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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부터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 이름이 있다. 오늘은 또 다른 이름이 검색어 1위를 달린다. 모두 같은 걸그룹의 멤버 이름이다. 어제 이름이 올라갔던 여자 아이돌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고, 오늘 아침 또 다른 멤버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찌기 그녀들의 선배였던 아이돌 그룹의 생명을 담보로 했던 죽음의 질주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이제 막 이름을 알리던 그녀들의 생명과 육체를 다시 한번 담보로 삼았다. 어제 음원차트에는 그녀들의 노래가, 데뷔 후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걸 기뻐할 그녀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병실에 있다. 여전히 당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아이돌'이지만, 그들의 삶은, 이번 사고에서 드러나듯이, 언제나 척박하다. 이름을 알기기 위해 사선을 넘는 밤길 폭주를 마다하지 않고, 겨우 얻어진 이름값은 하지만 세월 속에 무상하다. 하물며,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전직 아이돌'임에랴.
9월 4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의 게스트들은 '노목' 형제들이다. 나이든 나무의 노목이 아니라, 너무 살이 쪄서 목이 없어져 버린 한때 잘 나가던 가수들의 집합체를 이름이다. 신해철, 윤민수, 노유민. 이름만 딱 봐도, 그 중에서 노유민이 mc들의 만만한 장난감이라는게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타이거'를 들먹이다가도 헤헤거리며 웃던 신해철이 정색을 하며, 이제 그만 하지 하면, 나머지 궁금한 점은 인터넷에 물어보는 걸로 하며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주는 예의(?)를 차리거나, 신해철, 노유민이라는 멤버 때문에, 별 재미가 없어 '타투'라도 해야하나 걱정하는 윤민수와 달리, 한 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달라진 외모로 등장한 노유민은 시종일관 mc들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전직 아이돌'인 그는, 이제 두 군데의 까페를 운영하며 그럭저럭 먹고살만하여 김구라가 솔깃할만한 부의 소유자도 아니요, 겨우 이제는 사라진 아이돌 그룹의 서브 보컬로 윤종신이 접어줄만한 음악적 역량의 소유자도 아니며, 규현이 그나마 껌뻑죽을 sm소속도 아니니, 이보다 더 만만한 게스트가 없다.
게다가 속도 없다. 김구라를 비롯한 mc들이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며 우스개를 만들어도, 허허거리며 웃다 결국 10년 후의 니 모습이라며 결국 선배 아이돌이 일침을 날리게 했던 규현의 깐죽거림에도, 노유민은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데뷔 때부터, 해맑았던 그 어린 왕자같던 그 모습이, 비록 외모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몇 배의 부피를 둘렀지만, 그 소년의 해맑음은, 여전히 노유민의 정서로 자리잡은 듯했다. 출연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았던 그의 '집착적' 부부 관계도, 정작 당사자가 해맑은 웃음을 거두지 않으니, 김구라마저, 사람살이는 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는 거라며 포장을 해준다. 과거 사진을 들이대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느냐며 다그쳐도, 웃음이 거둬지지 않는다.
(사진; 뉴스엔)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언제나 그렇듯, 광야의 하이에나들같은 mc들에게 가장 만만한 먹잇감같은 노유민인데, mc들이 무슨 말을 해도 노염을 타지 않으니, 어느순간인가 부터, 그런 노유민을 신기해 하기 시작한다. 오죽하면, 김구라가, 모든 사람을 까페 손님대하듯 한달까. 그런 노유민에 대해, 방송 말미,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신해철이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바로 그의 끊이지 않는 미소의 원천이 그의 '행복감'이라고. 그런 신해철의 정의에, 노유민은 당연하다는 듯 답한다. 그렇다고, 지금 난 행복하다고.
방송가에서 '전직 아이돌'이란 명칭은 그리 아름다운 대명사가 아니다. 한때는 누군가의 우상이었지만, 그보다 젊고 세련된 누군가가 등장함으로써, 한켠으로 밀려난, 그래서, 당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그 이름값의 언저리에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궁색함을 숨기지 않고, 그 무엇이라도 하거나, 여전히 당시의 명망에 기대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거나 하기가 십상인 존재들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같은 아이돌임에도, 후배인,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에 속하는 규현같은 친구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도 발끈할 뿐, 딱히 이렇다할 자구책이 없어보이는 것 역시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전직 아이돌들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노유민의 모습이 달랐던 것은, 그렇게 여전히 전직 아이돌이라는 울타리를 이제는 벗어나 버린, 진짜 '파랑새'를 찾은 것 같은 그의 모습 때문이다. 과거 꽃미남 시절의 사진을 들이대도, 흘러간 영광을 조롱해도, 이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그저 무른 호박에 이빨 자국만도 못한 잡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이다보니, <라디오 스타>의 약빨이 먹히지 않을 수 밖에, <라디오 스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의 목적이란게, mc들의 먹잇감이 되어도 좋으니, 자신의 존재감 한번 떨쳐보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런 <라디오 스타>의 논리를 보기 좋게 벗어나 버린, 노유민의 행복감은, 묘하게도, '십년 후의 니 모습'이라던 또 다른 전직 아이돌의 일침보다, 통쾌하다. 아니,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 연연하며 살아가야 하는 연예인의 생리를 교묘하게 웃음의 소재로 이용해 왔던 <라디오 스타> 조차도, 결국, 그래 '넌 행복해'라며 항복하게 만들어 버린 속시원함이다. 이제 대중의 호불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노목'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업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생활인의 당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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