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바보 엄마>란 드라마가 있었다.
하희라가 지적 장애인 엄마를 연기했고, 성폭행을 당해 낳은 그 딸로 김현주가 나와, 엄마와의 긴 세월 동안의 애증을 실감나게 보여주었었다.
그런 하히라처럼, 우리 동네에도 지적 장애인 엄마가 한 분 계시다.
커다란 남자 슬리퍼에, 옷 매무매도, 머리 스타일도 다듬지 않아 흐트러진 그런 한 눈에 보기에도 딱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분, 벌써 그 분이 우리 동네에서 눈에 띈 지 10여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10여년 동안 그 분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혼자 다니다, 언제부터이나, 배가 불러오더니, 그 다음엔, 아장아장 이쁜 아가를 포대기에 둘러 업다, 걸리다, 그러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이 그 당시 나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휴, 저런 분이 어떻게 아기를 키우려고......그랬다. 두 팔, 다리, 정신까지 멀쩡한대도, 내가 낳아놓은 새끼 키우기가 이렇게 버겁냐던 시절이었으니, 멀쩡하지 않아(?) 보이던 그 분에게 '육아'란 더더욱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을 버스를 탔는데, 그 분이 거기 계셨다. 아주 이쁘게 다 자란 딸과 함께, 딸이 다듬어 주었을까, 외모도 그 예전 아기를 데리고 다닐 때보다 한결 깔끔해지고, 딸은 어디서 만들었는지, 멋진 종이 접기 작품을 손에 들고 엄마한테 자랑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그 분은 연신 밝은 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 훈훈한 모녀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무엇으로 키울까?' 내 자신에게 깊게 자문해 보았다. 그리고, <여왕의 교실>을 보면서, 모처럼 다시 그 질문을 던져본다.
(사진; 더 스타)
마여진 선생은 분명 바람직한 교육의 롤 모델일 수가 없다.
때로는 감옥의 간수처럼 혹독하게 아이들을 몰아부치고, 때로는 강남 엄마처럼 그 어떤 실수도 용납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회를 거듭하면서, 그런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이 그 예전 먼 길을 찾아온 한석봉에게 불을 끄고 글을 써보라며 떡을 썰던 석봉의 어머니의 교육 방식처럼 깊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인 것이다. 호시탐탐 누군가를 왕따로 만드는 아이들, 자기 밖에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돌려 세우기 위해 강력한 마법과도 같은 교육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6학년 3반은 어느덧 왕따도, 셔틀도 없는 반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엔 저게 어떻게 교육이야? 인권 유린이지 라며 분노하던 마음도, 미묘하게 스쳐가는 마여진 선생의 미소와 더불어, 그녀를, 그녀가 지향했던 교육방식을 이해하기에 이르른다.
마치, 어릴 때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던 엄마의 잔소리를 철들고 나니, 그게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듯이. 그리고, 마여진 선생의 교육 방식에 동의를 하건, 하지않건, 자신의 생활도 없이 아이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마여진 선생의 마음, 그 진심이 바로 교육의 핵심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학온 도진(강찬희)는 여러 번 파양의 경험을 당한 아이이다.
그리고 양부모님에게는 더 이상 파양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갖은 관심을 끌 행동을 해보이다가도, 친구들에게는 그 분풀이라도 하듯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교실의 제왕으로 등극하려 한다. 시험지를 고쳐 자기 꼬붕을 만들고, 대신 숙제 시키기에서부터, 아이들의 여론을 조작해 반장이 되어 갖은 편법을 일삼는 것까지, 도진의 행태와 그것을 지적하는 마여진 선생의 일갈은 마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학적 논고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저 몰락하는 엄석대를 그려냄으로써, 권력의 속성과 거기에 쉽게 길들여지는 인간 군상을 비판하려 했다면, <여왕의 교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정한 교유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으로 던진다. 교장 선생님이 걱정하듯이, 그리고 하나가 발견한 마선생의 목의 상처처럼 마여진 선생에겐 트라우마처럼, 도진이와 같은 아이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마여진 선생은, 그런 도진이의 행동을 '찌질하다고, 어리광이라'고 단정지으며, 상처받은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어쩔 줄 몰라, 자해하는 행동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려고 한다.
단지 다르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스스로 해결하게 만들었던 것과 달리, 스스로의 머리에 손가락 총을 쏘며 자멸의 길을 걷는 도진이의 손을 놓지 않는다. 가장 도진이가 원하던 것,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란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도진이를 죽음에서 구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보낸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왕따를 하는 아이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구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런 따스한(?) 덕분에, 하나도, 은보미도, 오동구도, 서현이도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진; 뉴스엔)
마여진 선생의 방식이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이 고뇌하는 초짜 담임 양민희에게 고민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냐는 말이 아니었을까. 지난 번 학교에서 상처를 입고, 아이를 거두기에 실패했던 마선생이 이번엔 도진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상하다.
감옥처럼 무시무시하고 살벌하기만 했던 <여왕의 교실>이 중반을 들어서면서, 번번히 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이들의 갸륵한 마음 때문에, 마여진 선생의 희미한 미소를 일으키게 하는 결과들 때문에. 그리고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하고. 뭐 정도가 있겠는가. 그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고 놓치지만 않아도, 반은 간다. 그게 12회까지 <여왕의 교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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