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쌀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쌀의 의무 수입 물량을 늘려왔다. 하지만, 점점 감소 추세에 있는 쌀 소비량으로, 쌀 수급에 수입 물량이 부담으로 작용하자, 이에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큐 3일>은 쌀 시장 개장 결정이 내려진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 호남 평야 김제 전포 마을의 72시간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동서로 30km, 남북으로 60km, 전라북도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호남 평야는 서울시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하늘을 맞닿은 땅, 이제는 노인이 되어가는 마을 주민의 어린 시절 겨울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바람을 안고 가는 길이 너무 추워 울면서 돌아왔다는 이곳은 사방이 뻥 뚫려 삼복 더위도, 북풍 한설도 고스란히 견뎌내며 벼를 키우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호남 평야 중 동진강 유역 김제 평야에 속하는 전포리 마을은 35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농지 면적으로만 40만평, 쌀 생산량 1500톤이 넘는 대표적인 쌀농사 지대로, 일평생 한눈 팔지 않고 쌀 농사만 지어왔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곳이다. 

새벽 4시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농부들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휘~ 논을 둘러보는 농부, 그저 눈길 한번 주는 것만으로도, 간밤에 논이 안녕한지 한 눈에 알아챌 정도의 고수다. 
하지만, 아침 일별은 그저 아침 인사에 불과하고, 더위 한 점 피할 그늘도 없는 전포리 마을의 논에서 농부들은 이삭을 팬 벼들을 보살피기 위해 한 낮의 더위도 마다치 않는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벼'라는 옛 어른들 말 그대로, 불철주야 농부들의 손길은 쉬지 않는다. 

하지만, 7월 한낮의 하늘을 맞닿아 이어지는 그림같은 논의 풍경과 달리, 농부들 마음의 근심의 그늘은 점점 깊어진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우리의 농촌은 그 산업화의 액받이로, 싼 쌀값의 희생양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 그거 한 잔 값이 바로 쌀 한 되 값이라고, 한번에 후르륵 마셔버리면 없어지는 커피지만, 쌀 한 되를 사면 몇 번을 해먹을 수 있는데' 라며 한 집에 모인 어머님들은 말끝을 흐린다. 덕분에 농부들은 몇 십만 마지기의 논을 가지고도, 아비 세대의 수익만큼도 내지 못한다. 이젠 농사를 지어도, 소를 키워도 대규로, 대량으로 하지 않으면 그나마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 일손을, 비록 융자를 받아 모두 다 빛일 망정 기계 덕분에, 한 시름 놓았는가 싶었는데,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한단다. 72시간 동안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쌀 시장이 한 걱정이다. 그래서일까, 벼들의 금빛 물결이 출렁이던 전포리에 지난 해 처음으로 2만 평의 밭이 생겨났다. 어머니를 돕다 귀농한 박주환씨도 더 이상 수익을 맞추기 힘든 벼 농사 대신,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원예 작물을 키워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시름이 깊은 농민들은, 평생을 살아왔던 전포리 마을이 이 상태로 가면, 앞으로 십 년 후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국내의 쌀 생산 면적과 쌀 재배 농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해 국내 쌀 소비량은 510만 8천 750톤, 그리고, 국내 쌀 생산량은 423만 11톤, 이제 더 이상 쌀이 남아돌지 않는다. 분명 경제학의 원리에 따르면, 쌀값은 하늘을 찔러야 하고, 농부들은 부른 배를 튕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된 정부의 비현실적인 쌀값 정책으로, 산업 우선, 농촌 희생의 일관된 정책으로,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쌀 농사를 지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벼들은 그런 농부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뜨거운 한 낮의 볕, 폭우, 비바람을 견디며, 부지런히 '쌀'을 잉태한다. 리고 그런 벼들을 키우기 위해, 농부들은 씻을 수도 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이제 바닥에 쑤셔 박히다 못해 어디 쳐박혔는지 찾아볼 길이 없고, 그나마 이젠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농부들이 살아낼 수 없는 농촌, 그것이 쌀 개방이후 만난, 전포리 마을 사람들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4. 8. 11. 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