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족'은 해체 중에 있다. 개인의 안전판이 되어주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이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그 '최후의 보루'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면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직계 존비속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는 우리 사회 기본 안전망이었던 '가족'이 더 이상은 보호막이 되고 있지 못함을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족만들기의 과정인 결혼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비혼'을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선택하고 있다. 

번거러워진 가족, 하지만 홀로 사는 삶도 녹록치 않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러한 현대 사회의 고민에 대해 '대안적'인 모색을 하는 이들이 있다. 7월 14일 <sbs스페셜>이 찾아간 도봉구 안골 마을의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가 그 주인공이다. 

 

 

엄마를 찾지 않는 아이들 
다큐를 여는 건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아침 기상, 엄마가 아이들을 깨운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한 층을 올라가 또 다른 가정인가 했는데, 거기서도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들이 '가족'이 아니란다. '가족' 대신 이들이 쓰는 명칭은 '부족', 이 부족에만 아이들이 9명이 있단다. 

가족도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석기 시대에나 있을 법한 부족이 있다. 이 '부족'의 아이들은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스스로 오늘 있을 '무수골 탐방'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를 찾지 않는다. 심지어 어른도 지치기 십상인 산길을 오르는 내내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어른들 사이를 누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이번에도 엄마가 아니다. '이모'란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땀에 젖은 머리를 묶어주는 유치반 아이들 4명을 오늘 보살피는 사람은 '이모',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의 이모가 되어주는 정영경씨다. 이렇게 이모가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사이 엄마는 공동체의 또래들과 여유롭게 산행을 즐긴다. 

14가구 50명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안골 마을의 소행주, 거기에는 평소에는 각자 개인의 삶을 살지만 가끔씩 서로에게 가족 역할을 하는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가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함께 모여살았던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하던 모임,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은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끼지 함께 모여살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깊이 쌓이게 된 외로움, 공부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느라 친구 관계조차 깊게 맺지 못하던 현실에서 그들은 그 어려움을 세상이 요구하는 '결혼'이라는 과정 대신에 '공동체'라는 대안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였다. 

 

 

뜻을 모아 '소행주'
소규모 연합 공동체들이 모여 함께 살아보자는 결의를 하고 함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작게 모여살았던 사람들 중 막상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자본주의적'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경제적 합의를 함께 할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 그런 경제적 난관에 대해 공동체 '은혜'는 융통성 있는 방침을 마련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신 매달 '월세'를 내는 것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을 마련했다.

2016년 5월 지상3층, 지하 1층의 공동체 주택 소행주가 완공되었다. 싱글들의 삶, 그 특성을 존중하는 공간, 하루 종일 일하는 엄마가 돌아와 '독박 육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공동 육아'의 시스템, 거기에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지하의 강당까지 소행주는 그렇게 '공동체'의 삶을 열었다. 

집을 짓는 것말고 난관은 또 있었다. 싱글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공동체 만들기, 하지만 '소행주'를 만들며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래서 그들은 '이모'가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싱글의 이모들이 아이들을 돌본다. 방과 후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들놀이를 보살핀다. 이젠 아이들도 유치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찾는 대신, 오늘은 누가 날 돌보는지 묻는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지하 1층, 지상3층 나무로 된 계단을 맘껏 뛰어 다닐 수 있는 아이들에게 '소행주' 자체가 무한한 놀이 공간, 아파트에서처럼 '뛰지 마라', 잔소리 할 일도 없다. 놀 꺼리가 없어 일일이 놀아줘야 하는 고달픔도 없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다보면 어느 틈에 잘 시간이 되어버린다. 꼭 '이모'가 아니라도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끼어들어 함께 어울린다. '이모'의 역할은 그저 아이들끼리 '분쟁'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켜봐 주는 정도,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잘 시간이다. 그러면 돌아와 그제서야 엄마와 인사를 하고, 엄마의 몫인 시간은 한 달로 치면 4시간, 엄마에게는 '천국'인 공동체다. 

엄마로서의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 공동체의 뜻이 맞는 사람들끼지 모여 좋아하는 일을 한다. 여자들끼지 요가를 한다. 싱글들끼리 오붓한 옥상의 족욕 타임도 빠질 수 없다. 거기에 어른에서 부터 아이까지 함께 모여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영화 제작도 하는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이 빠질 수 없다.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날은 웬만한 파티에, 행사 못지 않게 시끌벅적 '난장'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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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이혼해도 '가족'은 남아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홀로 지내던 크리에이터 최미정 씨가 찾은 공동체 '은혜',  홀로 지낸 시간이 길어 과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그녀의 의문과 달리, 공동체의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맞이한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또 한 명의 이모다. 일주일을 공동체에서 보낸 공동체의 사람들이 바리바리 싸준 먹거리를 들고 떠나던 최미정씨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어요, 여기 사람들은', 하며 결국 눈시울을 붉힌다. 

물론 처음 부터 다른 관계 맺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습관의 차이는 원칙을 만들어 쉽게 고쳐졌지만, 각자 성격의 차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보던 사이가 함께 집을 짓고 사는 관계가 되었고, 이제 그런 공동체의 실험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없던 아이가 생겨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온 부부가 이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의 이혼으로 혼란을 겪던 아이가, 다른 이모 삼촌들의 위로로 자신이 버림받은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곳, '이모'의 노릇은 쉽지 않지만, 대신 '가족'이 생겨나는 곳, '가족'조차 없어져 가는 시대에, '부족'을 만들어 사는 마을, 공동체 '은혜', 그 실험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고독 사회'가 가진 고민의 한 대안임에는 분명하다. 

by meditator 2019. 7. 15. 16:34

크레인 가족의 5남매는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고택에서 저마다의 안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이들은 결국 다시 그 '고택', 힐하우스로 돌아온다. 바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힐하우스>의 내용이다. 오래된 집, 그곳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통받지만 그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  <힐하우스>는 '오래된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의 집을 배경으로 한 '호러' 장르의 대표적 작가인 셜리 잭슨의 대표작이다. 심지어 미스테리 스릴러, 공포 환상 문학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됐을 정도다. 그런 셜리 잭슨의 또 다른 '고택'을 배경으로 한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가 이번에는 영화가 되어 찾아왔다. 

 

 

마녀가 되어버린 언니 
셜리 잭슨의 또 다른 대표작 <제비뽑기>, 한 마을에서 77년의 전통을 이어온 제비뽑기, 그런데 이 '제비뽑기'는 다름아닌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을 뽑아 마을 아이들이 정성스레 쌓아올렸던 돌로 쳐죽이는 것, ' 우리 모두의 삶에 보편적인 몰인간성과 무의미한 폭력성이 있다는 것을 불쾌하게 각색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런 서사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마을이 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고택, 그 곳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자매, 메리캣(테이사 파미가 분)과 콘스탄스(알렉산드라 다다리오 분). 몇 년전 그 고택에서는 살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두 자매의 부모가 독살당했다. 삼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하반신을 못쓰고, 정신적 충격으로 그 날의 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살인 용의자가 된 건 바로 큰 딸 콘스탄스, 그녀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언니 콘스탄스를 마녀 취급을 하고, 이들 자매에게 극도의 적대감을 표시한다. 

 

 

언니 콘스탄스는 그때 이후로 '광장 공포증'을 겪어 집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래서 동생 메리캣이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러 마을에 간다. 홍해 바다 갈라지듯 그녀가 등장하면 피해서는 마을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대놓고 욕을 하는 아이들,  물건은 파지만 벌레보듯하는 가게 주인과 손님들, 그리고 겨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까페에서 만난 언니의 옛 연인은 대놓고 그녀와 언니를 조롱하고, 그곳의 노인들 역시 혐오감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러던 마을 사람들의 악의는 결국 블랙우드 저택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 불붙으며 광란의 카니발을 벌인다. 

콘스탄스와 메리캣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흡사 중세 시대 마녀 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 시대 누가 마녀가 되었을까? 마녀 사냥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자', 그 중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여자들이다. 가난한 과부, 병든 소녀, 그리고 버림받은 여인들이다. 사회로부터, 그리고 그 사회의 중심이 된 남자들로부터 외면받은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처지는 '마녀'라는 이름 아래 잔혹한 '살해'의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블랙우드 가문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심지어 살해 용의자가 된 콘스탄스와 메리캣은 더할 나위없는 마을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아마도 중세 시대부터 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달리 '부'를 누려왔던 블랙우드 가문에 대한 계급적 적대감을 두 자매에 대한 '마타도어'로 치환시킨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비극'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다. 77년된 <제비뽑기> 속 마을의 전통 그 유래가 중요하지 않듯, 마치 까마귀들이 병든 동료가 발견되자 마자 쪼아죽이듯 그렇게 쪼아대는 그 '악의적 관습'이 마을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한때 언니와 사랑해서 야반도주를 하려다 아버지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한 소방대원조차 '진실'대신 동생 메리캣에 대한 극도의 혐오로 자신의 상처를 대신한다. 

 

 

보호받지 못한 자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마법적 주술에 의존해서 자신을 지키려 안간 힘을 쓰는 메리캣과 블랙우드 성에 갇혀 박제된 인형처럼 살아가는 언니 콘스탄스가 있다. 그런데 그런 아슬아슬한 두 자매의 보호막이 사촌이라며 찾아온 찰스(세바스챤 스탠 분)를 통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스테이시 패슨 감독이 2013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바 있는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풀어냈던 동성의 관계는 영화 속 언니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메리캣과 그런 메리캣에게 '사랑해'라며 보상해 주는 언니의 관계를 통해 긴장감있게 전환된다. 그리고 이 미묘한 자매애는 사촌이라며 등장하는 '남자' 찰스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긴장감 이상의 성적 긴장감을 낳으며 '블랙우드'가 파국의 또 새로운 단초가 된다. 

'남자', 아니, '남성'으로 인한 자매의 위기, 그리고 그건 그동안 본인들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왜 콘스탄스가 사랑하는 이와 떠나려다가 떠나지 못했는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날 밤 블랙우드가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그 이전에 '블랙우드'가의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찰스'의 등장은 그의 얄팍한 잔꾀가 도발한 잔잔했던 자매의 일상을 궤멸시키는 것을 넘어 위기의 순간 그를 '아빠'라며 부르며 절규하는 두 자매를 통해 봉인되었던 진실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봉인된 진실에는 마을 사람들조차 부럽다 못해 질시하고, 저주했던 '부'의 상징 블랙우드 가가 무색하게 '가족' 내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여성이 있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상처는 결국 '가문'의 비극을 낳고, 다시 '세상'의 보호마저 닫힌 그녀들은 안식처인지 감옥인지 모를 '블랙우드'로 침잠한다. 

영화는 아름다움이 '호러'가 되는 색채감이 넘치는 미장센을 통해 '블랙우드'가의 비극을 상징해 낸다. 그 비극 속에서 주술에 자신을 맡긴 기괴한 소녀와, 인형처럼 박제되었던 언니의 이질적인 자매의 끈끈한 사랑 속에 숨겨진 블랙우드 가문의 비밀을 미스테리의 한 축으로 하며, 거기에 이 자매들을 '마녀 사냥'으로 몰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증오의 카니발을 끼얹으며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의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by meditator 2019. 7. 14. 01:24

지난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는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를 전시하고 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이쾌대 우리 근대 미술계에서 잊혀진 혹은 방치된 예술가들을 복기하는 전시회를 꾸준히 이어왔던 국립 현대 미술관은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실시대>를 통해 일제 시대와 6.25라는 역사적 격동기에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예술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던 미술가들을 소환하여 미술로서의 근대사 읽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는 사회와예술, 나아가 존재와 예술이라는 거대 담론을 향해 한국 미술사가 해나가야 할 진중한 과제를 향한 성실한 답변의 일환이다. 

1층과 2층, 총 3부로 이루어진 전시회는 근대 화단의 신세대; 정찬영, 백윤문, 해방 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현대 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등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는 낯설은 이름,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그들의 그림들, 하지만 그 그림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 근대 미술의 지평이 그저 몇몇 명망가들로만 이루어진 그런 것이 아닌  다양한 시도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더구나 최근 미술사를 수놓았던 인물들이 '친일'이라는 오명을 달고 퇴진하게 되는 위기에서 더더욱 반가운 시도이다. 

 

 

근대 화단의 신세대 
3부의 전시회를 여는 건 여류 화가 정찬영이다. 1929년, 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당시 유행하던 채색화 기법의 <지반, 또는 수련>, <설중백로>로 연이어 입선하며 미술계에 등장, 이후 그런 채색화의 기법에 자신만의 세밀한 묘사를 더한 <모란>, <여광> 등으로 여성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의 특선 작가가 되었다. 특히 자신의 딸을 모델로 하여 나물 바구니를 옆에 두고 애처로이 앉아있는 <소녀>는 1935년 창덕궁상을 수상함은 물론 식민지하 조선의 심성을 대변한 작품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결혼의 조건이 그림을 계속할 수있었던 것일 만큼 예술에의 의지가 강했던 정찬영, 그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기 위해 공작을 그릴 때 창경원에 나가 직접 데생을 하거나 했지만 그 자체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가 될만큼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혼 두 둘째 아이를 잃게 되면서 그 아픔으로 붓을 놓게 된 정찬영, 이후 그녀의 그림은 식물학자인 남편 도봉섭의 식물서에 식물세밀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남편의 납북으로 더는 그녀의 그림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촉망받는 여류 예술가였지만 '가정'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붓을 접어야 했던 근대 여성의 자화상이다. 

 

 
정찬영과 함께 전시된 백윤문, 도화원 집안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순종의 어진을 그렸던 화가이다. 김은호에게 사사하였으며 정찬영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채색화 화풍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 정찬영이 여성적이며 섬세한 필치로 채색화를 접근했다면, 백윤문은 그와 반대로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당시 남자들의 생생한 생활의 모습을 담아내며 자신의 미술 세계를 이끌어 가다 1942년 건강상의 이유로 무려 35년 동안 붓을 접게 되었다. 이후 기적적으로 1977년 건강을 되찾아 78년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지만 불과 2년 후 유명을 달리했다. 

현대 미술의 개척자 
근대 미술의 신세대의 맞은 편 공간에 펼쳐진 건 지금의 우리에게도 신선한 현대 미술의 화풍을 개척한 이규상과 정규의 작품 세계이다. 김환기, 유영국, 그 이름만으로 걸출한 우리나라 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자들이다. 김환기의 그림이 십억을 넘는 낙찰가를 호가했다는 기사를 아직도 접하게 될 정도로 여전히 '핫'한 것과 달리,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미술, 나아가 추상 미술을 이끈 세 사람이라 당대 칭해졌던 이규상은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지 못한 시대를 만나 가난에 그림마저 절필하는 불우한 삶을 살게 되었다. 

1930년대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의 모더니즘의 화풍을 이어 받아 다양한 미술적 시도가 융성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에 미술로 유학했던 이규상이 그런 화풍을 이어받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규상은 그런 모더니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호안 미로의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여 그걸 자신의 작업 세계에 풀어놓는다. 기독교적 세계관, 이를 선과 원 등의 추상적 대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던 이규상, 하지만 그런 '난해한' 그의 작품은 전시회를 통해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으며 동시대인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고 하지만 추상적 주제를 향한 그의 예술적 열정은 더해만 가며 결국 그를 세상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반면 역시나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화로 작품 세계를 열었던 정규는 초창기에는 교회, 소년같은 구상적 이미지를 선으로 구획된 단순화시킨 추상적 이미지로 만드는 작품들에 집중했지만, 불모지와 같은 추상화단에 머무르지 않고 판화, 도예, 그리고 도예 작품을 활용한 벽화로 자신의 작품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며 우리 미술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해방 공간의 순례자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크다. 우리가 이름조차 몰랐던 근대 미술가들의 그림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전시회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는 해방공간과 분단의 시대를 살아갔던 '선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이기에 예술가로서의 생을 다하지 못했던 사람도, 너무 앞서가서 외면받아 좌절했던 선각자도, 하지만 이런 근대인들의 초상들 중에서도 어쩌면 정말 이 전시회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해방 공간의 순례자'라는 제목으로 찾아온 두 사람 정종여와 임군홍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들게 전시회를 보고나서면 들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2층의 양 홀을 가득 메운 그들의 작품이 그러하거니와, 작품들의 면면이 우리 미술사에 이런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걸출하고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도, 그들의 그림도 낯설기만 할 뿐이다. 

화가 임군홍,  하지만 그에게는 화가 말고도 다른 수식어의 직업이 많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정규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임군홍, 독학으로 공부하여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연속 입선에 미술학도들과의 동인전으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가장으로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그는 1939년 이래 중국으로 가 중국의 풍물을 인상주의, 야수주의 등의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자신의 그림에 담았다. 

 

 

도화서 가문 출신의 백윤문이 평소에는 수묵 담채의 기법을 좋아했지만 당시 미술의 트렌드를 따라 조선화단에 인정을 받기 위해 채색화 그림을 그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을 하였듯이 일본 유학파 등이 주축이 된 조선 화단은 특정 트렌드가 중심이 되었고, 그런 조선의 화단과 거리를 둔 임군홍은 중국인의 거리와 풍물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화풍을 진작하여 우리 미술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1936년 입성을 시작으로 1938년부터 44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선과 특선을 거듭했던 대표적인 작가 정종여, 전시회장 1층 전면을 가득 메운 괘불도, 25살에 그렸다는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화풍은 호방하며, 일본 화단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수리에서 보여지는 기상은 우리나라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상이다. 또한 중국의 고전을 답습하던 전통화에서도 금강산과 지리산, 가야산 등 우리 산하의 정경을 실사화로 그려내었던 화가, 그만큼 정종여가 해방 이전과 후 한국 화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그러나, 색달랐던 임군홍도, 호방했던 정종여도, 그 이름도, 그의 그림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자진 월북, 혹은 납북되었기 때문이다. 각각 1972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에서 '공훈 예술가'의 칭호를 받으며 활동했던 이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은 본의 아니게 남한 화단에서 '절필'의 작가가 되었다. 이제 북한 최고 인민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원봉의 월북 이전 독립 운동의 공으로 '서훈'조차 제기되고 있는 시점, 한국 화단의 블랙홀이 되었던 월북 화가들의 작품을 '절필 시대'를 통해 복기하는 건 그래서 반갑고도 소중하다.  본의 아니게 절필이 된 그들의 절필 이전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근대 화단의 본 모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by meditator 2019. 7. 11. 22:01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그루밍 성폭력', 그루밍 성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그 피해자들이 미성년자나 교회 신도등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폭력이 이루어져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이 당한 부당한 성폭력에 대해 차마 드러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하고 최근 교회 내 성폭력 사건들을 빈번하게 사회면에서 만나게 된다.

<시사 기획 창>은 이러한  그루밍 성폭력 중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다. 다큐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사례를 다룬건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사 기획 창>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왜 성폭행 목사의 문제가 자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가 그 원인을 기독교 교단의 온정주의적인 카르텔의 문제로 짚어보고자 한다.  또한 범람하지만 통합되지 못하는 교단 내의 문제가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목사의 권위를 이용한 성추행, 성폭력 
대부도에 자리했던 요양원, 그곳은 박모 목사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환자였던 장애인 여성은 오랫동안 박목사에 의해 성폭력을 당해왔다. 뺨 때리며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다. 너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강제로 성폭행을 하던 목사, 그에게 당한 건 요양원 장애인만이 아니다. 

요양보호사로 그곳에 왔던 유모씨,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성폭행을 당한 걸 알게 되고,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목사가 가족에게 알린다는 협박으로 그로부터 8년동안 요양원에서 목사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며 요양원 식구들을 보살피며 살아가야 했다. '아버지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중얼거렸다고 발로 밟고 폭행을 하던 목사, 오죽하면 목사가 볼모다시피 데려온 노모가 그녀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실어증에 걸리기까지 하셨다. 심지어 그녀의 통장까지 압수하여 경제적 이권까지 빼앗았다. 

목회자는 하나님 아버지가 정해주신 자리라 자신의 말을 안들으면 아들 딸까지도 멸망한다며 복종하고 순종하라며  권위적으로 굴던 박목사, 다른 목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피해자들은 그 설교를 통한 세뇌에서 놓여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그의 신적 권위 앞에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 '아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폭력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여전히 연인 관계라 주장하며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박목사.

 

 

치유하려 찾은 곳에서 성추행 
부산 광역시에서 이모 목사는 교회 상담 센터를 찾아온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하여 고소당한 상태다. 
마음이 상처를 안고 상담 센터를 찾아온 젊은 여성들, 개인적 위기를 겪으며 종교적 감화를 하는 이 목사에게 의지하게 되자, 몸이 따뜻해야 한다며 아랫배를 만지고, 애정이 필요하기에 치료한다며 스킨쉽을 하는 등 마음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이어갔다. 

심각한 건 이목사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2년전 다른 교회에서도 성추행으로 목사직을 그만둔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모가 찾아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며 무마를 했었다는 정황, 그러나 그는 사죄 대신 다시 상담 센터를 열고 성추행을 일삼았다. 심지어 피해 여성이 문란하다는 식의 소문을 내며 명예훼손이라 반발하다 고소를 당하자 그제서야 목회 활동을 접었고 이후 징역 3년을 판결받고 수감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면직된 상태가 아니라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면직만 안되면 여전히 목사 
인천의 한 교회 매주 일요일마다 담임 목사 퇴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사태의 발단은 이 교회의 담임 목사 아들로 청년부를 맡았던 김목사가 청년부 여성들을 장기간 성폭력을 해왔다는 것, 이에 충격을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모여 퇴진 예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이 미성년자이던 때부터 목사와 신도라는 종속 관계를 이용하여 비밀 연애라며 성적 접촉을 해왔던 김목사, 막상 그 사실이 알려지자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1000 명이랑 연애를 해도 무죄라며 뻔뻔하게 주장하던 그는 심지어 피해 여성들을 꽃뱀으로 매도하기 까지 했다. 

목사라는 신뢰감을 받탕으로 심리적 지배 하에 오랜 시간 동안 인지하지 못한 채 당했던 피해자들, 중학교 때 부터 스승이라 믿고 따랐던 사랑한다, 평생 볼 사람이다라며 피해자들을 구슬렀다.  영적, 성적으로 멘토같던 그 목사로 인해 치료를 받지만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며 대인 기피를 하거나 심지어 죽고 싶다며 힘들어 한다. 피해자들 만이 아니다. 딸을 교회로 인도하고 함께 그 일이 벌어진 교회 사택을 찾기도 했다던 엄마는 자신이 딸을 그렇게 만든 것같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5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 상태, 하지만 그 역시 목사직에서 면직 당하지 않아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목사를 할 수도 있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그런 김목사를 방치했던 그의 아버지 담임목사인 또 다른 김목사, 퇴진 집회를 벌이는 신도들은 물러나라 하지만 정작 교회 측 신도들은 문자 메세지를 내세우며 단지 나이차이 나는 연애라 주장하며 그루밍 성폭력을 부인하며 아버지인 목사의 사임을 반대한다. 당연히 담임 목사는 끝까지 교회를 지키겠다는 입장. 

 

 

용서하고 사과하면 품어주는 교회 카르텔 
현재 교회법에 따르면 이단을 주장하거나, 불법적으로 교목 활동을 하지 않는 한 면직되지 않는다. 일반 직장들이 금고 이상의 형벌을 받았을 때 면직시키는 방침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중범죄로 징역을 살아도 목사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중대한 사안이라면 목사들의 모임인 노회에서 재판을 거쳐 면직될 수 있다. 하지만, 목회자 성범죄 중 면직된 사례는 단지 5건에 불과하다. 

2004년 상습적 성추행으로 교인들이 목사 면직 청원서를 제출하여 교회를 떠나게 된 전모 목사,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홍대 지역에서 개척 교회를 이끌고 있음이 밝혀졌다. 2012년부터 7년째 목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 반발이 거세지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측은 목회에 지장없는 형식적인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을 뿐이다. 그러자 성추행 위로금으로 지불했던 돈에 대해 반환 소송까지 벌였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한신 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술을 마시고 혼자 자던 여학생을 성폭행한 박모 교수에 대해 학교측은 진상 조사를 거쳐 징계 위원회에서 파면을 결정했고, 노회는 면직을 결정했다. 재판으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목사직'을 면직시킨 상징적이고 이례적인 사례,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면 다른 곳에서 가서 목회를 하고, 심지어 이 교단에서 면직당하면 다른 교단으로 옮겨 다시 목사가 되기도 하는 현실, 교단의 수가 너무도 많은 상황이 이러한 목회자의 부도덕한 조건을 방기한다. 

그와 함께 과거에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기독교적 온정주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온정주의의 이면에는 목사는 목사편이라는 교회 카르텔이 존재한다. 

그러나 송원영 건양대 심리 치료학과 교수는 이러한 용이한 사과와 용서의 온정주의가 오히려 성범죄자를 방조하고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위적으로 다가가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피해자를 괴롭히는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 그에 대한 쉬운 용서는 그 자신이 스스로 합리화하는 계기가 되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범죄는 정교화되고 대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교단을 초월한 성범죄 등 중범죄에 대한 통합적 법안이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교단'이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 그래도 범교단적 데이터 베이스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는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려 900만명, 가장 많은 신도수를 가지고 있는 종교, 기독교, 과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성범죄 목사들과 관련하여 상식적이고 사회적인 책무를 스스로 짊어질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7. 10. 04:09

<비밀의 숲>이 방영된지 햇수로 벌써 2년여, 하지만 아직도 최근에 가장 좋았던, 혹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꼽자들면 <비밀의 숲>을 내미는 시청자들이 많다. 바로 그 <비밀의 숲> 안길호 피디가 돌아왔다. 6월이지만 올해처럼 벌써 더웠던 2017년 그 열기를 서늘하게 식혀주며 우리의 심장을 울렸던 이야기, 그래서 <왓쳐>를 보며 설레발처럼 오프닝부터 어쩐지 <비밀의 숲> 냄새가 나는 거 같지 않나라고 설레이는 시청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밀의 숲>이 조승우와 배두나라는 절묘한 조합못지 않게 한석규에 김현주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기대'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왓쳐를 이끄는 
<비밀의 숲> 1회, 서부지검 형사부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은 동료 검사들의 스폰서였던 박무성이 검사들의 비리를 제보하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그는 죽어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검찰 비리의 숲, 그 숲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도록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황시목이라는데 <비밀의 숲>을 본 시청자라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왓쳐>에는 도치광(한석규 분)이 있다. 뇌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이유 감정계에 이상이 생겨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만, 원리원칙대로만 처리하여, 그 이유로 동료 검사들에게 왕따가 되었던 황시목과 그닥 다르지 않게, 동료 경찰들을 잡아먹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동료들에게 '경원'시 되는 도치광, 그 역시 '감찰반'이라는 직무의 특성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런 도치광의 눈에 들어온 김영군, 그는 15년전 도치광의 손으로 체포한 선배의 아들이다. 눈 앞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던 아이, 그는 커서 직업 군인이 되었고, 이제 그 잘 나가던 군인의 길을 마다하고 경찰이 되었다. 여전히 그를 보면 15년전 그 사건을, 아버지를 떠올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가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도치광은 어느새 그를 자신의 팀원으로 여긴다. 

<비밀의 숲>을 통해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전형으로 등장했던 배두나가 분했던 한여진, 마치 백지 위에 경찰과 정의라는 두 단어만 씌여있다는 듯이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뚜벅뚜벅 거침없이 나아갔던 한여진에 대한 기억은 접어두고, 이제 <왓쳐>는 도대체 무슨 색일까 알 수 없는 색채를 지닌 여성 캐릭터로 또 한 명의 한씨, 한태주(김현주 분) 변호사를 내세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이들 세 사람은 <비밀의 숲>처럼 '사건'을 통해 조우한다. 범인을 쏜 교통 경찰, 동료 경찰을 집요하게 쫓는 감찰반, 그리고 돈만 주면 어떤 사건이라도 맡는다는 변호사, 이들은 구속된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범인을 두고 엇갈리며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이들 세 사람의 공조아닌 공조 수사를 통해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사건이지만, 그 뒤에 비리 경찰과 그 경찰에 의해 역으로 쫓기는 범인이라는 겉과 속이 다른 사건이 있음이 드러난다. 

박무성이라는 검찰 스폰서의 죽음으로부터 뒤엉켜 버린 검찰 비리 숲의 실타래가 풀렸듯이 1,2회에 걸쳐 벌어진 손병길(정민성 분) 사건을 통해 경찰 비리라는 또 다른 거대한 경찰 비리 숲의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왓쳐>는 <비밀의 숲>과 다른 뉘앙스의 드라마이다. <비밀의 숲>이 개인적인 '원한'없이 직업적인 정의만으로 사건에 뛰어든 두 사람 황시목과 한여진을 통해 직업으로서의 정의,  그래서 정의 그  원칙에 대한 '인간 보편'의 자세에 대해 논했다. 물론 <왓쳐> 역시 감찰반, 그리고 이제 손병길 사건 수사 덕에 열게 된 '비리  수사팀'을 이끌어갈 헌신적인 팀원들, 하지만 그 팀원들의 면면이 간단치 않다. 

언뜻 서로 어울리지도, 서로 믿지도 않는 세사람, 하지만 이들은 과거 김영군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통해 풀어내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을 목격하게된 김영군, 사람들은 도치광은 아버지를 잡아넣은 놈이라 하지만 김영군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죽일 뻔한 살인마이다. 그래서 손병길을 고문하는 형사를 보고, 과거 자신의 경험에 휘말려 주저앉고 말듯 여전히 그는 그런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며 15년전 그날의 어린 소년으로 돌아간다. 손병길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딸에게 범죄자, 살인자로 남지 말라며 설득한다. 

그리고 15년전 김영군의 아버지를 잡은 도치광은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김영군의 아버지를 눈감아주면서 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날아가는 걸 목격했다. 오늘의 그가 동료들 눈총을 받으면서 집요하게 경찰 비리를 쫓는 건, 바로 그 '비리'가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다는 '정의감'에서이다. 

거기에 한태주가 개입한다. 아니, 감찰반과 불과했던 팀을 비리수사팀으로 확대 승격시켜준 장본인, 검사 시절 의욕적으로 개입했던 김영군 아버지의 사건 즈음에 납치당해 손가락을 잃을 뻔하며 고문을 당했던 '트라우마', 그 '트라우마'의 실마리를 손병길 살해 현장에서 찾은 그녀는 아직도 그녀를 혼돈에 빠뜨리는 그 '과거'를 찾아 비리검사팀의 외부 고문을 자처한다. 

재벌의 아들을 유괴한 사건으로 만나게 된 '과거 악연'의 세 사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힌 과거로 부터 길어올려져 현재 경찰 내부의 비리라는 깊은 뿌리를 가진 '거악'에 도전한다. <비밀의 숲>에서도 그랬지만, 서둘러 시선을 끄는 패를 내보이기 보다는 포커 페이스처럼 가지고 있는 패를 하나씩 내보이며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는 듯 차근차근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왓쳐>, 이제 다시 이 영름 이 더위를 저 집요한 거악의 뿌리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의 서늘함으로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9. 7. 8. 15:33

지인들끼리 모인 자리, 한 사람이 자랑하듯 말한다. 자신의 딸내미가 학교 앞에서 연예 기획사에서 준 명함을 받았다고.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연예인이 될 것처럼 설레인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도 그렇게해서 연예기획사를 찾아갔는데 밑빠진 구멍에 물붓듯 끝도 없이 돈을 요구해 결국 연예인이 되기를 포기했다며 잘 알아보고 시작하라 충고했다.

그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명함'을 받았다는 지인은 '내 딸은 다르다'는 듯했는데, 과연 내 자식이 '연예인'이 될 만하다고 한다면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바로 이런 내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라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헌신적인 마을을 이용하는 연예 기획사들이 있다. 더구나 최근엔 E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여중생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드러나며 극단적 사례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연예 기획사의 실태를 7월 5일 <추적 60분- 돈벌이로 전락한 아이들의 꿈, 아역 연예 기획사의 실체>에서 추적한다. 

 

 

ATM이 된 연예지망생 부모들
8살 박유라(가명)는 A연예 기획사 오디션을 통해 지상파 방송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러자 A 연예 기획사는 방송 출연을 명목으로 전속비 5천만원을 요구했다. 엄청난 금액에 주저하던 엄마, 하지만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울고불고 하는 딸의 꿈에 엄마는 깍고 깍아 집을 담보로 3천만원을 건넸고 A 소속사와 6년의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전속비'로 엄청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2018년 방송에 출연할 당시 소속사는 이렇다할 매니지먼트를 해주지 않았다. 먼 거기를 운전하며 다니는 것도 엄마 몫이었고 의상 협찬이 안된다 하여 직접 옷을 사야만 했다. 1년이 지났지만 출연료를 못받았다. 

이런 부당한 대우에 유라 엄마는 전속 계약 해지 내용 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도리어 A연예 기획사는 그간 유라의 연기 지도 등에 들어간 비용을 빌미로 손해 배상 1억을 걸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전속 계약에 의거 앞으로 6년 동안 활동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놓인 유라와 엄마, 엄마는 엄마의 섣부른 결정이 딸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다고 자책하고, 딸은 앞길이 막힌 상황에 좌절하며 눈물만을 흘렸다. 

이에 손성민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협회장은 A연예 기획사가 요구한 전속비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부모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헤어, 자동차 주유비, 식대 등 이른바 활동 비용은 온전히 연예 기획사 몫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몇 년 동안을 담보로 잡은 진행비에 대해 얼마나 활동할 지도 모르고 뜰 지도 모르기에 돈을 받겠다는 건 전적으로 연예 기획사의 무능함이나 안일함을 드러낸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라만의 사례가 아니다. 지난 해 6월 한가람(가명)의 어머니를 비롯한 3명은 자신들의 아이가 소속되어 있는 연예 기획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각자 300에서 600까지 드라마 출연을 빌미로 기획사에 돈을 주었던 것, 그런데 알고보니 이미 그 드라마에는 다른 아이가 내정되어 있었고, 가람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출연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던 상황. 
또 다른 사례로 민철이는 상업 영화 출연을 빌미로 300여 만원이 돈을 요구당했다. 출연이 안되면 반환하겠다는 조건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뜯긴 부모들은 자신들이 '현금인출기'였다며 자조한다', 연예 기획사에게 자신들은 그저 돈을 물고 있는 물고기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없어도 출연시켜주겠다며- 전속비 요구 
2017년 기준 19세 이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연예 기획사는 120여개에 이른다. 그런데 과연 이들 중 몇 곳이나 아이들이 믿고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일까? 그 실태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제작진은 한 명의 아이를 내세워 각 연예 기획사에 프로필을 돌리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프로필을 돌린 10개의 기획사 중 무려 7개의 기획사가 연락을 해왔다.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곳도 있었고, 심지어 아이를 만나지 않고도 출연을 장담하는 소속사도 있었다. 

사진도 안보고 장담을 하는 연예 기획사를 찾아가보니 뜻밖에도 그곳은 술집이었다. 이 술집을 하는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었던 한 아이, 귀티가 나서 단역이라도 바로 출연시킬 수 있다며 부모 역할을 운운하더니 소속비 2천을 요구했다고 한다. 송승헌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했는데, 출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작발표회라 했는데 알고보니 전통 궁중의상 대회였다. 

이렇게 돈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들은 연예 기획사와 학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방식이다. 제작진이 내세운 아이가 오디션을 본 5곳 중 3곳도 이런 식이었다. 오디션이 끝나자 마자 연기 연습을 해야 한다며 학원에 등록을 종용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맡을 배역이 있다며 학부모를 유혹한다. 그리고 수업료 220에 소속비 88만원으로 반강제적으로 당일 계약을 할 것을 종용한다.

제작진이 만나본 이 기획사에서 일했던 직원에 따르면 마치 피라미드식 사업처럼 직원들에게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덧붙이며 아이들을 끌어오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에 100 명정도의 아이들을 직원들이 불러모았고 이 아이들을 통해 월 2~3억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출연작이 없어 부모들이 항의하는 것에 대비해 가짜 오디션까지 보기도 하며 눈속임을 했다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부모들을 '현금인출기'로 삼는 연예기획사들의 방식은 동일하다. 우선 가전속, 전속계약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전속'에 따른 비용을 부모들에게 요구한다. 또한 교육비 및 프로필 사진 촬영비등을 따로 부담시킨다. 거기에 더해 출연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각종 비용을 전적으로 부모의 몫으로 돌린다. 

심지어 부모들이 돈이 없다고 하면 '카드론'을 운운하고, 아이의 미래가 달렸다며 보험을 들었다면 약관 대출을 하라며 종용한다. 그런 방식으로 한 연예 기획사가 아역 연기지망생 15명을 상대로 5억을 편취한 혐의로 검찰에 송취되었는데, 제작진이 만나본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에 송취된 사람들 외에 2000에서 6000 만원까지 총 8억 2000만원 정도를 갈취당한 45명의 명단이 더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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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꿔달고-부실한 법망
더구나 심각한 것은 이들 연예 기획사가 막상 사기 혐의로 걸리면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사람을 앞세워 법망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사기 혐의로 고소된 I기획사, 하지만 막상 이 기획사 사무실에서 찾은 계약서는 BIG엔터테인먼트였다. 업계에서 평판이 나빠진 BIG이 I로 간판만 바꿔단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알고보니 BIG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W, 그리고 다시 그 이전엔 N이란 이름을 가지고 사업을 했었다. 이렇게 카멜레온처럼 이름을 바꾼 기획사들의 실질적인 대표는 윤이사, 그리고 그의 남편 박대준이었다. 심지어 I 매니지먼트의 돈을 '차입 면제' 방식으로 2억 9백만원이 F매니지먼트로 흘러들어가 박대준의 딸인 박성화의 연예활동에 씌여졌다.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간판을 바꿔치기하며 페업과 창업을 밥먹듯이 하고 신분 세탁을 하는 연예 기획사들, 그러나 현실적인 단속 방법은 마땅치 않다. 

고 장자연 씨 죽음 이후 정치권을 비롯하여 연예계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일정 요건을 갖춘 기획사만 매니지먼트 사업을 할 수 있도록하는 대중 문화 예술 기획업 등록제가 실시되었다. 또한 청소년 대중문화 예술인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을 배려하고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2014년 대중 문화 예술 산업 발전법이 제정되었다. 

제작진이 프로필을 돌렸던 아역 연기자 매니지먼트 중 4군데가 미등록 상태였다. 그러나 그 단속에 대해 해당 구청은 형사적 처벌 규정을 운운하며 경찰로 떠넘겼다. 즉 '사기 ' 사건이 될 때가지는 관리나 감독이 되기가 힘든 실정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업계 진입 장벽이 높다는 항의를 받으며 관련 업계 4년 근무라는 규정을 2년에서 40시간 교육 이수로 낮췄다. 여전히 유린당하고 있는 미성년 연예인 지망생들의 꿈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다큐는 얼마든지 부모들의 주머니를 털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는 현 아역 연예 기획사의 실태에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과연 집을 담보로 잡아 몇 천만원을 쥐어주고서라도 자신의 아이를 '키즈 그룹'으로 데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수요가 있는 한 그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편승한 사기가 없어질 수 있을까? 돈을 들여서라도 뜨고 보자는 엘도라도가 된 연예계, 그 '헛점'을 노린 연예 기획사와,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이익만을 고려한 제도와 법의 현실은 악순환의 반복이다. 

by meditator 2019. 7. 6. 15:50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쟁쟁한 DC코믹스의 캐릭터들을 제치고 이 시대의 대표적 액션 판타지 영화의 대표로 자리매김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차별성을 손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세계관'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절정 아이언맨에서 부터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토르, 과거로 부터 소환된 캡틴 아메리카 등 이종의 히어로들이 마치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어온 식구들처럼 때로는 아웅다웅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일사분란한 지구 구하기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전의 대장이 '캡틴 아메리카'일 지언정 그 중심에 시리즈의 시작 '아이언맨'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에는 아마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마블 캐릭터들의 거대한 연합작전 '어벤져스'의 마무리는 '아이언맨'과의 작별이 되었다. 

 

 

아이언맨이 없는 세상 
그리고 다시 돌아온 스파이더맨의 시작은 바로 그 '아이언맨의 부재'로 부터 시작된다. 전설의 OST, <보디가드>의 I will always love you가 울려퍼지며 아이언맨을 추억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저 영화 속 캐릭터였을 뿐인데, 아마도 <어벤져스> 시리즈와 함께 했던 관객들이라면, 아이언맨의 마지막 대사, 'I'm Iron man'을 떠올리며 뭉클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이방의 관객들이 이럴진대 영화 속 아이언맨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오죽할까. 그리고 '아이언맨'으로 대변되는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에 의지했던 사람들의 상실감은. 

영화는 바로 그 '혼돈'과 '혼란'에 촛점을 맞춘다. 인피니티 워 이후 절반만 남았던 지구인들, 타노스와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왔다. 파커가 다니는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그 '5년'의 공백은 웃자라버린 아이들과 미처 시간을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두 '시간차'을 어떻게든 메꿔가고자 애쓰는 학제로 영화는 '혼란'을 극복하려 애쓰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저 시간을 달리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 사랑했던 이를 잃은 사람들은 아직 그 상처에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터 파커도. 부모님없이 '숙모'와 함께 살아왔던 피터에게 아이언맨은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그 '아버지'는 죽고, 아버지의 '과업'만 남았다. 하지만 아직 너는 어리다며 가서 고등학생의 신분에 충실하라던 아이언맨 앞에서 자기도 함께 싸우게 해달라며 '오버'액션하던 스파이더맨은 '아버지'라는 배경이 없어지자 문득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을 피터는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또래 친구에게 사랑 고백도 하며 그렇게 '일상'에 침잠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풀고자 한다. '삶의 지체'다. 

 

 

누구라도 믿는다? 
반면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아이먼맨'이 지탱했던 세상, 타노스의 침략은 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누가 우릴 구해주지? 그런데 마치 그런 사람들의 우려를 알기라도 하듯 '엘리멘탈'이 등장한다. 멕시코에서 나타난 얼굴이 있는 토네이도, 그리고 베니스에서 등장한 물의 괴물, 공기, 물, 불, 흙이라는 자연의 4원소를 기반으로 한 '신종의 빌런'에 사람들은 다시 간절하게 새로운 '메시아'를 갈망한다. 그리고 '닉 퓨리'에게서 울리는 발신인을 알수 없는 전화를 받지 않는 스파이더맨 대신 '미스테리오'가 등장하여 '엘리멘탈'에 대치한다. 당연히 사람들은 새로운 히어로에 환호한다. 

스파이더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언맨 대신 자꾸 자신을 찾아대는 닉 퓨리가 부담스러워 슈트까지 안가지고 떠난 여행, 마치 자신을 쫓아오듯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엘리멘탈'을 안간힘을 써서 막아주는 '미스테리오', 심지어 아이언맨이 그랬듯이 '인생 상담'마저 마다하지 않는 이 '푸근한 아저씨'에게 자신의 '과업'을 냉큼 넘겨줘버리고 만다.  

그렇게 '현대의 신'이 사라진 세상, '아버지'가 사라진 세상의 혼돈과 혼란,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은 아직은 채 성장하지 않은 히어로의 이야기를 풀어낸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의 설정은 절묘하다. 

영화 속 '미스테리오'는 '평행 우주론'에 근거하여 다른 차원의 지구에서 온 '히어로'라 자칭한다. 그 차원의 지구에서 미스테리오의 가족은 물론, 지구를 파괴한 빌런 '엘리멘탈'이 또 다른 차원의 지구를 파멸로 빠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미스테리오의 주장은 또 다른 스파이더맨 에니메이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본 관객들이라면 친근할 것이다. 

그 영화 역시 '평행 우주론'에 기반을 두고, 여러 '지구'가 존재하며 그곳마다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게 물려 '스파이더'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이 있다는 설정을 가지고 차원이 무너지면서 이 '지구'로 몰려오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다른 차원에서 몰려온 배나온 스파이더맨 아저씨를 비롯하여, 여자 스파이더맨, 스파이더 돼지 등 6명의 스파이더맨은 이 차원의 지구는 물론 평행 우주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위기에 '스파이더 어벤져스'가 되어 힘을 합친다.

두 스파이더맨의 공통점은 '히어로의 상실'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피터 파커라는 히어로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됐다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의 죽음으로 그걸 이어받아 내가 의지했던 대상의 상실이라는 공통의 설정을 가진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반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설정을 뒤튼다. 다른 차원에서 온 동지, 미스테리오, 하지만 그 '섣부른 믿음'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것은 그 '미스테리오'의 태생이 바로 '신'이었던, '아버지'였던 아이언맨의 경솔한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가고 이제 '전설'이 되었지만 해피가 추억하듯 히어로이기 이전에 인간 토니 스타크는 경솔했고, 늘 저지르고 후회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신화'의 속살을 들여다 본다. 

전설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했던 과업을 짊어지기 버거워 도망치려 했던 피터는 이제 그 '아버지가 저지레 해놓은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으로 히어로로써의 임무에 첫 발을 내딛는다. 

아이언맨의 유업까지 떠맡아야 할 지도 모를 '과업'이 버거웠던 피터는 고향인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놀러간다', 하지만 그를 따라오듯 등장한 '빌런',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났던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앞에 등장한 어마어마한 빌런이 '조작된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그곳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짖눌렀던 어쩌면 또 하나의 조작된 환상일 수 있는 신화가 된 아버지 아이언맨을 향한 돌진이요, 그저 어리숙한 착한 소년에 불과했던 자신의 지난 날의 극복이다. 그렇게 소년 스파이더맨은 '아버지'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과거의 쓰레기를 밟고 '소년'의 시절을 경과한다. 그리고 그건 이제 더는 그가 '뉴욕'의 거리를 지키는 보이스카웃이란 존재에 머무를 수 없음을 뜻한다. 

 

 

과연 대장정의 막을 내린 <어벤져스>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그 과제를 마블은 기댈 곳을 잃은 소년 스파이더맨을 통해 다시 한번 '신화'적 서사의 틀을 빌려 온다. 그리고 아버지를 극복해야만 스스로 히어로로 거듭날 수 있었던 신화 속 히어로들처럼 소년 스파이더맨은 '아버지'의 과오'가 잉태한 집단 '미스테리오'를 통해 자신의 어깨를 짖눌렀던 부담에서 한결 가볍게 첫 발을 내딛는다.

심지어 아이언맨이 만든 시스템 '이디스'를 자신의 손으로 넘겨주어 역으로 공격을 받게 되는 상황, 오늘날 문명의 이기로 등장한 '드론'이 공격무기가 되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는 결국 좋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누가 제어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스파이더맨은 기꺼이 그 시스템 주체로서의 자리를 거머쥔다.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예의 뉴욕의 시절부터 그의 엔진이 되어왔던 '보이스카웃'정신의 이타심으로 그 발걸음은 도약한다. 그리고 거기에 발판이 되는 건 '아버지'의 동지였던 닉 퓨리와 해피이다. 그렇게 <어벤져스> 이후의 신화, 그 시작은 가장 인간적인 히어로 스파이더맨으로 부터이다. 

by meditator 2019. 7. 5. 16:23

<지정생존자>는 '세계적 플랫폼' 넷플릭스 추천작으로 유명한 미드이다. 여기서  Desinated surviver, 지정생존자란  미국 대통령, 부통령, 정부 각료들이 취임식 등의 국정 연설 동안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안전 시설 내에 대기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지정 순위 내 한 명을 뜻한다. 각종 자연 재해, 테러, 핵 공격 등으로 대통령 및 대통령 계승자가  사망하는 비상사태 시에도 대통령 직을 계승해 정부를 유지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이다. 미드 <지정생존자>에서는 좌천당해 지정생존자로 tv로 신년 국정 연설을 보게 된 대통령이 된 서열 계승순위 18위 중 13위의 주택도시 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 분), 의회 의사당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 관료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대통령이 되며 미드 <지정생존자>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온 우리의 <지정생존자>는 어떨까? 미드와 달리, 앞에 수식어 60일이 붙었다. 그건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 도시 개발부 장관은 우리나라로 오면 환경부 장관이 된다. 

 

 

이상주의자라 짤렸던 대통령 권한대행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출신의 박무진(지진희 분), 환경 과학회 미세먼지 분과에 소속된 만큼 학자 출신의 그는 환경부 장관으로서 대기 오염 문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입각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정치' 앞에서 무력했다. 미국과의 자동차 협상 상 과정에서 박무진은 드러난 수치와 달리 미국의 의견을 들어주면 그저 몇 백대가 아닌 몇 백만대를 허용하게 되는 결과가 되며, 그는 곧 우리 대기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이유로 협상을 반대하지만 못이기는 척 봐주라는 대통령의 입장 앞에 사직서를 내밀게 된다. 

임명식에서 대통령에게 받았던 불편했던 구두를 벗어놓은 채 홀가분하게 자신이 몸담았던 대학의 후드티에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아들과 딸을 데리러 갔던 그는 국회의사당의 폭발 사고를 목격하고 그곳에 견학을 간 딸의 생사를 확인하러 의사당으로 갔으나 자신을 데리러 온 의문의 사내들에게 끌려가다시피 다시 청와대로 가고 그곳에서 이제 자신이 60일 시한부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미드와 다르게 시한이 정해진 대통령 권한 대행, 하지만 다른 건 이것만이 아니다. 미드가 자국 내의 정치 세력 사이에 끼인 권한 없는 대통령이라는 설정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로 온 <60일, 지정생존자>는 강대국, 그 중에서도 특히 '우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분단된 남과 북이라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고민을 갈등의 주요한 내용으로 등장시킨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역학 관계에 의거한 갈등 구도 
앞서 국회의사당에서 사망한 양진만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목전에 둔 채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제 그 평화 협정을 추진했던 대통령이 사라진 상황,  비서실장 등 양진만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싶어하지만 설상가상 북한잠수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군부와 국정원 등의 실세들은 기존의 '북한 위협론'을 내세우며 선제 공격 등을 불사하며 위기를 증폭시키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프콘'을 강요하며 전시 작전권을 들고 나서는 '미국'의 존재는 강력하다. 

국가안전 보장 회의의 긴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채 화장실로 뛰쳐나와 구토를 하던 사람,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하겠다는 사람, 그런 그에게 양진만 비서실장은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의 붕괴를 막는 '시민'의 자격으로 권한 대행의 자리를 지키라고 한다. 모든 일은 자신을 비롯한 기존의 비서실팀이 할테니. 결국 그를 정치 경험 6개월짜리 뭣도 모르는 애송이로 취급하는 건 죽은 대통령의 수족이나, 군부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셈. 

하지만 '선무당'이 되어버린 박무진은 예의 미국과의 협상 자리에서 본의였는지 의도적인지 모호했던 미국 협상단에게 미세 먼지 패트병을 뒤집어 씌워 국민들의 속을 확 뚫어버렸던 그 '고지식한 방식'으로 북한 잠수함 해프닝을 해결한다. 

정치적 방식에 대해 사직서를 내밀만큼 원칙적이었던 환경학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으로 접근하는 북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예의 '데이터'에 의거한 추적으로 잠수함의 침몰을 예견하고 딸의 생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북한을 설득한다.

즉 <60일, 지정생존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격돌하는 청와대, 군부, 미국 등 난립하는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그가 환경부 장관일 때 해왔던 그 '학자적 양심'과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의 마음, 그리고 양진만이 부탁했던 '시민'의 입장이라는 '원칙'의 인물 박무진을 드러낸다. 고지식하지만 원칙적인 인물,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가진 캐릭터로서의 '대통령 권한 대행'이 풀어가는 '원칙'의 정치.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 풀어가는 권력의 이야기, 가장 기본이면서도 막상 현실로 오면   배제되는 그 '원칙'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60일, 지정생존자>가 끌어들인다. ''
 

 


첫 회 3.383%(닐슨 코리아 케이블 전국 기준), 화제의 미드 리메이크 작으로는 박무진 권한대행만큼 갈 길이 멀다. 첫 방송 cg까지 활용하며 국회 의사당 폭발 사고로 시선몰이가 약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박무진이란 캐릭터에 대한 혹은 양진만이라는 대통령의 처지가 이젠 시청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미 선점한 <검법남녀> 등의 분전이 컸던 것일까?

하지만 예단은 이르다. 늘어졌던 박무진의 청와대 입성은 이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국가 안전보장회의에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북한 잠수함 사건을 해결하는 2회에 들어 한층 현실감있는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였다. 과연 애송이 권한대행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듯 ,<60일, 지정생존자>가 최근 지지부진한 tvn 드라의 구원투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7. 3. 04:34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16회 시청률 5.517%, 2018년의 화제작 <라이프 온 마스> 16회 시청률이 5.851%, <손 the guest>가 4,073%였으니 이만하면 올해 상반기 내내 저조했던 ocn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최근 수작이라 평가받는 <구해줘2>가 최종회 3.56%에, 동시간대 전작들 <트랩>, <프리스트>, <킬잇> 등이 고전한 것에 비하면 월등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런 '화제성'과 달리 <보이스3>를 충성스럽게 보아온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청률의 수치와 달랐다. 주인공 도강우(이진욱 분)가 죽는 절정의 씬이 담긴 영상에 달린 폭발적인 댓글은 '분노'로 일관한다. 도대체 어떤 결론이길래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도강우가 죽어서?
시청자들의 분노는 주인공 도강우가 죽어서 일까?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런데 그건 그저 주인공이 죽어서 오는 '새드 엔딩'에 대한 허무함이나 절망감과는 다르다.

도강우 형사는 강권주(이하나 분) 센터장과 함께 <보이스> 시즌2에 이어 시즌 3를 '공조 수사'로 이끌어온 주인공이다. 시즌 1에서 출동팀장을 맡았던 무진혁 팀장이 아들의 치료를 핑계로 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하차하고 새로이 등장한 도강우 형사. 시즌 1의 무진혁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아내가 죽임을 당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사건의 해결에 돌진했었다. 하지만 시즌2의 도강우 형사는 그와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손목이 잘려나간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배 형사, 그 형사의 죽음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한 것이다. 

경찰대 출신의 탁월한 수사력을 가졌지만 사회 생활은 제로에 가까운 일명 '또라이 알파고', 그런 그가 이제 파트너 나형준 형사의 살해범으로 의심받고, 특히 그의 형인 나형수 과장은 사사건건 도강우의 발목을 잡는다. 동료들의 의심을 넘어선 적대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저돌적으로 다가섰던 도강우, 하지만 싸이코 살인마 방제수를 자꾸만 도강우를 도발한다. 너의 '본성'을 숨기지 말라고, 그와 함께 도강우 뇌의 회로는 자꾸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도강우의 자기 한계에 대한 처절한 사투, 그건 시즌3로 오면서 더욱 극심해 진다. 통증을 넘어서 잠깐인지 며칠인지 기억을 잃는 '블랙 아웃'에 시달리며 도강우는 점점 잃었던 기억을 되살려 내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진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였다던 어린 소녀 미호의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즉 자기 자신이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다는 '확신'에 다가선다.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종종 거울 속 자신의 형체가 일그러져 나타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사건 현장에서 본능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강권주 센터장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던 도강우,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본능적 욕망에 줄기차게 거부하며 그를 상대하여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의 집에는 그가 '블랙 아웃'되는 동안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자해'도 불사했던 그, <보이스> 시즌2,3는 '닥터 파브르'라는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여 거래하는 엽기적인 혐오 범죄 단체와의 전쟁이지만, 또 한편에서 주인공 도강우가 자신의 '사이코패스'적 본능과의 처절한 싸움의 과정이었다. 

 

 

바로 그런 '싸움'의 과정을 지켜봤기에 <보이스> 시즌3의 엔딩에서 도강우 형사가 형 카네키의 목을 그의 살인 도구인 와이어로 죽이고 경찰 특공대의 총에 맞아서 죽게되는 시청자들은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시즌 4를 위해 예비한 쿠키 영상에 등장하여 저격 총을 챙겨든 방제수가 도강우를 저격했다는 의심까지 할까?

즉,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두 시즌을 내내 자신을 학대해왔던 주인공이 퇴장의 즈음에 스스로 그 '살인'을 기꺼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더구나 그 '살인'의 대상이 그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로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극대화된 그의 형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두 시즌 내내 자신의 성향에 저항했던 그 사투가 단 한번의 미소도 없이, 살인마와의 사투가 아니라, 동료들의 총격에 의한 '죽음'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를 응원하며 지켜보았던 시청자들에게는 허무를 넘어선 황망함과, 더불어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그 우물이 탁해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있다는 강우 아버지의 '우물론'으로 대변되는  <보이스>시즌2,3가 끌고왔던하나의 주제 의식의 붕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다수의 장르물이 사이코패스를 결정론적으로 다루었던 것과 달리 도강우 캐릭터는 자신의 그런 본성에 대한 절박한 싸움을 통해 다른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작가는 짧은 순간이나마 도강우의 유언을 통해 그 죽음의 개연성을 설득하고자 한다. 점점 심해지는 자신의 이상 증상, 그래서 강우는 '형같은 괴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만 인간이면, 되는 방식으로 '괴물로 죽고 사람들이 날 잊으면 된'다며 특공대의 총구에 자신을 내민다. 하지만 마지막 회 시간에 쫓기는 듯한 강우의 죽음은 작가가 원하는 개연성의 설득 대신, 단 한번도 행복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자신을 던진 주인공의 허무한 개죽음으로 다가온다는데서 제작진과 시청자의 동상이몽으로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어설픈 설정이 낳은 허무한 엔딩 
그리고 이건 시즌3 내내 되풀이 되었던 <보이스>의 어설픈 상황 설정으로 부터 기인한 바가 크다. 우스개 소리로 매회 한 번 이상씩 이해하고 봐주려고 해도 어거지로 만든 상황이 범죄적 상황을 도발해 왔던 것이 <보이스>의 관행 아닌 관행이었다. 

16회, 살인마 카네키와 강권주 센터장이 대치한다. 두 사람 다 총을 소지하고 있는 상황, 카네키는 자신의 발밑에 총을 맞고 신음하고 있는 박형사를 볼모로 강센터장이 총을 내려놓으라 협박한다. 그런 협박을 받기 전에 먼저 강센터장이 자신의 총으로 카네키를 쐈다면? 물론 드라마가 더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강센터장은 순순히 총을 내려놓으며 볼모가 된다. 

이런 식이다. 앞서 카네키가 죽인 부인에 대한 유력한 증거를 가지고 온 일본의 모델을 보호하고자 온 강센터와 도강우 팀장, 하지만 카네키에게 배달되어온 폭발물을 조사한답시고, 보호해야 할 증인인 일본인 모델을 홀로 옆방으로 보낸다. 왜냐하면 그녀 혼자 그 방에 들어가 살인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어거지 설정은 거의 매회다시피 <보이스>에서 등장했고, 마지막 도강우의 죽음 상황에서도 강권주를 구하기 위한 카네키와의 사투 과정에서 우발적인 죽음이 아니라, 뜻밖에도 경찰 특공대가 그의 머리를 정조준하여 쏘아 죽이는 말도 안되는 죽음의 상황을 맞이하도록 만든 것이다. 

<보이스>는 어떤 드라마? 
또한 결국 주인공을 죽이기 위한 어거지 설정으로 이어진 작위적 설정에 이어 <보이스> 애청자들이 시즌 내내 가장 안타까워했던 것은 바로 <보이스>라는 시리즈 본류의 정체성이다. 

도강우라는 사이코패스 적 성향을 지니면서 그와 싸우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되면서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된 서사적 고리였다. 그리고 그 고리는 그의 형이 시즌3 최종 빌런으로 등장하면서 당연히 그토록 외쳤던 '코우스케'의 악연의 고리를 풀어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시즌 3를 화려하게 열었던 일본 료칸 사건에서 보여진 남들과 다른 탁월한 듣는 능력을 가진 강권주 센터장을 비롯한 골든 타임팀과 동물적 수사력을 가진 도강우 형사의 '공조 수사'라는 <보이스> 본연의 설정이 취약해 졌다는 것이다. 시즌2의 마지막 회 사고로 인해서 얻은 청력의 상실 때문이라기엔 강권주 센터장의 존재감이 이전 시전에 비해 한결 위축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즌2에 이어, 시즌 3에서 활약한 나홍수 과장의 경우, 시즌2에서는 내내 강우를 미워만 하다, 시즌3에서는 내내 강우를 안타까워하다 희생되면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등 출연진들의 비중과 활약이라는 면에서도 아쉬운 점을 남긴다. 그만이 아니다.  의혹은 많지만 차마 해결할 시간이 없었는지 '의심'으로만 남긴 설정들은 다음 시즌을 위한 것일까? 

그럼에도 16회 엔딩, 의사는 강권주 센터장의 귀가 이전처럼 회복되어 가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소머즈' 저리 가라 할 만큼의 남들과 다른 청력을 가진 강권주 센터장과 골든 타임팀의 공조 수사는 시즌2, 3의 결말을 허무하게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심지어 쿠키 영상으로 시즌2의 빌런 방제수의 건재함을 보였으니 안타까운 와중에서도 시즌4에 대한 기대를 하게되니 이 정도면 마력의 <보이스>라 할까? 하지만 부디 다음 시즌으로 돌아온다면 제발 개연성있고 짜임새 있는 서사와 사건으로 돌아오시길. 

by meditator 2019. 7. 1. 15:04

은퇴 후 한적한 삶을 이어가던 조르주와 안느 부부, 그 평화로운 삶에 '도둑'처럼 아내 안느의 병이 찾아온다.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남편 조르주의 몫,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게 수치스럽고, 남편은 이제 정신조차 온전해지지 못하는 아내를 감당해야 하는 게 버겁다. 그러나 정작 딸마저도 그런 두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에게 닥친 잔인한 운명에 남편 조르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여기까지가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2012년작 <아무르>의 이야기이다. '존엄'하고 싶지만 노년을 덮친 '병마'로 인해 '존엄'도, '관계'도 허물어져 가는 노부부, 그 중에서도 남편의 극단적 선택을 감독은 역설적인 제목 '아무르'로 설명해 냈다. 이 작품으로 미카엘 하케네 감독은 2013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아무르> 이후 
남겨진 남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이게 개봉한 <해피 엔드>를 여는 질문이다. <아무르>에서 음악가인 남편 역을 맡았던 배우 장 루이스 트레티냥이 전작에 이어 칼레 지역의 성공한 부르주아 '로랑' 가문의 아버지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아내를 보낸 남편 조르주에게 점점 아내와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명색이 로랑 가문의 수장이지만 이제 실질적인 일은 딸 앤의 몫이다.

그런데  <해피 엔드>의 이야기는 각도를 좀 튼다. 그리고 지평을 넓혔다. 로랑 가문에 새로운 일원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외과 의사로 일하는 아들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츠 분)의 딸 '에브(팡틴 아후뒤엥 분)'이다. 전처와 함께 살던 딸은 그 전처가 약물 중독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엄마가 아파서 아빠 집으로 온, 아니 사실은 딸인 자신을 방치하고 외면하는 엄마에게 약을 먹이며 그 과정을 자신의 sns에 중계한 '이상 심리'을 보이는 소녀 에브는 지금처럼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sns에 보고하는데 그러면서 로랑 가문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병으로 무너진 개인의 존엄의 문제를 다뤘던 <아무르>, 하지만 노부부, 나아가 그 각자 개인의 존엄이라는 '실존적 문제'는 로랑 가문이라는 '가족의 관계'로 위상이 바뀌어져가면서 '관계'가 무색하게 흐트러져 버린 현대 '가족'의 민낯이 드러나보여진다. 

 

 

죽음만이 해피엔드? 
아내를 그렇게 보낸 아버지 조르주 로랑은 아내와 같은 그림자가 자신을 드리워가는 걸 절감하며 스스로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한밤중에 조용히 차를 몰고 나가 나무에 돌진한다거나, 그 사고로 인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이발을 위해 찾아온 이발사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문의한다거나, 그의 모든 촉각은 스스로 존엄할 수 없는 자신의 죽음으로 향해있다. 가족에게는 가문을 대표하는 어른이지만 그런 가족의 기대는 이제 조르주에게 번거로울 뿐이다. 

병든 아내의 말년을 책임진 아무르처럼, 손녀 에브도 엄마를 '책임'졌다. 일찌기 여름 캠프에서 친구에게 시험해 본 방식으로, 자신이 기르던 엄마가 싫어하는 애완 동물에게 실험해 본 그대로 엄마에게 실행한 것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라지만 에브가 아주 어릴 때 오빠의 죽음 이후로 무너져 버린 가정,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엄마는 딸을 방치하고 외면했으며 우울증에 허덕였다. 그리고 그 결말은 이제 막 소녀 티가 나기 시작한 '에브'로 하여금 할아버지와 같은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소녀가 감당할 수 없었던 모녀 관계에 대해 소녀가 선택한 최선의 '해피엔드'였을까? 

할아버지와 손녀의 같은 선택, 그리고 이제 또 할아버지와 손녀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 존엄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끝내기 위해 고심하는 할아버지와, 엄마와의 전쟁같은 생활을 끝내고 비로소 '가족'다운 가족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하는 에브.

로랑 가문으로 들어온 에브가 다시 한번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이다. 죽은 오빠 대신 새엄마가 낳은 동생도 생기고, 그 동생을 이젠 자신이 돌봐주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에브, 하지만 아버지는 바람을 피며 모처럼 맞이한 에브의 평안에 위기를 드리운다. 더는 누구를 죽이며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에브'는 그래서 이번엔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이 위태로운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한다. 

다른 가족이라고 나을까. 아버지 대신 사업을 돌보는 딸 앤은 모든 촉각이 일로 수렴된다.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아들 피에르(프란츠 로고브스킨 분)을 승계자로 만들기 위해 다그친다. 하지만 사업을 위해 '사랑'도 기꺼이 이용할 줄 아는 앤과 달리 유약한 피에르는 사업에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알콜 의존적이다. 

사고를 내서 휠체어에 의지하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성대하게 치뤄진 조르주의 생일 파티, 그리고 이어진 앤의 약혼 파티, 도시의 명사들이 초대된 남보기엔 부러울 것 없는 한 도시의 내로라하는 가문, 그러나 정작 자신을 내버려두라며 난리를 치다 어머니의 약혼에 이민자들을 초대하여 백인 부르주아 파티였던 약혼식장에 찬물을 끼얹은 피에르의 해프닝을 뒤로 하고, 조르주는 조용히 손녀 에브에게 자신의 휠체어를 밀게 한다. 바다를 향해서. 

 

 

개인적인 존엄과 실존의 문제였던 <아무르>의 죽음은 이제 그 파장이 가족으로 커지며 개인을 넘어선 관계에 대한 회의로 넘어간다. 한 지방의 명망있는 가문이라 일컬어지는 로랑 가문, 하지만 그 가문의 실상은 피폐하다. 스스로 아내를 죽인 할아버지, 엄마를 죽인 손녀, 가정이 있지만 변태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아버지, 부도덕한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 워커 홀릭 딸, 그리고 약물 중독인 손자, 아니 더 심각한 문제는 저마다를 짖누르는 문제가 '가족'이라는 관계를 통해 전혀 소통되거나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손녀 에브는 가족으로 소통할 수 없는 걸 엄마에게 했던 행동을 중계하듯 sns에 중계하며 아이러니한 집착을 보인다. 

<아무르>에서 실존의 고민은 피폐한 결론이었지만 존엄을 향했다면 이제 시간이 흘러 <해피엔드>로 오면 개인의 존엄은 관계 속에서 더욱 피폐해지고 고립되어져 드러난다. '가족'은 존재하지만 소통하지 않고, 현대 사회의 sns는 소통하지만 치유하지는 못한다.   거장 미카엘 하케네가 그린  2019년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9. 6. 29.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