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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과 장나라는 2002년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까칠한 재벌남 한기태와 제목처럼 내세울 것없지만 언제나 밝고 씩씩한 19 소녀 차양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르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재벌남과 소텨처럼 밝은(?) 여자가 되어 로맨틱 코미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조우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12년 전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는 이유만으로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첫 회를 연 드라마에서 그 예전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스했던 한기태와, 놀이공원에서 동물 탈을 뒤집어 쓰는 일을 해도 씩씩했던 차양순 대신,<주군의 태양> 주중원과 태공실이 다시 돌아온 듯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샴푸 모델의 촬영 현장에 난입한 장인 화학의 회장 이건(장혁 분)은 트집을 잡는 모델대신 스스로 긴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물에 적셔 웃통을 제낀 채 가슴을 열어제낀채 호탕한 웃음을 웃어제끼며 자신과 자신의 기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샴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장혁이 재벌남이며, 그가 보인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안하무인의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진; 뉴스24)
다음 장면, 양 손 가들히 커피와 도넛을 들고 뛰는 김미영, 그녀는 스스로 '포스트 잇'같이 존재감없다고 평가하는 로펌의 계약직 사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존재감은 사무실 곳곳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위해 불려지는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절을 할 줄 모르는 그녀의 성격 덕분에 그녀는 첫 장면 커피 심부름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후 장혁과 만나게 되는 그 장면의 계기가 되는 상사 딸의 사탕 심부름까지 차고도 넘친다.
괴팍한 재벌남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자라, 이 두 사람을 통해 시청자들은 12년전 <명랑 소녀 성공기>보다는 2013년 인기를 끌었던 홍자매의 <주군의 태양>이 자연스레 떠올려 진다. 가진 것은 많지만, 심리적 하자가 있었던 주중원처럼, 이건은 능력있는 재벌이지만, 허황한 웃음에서도 당장 느껴지듯이 결핍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요, 김미영은 그 예전에 당차고 씩씩했던 소녀 대신, 귀신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부탁에 휘말려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가진 것 없는 하지만 마음만은 착한 여자이다.
귀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와 태공실과 달리,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치 못하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포스트 잇같다고 폄하하는 김미영은 직장 생활을 하는 그 누군가라면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공감가는 캐릭터이다. 동시에, 어떤 드라마에선가 보았던 거 같은 익숙한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직도 소녀같은 눈망울을 지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 캐릭터는, 언제나 장나라가 해왔던 연기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이기에 공감을 일으키는 묘한 연민의 대상이 되어 나타난다. 진부함과 공감의 경계, 거기에 첫 회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라는 캐릭터가 서있다.
그에 반해, <주군의 태양> 첫 회, 늘 진지한 역할만 했던 소지섭의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재벌남의 연기로, 연기력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듯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은 그 예전 까칠하고 무심한 재벌남 대신, 굳이 <추노>의 ost를 끌어오지 않아도, 당장이라도 '언년아~'라고 외칠 것만 같은 진지한(?) 발성과, 과장된 연기로 <주군의 태양> 첫 회 오그라드는 손발을 견뎌내며 소지섭의 연기를 참아내야 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건 역의 장혁 연기가 오버 페이스인지, 아니면 이건으로서의 독특한 설정인지 판가름내기 위한 좀 더 장혁의 연기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여진다.
아니 참고 견뎌내야 할 것은 장혁의 연기만이 아니다. 젊은이들 결혼률이 나날이 감소해 가는 세상에, 전주 이씨 22대 종손에 서른 전에 요절해버린 선조들을 가진 대을 이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이건의 결혼 해프닝에, 마카오 여행권을 노려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 뻔해 보이는 변호사의 접근에도 무방비한 김미영의 '착함'에, 이 둘의 첫 만남을 위한 박진감넘치는(?) 장면을 위해 온갖 개들의 찬조출연조차 마다하지 않는 뻔한 설정과,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물에 떠내려 가는 물병을 다짜고짜 잡아 들이키는 마지막 장면의 어이없는 해프닝까지 로맨틱 코미디니까 봐줘야 하는 것들로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첫 회는 가득차 있다.
<주군의 태양>은 어색했던 소지섭의 연기와, 귀신을 본다는 황당한 설정의 태공실이라는 캐릭터를,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날 수 있는 귀신들의 사연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적 공감을 길어올렸다면,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남과 가진 것 없는 여자라는 로맨틱 익숙한 정석 외에, 어느 지점에서 시청자들의 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2008년 대만 tv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39부작의 드라마이다. 제 아무리 대만에서 히트를 쳤다지만, 2008년의 대만과, 2014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시간적 격차를 과연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극복해 냈는지, 혹은 낼 수 있는지가 아마도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듯싶다. 다짜고짜 원나이트를 위해, 느닷없이 등장한 재벌남 이건을 노린 음모에서부터, 우연이라기에도 과한 김미영의 물병 '원샷'에 다음 회에 이어질 하룻밤까지 시청자들의 인내심 이상의 그 무엇을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불러 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12년 만에 다시 재벌남과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도 못한 소녀로 만난 장혁과 장나라의 처지는 같은 듯 다르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가진 것 많아서 여자를 '케어' 해줄 수 있는 남자와 가진 것 없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여자로 만났지만, 12년이 지난 재벌남은, 그때 그 시절의 부만으론 부족한 듯 한껏 과장된 제스쳐로 결핍을 뚝뚝 흘린다. 씩씩했던 그 시절의 소녀는, 여전히 씩씩하지만 세파에 시달린 듯, 자존감은 결핍되어 있다. 2002년 살기 힘들어도 자부심이 넘쳤던 젊은이들은, 12년이 흐른 후 2014년의 젊은이들처럼, 번듯한 듯 하지만, 결핍이 가득한 세대로 돌아왔다. 과연 이들의 사랑도 동시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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