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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문영남 작가 드라마는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다. 3월 14일 첫 선을 보인 <오케이 광자매> 역시 다르지 않다. 1회, 드라마는 부모님의 황혼 이혼으로 포문을 연다.
이혼을 거부하는 아버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는 65세의 아버지 이철수 씨에게 이혼 서류를 보낸다. 어머니의 이혼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딸들에 따르면 더는 참고 살 수 없다며 아버지와 이혼하고자 한다. 그런데 '졸혼'마저 트렌드가 되는 시절에 아버지 이철수 씨는 '아닌 건 아닌거여'라며 완고하게 이혼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이혼 법정에 서는 그 날까지 이혼을 어떻게든지 피하려고 하는 아버지와,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서 얼르고 달래는 딸들의 해프닝을 1, 2회에 걸쳐 방영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 새롭지 않은 용어가 된 '황혼 이혼', 대부분 황혼 이혼의 사유가 그렇하듯 <오케이 광자매> 역시 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참고 살 수 없다며 어머니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문영남 작가는 이러한 최근 황혼 이혼의 조류를 비튼다. 딸들에 의해 드러난 이혼 사유는 분명 가부장적인 아버지이고, 언뜻 봐도 이철수 씨는 그런 요건에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 겨우 2회차에 불과한 드라마 진행 과정에서 '가부장적'이라는 이철수 씨네 가정사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소환될 수 밖에 없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처럼 이철수 씨네 가정사가 한 겹 한 겹 드러나면서 시청자의 관점 또한 혼돈을 겪게 된다.
극중 이철수 씨는 산업 근대화 시절을 살아낸 '가장'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나 대학을 다니며 결혼했던 철수 씨, 하지만 집안과의 '갈등'으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당장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뚫어'를 외치는 처지에 이르렀다. 마치 문영남 작가의 전작 <왜 그래 풍상씨>의 주인공이 나이가 든 것처럼, 노년의 풍상씨같은 철수 씨는 평생 '가족'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희생'해왔다.
그런 그였기에 바람을 피고, 자신이 허리 수술을 받아도 병원에도 와보지 않는, 평생 싸우기만 했던 아내여도 자신이 '봉합'하려 애써왔던 가정을 '해체'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
상처 투성이 가족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버지, 하지만 딸들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버지에게 이혼을 종용하지만 들여다 보면 세 딸의 속내 역시 다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혼을 하라고 한다.
무엇보다 딸들은 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왔던 고생담을 늘어놓으면 서로 눈빛으로 '왜 저래~'라며 비아냥거린다. 잠 한번 실컷자고 싶어서 과용한 수면제로 응급실에 실려와도 딸들은 '쇼'라며 자리를 뜬다.
딸들의 반응은 이른바 '개념'없어 보이지만 평생 자기 자신 고생한 것에만 빠져 살아가는 부모님을 지켜봐왔던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꽤나 공감할 지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지겨웠던 딸들, 하지만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아버지의 고생담 대신, 어머니와 '감정적'으로 교류했던 딸들에게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본 제 멋대로이고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내도 들여다 보면 각자 다르다. 종가집 젯상을 들어엎고 뛰쳐나왔지만 종손으로 '아들'로 대를 잇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첫 딸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다. 반면 둘째 딸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아 자신의 온갖 감정을 '배설'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은 성인이었고, '부부'로 살아왔지만, 전혀 어른답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세상사의 흐름에 따라 '부부'로 연을 맺었고 아이를 낳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살아왔지만 자신들의 삶을 60세가 넘도록 '소화'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들의 '소화'되지 않은 삶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얹혀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지만 그의 희생은 가족들에게 경제적 보상으로 충분치 않았다. 가장의 조건이 경제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부족한 경제적 보상을 무마할 만큼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딸들이라지만 광남이, 광식이, 광태에서 보여지듯이 부재한 아들의 그림자가 얹혀있다. 어머니의 바램이 고스란히 투영된 첫 째 광남이는 번듯한 변호사와 결혼해 사는 듯 보이지만 그 가정엔 온기가 없다. 둘째는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무리한 결혼을 서두른다. 셋째는 자유를 떠나 '방임'에 가깝다.
이철수 씨네 가족은 우리 현대사 가족이 가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산업화 과정에서 '핵가족'으로 분리되어진 가족들은 '아들 선호 사상'처럼 한 편에서 여전히 대가족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핵가족이 가지는 관계의 편향과 감정적 해소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자 안고 살아간다. 부부는 물론 부모자식도 소통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딸들에게 넘겼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 매번 '막장'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시청률 면에서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오늘날 가족이 가지는 민감한 상처를 절묘하게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막장'은 말 그대로 '막장'인 사건들을 다루지만 그 '막장'이 바로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를 높인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불문율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신화의 이면은 '막장'인 것이다. 그리고 문영남 작가를 비롯한 일군의 '막장', 그리고 고공 시청률의 작가군들은 바로 그 우리가 쉽게 드러내보이지 못하는 가족의 그림자를 '한판 굿과도 같은 시끌벅적한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오케이 광자매>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가족'적 경험을 통해 등장인물 각자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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