현과 산장 까페 사냥꾼으로 보였던 인물과의 예상치 못한 접점이 있다. 하지만 과연 1회에서 보여준 이런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이서진이 주장하는 자신의 가족들이 당했다는 사냥, 사라진 아내와 아이, 과연 정말 아내와 아이는 사라진 것일까? 이서진은 사냥트랩에 빠진 것인가? 우선 이런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산장 까페에서 자신의 아이를 찾는 이서진에게 까페 주인이 언제 아이와 아내가 있었냐고 천연덕스럽게 반문하듯, 장르물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우선 과연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제시해준 이 상황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인가에대한 의심이 들 수 밖에.

즉 믿을 수 있는 건 유일하게 강우현의 진술 밖에 없는 상황에서 <트랩>의 전개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우현과 그런 우현을 유일하게 믿었던 후배 형사의 사고를 목격한 고동국이 함께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병으로 등장하는 모호한 인물들, 주인공 강서현의 진실에서 부터, 그와 아내의, 그와 비서의 의문스런 관계, 그리고 사냥꾼이라는 산장 까페 주인과, 사냥꾼으로 보이는 검은 옷의 남자들, 이 속내를 알 수 없는 등장 인물들과 '인간 사냥'이라는 무시무시한 설정이 다음 회를 기약하게 한다. 

 
트랩ⓒ ocn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어쩐지 하드 보일드한 추적을 하기 보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삼시 세끼'를 만들어 야 할 것같은 이서진과 김광규 등에, 이제는 형사라는 역할이 익숙해도 너무 익숙한 성동일의 조합이 가져온 신선하지만 어쩐지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등장 인물들의 면면이 안타깝게도 우선 그렇다. 

거기에 '드라마틱 시네마'를 표방한 만큼 영화처럼 시선을 잡아끄는 '다크'한 화면과 배경은 그럴 듯하지만, 윤성호의 하드캐리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들이닥친 아직은 그 어떤 맥락도 알 수 없는 '사냥'이란 설정의 낯섬이다. '사냥'은 하드보일드한 구상으로는 가장 절묘한 설정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비현실적이기에 드라마 속 이서진일가가 사냥을 당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믿기 힘들어 하는 만큼 시청자들도 이 설정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다. 예능에서 더 익숙한 출연진들, 거기에 생소한 설정, 과연 이 난제를 넘어 7부작의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완벽한 타인>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성공을 거둘 것인지, <트랩>의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2. 10. 16:05

작년에 왔던, 아니 제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아니라, 영애씨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무려 시즌 17이다.  2007년 그때만 해도 영애씨보다는 대중에게는 '출산드라'로 더 익숙했던 김현숙을 주인공으로 tvn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성우의 나레이션을 배경으로 이영애라는 '스타성'있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런 이름에서 오는 기대와 달리 남들보다 조금은 듬직해서 눈에 띄는 여주인공, 지금이라면 그런 그녀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했다간 '성희롱'이 되겠지만, 무려 2007년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야무진 포부는 영애씨의 수더분한 외모에 가려 그녀의 갈길을 막고, 그래서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았던 영애씨는 불가피하게 '막돼먹을 수' 밖에 없다는 이 '신종 시트콤'.

당시만 해도 케이블이라는 특성을 살려 드라마라면 주로 성인들 대상의 드라마를 제작했던 tvn은 <막돼먹은 영애씨>를 통해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tvn의 진짜 터줏대감 영애씨는 인기리에 방송되던 모든 시트콤들이 사라져 가는 세월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이제 시즌 17에 이르렀다. 그리고 돌아온 시즌 17의 첫 회, 시청률 2.6%라는 수치가 무색하게 막돼먹은 영애씨를 기다린 팬들의 환호와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겨우 금요일 하루지만 돌아올 금요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영애씨로 한 주의 피로가 싹 씻어질 꺼 같으니까. 

 

 

여전한 영애씨
시작은 뜻밖에도 멧돼지다. 체급으로 보면 영애씨와 막상막하, 하지만 돌진하는 멧돼지 앞에 아기띠를 한 영애씨는 혼비백산 도망칠 수 밖에 없다. 질주하는 영애씨를 통해 시즌 16에서 결혼을 했던 그녀에게 아기가 있고, 현재 그녀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는 걸 시청자들은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낙원사를 물려받아 고전하던 영애씨의 남편 이승준(어쩐지 그의 이름보다 '작사'라는 그의 별명이 더 익숙한)은 이곳 평창 건설현장에 취직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잘 됐건 안됐건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온 영애씨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엄마 역할에, 처음 경험해 보는 아내 역할이 영 적응이 쉽지 않다. 집안은 온통 아이 물건에, 서서 밥 한 술 뜨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거기다 남편 월급받아 생활하는 처지가 어쩐지 눈치가 보인다. 그럼에도 배운 도둑질 못숨긴다고, 그녀 눈에 띄는 건 간판이다. 

이렇게 시즌 17로 돌아온 영애씨의 캐릭터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이다. 매 시즌마다 그 시절 사회적 고충을 겪는 여성으로 분했던 영애씨, 이번 시즌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 고민꺼리인 경단녀 영애씨로 돌아왔다. 

여전히 철없이 해맑은 남편은 아이가 의사소통할 3,4년 뒤에 영애씨가 다시 사회로 나설 것을 생각하지만, 남편 월급이 눈치가 보여 옷 한 벌 제대로 사지 못하는 처지에, 모처럼 만난 낙원사 동료들은 영애씨를 소외시키며 자신들만이 아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치킨집을 연 동생은 홑벌이로 살기 힘들다며 영애씨를 압박한다. 거기에 라미란의 급부탁으로 도와준 디자인이 새로온 사장의 칭찬을 받자 아직 내가 '뒤쳐지진 않았어'라는 자부심도 생긴다. 

하지만 사회적인 고뇌만으로 영애씨 캐릭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막돼먹'지 않아서야 어디 영애씨인가. 아니나 다를까, 급작스러운 호출에 함께 서울로 동행하지 못하게 된 남편때문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더 중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젖을 먹이던 영애씨는 우는 아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버스 승객과 부딪치게 된다. 

그런데 이 버스 승객이 다름아닌 정보석, 전무후무하게 급한 성격의 그는 아이를 데리고 타서 울리고 가슴 노출을 하고, 얼린 모유를 자신에게 안긴 영애씨에게 다짜고짜 '맘충'이라며 막말을 해대고,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런 그를 택시를 타고 쫓아가며 '그렇게 살지 말라'며 맞대응을 한다. 

 

   

 

터줏대감과 굴러온 사장의 절묘한 콜라보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를 완성시키는 건 바로 출연진들이다. 시즌 12부터 출연했지만 이제는 터줏대감같은 조연진들의 여전한 활약이 첫 회부터 화려하다. 

한때는 작은 사장이었지만 이제는 영애씨 남편이 된 '소름끼치게' 영애씨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눈치도 없는 이승준에, 세간에 회자되었던 '으르렁' 댄스 저리 가라하게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등장한 '넣어둬, 넣어둬'의 눈치없는 라미란의 건재도 반갑다. 거기에 1회부터 진짜 터줏대감 엄마, 아빠에 윤서현의 여전함도, 얄미운 정지순에 이제는 어엿한 낙원사 사원이 된 규, 김혁규의 존재감도 빛난다. 거기에 시즌 16부터 등장한 이규한의 생활 연기는 감칠 맛이 넘치고. 

그러나 무엇보다 시즌 17을 기대하게 된 건, <거침없이 하이킥> 쥬얼리 정의 시트콤 귀환이다. 영애씨와 버스 안에서 티격태격으로 부터 시작해서, 굴러온 돌일 것이라는 낙원사 직원들의 예단이 무색하게 등장하면서 부터 '전무후무한 업계 경력'이 무색하게 직원들을 다그치고 쩔쩔매게 만드는 정보석의 등장과 낙원사 직원들의 '갑과 을'콜라보는 비록 첫 회에 불과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를 기다렸던 시청자들을 흥분시킨다. 

가장 현실적인 설정, 그 현실로 부터 비롯되는 웃픈 상황이라는 <막돼먹은 영애씨>, 그동안 종종 영애씨의 남친 찾기, 혹은 남편 찾기로 갈짓자를 그리던 시즌은 이제 17에 이르러 강력한 사장님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애환과 페이소스를 담뿍 담은 생활 속 웃음으로 다시 한번 제 궤도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어넣는다. 부디 경단녀 영애씨의 활약이 순조로워 영애씨가 영애씨 부모님이 될 때까지 시즌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2. 9. 15:40

채널을 돌리다 어라? 했다, <도깨비>를 재방송해주나?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꽤 돼지 않을까? <진심이 닿다>말이다. <도깨비>에서 불멸의 비극적 사랑으로 인기를 끌었던 저승사자의 이동욱과 써니의 유인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들 것이다. 아니, 애초에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의 애절했던 사랑에 마음이 빼았겼던 사람들이 그 저승이와 써니가 출연한다 해서 <진심이 닿다>에 우선 채널을 고정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굳이 그런 관심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진심이 닿다> 속 이동욱이 분한 권정록은 변호사지만, 색깔만 달라졌을 뿐 <도깨비> 속 예의 롱코트를 '착장'한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했던 저승이의 표정도 그대로다. 유인나라고 다를까? 한때는 정치적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은 황후였지만, 현세의 써니가 자신의 무기로 삼았던 그 '철없음'은 이제 <진심이 닿다> 속 한류 스타인 오윤서에겐 성격으로 드러난다. 굳이 다르기 보다는 같아서 보게 만들고 싶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진심이 닿다> , 그래서 더 이 드라마의 진심이 의심스럽다. 

<진심이 닿다> 그리고 <도깨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랑하는 여인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던 비극적 사랑,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해피엔딩을 빌었다. 드라마의 마지막 여배우와 강력계 형사로 환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한번 같이 호흡을 맞춘 두 남녀 배우가 다시 만나기 힘든 드라마계에서 이동욱과 유인나의 만남은 그러려니할 수 있었다.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환생이라도 한 듯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오마주'한 듯 해도 거기까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니 <도깨비>말고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2018년 중반기 tvn의 화제작이었던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다. 물론 두 작품의 배경은 다르다. 부회장과 비서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변호사와 비서의 <진심이 닿다>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특별한 서사보다는 두 남녀 배우의 이른바 '케미'에 전적으로 의존한 작품이라는 것과, 츤데레 남자 주인공에, 발랄하고 자기 주도적인 원맨쇼에 가까운 캐릭터의 여주인공의 조화라는 점, 거기에 두 주인공과 호흡할 다채로운 캐릭터의 주변 조연 캐릭터가 포진하여 이들과의 시트콤에 가까운 설정 등으로 극을 채워간다는 점에서 <진심이 닿다>는 어쩔 수 없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을 떠올리게 한다.

<김비서>가 서사적 전개를 차치하고 두 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의 놀라운 캐미로 8%를 넘어선 시청률로 tvn의 효자로 등극했듯이, <진심이 닿다>는 이미 <도깨비>를 통해 화제성이 된 두 주인공 이동욱과 유인나의 캐스팅을 통해 그런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연하고자 한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진심이 닿다>로 온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는 아직까지는 전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외려, 전작에서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두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도깨비> 속 써니가 '철없음'을 혈혈단신 천애고아로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로 장착했다면, <진심이 닿다> 속 오윤서는 본의 아닌 사건에 연루되어 숙고의 기간을 가진 한류 스타임에도 그냥 철이 없다.  나름 드라마는 '장기'라 생각하며 한류 스타 오윤서를 설명하는 씬으로 각종 씨에프의 오윤서 버전을 빈번하게 삽입하는데, 그 자체가 보는 시청자들을 인내심에 빠뜨리게 한다. 아니 그것조차도 오윤서의 애교라 친다쳐도, 드라마는 2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오윤서의 원맨쇼와 그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벌여놓으며 조급한 시청자들의 손을 자꾸 리모컨으로 향하게 한다. 

 

 

상투적인, 너무도 상투적인 
츤데레 남주와 철없는 여주의 만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트콤과 같은 배경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2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해프닝' 이상 두 주인공의 '진심'을 제대로 드러내 주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철없음을 넘어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오글거리는 설정들을 참고 참아 2회 중반 쯤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철없음이 써니의 철없음처럼 거친 연예계 생활을 버텨낸 나름의 무기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짜고짜 냉랭함을 넘어 싸가지 없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갑자기 호의적 버전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이 닿다>를 보며 시청자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건 이미 전작에서 익숙한 두 남녀 주인공을 차치하고서라도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상투성' 때문이다.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 철없는 거 같지만 알고 보면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에, 남자의 첫사랑은 똑똑하고 당찬 걸크러쉬 여자 검사이다. 여검사 유여름을 설명하는 첫 씬, 검사들 회의 장면 당연히 남자 검사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 여성에게 성 편견에 사로잡힌 예단을 하고, 정의로운 여검사는 그런 남자 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은 이제 여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되는가 싶다. 

그렇게 주요 캐릭터의 설정과 함께 오윤서의 소속사 대표는 입으로는 오윤서에 대한 정을 읊어대지만 정작 손해는 절대 감수하지 않는 이해타산적인 인물이요, 그런 소속사 대표의 부탁으로 오윤서를 위장 취업시켜준 로펌 대표는 알고보니 오윤서의 열렬한 팬으로 불철주야 오윤서를 향한 '덕심'에 불타오른다. 여자만 보면 매력을 흘리지만 알고보면 마마보인 이혼 전문 변호사에, 극소심한 듯하지만 속내를 숨길 수 없는 변호사에, 능력자 터줏대감 비서와 그를 흠모하는 깡패같은 사무장이라니. 이준혁, 오정세, 심형탁, 장소연, 박경혜, 박지환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로 커버되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이젠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보니, 이들과 오윤서가 벌이는 해프닝들이 극의 활기가 되기 보다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보았던 시트콤의 재방송을 보는 듯하다. 

 

 

결국 2018년의 인기작이었던 웹툰 원작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2019년 <도깨비>의 두 주인공을 소환하여 다양한 조연진들의 포진시켜 다시 한번 비서 로코의 그 영광을 재연하려 했지만, 2회에 이미 상승세가 꺽여버린 <진심이 닿다>가 보여줄 진심의 길은 험란하기만 하다. (1회 4.736% -> 2회 4.583%)

무엇보다 이미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배우들의 호흡에 힘입어 인기가 있었지만 웹툰 원작 서사의 부실함을 지적받았던 바, 그러한 비판에 대한 개선없이  인기있는 컨셉의 무분별한 자기 복제가 <진심이 닿다>의 부진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로 호평을 받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로 인기를 얻은 박준화 연출의 차기작이기에 더욱 아쉽다. 

특히 케이블, 종편의 가세로 드라마 제작 편수의 폭발적 증가와 그를 감당할 질좋은 작품들이 양산이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2014년 <미생> 이래 웹툰은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콘텐츠 제공처가 되어왔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로코' 버전의 웹툰의 반복적 드라마화는 결국 <계룡선녀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등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진심이 닿다> 역시 그런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진심이 닿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드라마와 그를 따르지 못하는 제작 퀄리티 혹은 관습적인 제작 방식 등의 문제로 드라마계 전체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by meditator 2019. 2. 8. 14:54

<시프트>의 막을 연 건 '미세먼지'이다. <호모더스트쿠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를 먼저 챙기는 세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가 된 슬픈 족속, 바로 미세먼지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오늘의 한국인들, 그들이 <시프트>의 첫 주인공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될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한 대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공기청정기가 7대가 되었다는 이 시대 대표적 호모더스트쿠스 정시아,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네이버 까페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미세먼지 치수를 믿지 못해 '어스널스쿨'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미세먼지 예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셀프 예보족'도 등장했다. 까페에 올라오는 '셀프 예보', 순식간에 2000 명이 조회를 한다. 심지어 어디를 가든 미세먼지 측정기를 들고 다니고, 집에서 미세먼지 지수가 0이 안되면 두려워 하는 '미세먼지 불안장애'까지 등장했다. 

미세먼지 천동설? -미세먼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외부 유입 물질에 대해 갖는 반감과 분노가 건강한 사회 문제에 대한 각성인가 하는 것이다.  외려 우리 안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주대학교 예방의학 교실 장재연 교수는 '미세먼지 천동설'을 제기한다. 그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는 '좁은 지식'에 갇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신봉했듯이 오늘날 사람들 역시 미세먼지에 대한 왜곡된 정보로 인해 데마고기나 마타도어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닐지 의문을 제기한다. 

  

   

장교수가 제기하는 첫 번째 오해는 환기에 대한 것이다. 미세먼지 지수가 높은 날 창문을 열어놓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장교수는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집에서 조리할 때가 밖의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마스크가 꼭 좋은 건 아니라고 덧붙인다. 외국의 경우, 특히 싱가폴에서는 미세먼지 지수가 200이상일 때에만 이른바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쓰도록 권장하거나, 불편하면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 서서 마스크를 쓰도록 권장하는 상황, 장교수는 '산소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숨차다는 신체의 즉각적 반응에 유의해야 하며 외려 미세먼지를 잘 막는 마스크가 산소 공급이 안돼 신체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지금의 미세먼지 상황이 최악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산업화가 극심하던 1950년대 런던처럼,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가 한참이던, 굴뚝산업이 융성하던 1970년대, 즉 지금의 엄마들이 한참 자라나던 그 시기가 가장 미세먼지가 심하던 시절이었으며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울 등의 공기는 좋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장교수만이 아니다. 각 계의 전문가들 100 중 53%가 지금의 미세먼지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적 반응에 대해 '지나친 걱정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즉 각약각색의 정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부정적 정보에 대해 더 큰 가중치를 두는 인간의 생존 본능적 반응이 판단을 방해하며, 거기에 현상만을 부각시켜 보도하는 언론 등의 보도 태도 등이 대중들을 불안장애 이를 정도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해외 언론이 중국 스모그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우리나라 언론의 중국 책임론이 증가되며 정작 우리 안의 원인에 대한 해결할 이성적 계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즉 좀 더 차분한 접근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소통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심각한 초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은? 
그렇다면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기질의 문제 중 심각한 건 2차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이다. 

자동차 매연 등 기체 상태의 유기 화합물질, 정유 산업 시설 들에서 발생하는질 소 산화물이 자외선과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 대기 중 초미세먼지는 이러한 2차 생성물질로 인한 것이 76%나 된다. 최근들어 초미세먼지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고 있지만, 정부나 사람들 모두 그 원인과  대책에 있어 인식은 미비하다. 

   

 

1952년 12월 열 발자국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런던의 스모그 5일 동안의 이 나쁜 공기의 역습으로 무려 1200 명이 사망했다. 추운 겨울 급작스레 늘어났던 석탄 난방에 그 원인이었던 것, 영국 의회는 1956년모든 굴뚝에서 매연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시 처벌하는  '청정대기법'을 발의했다. 또한 도시 내에서 석탄을 때우는 걸 금지시켰다. 거기에 더해 영국은 2025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원자력과 관련된 논의는 활발하지만 정작 화력 발전에 대한 인식은 미흡하다. 석탄 화력 61기가 가동중인 우리나라 발전 동력에서 석탄 화력에대한 의존도는 높다. 심지어 OECD 중 국토 면적 대비 석탄 발전 밀집도가 세계 1위다. 

 

 

  
경유차의 문제도 심각하다. 일본은  8~90년대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고 주민 소송까지 발생하자, 그 원인을 자동차에서 찾고 경유차 NO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2003년부터 도쿄에서 경유차 주행이 금지하는 등 정책에 따라  2000년대 10년 동안 경유차의 절반을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보다 적고 연비도 좋다는 이유로 디젤 차량을 권장하는 '클린 디젤' 정책으로 외려 디젤(경유)  차량이 더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환경'보다는 '연비'를 우선하는 시민들의 의식도 한 몫을 하며 초미세먼지의 역습을 낳게 된 것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자동차 누적대수 22,882,035대로 인구 2,3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그 중 수도권 차량만 44.4%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초미세먼지 공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거기에 부산 공기 질의 51.4% , 인천, 울산 등 지역별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유차 50만대에 해당하는 선박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부재하다. 

2018년에서야 겨우 폐기된 '클린 디젤 정책', 다큐는 정책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책의 변화까지 추동해낼 시민들의 의식 변화,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 독일 슈트트가르트, 그 중에서도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네카토어 지역 시민들은 '미세먼지가 우리를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 정부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요구하고 법적 조치를 끌어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왜곡된 정보로 부터 벗어나 우리 주변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인식의 변화이다. 실제 런던보다도 3배가 넘는 4대문 안의 교통 혼잡에 대해 런던의 경우처럼, 혼잡 통행료라던가, 공해를 일으키는 차에 대한 독성 부담금 등 정책적 규제에 대한, 즉 내가 손해보더라도 기꺼이 환경을 위해 그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시민 의식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by meditator 2019. 2. 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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