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1990년에 시작한 <PD수첩>이 1000회를 맞이했다. <PD수첩>은 1000회를 맞이하여,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화두인 '돈'을 취재,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3부작을 준비했다. 그중 1부, 대한민국 중산층, 52세 그 후 를 7월 1일 방영했다.
왜 하필 52세일까? 1990년, <PD수첩>이 시작된 바로 그 해,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청년들의 현재 나이가 바로 52세이다. <PD수첩>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회의 특집을 내보낼 수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는 동안,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그 청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PD수첩>이 찾아본 52세의 현실은 암울하다. 올 4월 국내 최대 통신 사업자 KT는 명예 퇴직 신청을 받아 8304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감축했다. 그들의 평균 나이는 바로 평균 51세, <PD수첩>과 함께 첫 사회 생활의 발을 딛었던 그 청년들이다. <PD수첩>이 1000 회를 맞이했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돌아갈 직장이 없다. KT가 인원을 감축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5505명, 2009년 5992명의 인원을 감축한 바 있다. <PD수첩>은 그중 2009년에 명퇴한 퇴직자들의 삶을 찾아본다.
몇 천만원의 명예 퇴직금을 받고 거리로 내몰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09년 명예 퇴직한 이기환씨, 준비없이 내몰린 명예 퇴직 후 야심차게 고물상을 시작해 보았으나 경험 부족으로 날려버리고, 지금은 친구의 상가 한 켠에서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떡을 빚느라 고생중이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그가 고물상을 날려버리는 동안 가장의 노릇을 하느라 분식집을 차려 고군분투 중이다. 아내는 말한다. 정말 열심히 살지만,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 삶의 질은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이기환씨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곱게 직장을 다니던 많은 퇴직자들의 이후의 삶은 이기환씨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용직 택배 회사에 다니는 이도, 짜장면집을 운영하는 이도,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퇴직자 중 정규직에 종사하는 이는 12%, 33%가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40%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퇴직금은 50% 미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60% 이상이고, 80%는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진: 일요신문)
그들이 말하는 중산층이 대단한 게 아니다. 이기환씨 아들의 소망처럼, 6개월에 한번쯤은 여행도 다니고, 한 달에 한번쯤은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을 수 있는 삶, 이제 더는 그런 삶을 그들을 누릴 수 없다.
그래도 자영업이나마 자기 사업이라도 하면 낫지 않느냐고?
요즘 제일 잘 되는 사업이 망한 식당 정리해주는 철거업체 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회자되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은 창업중이다. 그 말의 이면은, KT처럼 명예 퇴직을 통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그나마 퇴직금이라도 유지하겠다고 사업을 벌이고, 그 벌인 이상의 사람들이 망해 나가떨어진다. 한 해 폐업 인구 90만명, 하루에 문 닫는 곳 2500여 곳, 창업시 1년 이내 폐업률 18.5%, 3년 이내 폐업률 46.9%가 우리의 현실이다. KT를 나와 그래도 잘 된다 하여 짜장면집을 연 김철호씨는 1년에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하지만 그 나마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종 업종으로 이익을 내기도 힘든 현실에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명예 퇴직은 KT만의 현실이 아니다. 기업들은 불황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자신의 리스트를 명예 퇴직 등을 통해 털어버리고,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다. 그래서 공장들이 많은 창원의 최고 번화가 상남 지구 같은 곳은, 이제 그렇게 명예 퇴직자들의 창업으로 인해 포화 상태를 넘어, '개미 지옥' '동반 자살'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넘쳐나는 퇴직자들이 창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 효과 증진'을 내세운 대형 유통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그나마 자영업에 내몰린 중산층들의 뿌리를 뒤흔든다. 파주 등에 세워진 대형 아울렛 매장은 파주의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편법으로 파고드는 대형 마트의 체인식 소규모 마트는 그나마 남은 밥줄마저 간당간당하게 위협한다. 자신들의 리스크를 덜기 위해 사람들을 내몬 것도 부족해서, 대기업들이 그들의 밥그릇마저 넘보는 것이,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위협에서 가장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는 대표적 세대가 바로, <PD수첩>과 함께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야심찼던 그 청년들, 이제는 오십대 초반이 된 그들이다.
개인에 대한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는 사회, 그 속에 던져진 조직 속에서 솎아내진 이들, 그래서 기왕의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하고 있는 이들, 비정규직으로는 앞날이 보장되지않아 불안하고, 자영업을 하자니 경험이 없어 망하기 다반사, 그나마 벌여 놓아도 너도나도 해보자고 덤비는 통에 이익은 저만치 뒷전인 우리 사회의 고통을 온 몸으로 감수하고 있는 세대, 그것이 바로 <PD 수첩>이 1000회가 되는 동안 사회에 헌신했던 이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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