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 부립대학교 전기 공학과를 나왔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용의자 X의 헌신> 속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일찌기 <탐정 갈릴레오>에서 부터 그의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시에피소드가 종종 등장해 왔다. 그 중에서도 <라플라스의 마녀>는 작가 자신이 30주년 기념작이라 한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인 '과학'과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으로 찬사를 받는 작품이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라이프니츠의 이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은 수학적으로 진행된다. 만약 누군가가 사물들의 내부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다면 그리고 더욱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고려할 수 있는 충분한 기억력과 지식을 가진다면 그는 예언가가 되고 거울에서처럼 현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30년의 역작 <라플라스의 마녀> 프랑스의 철학자 시몽 라플라스는 이런 라이프니츠의 결정론을 확장한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현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존재'로서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한다.
늘 과학자들은 갈망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진다면, 조금 더 정확한 수치로 계산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정확한 공식을 얻는다면, 궁극에는 이 세계에 대한 '진리의 값'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런 과학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명적 진보를 추동했고, 그 과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환타지적 소망'이 '라플라스의 악마'로 나타난다. '악마'라지만, 이는 우리가 그간 sf를 통해 접했던 '시간 여행'이나, '평행우주론'의 또 다른 버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공대 출신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30주년 역작으로 바로 그런 과학적 모티브를 끌어와 자신만의 새로운 과학적 스릴러를 탄생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소설들을 산산조각내니 만들어 졌다는 작품', 그게 <라플라스의 마녀>이다.
그렇다면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이런 작가의 30주년 역작으로서의 성과가 잘 드러났는가 여부를 놓고 살펴봐야 할 듯하다. 아니, 그런데 사실은 이게 애초에 어쩌면 불가능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 리메이크된 <용의자 x의 헌신>을 봐도 그렇지만, 애초에 몇 백 페이지의 구구절절 장대한 원작을 두 시간 여의 영화로 콤팩트하게 만든다는게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리적 법칙에 통달하여 뉴턴의 운동 법칙을 꿰뚫어 과거를 알고 그로 미루어 미래를 꿰뚫는 존재'만큼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있을까?
영화로 온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의 시작은 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영화 제작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 사인은 황화수소 중독. 과학자로서 이 사건에 참고인이 된 과학 교수 아오에 슈스케(사쿠라이 쇼 분)는 온천지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보건대 '살인'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단순 사고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온천 지대에서 '황화 수소 중독'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온천 지역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가 된다.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타마키 히로시 분)는 죽은 사람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금을 수상하게 여겨 죽은 제작자의 아내를 의심한다.
그런데 발생한 또 하나의 온천 지역에서 벌어진 황화 수소 중독 사건, 이번에도 지형상으로 보면 사고사일 수 밖에 없지만, 같은 독극물에 의해 온천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의 조사에 따르면 오래 전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사건은 점점 더 단순 사고사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의문의 살인 사건에서, 8년 전 벌어진 아마카스 사이세이 일가족에게 벌어진 황화수소 중독 사건으로 시점이 옮겨진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아마카스 감독의 아들 아마카스 겐토(후쿠시 소타 분)가 등장하고, 점점 더 사건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아오에 교수 주변에 의문의 소녀? 여성?이 얼쩡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등장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닌, '마녀' 우하라 마도카(히로세 슈즈 분), 영화는 의문의 사고사에서 시작된 스릴러에서 이제 '라플라스의 마녀'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의 일가족 몰살 사건'을 감독의 블로그를 배경으로 '설명'해 나가고, 거기에 다시 스스로 마녀가 된 '우하라'의 사연까지 얹는다.
즉, 시작은 의문의 두 사건이지만, 그 사건에서 부터 과거로 들어가 거기서 아마카스 감독의 일가족 독극물 중독사, 혹은 미수 사건이 드러나고, 그로부터 비롯된 두 명의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의 등장으로, 황화수소 중독으로 시작된 사건은 '라플라스의 정의'에 근거한 과학 환타지로서의 영역으로 확장되어간다.
불가능한 독극물에 의한 살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라플라스 과학 결정론', 그리고 그 '결정론'의 집합체가 되어버린 '실험실의 모르모트'같은 두 사람,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 8년을 견디며 복수를 향해 달려온 청년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덧 그 청년을 사랑하게 되어 그의 복수, 아니, 복수를 빙자한 자멸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진 소녀의 순애보에 도달하게 된다.
두 시간 여의 런닝 타임으로 품어낼 수 없는 500여 페이지의 인간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오랫동안 스테디 셀러로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스릴러, 과학적 스릴러, 때로는 킬링 타임용 탐정물에, 학원물, 연애물, 휴먼 스토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을 양산해 내는 작가의 성실하고도 꾸준한 작품 성과가 제 일의 원인이겠지만, 그런 작품들을 씨실로 하여 그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고뇌와 욕망 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만화경'처럼 인간사에 대한 천착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영화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특수 효과의 특성을 살려 이른바 히가시노 게이고가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라플라스 이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득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조차도 대뜸 냇물 사이에 아오에 교수를 몰아넣고 드라이 아이스로 감금하고, 이건 몰랐지 식인 면도 있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아마카스 감독의 낡은 세트를 배경으로 한 '다운 버스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우하라의 순애보적 기지는 영화가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반면,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행간을 채웠던 복합적인 사건, 그 사건의 결 속에서 각자의 욕망과 고뇌를 가지고 살아 숨쉬던 인간들과 그 관계의 미묘함에 대해 영화는 결국 시간의 제약이었던지, 연출의 불균형이었던지, 단편적이거나, 혹은 설명적으로 그려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아니 어쩌면 군더더기의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접어두고 보면 영화가 그려내는 단편적인 설정이나 교훈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 책을 단 몇 줄의 결론을 알기 위해서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영화는 자신의 가족들마저도 완벽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아마카스 감독의 자기 위선과 완벽주의에 맞선,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기꺼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내놓을 만큼, 순수한 마음을 가징 우하라의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귀결되어진다. 물론 이 조차도 이 영화가 소설의 궤도를 따라 사건을 설명해가던 아오에 교수의 시점에서 이런 모든 것들이 ''지켜보게' 됨으로써 아, 이 영화가 '사랑'을 말하고 싶은 거구나, 혹은 과학적 진리를 통해 알 수도 있게된 미래라는 게 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 라고 이성적으로 이해해 줘야 하고 교훈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사건과 인물의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 서사의 과학적 설정은 가장 영화적이었지만, 그 서사의 행간을 채운 서사는 영화로 감당하기엔 너무 복합적이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결국, 각 인물들의 면면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들어야 하는. 언제나 책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책을 다시 꺼내들지 않도록 만드는 영화들은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개혁 군주 영조의 새로운 면모를 그렸던 <해치>는 비록 7%대의 시청률이지만 월화 드라마 1위의 자리를 수성한 채 마무리를 했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건 모처럼 개화한 mbc의 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다. 물만난 듯한 김동욱의 호연과 <열혈 사제>를 잇는 화끈한 '사이다' 서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뚫어주며 7%의 벽을 뚫었다. 그렇게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순풍에 돛단듯이 순항하는 가운데, 그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 드라마 두 편이 있다. 바로 '장르'가 박보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tvn의 <어비스>와 <해치>의 후속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이다.
'장르'가 박보영이라지만 <어비스>가 '로코'인 듯 하지만 '빌런'으로서 이성재의 존재감에서 드러나듯이 '스릴러'의 요소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초면에 사랑합니다>의 경우 드라마 초반 남자 주인공 도민익(김영광 분)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며 미스터리하게 열었지만 막상 드라마의 내용은 도민익과 그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의 아웅다웅하는 '관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로코인 듯 스릴러, 스릴러인 듯 로코인 복합 장르로서 두 드라마는 비슷한 듯 다르게 심지어 시청률조차 고만고만하게 (어비스 3.858, 초면에 사랑합니다 3.6, 닐슨 코리아 5.6 기준) 후발주자로서 고전하고 있다.
영혼으로 소생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 <어비스> 20년지기 친구인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절세 미녀에 재원으로 잘 나가는 검사가 된 고세연과 또 한 명은 반대로 길 가다가도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덜 생긴 차민, 일편단심 고세연만 바라보던 차민에게 뜻밖에도 운명의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결혼을 약속까지 했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하던 차민은 외계인의 운전 실수로 말미암아 사망, 20년지기 절친 고세연 역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연쇄 살인마로 인해 사망, 그렇게 두 절친은 세상을 떴고, 차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외계인이 준 생명 소생 구슬 '어비스'로 다행히 환생했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혼의 모습인 둘의 모습이 생전과 딴 판으로 평범녀와 누가 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잘생남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렇게 김사랑과 안세하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기며 박보영과 안호섭이 바톤을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예의 '박보영 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는 <어비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아직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풋풋한 안호섭이 이끌었던 초반을 지나 박보영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가 급 활기를 띠는 것처럼, 박보영은 그 또록또록한 발성과 똘망똘망한 연기로 대번에 드라마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조금전까지만 해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장례 치른다고 엉엉 울던 고세연이, 장면이 바뀌자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차민의 물건들을 팔아 편의점 순례를 하고, 날짜 지난 상품으로 편의점 알바생을 눙치고, 즐펀하게 편의점 앞에서 쏘맥을 말아 수다를 떠는 지점에 이르면 이 드라마가 <오나의 귀신님>인지, <힘쎈 여자 도봉순>인지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뜻밖에도 <어비스>가 드라마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이성재'의 본격적인 등장에서 부터이다. 동료 검사도, 피해자의 아버지도 모두가 모호하고 의심스러웠던 등장이었지만, 서하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오성철의 존재가, 그의 환생이 분명해 지면서 부터 드라마는 '스릴러'로서 장르의 묘미를 살려가기 시작한다. 또한 그런 면에서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과 <힘쎈 여자 도봉순> 역시 복합 장르 드라마였다는 것이 환기되며, 전작들에서처럼 박보영의 익숙한 연기를 새로운 '장르'의 서사가 융합하여 신선하게 다가올 가능성을 연다.
즉, 박보영은 그 박보영이지만, 박보영이 녹아든 이야기의 다름이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느냐가 <어비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오 나의 귀신님>, <힘쎈 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런 박보영의 전략이 또 다시 먹힐지는. 더구나 안효섭은 박보영이 함께 했던 그 어떤 남주보다도 '신인', 이성재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박보영의 어깨가 무겁다.
새로운 듯 익숙한 안면인식 장애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 <초면에 사랑합니다> T&T 모바일 미디어 1본부장 도민익은 남 보기엔 완벽하고, 그래서 완벽한 만큼 까칠한 상사이다. 덕분에 의욕만 앞섰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는 결국 상사의 싸가지 없는 해고 통지를 받게 되고 만다. 하지만, 그 날 회사에서 정갈희가 짤린 날, 정작 도민익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겨우 목숨은 구하지만 어릴 적 그가 받았던 뇌수술 과정에 삽입했던 클립이 측두엽에 무리를 줘 안면인식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이토록 흔한 증후군이었던가. MBN<마성의 기쁨>에서 공마성(최진혁 분)은 자고 일어나면 지난 날의 기억이 사라져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를 보였고, JTBC<뷰티 인사이드>의 서도재는 사고로 안면인식 장애를 안게 되었다.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하고, 심지어 직업도 다들 '장'이다. 뇌신경 센터 센터장, 항공 본부장에, 이제 모바일 미디어 본부장까지. 이 완벽한 조건에 완벽한 '티'가 되는 그들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후군에 완벽한 조력자가 있으니, 그녀들이다.
이 '익숙한' 설정을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T&T 모바일의 후계 구도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삼촌 간의 복잡한 집안 관계, 그리고 뜻하지 않은 피습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그리고 점점 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민익이 유일하게 알아보는 단 한 사람 정갈희를 등장시켜, 갑과 을이 사랑하는 사이로의 전복되는 과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을 통해 도민익의 오랜 절친 기대주(구자성 분)와 베로니카 박(김재경 분)과의 사각 관계로 풀어갈 예정이다. 피습 사건으로 심각하게 시작했던 드라마는 정갈희를 찾아와 상사 면접을 진심으로 받는 도민익으로 풀어내며 '로코'로서의 특색을 강화해 간다.
<너의 결혼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영광과 박보영, <퐁당퐁당 러브>에서 함께 했던 진기주와 안효섭이 이제 파트너를 바꿔 경쟁자로 만났다. 발군의 박보영, 한층 무르익은 김영광이 이끌고, 신인 진기주와 안효섭이 따르는 이 두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의 유제원 피디가 과연 박보영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지,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의 김아정 작가와 함께 입봉한 이광영 피디가 드라마에서 계속 부진했던 김영광에게 고진감래의 기쁨을 안길지, 하지만 이미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상승세를 펴고 있는 월화 드라마에서 이들 후발 주자들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여 센센이셔널한 파급을 일으켰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는 이후 개체인 인간은 자유 의지와 문명을 통해서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보완했다. 그렇다면 2019년 5월 6일 방송된 <장내 세균 혁명>을 리처드 도킨스가 봤으면 어땠을까, 세균을 또 다른 주체로 세우려 하지 않았을까?
꾸준히 현대인의 건강과 식습관에 대한 건전한 모색을 해오고 있는 <sbs스페셜>이 이번에는 그 시선을 '장내 세균'으로 돌렸다.
장트러블이 일상이 된 현대인 63세의 김진숙 씨 잦은 방귀, 트림에 설사를 달고 산다. 56세의 이금씨는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와서 고생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소식이 오면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야 할 정도라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훤하다. 38세 강용관씨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그는 혹시나 휴게소를 지나고 나서 신호가 올까봐 휴게소마다 미리 억지로라도 볼일을 보려고 애쓰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와 한 집에 사는 그의 아내 이해일 씨는 그와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도 변비로 고생 중이다. 심하게는 2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갈 정도로.
60대에서 부터 30대까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현대인들 대다수가 겪는 불편함을 넘어선 고통들일 것이다. 도대체 왜 세대를 막론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장트러블'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몸, 그 중에서도 장내에만 100조, 많게는 400조의 세균이 산다. 그 종류만도 수 천가지가 넘는 세균, 그 세균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맞추며 우리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몸에 유익한 균들도 있지만, 반대로 위의 증상에서 보여지듯이 방귀, 트림, 설사, 변비, 심하게는 복통, 궤양 등을 유발하는 유익하지 않은 균들도 있다. 결국 우리의 장은 '세균들의 '왕좌의 게임', 그 전쟁터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장을 그저 소화 기관이 아닌 면역 기관으로 보고 있다.
출연자들의 장내 세균을 분석해 봤다. 잦은 방귀와 트림, 설사에 시달리는 김진숙 씨의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키는 퍼미큐티스 균이 많았다. 변비와 설사가 오락가락하는 이금씨의 경우 병원성 균들, 대장균,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질균등이 다른 균에 비해 활발했다. 강용관 씨의 경우 매일 밤 야식과 함께 먹는 알코올이 장내 균들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려 77%가 박테로이스균이 점령한 상태이다.
우리 몸의 주인은 세균? 즉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누구는 설사를 하고, 다른 누구는 변비가 오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장내 세균총이 달라서이다. 하루에 50kg의 대변을 보는 코끼리, 엄마가 큰 일을 보자 아기 코끼리가 달려가 엄마의 똥을 먹는다. 초식 동물의 경우 아직 장내에 미생물군이 미성숙한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똥을 먹음으로써 엄마의 장내 미생물을 '계승'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균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는 엄마의 산도에 정예부대로 모여있던 락토 바실라스 균 등 유산균 샤워를 시작으로 엄마의 모유를 통해 비피더스 유산균 등을 취하여 장내 미생물총을 형성해간다.
이렇게 엄마를 통해 건강한 유산균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군을 형성한 아기들은 하지만 커가면서 각종 스트레스와 인스턴트 식품, 불균형한 식습관에 음주 등을 통해 장내 세균층이 무너져 간다. 위 6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례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육식'을 매우 즐기며, 간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야식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데 술 까지 한 잔 하는 식의 식생활 패턴을 가졌다.
결국 평생 동안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나의 장내 세균층이다. 그런데 장내 세균층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인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장트러블'때문만이 아니다. 장내 신경은 뇌 시경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장내 세균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치매와 장내 세균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치매가 박테로이스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중인 한국인 박사 허준열 교수 부부는 대부분 자폐아들이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에서 착안하여 엄마 쥐의 장내 세균인 절편 섬유상 세균이 새끼의 자폐 증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세로토닌'의 90% 이상을 장내 세균이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 학계는 장을 '제 2의 뇌'로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장트러블'을 넘어, 인간의 뇌를 관장하는 장내 세균들, 다큐는 '호모 박테리아누스'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결국 '장 건강'을 관리하는 건 '장트러블'을 넘어 100세 시대 아이부터 노인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장 건강이 곧 뇌의 건강 그렇다면 장 건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영양 성분'이 관건이 된다. 즉 우리 몸에 우리가 섭취하는 것에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세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예로 들면 흰 쌀로 지어진 밥은 사람이 소화시키지만, 현미 밥의 경우 그 껍데기의 식이섬유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통곡류와 해조류 등이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런 것들을 많이 섭취해서 장을 건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진 미생물들은 대장 점막을 자신의 먹이로 삼고, 그렇게 되면 점막이 약해져 그 틈 사이로 염증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 초반 12살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시작하여 19살이 된 환자는 결국 타인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하여 자신의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60대부터 30대까지 각종 '장트러블'로 고생하던 사람들도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틱스 등의 유익균을 일주일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상태가 호전되었다.
장, 세균을 통해 돌고 돌아 온 길이지만, 결국 다큐가 도달한 곳은 인스턴트와 육식 위주의 편향적 식습관을 가진 오늘날 현대인들이 장은 물론 갖가지 신체적 이상 증상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장, 건강한 뇌,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은 물론, 우리 몸의 어쩌면 실제적 주인일 수 있는 세균들이 좋아하는 통곡물과 해조류, 그리고 각종 유산균들이 구비된 건강한 식단을 먹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증명이다.
<이몽>은 실존 인물인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이다. 최근 김원봉에 대한 국가 유공자 대우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실존 인물 김원봉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은 <이몽>은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 이에, <이몽>의 윤상호 피디는 '김원봉은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인물이라 하면서 정작 드라마는 김원봉이라는 실존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이름과 상징성만 가져왔을 뿐, 허구가 가미되어 새로이 창조된 역할'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만, 정작 캐릭터는 창작에 의거했다는 <이몽>의 김원봉, 드라마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변절자를 두고 마주 선 이영진과 김원봉 드라마를 연 건 '파랑새'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운동 세력에게 답지한 60만불의 성금, 대한민국 국무원 비서장을 한때 역임했던 김립은 이 자금을 운반하던 중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다 오면직 노종균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사라진 독립운동 자금, 이 자금을 찾기 위해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애를 쓰고 그 자금과 관련된 '파랑새'라는 인물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정보를 김원봉은 얻게 된다.
바로 그때 이영진(이요원 분)이 일하는 자혜 병원에 한때 의전에서 동문수학하던 김에스더가 찾아온다. 우연인 듯했지만 자혜병원 의사가 되었다는 그녀가 이영진은 그저 반갑기만한데, 그런 반가움을 나눌 사이도 없이 총상 환자가 들이닥친다. 바로 변절하여 마쓰우라(조선명 노정술, 허성태 분)에게 동지들의 정보를 넘기려 했던 박혁이 김원봉의 총을 맞고 실려온 것이다.
죽어가는 박혁에게 정보를 빼내려는 마쓰우라, 혹시나 살아서 다시 동지들의 정보를 넘길까 우려하여 찾아든 김원봉, 그리고 그런 양쪽의 입장과 무관하게 환자를 지키려 하는 이영진, 이 세 사람의 입장은 생사를 오가는 박혁의 병실에서 첨예하게 맞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박혁을 두고 마주하게 된 김원봉과 이영진, 그저 환자 앞에서 기꺼이 자신의 몸으로라도 막아선 의사 이영진과, 독립운동가 김원봉일 뿐인 줄알았다.
드라마와 역사, 그 행간이 낳은 독해의 어려움 드라마는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지 앞에서 총구를 떨구는 김남옥(조복래 분)을 다그치며 기꺼이 변절자를 처단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김원봉, 변절의 이유가 있지 않겠다는 남옥의 말문을 단호하게 막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가 쪽팔리지도 않느냐는 김원봉의 신념은 단호하다. 그리고 그 단호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배달원으로, 심지어 경찰로 변신하며 자혜병원, 종로 경찰서까지 거침없는 김원봉은 만능키 히어로로 시간을 건너뛰어 시청자 앞에 나타났다.
드라마는 단호한 독립운동가로서 김원봉이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동지의 배신을 죽음으로서 응징하는 설정을 응용했고, 이의 실행을 위해 때와 장소를 불문한 변신의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실존 인물의 이름만 도용한 캐릭터라 하지만,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로서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첫 회에 배신한 동지를 처단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걸로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문득 배신한 박혁의 입에서 '파랑새'와 '한국인 여의사'라는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그렇다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형사들이 진을 친 자혜병원과, 심지어 일본 경찰의 중심부인 종로 경찰서를 그렇게 홀홀단신 위험을 무릎쓰고 변장을 거듭하며 드나든다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드라마의 캐릭터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고개가 갸웃해진다.
드라마 속에서 '파랑새'로 오해를 받았던 김에스더는 알고보니 '파랑새'가 아니었다. 지청천 부대에서 선생님과 의사로 활약했을 정도의 인물인데,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3.1운동 당시 제암리 사건의 명령자였던 헌병 소장을 암살하기 위해 홀홀단신 이영진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온 의사이다. 결국 독립운동 세력의 파랑새로 암살 작전을 위해 잠임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개인적 원한이었다는 김에스더의 암살 시도, 지청전 부대에서 의사로 활약할 정도의 독립 운동 내에서 역할을 가진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나 개인적 원한으로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도 안이한 설정이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비록 개인적인 독립운동가의 작전이라 하더라도 그 여파가 한 개인에서 끝나지는 것이 아니란 것에서 보여지듯 결국 드라마는 지청전 부대에서 활약까지 한 독립운동가 김에스더를 '개인적 모험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비록 개인적 모험주의자라 하더라도 김에스더는 헌병대장을 암살하려 한 사람, 일개 의사가, 그것도 신원 조차도 파악되지 않은 어제 부임한 의사가 이상이 있으니 검사를 하잖다고 달려온 헌병 대장도 그렇고 그 일련의 작전의 어설픔은 차치하고 그런 김에스더의 '모험주의적 일탈 복수'에 달려온 이영진은 기어코 그녀의 작전을 무위로 돌리고 그녀를 적들의 총구에 희생되도록 만든다. 1920년대 여자 의사라는 설정의 비현실적인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영진의 극중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 회차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가 그렇게 했던 것이 김원봉과 다른 입장, 즉 무장 투쟁이나 암살 등과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맞서겠다는 '파랑새'로서의 그녀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신념'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내가 친했던 언니가 지금 개인적이든 어떻든 자신의 작전 실행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그걸 굳이 가서 들통나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할 필요가 있을까? 드라마 속 설정은 김에스더를 구하려는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은 김에스더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 굳이 이영진을 위기에 몰아넣기 위한 작위적 설정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혜병원도, 종로 경찰서도 내 집 드나들듯 자유롭게 드나들던 김원봉은 이제 내 편이 하나 죽었으니, 상대편도 하나 죽여야 한다며 김에스더가 죽이려다 실패한 헌병 대장을 '손쉽게', 그가 변절자 박혁을 죽이기 위해 그토록 극 초반 종횡무진했던 것과 다르게 대번에 죽여 버린다.
안이한 서사, 독립 운동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 <이몽>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한 김원봉과 이영진, 두 사람의 독립 운동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싶은 듯 보인다. 하지만 '독립 운동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서사적 기반이 설득력있게 짜여져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 노출이 전체 독립 운동에 파급되는 여파가 큰 시점에 그래서 변절자를 기꺼이 동지의 입장에서 처단하려는 시점에 홀로 헌병 대장을 사적 복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돌아온 독립운동가 하며, 그렇다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숨은 독립 운동가에, 그렇다고 대뜸 그녀의 복수를 대신한 의열단이라니, 멋들어진 분장과 활약과 액션 사이를 메꾸는 서사가 치밀하지 못하다.
위의 '도올이 본 독립 운동사 -밀양 아리랑'에서 보여지듯이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는 의열단의 무장 독립 투쟁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조국과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참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혈지사를 규합하여 적국의 군주 이하 각 대관과 일체의 관공리를 암살해야 한다. 끊임없는 폭력만이 국가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취의 시간은 많은 의열단원들의 체포와 죽음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동지들의 잇다른 죽음은 의열단장 김원봉으로 하여금 개인적 테러가 아닌 무장 투쟁으로서의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물론 1920년대 의열단과 김원봉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당국자들과 친일파 지주, 자본가들에게는 최대 공겁의 표적이었으며, 2,30대 젊은이들한테는 민족 해방의 상징적 존재'(님 웨일스가 만난 장지락이 본 김원봉)였다. 그렇게 192,30년대의 상징적 독립 운동가 김원봉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몽>이 보여주는 건 과연, 그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그 상징적 존재였을까란 반문을 하게 된다. 어설픈 서사에 멋진 액션을 채워진 드라마로 그려진 김원봉, 과연 이 사람이 2019년에 되새겨 볼 그 김원봉일까. 차라기 성공도 실패도 한계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어쩌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 필요한 위인이 아닐까.
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 오늘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맞은 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고정 관념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등 남자 편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 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자다운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남자답게'가 끝났는데, 여전히 '여자답게'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 편,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그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두번 째 수업. 역시나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라면, 만약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며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Think outside of the box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난무하는 감각적 뉴스,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건들을 계속 자극적으로 양산해내고 아이들은 그런 '뉴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그거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자신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익힌 '응 니에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에서 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를 무분별하게 습득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감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의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성평등' 교육만이 이런 현실에 대한 '백신'이 될 거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야동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가 유투버로 부터 아이들에게 까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현실에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저 여성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들다는 성역할에 대한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한번이 당장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네,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아져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에너지로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거칠게 반응하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란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하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미개'해서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진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이라는 소회 끝에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 남학생보다 운동을 덜 좋아하는 여학생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에서,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꿔가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이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표현의 관행 자체에 대해 선생님들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간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 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의 신록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 딸끼 뷔페가 작은 보답을 전한다.
제주도,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왜 가십니까? 아마도 <다큐 시선- 제주가 사라진다>의 리뷰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사람들은 왜 하고많은 대한민국의 여러 관광 명소 중에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저 제주에 가는 걸까? 거기에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잘 발달된 휴양지가 많아서? 들고 나는 공항이 편리해서? 이런 질문들 중에 여러분들이 제주에 가는 이유가 있나요?
아름다운 비자림 숲을 보러 가기 위해 비자림 나무를 자르다. 제주시 구좌읍, 거기엔 천년의 숲이라 칭해지는 비자나무 숲, 비자림 숲이 있다. 천연 기념물 374호, 수령 500년에서 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 단일 수종으로 세계 최대 규모, 높이 7~ 14m, 직경 50~110cm의 나무들이 지난 3월 잘려나갈 위기에 놓였다.
'나무 자르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예요'라는 숲 지키미들의 몸을 던지는 절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 칭해지는 27.3km에 달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 이 '천년'의 나무들이 잘라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논란'의 현장이 지금 제주가 앓고 있는 몸살의 현주소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고 싶어, 천년의 나무들을 보고 싶어 제주로 몰려가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천년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비자림로 확장 공사, 그 궁극에는 바로 제주 재 2공항이 있다. 국내선 여객 수송 1위의 현 제주 공항, 하지만 시설 규모로는 국내 7개 공항 중 5위, 공항 시설 능력 과포화 상태, 이에 원희룡 제주 지사를 비롯한 국토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제 2의 제주 공항을 만들기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제주 2공항은 곧 이를 둘러싼 제주 시민들 사이의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시작이었다.
독자봉
정상 동편 전망대에 올라서면 온평, 난산, 수산, 일출봉, 저멀리 우도까지 지척이다.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내 눈 속에 깊이 박아두었다. 오름 뒤편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묻었다. 마을 사람들은 독자봉 건너에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높은 고향 하늘이다 -강원보
난초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난산리', 이 작고 아담한 마을에는 3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난산리를 비롯한 주변 5개 마을은 제주 제 2공항이 들어서면 청사와 활주로로 인한 소음과 분진 피해를 입을 곳들이다. 이 가구 중에 원희룡 지사에게 달걀 세례를 퍼부은 김경배씨가 산다. 평범한 굴삭기 기사였던 그,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산일출봉을 닮은 조형물까지 만들어 가며 가꾼 그의 터전, 그저 지금처럼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공항 건설'과 함께 없어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42일간의 단식을 했다. 그의 부모님 세대들이라고 다를까. 당신들은 돌아가시면 그만이라면서도 공항이 들어서면 나고 자라고 삶의 터전이었던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시름에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 어르신들.
공항 아래 용암 동굴, 과연 안전성은? 제주의 생명인 오름, 대수산봉을 비롯한 10개의 오름들도 제주 2 공항을 비롯한 난개발에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 오름만이 아니다. 신공항 예정지에는 서궁굴 등 용암 동굴들이 이미 밝혀진 것 외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자연 유산으로 권고되고 ,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수산굴은 보존해야 할 곳이지만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오름이나 숲 등의 훼손과 다르게 용암 동굴의 문제는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있다.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수많은 비행기가 날고 드는 공항 아래 동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안정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질 파악을 위한 시추 작업을 동반한 정밀 지반 조사를 해야 하지만 어쩐일인지 2003년 문헌에 의거한 채 사업비를 전액 반납, 의혹을 남긴다.
또한 공역 문제도 걸린다. 군 비행기가 날고드는 군 작전 지역과 맞닿아 있는 성산 지역, 하지만 이에 대해 제주시와 국토부는 이 지역의 군이 해군이라 문제가 되지 않으며, 조정 가능하다며 이해를 구한다. 심지어 최근 들어 '폭설'에 잦아지는 기상 요인은 차치하고, 바람, 강수, 강설량만으로한 모호한 선정 기준, 거기에 타 지역 10년치의 기준으로 성산의 7년치 안개 일수를 퉁쳐버린 기준 등 의혹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철새 도래지도 주변에 있다. 제주 대표 해안 습지인 하도리,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2400마리 중 20 여 마리가 해마다 겨울을 나는 곳, 당연히 '버드 스트라이크'가 예상되지만, 비행기는 200m 이상 날기 때문에 괜찮다는 안이한 대처로 비웃음을 사고 있다.
도대체 하나에서 부터 열 까지 안걸리는게 없는 성산읍, 그런데 왜 이곳이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해 신공항 반대 단체들 역시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2012년 용역에서 유력한 예정지로 선정된 곳은 제주도 유일의 평야 지대인 '신도'지역이었다. 사회적, 환경적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했던 이곳이 2015년 불현듯 '성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니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대하는 편에서는 왜 굳이 '새 공항'을 지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기존 공항 확장을 배제하느냐는 것이다.
신공항,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원희룡 지사는 개인 유투브인 '원더풀 tv'를 통해 2015년 국토부 타당성 용역을 토대로, '기존 공항 확장 대안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활주로의 확장 공사로 인한 해양 환경 파괴 문제 등, 거기에 과밀한 교통 체증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측의 입장, 지난 4월 열린 기본 계획 수립 용역 보고회에서는 비행기의 바다쪽 선행과 대수산봉을 절취하지 않겠다는 국토부의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반대측의 거센 질문 세례에 보고회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이런 갈등만 벌서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대 인원이 들고 난다는 제주 공항, 만약 제주 제 2의 공항이 만들어 진다면 생산 유발 효과 8조 297억원, 부가가치 효과 2조 5510억원, 고용 유발 효과 3만 6040명 등을 낳는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고 한다.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 등 주변 인구 1천만 이상 5개 도시, 500만명 이상 13개 도시가 인접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동북아 요충지로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당성 조사를 현재 텅텅 비어있는 무안과 양양 공항은 안했을까? 즉, 이러한 수요예측 자체가 '희망'에 근거한 고무줄 결과물 일 수 있다고 반대측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성수기에 잠깐 붐비는 제주 공항을 개선하기 위해 또 하나의 공항을 만드는 것은 마치 명절 때 서울 부산 고속도로가 붐빈다고 고속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지 않냐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제주 제 2공항의 건설은 그저 공항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제주의 미래는? 이와 관련하여 좀 더 본질적으로는 지금 '개발 붐'에 있는 제주의 현주소에 대한 고민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한계에 이르러 필리핀으로 밀반출하다 돌려받게 되는 해프닝을 겪는가 하면, 무분별한 시설 개발로 하수 처리가 용량을 초과하여 해녀들의 밭인 바닷속 돌이 오염되고 푸석푸석해져 풀조차 점점 줄어드는 등 해양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예래 지역 휴양형 주거단지가 4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곳곳은 '관광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즉 한정된 자원을 가진 섬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제주,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이 2,30년 후의 제주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게 할 지,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램대로 더 좋은 시설을 갖춰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가 될 지, 아니면 과잉 개발로 인해 또 하나의 무안, 양양 공항의 탄생일지, 일출봉과 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는 게 제주의 풍광이 아니라, 비행기가 쉴새 없이 드나드는 제주 공항이게 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원한 건 '힐링'인데, 더 이상 '힐링' 할 수 없어진 그저 그렇게 뻔한 우리나라 여러 관광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릴 지, 제주 제 2공항 건설 문제는 바로 이런 미래 제주의 밑그림에 대한 갈등이다.
181분, 세 시간 여라기에 지레 걱정을 했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라도 있어야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지 않나? 뭐 이러고, 그런데 기우였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181분이라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의 길이로 밖에 안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수많은 등장 인물,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어벤져스를 이끌어 왔던 쟁쟁한 히어로들의 들고 남을 산만하지 않게 하나의 '서사' 안에 꾸려넣은 '편집'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엔드 게임'으로서 '어벤져스'가 빛을 발한 건 물량을 쏟아넣은 화려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 조차도 결국 승패를 가름하게 만드는 건 '철학적 세계관'과 그것을 풀어내는 '서사'로 부터 기인한다는 걸 '마블'이, 안소니 루소, 조 루소, 루소 형제가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는 것이다.
인피니티 워- 신이되고자 한 빌런 블록버스터 영화는 거개가 외계인의 침공이라던가, 지구를 뒤덮는 자연 재해라던가 지구에 대한 가공할만한 종말론적인 위협으로 시작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궁극의 위협을 가져온 건 바로 '타노스', 외계 빌런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우주의 힘이 담긴 인피니티 스톤 여섯 개를 담을 장갑, 인피니티 건틀렛을 차고 등장한 타노스, 그런데 이 외계 빌런은 뜻밖에도 스스로 '필연적인 존재(inevitable)'가 되고자 한다.
일찌기 늘어나는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고정된 자원이 지구, 나아가 우주를 멸망으로 이끌것이라는 '혜안(?)'을 가지게 된 타노스는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손에 넣은 우주의 힘을 가진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으로 지구와 우주를 '구원'하고자 무차별적인 '심판'을 행했고 그 결과 지구는 물론, 우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이런 일련의 타노스가 '행한 일'은 흔히 '종말론'적인 신앙에서 그려지는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과도 같다. 타락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40일 밤낮으로 비를 쏟아부었다던 '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 일을 마친 타노스는 자신이 행한 '최후의 심판'을 거스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다치면서까지 인피니티 스톤을 파괴했고,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마치 천지창조 뒤의 휴식을 취한 '신'처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 그의 의도는 어쩌면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배들로 즐비했던 뉴욕의 바닷가는 이제 고래들이 뛰노는 곳이 되었으니. 그가 바랬던 지구와 우주의 균형이 이루어져 가는 거 같다.
그런데 그가 없애버린 그 '인피니티 스톤'을 되찾기 위해 감히 '지구의 한 줌도 안되는 어벤져스' 무리가 '양자 물리학' 따위를 동원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다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고자 한다. 반을 살려놓았더니 사라진 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오류를 다시 한번 되풀이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온 타노스는 이번에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라그나뢰크(신들의 몰락)처럼 아예 '기억'할 '존재'들을 싸그리 없애버리고 '천지창조'부터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타노스 그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이기에 바로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정의내린 '필연적인 존재', 지구어로 번역하자면 '신'이다.
인간의 역사 -어벤져스 하지만 그런 '필연적인 존재'의 '전지전능한 작업'에 반기를 든 무리들이 있다. 바로 '어벤져스', 과학 기술의 성과를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아이언맨',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토르, 과거의 냉동인간이 해동된 '캡틴 아메리카', 과학적 돌연변이 '스파이더맨', 헐크', 영성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등등 인간의 상상력이 도출해낸 다양한 캐릭터의 히어로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타노스'에 대항했던 건 아니다.
에너지원 큐브를 이용한 적의 등장으로 지구가 위험에 처하자 국제 평화 유지기구 쉴드(S.H.I.E.L.D)의 국장 닉 퓨리(샤뮤엘 L 잭슨 분)가 어벤져스 작전을 개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를 위시하여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 헐크(마크 러팔로 분),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 호크 아이(제레미 러너 분) 등을 호출하여 적들에 대항한 동맹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들의 동맹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평화 유지 프로그램의 오류로 부터 탄생한 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린 적은 지금까지 지구 방위군으로 명망을 날렸던 어벤져스를 오히려 지구를 파괴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로 규정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지구 파괴와 인명의 피해를 양산하는 '어벤져스'의 존재는 어벤져스 팀 자체 내의 '철학적 이견'을 발생시키며 어벤져스의 갈등과 해산을 가져온다.
이러한 '갈등'은 그저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의 서사적 갈등을 넘어,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되었던 인류사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타노스가 인류의 반을 절멸시켜 인류와 지구를 구원하고자 했을 만큼, 인간의 문명, 그 발전은 또 다른 파괴와 폐해를 낳았고, '발전'과 '수호'라는 이름으로 인류는 지구 곳곳에서 또 다른 '점령'과 '파괴'를 일삼아 왔다는 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 낸 '괴물' 울트론과 맞서는 과정에서, '파괴'에 대한 반성으로 '통제'를 선택한 '아이언맨' 등의 그룹과 그에 맞서 통제를 벗어난 히어로들를 규합한 캡틴 아메리타의 그룹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시리즈에서 갈등의 정점을 달하지만, 결국 타노스에 의한 인류, 및 우주 절멸의 순간을 맞이하며 동지들을 잃게 되면서 다시 한번 힘을 모으게 된다.
인류가 사라진 곳에 숲은 무성해지고, 고래들이 뛰어놀게 되었지만, 인류는 자신들의 반을 잊지 못한 채 '상실의 나날'을 이어갔다. 결국 인간의 삶을, 인류를 지탱하고 유지해 가는 건,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로 이루어졌던 '역사'였음을 증언하는<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하여 '인류의 동맹'으로 다시 한번, '과학'의 힘을 빌어 '전지전능한 파괴'에 도전하여 '연대'한다.
'상실'로 부터 시작된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그 상실의 아픔을 '필연'으로 수긍하는 대신, '양자 물리학'이라는 최첨단의 과학을 끌어안으며 '과거'를 복구하고자 한다. 비록 폐해를 남발하는 인류의 역사였지만, 필연적인 존재의 심판 대신, 그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를 스스로 선택하고자 한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절정을 이룬 대규모 물량의 타노스 대 어벤져스의 전투 씬이 감동적일 정도로 다가오는 건, 그 씬에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적 물량과 함께, 두 시간이 넘도록 그 최후의 전투를 위해 다져넣은 동지적 인류애에 대한 서사 때문이다. 뒤늦게 얻은 딸을 두고 나선 아이언맨의 결자해지, 그리고 기꺼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블랙 위도우 등 어벤져스들의 전우애를 바탕으로 하여 결정적인 순간 그간의 이견을 불식하고 '합체'한 어벤져스 팀,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 돌아온 사라졌던 동지들의 복귀, 혹은 복구의 감격과 함께 대장정의 엔딩을 화려하게 빛낸다.
결국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결론은 숱한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류애'와 '인류 역사', 그리고 '인류 발전'에 대한 긍정적 헌사이다. 신의 심판 대신, '인간'의 손으로 자신들이 벌려놓은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주체적 의지의 '반신론적' 표명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심에, 미국 문명의 정점인 '아이언맨'과, 아메리카니즘의 대변자인 캡틴 아메리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지난 3월 최악의 초미세먼지(PM2.5)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공기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다. 하지만 그런 '공포'만큼이나 그 '원인'을 둘러싼 '갑론을박' 또한 더해만 갔다. 원인을 제공하는 중국에 대한 극심한 불만 만큼이나 그런 중국에 대해 미온적 대처를 하는 정부에 대한 불평도 늘어갔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80~90년대에 비하면 한층 좋아진 상태란다. 이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 좋아졌다니, 이렇게 혼돈스러운 '미세 먼지'의 논란의 진실을 <sbs스페셜>이 조목조목 파헤쳤다.
미세먼지, 정말 좋아졌나? 최근 장재연 아주대 교수의 미세먼지와 관련된 주장이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장교수의 주장은 산업화가 극에 달했던 80~90년대에 비하면 외려 최근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는 그 정도가 덜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직접 장교수가 주장했던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통계적 수치를 직접 조사해 봤다. 장교수의 주장이 맞았다. 초미세먼지 농도는 꾸준하게 낮아져 왔다. 고농도 미세먼지도 매해 감소하는 추세이다. 심지어 90년대의 미세 먼지 농도는 지금의 두 배 정도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대기 환경이 나빠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사람들이 그저 막연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 미세먼지 측정소의 지난 4년간의 자료를 데이터화 한 결과, 지난 4년 동안 미세먼지가 극심한 1월에서 3월까지 고농도 미세먼지의 지속 시간이 2015년 12시간에서 2018년 20시간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객관적 수치상으로는 미세먼지 양은 줄어들고 있지만, 예전 같으면 오전에 잠시 혼탁하던 하늘이 이제는 하루 종일 뿌옇게 보이니 사람들에겐 당연히 지금이 더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정말 중국으로 부터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하루 종일 하늘을 '점거'하는 미세 먼지, 그 원인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국민 청원에 등장할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일까?
베이징에 사는 한 시민은 오랫동안 베이징의 하늘을 매일 아침 촬영해 왔다. 그런 그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베이징의 하늘은 한결 맑아졌다고 한다. 그러면 수치상으로는 어떨까? 제작진이 직접 베이징에 가서 매일 매일 측정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 당국의 발표와 달리 베이징의 공기 질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나빴다. 국제 기준치에 근접한다는 발표와 딴판이었다. 그런데 왜 좋다는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1년 평균으로 통계를 발표하는 '데이터'의 함정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중국발 스모그의 습격과 함께 우리 사회 '음모론'으로 등장한 것이 중국 정부가 베이징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공장들을 우리나라에 좀 더 가까운 산둥성으로 대거 이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베이징에 있던 공장들을 대거 이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혹으로 삼았던 산둥성이 아니라, 베이징 외곽에 있는 '허베이성'이 그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하늘이 맑아진 대신 허베이성의 하늘은 스모그로 뿌옇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허베이성 사람들에겐 그런 공기의 질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산업적 활력을 준 공장들이 더 반갑다.
이렇게 다시 한번 중국으로 부터 오는 미세먼지의 유입이 확실해 졌지만 그 책임 요구는 쉽지 않다. 정진상 교수는 중국인들이 즐겨 터트리는 폭죽으로 부터 중국발 미세 먼지의 성분을 분석하여 미세먼지의 과학적 원인을 규명해 냈지만, 이게 국제적 보상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캐나다로 부터 미국이 국제적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법의 변화에 따라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가 그런 원인의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보상을 면해줄 수 있다는 등 보상의 관례나 사례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미세 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 분야에 과학적인 투자를 집중하고 있고 그와 함께 수치 상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어 더더욱 우리나라가 보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중국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중국만의 문제일까? 다큐를 연 건 미세먼지 측정기이다.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와 매일 학교를 오가는 학생의 등에 인간의 호흡과 동일하게 공기를 빨아들이는 '미세 먼지 측정기'가 매달렸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이 '미세 먼지 측정기'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린피스와 함께 제작진이 직접 실험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의 경우 그가 하루 종일 매달고 다니는 미세 먼지 측정기의 그래프가 들쭉날쭉하다. 반면, 매일 학교로 오가는 학생의 경우 등하교시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덜 심한 날과 상관없이.
즉, 제작진이 매단 미세 먼지 측정기의 수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관측된 미세먼지 농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니고 있는 길, 즉 자동차들이 내뿜고 있는 배기 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중국'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우리 곁의 자동차와 공장 등에서 뿜어내고 있는 미세먼지에 우리는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재연 교수가 주장하는 바도 일맥상통한다. 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저 미세먼지가 좋아졌다가 아니다. 미세먼지의 정도는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 질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적 결과물'들에 대해 살펴보고 점검하며 이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 라는 근원적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다.
또한 미세먼지를 둘러싼 갈등은 '정책'의 스펙트럼과 효율성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당장 미세먼지가 심한 상황에서 아토피 등 각종 알레르기 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시급하게 각 교실 등에 공기 정화기 설치 등을 요구하지만 이런 부모들의 긴급하고도 즉각적인 요구에 정부나 학교 당국은 '절차' 등의 문제를 내세워 미온적으로 대처하여 그 '개선의 속도'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부추겨지고 있다.
10년의 시간, 매 주 꾸준히 해왔던 게 있을까? 아마도 먹고 자는 거 말고는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일이라 쳐도 10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해온 사람들이 있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0주년, 440 회의 시간을 달려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이 특별한 시간, 하지만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유스케)>, 흔히 유스케라 부르는 이 프로그램, 이 약자의 본보기가 되었던 슈스케가 명멸해버린 지금도 밤 하늘 그곳에 늘 있던 그 별처럼 이번 주도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요즘 유스케가 언제 하는지 아시는가. 토요일, 일요일까지 오가던 이 프로그램이 요즘은 금요일 밤 11시 20분에 한다. 12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 하던 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평범 속의 진리 그 특별한 10주년을 연 건 놀랍게도 10년의 시간동안 한번도 <유스케>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김현철이다. 유희열의 말처럼 이상하다. 몇 번은 나온 거 같은데, 언제더라 노총각 4인방이라고 하며, 윤상,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이 나와서 서로 놀리며 흥겹게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던 게. 그게 벌써 언젠가 싶게 다들 아기, 아니 얘들 아빠들이 되었다. 그 네 명이 노총각으로 나왔던 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였는지, <이소라의 프로포즈> 였는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르고 같았던 kbs2의 계보을 이어 오늘의 <유스케>가 있으니, 그 앞서 선배들까지 따지자면 유장함 뮤직쇼의 계보이다.
어쨋든 그렇게 10주년을 맞이했는데도 여전히 <유스케>에 출연하지 않은 가수들이 있단다. 10주년 맞이 인터뷰를 한 유희열의 오랜 '고소원'인 조용필부터,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파릇파릇한 신인가수들까지.
10주년을 맞이한 <유스케>가 특별했던 건, 바로 여전히 이 무대에 서야 할 가수들이 있고, 언젠가 이 무대에 설 가수들이 있다는 그 '존재감'의 확인이었다. 이제는 <복면가왕> 아저씨로 젊은 층에게 더 어필한다는 19살에 '천재'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던 <춘천가는 기차>와 <연애>의 김현철이 30주년 앨범을 기약할 수 있는 무대가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을까.
또한 정말 우주에서 온 음악같은 신비하고 묘한 본인들이 표현하듯 본데없고 그래서 자유로운 방송 처음이라는 우주 왕복선 사이들 미러의 '난 아마 회사에 뼈를 묻지 싶다, 가난은 나를 잡고 나는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 다치기 전 내 두 눈을 감기고 싶어, 150씩 일년 계약, 거둬주신다면 작업실에 쳐박혀서, 우싸미 하나 1back 하나, 정규 하나, 잘할 자신 만만, 나같으면 투자 가' 이라는 유희열의 표현대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이후로 모처럼 신선했던 '설마는 사람잡고 철마는 달리고 싶어'와 같은 음악을 들을 곳이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가 새로운 설레임이었다면, 볼빤간 사춘기는 그런 <유스케>의 '선구안'의 증명이다. 불과 몇 년 전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유스케>에서 첫 무대에 섰던 '볼빨간 사춘기', 그 이상한 그룹명과 함께 '서양 수박 1위'가 소원이 야무지다 느껴졌던 그 시간을 이제 다시 돌아온 <유스케>에서 여유롭게 자랑의 한 품목으로 펼친다. 어디 볼빨간 사춘기 뿐일까. 아이유에서 부터, 내로라하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첫 번째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유스케>였었다.
그 어떤 화려한 팡파레와 축하 공연보다 김현철로 시작해서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로 마무리된 이 날의 <유스케>만큼 앞으로도 계속 유스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래 해서 계속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래 여전히 계속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낸 시간, 그래서 10주년 <유스케>는 빛났다.
mc, 그리고 뮤지션 유희열 또한 인터뷰에서 총무,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정의내린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의 음악과 함께 10주년의 곳곳에서 직조되어 빛났다. 30주년이 된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듣고 이런 사람과는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던 고등학생 유희열이 프로듀서 김현철이 말한 자신의 작품을 성취감에 대한 지론을 듣고 토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유희열 뮤직 월드의 시작은, 김현철 6집의 <이게 바로 나예요>이 병약하게 '술마시면 취하고 넘어지면 아파요'라고 읊조리듯 부르던 객원가수 유의열에서, 크러쉬를 객원가수로 하여 함께 부른 'you&me 수많은 사람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thar just you 너를 만난 건 믿디 못할 놀라운 기적' U&I를 거쳐, <무한도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그래, 우리 함께>,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었어'의 감사 인사로 마무리되며 mc 유희열과 그의 음악을 돋을새겼다.
평범한 듯 했지만,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가장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빛났던 시간,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빛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하지만 힘있게 강변했던 시간, 그래서 다음 중에 다시 만나러 가고 싶은 10주년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관건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 이성이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휴머니즘'이 아닐까 라고 tvn 수목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 대한 '오해'로 시작된 <그녀의 사생활> 속 라이언 골드와 성덕미의 관계, 그 얼크러진 실타래를 풀어가는 건 뜻밖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다.
오해, 사랑을 위한 배경지식? 성덕미(박민영분)는 채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이다. 전직 관장이었던 재벌가 엄소혜가 남편의 비리와 미술관을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물러나고 새로운 관장으로 입양아 출신의 라이언 골드(김재욱 분)가 오게된다. 지난 시절 그녀가 없으면 채움 미술관이 돌아가지 않는다 할 정도로 헌신하여 차기 미술관 관장이 돼도 손색이 없다 싶었던 성덕미,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장춘몽'은 라이언 골드의 등장과 함께 무너지는 건 물론, 엄소혜의 텃새로 인해 오해를 사며 '해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신임 관장인 라이언 골드와의 사이는 적대적일 수 밖에.
그런데 성덕미에게는 보여지는 큐레이터라는 직업 외에 또 하나의 숨겨진 직업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아이돌 차시안의 열렬한 팬이자, 그를 위한 팬까페의 홈마스터(홈마), 차시안이 뜨면 그녀는 마스크까지 검은 색으로 자신으로 가리고 그를 담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항에서 입국하는 라이언 골드와 부딪치며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팬 다이어리를 그에게 떨어뜨리게 된다. 상심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녀와 같은 취미 생활의 동지인 이선주(박진주 분)가 시안이 머물렀던 호텔 스위트룸에서 호캉스를 보내는 것으로 위로를 해주려는데, 이미 그 방에 머물렀던 라이언 골드와 방을 바꾸는 해프닝을 벌이는 가운데 라이언은 두 사람을 동성애자라 오해하게 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주인공 남자와 여자인 라이언과 성덕미가 매번 부딪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뜻하지 않은 오해까지 하며 해고와 동성애 사건을 겪게 된다. 해고의 해프닝은 그에 대한 성덕미의 얕은 복수심에서 벌어진 라이언의 카페인 알레르기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성덕미는 라이언의 생사여탈의 가해자이자 구원자가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본의 아니게 점점 더 긴밀해져 간다. 그런 가운데, 미술관 전시회를 위해 함께 차시안의 집을 찾는 과정에서 생긴 시안 팬들의 오해로 성덕미가 '테러'의 위협을 받게 되고, 이에 라이언은 스스로 그걸 막기 위해 '가짜 연애'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공감, 사랑의 시작 라이언이 가짜 연애를 제안한 이유는 그저 시안의 팬들을 막아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호텔에서 목격한 사실을 근거로 성덕미를 사회적 약자로 배려의 대상이라 생각한 그는 그녀의 정체성이 드러나서 고통받는 대신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어주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또 다른 오랜 친구인 남은기(안보현 분)가 찾아와 '아우팅' 운운하자 그는 분노해 그와 유도 대련을 펼치며 자신이 성덕미에 대해 생각한 바를 흘리고, 그로 인해 성덕미는 라이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라이언은 자신이 그녀를 터무니없이 오해한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지만, 정작 성덕미는 그런 라이언의 배려에 마음이 울리고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그 둘의 가짜 연애를 의심하는 관장 딸이자 성덕미의 경쟁 팬홈 마스터인 신디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함께 한 강원도 길, 그곳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노석 작가의 오랜 벗인 사진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사진에 대한 덕미의 해석, 안녕이란 제목이 세상과의 이별을 뜻하는 '굿바이'가 아니라 사진 밖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안녕 나는 이렇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마'라는 위로의 의미란 해석에, 이른바 라이언이 '동공 지진'하게 되는데. 엄마가 자신을 버려 어린 시절 입양이 되어 누군가의 손을 놓치는 게 싫어 타인의 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라이언이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덕미의 해석에 얼어붙었던 라이언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라이언 만이 아니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으로 중학교 때 만나 무려 30년 동안 자신을 바라봐 왔지만 엄한 가정에서 자라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 상처로 남았던 노석 작가의 얼어붙은 사랑마저도 덕미의 그 따스한 해석에 마음을 돌리도록 만든다.
그렇게 비록 사회적 약자라 오해했지만 기꺼이 자신을 지켜주려는 라이언, 오랜 아픈 사랑의 상처를 가진 노석 작가의 마음조차 돌려세운 성덕미의 따스한 시선, 결국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성 간의 연애를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건,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온기, 선의,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는게 아니냐고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불신, 오해를 넘어, 이제 서로에 대해 온기를 느끼며 '덕질'의 초기 단계에 빠져드는 라이언과 덕미의 '덕질 연애', 그들의 '휴머니즘 러브'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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