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어김없이 올해도, 작년보다는 낫다지만 올 여름에도 '폭염' 문자를 피할 수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여름'을 엄마와 함께 시원한 까페에 가서 책도 보고 숙제를 하는 계절로 기억하게 되는 시절, 땡볕을 피해 얼른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을 '피신'을 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마당의 평상, 나무 밑 그늘, 살랑살랑 부채바람,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는 그저 옛날의 추억일 뿐, 에어컨이 '필수'가 되어가는 시절, 하지만 우리가 이젠 당연하다 여기는 이 '에어컨' 등이 뿜어내는 '온실 가스'가 그 누군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지난 7월 25일 방영한 <다큐 시선>은 바로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폭염', 그 공평한 햇빛 속에 숨겨진 '불평등'을 주목한다.
지난 2018년 인도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한 농부의 아내가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여인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찾아온 혹서기로 인해 5만 9천 여 명이 죽어갔다. 하층민들은 동료들의 유골을 앞세우고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다큐 시선>이 주목한 건 바로 오늘날 지구가 봉착하고 있는 기후 변화가 지구에, 그 중에서도 취약 계층의 삶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의 하층민은 동료의 유골을 들고 시위라도 나서지만,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그 피해를 피해로 보고있지 않아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이사가는 멍게 양식장 경남 통영, 배 후미에 시뻘건 무언가를 매단 배가 바다를 가로 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놀러가기 좋은 곳을 넘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가 바로 통영이다. 배가 매달고 가는 건 양식하던 멍게, 이곳 가조도에서부터 25km 떨어진 비교적 해수온이 낮은 한산도로 멍게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름철 폭염이 거듭되며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고, 그를 견디지 못하고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70%의 멍게가 폐사하자 특단의 조치로 '양식장'이 이사를 하게 된 것.
갈수록 양식하기가 어렵다는 25년 경력의 이종만씨, 강원도까지 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해역 표층 수온이 지난 50년간 1.1℃ 상승했다. 전세계 평균 상승 온도보다 약 2.5배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고수온으로 인한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가 지난 4년 사이 10배나 늘어났다.
양식만 힘든 게 아니다. 바닷속 생태계도 변했다. 해양 생물들의 생태 주기가 달라져 기존에 살아왔던 해저 부착 생물들이 줄어들고 고기의 이동도 많아졌다. 예전에 많던 우뭇가사리 대신 따뜻한 곳에서 서식하던 다른 해양 부착 생물들이 나타났다.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이제 난류성 어종인 멸치를 잡는다. 물반 멸치반인 바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변화가 생길 지 몰라 어민들은 긴장과 불안을 늦출 수 없다.
바다만이 아니다. 가업으로 대를 이어 양계장을 운용하는 박현배 씨 여름이 시작되고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땀구멍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닭, 2016년부터 폭염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여, 작년에만 3000마리가 죽었다. 쿨링을 하고 대형 선풍기를 돌려도 35도만 넘어가면 페사가 속풀한다. 이렇게 전국 양계장에서 2018년에만 620만 마리가 죽어갔다. 그나마 냉각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기업형 양계장은 나은 편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영세 양계농은 폭염 앞에 무방비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온실 가스, 취약 계층에 집중된 피해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를 활용한 비약적인 산업의 발전은 온실 가스라는 괴물을 낳았다. 온실 가스는 속성상 수백년 동안 공기에 남아있다.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 가난한 나라, 그 중에서도 어업과 농업 등 자연과 직접 맞닿아 있는 1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또한 야외에서 직접 햇볕을 맞으며 일해야 하는 야외 노동자, 에어컨 없이 생활해야 하는 극빈 계층, 온도 감지 능력에 취약한 어르신들 역시 피해갈 수 없다. 하나의 태양은 온 세상을 고루 덥히지만 그 피해는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절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는 등 여름철이 가장 일이 많은 농사의 현장은 논, 밭, 비닐 하우스로 그 자체가 곧 '사고 현장'이 되고 만다. 경북 상주의 오르신들, 작년 여름 그만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바람에 들깨 농사를 망쳤다며 수십년 해오던 농삿일이 점점 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4월 가뭄, 7,8월의 폭염, 8월말 9월초의 폭우, 몇 십년 해오던 농삿일이라지만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변화된 기후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냉감 센서는 이제 어르신들만 남은 농촌 사회의 큰 복병이다. 지난 여름 말라가는 고추 밭을 보다 못해 물을 대다 쓰러지신 82세 오정필씨, 칠십년 농사를 지으며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어르신은 아내가 없었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거라며 고개를 저으신다.
2018년 온열 질환자수 4526명, 사망 4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화된 농어촌 사회는 특히나 취약 지역이다. 오죽하면 보건소 직원들이 마을을 돌며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며 '낮에 혼자 다니시면 안된다'고 당부하고, 독거 노인들이 많은 마을에서 혹시나 모를 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혼자 다니시지 않기를' 독려할까. 일하다 힘들면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한 숨 자며 더위를 피하는 건 이젠 '과거'가 된 상황, 7,8월 혹서기에는 일하는 거 자체가 힘들어진 농촌, 누군가가 내뿜어댄 탄소에 농촌이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가 비어간다. 직격탄은 바다라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온실 가스의 주범인 탄소는 바다에 녹아들어 해양을 산성화 시킨다. 산성화된 바다에서 산호초는 백화되고, 갑각류와 폐류는 산호 부족으로 껍질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채 폐사해 간다. 해녀들의 곳간이 헐거워져 가는 것이다. 한참 성게가 제철인 시절, 바닷속을 아무리 뒤져도 성게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
곳간이 비는 건 물론, 점점 올라가는 수온 때문에 해녀들을 보호해 주는 잠수복을 입고 물질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벗고 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단다. 그만큼 '위험'에 무방비해지는 상황. 물질 30년이 되었다는 해녀는 이 생활 최대의 위기라며 한탄한다.
해녀들만이 아니다. 근해에서 고기를 잡던 10톤 미만의 어부들 역시 이제는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십상이다. 통발 어업을 하는 지창정씨, 매일 건저 십만원씩 벌던 통발을 이젠 15일씩 놔둘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가 비어간다. 겨우 건져낸 딱게 등등 차비도 안남아 팔 것이 없다. 이런 식이니 일 년에 천 만원 벌이도 쉽지 않다. 이삼천 씩 벌어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나이가 드니 이제 와서 일용직으로 나갈 수도 없고 노령 연금을 받아 근근히 두 부부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창정씨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 어민의 43.7%가 1천만원 미만의 벌이를 하고 있는 현재의 어업 상황, 집집마다 배를 두고 고기잡이를 나가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고령화에 파괴된 연안으로 인해 어선 어업을 포기하는 어부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지역 사회는 공동화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기후 변화는 사람들에게 몇 십년씩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도록 만든다. 30년 동안 사과 농장에서 일하던 경북 문경 김법종씨, 환경 변화와 함께 '홍로' 등의 품종이 더는 옛날과 같은 맛과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사과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거느이 강원도 양구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일조량이 적당하고 태풍 등 기후 재앙을 피해갈 만한 지리적 터전, 사과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지만 두 부부는 34년 동안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온 우울증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1℃의 변화로 지금처럼 우리 농촌과 어촌의 생태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하지만, 과연 온난화로 인한 변화가 1℃에서 그칠까. 기후 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세기 말이 되면 지표면의 온도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까지 상승하리라 경고한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생태와 자연, 나아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전체 지구보다 더 심각한 건 우리나라이다. 반생태적인 삶의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위,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방식으로 전 지구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더 필요하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한반도 자체로만 봐도 8.5개의 한반도가 더 필요하다. 다큐는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온난화의 문제가 환경 이전의 삶의 문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빨간 불이 켜진지는 오래, 내가 마구 튼 에어컨에 우리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우리의 삶의 태도와 습관이다.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과 어촌, 그 일터의 불평등에 가해자는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다.
하지만 에어컨을 끌 수도 없고, 온난화로 인한 폭염을 다시 온실 가스에 의존하여 해결 할 수 없는 화석연료 산업 사회의 우리, 더위가, 폭염이 그저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우리가 딛고 있는 산업 사회라는 존재론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그 사회적 기원의 문제는 결국 기후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다큐는 명확하게 설득해낸다.
mbc스페셜은 지난 주에 이어 '이 남자'를 다루었다. 7월 29일 <이 남자 분노하다>에서는 '페미니즘'의 시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여성들과 여전히 자신들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낀 처지가 된 이십대 남자들의 '억울함'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에 이어 8월 5일 방영된 <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들의 고달픈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오늘을 산다. 한 소주 회사, 3개월 수습 끝에 정직원 딱지를 달았던 이제 입사 2년차 최재원 씨, 정직원이지만 판촉 행사를 하기 위해 알바 생들과 같이 우주인 복장을 하고 여러 술집을 돌며 자기 회사의 상품을 홍보한다. 판촉 행사가 끝난 후에야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 우주인 복장을 벗는 재원씨,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그의 나이는 벌써 이십대 끝 무렵인 29살이다. 세 번 째 도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최재원씨, 굳이 이 회사를 고집한 이유는 '연봉'이다. 구직 기간 동안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졌다던 재원씨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높은 월급은 필수이다.
조금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한 도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15세에서 29세 첫 일자리 임금 수준 표에 따르면 청년 층의 34.1%가 150에서 200만원 미만의 돈을 첫 월급으로 받는다. 100에서 1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27.7%에 달한다. 우리 사회 직장의 로망이라는 대기업 직원들이 받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층은 2.4%에 불과하다. 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5.1%나 된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국가 대표 결승 경기가 열리던 날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를 하는 김민근 씨에게 경기 관람은 언감생심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콜이 20건에서 25건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자동차 학과를 졸업한 민근씨 역시 남들처럼 직장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6개월 정도 다녔지만 알바로 했던 배달 대행업보다 터무니 없이 작은 월급에 시간도 길다보니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라이더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그 때보다 서너배는 더 번다는 민근씨, 남들의 치맥 한 잔이 그에겐 나날이 쌓이는 통장의 꿈이다. 매일 오만원씩 저금한다는 그, 돈을 모아 언젠가 프랜차이즈점을 차리는게 꿈이라는 민근씨를 하지만 같은 업종의 형님들은 뭐 벌써부터 저렇게 애를 쓰고 사냐며 안쓰럽게 본다.
하지만 민근씨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26살의 김영준씨는 한 달 째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유아 체육 교사로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기침은 쉽게 낫지 않는다.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일이 어언 4년차에 접어든 이즈음, 처음 시작은 60만원에서 부터였다. 그래서 그때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노가다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영준씨는 지금의 유아 체육 교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젊어서야 할 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유치원을 다니는 게 좋아 보일 것같지 않다는 그는 생활 체육 지도사를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갠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담담한 대답.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십대 남자들의 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십대 남자들은 내일이 없는 듯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걸 답해주는 건 바로 실업률이다. 2019년 4월 기준, 청년 실업률 11.5%,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8개월, 그리고 앞의 통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취업을 해도 10명 중 8명은 평균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겐 오늘이 발등의 불이다. 취업을 했던 청년 들 중에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민근씨처럼 버는대로 돈이 되는 라이더 일도 불사하게 되고, 다시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취준'의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바로 그 취준생의 1/3이 선택한다는 '공시', 26살 배민구 씨 역시 바로 그 공시생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시생이 될 수는 없는 것. 배민구 씨 역시 30대를 공시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그 길고도 아득한 레이스, 하지만 레이스의 종착역에 도착하여 직업을 얻는해 해도 어른들이 원하는 그 가정을 가지는 미래는 불투명하다.
꿈이 없다고? 비판적 의식이 없다고? 기성 세대는 이런 청년 세대에게 불만이 많다. 왜 꿈이 없느냐고. 취직에만 매몰되어 있냐고. 하지만 그런 기성 세대의 불만에 청년들은 어서 빨리 저 분들이 퇴직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우리 몫이 생길 텐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88올림픽으로 상승세를 탔던 경기, 80년대 말, 90년대 학번들은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세대였다. 당연히 '낭만'을 즐길 여유가 있었고,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질만한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 경쟁 취업의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꿈'이나 '비판 의식'을 운운하는 기성 세대에게 분노한다. 그들이 오늘날 청년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세대인데, 이제 와서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무리한 요구만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페미니즘'의 시대, 청년들은 여성들은 그저 혜택받는 경쟁자이며,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약자라 생각한다. '남성적 특권'을 누린 건 기성 세대의 남자들인데 애먼 20대 남자가 눈덩이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복무로 사회집입조차 늦은 그들에게 사회적 이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이라도 넣으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벅찬 이십대 청년들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의 고증에 충실하던 다큐는 중반부에 들어서서 갑자기 국민연금 관리 공단 홍보 다큐가 된다.
국민 연금을 꾸준히 넣어서 노후가 되어서 걱정이 없다는 어르신들, 그 중에서도 부산 물류 회사의 대표 김기식씨는 1979년 제대 이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며 연금을 넣은 덕택에 매달 1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든든한 노년의 보장이라는 어르신들의 생각과 달리 청년들은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까지 동원한 다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국민 연금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며 세게 3위 660조원의 기금으로 향후 30년간은 끄덕없다며 젊은이들의 가입을 독려한다.
물류 회사 김기식 대표님의 따님 지영씨마저 가정을 꾸리고 보니 한달 9만원의 연금이 부담스럽다는 현실, 실업률에 직장 구하기가 힘들고, 월급을 받아도 쥐꼬리만해서 다시 라이더를 하는 게 낫다면서 국민연금을 내라니, 국가에서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큐는 연기 지망생 김민수 씨와 박인영씨를 들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연가로 마무리된다. 현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도 있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의 진단은 명확하지만 결국 이 시대에 다큐가 짚을 수 있는 답은 불투명한 것이다. 그건 다큐가 도달한 불투명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걸 나눠줄 의향이 없는 기성 세대, 자신들의 잣대로 청년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프레임에서, 이남자들에게 말해줄 답은 그래도 국민연금은 넣어라 말고는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국민연금까지 넣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과연 그런 어설프고 안이한 '답정너'식의 동어반복으로 '이남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한류'를 선도했다던 드라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청률이 7%대만 되도 '선방'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 즈음, 각 방송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보다 차라리 과거에 만들어 진 드라마를 방영하는게 시청률이 더 나올 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최근 방영하거나 방영했던 드라마들의 완성도가 이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비록 시청률에서 미흡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특정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장르물로 시청자들은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는 범인 찾기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이 범인?- <왓쳐>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영군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머니를 찌른 칼을 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니 영군은 그렇게 믿었다. 영군을 담당했던 의욕이 앞섰던 검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영군의 증언을 독려했고, 아버지의 후배 형사인 도치광(한석규 분)은 아버지에게 가장 불리했던 증거인 피묻은 잠바를 찾아냈다. 그리고 영군의 증언과 도치광이 찾아낸 증거로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감옥에서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15년 후,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 도치광과 이제 경찰이 된 영군(서강준 분)이 비리 수사팀으로 만났다. 시작은 경찰의 경찰, 경찰 내부 비리 수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15년전 영군 모의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실일까가 내내 미덥지 않았던 영군, 자신이 맡았던 그 사건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의혹으로 인해 손가락과 남편을 잃은 한태주, 그들은 각자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수사팀의 일원이 되거 과거를 헤집는다.
그렇게 <왓쳐>는 수면 위로 올라온 과거 사건의 범인들을 하나씩 찾아나선다. '비리'와 가장 어울릴 듯한 장해룡(허성태 분)에 대한 의혹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뜻밖에도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의심'의 시선을 팀장 도치광에게로 향한다. 영군이 잊었던 그날 세탁기에 아버지의 잠바를 넣은 사람,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듯하지만, 비리의 핵심인 재벌 회장의 '개'라던 사람, 심지어 장해룡은 대놓고 말한다. 자신에게 향했던 그 의혹의 화살, 그 방향을 바꾸어 놓고 보면 도치광이 범인인게 자명하다고.
경찰 내부의 비리를 밝히겠다는 수사가,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덮으려는 또 다른 범행일 수 있다는 의심은 <왓쳐>에서 매혹적으로 풀어내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하나 '단선적인 캐릭터'가 없다. 모두가 의뭉하게 보여지는 것과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다.
10회, 비로소 백송이 사망 위장 사건을 통해 도치광의 속내가 드러나고 혐의에서 한 발 바껴선다. 하지만 도치광이 비껴서자마다 나머지 인물들이 또 다른 의뭉스런 속내를 드러내며 용의자의 선상에 줄을 선다. 이젠 영군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 했던 한태주조차 믿을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왓쳐>, 결국 시청자들은 애달복달하며 다음 회를 기다린다.
원작과 다르네? - <지정 생존자> 이미 <넷플릭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 <지정생존자>가 리메이크된다 할 때 그 자체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유고 시의 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가 과연 다른 조건의 제도를 가진 한국적 상황에 어울릴 것인가에서 부터, 시즌 1 중반부에 이르러 이미 드라마적 동인이 한결 떨어졌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을 때 과연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임을 <지정 생존자>는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정치적 상황을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긴장감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치환시키고, 거기에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이야기를 우리 나라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재외 동포의 문제로 풀어내며 '한국적'인 상황에 걸맞는 서사로 안착시키고 있다.
특히 키퍼 서덜랜드라는 배우에 의지했던 대통령 캐릭터는 지진희를 통해 때로는 답답한 듯하지만 북한 잠수함 위기에서 데이터를 차분하게 분석해 상황을 돌파하듯 학자 출신의 원칙적이면서도 강직한 모습을 부각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거기에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미드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얻었던 '범인'과 배후와 달리 한국판 <지정 생존자>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에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백령해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응분의 '존중'을 받지 못해 뒤틀려버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하여 개연성을 살림은 물론,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드와 달리, 그들 뒤에 합참의장의 권한 조차 좌지우지할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대통령의 최측근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드라마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위기의 순간, 박무진 대통령 권한 대행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탱해줬던 한주승(허준호 분)과 차영진(손석구 분), 과연 그들이 테러의 배후일까? 그 의혹을 풀어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지정생존자이다.
누구도 범인일 수 있는? -미스터 기간제 상위 1%만 가는 명문 사학 천명 고등학교, 그곳에서 여고생 정수아가 살해당하고 같은 반 남학생 김한수가 용의자로 몰렸다. 수임받은 사건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송하 로펌의 에이스 기무혁은 로펌 대표로 부터 적당히 형량을 조절하라는 청탁을 받고 사건에 임한다. 하지만 로펌 대표의 말과 달리 욕심이 앞섰던 기무혁은 법정에서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 이를 위해 정수아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스폰'을 접대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다 김한수의 반발, 이어진 자실 시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간제 교사 기강제로 천명 고등학교에 잠입한 기무혁, 명문 사학이라는 번드르르한 외양과 달리, 학교 안에서는 상위 1% 학생들의 커넥션과 갑질이 횡행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사회 배려자(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차별이 게임처럼 벌어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학교 옥상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사배자 안병호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폭력 게임을 시작으로 <미스터 기간제>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학폭을 둘러싼 학생들의 갑을 관계와 학교 교육은 서비스라는 마인드로 편법과 부당 학사 관리를 자행하며 돈있고 권력있는 학부모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재단의 비리가 쌍두마차처럼 벌어지는 '정글'같은 천명고를 기간제 교사로온 기강제를 통해 조명한다.
그리고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그를 통해 상위 1%라는 학교 안 권위에 기대어 정수아를 괴롭혔던 학생들의 민낯을 한 명씩 파헤쳐가는 동시에, 천명고 행정실장 이태석(전석호 분)을 중심으로 정수아의 스폰, 그 실체에 다가간다. 실체에 다가갈 수록 모두가 '공범자'이자,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명문 사학, 그 전모가 드러나는 '파멸'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스카이 캐슬> 등을 통해 비리로 범벅된 명문 사학의 사례는 이제 '클리셰'와도 같지만, <미스터 기간제>는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가 풀어내는 사건의 시점과 거기에 더해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학생과 학교 측 관계자의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장르물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그에게 찾아온 심장병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실업 급여을 받기 위해 찾은 관공서, 하지만 직원들은 매번 녹음기처럼 '메뉴얼' 대로 '키오스크 kiosk 무인 정보 단말기'를 이용하여 신청하라는 말만을 되풀이 한다. 결국 그 기기 앞에서 심장병 발작을 일으켜 쓰려져 버리고 마는 다니엘.
이 작품으로 2016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은 영국 사회의 부조리한 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다니엘이라는 늙은 목수를 통해 폭로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지 제도에 앞서 영화를 보면 평생을 훌륭한 목수로,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왔던 한 노인이 '디지털 시스템'화 되어가는 '문명' 앞에서 절망하고, 폭도로 몰리며, 결국 그 앞에서 생을 마감하고야 마는 모습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무너지는 한 세대의 좌절을 절감하게 된다.
영화는 극적이었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도 많은 다니엘들을 조우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신상'으로 사드린 '스마트폰' 앞에서 우물쭈물과 '깜놀'을 오가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어쩌면 '완화된' 다니엘의 분신들이 아닐까. 8월 1일 방영된 <다큐 시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종이 통장, 매표소, 영수증 등이 멸종되어 가는 시대, 디지털 소외 계층이 되어가는 노인 세대의 문제를 다룬다.
노인이 된 나와 마주하게 만드는 디지털 77세의 이분남 할머니, 얼마전 황혼 육아를 졸업하고 동작국 어르신 노래 교실 회장님으로 자유를 만끽하시는 노익장, 그런데 이분남 할머니를 좌절케 하는 것이 있다. 그 세대 어르신들이 그러시듯 종이 통장을 몇 개씩 애지중지 '키워'가시는 중, 단 돈 만원이라도 직접 가서 입금을 하셔야 하는 습관대로 금융기관을 찾은 이분남 어르신, 아차, 오늘따라 그만 '도장'을 잊고 오셨단다. 77년의 내공어린 말빨로 은행원을 달래보았지만 정해진 입금 메뉴얼 앞에 요지부동, 결국 터덜터덜 은행 문을 나서던 이분남 할머니는 처음으로 자동 입출금기를 사용하시게 된다.
친절한 기계음에 따라 몇 번을 클릭, 무사히 입금을 마치신 할머니는 의기양양, 그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자동 주문기로 셀프 오더를 하도록 되어 있는 햄버거에 도전하신다. 그러나, 순조로웠던 은행과 달리 비슷비슷한 메뉴, 조금만 잘못 눌러도 다시 처음으로 가는 주문 시스템 앞에 갈 곳 잃은 손, 방황하던 눈동자는 결국 '안먹고 말지', 사람이 주문을 받는 칡냉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신다. 그럴 때마다 '노인'이 된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이분남 할머니,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낙은 홈쇼핑이다. 그런데 늘 상담원과의 통화를 통해 물건을 사신다는 할머니, 아무리 2만원이나 싸다지만 앱은 할머니에겐 먼 그대이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손주들의 동영상을 보여주는 고마운 기기지만, 눈밝고 물어볼 수 있다시는 할머니에게 '길찾기' 앱은 딴 세상 이야기다.
할머니가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전화기가 등장했다. 전화 교환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에 차량룡 휴대 전화기가 등장하기 시작해서 가속도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초고속 5G 시대에 이르렀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디지털은 초고속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습득한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2,30대도 따라가기 힘들다는 디지털 혁명, 영화관, 마트의 무인 시스템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중이며 그 규모가 2500억에 달하고 이는 무려 10년 전에 4배에 이른다. 편리함은 극대화되어가지만 그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벽'이 되고 있다.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전체 국민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20대가 126.5, 50대가 92.8이다가 60대가 되면 69.6%, 70대로 되면 더 떨어져서 42.4%가 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하지만 노인들에겐? 박일준 디지털리터러시교육 협의회 대표가 말하는 디지털 시대, 지식은 공짜고 물어보면 다 얻을 수 있는 있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없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사회적 권력의 격차가 되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게 되며, 이는 디지털 문명이 발전할 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지자체 중 인구 대비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는 부산, 증산 경로당, 19명의 노인 중 스마트폰을 쓰고 계신 분은 4명에 불과했다. 왜 편리한 스마트폰을 안쓰시냐는 질문에 노인들은 너무 복잡하다고 하신다. 글씨가 너무 작단다. 크게 하는 기능이 있다니 그런 건 모르겠다고 하신다. 모바일 티켓이 일상화되어 가는 시절, 자식들이 모바일 티켓을 보내드릴 수가 없는 형편, 자식들이 예매한 기차표 좌석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서 기차를 타신단다. 은행도 점점 가기 힘들고 이제 다시 돈도 장판에 깔아야 하시던 경로당 노인들은 앞으로는 점점 기계로만 하는 세상이 될 거라는 제작진의 말에 '그때되면 우린 다 죽겠지' 하시는데 웃음의 끝이 씁쓸하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은 당신들이 편한 곳을 찾게 된다. 극장에 가도 인기작은 예매로 미리 매진이 되거나 시간대를 맞추기 힘든 상황에 노인들은 60대만 해도 젊은 축에 속한다는 실버 영화관을 찾게 된다. 2000원의 저렴한 티켓값, 어르신 우대에 인기 간식 메뉴가 빈대떡에 건빵인 이곳에 하루 평균 1000 여 명의 노인들이 몰린다.
하지만 노인들만 우대하는 곳이 어디나 있는 건 아니다. 기차역, 역에 가서 직접 표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좌석 우대권은 온라인 예매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되니 주말의 경우 4,5시간을 기다려도 가고자 하는 차편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젊은이들은 예매를 해서 앉아서 가고 어르신들은 입석으로 서서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는 시기가 되면 디지털 시스템에 접근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노인 세대는 '이등국민'처럼 죽을 때가지 '소외'된 상황에 내처지게 된다.
국가적으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디지털 시스템화는 시대적 조류가 되어아고 있는데, 그런 국가적 조류에서 소외되는 장애인, 노인을 위한 '노인 할당 서비스', 혹은 오프 라인 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인간적인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소외'는 현실에서 세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700만 노인 시대, 좁아지는 시야, 줄어든 근력, 떨어지는 인지 능력 등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지만, 디지털 사회는 그런 '노화'를 '승인'하지 않으며, 젊은 세대는 가르쳐줘도 따라하지 못하는 노인들에 대해 '무지'라 폄하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은 스스로를 '짐'이라 여기게 되는데.
다큐는 그런 상황에 대해 '노력'의 여지를 살핀다. 일주일에 3일 6시간씩 낙동강 녹조 상태 조사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65세의 서두남씨. 더 나이 들기 전에 배우자는 언니의 권유에 10년전 배우기 시작했다는 컴퓨터, 그 이래로 서두남씨는 각종 자격증을 땄고 드론 자격증까지 따서 드론과 함께 나이를 저멀리 띄워 훨훨 날고 계시단다. 처음엔 '입력', '검색'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는 서두남씨, 이젠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서두남 씨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건 쉽지 않다. 실제 디지털은 약자들에게 보다 쉽게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평등의 세상을 연다. 그 시스템에 익숙해 지기만 하면 서두남씨처럼 나이와 무관하게 주변부에서 지식과 정보의 중심에 얼만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하게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홈 실험에 참가한 평균 74세의 노인들에게 터치 하나로 조작되는 스마트홈은 불러도 대답없는 장벽이다. 나이가 들고 살아온 방식이 고착된 노인 세대에게 새로운 것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 성공한 체험이 그 두려움의 벽을 낮출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노인들에게 디딤돌이 될만한 여유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고 했지만, 정작 현실은 막막하다.
요정 공주의 저주로 일곱 난쟁이가 되어버린 일곱 왕자에, 마법 구두를 신고 모습이 바뀐 공주라니, <백설 공주>와 <빨간 구두> 등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이 '변주' 되었다. 그 설정만으로도 궁금해 지는 애니메이션 <레드 슈즈>이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만 보면 '디즈니'인가? 싶은 애니, 거기에 클로이 모레츠, 샘 클레플린 등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했는데 <라푼젤>, <겨울 왕국> 등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참여한 김상진 디자이너와 이 이야기로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홍성호 감독이 힘을 모아 만든 '토종' 애니메이션이다.
신선한 이야기 스토리 공모 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답게 이야기의 시작은 신선하다. 동화 속 캐릭터들이 모여사는 동화의 섬, '페어리테일 아일랜드', 그곳에 마법에 빠진 공주를 구하는데 앞장 선 일곱 왕자들이 있다. 마법의 멀린, 힘의 아더, 심지어 투명망토까지 패션니스타 잭, 후라이팬이 무기로 셰프 한스, 그리고 무엇이든 뚝딱뚝탁 천재 발명가 삼형제 피노, 노키, 키오. 어벤져스급 동화 속 캐릭터들이 일곱 명의 왕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합쳐 괴물에 대항하여 '공주'를 구해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공주'는 젊고 아름다운 공주가 아니라 마귀 할멈같은 요정? 이에 실망을 하자 요정은 그들을 그만 '일곱 명의 난쟁이'로 만들어 버린다.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공주의 입맞춤을 받아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단다.
당연히 아름다운 공주님을 찾는 이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의 집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나타났다. 바로 <백설공주>의 그 '스노우 화이트' 공주님, 그런데 난쟁이가 되어버린 왕자님처럼 공주님에게도 사연이 있다. <백설공주> 속 이야기처럼 왕국에 나타난 아름다운 마녀에게 '혼'이 나가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가 실종됐다. 왕국의 사람들은 사라져버렸고 공주는 겨우 도망을 쳤다. 그런데 여기서 왕국을 빼앗긴 스노우 화이트 공주님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가 아니라 건강하고 튼튼한 공주라는 거.
세상에서 누가 젤 이쁘니에 대답해 주던 거울은 건재하지만, 독이 든 빨간 사과는 이제 레드 슈즈가 열린다. 아니 열려야 하는데 그래서 그 마법 슈즈를 신고 마녀가 영생을 누려야 하는데 그게 영 시원찮다. 그런데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몰래 궁에 들어온 공주, 때마침 나무에서 열린 빨간 사과, 아니 레드 슈즈, 공주는 독이든 사과를 먹고 정신을 잃는 대신 레드 슈즈를 신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마녀를 피해 도망을 치다 도착한 곳이 바로 일곱 남쟁이, 아니 일곱 왕자들의 집.
아름다움을 묻다 <레드 슈즈>의 주제 의식은 선명하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걸 풀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 이야기들이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아름다운 공주인 줄 알고 마법에 걸린 요정을 구하려던 '자칭 아이돌급' 왕자들은 자신들이 구했던 공주가 공주가 아니라 요정이라는 걸 실망한 순간 마법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공주'를 찾아 헤매는데, 그들은 여전히 '아이돌급'이었던 자신들의 인기, 그 바탕이었던 잘생김, 힘셈, 멋짐의 '자부심, 더 나아가 '자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들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공주의 마음을 얻고자 고심한다.
반면 성문을 밧줄 하나로 거뜬히 넘나 들었던 튼튼하고 우람한 공주는 사과가 변신한 레드 슈즈를 신고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한 후, 자신의 '아름다움'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음에 매료되어 간다. 난쟁이 집에 '무전취식'한 신세지만 일곱 왕자들은 그녀의 미모만으로 모든 걸 허용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름다운 공주라 하자 서로 앞다투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애쓴다. 아버지를 찾고자 들른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홀려 모든 걸 용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 새로운 아름다움에 빠져들수록 <빨간 구두>의 원작에서처럼 '레드 슈즈'는 그녀의 발에서 벗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보이는 아름다움'은 정작 '위기'를 가져온다. 그녀가 자신의 영생이 걸린 '레드 슈즈'를 가져갔다는 걸 알게된 마녀가, 그리고 그 마녀의 부추김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에버리지 왕자가, 아니 무엇보다 그 '아름다움'에 천착하고 싶은 욕망이 공주에게, 그리고 어느덧 그녀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위기를 불러온다.
결국 영화는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용감함과 그 용감함을 담보해 낼 수 있는 건강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스스로 선택해 내는 원작과는 다른 스노우 화이트 공주의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캐릭터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잘록한 허리, 높은 굽의 레드 슈즈에 현혹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낼 수 있는 '의지'적 인간형으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
어쩐지 유치한 구성 그렇게 <레드 슈즈>는 '동화의 섬'을 배경으로 우리가 익숙한 <백설 공주>, <빨간 구두>, <개구리 왕자> 등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21세기 형 동화의 가능성을 연다. 난쟁이가 되어버린 왕자들의 사랑 찾기와 독사과가 '변신'한 레드 슈즈의 딜레마, 드러난 아름다움과 주체적인 건강함 사이의 선택 등의 주제 의식은 '고전적 캐릭터'들을 통해 풍성한 상징으로 영화를 채운다.
하지만 기발한 변주와 신선한 캐릭터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쉬움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목숨을 걸고 괴물 용에 맞서 요정 공주를 구할 만큼 용감했던 일곱 왕자들이 스노우 화이트 공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보이는 모습은 너무 찌질하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이 마법사 멀린, 아더 왕, 잭과 콩나무의 잭, 한스와 그레텔의 한스 등으로 부터 비롯된 캐릭터라는데 보여지는 모습은 그저 철들지 않은 자뻑남들 뿐이다. 아무리 동화의 나라니 다 가능하다 하지만 얼굴에 팩을 붙이고 나타나 미모 어쩌고 하는 잭 왕자에 이르면 한숨이 나온다.
주인공 왕자 캐릭터들만이 아니다. 공주를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병력까지 동원해 일곱 난쟁이의 집을 공격하는 에버리지 왕자의 모습은 어느 개그 프로그램의 등장 인물같다. 자신을 찾아온 마녀의 한 마디에 넘어가 공주를 향해 무모한 전투를 벌이는 에버리지 왕자는 기발한 상상력과 잘 변주된 캐릭터들의 서사를 '유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심지어 마녀의 마법 한번에 나무 괴물로 변해버린 왕자와 신하들이라니.
여성 캐릭터의 건강함과 주체적 설정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의 단선적인 표현들은 결국 영화 전체 구성을 엉성하게 만들고 만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와, 각자 자신들의 딜레마를 극복해가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갈등을 위한 갈등, 위기를 위한 위기를 겪어내며 결국은 역발상의 로코로 귀결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자기 극복 과정을 거친 사랑의 성취와 달리, 그 과정에서 야심만만하게 포진시켰던 일곱 왕자의 캐릭터들은 주인공 멀린을 제외하고는 소모적으로 마무리된다.
클로이 모레츠가 참여했다는 홍보와 달리 대부분의 관이 '더빙'판으로 배정된 배급에서도 보여지듯이 아동용이라고 규정했기에 '쉽게' 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디즈니의 유려한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을 매료시키며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기발한 설정과 신선한 캐릭터로 잘 다듬어진 <레드 슈즈>라면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이었다면 더 많은 성인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남자들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 발레), 이 어울릴 것같지 않은 조합을 그린 영화가 뜻밖에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 처음은 아니다. 아직 쓰마부키 사토시가 꽃미남이던 시절, 해체 위기에 몰린 남고 수영부에 갖가지 사연으로 잔류하게 된 다섯 명이 돌고래 조련사를 선생님의 맞아 꼴찌들의 반란을 그려냈던 2002년작 <워터보이즈>를 유쾌했던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얼'만한 감동이 있을까? 2010년 AFI 디스커버리 채널 실버닥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한 편의 다큐가 있다. 바로 <맨 후 스윔>이다. 다큐는 평생 수중 발레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던 평범한 직장인들, 마흔 줄의 그들이 이제는 상관없을 것같은 성장과 도전이라는 화두를 안고 비공식 세계 남자 선수권 대회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려냈었다.
이 다큐는 2018년 이제는 <드립 투> 시리즈로 익숙해진 롭 브라이든이 자신보다 잘 나가는 아내의 바람을 의심이나 하는 공허함에 시달리다 우연히 수중 발레 팀을 만나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영국 영화 <스위밍 위드 맨>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9년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 <세라비, 이것이 인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질 를르슈가 메가폰을 잡아 '프랑스 버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 찾아왔다. 다큐에서 영국 영화로. 이제 다시 프랑스 버전으로 거듭 '리부팅'되고 있는 남자들의 수중 발레 도전기, 그 중에서도 프랑스 버전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뜻밖에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여는 건 뜬금없는 동그라미와 네모론이다. '철학'의 나라답게 남자들이 수중 발레를 하게 되는 상황을 퍼즐 네모에 동그라미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난센스'로 풀어낸다. 아이가 네모난 퍼즐에 동그라미를, 동그란 퍼즐에 네모를 집어넣으려고 애쓰다 신경질적으로 퍼즐을 집어던지고 자리를 떠나버리는 오프닝, 그 오프닝에 이어 등장하는 건 주인공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 분)과 그의 가족이다.
백수 2년차 한 눈에 보기에도 제 정신이어 보이지 않는 베르트랑의 초췌한 몰골, 거기에 시리얼에 약을 말아먹어야 할 정도인 매우 건강하지 않은 상태, 가계를 책임지는 아내, 아버지라지만 도무지 아버지 대접을 해주지 않는 아이들, 그렇게 매우 건강하지 않은 그가 우연히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간 체육관에서 남성 수중 발레단 모집 광고를 본다.
그 무엇에도 권태로워보이던 베르트랑은 홀리듯 수중 발레단에 신청을 한다. 마치 동그라미가 네모를 만나듯. 하지만 정작 그가 가서 만난 그 '수중 발레단'은 '오합지졸'이란 말로도 설명이 모자란 '루저남'들의 모임이었다. 아마도 원작 다큐, 영국 리메이크 <스위밍 위드 맨>,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중 가장 '루저'한 주인공들을 들라면 그건 아마도 프랑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일 것이다.
백수 2년차 우유에 약말아 먹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 베르트랑, 하지만 그런 베르트랑은 로랑(기욤 까네 분)에게 자기보다 더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로랑은 감정 조절이 안되는 듯 매사가 비관적이며 신경질적이다 못해 벌컥벌컥 화를 내곤 다 때려치우라며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외적으로 보면 직장도 있는 그의 형편이 제일 나은 편이니. 이 수중 발레단의 형편이 어떨지는 뻔하다.
자칭 로커라지만 노인들 게임장 막간 공연이나 따라다니며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식당일을 하며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를 끌고 전전하는 시몽(장 위그 잉글란드 분), 수영장을 파는 사장님이라지만 도대체 수영장을 판 지가 언제적인지 자금에 쪼달리다 못해 보험을 타기 위해 자신의 차에 불을 지르는 해프닝을 벌이는 마퀴스(베누알 포엘부르데 분), 거기에 수영장 잡일을 하며 호구 취급을 받는 티에리(필리페 카테린는 분)까지 멀쩡한 사람이 없다. 심지어 스리랑카에서 온 아바니쉬(발라잘방 타밀셀방 분)는 프랑스어로 대화가 안된다. 그런 그들의 현재 유일한 미덕이라면? 제 아무리 싸우고 화를 내도 다음 시간에 다시 그곳 풀에 모여 수중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로 온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는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들에게 수중 발레를 가르치는 강사 델핀(비르지니 에피라 분), 그녀의 캐릭터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읽힌다. 남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수중 발렌지 자맥질인지 모를 불분명한 연습을 하는 동안, 강사 델핀은 다이빙대에 앉아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는다. 한때 듀오 로 수중발레 메달리스트, 동료의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현역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알콜 의존증 치료 모임에 나가고 있다.
스포츠 센터에서도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중 발레 아저씨들에게 같은 센터의 수구 팀이라도 나타나면 한껏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독려하는 델핀, 그리고 알콜 의존증 치료 모임에 나간 그녀는 환희에 찬 얼굴로 자신의 알콜릭을 극복하게 된 계기는 바로 사랑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사랑이란 수영장에 나타나 너를 좋아해 본적도 없다며 더는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며 그녀를 '스토커' 취급을 하는 남자였다. 마치 초원의 빛 속 한 구절처럼 '빛의 영광'이여, 라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 오합지졸 수중 발레단을 한껏 멋진 팀인양 포장하고, 자신의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관계를 아름답다 말하는 델핀의 '현실 부정',
하지만 그런 '현실 부정'은 그녀만의 인식이 아니라, 매주 열심히 수중 발레를 한다 모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로커가 아닌 자신의 현존재도, 가족의 아픈 과거도, 무능력한 현실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비껴서있는 수중 발레 팀 모두의 상태이다. 가라앉아가면서 여전히 스스로 헤엄치지는 못하고 있는.
이대로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sink or swim 그런 팀에게 사건이 생겼다. 그들의 강사이자, 위로였던 델핀이 수영장에 나타나 그녀를 스토커로 몬 남자 때문에 다시 알콜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강사직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때 '수호 천사'로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견원지간같았던 수구 팀의 감독, 휠체어에 앉은 아마도 한때 델핀의 파트너였던 아만다(레일라 벡티 분),
하지만 수호천사인 줄알았던 아만다는 델핀과 딴판이었다. 그녀를 죽이고 싶다 할만큼 혹독한 훈련, 그저 시간을 때우던 그들을 몰아붙이며 제대로 해보라며 다그치던 그녀, 덕분에 본의 아니게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게 된 팀은 농담처럼 시작한 노르웨이 세계 선수권 대회를 향한 꿈에 구체적으로 다가간다.
영화는 원작의 다큐처럼 배불뚝이 루저남들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기적처럼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기적'을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의 초라한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채 비껴서있던 이들이, 수영복마저 훔치는 해프닝을 벌이면서도 그 '도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자존심만 내세우던 베르트랑은 동서의 가구점에 나가 '갑질'을 견디며 일을 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아버지를 닮아 어머니에게 외면당했던, 하지만 미워하며 닮듯이 어머니처럼 자기 자신도 감정 조절을 못하던 로랑은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수용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가 없을 뿐 로커의 자존심을 내세우던 시몽은 더는 로커가 아닌 자신의 현존재를 수용한다. 그는 무대 대신 수중 발레의 독무에서 로커로서 만개했고, 그의 조명 동료 역시 가장 화려한 조명으로 그와 그의 팀을 빛냈다. 그렇게 가라앉는 대신 조금씩 삶이 물장구를 치던 이들은 그 삶의 도전처럼 버거웠던 수중 발레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남자인 그들이 수중 발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혹 '게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았던 시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시몽의 낡은 트레일러를 몰고 노르웨이를 향한 길을 떠났다. 그리고 1등을 했어도 다시 그 길을 따라 돌아온 그들, 주변 사람들은 반겼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던 그들에 대한 기사 한 줄 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찰라'의 영광을 기억한 그들의 오늘, 발걸음은 가볍다. 그들은 저마다 이제 삶을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엔 그저 투닥거리기만 했던 이들이 어느 틈에 동트는 노르웨이의 언덕에서 함께 어깨를 겯고 환희를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된 시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한없이 찌질했던 그들의 울컥한 인간 승리, 거기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협연이 빛난다.
결벽증있던 사춘기 소녀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분)를 로비(제임스 맥어보이 분)가 성추행하는 거라 오해했다. 그 아직 사랑을 모르던 소녀의 오해는 사랑했던 연인, 하지만 제 아무리 캠브리지대 의대를 나왔어도 가정부 집안의 아들이었던 로비를 순간 범법자로 만들어 전쟁터로 끌려가게 만들고 만다. 소녀의 섣부른 예단, 그리고 어른들의 편견어린 판단은 두 청춘 남녀의 사랑과 삶을 송두리채 '산화'시키고 만다. 1930년대 영국, 그리고 이제는 영화로도 유명해진 덩케르크 해안을 배경으로 한 2차 대전의 전장 속에서 그래전 다하지 못한 순애보는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의 여운으로 <어톤먼트(2007)>를 기억에 남긴다.
그렇게 <어톤먼트>의 원작자 이언 매큐언은 제도와 규범, 그 틈바구니 속에서 비집고 나온 불완전한 '인간', 그 중에서도 특히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논한다.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자신이 성장하며 쌓아온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낸 <체실 비치에서>,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지위를 가진 두 남자를 통해 드러난 '도덕적 자충수'를 통렬하게 그려낸 <암스테르담>, 우연히 맞닥뜨린 사건을 통해 우리가 믿는 사랑과 도덕, 그리고 신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런 사랑> 등의 작품을 통해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함은 물론 전세계 평론가와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언 매큐언 원작의 <칠드런 액트> 바로 그 이언 매큐언의 13번째 장편 소설 <칠드런 액트>가 영화로 찾아왔다. 더구나 작가의 40년지기이자, <어톤먼트>의 기획을 맡았던 리처드 이어가 감독을 맡았고, 거기에 작가 자신이 ' 소설에 나왔던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 생각을 영화로 옮기는 지적, 감성적 도전'으로 각색을 맡았다. 그리고 그런 걸출한 제작진의 의도를 엠마톰슨이 연륜있는 내공으로 발화시켰다.
엠마 톤슨이 분한 피오나는 헌신적인 판사다. 남편 잭(스탠리 투치 분)과 함께 하는 일상조차 그녀의 일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남편은 그녀와 함께 할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접어두고 뒤로 물러서야만 하고 피오나는 샴 쌍둥이 분리 수술 등그녀가 맡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중대한 판결에 있어서 한 치도 법리적 빈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집중한다.
그런 그녀에게 맡겨진 가정 법원의 또 하나의 사건이 배당됐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17살 9개월 여호와의 증인인 소년 '애덤'이 수혈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를 지도 모를 상황에 대해 그녀가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 것이다. 파탄 위기에 놓였던 가정을 '종교'를 통해 회복시켰던 부모들은 종교적 교리에 따라 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소년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더 이상 소년의 수혈을 지연시키면 이대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한다. 과연, 피오나는 이 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은 상황에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앞서 샴 쌍둥이의 재판에서 두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신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명 존중의 원칙을 선택한 피오나, 하지만 정작 부모들은 자신의 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언론에 그녀를 비난한다. 거기에 더해 늘 그녀의 일 앞에서 돌아섰던 남편이 그녀에게 '바람'을 필 것이라며 최후 통첩까지 하는 상황, 이 혼란스러운 형편속에서 피오나는 여태 그녀가 해오던 관행을 깨고 당사자인 소년을 만나기 위해 소년이 입원한 병실을 찾는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판사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해맑게 반기는 소년, 그 소년의 순수한 마음에 피오나는 판사라는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은 채 소년의 기타 반주에 맞춰 예이츠의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라는 노래를 부른다. '다가올 삶과 사랑을 생각해 보'라며 조금만 더 있으라며 만류하라는 소년을 두고 병실을 떠나온 피오나는 그 '소년'의 남겨진 사랑과 삶을 염두에 두며 '수혈'을 하도록 판결을 내린다.
샴 쌍둥이의 판례에서 처럼 '생명존중의 원칙'에서 최선이었다 생각하며 내린 판결, 하지만 피오나가 내린 판결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한다. 18세가 된 이후의 무한하게 펼쳐진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라 내린 결정, 하지만 소년이 맞닦뜨린 건 자신이 맹종했듯이, 종교적 결정에 순종했던 부모가 정작 소년의 수혈을 하는 순간 보여준 찰라의 '반색'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했을 때 행복해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소년은 반대 급부로 자신에게 '생명'을 준 피오나에게 집착하며 심지어 그녀와 함께 살겠다며 그녀의 뒤를 쫓는다.
최선의 결정 이후에 남겨진 반전의 결말 17살 9개월의 티없는 아름다움에 순간 매료되었던 피오나는 그가 자신에게 보내온 시를 읽고, 그가 남긴 전화 메시지를 들으며 미소를 짓지만 판사로서 재판의 당사자였던 소년의 접근을 완고하게 거부한다. 그녀의 이동 재판을 따라 비를 맞으며 찾아온 소년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운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온정'이었다. 자신의 일에 헌신적이며 원칙적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은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이른다. 그녀의 크리스마스 연주회가 있던 날 그녀에게 도달한 전언은 충격적이다. 동료 변호사의 반주를 하다말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애덤과 함께 불렀던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을 흘리네'를 부르고는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다면 피오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을까? 샴 쌍둥이가 그냥 그대로 있다가 둘 다 목숨을 잃게 놔두고, 소년 역시 종교적 교리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게 하도록 해야 했을까? 피오나의 결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고 작가 이언 매큐언은 그런 제도와 법으로 다 책임질 수 없는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고 한다.
영화 속 피오나 부부, 아내에게 바람을 핀다며 집을 나가 버린 사람은 남편이다. 다시 돌아온 남편에게 피오나는 분노한다. 그러자 남편은 나는 잠시 결혼을 방기했지만, 당신은?이라며 반문한다. 어떻게든 부부로써 화목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남편과 달리 피오나에게는 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일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니 그녀로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객관'을 넘어선 인간적으로 번민해야 할 지점에 작품은 시선을 둔다.
한없이 싱그러운 미래가 열려있을 거 같은 애덤에 피오나는 남편 앞에서 '그저 멋진 소년이라구요' 절규하듯 매혹되었다. 하지만 판사로서의 도덕적 규범이 우선하는 피오나는 자신의 직분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녀는 비난받을 그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녀의 결정 앞에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이 흔들려버린 소년 애덤은 그녀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었지만 좌절하고 만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오늘날 우리가 만능처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법'과 '제도'의 규범 속에 담을 수 없는 이면의 변수들에 대한 '헤아림'과 '관용'이다. 그건 곧 '단호한 지성'에 대한 반추이다. 그리고 그런 '행간'에 대한 반추는 오늘날 '옳음'의 이름으로 서로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돌아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여지를 내민다. 어리석어서 눈물을 흘리기 전에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 바로 <칠드런 액트>이다.
도쿄대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라는 AI가 있다. 이 대학에 갈 수준이라는 AI와 우리의 고등학생들에게 같은 유형의 국어 문제를 풀도록 했다.
' 알렉스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쓰이는 애칭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라라는 여성의 애칭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
남자, 여자, 알렉산드라, 알렉스 등 예시의 4문항 중 정답은 알렉스이다. 이 기사를 읽은 여러분들은 맞추셨는가? 대학가는 AI는 이 문제를 비롯하여 9문제를 풀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등학생들은 어땠을까? 이런 유형의 문제를 푼 학생들의 30%가 정답을 비껴갔다. 무엇을 물어보는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학생들, 애칭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학생들,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의 글을 읽고 요약을 하라고 하면 그런 요약은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온다며 하려 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온다는 중심 내용, 거기에 있어서일까? 중심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단다.
독서하면 뒤쳐져요. 실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만 되도 당당하게 밝힌다. 자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심지어 도서관에 와서 수다를 떨면서도 책을 왜 읽느냐며 해맑게 반문한다. 다큐를 연 유치원도 아직 다니지 않을 것같은 유아들을 상대로 한 독서 수상 광경, 엄마 품에 잠든 아기에게 500권의 독서 상장이 주어진다. 아마도 지금 책을 안읽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도 저 시절은 아니더라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과 친근했을 것이다. 집안의 서가에는 엄마가 사모은 각종 전집류가 쌓여 있었을 것이며 빈번하게 도서관에 엄마 손을 잡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던 아이들이 왜?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관심도는 저 어린 시절을 넘어서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더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중학교만 가도 그 '독서 교육'의 관점이 달라진다.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교과와 연결되어 가시적 교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입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강남 국어 학원에 밤새 줄을 선 학부모의 말처럼 '독서'를 하면 뒤처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수학, 영어 문제 한 문제라도 더 읽어야지, 어디 책을 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책읽을 시간이 없는 입시 교육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자발성이 없고 반강제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던 우리나라의 독서 교육이 문제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박사, 책을 안읽어도 되는 우리의 교육 환경에서 서민 박사는 책을 읽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박사의 진단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많이 읽어라 하는 독서조차 숙제로 만드는 우리의 교육 환경이 아이들로 하여금 책에 학을 떼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 많이 읽어라 해서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국가간 학력 비교 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2006년 읽기 영역에서 1등을 했던 한국,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급격하게 순위가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 순위가 아니다. 하위권 학생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의 32.9%가 하위권에 속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기 힘든 비율이 전체의 1/3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18년 수능 국어 파동같은 해프닝이 벌어진다. 당시 너무 어려워 문제가 된 국어 문제,
일반적으로 수능 1등급 커트라인이 90점을 상회하는데 2018년에는 80점을 겨우 넘어 문제가 됐었다. 출제 기관에서는 이 정도는 충분히 풀 수 있으리라 냈던 문제, 하지만 점점 떨어지고 있는 우리 고등학생들의 독해력은 이런 문제 앞에 '멘붕'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이제 수학, 영어 외에 국어도 중요하다며 학부모들은 강남의 유명 입시 학원에 밤을 새워 줄을 선다. 훌륭한 국어 강의를 들으면 해결이 될까?
그 유명한 국어 강사의 강의 시간, 한참 한국 단편에 대해 설명하는 중, 한 학생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단다. '그런데 선생님, 역마살은 어떤 부위예요?' 수능 국어는 어휘력, 이해력, 사고력, 독해력이 필요한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이 일일이 떠먹여준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결과물은 이제 국어 학원마저 줄을 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디지털 시대의 난독증 어른이 되면? 가끔 읽기는 읽는데 승진 등에 도움이 되는 목적형 독서를 하게 된다. 한국 성인 중1/4가 일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문해력)은 OECD 평균 이하이며, 그중 22.4%는 초등학생 수준 이하이다.
대학생인 이수민씨는 이와 관련된 고민이 있다. 책은 당연히 읽기가 힘들고, 기사문도 길어지면 이해가 안된다. 그러다 보니 세 줄 이상 넘어가면 읽지 않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당연히 쓰는 것도 힘들다. 간단한 글도 쓰다 보면 걸리고, 하다못해 자소서 등의 문항을 쓰다가도 #버튼에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이수민씨는 자신들이 책을 읽다가 안읽은 세대라 정의내린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때부터 책을 안읽은 세대, 더 이상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듣지 않은 시절부터 책으로 부터 자유로워진 세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이다.
한때 독서광이었다먼 김귀희씨 이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려 해보지만 좀처럼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시선이 머무르는 시점이나 시간을 통해 읽는 방식을 검사하는 아이 트래킹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때 책을 즐겨 읽었다던 김귀희씨는 어느덧 그녀가 즐겨보는 스마트폰을 보듯이 시선을 세로로 하여 스냅샷을 찍듯이 책을 읽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 꼼꼼하게 보지 않고 Z자형, F자형으로 건너뛰며 전형적인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을 깊게 이해살 수 없으니 당연히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독서는 인간의 진화적 특성에 어긋난다. 인간종으로의 진화는 20만년 전, 하지만 문자의 발명은 6천년 경, 늘 주변을 살펴야 하는 산만한 DNA를 가진 인간들에게 책읽기 자체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진화적 특성을 이겨내면서까지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 UCLA 난독 연구 센터 매리엔 울프 박사, 하루에 5~10만 단어를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 하지만 그 디지털의 방식은 '깊은 독서'를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씨는 우리 삶에 도움을 줄만한 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라 책을 정의한다.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속에서 어떤 변화가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을 통해 얻어지는 공감', 그것이 깊은 독서의 첫 번째 관건이다. 저자, 혹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추론'을 하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메이앤 박사는 주장한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의 뇌는 변화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사고력, 창의력, 기억력, 감정 조절 능력이 깊어진다. 이를 통해 쌓이는 배경 지식, 많이 읽을 수록 더 많은 배경 지식이 쌓이고, 이는 다음 독서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 지식와 함께 뇌의 회로는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견고해진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말하는 뇌과학자들은 없다. 하다못해 저글링만 해도 뇌의 회로는 변화한다. 노인이 되서 굳는게 아니라, 안써서 굳는 것이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서'다.
난독의 시대, 어떻게 읽을까? 물론 이견도 있다. 책을 사지 않을 뿐, 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웹 소설 작가 문화류씨 아예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레이아웃에 맞춰 디지털 세대의 작가로 최근 각광받는 문화류씨는 자신들의 독자의 경우 한 달에 7,8권의 웹 소설을 소비한다며 종이로 된 책을 안살 뿐 자신들의 세대는 웹 소설 등으로 다른 '독서'의 세계를 열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디지털의 시대 책은 좋고, 디지털은 나쁘다라는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다. 매리엔 박사는 5살에서 10살 시절에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11살에서 15살 무렵테 책과 디지털의 세계를 접목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 권유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가 낯설어지는 시대, 과연 어떻게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씨는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듯 책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일년에 몇 권을 읽어치우려 하지 말고 한 권이라도 꼭꼭 씹어 먹듯이 읽으라고 권한다.
기생충 박사 서민 박사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이미 어릴 적 반강제적인 독서 교육으로 책을 멀리하게 된 시절, 차라리 어릴 적에 '규제'를 하여 책을 읽고픈 욕망을 극대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손승훈 교사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교과서를 보거나 EBS 문제집을 풀면서 고단하던 눈빛이 책을 읽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 변한다며, EBS 문제집을 적당히 보고 시간을 나눠 책도 좀 읽는게 수능 성적이 향상되는 지름길이라며 팁을 제시한다. 실제 박성경 학생의 경우, 처음엔 공부 시간을 빼서 책을 읽는게 부정적이었지만 3개월 정도 꾹 참고 책을 읽다보니 문제 푸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자신의 성공 사례를 덧붙인다.
단, 손교사는 서울대 권장 도서목록 이런건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한다면 대번에 50권을 사들이는 것도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란다. 일주일에 두 권씩 사 들이면 어느 틈에 그 책들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같이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령의 '책읽는 마을', 대전의 '백북스', 전국에 여러 독서 모임이 활동중이다. 스마트폰을 보던 지하철의 시간을 활용하여, '지하철에서 책읽기 모임'도 있다.
홍천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독해력을 높이기 위해 독서 동아리를 장려했다. 친구랑 함께 책을 읽고 노는 시간이라고 시작한 아이들,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 어느덧 전교생의 70%가 참여하는 83개의 독서 동아리가 활동중이다. 심지어 고3이 되어서도 여전히 주말 오후에 함께 책토론을 즐긴다. 동아리의 학생은 말한다. '책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단지 좋아하는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새로운 수목 드라마들이 시작되었다. 일찌감치 9시에 포문을 연 건 로맨스 사극이다. 조선 시대 연애 소설가가 된 대군에 여자 사관이 된 당시의 세상 관심 많은 노처녀, 조선 시대에는 불가능할 것같은 이 캐릭터들을 내세워 <솔로몬의 위증>팀의 강일수, 한현희 피디와 김호수 작가가 다시 뭉쳤다. 티저만 보면 <성균관스캔들>이요, <해를 품은 달>같다. 앞서 <봄밤>이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종영한 상황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펼쳐보기도 전에 '사극'이라는 장르에 맞지 않는 주연 배우의 연기가 발목을 잡으며 방영 2회차 만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만다.
kbs2는 손현주, 최진혁 두 배우을 앞세워 <추적 60분>을 10여년간 쓴 내공의 정찬미 작가가 <우리가 만난 기적>의 조웅 피디와 함께 장르물 <저스티스>로 돌아왔다. <추적자> 이후 믿고 보는 장르물의 배우가 된 손현주가 이번에는 '악마'같은 재벌이 되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악'과 손을 잡은 변호사로 최진혁이 나섰다. 배우들의 면면은 믿을만한데, 이젠 법정을 배경으로 재벌과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신선하지 않은게 문제다. 결국 그 '신선하지 않은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인데, 주연 배우의 연기가 아쉽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던 <단 하나의 사랑>을 선택했던 시청자들에게 <저스티스>의 요릿법은 진부했을까? 아니면 난해했을까? 안타깝게도 첫 방의 6%대 시청률은 2주차에 바로 4%대로 떨어지고 만다. (1회 6.1%, 4회 4.8%,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닥터 탐정, 산업 안전 의학 장르물의 선방 뜻밖에도 방영 2주차만에 선두 자리를 탈환한 건 sbs의 <닥터 탐정>이다. <리턴>의 박진희, 봉태규라지만, 상대작들에 비해 캐스팅이 제일 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 심지어 전작 <절대 그이>는 2%로 소리소문없이 종영했다 할 만큼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기에 이른바 전작의 혜택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누가 나오느냐, 어떤 소재이냐를 떠나 잘 만들고 볼 일, 새로 시작한 수목 드라마 중 그나마 서사와 연기 등 완성도 면에서 나았다고 평가를 받는 <닥터 탐정>의 1위는 그래서 드라마의 존재론을 역설한다.
<저스티스>가 <추적 60분>작가라면, <닥터 탐정>은 <그것이 알고싶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다큐 연출에 잔뼈가 굵은 박준우 피디의 첫 드라마 도전이다. 그리고 박피디와 함께 산업 의학 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사회 고발 메디컬 수사극>으로 첫 도전을 했다.
그렇게 '다큐'의 경험이 풍부한 제작진답게 <닥터 탐정>의 장기는 바로 생생한 현실감이다. 굳이 4회 말미에 덧붙인 '에필로그'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알고싶다>등을 통해 쌓인 '현실'의 결과 산업 의학 전문의만이 그려낼 수 있는 UDC, 미확인 질환 센터의 '닥터 탐정'들의 미시적 세계가 '드라마'를 통해 풍성하게 그려진다.
덕분에 어쩌면 또 하나의 <검법 남녀>? 인가 혹은 또 한편의 재벌 비리 드라마인가 싶었던 드라마는 산업 현장이라는 현실감을 살려내며 새로운 장르물의 탄생을 예고했다. 특히 3,4회 방영된 지하철 하청업체 재해 사망 사고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구의역 사망 사고 사건을 복기하게 하는 한편, 거기에 그들을 산업 재해의 피해자로 되도록 만드는 각종 불법 유기 용제의 오남용을 강요하는 하청업체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해낸다.
거기에 중간에 투입돼음에도 불구하고 퇴장한 배우가 떠올려지지 않을 만큼 열연으로 연기력을 증명했던 박진희가 한때 TL그룹 며느리였지만, 이제는 딸조차 빼앗긴 '닥터 탐정'으로 돌아왔다. 천재적인 능력에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직업 환경 전문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런 능력은 1회, 기업이 정부의 법망을 피해가는,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깊은 밤 모두가 퇴근한 현장에 도둑 고양이처럼 등장한 닥터 탐정 도중은은 셜록급으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산업 안전의 꼼수를 전파하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산업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던 도중은이 그녀를 따스하게 대해주었던 이웃 정하랑(곽동연 분)이 TL메트로 하청 업체 직원으로 과도한 업무와 산업 재해로 추정되는 병에 걸린 것을 목격하고 이기적인 태세를 전환한다. 결국 그 병으로 인한 지하철 사고로 하랑이 숨을 거두고 그의 죽음을 놓고 TL이 갖은 꼼수를 부리며 사건을 은폐하려 하자 도중은은 떨쳐 일어선다. 자신의 딸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거절했던 UDC의 팀장 자리를 수락한다.
다만 그 어떤 드라마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산업 현장과 다큐의 현실감이 <닥터 탐정>의 장점이라면, '다큐'에 '감정'만 불어넣는다고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닌 법, 현실보다도 더 현실같은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드라마가 불을 지핀 '신파'가 때로는 드라마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며 '입봉'의 과욕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잠시 출연했음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곽동연을 비롯하여 <리턴>에서도 그랬지만 캐릭터로 승부하는 봉태규와 함께 박지영, 류현경 등 '한 연기'하는 출연진들의 연기가 그런 아쉬움을 보완해 주지 않을까.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 돈을 위해 산업 안전을 이용하던 닥터 탐정이 한 청년의 죽음을 기화로 정의의 산업 안전의 수호자로 변신했다면, 여기 승리를 위해서 '편법'쯤이야 껌처럼 여기던 대형 로펌의 간판 변호사 기무혁(윤균상 분)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기간제 교사로 변신한다.
자신이 소속된 로펌 대표가 던져준 사건, 천명고의 한 여학생이 사고를 당하고 사고 현장에서 잡힌 남학생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는데, 로펌대표는 적당한 선에서 형량을 정하고 마무리하라고 했는데, 의욕이 앞선 기무혁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나 법정에서 그의 변론에 뜻밖에도 용의자였던 남학생이 부정을 하고 심지어 옥상에서 추락하며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무혁은 변호사로써 윤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처분가지 당하게 된다.
보육원에서 자라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자신조차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기무혁이 갖은 고생으로 얻게 된 대형 로펌의 변호사, 그는 그렇게 얻은 것을 한 순간에 허망하게 허물어 뜨린 천명고 사건, 이제 여학생의 죽음으로 살인 사건이 된 사건에 의혹을 느끼는데, 그 의혹을 안고 찾아간 여학생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천명고 학생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그로 하여금 기간제 교사라는 모험의 계기가 된다. 변호사 출신의 명석한 기간제 교사와 위악적인 학교, 학생들간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장르물의 신선한 지평을 연다.
알고 보니 로펌의 대표 아들이 다니는 사립고, 거기에 학교의 주인이 '재단'이라는 신참 기간제 교사 기무혁의 아부에 통쾌하게 호응하는 재단 이사장, 그리고 해도 되니 한다며 대놓고 가난한 아이를 폭력적인 싸움에까지 이용하며 '왕따'시키는 아이들, 거기에 어른 뺨치게 위선적인 학생들까지, <솔로몬의 위증>의 암울한 사립고와 <스카이 캐슬>의 위악적인 교육 현실이 다시 한번 소환되며 거뜬히 2회만에 두 배의 시청률로 뛰어올랐다. (1회 1.814%, 2회 2.413% 닐슨 코리아 전국 케이블 기준)
얼마 전 지인이 하소연을 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유투브를 즐겨 보길래 책을 좀 읽으라 했더니, 아들 왈, 엄마는 석기 시대의 도구를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느냐며 되레 반문을 했단다. 말문이 막힌 엄마, 그 분이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핸드폰' 사용을 둘러싼 갈등을 한번 이상 겪어보지 않은 집이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애플의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량이 3시간을 넘으면 자살율이 35%가 증가하고, 5시간을 넘으면 71%가 증가한다며 애플은 이런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넘어선 중독, 과연 그에 대한 해결책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런 사회적 고민에 대해 <시사 기획 창>은 색다른 실험을 통해 답을 찾고자 한다. 기존의 많은 과학적 실험들이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 접근했던 것과 반대의 시도를 해본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3개월 초등 저학년이 37%, 고학년이 74%, 중학생이 92%, 고등학생이 되면 93%의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신체의 일부처럼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30.8%), 메신저을 하거나(24.1%), 웹툰을 보며 (16.6%) 시간을 보낸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29.3%가 스마트폰 과의존 증상을 보이고 있으면 남학생 28%에 비해 여학생 30.7%로 그 비율이 높다.
고양시의 덕양 중학교, 전교생이 900여 명이 넘는 이 학교 역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골치꺼리다. 그에 따라 2016년 학교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생활 협약에 따라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기로 결정하고 매일 아침이면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걷는다. 하지만 이런 협약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 상태, 결국 다시 협약을 유지하기로 하였지만 학교에서 사용을 하지 못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5~6시간, 심지어 주말에는 10시간에 이르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중2 성원이의 경우, 방학이 되자 사용 시간이 부쩍 늘었다. 게임, sns, 유투브, 메신저 등의 용도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성원이, 수시로 울리는 알림을 들여다 보느라 해야할 과제를 다 못하기 했다는 성원이는 오늘도 이어폰까지 연결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가족과의 대화는 물론, 식사 시간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친구가 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주 보며 대화는 커녕 둘이 나란히 누워 게임을 하다 간다.
지원이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엄마가 지원이를 깨우는 시간은 오후 4시, 그나마 오늘은 빠른 편이다. 겨울 방학에 들어서면서 밤새 스마트폰을 하느라 낮밤이 바뀐 지원이, 나가는게 귀찮고 할게 없다며 스마트폰만 하느라 엄마조차 귀찮아질 지경이다. 엄마도 지원이의 상태가 심각한 건 알지만 괜히 잔소리하다 관계가 더 나빠질까 마찰을 피하다 보니 이렇다하게 제재를 못하는 상황.
이에 <시사 기획 창>과 학교는 연세대 의대 정신 과학 교실의 도움을 얻어 3개월간 스마트폰 절제하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전교생을 상대로 하여 이 프로그램에 참여자를 신청한 결과 다행히도 16명이 지원을 했고, 박나린, 장성원, 강산, 이찬영, 변평화, 신지원, 지준영 등 최종 7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또한 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3개월 동안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영상 촬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영상 촬영 그 대상은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우리가 인간으로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이성적 사고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다. 전두엽 내 혈액 속 산소 포화도 변화를 측정하여 자기 조절과 억제 능력, 작업 기억 능력을 데이터화 한다.
실험은 참가한 학생들과 부모들이 함께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 기기 역시 평일 1시간, 주말 2시간으로 실험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약속도 했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효율적인 실험을 위해 부모들 역시 집에서는 필요할 때만 스마트폰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 핸드폰을 '보관 상자'에 담고, 대신 전화, 문자만 가능한 이른바 효도폰을 받는 것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28일째 되는 4월 17일 중간 점검이 이루어졌다. 지하철 탈 때 심심하다는 등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의 불편함이 토로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다른 활동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엄마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며 웃는다. 가족끼리 스마트폰을 하는 대신 야외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났단다.
그리고 71일이 되는 5월 30일, 그간 아이들의 전두엽 이미지 촬영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과 그냥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조군의 학생들을 함께 촬영한 결과, 자기 조절 억제 능력에서 대조군의 학생들이 파란 색인 것과 달리,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노랑 색을 띠며 자기 조절 억제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보였다. 반면 작업 기억 능력의 경우 실험군의 학생들이 파란 색, 대조군의 학생들이 노란색을 띠었다. 이는 실험군의 학생들이 머리를 덜 쓰고도 과제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정보 처리의 효율성이 증가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을 뿐인데 학생들의 전두엽 기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는 곧 우리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학업 능력의 향상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과 반대로 해본 실험, 불과 몇 달 사이에 달라지는 아이들의 뇌를 통해 지금이라도 더 늦지 않게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뇌를 향한 시도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결론은 명확해 진다.
디지털의 격차는 접근 금지의 격차로 부터 학자들은 사춘기가 전두엽 발달이 활발뇌가 재건축되는 시기라 정의한다. 그런 시기에 뇌발달이 불균형은 이후 학업은 물론 미래의 삶에 있어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에 일상의 통제력을 찾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즉 정신적 항체를 키우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북의 좋아요 기능을 만들었던 저스틴 로젠스키, 그는 바로 이런 sns의 기능이 '가짜 즐거움의 맑은 종소리'라며 반성한다. 그리고 페북을 나와 구글에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와 함께 '인도적 기술 센터'를 만들어 디지털 중독 사회의 해법에 앞장서고자 한다.
트리스탄은 오늘날 우리는 우리 삶의 1/4를 인공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통탄한다. 거대 미디어 기업은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여 유혹적 방식으로 붙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오는 알림은 도박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고, 관심에 목마른 청소년은 좋아요를 통해 마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스마트 쉼 센터에 찾아온 상담 학생의 사례를 보면 전학으로 친구가 없던 청소년이 온라인 페친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려 하고 1000 명이 넘는 페친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다 그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부모와 갈등을 빚다 가출까지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대 의대 정신건강 의학과 전홍진 교수에 따르면 2014년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상담을 한 청소년 150명의 경우 밤을 새면서 까지 확인을 해야 할 정도로 불안, 초조가 극심했고, 우울증 증상까지 드러났다고 한다.
정작 스티브 잡스의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몰랐고, 빌 게이츠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13살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사줬다는데, IT 산업의 메카 실리콘 벨리에서는 오늘날 디지털의 격차는 '기술에 대한 접근 제한이 새로운 격차로 귀결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실리콘 벨리의 사라토가 고등학교, 공립학교 중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이 학교에서는 총기 사고 등 미연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시 알림을 위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허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교실 한 쪽에 스마트폰 포켓을 마련하여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그곳에 스마트폰을 보관하도록 한다. 만약에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포켓에 넣지 않고 보면 바로 뺏기고, 교장에게 인수되어 학칙에 의거 벌을 받게 된다.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인병진 교사네 집 풍경은 실리콘 벨리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 제한에 대한 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초등학교 자녀는 아예 핸드폰이 없으면 고등학생인 아들도 핸드폰이 있지만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인교사네 집, 노트북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는 거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이집의 규칙이다. 침실에서는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고등학생이 되서도 다음날 학교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밤 10시면 취침을 해야 한다는 인교사네 집의 풍경은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어쩌지 못하는 우리네 가정의 풍경과 참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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