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백만 개를 주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던 <열혈 사제>가 떠났다. 그런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회를 거듭할 수록 근로감독관의 활약이 열렬해 진다. 전직 국정원 대테러 전담반 요원이었던 신부님이 조절되지 않는 분노를 화끈한 액션을 앞세워 구담구 적폐 카르텔의 소탕 작전으로 돌렸다면, 조장풍으로 날렸던 전직 유도 선수 출신 선생님 역시 한 액션하시지만, 그래도 '근로 감독관'이라는 직업답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며 공무원도 얼마든지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는 중이다. 사제님의 열일도 구원받은 구담시, 이제 근로 감독관 조진갑(김동욱 분)의 열일로 구원시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88만원 세대의 슬픔, 그 기원은? 장은미는 휴먼테크의 파견직 사원이다. 오랫동안 취직 못했던 그녀가 언니에게 잘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회사의 막내 사원인 그녀의 회사 생활은 '지옥'이었다. 2년 동안 제 시간에 퇴근을 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 며칠 째 들어오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 그녀가 근무하는 책상 한 귀퉁이의 약병들은 그녀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오력'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견디지 못하고 나간 경력직 사원 4명 몫의 일을 해야했던 그녀, 사무실의 온갖 잡일에서 부터 기획안까지 쉴 틈이 없었다. 일만 많은 게 아니었다. 클라이언트의 변심은 그녀가 일을 못해서라고 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은 그녀를 동네 북처럼 두들겨 댔다. 그래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처럼 '여기서 못버티면 어디 가서 뭘 하겠냐'고 했고,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장은 자기 말을 안들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붙이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버티다 못한 그녀가 언니에게 자신을 좀 어떻게 해달라고 울며 하소연을 했다.
동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찾은 언니, 하지만 뜻밖에 언니가 들은 말은 '노동 계약서'가 없어서 노동자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법'의 테두리를 확인했을 뿐, 결국 견디지 못한, 아니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다 못해 접대 자리까지 불려나간 동생은 다음 날 뇌진탕을 일으킨 채 발견됐다.
노동 계약서가 없는 계약직, 파견직 사원 이 문제를 맡은 특별한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자신들의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다는 변명 반, 그런 적이 없다는 배째라 반으로 나오는 사장의 뻔뻔한 저항에 부딪친다.
이에 조진갑 근로 감독관은 알바 노동자 소년들의 체불 임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휴먼 테크의 장시간 노동을 적발하는 한편, 휴먼 테크를 넘어 원청과 하청의 관계로 휴먼 테크에 또 다른 갑이 되는 '티에스'라는 악의 축을 저격한다. 또 한편에서 파견직이라는 이름으로 은미와 같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노동 계약서도 없이 다단계 식으로 이 기업 저 기업에 파견하는 파견직 보도방의 비리로 적발한다. 즉, 드라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고통받는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저 한 직장 내 프레임을 넘어 사회 구조적으로 대기업에서 부터 하청, 재 하청을 해가며 결국 그 모든 사업적 부담을 최 하단의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에게 업무적으로, 거기에 한 술 더 떠 체불 임금으로 떠맡기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액션을 조미료, 근로감독관의 이름으로 하지만 파견직 사원의 부당한 고용을 밝히기 위해 파고 들어간 원청 티에스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조진갑에 대해 그의 상관 구원지청장 하지만(이원종 분)은 냉정하게 반대한다.
법대로 하고자 하지만 법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조진갑, 그때 지난 상도운수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한때 제자 김선우(김선규 분)가 동앗줄을 드리워준다. 김선우가 고등학교마저 못마치도록 만들었던 왕따 사건의 주동자였던 양태수(이상이 분)가 그를 자신의 운전사로 고용하여 다시 한번 사사건건 갖은 괴롭힘과 모멸감을 주는 상황, 김선우는 이제 더는 상도 운수 때처럼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대신 스스로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양태수에 대한 적극적 복수를 하고자 한다. 즉 신원을 보호해준 내부 고발자가 티에스와 고용 계약서도 쓰지 않은 장은미와 여러 차례에 걸쳐 업무 사항을 나누었다는 증거 서류를 '고발'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
이에 '내부자 고발'이란 카드를 뽑아든 조진갑은 '내부자'가 빼낸 서류를 빼내기 위해 무단으로 티에스에 잠입, 하지만 매달 바뀌는 번호키로 인해 고전하던 중 전처 주미란(이세영 분)에게 들키고 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무실을 방문한 우도하(류덕환 분) 덕분에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 조진갑, 티에스와 명성병원의 전산 시스템 구축 협약식이 있던 날, 사경을 헤매는 동생에게 병문안은 커녕 문자로 해고 통지서를 보낸 휴먼 테크 사장에게 분노하던 언니를 진정시키는 한편, 하지만 구원지청장을 설득해 얻어낸 '체불 임금으로 인한 특별 근로 감독' 개시를 선언한다. 결국 파견직 장은미의 눈물을 근로 감독관 조진갑의 방식으로 닦아준 것이다.
양태수로 인해 선생님직을 잃었던 조진갑, 하지만 이제 근로 감독관이 된 조진갑은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운다. 김선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양태수를 천덕구가 주먹을 날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을 때도 선생님이던 시절의 분노 대신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양태수의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 영상이란 딜을 통해 두 제자를 무사히 법의 심판으로 부터 구제하고, 이제 비록 그가 애초에 원했던 원청 폭로는 아니지만, 대신 체불 임금으로 인한 근로 감독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티에스의 손발을 묶는데 성공한다. 주먹을 쥐었지만 그걸 날리는 대신 근로 감독관으로 '준법적 방향'을 택해서 조금은 에둘러가는 길을 택한 조진갑, 한 방의 주먹보다 법이란 효율적인 승부처를 택한 그 싸움의 방식이 주는 '사이다'는 주먹 한 방과는 또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카타르시스를 준다.
똑같은 '치매' 노인이라 하더라도 '도시'와 농촌, 그 환경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농촌에 사는 분들의 경우,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공동체에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일궈온 '일의 현장'에서의 분리되지 않음이 그들의 치매를 중증으로 악화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도시에서 나이듦이란 평생을 종사해온 업으로부터의 '퇴직'이란 이름의 방출에서 부터 '노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음'이란 삶의 활력소 중 중요한 부분을 잃게 되는데서 오는 '상실감'을 짊어져야 '숙명'을 짊어져야 한다. 바로 그런 '나이듦'의 고민에 대해 '도발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일찌기 가회동 괴짜 할아버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쓸모 인류; 어른의 쓸모에 대해서 묻다>란 책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조류를 제시했던, 4월 21일 <sbs스페셜- 가회동 집사 빈센트, 쓸모있게 나이들기>의 빈센트 막시밀리안 리가 그 주인공이다.
“집을 디자인하고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년이라면 이후 그 집을 유지하는 시간은 50년이 넘어. 디자인하고 짓는 단계에서 잘만 하면 집은 1백 년도 너끈하게 유지할 수 있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보다 지을 때 잘 지어서 오래 사는 게 환경을 위한 일이잖아. 뭐든 한 번 설치해서 영원히 사용하면 공해가 없고 말이야. 친환경 물건을 사고 먹고 쓰는 행위보다 더 사회적이고 실질적인 에코 라이프지- 그림 그룹과의 인터뷰
100년을 살 집을 가꾸는 68세의 청춘 이제 68세의 우리나라로 치면 '한창 노인'이다. 그런데 쉐다 못해 벗겨진 머리를 뒤로 묶어 꽁지 머리로 만들고, 거기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날마다 다른 색깔의 원색의 옷차림에 컬러플한 고무신을 챙겨신은 그의 몸놀림으로 보자면 350살까지 살 예정인 '한창 청년'이란 그의 말 그대로이다.
이 '68세 된 청년'의 직업은 '집사'이다. 아내 우노 초이(63)를 모시고 가회동 집을 돌보는 집사, 그의 하루 일과는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굽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달걀, 우유, 물이 1:1:1 비율로 들어간 이른바 '못난이 빵' 팝오버(popover)를 심혈을 기울여 오븐에 구워낸 그는 종을 울려 아내를 깨운다. 맨발의 잠옷 차림으로 홀처럼 뚫린 가회동 집 복도를 걸어나온 아내는 기꺼이 집사 빈센트가 만든 빵의 시식자가 된다.
가회동 집 바닥에는 그와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 브랜드의 꽃인 아네모네와 환대를 뜻하는 파인애플 문양과 '아폴리니아'란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알바니아의 항구 도시 아폴리니아가 멀리 가회동에 와서 집사 빈센트가 만들고 싶은 따뜻한 남쪽 유럽의 도시를 상징하는 집의 이름이 되었다.
2년 전 미국에서 은퇴한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아내가 이곳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내와 자신의 친지들의 '소셜 클럽'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집사'의 삶을 자처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가회동 집을 빌려 지금의 아폴리네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곳을 그의 손길로 고쳤다.
"졔 집에 산다는 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적 주인으로서 공간을 갖는 거야" -<쓸모인류>
은퇴한 남자가 개조한 집이라 해서 <자연인>에 나오는 그런 투박한 집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겉으로 보면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견고한 스테인리스 가구에 보랏빛, 핑크색 컬러감이 더해진 이국적 디자인의 모던한 공간, 코넬데 토목 건축과를 졸업한 '공대 출신' 답게 , 하다못해 화분 받침 하나도 c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한 설계도를 통해 '안전'과, '기능성', 거기에 경제성과 아름다움까지 다 갖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집사 빈센트가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곳이다.
환경적 삶의 실천자 보랏빛 마감으로 모던한 화장실, 하지만 살펴보면 물때가 끼지 않게 고려된 높이의 장식장과 인체 공학적으로 가장 볼일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높이에 마련된 변기에서 부터, 볼일을 보는 맞은 편 문을 열면 만나게 되는 호텔처럼 잘 접힌 휴지 걸이까지, '완벽한 배려'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의 집도 아닌 빌린 집, 하지만 그는 '소유'하지 않지만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퇴직', 끝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의 마감일 뿐이라 생각한 그는, 아침의 빵굽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아기를 낳는 것 빼고 안하는 것이 없이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밖에서 벌어 쓰는 돈을 '소비'하는 삶을 그 삶에서 누리는 것이 삶의 최선인 양 생각해오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 몸의 돈이 '음식'이라던가, 우리 몸을 감싸는 피부가 '집'이니 돌보고 가꿔야 한다던가 심지어 인터넷으로 사면 12000원짜리 화분 받침을 십 여만원을 들여 설계를 하고 발품을 팔아 만드는, 아니 내 집도 아닌 집을 2년에 걸쳐 공을 들여 고쳐 쓰는 그의 삶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갈 '자본주의적 삶'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도대체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대기업 항공업체에 입사, 198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적 대우를 받던 그는 그런 차별에 항의했다가 강제 퇴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부터 4년 여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지구와 싸우는 것 같던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 그는 처음으로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가는 그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고, 결국 4년만에 승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재산'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배우면서 내 스스로 내 몸으로 체득해 낸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보다 그런 밖의 것이 아닌 오랫동안 내 꺼가 될 '백 배가 아니라 천배'나 더 많고 소중한 재산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기꺼이 'just do it!'이라 권한다.
수처작주(隨處作主-서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집사의 삶을 살아가는 그를 도와주는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의 까다로운 레시피때문에 고전하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에게 그가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고, 그의 견고하고 정밀한 장식장을 마련해준 을지로 뒷골목의 기름밥 장인들에게 '친지'같은 예우를 갖춘다. 그들이 그의 소셜 클럽 아폴리네아의 초대 손님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 도시에서 나이듦의 고민은 '치매' 이전에 시간과 일과 그리고 돈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자본주의적'으로 늘 내 밖의 무언가를 소비하기를 강제하는 삶의 궤도에 맞춰가야 하는 고민이다. 바로 그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체제에 대해 집사 빈센트의 삶은 '도발'이고 심지어 '혁명'이다. 내 몸이 , 내 몸을 움직여 쌓인 것이 재산이 되어 가는 새로운 시도, 바로 그런 시도를 빈센트는 'just do it'이라 한다. 그리고 그런 빈센트답게 집사 학교에 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촛불을 들고 구체제를 물리치고 '적폐청산'을 내걸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언 3년 여가 지났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의 슬로건은 무색하게 연일 가쉽성 사건들만 난무하고 그 사건들의 이른바 실체는 갈수록 오리무중인 채, 정국은 다음 선거를 둘러싼 세 싸움의 양상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적폐 청산'이란 말 자체가 구태의연해져 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 '임무'를 꾸준히 가열차게 실천하는 분야가 있다. 뜻밖에도 그건 시청자들의 밤을 밝히는 드라마들이다. 월화수목금토, 우리는 매일 저녁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드라마로 만난다. 현실이 되어야 할 이야기들, 그렇게라도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달랜다.
분노는 정의로 치환된다-<열혈 사제> 시작은 본당에서 쫓겨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사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통에 대뜸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트라우마에 절어 폐인이 되어가던 그를 거둬주었던 이영준 신부의 구담 성당으로 오지만, 그가 맞딱뜨린건 이영준 신부의 죽음이다.
이영준 신부 자살 위장 사건 그 뒤에는 구담 구청장, 경찰서, 구담시 국회의원, 그리고 특수 수사부 부장 검사 등 구담구 지역 카르텔이 있었다. 당연히 김해일 신부는 '분노'하고 홀홀단신 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직 국정요원답게 거침없는 그의 액션은 <정글의 법칙>이 떠난 빈 자리를 꽉꽉 메운 채 답없는 세상에 답답해 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속시원하게 뚫어주며 시청률로 보답을 받기 시작한다.
구담구 지역 카르텔로 시작했던 사건을 '왕맛 푸드 사건'을 거쳐, '버닝 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무렵 절묘하게 구담구 내의 사교 클럽 라이징 썬 사건으로 연역해내며 드라마의 현실성을 증폭시켜나가는 한편, 김해일이라는 독고다이 분노 조절장애 사제의 헌신적 분노를 구대영 형사(김성균 분),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하여, 서승아 형사(금새록 분), 한성규 사제(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오요환 편의점 직원(고규필 분), 쏭싹 중국집 배달원(안창환 분)까지 구담구의 정의로운 시민들을 구담구 카르텔에 대항하는 구담구 어벤져스로 재편하며 드라마의 전선을 살려냈다.
현실에서 지지부진한 '버닝썬'은 드라마 <열혈 사제>로 오면 '라이징 썬'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문홀딩스의 차명 사업자들, 아들을 문홀딩스 대표로 내세운 박신우 의원, 구담구청장 정동자, 구담 경찰서장 남석구, 검사 강석태 등을 속시원하게 까발리고, 이들이 구담구 어벤져스의 작전에 따라 서로 이전투구하며 몰락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과정을 통쾌하게 그려내며 박수를 받는다.
통수 위에 외통수 - <닥터 프리즈너> <닥터 프리즈너>를 여는 건 태강 병원 응급 의학센터 에이스였던 의사 나이제(남궁민 분)이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던 고지식한 의사였던 그는, 태강 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으로 인해 아끼던 환자 부부를 잃는 건 물론, 의사 까운을 벗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자신이 투옥되었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무 과장으로 부임하고자 한다.
왜 교도소 의무 과장이었을까? 여기엔 바로 나이제가 의사직을 잃게된 깊은 원한의 이유가 있다. 형사 소송법 471조에 의거하면, 형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을 때 이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해당 교도소 과장의 동의를 받아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때문에 일개 교도소 의료 과장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서서울 교도소에서 그 권력을 누려온 것이 바로 선민식(김병철 분)이었다. 그는 이런 교도소 의무 과장의 재량에 의거 재벌, 정치인 등에게 형 집행 정지를 이용해 돈과 권력을 누려왔었고, 그 과정에서 나이제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나이제의 선민식을 향한 복수는 곧 그가 누려왔던 교도소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져 왔던 부도덕한 정, 재계 카르텔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 된다. 교도소 의무 과장 자리에서 부터, 출자자 명부, 하은 병원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선민식과 나이제의 '통수'에 통수는 결국 복수와 정의를 향한 나이제의 외통수 앞에 선민식이 무릎을 끓고 만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정의'의 목적에 충실한 '다크 히어로' 나이제의 방식은 <열혈 사제>의 분노 액션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제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하은 병원을 선민식으로 부터 받아내어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야심차게 내보인다. 결국 카르텔의 허브였던 선민식을 제친 나이제가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태강 그룹이라는 재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승계를 위해 '살부'도 불사하고, 정민제 의원마저 살해 사주한 이재주(최원영 분)과의 본격 한판 승이다. 과연 재벌 회장을 상대로 한 외통수 나이제의 통수 작전이 이번에도 먹힐 지, 엎치닥뒤치락하며 선과 악의 롤러코스터가 주는 마력이야 말로 <닥터 프리즈너>의 결정적 매력이다.
금권 카르텔에 대항하는 고지식한 선의 - <더 뱅커> 매회 끝을 알 수 없는 통수의 향연인 <닥터 프리즈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마도 동시간대 수목 드라마인 mbc의 <더 뱅커>일 것이다. kbs2 드라마의 부진을 깨끗이 잊게 만드는 <닥터 프리즈너>가 20% 시청률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김상중, 유동근, 채시라 등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에 잘 짜인 대본으로 승부스를 건 <더 뱅커>는 안타깝게도 4% 대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더 뱅커>를 평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만화는 물론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감사역 노자키>의 리메이크작인 <더 뱅커>는 대한 은행이라는 금융계의 절대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정의의 드라마틱한 전개로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직이었던 공주 지점장이었던 노대호(김상중 분)는 지점 폐쇄라는 불운을 겪지만 뜻밖에도 행장 강삼도(유동근 분)에 의해 감사로 위촉된다. 벌써 3번이나 행장을 연임한 강삼도는 어수룩한 노대호를 감사 자리에 앉혀 그의 공명정대한 감사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배임 행위'로 육관식 부행장을 밀어내는데 이어, kt 부정 취업이 연상되는 국회의원, 국정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금감원장의 압력인 채용 비리 사건으로 도전무(서이숙 분)를 토사구팽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한 부행장 이해곤(김태우 분)이 은행을 개혁할 꺼라며 자신의 편에 서라는 회유에, 그건 부행장님의 권력욕일 수 있다며 돌아선 노대호 감사, 드라마는 이합집산하는 대한 은행과 그를 둘러싼 정재계 카르텔 속에서도 꿋꿋히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의 길을 고지식하게 고수하는 감사의 정점이 어딘가 궁금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행장 강삼도가 그가 꺼내든 은행 개혁과 관련된 D1보고서를 덮으라 하며 노대호의 동지였던 한수지(채시라 분)까지 부행장으로 회유하며 <더 뱅커>는 본격적인 노대호 대 강삼도의, 일개 감사와 대한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금융 카르텔의 권력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이제이,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하는데 그 누구보다 교활한 강삼도 앞에 우직한 노대호 감사의 칼날이 먹힐지 거기에 이해곤과, 한수지의 욕망의 끝은 어딜지, 그 욕망과 정의의 파노라마, 그 귀결점이 궁금하다.
근로 감독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무한하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근로 감독관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걸 믿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에서 보여지듯이 각종 정치적 외풍과 거기에 더해 금권을 전횡하는 기업주에 맞서 일개 공무원이 근로 기준법을 법대로 구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MBC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바로 이 법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현실로 부터 '법대로'하는 히어로가 된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길어낸다.
일찌기 유도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덕분에 폭력 교사로 낙인이 찍혀 직장과 가정을 잃은 바 있었던 조진갑은 어렵사리 얻은 근로 감독관이란 직분을 복지부동으로 버텨가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직을 잃게 만들었던 그 학폭 사건의 희생자였던 소년이 이제 다시 상도여객의 운수 노동자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예의 불의를 참지 못하던 '조장풍'의 기질을 살려낸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그 어떤 조폭이 떼를 지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포에, 눈 앞에서 깐죽대며 쳐보라는 구대길 이사장(오대환 분)을 향해 대뜸 주먹을 날려버리는 대책없는 용기, 하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때처럼 그저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은혜를 입었던 천덕구(김경남 분)가 운영하는 갑을 기획의 특출난 사업 능력을 뒷배로 하여, 구원시 노동지청은 물론, 검찰까지 회유한 구대길이 몇 천의 벌금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려 하자, 약간의 트릭을 거쳐 운행 정지라는 법적 조치를 통해 벌금을 메꾸려 밤낮없이 혹사당하던 버스와 운수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묘수를 통해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법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진갑의 법적 해결은 뜻밖에도 시민의 발을 정지시켰다는 역풍을 맞고 조진갑은 진상조사위에 회부된다.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조사위원들에게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라며 당차게 반문한 조진갑, 그런 가운데 구대길은 고의 파산을 통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하고. 조진갑에게 넘겨진 가짜 정보의 압수 수색과 구대길의 해외 도피, 그 간발의 차이를 넘어 결국은 구대길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해내며 근로 감독관으로의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열혈 사제>에서 부터,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까지> 주중, 주말을 휩쓸며 답답한 현실 대신 시청자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드라마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모두 '아재'들이 주인공이다. 마흔 줄의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직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아재들, 그들은 자신을, 혹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카르텔에 도전한다. 드라마는 이 평범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도전'의 키가 되는 건 뜻밖에도 그들의 직업이다.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는 신부라는 특별한 위치이지만 그 이전에 그가 속했던 국정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그가 해결해 가는 사건에 주된 '마스터 키'가 된다. 나이제 역시 의사였던 그의 과거가 지금 그를 서서울 교도소 의무 과장에의 도전에서 부터 선민식, 이재준에 대한 복수의 길에 가장 유리한 방패이자 칼이다. <더 뱅커>의 감사 노대호나,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건들로 인하여 그들의 '정의'가 불지펴진다.
이렇게 아재들의 투철한 적폐청산,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핏대를 올리며 '정의'를 목놓아 외치지 않는다. 분노 조절장애 김해일 신부는 외려 때론 그의 분노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순수하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중독성있게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켜 전선을 확장키켜 나간다.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 나이제의 여유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썰렁해서 어느덧 정기 가버린 노대호의 아재스러움, 거기에 몸무게를 불려 그 덩치만큼 넉넉한 조진갑의 넉살이 이들 드라마의 날선 경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다던 그 전설의 복서처럼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매료시켜 내 편의 긴장을 풀어주되, 결코 정의의 전선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투철함으로 이 시대 넉넉한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한다. '넉넉함'과 '투철함' , 어쩌면 이들 드라마의 환영받는 주인공으로 부터 사람들이 그리는 히어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이가 6살 때였나, 이웃에 또래 친구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를 까보니, 그 '또래' 친구는 아이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런데 또 이 또래 친구는 2월이 생일이라 이른바 '빠른'으로 아이와 같은 학년에 입학할 처지였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과연 이 두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야 할까? '형, 동생'이 되어야 할까? 그저 동네 친구 하나 만드는 일인데 당사자의 엄마들은 물론, 그 주변 '아줌마'들까지 심각하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론은 이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두 아이들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두 아이가 그 때 형 동생이 되었다면 지금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거기엔 '형'뻘인 아이와 엄마의 '혜량'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등을 둘러싼 호칭과 관계의 문제는 녹록치 않다. sbs스페셜은 바로 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언어'와 '권위'의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바로 <왜 반말하세요>이다.
말로 부터 시작된 관계의 해체 다큐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방송국에 견학온 고등학교 방송반 학생들과 선생님, 그런데 학생들은 흰 머리가 히끗히끗한 마흔 줄의 선생님을 대놓고 '이윤승'이라 부른다. 이름만 부르는 게 아니다.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놓는다. 도대체 이 방송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윤승 선생님이 이윤승이 되기 까지 '사연'이 있다. 학교 안에서도 군기가 세기로 소문났던 방송반, 후배들은 저만치 선배가 가는 게 보이면 달려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하고 복창을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한다. 당연히 방송반의 모든 일들은 그에 따라 '상명하복'. 선생님은 오죽했을까? 새로이 방송반을 맡은 이윤승 선생님은 이런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방송반의 관례를 깨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바로 '내가 먼저 권위를 내려놓는 방식', 그래서 이윤승 선생님은 이윤승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에게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이 '나 이거 하기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좋다고 한다.
호원이가 된 도련님의 사례도 있다. 이미 sbs <b급 며느리>를 통해 방영된 김진영 씨의 사례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친해서 '호원'이라 불렀던 남편의 동생,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서는 편하게 불렀던 시동생에 대해 '도련님'이나 '삼촌'이라는 호칭을 요구하며 형수와 시동생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형수의 여동생들에 대해 남편은 자연스레 이름을 부르는데 왜 남편의 동생에게는 호칭을 불러야 하는 것일까? 주변에서는 그냥 잠깐인데 참으면 된다지만 형수는 이런 호칭에서 부터의 차별이 '여자의 삶'을 어그러뜨리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된다.
당신을 당신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가족에서 부터 사회까지 우리 사회에서 '호칭'으로 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문제는 복잡하다. 그 이유를 전문가는 '너, 당신'이라는 직접적 호칭의 부재에서 찾는다. 207개의 언어 중 '너, 당신'을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는 7개의 언어, 그 중 하나가 한국어라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너와 당신을 부를 수 없기에 새로운 호칭을 찾아야 했고, 그를 위해서 당신은 누군인가를 알기 위한 신상 정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 언어의 특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큐는 그 이유를 '상명하복'이 내재화된 우리 사회의 위계 질서에서 찾는다. 5,6살 아이들의 키즈 까페에서도 '너 몇 살이냐'로 시작되는 위계의 파악, 위계가 파악되면 바로 '형', '동생'이 되고, 동생 뻘의 아이에게 당장 '니라고 하지 마라'며 , '형이니 내가 먼저할게'가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권위적 질서 체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시작을 조선 시대의 장유유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다큐의 생각은 다르다. 고미숙 고전 인문학자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달리 조선 시대 서당은 나이 차를 두지 않는 '통교육 체제'였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은 나이에 대해 관대하여 25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서신으로 학문을 논했던 기대승과 이황처럼 나이를 막론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례가 흔했다고 전한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적으로 나이에 대해 '관대'했던 조선의 전통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민증부터 까고 보는' 연령별 위계 질서로 고착되었다고 오성철 교수는 지적한다. 모리 아리노리에 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군국주의 일본의 사상으로 채택되고 일본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의 사범 학교를 군대식으로 재편했다. 이른바 '사범형 인간'은 상급생을 '신'으로 받들게 하며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퍼뜨렸고, 군대 내 상명하복의 질서를 고스란히 근대 교육 제도화한데서 오늘날의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민주의의 잔재는 오늘날의 위계 질서를 만든 50%의 책임이 있다고 다큐는 부연 설명을 한다. 즉, 식민지의 유산이 절반의 책임이라면 학도 호국단, 국민 교육 헌장 등 일제의 관행을 고스란히 부활시킨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 교육이 오늘날 우리 사회 권위주의적 질서의 또 다른 한 축이라 다큐는 정의내린다. 사회 구조와 맞물려진 언어, 결국 정치적 권위주의가 일상의 권위주의가 되었고,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관행에 대한 성찰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제기한 것이 바로 '수평적 사회를 향한 수평적 언어'에 대한 고찰이다.
일제 식민주의와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만의 문제일까? 단 몇 개월의 차이라도 형, 동생이 되는 우리 사회의 '연령별 수직 구조'에 대한 인식은 예리하다. 더구나 그 원인을 '식민주의와 독재 시대의 권위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바는 진일보된 신선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획일적일 수도 있다. 다큐에서 사례로 등장한 <대리 사회>의 소설가 김민섭씨의 사례처럼, 대학원생이던 그가 대리 운전 기사가 되자, 당장 '아저씨'에서 부터 '야, 너'로 호칭의 급격한 '전락'에서 보여지듯이, 과연 우리 사회 권위적 호칭의 문제가 '나이'의 장벽만의 문제일까?
다큐는 독일 68세대에 의한 나치 잔재 세력에 대한 일소를 통한 정치적 권위주의 해소 사례를 예로 들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뒤늦게 대두되고 있는 일제 잔채 청산, 그리고 나아가 독재 잔재 청산에 대한 일련의 흐름에서 '권위주의적 언어'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몇몇 사례로만 제시한 조선시대를 덜 권위적 사회라 예단할 수 있을까? 대리 운전 기사에게, 콜센터 직원에게 다짜고짜 '야'하고 하대하고 보는 그 의식은 외려 조선시대의 반상제도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의 완고한 가부장적 권위 주의의 기원 역시 조선 시대 유교를 차치하고서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학원 내에서 교수와 대학원생간의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한 것이 수평적 언어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까?
다큐를 도발적으로 연 이윤승 선생님 역시 수평적 언어의 관계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우선 그의 혁명적 관계 시도가 동료 교사들의 불편함에 대한 토로로 고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아이들과 말을 놓는 건 권위주의적 관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지 진짜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고자 하는 건 아닌데 수평적 언어가 때론 관계의 혼돈을 낳기도 한다고 고민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다큐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it기업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붐처럼 일었던 수평적 언어 관행으로서의 '별명' 혹은 '외국 이름' 부르기와 같은 움직임이 상당수의 경우 이름만 '수평'적이며 실제 관계는 수직적인 '웃픈'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큐가 새로운 움직임으로 제시한 수평적 언어 모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는 이 모임을 통해, 자신들이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풀어낸다. 하지만 대표적 권위주의적 집단으로 제시된 해병대 전우회처럼, 우리 사회의 다수, 그 중에서도 남자 중 상당수가 '군대'라는 일정 기간 동안 '상명하복'에 대한 고강도의 훈련을 겪고 그 논리를 내재화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탈권위적 사회를 향한 출발점으로서 수평적 언어에 대한 모색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배우 김윤석이 감독 김윤석이 되었다. 그 첫 작품이 <미성년>이다. 아마도 김윤석 배우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가 오랫동안 감독에 대한 꿈을 꾸어 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성년>은 반가운 영화다. 누군가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현장이니까. 나이가 들어 퇴색되고 무뎌지지 않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쁘다.
하지만 <미성년>은 그저 그렇게 배우 김윤석의 첫 데뷔 영화라는 측면에서만 반가운 것이 아니다. 모처럼 우리, 인간에 대한 '넉넉한 시선'을 풀어놓은 영화라는 측면에서 반갑다. 마치 하루 종일 격식에 맞춰 정장을 입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무릎 툭 튀어나온 낡은 츄리닝을 입고 퍼질러 앉아 기지개를 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나, 우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보는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어른의 딜레마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흔히 부모님들이 하는 말씀이다. 그 떡이 생길 어른 말씀이라는 거의 전제는 어른 말씀은 옳다라는 것이다. 어른은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성년>은 그 옳다는 어른에 대해 질문한다. 과연 그런가 라고.
그리고 이 '옳지 않을 수도 있는 어른'에 대해 영화는 가장 흔하고도 속된 주제 '불륜'을 들고 나온다. 대원(김윤석 분)은 이 땅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아재'다. 그런데 이 '아재'에겐 비밀이 있다. 본인만 비밀이라고 생각하고 남들은 다 알아버린 비밀, 바로 미희(김소진 분)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딸 주리(김혜준 분)가 미희의 가게 주변에서 기웃거리다 미희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 분)에게 틀키고, 그 바람에 아내 영주(염정아 분)까지 알아버렸다.
아니 그건 어쩌면 타이밍의 차이일 뿐일 지도 모른다. 이미 아내와 각 방을 쓴지 2년 여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가는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대원의 바람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인 듯 보여진다. 아니 그것보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미희의 배는 어떻고. 게다가 회식 장소를 두고 오리집으로 할까요 하며 빙글거리는 직원을 보니 정말 대원을 빼고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혹' 해서는 안될 '미혹'의 나이에, '혹'하면 안되는 아내와 딸이 있는 가장의 바람인지, 불장난인지, 사랑인지는 동심원을 그리며 여파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세상에서 젤루 이쁜 딸도 알고, 아내도 알고, 미희는 아이를 '조산'하고 그 대책없는 상황에 대원은 그만 내빼버린다. 그가 '미희'와 시작했던 그 '사랑인지 바람인지'에서 고려치 않았던 결과들이다. 미희 말대로 '맘대로 되지 않는 바람'이라서 그런가, '책임'이란 단어와 동음이의어로 쓰이는 어른이 대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하다.
이 대책없는 대원의 불장난, 그 마주쳐야 소리를 낸 당사자, 어쩌자고 남의 집 남편의 아이까지 가졌냐며 다그치는 딸에게 외려 너라도 엄마를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며 울음을 터트리는 미희. 돈만 쥐면 도박판으로 달려가는 남편 대신 열 일곱에 '책임'을 진 딸을 키우며 오리집을 하며 살아가는 미희의 삶을 들여다 보니 그녀가 뒤늦게 매달린 '사랑'이 짠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른스럽지는 않다.
이 대책없는 두 사람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영주, 여전히 딸 주리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그 허울은 얇다. 더구나 미희의 조산 앞에 그녀의 자존심마저 약해진다. 아니 그녀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건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하나 없이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가정, 그리고 남편인지 웬수인지 모를 대원.
이렇게 <미성년> 속 어른들은 다 어쩌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른답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 그 저지른 일에 대해 어쩌지 못한 채 '책임'지는 대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거나, 방임한다. 아니 '책임' 조차도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 맘'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어른'이라며 아이들을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서 저만치 밀어낸다. 즉 <미성년> 속 어른들의 상태는 바로 '어른' 그 자체의 '딜레마'다. 책임질 수도, 책임 지지지도 못할 상황에 놓여버린 어른의 삶. 그건 어쩌면 '도덕'이라는 교집합으로는 쉬이 메꿀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삶 자체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정의내린 어른이라는 깜냥 자체 미달인 '어른'들의 이야기. 이를 통해 '어른'이라는 우리의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짊어지고 사는 그 '어른'이 정말 어른맞냐고. 아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어른'이라는 성채가 허상이 아니었냐고.
어른스러우려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인 아이들 그리고 이렇게 어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맞은 편에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대략난감'인 어른들보다 어른스런 아이들을 내세운다. 공부의 세상 속에 밀어넣으며 아이들의 문제 조차도 해결해 주겠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기꺼이 책임감을 가지고 발을 밀어넣는 아이들.
어찌어찌해서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딸 주리는 흔히 드라마가 설정하듯 철부지 딸의 캐릭터 대신에 어른스레 그 사실을 알게되어 충격을 받을 엄마를 걱정하고 수습하려 애쓴다. 윤아는 어떻고. 대책없는 엄마를 다그치면서도 어떻게든 그 사태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고 파탄난 가정을 봉합해보려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심지어 그 사태로 인해 등장한 '동생'을 들여다 보며 책임지려 까지 하며.
구멍난 '가족'의 틈을 메우려 애쓰는 아이들. 어른들이 방기한 책임의 세계에 자신을 기꺼이 들이미는 아이들. 그렇게 <미성년>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고정 관념, '철없고 대책없는 아이들'이란 세계에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책임지고자 하는 '어른'의 세계에 아이들은 아직 역부족이다. 아니 영화의 엔딩처럼 아이들은 어른스러우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일 뿐이다. 아니 '아이들'이기에 어른들의 그 심각한 사태에 웃을 수 있고, 엉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미성년>은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과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통해 '어른'의 경계를 해체한다. 어른됨의 버거움을 피력하고, 어른됨의 난센스를 드러내며, 애초에 우리 사회가 불문율처럼 정의한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한다. 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철딱서니 없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다. 결국 <미성년>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과 어른다운 아이 그 흐트러진 경계를 통해 이 사회가 강력하게 선을 그어 놓은 '어른'과 아이'라는 선이 어쩌면 불분명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찌질하기 한량없는 대책없는 고딩같은 대원과 아우토반 중2병같은 미희의 깜냥에, 자신의 감정조차 추스리기 힘들어 보이는 영주의 흔들림에 엄격한 학칙의 잣대를 들이대다 한참 모자란 찌질이들을 마주하듯 실소가 흘러나온다. 미희와 대원이 해맑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낡은 놀이 공원을 찾은 아이들의 미소처럼. 결국 <미성년>이 도달한 곳은 그 모자람에 대한 인정이요, 이미 늘어진 고무줄같은 어른의 세계에 대한 '관용적 이해'다. 그리고 그건 지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괴물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여유'의 틈이다.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임시 정부 100년을 맞이하여 이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임시 정부'에 대한 '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런데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리고자 하는 '임시 정부'는 제대로 '조명'되고 있을까? 혹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로서의 '임시 정부'는 몇 사람의 역사가 아닐까?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의원이 기억하고 있는 임시 정부를 거쳐간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2000 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몇몇 사람의 임시정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저 2000 여 명 중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선열들은 몇 분이나 될까? 바로 이 '기억되지 않은, 하지만 기억해야 할 독립 운동사, 독립운동가'에 대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역사의 빛 청년>는 간절하게 문제 제기를 한다. 그래서 시작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져 있지 않은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한 축이었던 '하와이 독립운동'으로 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5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려면>에서는 '조명하 의사'를 잊혀진 기억에서 떠올린다.
일본 육군 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의거 1928년 5월 14일 일본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대만, 구미노미야 구미요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일본 육군 대장의 환송식이 있었다. 무개차를 타고 환송 인파들 사이를 서서히 지나가던 구미노미야, 그때 인파 가운데에서 뛰쳐나온 청년 조명하가 단도로 그를 찔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만 총독은 해임이 되었고, 결국 구미노미야는 8개월 뒤 복막염으로 사망하였다.
1905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명하 의사, 군청 서기로 근무하던 중 1926년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야간 학교를 다니며 고학을 하던 중 송학선이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하려 했던 금호문 사건, 나석주의 동양 척식회사 폭파 사건 등을 겪으며 독립 운동에 헌신하고자 마음먹었다. 이에 임시정부로 가고자 했던 조 의사, 상해로 가기 위해 대만에 들러 찻집에서 일하던 중 일본 육군 대장이 대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척살을 결심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조명하 의사는 '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한스러울 뿐이며 죽어 저승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신 채 10월 10일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했던 이순재 배우가 조명하 의사를 기리기 위해 대만을 다시 찾았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먹는다는 맛집 거리, 우리나라에서 대만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그 거리 맞은 편에 조명하 의사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대만 여행기를 다뤘던 <꽃보다 할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맛집 거리의 맞은 편에는 타이페이 형무소의 벽이 남아있다. 죽은 미군 병사의 기념비가 있어 길가던 외국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돌아가신 조명하 의사의 기록은 없다.
기억되기 위한 조건 그 이유를 다큐는 찾아간다. 조명하 의사에 대한 기록은 단 두 장의 사진, 의사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끝머리에 늘 태워라라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남겨지지 않은 기록, 기록으로 남겨져야 기억되는 역사에서 자신을 지워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결의는 역사의 행간 저편으로 흩어지기 십상이었다. '이대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윤봉길 의사의 편지를 받고 윤봉길 의사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안방 천장 위에 숨기고, 피란 길에도 품에서 놓지 않았던 윤봉길 의사의 동생 윤남의 씨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윤봉길 의사가 있었듯이 '기록의 소실'이 많은 독립 운동가를 오늘의 우리가 기억하기 힘든 첫 번째 이유이다.
거기에 더해 왜곡된 기억이 독립 운동가들을 역사 저편에 묻는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 뒤 무려 한 달 만에 대만 일일신보는 조명하 의사의 의거를 다뤘다. 하지만 내용은 딴 판이었다. 모르핀 중독자, 세상을 비관하여 자살을 결심하고 충동적으로 사건을 벌였다는 식이다. 이봉창 열사의 의거를 취업이 어려웠다는 식으로 폄하했던 그 방식이다. 이러한 '의도를 가진 역사의 왜곡'의 여파는 길다. 대만 타이중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조명하 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김상호 교수는 오늘날 대만 만 역사 사전에 여전히 일본의 왜곡된 기사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통해 대만에 대한 안정적 통치와 자국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일본의 저열한 정책을 복기한다.
재조명에 성공한 독립 운동가의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남겨진 사진은 겨우 두 장, 기록도 없이 은밀하게 활동했던 이회영 선생, 그런 이회영 선생에 대한 기록을 부인 이은숙 여사의 수기 <서간도 시종기>가 되살려 냈다. 그리고 이회영 선생을 받들었던 후배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도 더해졌다.
그렇다면 조명하 의사에게는 후손이 없었을까? 아니 후손이 있다. 단지 저 멀리 호주 시드니에 있다.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 '이게 네 아버지의 유골이란다'는 어머님이 보여주신 유골로 만난 아버지를 우리 사회가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아들 조혁래씨는 선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8년 10월 10일 서울대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달림은 심각했다. 감사 계통 사람들에게 뇌물까지 줘야 했다. 아들이 못나서 아버지를 큰 사람을 못만들어 드렸다는 죄책감만을 짊어진 채 조혁래씨는 눈을 감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남은 가족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건가 라는 자괴감을 안고 손자는 조국을 떠났다.
왜 똑같이 독립 운동을 하셨는데 기억되는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이 계실까? 여기엔 '시대적 변화'라는 외인도 무시할 수 없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은 수교 이전에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커우 공원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했다. 중국 정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국교가 정상화되자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세워지고 기념관이 만들어 졌다. 수교 이후 이회영 선생에게는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유공자 증서인 '혁명 열사 증서'가 수여됐다. 가족들도 몰랐는데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회영 선생이 돌아가신 여순 감옥에 안중근, 신채호 선생과 함께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을 만들어 줬다. 반면 동시에 그간 수교 상태에 있었던 대만과 단교 상태가 되어 버렸다. 대만의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가 대만을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조명하 의사는 배신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된 것이다.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조명하 의사는 주목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외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이승만과 가까운 사람들만 독립 운동가로 인정받아 국가 유공자가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좌익 계역 운동가들'이 주목받았다. 최근 모 정치인의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한 이유로 국가 유공자가 된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독립 유공자들의 인정과 등급이 달라져 왔다. 그런 가운데 아나키스트들은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다. 조명하 의사는 그 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명하 의사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조명하 의사를 대만에 있는 한국 교포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기린다. 타이페이 한국 학교에는 조명하 의사 흉상이 있다. 매년 추도식을 하고, 조명하 의사를 기리는 글짓기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조명하 의사 의거 90주년 이제서야 조명하 의사 연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 졌다. 손자 조경환씨도 참여했다. 고국에 돌아온 조경환 씨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의 유지를 뒤늦게라도 받들어 할아버지의 의거를 살아있는 역사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기록이 없어서, 아니면 기록이 왜곡돼서, 기억해줄 후손이 없어서, 혹은 있어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좌절해서, 그리고 그 기억에 시대와 정권의 변덕스런 흐름이 있어서,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의 수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제대로 된 독립 운동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임시 정부 100년 임시 공휴일제정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당당한 우리의 독립 운동사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 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이 개척하는 길은 반갑고 소중하다.
그가 공무원이 된 목적은 '무사안일'이었다. 그래서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려 했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자신을 찾아와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니 서로들 말로 해결을 해보시라고 했다. 알바생의 시급을 떼어먹은 점주를 '감독'하는 대신, 알바 생에게 봉투를 주며 어차피 돈 받기 힘들다며 억울하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이런 대접 받지 않게 살라는 계면쩍은 핑계를 댔다.
그런데 딸 아이가 '아빠가 부끄럽다'고 했다. 하필이면 그가 감독해야 할 운수 회사에서 이제는 운수 노동자가 된 오래 전 제자를 만났다. 돈 3000원 때문에 '버스비 횡령'으로 해고될 처지의 제자는 그간 못받은 돈도 돈이지만 억울하다 했다. 두 눈 질끈 감고 살려고 했는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아니 애초에 '복지부동'으로 살기엔 그의 피가 너무 뜨거운 탓이 아닐까? 한때 조장풍으로 날렸던 전직 유도 선수에 전직 선생님이었던 근로 감독관 조진갑말이다.
적폐 청산의 주역이 된 감사와 근로 감독관 mbc 주중 미니시리즈는 '적폐 청산'의 시대다. 월화 드라마 < 더 뱅커>가 '대한은행'을 배경으로 '정재계의 카르텔'에 날을 세우더니, 그에 이어 수목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명성 그룹을 주축으로 미리내 재단, 성도 운수 등 재계의 카르텔을 저격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그 '적폐 청산'의 선봉에 선 당사자들이다. <더 뱅커>가 전직 사격 선수에 별정직 사원으로 은행에 입사한 고지식한 은행원이었다가 행장의 복심으로 감사가 된 노대호(김상중 분)라면,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조진갑은 공교롭게도 전직 유도 선수에 의협심이 강해서 선생을 그만 두게 된 공무원 조진갑이다.
말끝마다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자타공인 썰렁한 아재 노대호나, 전작인 <손 the guest>와의 캐릭터 차별성을 위해 장장 10kg를 찌워서 돌아온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까지 둔 조진갑은 말 그대로 '아재'들이다. 그리고 그저 맡은 바 일을 '충실하게' 해내며 자신의 직업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픈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먹고사니즘'의 근원이 된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정의'의 선봉으로 밀어버린다.
은행의 감사가 회계에서 부터 업무 전반에 걸쳐 '감사'를 하는 일의 성격적 특성으로 부터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과정에서 '적폐의 카르텔'과 맞부닥치게 된다면, 조진갑의 직업인 '근로 감독관' 역시 직업적 특성으로 부터 '정의'가 도출된다. 즉, 두 드라마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주축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근로 감독관이 된 한때 조장풍 선생이던 조진갑 근로 감독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이다. 일찌기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며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고 한 게 1970년, 하지만 이 근로 기준법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공무원인 근로 감독관은 드라마에서 그린 대로 과도한 업무에 밀려, 또한 '갑'인 업주가 가진 '재력'의 위세와 권능에 밀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에는 늘 역부족이라 평가받는 직업이다. 이 직업을 가진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했다면 우리 현대사의 구비구비을 채운 그 수많은 쟁의와 투쟁들은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법'과 그 직업의 현실의 행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진갑의 후배 이동영(강서분 분)의 말처럼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이 앞서는 직업, 안타깝게도 '복지 부동'과 '무사 안일'을 모토로 하여 6년을 버티던 조진갑 역시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딸은 부끄럽다고 하고, 그것도 어떻게 눈을 질끈 감아보려 했는데, 6년 전 그로 하여금 선생직을 그만두게 했던 그 사건의 피해자 선우(김민규 분)가 체불 임금 노동자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실화'에서 부터 출발한다. 현금 승차 승객이 낸 3100원으로 인해 해고를 당하게 된 버스 기사의 사연, 거기서 부터 주인공 조진갑과 선우의 만남이 시작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6년전 유도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선도에 앞장서던 조 선생이던 시절, 선우는 학교 이사장 아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다, 그만 손에 잡힌 시멘트 블럭을 휘둘러 학창 시절을 미처 다 마치지 못하게 된 조선생의 아픈 손가락이다.
2015년 학창 시절 좀 놀았다던 엄마의 사연과,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그 딸의 겪는 교육의 문제를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사건을 절묘하게 직조하여 '교육 문제'에 '메스'를 들이댔던 김반디 작가는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통해 다시 한번 '과거'가 매개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적폐'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명성 학원이라는 사학 재단을 중심으로 왕따를 선동했던 재단 이사장 아들과, 그의 하수인으로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사했던 천덕구(김경남 분)과 왕따의 피해자였던 선우, 그리고 그 사건에서 중재하려 애썼지만 그 자신 역시 선생직을 잃게 되며 가정까지 놓쳤던 선생 조진갑의 '과거 악연'은 이제 명성 그룹이라는 재계 카르텔과 그 계열사 상도 여객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선우, 근로 감독관이 되어 선우를 만나게 된 조진갑, 그리고 흥신소 직원이 되어 돌아온 덕구를 통해 새로운 '현재'으로 조우하게 된다. 즉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악연이 결국 부메랑처럼 다시 '현재'의 사건으로 등장하며 '적폐'를 실감케 한다.
과거 왕따 폭력 사건으로 인해 오지랖에 '욱함'과 '개도 안물어갈 정의감'의 3종 세트로 인해 직업도 잃고 가정도 잃었던 조진갑, 한때 조장풍 선생은 공무원을 준비하며 그 반대의 삶,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삶을 살겠다 다짐했었다. 하지만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우가 다시 목숨마저 위협을 받는 처지에 이르자, 그는 다시 한번 예의 '욱'을 발동하며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오지랖을 펴기 시작한다.
4회를 마친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이렇게 한때 조장풍이었던 조진갑의 과거를 풀어내며 악연의 역사를 드러내고 성도 운수를 중심으로 미리내 재단을 이끄는 구대길(오대환 분)을 등장시키며 '악의 축'을 구축하고, 그에 대응하여 어떻게든 복지부동하려 했지만 과거의 조장풍으로 돌아간 조진갑의 활약상을 그려낸다. 근로 감독관이라는 '법'의 테두리와, 흥신소 덕구를 활용한 법의 경계를 넘어선 '조력', 거기에 끝내 주먹이 앞서는 조장품의 욱함은 <손 the gust>의 윤화평을 잊게 만드는 김동욱을 비롯한 출연진의 호연과 김반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는 대본을 절묘하게 풀어내는 박원국 피디의 적절한 조율로 선배 <더 뱅커>을 훌쩍 넘어 월화 드라마의 강자로 등극할 기세다.
깡마른 몸, 창백한 피부, 이마에 칼자국같은 흉터까지 있는 11살 소년은 고아다. 위압적인 이모부와 냉정한 이모 슬하에서 짖궃은 사촌들에게 시달리며 계단 및 벽장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이 없던 소년에게 어느 날 찾아온 한 장의 초대장, 보잘 것없던 소년은 하루 아침에 '마법 학교'의 촉망받는 학생이 되어 '세계'를 구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가난한 소년, 그에게 찾아온 '마법'과도 같은 행운은 일찌기 <소공자>, <소공녀> 이래 고전적 클리셰이다. 이 '고전'적 서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왔다. 마술 지팡이와 함께 찾아왔던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물체를 공중에 띄우는 마법 주문)' 마법을 소환하여 한 시대를 호령하더니 이제 아예 '히어로'로 변신시킨다. 바로 <샤잠>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히어로가 된 소년이 어쩐지 새로운데 새롭지 않다. 바로 마블의 막강 소년 히어로 <스파이더 맨>이 있기 때문이다. 이모 할머니와 혹은 이모와 둘이 사는 고아 소년에, 그다지 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까지 <샤잠>의 빌리와 <스파이더 맨>의 피터 파커는 비슷하다. 그렇게 비슷한 처지의 두 소년에게 찾아온 뜻하지 않은 '마법같은 기회'를 통해 히어로로 성장하는데 어째 버전과 장르가 달라진다. <스파이더맨>이 다양한 시리즈를 통해 성장 서사를 넘어 마블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면, 덩치만 큰 어른이 되어버린 빌리와 그의 가족(?)들은 어쩐지 <파워레인져스>나, 디즈니 아동물인가 싶은 '동화의 세계'에 여전히 천착해 있는 듯하니, 그 세계에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파워 레인져스> 정도에 열광했던 시간으로의 역주행은 필수적일 듯싶다.
히어로 간택의 바늘 구멍을 통과한 소년 <샤잠>의 시작은 뜻밖에도 '빌런'으로 부터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히어로의 선택, 그 멀고도 어려운 길에 대한 이야기로 부터다. 아빠와 형으로부터 사사건건 무시당하는 어린 소년, 형이 비웃던 소년의 장난감은 뜻밖에도 소년을 마법사의 동굴로 데려간다. 히어로가 될 기회를 얻은 소년, 하지만 소년은 뜻밖에도 히어로가 될 기회인 마법사의 지팡이 대신 악의 구슬에 현혹되는 바람에 기회를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소년처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유행병처럼 마법사에게 소환당한다. 마법처럼 찾아올 행운에 자신을 걸고 싶었던 소년, 하지만 마법사에게도 팽당하고, 사고를 당한 아버지와 형이 그걸로 더 자신을 무시하자, 소년의 '자괴감'은 그를 '빌런'으로 성장케 한다. 이미 그 소년은 악의 구슬을 손에 넣기 이전에 '빌런'으로서의 필요 조건을 갖춘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악'의 가능성을 가진 소년도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간 놀이 동산에서 엄마가 따서 준 나침반을 가지고서도 길을 잃었던 아이 빌리(애셔 엔젤 분), 그는 시간이 흘러 청소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나침반을 가지고 길을 잃은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성장하지 않은 채 '엄마'를 찾아 헤맨다. 덕분에 벌써 몇 번째나 위탁 가정에서 '파양'된 형편. 그런 그에게 새로운 위탁 부모가 나섰다. 하지만 빌리의 달아난 마음에 새 부모와 형제들이 들어올 틈은 없다. 심지어 같은 방을 쓰는 프레디(잭 딜런 그레이져 분)의 소중한 물건을 자신의 도망 비용으로 쓰기 위해 슬쩍할 정도다. 그래도 프레디가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건 두고 보지 못했던 빌리, 아니 그 와중에 등장한 '엄마'란 단어가 빌리의 상흔을 건드렸다.
두 악동을 피해서 탄 지하철에서 빌리는 늙고 지친 위자드가 기다리는 히어로의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꼭 빌리여서라기 보다 이젠 더는 진짜 히어로가 될 인물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허겁지겁 '솔로몬의 지혜, 헤라클레스의 힘, 아틀라스의 체력, 제우스의 권위, 아킬레스의 용기, 머큐리의 스피드까지 신들의 능력을 총망라한 '샤잠'의 능력을 빌리는 계승하고 빨간 쫄쫄이 의상의 어른 '샤잠'이 되어 돌아온다.
소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아마도 <샤잠>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바로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해프닝일 듯하다. 거미에 물렸다던가 본의 아니게 히어로가 된 주인공들은 저마다 과도기적 통과 의례를 겪는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힘'에 대한 경이, 천착을 넘어 자아 성찰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을 뽐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힘의 무게, 혹은 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깨닫게 되며 본격적으로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다.
<샤잠> 역시 다르지 않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스파이더맨>과 같은 소년 영웅들보다 한 발 더 '치기'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른바 '중2병'의 전형적 캐릭터로 등장했던 빌리는 그 거침없는 캐릭터답게 자신이 가진 힘을 청소년의 호기심을 만끽하는데 우선 소용하며 b급 코믹 버전으로 넘어선다. 성인의 몸을 얻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 '어른'들만이 갈 수 있는 곳, 어른만이 살 수 있는 것을 해본다던가 등등, 그러다 자신의 힘을 온라인에 시리즈로 올리는 것에서 한 술 더 떠서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는 등 '무리수'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다 엇나간 그의 힘이 고가도로를 달리던 버스의 추락 사고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위기'를 모면한다. 이 장면은 흡사 <스파이더 맨>에서 히어로로서의 활약을 하려다 외려 카페리호를 두 동강 내고만 씬과 비교된다. 자신이 가진 힘의 사회적 여파에 대해 '자각'의 계기이지만 두 씬의 무게감은 다르다. '아이언맨'같은 아저씨와 빌리 못지 않은 프레디라는 친구의 충고의 무게감의 차이를 차치하고서라도. 히어로라는 책임감을 애썼던 소년과 아직 자신의 힘 자랑에 천착한 소년의 자각의 무게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빌리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히어로 입문식을 종식시키는 건 강력한 빌런의 등장이다. 몸은 샤잠이지만 여전히 청소년의 유아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빌리를 닥터 샤데우스는 성급하게 히어로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그가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한 가족이 되어버린 위탁 가정에 들이닥친 위기가 '빌리'를 본격 히어로의 세계로 등을 떠민다.
그런데 영화는 샤잠과 닥터 샤데우스라는 두 힘의 대결이지만, 그 안의 내용으로 치자면 '성장하는 소년'과 '퇴행한 소년'의 싸움이다. 엄마를 찾기 위해 그토록 여러 가정을 전전했던 소년 빌리는 버스를 추락시키고서도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를 엄마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돌아갈 곳을 찾는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의 존재를. 반면 닥터 샤데우스는 이미 '닥터'가 될 정도로 부와 능력을 가진 '어른'이 되었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힘을 제일 먼저 '가족'을 제거하는데 쓰듯 '퇴행적이며 유아적인 자아'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해리 포터>나 <스파이더맨>이 마법이나 자신에게 들씌워진 마법같은 능력을 통해 '사회적 자아'로 성장해 가는 것과 달리, <샤잠>은 '가족'이란 구심점으로 회귀한다. <샤잠>은 히어로물이지만, 히어로물을 기대하고 간 사람들 중 다수가 기대를 내려놓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훈훈한 '가족주의'적 구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 아니 엄마로 대변된 가족이 그리웠던 소년 빌리는 결국 '샤잠'이라는 마법과도 같은 능력을 통해 '가족'을 얻었다. 그의 히어로로서의 본격적인 도약은 다음 편을 기대해야 할 듯하다.
빌리를 비롯한 모두가 히어로로 거듭난 서사는 한 편에서 보면 빌리가 그러했듯 온갖 그리스 영웅적 신들의 이름을 모아 만든 호칭이 무색하게 영웅 설화의 숭고함 따위를 벗어난 반영웅적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스크린에 등장한 다수의 샤잠들은 본 관객에게 다가온 것은 그러한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영화의 의도보다는 <파워 레인져스>의 재현같은 치기어린 설정으로 헛웃음을 짓게 만들고마는 히어로들의 탄생 역시 <샤잠>의 소박함에 한 몫을 하고 만다.
섬, 사월의 바람은 / 수의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의 울음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중략)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살같을 싸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이하 생략) -바람의 집, 이종형
제주도는 전국민적인 관광지이다. 최근에는 '올레' 길이 각광을 받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고 있다. 그런데 제주의 마을 구비구비를 찾아드는 올레 길, 그 마을들, 특히 북제주쪽 마을들의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건 죽은 이들의 명패, 놀러온 관광객들이 밟고 지나서는 그 땅은 70여 년 전 그 마을 사람들의 피로 물든 땅이었다.
2018년 10월 18일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평균 연령 90세인 18명의 노인들이 제주 지방 법원에 들어섰다. 수용인 명부가 있을 뿐 이제는 기록조차, 아니 그 당시에도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군사 재판을 통해 국방 경비법 위반에서 부터 내란죄까지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옥고를 치뤘던 이들의 재심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려 달라'라며 절박한 호소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 기각'으로 답했다.
세월도 덮을 수 없는 이들의 억울함, 아니 억울함조차 호소하지도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 과연 70여 년 전 제주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bs 다큐프라임은 생존자 5인의 증언과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제주 4.3 사건을 '재연'한다. 배우 고두심의 나레이션과 제주도의 방언을 그대로 살려낸 입말의 생생함을 더한 '재연드라마' <바람의 집>을 통해 해방 공간 제주의 비극이 되살아 난다.
들끓는 민심, 그리고 한라산 무장대와 서북 청년단 1947년 이제는 아흔이 넘은 부원휴 옹 등은 당시 중학생이었다. 한 마을에서 중학교를 보내는 집이 몇 안되던 시절의 중학생, 중학교를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가 출세를 하겠다는 꿈에 부풀던 시절이었다. 3월 1일 여느 때와 같이 학교로 향하던 부언휴 학생은 당시 제주시의 중심이었던 관덕정을 중심으로 '신탁 통치 반대', '미국 과자 반대' 등의 슬로건을 내건 가두 시위 행렬을 목격한다. 시위대열을 지켜보는 것도 잠시 오후 2시 45분 경찰의 발포로 거리는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기마 경찰과 시위대열이 뒤엉키며 발생한 소요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아이를 업은 엄마, 어린 학생 등 6명이 희생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발포라 해명했지만 이는 외려 민심을 들끓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947년 3월 10일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에 해당하는 166개 기관 4만 명의 사람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제주도민의 궐기를 남로당의 선동으로 몰고갔다.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서북 청년단이 바다를 건너왔다. '공산주의 박살내고 통일 조국 건설하라'는 과격한 반공주의를 내세운 단체, 북에서 부모와 재산을 잃고 홀홀단신 내려온 이들은 경찰, 경비대 작전에 가담하여 무자비한 '좌익 사냥'에 앞장섰다. 선거를 앞두고 단독 선거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조속히 정리하고자 하는 정부와 미군정의 의도가 서북 청년단의 횡포와 폭거를 조장했다.
이렇게 경찰의 가혹한 수색과 탄압이 계속되며 제주도의 좌익 세력은 위기를 느낀다. 이에 한라산에 은신해 있던 무장대는 4.3일 '전국민이여 궐기하라', '단독 선거 결사 반대'를 주장하며 오름에 봉홧불을 올리고 화북면 경찰지서 등 12개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과 우익 인사를 공격, 이 과정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명이 행방 불명이 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전국에서 선거가 실시됐다. 전국 평균 투표율 95.5%, 하지만 제주도 전체 투표율은 62.8%, 그 중에서도 북제주는 46.6%로 과반수에 미달, 제주도 세 개의 선거구 중 두 개가 무효화되었다. 전국의 선거구 중 유일하게 5.10 단독 선거를 '보이코트'한 지역이 되었다. 단독 선거를 반대한 후폭풍은 거셌다.
배반의 땅 제주, 가혹한 댓가 제주도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점거되어 조속한 진압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부와 미군정은 부산, 대구, 여수의 3개 대대 병력을 증파했다. 10월 17일 포고령이 내려졌다. 해안선으로부 부터 5km이상 들어간 중간산 지역의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의 소개령이 내려졌다.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잔혹한 초토화 작전이 진행되었다. 11월 중순부터 해가 바뀐 다음 해 2월까지 중간산 마을을 불에 탔고, 남아있던 주민들은 학살되었다. 해안에 피신한 주민들 중에도 무장대의 가족이란 이유로, 혹은 무장대를 도왔다고 즉결 처분의 대상이 되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 갈곳없는 사람들, 밭고랑에 시체가 수북했고 피가 흥건했다. 이런 포악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주민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산으로 도망치려 했고, 그럴 수록 작전의 애꿏은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4개월 동안 중간산 지역의 마을 95%가 방화로 소실되었고, 1949년 6월까지 10,761명이 희생되었다. 이들 중 10% 이상이 노약자였다. 2만5천에서 3만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희생되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폭도'로 체포되었다.
그렇게 폭도로 체포된 이들에게는 가혹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장대에 쌀을 조금 준 것 밖에 없다는 호소에도 경찰과 서북 청년단은 전깃줄로 묶어 감전을 시키고, 오물을 먹이며 무장대를 불으라 했다. 포승줄에 묶어 산지축항(제주항)을 통해 육지로 호송되던 이들은 정식 재판도 거치지 않고 증인이나 증거도 없이 내란죄 등의 죄를 물어 징역 1년에서부터 7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바로 2019년에서야 '공소 기각'이 된 그 판결이다.
이제는 아흔이 넘거나 아흔 줄의 조병태, 박내은, 박동수, 부원휴 등 당시를 증인이 된 이들은 70년의 세월 동안 그 '내란'의 족쇄를 지고 살아왔다. 제주도에서 드문 중학생이 되어 뽐내던 소년, 서울로 올라가 출세하겠다던 포부를 지녔던 아이, 심지어 외삼촌이 선거 위원이란 이유만으로 무장대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며 집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다 자신의 눈 앞에서 형과 형수가 죽임을 당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동생, 이 평범했던 제주도민들이 무차별적인 초토화 작전 와중에 가족과 세월을 잃었다. 7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려진 사건번호 2017의 '공소 기각', 그러나 4.3 희생자들은 여전히 '명예 회복'의 길이 이제 첫 삽을 떠졌을 뿐이라며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써 제주 4.3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이 끝까지 이루어 져야 한다 주장한다. <ebs 다큐 프라임- 바람의 집> 2부작은 민간인 희생자였던 증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권력의 폭압과 희생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 추념식에는 뮤지컬 <화순 칸데라 1946>가 초대 받았다. 왜 제주에 '화순'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이? 이에 대해 제주 4.3 추념식 본부는 '화순 광부 학살 사건'으로 기억되는 화순 10월 항쟁이야 말로 4.3 이전의 4.3, 4.3의 시작이라 정의를 내렸다. 왜 '화순 사건'이 4.3의 시작인 것일까? kbs1에서 <특집 다큐 화순 칸데라 1946>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화순에 해방은 어떻게 왔는가? 해방 무렵 전남 화순 지역에는 남한에서 세번 째로 큰 탄광이 있었다. 수 천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터전을 일구며 살던 이 곳에도 해방은 찾아왔다. 일제가 남기고 간 탄광, 노동자들은 '자주 관리' 체계를 통해 나라의 석탄 자원을 원활한 공급을 위해 노력했고, 나아가 노동조합 조직인 '전국 평의회'가 이의 관리를 이어 받았다. 해방된 나라의 노동자가 할 일은 열심히 '생산'하는 것이라는 모토 하에 의기투합한 노동자들, 일제 강점기 2500여 노동자가 한달 기준 7,8000 천 톤 정도를 생산하던 석탄을 1300여 노동자가 13000톤을 초과 생산하는 획기적인 생산 증가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그 '기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45년 10월 일본군 대신 동남아시아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보병 부대가 '또 다른 점령군'으로 능주 초등학교에 주둔했다. 왜 '능주'였을가? 능주 치안대가 미처 후퇴하지 못한 채 오합지졸이 된 일본군에 대해 무장 해제한 일 등으로 '미군'은 이 '화순' 지역을 관심 지역, 혹은 위험 지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앞서 1945년 10월 일본이 남긴 재산, '적산'은 조선 군정청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던 미군, 당연히 '화순 탄광'처럼 우리가 스스로 '관리'에 들어간 공장, 탄광 등에 대해 '불법'으로 여겼다. 1945년 11월 미군은 탄광 접수를 공표했고,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24시간 이내 떠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임금 투쟁 등을 할 시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게 될거라 협박하며, 인원 감축을 핑계로 100 여 명을 해고했다.
이러한 미군의 태도는 당시 미군정청의 책임자로 부임한 하지 장군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당시 남한을 '불만 대면 터질 화약통'이라며 '자신이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의 가장 자리에' 있다는 식의 표현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노동자와 노동 조합은 반발한다. 해방 후 비로소 우리의 나라, 우리의 공장이라는 '해방 공간'이 하루 아침에 '또 다른 점령군'에게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이에 1946년 2월 '최저 생활 확보 임금제를 실시하라' 등을 내걸고 싸웠다.
해방 1주년, 피로 물든 너릿재 그렇게 싸움을 지속해 나가던 중 1946년 8월 해방 1주년이 다가왔다. 화순 탄광의 노동자들은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너릿재'를 넘어가고자 했다. 탄광 노동자와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와 아이들까지 1000 명이 '해방'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광주로 향하는 대열, 미군과 경찰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총검 등으로 이 대역을 저지, 30 여 명이 '머리가 잘리는' 등의 학살을 당하고 500 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미군과 경찰의 무차별적 탄압에 맞선 화순 탄광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신들의 탄광이었던 그곳에 '일본의 앞잡이'였던 이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해방 이전'의 상황을 그 누구라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점령'이 되어버린 '해방'을 수긍할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거기에 더해 당시의 심각한 식량 사정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울 불살랐다. 미군은 통치를 시작하며 일제가 하던 '쌀 공출' 제도를 폐지했다.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방식에 맞춰 쌀의 자유 시장화를 위해 1945년 10월 '조선 미곡 자유 판매'를 실시했다. 대혼란이 빚어졌다. 당시 자유 시장 제도에 부응할 수 있었던 건 일제에 협력했던 대지주나, 중급 이상의 지주, 미곡상들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매점매석이 이루어졌다. 몇 개월 만에 쌀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다. 결국 미군은 다시 공출, 배급제로 회귀했지만 <뮤지컬 화순 칸데라 1946>의 ' 네 홉 주던 걸 세홉으로 줄이다니, 하루도 못버틸 양으로 닷새를 버티라니, 배때지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못살겠어'라는 대사처럼 이번에는 배급량이 문제였다.
농민이든, 노동자이든 그 누구라도 이런 식이라면 당장 굶어 죽을 것같다는 절박함으로 '쌀을 달라'며 노동조합 탄압을 규탄하며 1946년 10월 다시 광주로 향해 나섰다. 그리고 이런 화순의 10월 항쟁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그 들불의 최종 귀착지는 제주도였다.
1946년 11월 4일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당했고 화순 탄광 폐쇄령이 떨어졌다. 6일에는 75명의 노동자가 체포되고, 11일에 경찰서를 공격하던 노동자들 중 3명이 사망했다. 결국 46년말 화순 탄광을 중심으로 했던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군의 노동자들이 산을 향했다. 그들은 화순 주변 지역 산에 '웅거'하여 '화탄 부대'가 되었고, 이들이 바로 빨치산의 시초라 추측된다. 또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산으로 가 '소년 부대'가 되었다. 결국 조정래의 대하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빨치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주의를 섣부르게 이식하려 했던 '점령군' 미국이었다.
서울대의 정근식 교수는 화순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촛불 항쟁에 비유한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과연 모두 좌파였을까? 마찬가지다. 1987년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넥타이 부대는 어떤가? 이런 정부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촛불을 들고 나선 사람들처럼 아마도 1946년 너릿재를 넘던 노동자, 농민과 그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 마음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상, 이즘에 앞서 해방된 나라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가고 싶었던 마음,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고 싶었던 마음, 먹고 살게 해달라는 생존의 절규가 바로 너릿재 고개를 넘던 대부분의 이들의 마음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화순, 그리고 이어진 여순, 그리고 제주 4.3까지 우리의 역사는 그 모든 것을 묻어 버렸다. 2009년 자신의 큰아버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오봉옥 시인이 <붉은 산 검은 피>를 통해 비로소 역사의 행간에 묻혔던 화순 사건이 드러났다. 그러나 오봉옥 시인은 '이적 출간물 출간'으로 인한 '국가 보안법'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제 4.3 70주년을 경과한 시간, 늦었지만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역사의 행간 속에 묻혀져 있던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복기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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