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하로 인해 죽은 자신의 아들의 복수를 하러 갔다가 부지불식간에 장태하의 아들 장은중을 유괴하고 말아버린 하명근 형사는 그 아들을 돌려주려 했지만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 또 다른 장은중때문에 결국 장태하의 아들을 하은중은 만든 채 십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세월동안, 하명근 형사는 선배 형사였던 그리고 지금 하은중 형사의 상사를 만나 아직 하은중이 자신으로 인한 상처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는 것처럼, 장태하의 아들에게 자신의 성, '하'씨를 물려주었지만, 그 아이의 이름 은중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이면서, 원수의 자식이라는 애증에 휩싸여 10년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하명근 형사는 죽어가면서도 까먹던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기일을 맞이하여 사놓은 카라멜을 은중이가 동생과 신이 나서 까먹었듯이, 하명근 형사의 마음은 기른 정이라는 말로 놓여지지 않는, 은중이의 아비에 대한 1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증오와, 그의 아들을 '유괴'했다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자책으로 인해 늘 요동칩니다. 그리고 그 요동치는 마음은 고스란히 이제는 '하'씨가 된 은중에게 전달되어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었지요. 아들이 들어오지 않는 날을 체크하는 아버지가 된 하명근씨와 아버지의 옛날 경찰 복을 잊지 않고 세탁해 놓는 속정 깊은 아들 은중이는 여전히 어딘가 서먹한 그늘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그뿐일까요? 가끔은 내 속으로 낳은 내 자식이지만, 그 아이의 어떤 부분이 내가 참 싫어하는 배우자의 어떤 부분을 닮았을 때, 더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괜히 넘어갈 거 한 소리 더 하게 되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대놓고, 넌 꼭 꼴보기 싫은 것만 닮냐고 지청구를 주기도 한다지요. 

아마도, 하명근씨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내 자식이려니 키우려고 해도, 문득문득 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낯설음 혹은 어떤 익숙함이 하명근 씨로 하여금 은중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그런 면이 있지 않았을까요. 하명근씨에게 어딘가 친근함을 느끼며 다가서는 윤화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자식이 살아있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장은중, 그리고 버젓이 생모가 있음에도 역시나 내 자식이려니 하고 키우고 있는 장주하, 때로는 집이 더 낯설 때가 있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9, 10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의 장태하, 하은중 두 사람의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참 비슷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심하게 무뚝뚝합니다. 장태하의 무뚝뚝함은 '불도저'로 상징되는 고도 성장기의 건설 산업의 오너 그 자체입니다. '살인'을 불사할 정도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는 누군가를 견디지 못하지요. 하지만, 냉랭한 아내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술잔을 나눠준다는 말에, 밖에서 밥을 먹었어도 앉아서 봐주겠다는 말에 풀어지는 얼굴에서, 장태하의 또 다른 이면이 보여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들 장은중이 놀릴 정도로 천하의 장태하 회장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 바보랍니다. 

그런데, 하은중 형사도 무뚝뚝하기가 장태하 저리가라입니다. 기업 회장이고, 그 일가이건 눈치고 뭐고 내가 하겠다면 하는 사람이 장은중입니다. 똑같은 스타일인데, 누군가는 그 스타일로 비리로 탑을 쌓아올린 기업인이 되고, 그 아들은 그 스타일로 돌직구 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역시나, 아버지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에게 애증의 태도를 놓지 않았는데도, 하은중 형사는 그 아버지의 직업인 형사를 하고 있고, 아버지의 옛날 제복을 세탁합니다. 심지어, 동생 바보랍니다. 툭툭 막말을 하는 듯 하면서도, 동생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을 정도로 동생 걱정이 앞서고, 잠은 못자도 동생 입사 선물을 사는 바보 맞습니다. 


김재원 박상민 스캔들

(사진 ; tv데일리)


이런 장태하를 가장 닮은, 이른바 '물보다 진한', '피는 못속이는' 하은중 이기에 아버지 장태하와 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것입니다. 동생 바보 였던 그 마음이 어느새 슬그머니 우아미 바보로 옮길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하은중은 우아미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이미 우아미 남편인 공기찬의 사망 사건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우아미의 집이 날아가고, 우아미는 다쳤으며, 그녀의 손에서 'th'의 이니셜이 새겨진 커프스가 발견되었으니 하은중은 더욱 그 불도저처럼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겠지요. 


최근 드라마를 통해 재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드라마 속 재벌들이 대부분 좋은 사람만은 아닙니다. 고도 성장기의 신화 속에 가려져 있던 그 모습들이 여러 드라마를 통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으니까요.

배유미 작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내 아들을 죽인 재벌,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재벌의 모습을 통해, 논리적인 분노를 넘어, 인간적으로 분노하게 만드는 재벌의 모습을 통해, 공분을 느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웃 이야기는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되지만, 그게 내 처지가 되면 사정이 달라지듯이, '피'로 얽혀지며 아비와 자식이 서로를 겨누는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공감을 낳을 수 있을테니까요. 


by meditator 2013. 7. 29.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