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이 단어의 뜻을 아시는가? 그렇다면 '양성', 이나 '음성'은? 누굴 놀리냐고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상황 포탈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양성'과 '음성'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흘'은 2020년 광복절 연휴 이후 사흘간 연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실검에 오르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하루, 이틀, 사흘'의 그 사흘인데 많은 사람들이 4일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 조차 '4흘'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단다.
그 정도야 한다면 이건 어떨까?
ktx 홈페이지에 있는 열차표 금액 계산 실례이다.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일 수 계산'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성 자주 쓰는 문장으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평균 54점이 나왔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위의 시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글을 이용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해력'에 있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ebs는 지난 1년간의 준비를 거쳐 6부작 문해력 프로젝트 <당신의 문해력>을 3월 8일 부터 방영 중이다.
문해가 안되서 공부를 포기하는 현실 딱딱한 다큐만을 보여주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등과 한양대 조볌영 교수, 한겨레 김진철 기자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집중 파고든다.
'사흘' 정도는 비웃었지만 막상 열차표 계산으로 가면 막막해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해력'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심각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여다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몰라서 수업이 진행이 안된다. 모르는 뜻에 손을 들고 '몰라요'라고 하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아이들은 한 페이지 당 무려 14번 손을 들었다.
'보모',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 광고', 등
아이들이 모른다고 했던 한국말이다. 아이들은 캐셔는 알아도 캐셔의 뜻인 출납원은 모른다. 사회 수업은 한 술 더 뜬다. 기생충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선생님, 봉준호 감독이 애초에 기생충이라는 제목 대신 가제로 '데칼코마니'라고 했던 설명에서 부터 얹힌다. '가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랍스터'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양분'이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을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은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반'이 제법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중학생 2400 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를 했다. 27%가 또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초등 수준 정도에 머무르는 학생들도 11%나 됐다. 초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서는 당연히 '무리', 그러니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공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수업, '연말 특별 강화 대책'처럼 글로 전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읽었다고 하는데 등교하는 날조차 '인지'하지 못해 일일이 전화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른바 '스압주의'라는 유행어처럼 줄글, 검은 글씨, 긴글 자체를 읽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해력'에 있어 지대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지난 10년 사이 읽기 능력 부진한 학생들의 비율이 3배나 증가했다.
영상시대 문해력은 필요할까? 물론 문해력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의 시대 과연 굳이 글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카드 뉴스'나 '포스터', 나아가 '영상'처럼 보다 쉬운 방식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향성에 대해 프로그램은 공기업에 근무하는 염기철 씨의 사례를 예로 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입사한 기철 씨, 직장 내 진급 등을 위해 정보 관련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쉽지 않다.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간 도전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신 상황이다. 제작진이 준비한 문해력 테스트, 11문제 중 겨우 5문제를 맞혔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기철 씨가 작성한 문서가 자주 반려된다고 한다. 32살,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갔으니 다 끝이라고 하겠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기철 씨에게 '문해력'은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
실제 기업 10곳 중 6곳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하고,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가장 간단하게 '수신, 발신, 참조'라는 단어도 모르는 젊은 세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다시 대학 국어학과 교수를 초빙하여 공부를 시키는 기업도 등장한다.
oecd조사에 따르면 언어 4.5등급과 1등급 사이에 연봉 2.7배, 취업률 2.2배, 그리고 건강 마저도 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뇌의 상태를 조사해보았다. 평균 1년에 20권 정도를 읽는 사람들과 한 권이나 읽을까 하는 사람들과 전전두엽 활성화 정도를 검사한 결과 활성화 기능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글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활성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글'만 읽고 있을 때, 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파악하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읽기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등이 문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문해력 시험을 보는 등 국가적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문해력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기자는 <당신의 문해력>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 파악을 못한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입말' 중심의 초등 교육 과정에서 '문어체'가 교과서의 주를 이루는 중등 교육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다수의 학생들이 '문해력'에 있어서 '장애'를 느낀다.
특히 우리나라는 '한글' 체계라고는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기에 '한글'만으로 뜻을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의 한글 교육은 이런 문제점을 그저 '사교육'에 맡긴 채 방기한다. 거기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어 문화는 또 하나의 '언어' 체계의 등장처럼 우리 사회 언어 체계에 혼란을 가져온다.
결국 교육 과정 근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다큐는 4부 <내 아이를 바꾸는 소리의 비밀>처럼 문제 해결을 다시 '가정', '사교육'으로 환원하는 듯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하는게 '해결책'이어서는 우리 사회 '문해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공교육이 해야 할 과제를 개인이 떠안아서는 문해력의 격차는 나날이 심해져만 갈 것이다. 저런 식의 해법이라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 것이다. 현재 심각한 '문해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쉬운 점을 남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을 구해야 한다고 암시한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서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라고 묻는 대신에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스스로 '워커홀릭'인 면이 있다고 '자조'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주입시켜 준 '일'에 대한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을까? 그 무엇이라도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다.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내 자신'이라는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처럼 여겨진다. 늦은 밤 허덕이며 원고를 마무리하는 그 순간에 스스로의 존재감에 만족하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일', '노동'은 꼭 존재론적 만족의 요건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더 많은 '인력'들이 요구되었다. 아직 앳된 여성들이 책가방 대신 공장의 전등 불빛 아래 모여든 이래 여성은 우리 사회 주요한 '산업 역군'이었다. 그들이 번 돈은 가족을 먹여살렸고 남자 형제들이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미싱을 돌리고 가발을 만들던, 차를 나르고 주판을 튕기던 그녀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일'을 한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 생활고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 2020년 12월 방영된 다큐 잇it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는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다양한 '처지'를 살펴본다.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 현창홍 씨는 37년 동안 은행에서 일을 했다. 2020년 1월 부지점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감사패에 새겨진 문구, '청춘과 열정'처럼 그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라고 생각될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집안 형편으로 상고로 진학할 수 밖에 없었던 창홍 씨는 여상 3학년 첫 직장으로 은행에 입사했다. '커피 한 잔 타와'라는 차 심부름부터 시작된 그녀의 일, 같이 입사한 남자 동료들과는 호봉도 다른 차별을 받았다. 억울해하는 대신 일을 하며 두 군데나 대학을 다니며 배움의 갈증을 해소했다.
그렇게 살아왔던 열정으로 퇴직 후의 삶도 대비했다. 공공기관에서 수요가 많다는 직업 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차가웠다. 30명을 뽑는데도 '50대는 마감되었습니다'라며 그녀에게는 면접의 기회조차 없었다. 젊어서는 '남자'들과 차별당했던 그녀가 이제는 '나이'로 차별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50통 이상의 이력서를 제출한 그녀에게 기회를 준 곳은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래도 현창홍 씨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여성 고령층 일자리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돌보미 등 단순 노무직 등이 많다. 사무직은 하늘의 별따기다.
오늘도 일을 해서 행복합니다 62세의 전영희 씨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15살부터 봉제 공장에 다니기 시작해서 봉제 공장 운영, 제빵학원 사무직, 요양 보호사, 거기에 4 명의 손주까지 키워낸 그녀지만 불과 1년된 햇병아리 가죽 제품 수선공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병든 어머니, 중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다니던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피하고 온종일 울던 시절, 어떻게 하면 가난하지 않을까만 생각했었다.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의 외벌이만으로는 부족했던 생활비 그녀의 '노동'이 가족에게 중요한 '기둥'이 되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이기에 앞으로 10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며 늦은 나이에 가죽 수선일을 시작했다.
전영희 씨와 같은 1959년생 베이비 붐 세대 앳된 나이부터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온 세대다. 그런 베이비 붐 세대 58.2% 45만 명이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거나 일을 찾는다. 근로 희망 사유 중 58.8%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많은 38.8%가 일하는 즐거움을 들었다. 자신이 경제 활동을 멈추는 순간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영희 씨는 스스로 일중독증이라며 '오늘도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또 한 분이 있다. 72세의 장계덕 씨는 공공기관 노인 일자리 사업인 참기름 공장에 일주일에 2회 나간다. 젊어서 사업을 하던 남편을 돕던 계덕 씨는 50대 이후에는 우편물 분리 작업, 노인 관리사 등을 했고 작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지만 일을 하는 시간이 짧아 아쉽다고. 남편은 은퇴하고 자식들에게 용돈은 받지만 실질적 가장인 그녀는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아쉽다.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아둥바둥 살아온 세월 노후 준비는 언감생심이었다.
계덕 씨 만이 아니다. 대학 진학만이 유일한 계층 상승이었던 우리 사회에서 6,70대에게 생애 최고 과제는 자식 교육이었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건 사치였다. 그러기에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어머니'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남성에 비해 국민 연금 가입률이 낮은 여성들은 고용보험, 건강 보험 등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나날이 늘어가는 평균 수명, '어머니'는 더 오래 일할 수 밖에 없다.
여성의 돌봄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여성에게 '노동'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일'을 한다.
81살된 홍인보 어르신은 치매다. 주간 보호 센터에서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 그가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인 박청자 씨이다. 79세의 박청자 씨는 요양 보호사로 이곳에서 일하며 남편을 돌본다.
남편과 함께 문구 사업도 하고, 딸과 함께 까페도 했던 청자 씨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기 위해 요양 보호사가 되었다. 남편도 돌보고 일도 하고자 했지만 자신만 찾는 남편 때문에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쉽지 않다. 청자 씨의 일은 남편과 함께 돌아온 집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밥을 하고 남편을 먹이고, 재운 다음에야 하루 일과를 끝낸 청자 씨, '졸려도 자고 싶지 않'을 만큼 그 남은 시간이 그녀의 유일한 '시간'이다.
시도 쓰고 친구들도 만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이 치매에 걸린 이후 그녀의 삶은 '간병'으로 채워졌다. 점점 고립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자 씨는 그만 남편을 붙들고 정신을 차리라며 '절규'하고 만다.
여성의 돌봄 노동은 평생을 이어진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녀 돌봄으로 시작된 여성의 가사 노동은 노부모 돌봄으로 이어지고, 다시 손주 돌봄으로 이어진다. 65세 이상의 노인 중 10명 중 1명이 치매인 상황 그 부담은 92%가 가족들이 짊어지고, 특히 그 중 85%가 여성들에게 부담된다. 청자 씨네도 자식들도 돕지만 결국 아내인 청자 씨의 몫이 되었다. 치매인 남편을 간병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청자 씨는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 한다. 자신을 희생하며 가정을 지켰던 여성들의 돌봄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사회 '가족'을 지탱하는 건 여성들의 '희생'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문영남 작가 드라마는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다. 3월 14일 첫 선을 보인 <오케이 광자매> 역시 다르지 않다. 1회, 드라마는 부모님의 황혼 이혼으로 포문을 연다.
이혼을 거부하는 아버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는 65세의 아버지 이철수 씨에게 이혼 서류를 보낸다. 어머니의 이혼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딸들에 따르면 더는 참고 살 수 없다며 아버지와 이혼하고자 한다. 그런데 '졸혼'마저 트렌드가 되는 시절에 아버지 이철수 씨는 '아닌 건 아닌거여'라며 완고하게 이혼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이혼 법정에 서는 그 날까지 이혼을 어떻게든지 피하려고 하는 아버지와,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서 얼르고 달래는 딸들의 해프닝을 1, 2회에 걸쳐 방영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 새롭지 않은 용어가 된 '황혼 이혼', 대부분 황혼 이혼의 사유가 그렇하듯 <오케이 광자매> 역시 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참고 살 수 없다며 어머니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문영남 작가는 이러한 최근 황혼 이혼의 조류를 비튼다. 딸들에 의해 드러난 이혼 사유는 분명 가부장적인 아버지이고, 언뜻 봐도 이철수 씨는 그런 요건에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 겨우 2회차에 불과한 드라마 진행 과정에서 '가부장적'이라는 이철수 씨네 가정사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소환될 수 밖에 없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처럼 이철수 씨네 가정사가 한 겹 한 겹 드러나면서 시청자의 관점 또한 혼돈을 겪게 된다.
극중 이철수 씨는 산업 근대화 시절을 살아낸 '가장'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나 대학을 다니며 결혼했던 철수 씨, 하지만 집안과의 '갈등'으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당장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뚫어'를 외치는 처지에 이르렀다. 마치 문영남 작가의 전작 <왜 그래 풍상씨>의 주인공이 나이가 든 것처럼, 노년의 풍상씨같은 철수 씨는 평생 '가족'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희생'해왔다.
그런 그였기에 바람을 피고, 자신이 허리 수술을 받아도 병원에도 와보지 않는, 평생 싸우기만 했던 아내여도 자신이 '봉합'하려 애써왔던 가정을 '해체'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
상처 투성이 가족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버지, 하지만 딸들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버지에게 이혼을 종용하지만 들여다 보면 세 딸의 속내 역시 다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혼을 하라고 한다.
무엇보다 딸들은 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왔던 고생담을 늘어놓으면 서로 눈빛으로 '왜 저래~'라며 비아냥거린다. 잠 한번 실컷자고 싶어서 과용한 수면제로 응급실에 실려와도 딸들은 '쇼'라며 자리를 뜬다.
딸들의 반응은 이른바 '개념'없어 보이지만 평생 자기 자신 고생한 것에만 빠져 살아가는 부모님을 지켜봐왔던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꽤나 공감할 지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지겨웠던 딸들, 하지만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아버지의 고생담 대신, 어머니와 '감정적'으로 교류했던 딸들에게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본 제 멋대로이고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내도 들여다 보면 각자 다르다. 종가집 젯상을 들어엎고 뛰쳐나왔지만 종손으로 '아들'로 대를 잇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첫 딸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다. 반면 둘째 딸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아 자신의 온갖 감정을 '배설'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은 성인이었고, '부부'로 살아왔지만, 전혀 어른답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세상사의 흐름에 따라 '부부'로 연을 맺었고 아이를 낳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살아왔지만 자신들의 삶을 60세가 넘도록 '소화'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들의 '소화'되지 않은 삶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얹혀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지만 그의 희생은 가족들에게 경제적 보상으로 충분치 않았다. 가장의 조건이 경제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부족한 경제적 보상을 무마할 만큼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딸들이라지만 광남이, 광식이, 광태에서 보여지듯이 부재한 아들의 그림자가 얹혀있다. 어머니의 바램이 고스란히 투영된 첫 째 광남이는 번듯한 변호사와 결혼해 사는 듯 보이지만 그 가정엔 온기가 없다. 둘째는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무리한 결혼을 서두른다. 셋째는 자유를 떠나 '방임'에 가깝다.
이철수 씨네 가족은 우리 현대사 가족이 가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산업화 과정에서 '핵가족'으로 분리되어진 가족들은 '아들 선호 사상'처럼 한 편에서 여전히 대가족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핵가족이 가지는 관계의 편향과 감정적 해소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자 안고 살아간다. 부부는 물론 부모자식도 소통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딸들에게 넘겼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 매번 '막장'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시청률 면에서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오늘날 가족이 가지는 민감한 상처를 절묘하게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막장'은 말 그대로 '막장'인 사건들을 다루지만 그 '막장'이 바로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를 높인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불문율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신화의 이면은 '막장'인 것이다. 그리고 문영남 작가를 비롯한 일군의 '막장', 그리고 고공 시청률의 작가군들은 바로 그 우리가 쉽게 드러내보이지 못하는 가족의 그림자를 '한판 굿과도 같은 시끌벅적한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오케이 광자매>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가족'적 경험을 통해 등장인물 각자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했을 것이다.
인플루언서 마크 맨스의 책 <신경끄기의 기술>에는 재밌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의 고민을 상당해주는 저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없이 살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세상에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 '사이코패스'나 가능한 것이라고. 왜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어하느냐고.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코패스는 드라마나 영화에 있어서 흥미로운 '소재'로 자리잡았다. 3월 3일 첫 선을 보인 <마우스> 역시 '사이코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드라마는 사이코패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프레데터'라는 존재를 드라마적 캐릭터로 삼는다. 사회가 진화하면서 발생한 사이코패스, 그 중 상위 1%의 존재들이다. 사자가 토끼를 사냥하듯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사이코패스 중의 사이코패스, 19금답게 드라마적 설정부터 세다.
1995년의 살인마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가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정부와 경찰은 어떻게든지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만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영리한 범인의 수법에 속수무책이다.
드라마는 눈이 마구 쏟아지는 추운 겨울 밤, 두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 한 가족으로 향한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라면 공히 예감할 터이지만, 이 가족은 이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로 인한 오랜 '악연'의 시작이 된다.
행복했던 가족의 캠핑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된 '헤드 헌터' 한서준으로 인해 산산조각나 버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의 사냥에 타깃이 되고 형은 생사의 고비에 놓인다.
한서준 역시 가족 사냥을 마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사냥한 엄마의 머리를 눈사람 속에 숨겼지만, 그의 얼굴을 본 가족의 둘째 고무치로 인해 경찰이 들이닥치고, 결국은 눈사람을 만들던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인해 '감옥'행이 되었다.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 그렇게 1995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 하지만 '살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회, 가족의 둘째 고무치가 형사가 된 현재, 다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불에 태워죽이는 등 잔인한 수법, 거기에 십자가를 조롱하는 손가락 표식, 그리고 훈장처럼 가져간 살인의 전리품들, 고무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범행으로 추정한다.
과연 새로이 시작된 이 연쇄 살인의 범인은 누구일까? 여기서 다시 1회로 넘어가 한 소년이 나온다. 한서준의 아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가진 아이로 '낙인'찍힌다. 한서준의 절친이자, 그에게 동생을 잃은 영국의 박사 대니얼 리에 의해서이다.
이미 유치원 시절 길에서 잡은 '쥐'를 견학간 동물원의 뱀에게 넣어주고 그걸 잡아먹는 과정을 보며 미소짓던 아이는 결국 자신을 학대하던 양부와 가족들을 죽였다.
'신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살인마가 되었다.'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마우스>는 과연 그 '아이'가 극중 누구일 것인가로 촛점이 모여진다. 현재에 다시 벌어진 연쇄 살인의 첫 번째 대상이 살해당한 누나가 사가지고 가던 글로브의 주인공 송수호이기 때문에 더욱 연관성이 짙어진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줄 알았던 한서준이 비밀리에 아들 찾기에 나서고 2회 마지막 창을 마주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사이코패스같아보이는 성요한(권화운 분)과 마주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로 시점이 옮겨진 2회를 보는 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바른생활 청년인 정바름 순경(이승기 분)이다. 고양이 시체만 봐도 토하는 약한 심성의 소유자, 새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의'의 아이콘, 그런데 어쩐지 그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발생한다.
교도소에서 발생하는 정바름의 친구이자 신입 교도관은 바름이 나르던 마술 상자 속에서 손가락이 잘린 채 린치 당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마주한 바름과 성요한 두 사람의 눈빛이 심상찮다.
시청자들이 이 심상찮은 '트릭'에 빠져드는 건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은 아이가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한서준의 아이가 사이코패스일까 검사를 받으러 간 연구소에서 또 한 명의 엄마가 같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드라마적 '트릭'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대니얼의 사이코패스 판정은 99%의 성공률을 보인다. 나머지 1%, 그 1%로 인해 그의 판정법은 '법'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바로 1%의 아이는 '천재'일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사이코패스로 판정을 받아도 사실은 '천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이코패스이지만 무조건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이 깨어나는 '계기'가 있다고 드라마는 '설정'한다.
과연 성요한은 보이는 그대로 사이코패스일까? 혹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은 천재는 아닐까? 그렇다면 또 한 명의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그러기에 비슷한 연배의, 외려 정반대의 캐릭터로 등장한 이름부터 '바름'인 정바름 순경이 궁금하다. 과연 주인공인 이 청년은 보이는대로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고도의 '위장 전술'일까? 그도 아니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사이코패스일까?
<신의 선물>을 쓴 최란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인 <마우스>는 1995년에 이어 현재에 이르는 대를 이은 사이코패스의 가계도 찾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더해 한서준을 찾아 공공연히 그를 죽이겠다고 공포하는 고무치 형사, 위기의 상황에서 한서준을 알아보고 공포에 떨지만 기꺼이 그의 의술을 활용하는 장애를 가진 고무치의 형 고무원(김영재 분)의 다른 선택이 극의 주된 갈등이 될 것이다. 또한 오랜 트라우마를 가진 오봉이(박주현 분)와 진실을 찾아가는 최홍주(경수진 분)의 역할이 사건 증폭의 '트리거'가 될 듯이 보여진다.
몇 명이나 죽여야 진실에 도달할까? 2회에 걸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포진시킨 사이코패스 부자와 그들의 원한 관계들는 흥미롭다. 그런데 19금 드라마답게 드라마의 시작부터줄곧 '희생'되는 사이코패스 제물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2회 자신이 운영하는 권투 도장에서 죽여달라 애원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송수호는 1회 초반 살해당한 송수정의 동생이다. 두 남매는 1,2회에 걸쳐 살인마의 제물로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잔인한 사이코패스가 극의 중심이 되는 수사물의 경우, 잔인한 살해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래도 대부분 한 회차에 한 번 정도의 살인을 다룬다. 하지만, <마우스>는 19금을 표방하고, 1회, 2회, 한서준과 그 아들의 사이코패스를 넘어선 '프레데터'로서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한 회차에 몇 명 씩을 죽여나간다. 그러다 보니 과연 몇 명이나 죽여야 범인이 밝혀질까?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분명 누가 사이코패스일까란 극이 전면에 내세운 '진범찾기'는 궁금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2회, 이미 보는 시청자들은 너무 많은 살인에 지쳐버린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극이 사이코패스에 집중할 수록 먹잇감이 된 사람들은 그 캐릭터의 향연을 위한 '젯밥'처럼 취급된다.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과연 이러한 사이코패스 찾기의 '함정'을 넘어서서 <마우스>가 선의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최란 작가의 전작 <신의 선물> 역시 아동 유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아슬아슬한 경계을 오갔던 바 있다. <마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슬아슬한 경계가 그저 '흥미'를 위한 도구가 아니길 바란다.
엄정화 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지난 3월 2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 후손 2부, 애국가족> 은 다큐 감독으로 엄정화 씨가 기록한 광복군 할아버지 오상근 옹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올해로 99세가 된 오상근 옹, 함께 일본군을 탈출했던 동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가 일본군에 징집을 당했을 때 홀로 아이를 키우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지난 2015년 많이 아팠다. 첫 증손이 태어났다. 새로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아이가 크면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까? 손녀 엄정화 씨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독립운동가 오상근 옹의 이야기는 이제 오상근 옹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 <애국가족>이 되어 3.1절 특집으로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광복군 오상근 '첫 딸 군자를 낳고 징집 영장을 받았어', 그렇게 시작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본군으로 라오스 태국 전선에 투입되기 전날, 운명처럼 '삐라' 한 장을 만나게 되었다.
'임시정부로 오라'
가슴이 떨렸다. 늦은 밤 뜻을 같이 한 동료들과 함께 우물가에서 만나 도망을 쳤다. 달리고 달렸다.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 대나무잎이 서걱거릴 때마다 일본군의 각반 소리처럼 들렸다. 금방이라도 일본군이 달려올 것같았다.
겨우 도망쳤나 싶었는데 중국군에 붙잡혔다. 백번을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중국군은 일본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를 '스파이'로 몰았다. 生(생)과 死(사)라고 씌여진 종이, 차라지 죽여라라는 마음으로 死(사)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러자 스파이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경(충칭)으로 간 할아버지와 동료들, 김구 선생이 손을 잡아 반겼다. 광복군 경위대가 되어 김구 선생 공관을 지켰다.
광복절, 삼일절만 되면 정갈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서는 오상근 옹, 어디가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행사'라고 말하는 그의 말끝에 자부심이 담뿍 묻어있다. 99세가 되도록 그를 부르는 곳이면 그 어디를 마다하지 않고 요샛말로 '인싸'로 활동적으로 살아오셨다.
오상근 옹이 지키려 했던 나라와 자손들의 나라는 같은 나라일까? 하지만 가장으로 할아버지는 다른 의미에서 '나라를 구하신 분'이시다.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평생 숟가락 한번 스스로 가져다 드신 적이없는 '가부장'적인 분이셨다.
슬하에 1남3녀, 일편단심 나라를 구하고, 그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셨던 것을 자부심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달리, 자손들의 삶과 생각은 제각각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시대를 살아온 4자녀들, 하지만 그들조차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찾잔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3녀 오미자 씨와 4녀 오미정 씨, 하지만 서로의 입장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김구를 모셨던 광복군 출신이라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인정을 못받으셨던 아버지를 봤던 오미자 씨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다. 김구 선생 입장에서도 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입장이 확고한 4녀 미정 씨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미정씨에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건국 대통령이다. 더구나 그가 기독교를 믿었다는 게 더욱 믿음직스럽다.
이렇게 같은 형제들 사이에서도 갈리는 의견은 세대를 달리하는 더욱 첨예해진다. 외삼촌 장환 씨는 싸움이 날 것같아 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얘기를 나누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 말을 안하면, 나도 몰라 그러면 존경받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대해 3대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확고하다. 세상이 계속변한는데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 세대와 자신들의 의견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에게 부모 세대의 의견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설사 부모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더라도 언젠가 부터 알아서 '필터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서로를 '방관'하게 되었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과연 외할아버지가 애써 지키려 했던 나라와 자손들의 나라는 같은 나라일까?
첫 딸 군자 씨의 둘째 아들 재억 씨는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일본에 건너간 재익 씨는 그곳에서 직장을 구하고 결혼도 하여 정착했다. 처음 일본에 갈 당시,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리는 게 힘들었던 재익 씨, 그런 재익 씨에게 할아버지는 흔쾌히 편도행 티켓을 끊어주셨다. 그리고 비록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그렇지만 발전한 나라니 배우고 오라며 재익씨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다.
다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같은 형제 자매 사이에도, 세대간에 이렇게 '콩가루'처럼 의견이 나뉘는 가족들,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시절처럼 다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재익 씨에게 엄정화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현재 일본에서 살고있는 재익 씨는 종종 스스로 그런 '망상'을 해보기도 했다고 웃음짓는다. 만약 전쟁이 나면 일단 '이혼'을 하겠다는 재익 씨, 가족들이 아버지가 한국인이라 손가락질을 받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한국인인 자신은 한국으로 와서 싸우겠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4녀 미정씨는 당연히 독립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고, 가족도 있는 것이라는 게 그녀의 소신이다.
반면 미자 씨의 목소리는 낮지만 미자 씨만의 소신이 확고하다. 미정 씨가 보기에 나 살기도 바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는 미자 씨, 그녀에게 애국의 시대는 변했다. 지금의 애국은 아버지가 했던 애국이 아니라, 나한테 주어진 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녀가 키우는 손주들이 어떤 재목이 될 지 모르니, 잘 키워주는거. 그게 미자 씨의 애국이다.
5년이란 시간동안 열정이 희미해져버려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고 자조하는 엄정화 감독이지만, 그녀의 카메라는 지난 5년간 오장근 옹을 담아왔다. 오장근 옹을 지켜본 카메라에는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난 오장근 옹의 동지 유재창 옹의 생전 모습도 담긴다.
또한 21살에 일본군이 되어 전장에 징집된 청년이 광복군이 되었던 역경의 시간과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뿌리를 내려 일군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다. 조국독립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걸었던 청년은 99세가 되었고, 그 자손들은 아롱이 다롱이 서로 다른 삶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일가를 이루었다. 이제는 서로 의견조차 맞지 않지만 엄감독은 그렇게 각자 자유롭게 살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할아버지가 목숨걸어 지키고 꿈꾸셨던 나라가 아닐까라며 긍정한다.
다큐의 엔딩, 엄감독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우리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세요? 어떤 할아버지면 어떠냐고 하시지만, 그래도
3월 1일과 2일 양 일에 걸쳐 ebs다큐 프라임은 3.1 특집으로 <후손> 2부작을 방영하였다. 그 중 1회, <그날 이후>는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 9명이 전하는 '독립 운동'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9명의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나이도, 사회적 위치도, 경험도 다른 이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후손들이 전하는 3.1 운동 송대관, 우리에게는 '쨍하고 해뜰 날'이라는 대중 가요로 익숙한 가수이지만 전라북도 정읍에서 삼일절 전야제에 초대를 받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장터에서 독립선ㅇ너서 수천만 장을 나눠주다 일본군에 잡혔다.
3.1운동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1678만 명, 그 중 200만의 사람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 쓴 백암 박은식 선생의 기록이다. 잊혀질 뻔한 기록, 그 동포들이 흘린 피의 역사를 선생은 기록했다. 박은식 선생의 그 역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건 85세를 맞이한 광복회장을 역임한 손자 박유철이다.
200만의 사람들이 나선 만세 운동을 보고 암중모색하던 김구 선생이 '만주행'을 택하셨다. 증손자 김용만이 전하는 말이다. 1919년 10월 상해 임시 정부에 김구 선생이 합류하고 11월 의열단이 결성되었다.
무혈 운동이었던 3.1 운동은 일본군의 총칼에 짓밟혔다. 운동의 과정은 뜻있는 선각자들에게 '다른 방향'을 모색하도록 했다. 동포들이 무참히 파리목숨처럼 희생되는 과정을 보며 젊은 지식인들은 분노했고 '유혈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열단', 김원봉은 2기 단장이었고, 그 이야기를 외조카 김태영이 전한다. 의열단은 유혈 투쟁의 대상을 일본 고위급과 동양 척식주식회사, 그리고 친일파로 정했다. 그들을 암살하여 세상에 자신들의 뜻을 알리고자 하였다.
젊은 지식인들만이 아니었다. 백안 박은식 선생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노인 연맹단'을 조직했을 당시가 이미 61세였다. 46세에서 70세 이하 '노인'들이 결집한 단체, 그 중 한 명인 강우규 지사가 1919년 9월 사이토 총독이 탄 마차에 폭발물을 던졌다.
한편 유림의 대표였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이야기는 손녀 김주 씨의 육성으로 전해진다. 김창숙 선생은 3.1운동 당시 33인의 대표에 참여할 뻔 했지만 위중한 어머님의 병환으로 인해 때를 놓쳤다. 이를 안타까워 하던 김창숙 선생은 137명 유림의 뜻을 모아 파리 평화회의에 탄원서를 보내고자 하였다.
' 우리 한국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3천리 강토와 2천만 인구로써 4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이다'로 시작된 탄원서는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하며 그 총칼에 맞서 맨주먹으로 싸울 것이다'라는 결의를 담았다. 이 탄원서를 무사히 전하기 위해 노끈을 만들어 짚신을 삼었던 선생은 물에 젖을까 짚신을 머리에 올리고 나루를 건넜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김주 여사는 전한다.
파리 평화에서 우리 독립의 의지를 천명할 의지를 이루지 못한 선생은 독립 자금을 모으는데 앞장 섰다. 당시 부자들에게 찾아가 총을 대고 독립 자금을 당당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의 추천을 받은 나석주 열사는 김창숙 선생을 만나 국내에 잠입했다. 식산 은행에 폭탄을 투척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이미 거기서 실패를 예감한 나석주 열사는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동양 척식회사로 가서 문 앞의 일본 경부를 죽이고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리고 6연발의 총으로 일본군들을 쏘고 스스로 자결했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며 나석주 의사가 하신 단 한 마디의 말씀은 '나는 나다', 이를 이제는 75이 된 그의 유일한 외손자 김창수 옹이 전한다.
후손들의 고단한 삶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들을 던졌던 선현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선택이었기에 '제가(齊家) 전혀 할 수 없었다. 돌보지 않은 '제가'의 무게는 고스란히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되었다.
가장인 어른들이 계시지 않은 독립운동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에 시달렸다. 송영근 씨 손자인 송대관씨는 굶고 살았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자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독립후손들의 삶이 다 비슷하다는 걸 알게되었다고 한다. 김원봉 선생의 손자는 보육원에 보내질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어린 그의 꿈은 배고프지 않는 나라로 가는 것, 20살 때 미국 행을 선택했다.
가난만큼 자손들을 힘들게 했던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김구 선생의 차남 김신 씨는 아버지가 보고싶어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우표를 뜯어 그 우표에 묻었을 아버지의 침 냄새를 맡으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증손자 김용만 씨는 목이 메어 전한다.
가난하고 그리움에 사무쳤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후손들은 자신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후손임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태인에서 열리는 3.1운동 전야제에 초대를 받는 송대관씨는 세상이 자기로 하여금 대단한 집안의 후손임을 일깨워주었다고 전한다.
김용만 씨는 집안에서 말썽을 부리면 벌이 들어가 백범 일지를 읽는 것이었다고 추억한다. 어린 맘에 백범 일지가 두꺼워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 두꺼운 백범 일지의 내용이 평생의 자랑이자, 평생의 무게라고 말한다. 후손들은 잊지 않으려 애쓰고 선현들에 대한 말할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직계의 자손들은 이제 모두 그들의 '선친'보다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 김창숙 선생의 딸 김주 여사는 자신의 기억이 흐트러지기 전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자 매일 기록을 한다.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 이관술 선생은 동덕 여고 선생님으로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영향을 받아 꺼져가던 항일 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로 문민정부가 될 때까지는 그 이름조차 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우리 독립운동사의 그늘이다.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 7조 1항
아이를 낳았을 때 늦게 출생 신고를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출생한 아이가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 출생 신고,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홍길동이 부모님을 부모님이라 부를 수 없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너무도 절벽 앞에 선듯 막막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내 아이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도와주기는 커녕 제대로 밥벌이 하며 살아가기 조차 힘들기도 하다. 어느 나라일이냐고?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와 자립 사이의 딜레마 미혼모, 이 단어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혹 당신의 선입견은 이 단어를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 살 먹은 지윤이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고 엄마에게 묻는다. 미혼모가 나쁜 뜻이냐고. 그런 지윤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멋있는 거라고. 왜냐하면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가 지윤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 키우는 일, 바로 그 멋있는 일을 한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지만 아직도 받아쓰기가 서툰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치는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는 27살이다. 딸 지윤이에게 멋진 일이라고 했던 일, 지윤이를 낳기로 결심한 10년전 그 날 이후, 하린 씨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대출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미혼모 지원 단체와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냉장고, 세탁기, 옷장까지 하린 씨네 집의 모든 게 지원 물품이다. 하린이와 엄마가 먹는 것도 대부분 지원된 것이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딜레마'이다. 중위 소득( 총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52%를 기준으로 2020년 1,555,830원이다. 최저 임금 기준으로 봤을 때 한 달에 1,822,480원인 상황에서 최저 임금 수준에 조차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현실이 이와 같다 보니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외려 지원이 깎인다. 지윤이 엄마만이 아니다. 많은 한 부모 가정들이 복지와 자립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린 씨는 현재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을 낳은 일이 멋진 일이 되기 위해, 아이가 보기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린 씨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만약 하린 씨가 취업을 하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 것이다. 당장 지윤이의 학업을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의 도움도 끊어진다. 지윤이를 키우며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기본권만이라도 인정해주세요~ 그래도 지윤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받은 하린 씨는 괜찮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엄마들과 달리,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의 경우 출생한 아이의 주민번호를 '쟁취'하는 과정마저 쉽지 않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만 해도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법'은 여전히 미혼부의 아이를 혼외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인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8살 사랑이를 키우는 김지환 씨의 경우 사랑이의 주민번호를 받기 위해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들쳐업고 1인 시위를 하며 일명 '사랑이 법'을 쟁취해낸 김지환 씨, 하지만 그건 소송 과정을 간소화하는 임시방편일 뿐 여전히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결과 2018년 지자체에서 파악한 미신고 아동 건수가 114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1000 여 명이상, 법의 그늘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환 씨에게는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20대 남성이 아이와 함께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20대 남성이 지병으로 죽고, 그 옆에 있던 몇 달 안된 아기는 굶어 죽은 상황이었다. 아기는 당연히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미연고자도 처리 되었다. 아기가 출생신고라도 되었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이 지환씨로 하여금 미혼부들의 출생 신고 소송을 돕는데 나서도록 했다.
지환 씨의 도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정적 절차를 따라하다 일처리가 제대로 안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혼자서는 아직도 복잡한 소송 절차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지환 씨는 사랑이 법으로는 적용이 안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 한다. 출생 사실을 국가 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라 국가가 권리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출생 통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의 아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지멀쩡한 놈이 애 하나 못키우겠냐며 자신의 아이를 거두려 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주민번호를 받지 못한 아이를 키우려니 필수 예방 접종조차도 단 돈을 내고 해야 했다. 갓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게 쉽지않았다. 전남 목포에서 사는 최경훈 씨 두 아이를 키우며 본의 아니게 결근을 하다 보니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 두게 되었다.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다니겠느냐며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기초 수급을 받고 있지만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기고 여러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건 경훈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혼모건, 미혼부건,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그 누구도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했던 최경훈 씨는 자신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녹록치 않다.
미혼모 가족 협회에서 근무하는 정수진 씨는 근무 조건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부산역 1층에서 함께 모여 식당을 연 미혼모들 역시 '이심전심'의 조건 덕분에 눈치를 덜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조차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자립이 어렵고, 막상 자립을 하면 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또 힘든 상황은 많은 미혼모와 미혼부들에게 '저소득층'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미혼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정수진 씨가 안타까운 건 도와주고 싶어도 연락조차 쉽지 않은 미혼모들의 현실이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여가부, 보건 복지부 등 각 정부 부처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운 상태다.
다큐에 나온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 '정상 가족'이 무엇이냐고. 여전히 3~4인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을 '정상'이라고 보는 거냐고. 세상이 변했는데, 그리고 말한다. 엄마 혼자 키워도, 아빠 혼자 키워도 자신들도 '가족'이라고. 자신들이 정상의 가족이고, 보통의 가족이며, 일반적인 가족이라고.
상대 마피아 두목의 포도밭을 라이터 불 한번으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를 겁박하는 아버지같은 마피아 두목의 아들에게는 다음 번에는 네가 탔을 때라며 자동차를 폭발시킨다. 자신의 방에 침입한 킬러들은 단 한 방의 자비도 없이 모두 몰살시킨다. 자신이 모시던 마피아 수장의 죽음 이후 자신을 견제하던 무리들을 제압한 이탈리아 마피아의 콘실리에리 빈센조는 유유히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자신의 '전략'에 따라 금가 프라자 지하에 숨겨둔 금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냉철한 전략가이자 킬러들을 단숨에 제압했던 콘실리에리 빈센조가 김포공항에서 탄 택시에서 모든 걸 털린다. 겨우 버스비만 가지고 도착한 금가 프라자, 냉혹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지만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상황에 빈센조의 '평정심'에 자꾸만 틈이 벌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금을 묻은 당사자가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따논 당상'과도 같은 금 15kg 굴착이 여의치 않다. 게다가 금가 프라자는 바벨 그룹에 의해 철거 위기에 놓인다.
tvn의 주말 드라마 <빈센조>는 <김과장>, <열혈 사제>의 히트작을 낸 박재범 작가의 차기작이다.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 지방 폭력배들의 회계 장부처리를 해주던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남궁 민분), 전직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의 <열혈사제>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 박재범 작가 전작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전작의 공통점이 <빈센조>의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는 그들은 저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바 윤리적 도덕적 잣대로 보았을 때 함량 미달의 인물들이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들의 회계 담당이었다가 대기업 TQ의 경리과장이 되었지만 한탕쳐서 한국을 떠날 꿈에 부푼 김성룡은 금가 프라자에 묻힌 금을 파내 몰타로 떠날 꿈을 꾸는 빈센조와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전직 국정원 출신이지만 작전 중에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해일 신부, 그러나 그의 행동은 '회개'라기보다는 분노조절 장애에 가깝다. <빈센조>의 빈센조 역시 마피아 변호사라지만 '킬러'와 다르지 않은 '과거'를 가진 인물로 그의 꿈은 늘 피범벅이다.
그 윤리적 도덕적으로 함량 미달인 주인공들이 그들보다 더 부도덕한 상대를 마주치게 되며 '각성'에 이르게 된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 푼돈이나 주물럭거리던 김성룡은 들어간 TQ그룹, 그룹 입사 초반에 전 경리 과장 부인을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선의'의 인물로 조명받고 TQ그룹 내 '비리'를 접하면서 정의의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신부라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할 수 없었던 김해일 신부 역시 그의 은인과도 같은 가브리엘 신부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매도하며 성당을 집어삼키려는 지역 경찰과 구청장, 검사에 이르는 '카르텔'의 존재에 저항하며 '의인'으로 승화된다.
빈센조 역시 애초 그의 목적은 금가 프라자에 숨겨진 금 15KG를 챙기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금가 프라자를 불법적으로 철거하려는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들과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지푸라기' 법률 사무소를 중심으로 철거 반대 위원회의 중심이 된 빈센조는 바벨 그룹에 대해 조사해 가며 '양아치'같은 재벌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김과장>, <열혈 사제>, 그리고 <빈센조>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은 '악'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들이 보다 구조적이고 부도덕한 악을 통해 각성하고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김과장>의 TQ그룹의 대를 이은 부도덕한 승계 과정과 분식 회계, 열혈 사제의 경찰, 검찰, 그리고 구청장으로 이어진 악의 카르텔, 그리고 이제 <빈센조>의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으로서 법무 법인 우상의 의약, 건축 산업을 둘러싼 비리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사회적 비리의 '요소'들이다. 동시에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구조적 '비리'들이지만 여전히 '해소'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사회정치 면을 장식하는 구조적인 모순들이다.
그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악'이라 스스로 자처하던 주인공들을 '각성'시킨다. 이렇게 '악'이었던, 반영웅적인 인물의 각성은 '범인'으로서 시청자들이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들의 각성과 그에 따른 '실천'을 통해 시청자들은 보다 깊은 감정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김과장>과 <열혈 사제>가 그 해의 가장 통쾌한 드라마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범부', 혹은 그 이하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들의 '능력치'는 여전히 매우 '영웅적'이다. 티똘이, 티큐또라이라 칭해지던 <김과장>의 김성룡은 지방 소도시 조폭의 딱갈이였지만 거대 그룹 TQ의 분식 회계 를 주무를만큼 비상한 두뇌와 근성을 지닌 인물이다.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능력이야 동네 양아치들 따위가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금가프라자에 나타난 철거 하청업체 앤트컴퍼니 대표를 줄 하나로 대번에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버리고, 철거 위기의 금가 프라자에서 와인 파티를 여는 빈센조는 김성룡과 김해일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치트키'처럼 보여진다.
물론 악인이지만 밉지 않은 주인공, 거기에 알고보면 능력자인 양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건 배우들이다. 자타공인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만든 <김과장>의 남궁민, 김남길 표 연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던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 모두 배우들이 가진 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드라마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2회를 마쳤지만 <빈센조>의 개연성은 '송중기'이다. 그의 외모의 장점을 클로즈업을 통해 한없이 발휘시키고, 거기에 더해 남궁민, 김남길과 또 다른 송중기만의 냉소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 빈센조를 설득시킨다.
'갑남을녀', 모두가 주인공 이렇게 알고 보면 능력자들이 그들이 가진 영웅적 면모를 뽐내며 드라마는 영웅물로서의 쾌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박재범 표 드라마의 매력은 그저 주인공의 양면적인 캐릭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사는 세상의 '갑남을녀'가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듯 <김과장>도, <열혈사제>도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완성시키는 방점은 그의 조력자인 '보통 사람들'이다
<김과장>이라는 드라마는 극 초반 남궁민의 원맨쇼와 같은 연기를 넘어 중후반에 가며 매회 등장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가며 박영규, 정석용 등 중견 연기자는 물론 이준호, 정혜성, 임화영, 김선호, 동하 등의 배우들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열혈 사제>는 <김과장>과 또 다르게 과연 저 등장인물이 과연 알고 보면 어떤 능력자일까가 궁금해지며 소머즈같은 능력을 가진 편의점 알바에,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의 무술 능력자 중국집 배달원, 아역 배우 출신의 신부님, 타짜 출신의 수녀님 등 출연 배우들의 이중적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듯 <빈센조> 역시 등장 인물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딸과 인연을 끊겠다며 내용 증명을 보내는가 하면, 금가 프라자의 철거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홍유찬 변호사의 유재명 배우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열혈 사제>에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드러낸 박경선 검사가 연상되는 법무법인 우상의 변호사이자, 지푸라기 홍유찬 변호사의 딸인 홍차영 변호사 캐릭터는 그 또라이 같은 면면으로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겨우 2회만에 법무법인 우상의 책임 변호사 자리를 꿰어찬 최명희 역의 김여진 배우가 보여줄 '악역'의 변주도 기대된다. 거기게 마치 <열혈 사제>의 동네 사람들처럼 금가프라자 주민들의 면면 역시 퍼즐처럼 그 역할이 궁금해진다.
2003년 <옥탑방 고양이>, <클래식> 드라마와 영화, 매체는 다르지만 김래원과 조승우, 두 배우는 '청춘 스타'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옥탑방 고양이> 이래로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김래원은 드라마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눈사람>, 영화 <어린 신부>, <ing> 등을 통해 사랑의 '전령'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김래원은 '사랑의 메신저'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았다. 지금도 2000년대 젊은이들의 고전으로 통하는 <해바라기>를 통해 장르물에 첫 발을 내딛은 김래원은 이후 <강남 1970>, <프리즌>, <롱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을 통해 자신의 연기 폭을 넓혀갔다. 그런 가운데 김래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4년작 <펀치>일 것이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정의를 지키기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주인공을 통해 김래원은 '박정환'으로 거듭나며 청춘 스타를 넘어선 '연기파' 배우의 네이밍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조승우에게 '연기파'라는 네이밍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호칭'이었다. <춘향전>으로 시작된 그의 연기 인생은 <클래식>의 준하에 머무르지 않고 <말아톤>의 초원이, <타짜>의 고니, <내부자들>의 우장훈, <마의>의 백광현, <비밀의 숲>의 황시목까지 다작은 아니었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조승우라는 이름보다 캐릭터로 그를 기억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 속 그의 연기를 통해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시 시작은 '청춘'이었지만, 자폐 청년과 놀음에 홀릭된 청춘을 지나며 조승우가 길어낸 청춘의 갈짓자는 그가 지나온 시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가 선택한 몇 되지 않는 작품이 그대로 당대의 최고 수작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게 청춘으로 시작하여 장르물을 통해 연기파로 자리매김한 두 배우, 김래원과 조승우가 어느덧 40대의 고개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니지만 우리 시대 40대를 더는 '중년'이라는 고정 관념으로 보기 힘들어지게 되듯이 마흔 줄을 넘어선 두 배우의 행보 역시 '중후함'이 무색하게 신선하다. 한편에서 여전히 종횡무진하는 두 40대의 중견 배우들의 활약은 그들의 뒤를 잇는 남자 배우 세대의 부재를 말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루카; 더 비기닝>, <시지프스; the myth>를 통해 김래원, 조승우 두 사람은 그간 해보지 않았던 판타지 장르물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조승우 버전 토니 스타크? <시지프스; the myth> 1회, 조승우가 분한 한태술이 탄 비행기가 괴물체와 충돌하며 추락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퀸텀앤타임의 창업자이자 대표로 외국 경영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한태술은 조종칸으로 가서 거의 '맥가이버' 급 기지를 발휘하여 단 몇 분 만에 비행기를 고쳐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상황을 돌파한 그의 '헌신'에 대해 그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그저 비행기를 고치고 싶었다는 공학도로서의 순수한 소망을 앞세운다.
미래와 현재, 연결된 두 세계가 봉착한 '파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신화 속 숙명과도 같은 시지프스의 헌신을 내세운 판타지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조승우가 돌아왔다. 언뜻 보면 쓰레기장 같지만 그 무엇도 한태술의 의지가 아닌 것이 없는 토니 스타크의 저택이 부럽지 않은 요쇄와도 같은 저택에 사는 그러나 이사회에 얼굴 한번 비추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같은 제 멋대로인 괴짜 과학자이자 사업가가 이번에 그가 분한 주인공이다.
한태술에게서 <비밀의 숲> 황시목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후드티나 남방을 입고 말끝마다 '뽕선아'를 외치며 너스레를 떠는 한태술은 수다쟁이 토니에 더 가깝다. 하지만, 10년 전 죽은 형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수시로 약병을 여는 그의 이상적 행동에서는 늘 '정상'이라는 바로 미터에서 조금은 비껴난 캐릭터의 연주에 능한 조승우의 장기가 발휘된다.
2회가 끝나서야 기차역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 미래에서 온 인물들이 '밀입국자'로 취급되어 단속대상이 되고, 그와 접촉한 인물들이 '처리'되는 상황은 모호하다. <주군의 태양>, <푸른 바다의 전설>의 진혁 피디가 야심차게 시도한 디스토피아 판타지 장르물의 서장에서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가는 건 여전히 조승우라는 배우의 연기이다.
슈퍼맨이 된 김래원? <해바라기> 이래 김래원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처절하게 얻어맞는 '연민'의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 <펀치> 속 박정환 역시 개천에서 난 용, 검사가 되었지만 그의 야망은 하늘이 그에게 준 '생명'의 시간과 세상이 그에게 허락하지 않은 권력의 한계 속에서 역시나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로 인해 김래원은 빛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짓밟히지 않는다. 다종의 강력한 dna를 가진 생명체들의 집합체로서 '괴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dna를 백 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장렬히 '산화'할 운명을 가졌었다. 연구소에서 사라졌어야 할 그는 세상 밖으로 던져졌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억과 '전기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맞바꿨다.
그를 다시 제물로 삼고자 하는 L.U.C.A프로젝트를 준비한 연구소와 그 배후의 세력, 그리고 그 세력에 의해 다시 연구소로 돌아간 김래원이 분한 지오는 그들의 '고문'과도 같은 실험을 통해 외려 진짜 강한 '슈퍼맨'으로 거듭난다.
<손 THE GUEST> 김홍선 감독의 차기작으로 기대를 모은 <루카; 더 비기닝>은 윤리를 비껴간 과학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도달하려는 무리들에 의해 탄생한 이종의 괴력를 지닌 생명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 <낮과 밤>과 변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루카; 더 비기닝>의 중심에는 여전히 짓밟히고 당해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연민'의 아이콘 김래원이 버티고 있다. 아이를 가진 이혼남이었던 박정환이 세월을 거슬러 웨이브진 장발에 스니커즈를 신고 건물 사이를 뛰어오르는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럼에도여전히 낮고 따스한 목소리로, 하지만 강단있게 괴물이라는 구름이의 말에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오의 진심어린 눈빛과 대사는 드라마의 설득력이 된다.
우울증 증상으로 고생할 때 찾아본 책 중에 알렉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이 있다. 이 책 은 뇌의 메카니즘에 근거하여 우울증을 나아지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매일 5가지씩 감사를 하는 것이다. 얼토당토치않게 감사라니! 그런데 이 책은 감사야 말로 우리의 뇌를 우울증으로 부터 구원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방어적이고 우울감에 쉽게 빠지는 뇌의 회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우울할 땐 뇌과학>의 주장이 한 편의 다큐로 이어진다. 바로 2월 12일 방영된 <다큐 온 - 감사가 뇌를 바꾼다>이다.
음력으로 1월 1일, 진짜 황소해가 시작되었다. 다큐는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길로 '감사'를 전한다. 가장 새해 첫 날에 어울리는 덕담이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었던 시절, 웃음을 되찾기 위해 '감사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참여한 이향재 씨의 경우,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인간 관계에서 섭섭한 점이 많았다는 향재씨, 하지만 섭섭함 대신 감사할 일을 찾다보니 잘해준 게 떠오르고 그렇게 마음이 건강해져갔다고 한다. 감사 운동을 하고 보니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안좋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감사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박이철 씨이다. 박이철 씨는 말한다. 그간 우리에게 '감사'란 누군가의 자극에 의한 '반응'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지만 생각만 바꾼다면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 질 거라고.
과연 감사가 사람을 변화시킬까? 과연 그럴까? 실험을 해보았다. 김해 율산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감사 일기를 써봤다. 처음에는 상투적이고 피상적으로 감사를 하던 아이들이 점점 일상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번에는 5학년을 대상으로 감사 실험을 했다. 자원한 16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감사 운동'을 했고, 교사가 이를 기록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는데 왜 감사하지?" "바쁘셔서 못차려주실 수도 있는데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감사 운동'을 시작할 때 학생은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불과 3개월의 시간이었지만 학생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혼낼 때 잘되라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하지 못할 것들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는 매일 1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엄마, 오늘 감사한 일이 있으셨어요?"와 같이 가족들에게 '감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학생과 가족들은 자연스레 '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묻고 답하는 걸 들어야 하니 자연스레 남의 얘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배려와 공감이 증가했다.
이런 학생들의 실험에 대해 교육학자들은 한결같이 기대 이상이었다며 놀라움을 표한다. 피상적이던 감사는 매일 되풀이 되며 현실에서 '길어져야'하는 것이 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임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고, 각성과 깨달음의 기회를 가지게 된 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고,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상의 소중함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과정이 되었다.
감사는 뇌도 변화시킨다. 그 결과 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15가지 영역의 뇌파동 검사에서 부정 심리나 뇌피로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뇌피로도가 낮아지면 여유가 생기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자기 조절과 심신균형 감각이 증가했다.
지난 2017년 과학 전문지에 게재된 276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단 5분간의 감사 명상이 뇌의 긍정 보상 심리 회로 연결성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뇌의 변연계 핵심 부위인 전대상피질이 자신과 관련된 것에 반응하는데, 이 부위는 보통 원망 등 부정적 정보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감사 등 긍정적 정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 부위에 부정적 정보 대신 긍정적인 메시지로 채워지게 된다고 한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의 로버트 마우어 교수는 감사를 하며 뇌에서 도파민이 발생하는데 이 도파민은 우리 뇌를 즐거움 센터로 만들며, 이는 뇌의 학습 기능을 활성화시켜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감사, 삶의 변화 호주의 감사 운동가 레일리 바톨로뮤는 지난 2008년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감사'를 알게 되었다. 시각적인 사람이었던 레일리는 자신의 감사를 '사진'으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레일리의 영향을 받은 로리 포트카는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그림에 담아 전달했다. 그들에 따르면 '감사'는 삶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과도 같다고 한다. 좋은 것들을 더 얻어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대신, 오늘의 삶에서 더 좋은 걸 발견해 내는 게 바로 '감사'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부품업체, 이 업체는 지난 2013년부터 '감사 운동'을 해오고 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공정이 보다 복잡해지며 불량률이 늘어나자 그것이 그대로 직원들의 감정으로 연결되었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어나게된 직원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강연을 들은 ceo는 이때부터 '감사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5가지 감사,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게 감사하다', 물론 처음에 귀찬은 일이었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일은 give&take라고 생각했었는데, 5가지 감사를 찾는데 너무 힘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2년 여, 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소소하지만 서로에게 말로 나누는 감사로 사람들의 관계가 달라졌다. '콩나물 시루'같다는 감사. 콩나물처럼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날 훌쩍 삶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적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직원들이 동료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임원들이 직원들이 제일 하기 싫은 청소를 솔선수범해서 한다.
강원 양양의 8군단을 전력 증강의 최우선 전략으로 '감사'를 든다. 4년 전부터 감사 나눔 편지를 쓰는 2만5천 부대원들, 1000 감사 노트를 쓰며 변화해 갔다. 부모님께 100 감사 편지도 보낸다. '안써보면 모른다니까요'라는 감사 편지, 부모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사랑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100 가지 감사의 편지를 쓰다보니 그 희생과 사랑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가 주장한다. 감사를 드러내어 말해야 한다고. 다큐를 연 건 걸그룹 포미닛의 지현씨,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전통 과자를 가지고 동네 코로나 검사소를 찾는다. 이 '의례적인듯한 행동', 다큐가 의도하는 바는 바로 '감사의 표현'이다. 마음 속 감사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사를 드러내어 표현 할 때 삶도 변화한 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작은 것으로부터, 지금부터의 감사, 우리의 삶은 대부분 이루지 못할 미래의 '갈망'으로 채워진다. 감사는 바로 그런 불투명한 미래의 갈망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현재에 발을 딛고 그 현재에서 행복을 길어올리도록 만든다. 삶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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