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조선 총잡이> 마지막 회,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후 겨우 목숨을 건진 박윤강(이준기 분)과 정수인(남상미 분)은 산채를 꾸려 사람들과 생활을 한다. 고부에서 탐관오리 군수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소식을 들은 윤강은 부하들을 이끌고 출동하고, 고부 군수 조병갑은 '총잡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혼비백산 하는 걸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 다름아닌 동학 농민 전쟁의 도화선이 된 바로 그 고부 민란의 그 문제적 인물 아닌가? 그렇다면, 그 조병갑을 혼내주러 온다는 박윤강은? 전봉준이 되는 것인가? 아니, 말을 타고 총을 쏘며 나타나는 의적 전봉준이라니?
이렇게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아는 역사적 사실에, 의인 박윤강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조선 총잡이>는 마지막으로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어쩌면, 이 마지막 회의 무리수는, <조선 총잡이>란 드라마를 내내 지탱해 왔던 딜레마의 한 증표일 뿐일 지도.
가장 전근대적인 국가 '조선'과, 근대적인 무기 '총잡이'를 역설적으로 합침으로써, <조선 총잡이>는 근대의 물결에 휘말린 조선 말기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을 그리고자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조선 제일의 무관인 아버지를 둔 아들이,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나서지만, 그 또한 아버지를 저격했던 자들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만다. 바로 그때, 운명적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인물이 바로 김옥균! 그렇게 박윤강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본에 보내지고, 근대적 인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에 반해, 어찌보면 운명적으로 개화를 선택하게 된 박윤강과 달리, 일찌기 통역관으로 외래의 문물에 일찌기 눈을 뜬 아버지 덕분에, 조선 말기 '신지식인'으로 활약하는 박윤강의 사랑 정수인의 경우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개화파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권신의 서자로서 태생적 한계를 개화 사상과 일본 유학을 통해 풀어보려 했던 김호경(한주완 분)이야말로 어찌보면 가장 개화파의 전형적 인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뜻하지 않게 김옥균의 도움으로 일본을 가게 되어 운명적으로 개화적 인물이 된 박윤강과, 철학적 세계관으로 자기 확신이 확고했던 정수인,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그들의 활약은, 임오군란,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의 조선을 살아낸 현실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사극의 주인공으로서 정의로운 의인과 그가 사랑한 강단있는 여인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렇게 전형적인 두 주인공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역사가 된다. 개화적 인물이 된 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드라마 중후반에 이르도록 드라마적 갈등의 구도는 마치 정조의 현신인 듯 개혁 군주로서의 포부를 지닌 고종과, 그에 대립되는 척신 세력으로 이어진다. 개화파에 속하는 주인공들, 심지어 신식 군대 별기군에 중요 직책을 맡은 김호경 덕분에, '임오군란'은 척신들의 손아귀에 놀아난 구식 군대의 해프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척신들의 전횡에 대항하여 자신의 세력으로 개화파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고종 캐릭터는, 무기력한 그의 역사적 현실로 인해, 드라마의 중반 이후 방향을 잃는다. 오죽하면, 마지막 회, 갑신정변을 겪고 갑오개혁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그 승인의 이유가, 더는 자신의 주변 인물이 자기로 인해 죽기를 원하는 않는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상을 가진 초라한 인물로 귀결된다.
명성황후 역시 마찬가지다. 개화 세력인 수인을 자신의 측근으로 들이는 등 개화 세력에 친근한 인물이었다가, 정작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권신 영의정을 활용해 청국군을 불러 들이는데 앞장서는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하지만, 명성황후의 취약한 외세관은 드러나지 않은 채, 현명한 국모이거나, 지아비인 고종을 대신할 만한 강단있는 리더의 모습으로만 그려지기 십상이다.
이런 고종의 모습이 옳다거나, 저런 명성황후의 모습이 맞았다가 아니라, 드라마가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주인공들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을 일관성 없이 편의적으로 재해석해 냈다는데 <조선 총잡이>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개화기의 문제적 인물 김옥균으로 가면 한술 더 뜬다. 우리 역사에서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그는, 박윤강을 구해 일본으로 보내준 의인이었다가, 드라마 후반 등장하여, 박윤강, 정수인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는가 싶더니, 갑신정변 과정에서, 느닷없이 주인공들을 배신한 채, 무모한 개혁을 시도하는가 싶더니, 그 마저도 주인공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비겁하게 일신의 안전만을 도모한 비겁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역사적으로 '갑신정변'은 일본 유학등을 거쳐 개화에 눈을 뜬 급진적인 신진 엘리트에 의해 주도된 하향식 개혁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들의 급진적인 성향에 '정변'으로 불을 붙인 것은, 명성황후의 측근인 민영익과, 명성황후의 '변심'이다. 이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이들의 후원을 얻어 정권의 힘을 확장시켜 나갔던 이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편의에 따라, 급진 개화파인 김옥균 등을 소외시킨데서 '갑신정변'의 단초는 마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개혁 세력인 김옥균은, <조선 총잡이>에서 비겁한 권력욕을 가진 사람으로만 그려진다. 그럼으로써, 이들과 함께 한 박윤강, 정수인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윤강과 정수인은 김옥균등이 인지하지 못한 '신분제 타파' 등의 갑오개혁의 진정성을 실천하고자 한 혁명적 의식의 소유자이며, 김옥균등이 깨닫지 못한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위험성을 미리 간파한 현자들이다. 박윤강과, 정수인은 비록 갑신정변에 합류했지만, 당시 급진적 개혁 세력들이 가진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들로, 덕분에 그들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 그들이 도모한 정변의 책임을 모면해 갈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완벽한 역사적 인식을 가진 인물들로, 역사적 원죄를 뒤집어 쓸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앞장서 왕과 왕비를 궁궐 밖으로 유인하고, 그를 위해 폭약을 폭파하려던 시도를 하기까지 한 이들은, 김옥균 등의 오판으로 실패한 '개혁'에 대해 그 어떤 죄책감이나, 반성도 없이, 다시 한번 '백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전봉준같은 식이라니? 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만, 개화파의 사상적 계보를 그나마 가지고 있는 조선 말기의 운동 방식이라면, 그나마 '애국 계몽 운동'이 어울릴 법도 하건만, 가장 이질적인, 동학 농민 운동이라니? 그것도 쾌걸 조로식으로 총을 들고 악인을 혼내주러 출동하다니 말이다. 역사적 패러디라 해도, 이건 '썩소'를 불러올 상상력이다.
애초에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으로 행세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박윤강이 어떻게 그리 현명한 일본관을 가질 수 있었으며, 고종의 청조차 마다한 채 아비의 원수를 갚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민중의 대변자' 연 하며 갑신정변의 성격을 확대시키는지, 드라마는 타당한 설명을 부여하지 못한다. 아비의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에 척신들의 권력에 항거한 거까지는 맥락이 닿지만, 그것이, 이후의 개화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인'으로서 박윤강을 설명해 내기에 드라마의 전개는 역부족이었다.
조선 말기, 가족적 상처를 입은 젊은이가 뜻하지 않게 개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어 '갑신정변'에 이르게 된 젊은이를 그리고자 한 역사적 상상력은 그간 드라마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반가운 시도다. 하지만 친일과, 개화라는 우리 역사가 가졌던 딜레마를 소화해 내기에 <조선 총잡이>버거워 한다. 개화기의 지식인으로 그리자니, 그의 결말이 김옥균과 같은 친일파가 되어야 할 것같고, 그렇지 않은 인물로 표현하려니, 역사적 현실성을 상실한 뻔한 영웅이 되고 만다.
역사를 극복하는 것과, 역사를 윤색하는 것은 다르다. 역사적 인물로서, 당대를 살아낸 인물로서의 현실감을 놓쳐서는 안된다. <조선 총잡이>의 박윤강은, 해석으로서의 역사보다는, 역사를 밑밥으로 한 영웅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차라리, 박윤강이 김옥균처럼, 한정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면, <조선 총잡이>의 운명적 정취는 한결 배가되었을 것이다. 총알도 피해가는 고수 총잡이의 비현실성이 드라마의 전개 속에서까지 이어진듯한 드라마, <조선 총잡이>,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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