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에 이어 최근 <방법 재차의>, 그리고 드라마 <방법>, <지옥>, <돼지의 왕>에 이르기까지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집필하거나, 연출한 작품들이다. 이젠 '연상호월드', 혹은 '연니버스'라는 고유명사가 등장할 정도로 초월적 세계관과 그로 인해 혼돈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하나의 고유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4월 29일 티빙을 통해 공개된 <괴이>는 그러한 연상호 감독 고유의 세계관에 기반한 또 하나의 시리즈이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괴이>는 이른바 '연니버스'의 전형성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연상호월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귀불, 봉인이 풀리다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괴이>의 포스터는 말한다. 천보산의 절터에 오래전 묻힌 불상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거기에 '관광 산업'이라는 세속의 욕망이 곁들여 진다. 진양 군수 권종수(박호산 분)는 이를 파내서 사람들이 이 불상을 보러 진양군에 올 '관광산업'의 꺼리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스님들은 이에 반대한다. '귀불', 말이 불상이지 오래전 악귀가 들린 이 불상은 티벳어로 씌여진 가리개로 '봉인'이 되어 묻힌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 '봉인'이 풀리는 순간 세상에 재앙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런 스님들의 반대가 '관광 산업'의 열망을 가라앉힐 수 없다.
예정대로 진행된 출토작업, 귀불의 눈을 가렸던 가리개를 치우자 그 눈을 마주친 인부로 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오래전 자신과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자신을 구타한다고 생각한 순박한 청년이었던 인부는 결국 아버지로 오인하여 술집 주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어깨뼈가 튕겨져 나올 정도로 용을 쓰며 폭주한다.
게다가 귀불이 출토되자 진양군에는 검은비가 내리고 그 비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군청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귀불, 사람들은 저마다의 지옥 속으로 빠져들어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처절한 폭력의 레이스를 벌인다.
그것이 좀비였든, 혹은 지옥의 사자였든, 그리고 귀불이었든 연상호 월드에서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지옥과 같은 상황'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 자신이 '지옥'의 불쏘시개가 된다. 가장 평범한 갑남을녀가 귀불의 젯밥이 되어 서로를 해친다.
차별성인가 한계인가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 혹은 초현실적인 '현실의 지옥도'를 '배양'하는 건 부조리한 인간의 권력이거나, 그 권력에 편승한 인간들이다. 부산행에서 김의성이 분한 '용식'은 귀불을 파내 관광 산업의 재미를 보려는 박호산이 분한 권종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 욕망을 공적인 권위에 의존하여 풀어내고 그로 인해 '초현실적인 파멸'의 방아쇠를 당긴다. 군수라는 자릿값으로 큰소리를 펑펑치다가, 자신의 수하조차 필요에 의해서 기꺼이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비겁한 상사,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한참 어린 청년 앞에서 기꺼이 비굴함을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그래서 비열한 모습이 '권력'이나 '권위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몬다.
<괴이>에서 이전 연상호 월드의 작품들과 차별성을 들자면 보다 강력해진 폭력성이다. 주인공보다 더 도드라진 캐릭터 곽용주(곽동연 분)에 의해 대표되는 무자비한 폭력이다. 이제 막 출소한 용주, 하지만 외려 그의 폭력성은 더욱 증폭되었을 뿐이다. 자신과 갈등을 일으켰던 한도경(남다름 분)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 그의 폭력성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도' 안에서 외려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검은비를 맞은 사람들, 혹은 귀불의 눈을 본 사람들을 앞장서 죽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지지부진했던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한 즐거움인양, 결국 그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음에 이를때까지 폭력의 질주는 그치지 않는다.
곽용주로 대표되는 가학적 폭력에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린다. 그리고 어느새 만인대 만인의 투쟁 상황에서 우월한 수컷인 양 구는 곽용주가 내세운 힘의 논리 앞에 따라간다. 피가 튀기도록 때리고, 찌르고..... 무작정 나타나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지옥> 속 죽음의 사자들처럼,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진양군에 지옥을 선사한 귀불의 등장이 주는 공포를 설득할 것은 보다 잔인한 설정 밖에 없다는 듯이 귀불의 등장 이후, 특히 진양 군청에 모인 사람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는 누가 더 잔인하게 '피의 카니발'을 벌이는가하는 '질주'이다.
가족만이 구원이다? 그렇게 개연성과 상관없는 초현실적인 공포, 그리고 거기에 제물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폭력과 피의 향연, 그런 가운데 역시나 <부산행> 이래로 드라마의 중심은 '가족애'이다. <월간 괴담>의 정기훈(구교환 분)과 이수진(신현빈 분)은 티벳어를 능수능란하게 해석해 낼 수 있는 고고학과 문양 해석의 전문가들이다. 또한 이들 부부는 얼마전 잃은 어린 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짙은 감정적 앙금이 남아있다. <괴이>는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인한 사람들이 벌이는 피의 카니발이라는 한 축에 곁들여, 정기훈 이수진 부부의 트라우마를 귀불에 대한 제압 과정을 통해 해소해 나간다. 거기에 또 한 축은 파출소 소장이자 한도경의 엄마인 한석희(김지영 분)의 모성애이다.
정기훈과 한석희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진양군청을 향한다. 부산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신파'였듯이, 결국은 <지옥>의 감동을 끌어낸 것이 박정민 원진아 부부의 자식을 향한 살신성인이었듯이, <괴이> 역시 정기훈과 한석희 등의 '가족애'를 통해 드라마를 끌어간다.
부부였든 아는 사람이었든 부하 직원이었든 상관없이 귀불로 인해 정신줄을 놓고 칼부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거나, 위험에 내맡기는 상황에서 정기훈과 한석희의 몸을 던진 가족애는 당연히 흑과 백처럼 대비를 만들어 낸다. 고고학자거나, 파출소장이라는 그들의 '직분'은 '가족애' 앞에서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넘치는 사람들의 폭력적 신들림이 밑도 끝도 없는 과한 폭력성으로 인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듯 정기훈과 한석희의 가족애는 상투적이다. 또한 곽용주와 한도경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미묘한 감정선은 뜬금없다. <괴이>는 연니버스 체인점의 메뉴얼을 다 갖추었지만 어쩐지 소스는 과하고, 재료는 설익은 듯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더욱 아쉬운 것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김주령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욱 소모적인 캐릭터로 사라진다. 신현빈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은 이수진은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내내 전전긍긍한다. 문양 해석학자로서의 역할은 '장식적'이다. 파출소장 한석희는 제 아무리 파출소장이라 하더라도 부하 경찰에게 '야야' 거리는 호칭이나 '반말'로 일관하는 태도는 한석희라는 캐릭터의 미덕을 상실케 한다.
5월이다. 부모님도 계시고, 자식들도 있는 연배의 사람들이 5월에는 외식은 꿈도 못꾸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들을 한단다. 어버이날도 있고, 어린이 날도 있는 5월, 그래서일까? <우리들의 블루스> 호식과 인권의 이야기가 쓰리게 다가온다.
호식(최영준 분)과 인권(박지환 분)의 딸 영주(노윤서 분)와 아들 현(배현성 분)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지역 균형 선발로 서울대 의대 갈 날만 바라고 공부에 매진해 왔던 영주는 임신임을 알고나서 자신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이유로 아이를 지우려 했다. 하지만 임신 주수가 이미 6개월을 넘어 중절조차 쉽지 않은 상태,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결국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당하게 아이를 가지고서도 학교를 다니게 해달라고, 지역균형 선발로 대학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던 영주,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서라도 아이 아빠 노릇을 하겠다던 현도 막상 아버지들 앞에서는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들인가.
아버지로 살다; 인권과 호식 한때는 주먹으로 날리던 현의 아버지 인권은 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만다. 말끝마다 아직은 이새끼 저새끼 하지만, 아직은 '내 꺼'라며 현을 애지중지한다. 그의 불만이라면 그저 현이 호식의 딸내미 영주에게 늘 전교 1등을 내주고, 전교부회장인 거다. 그래도 자기보다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내미가 그의 '자랑'이다.
호식이라고 다를까, 은희가 가난해서 버렸다던 호식이, 그런 호식이가 시장에서 얼음을 나른다. 그런 와중에서 생선까지 굽고, 제철 과일까지 챙겨 딸내미 영주의 아침상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구멍난 양말에 늘어진 티쪼가리다. 둘 다 아내가 떠나고, 그저 아들내미, 딸내미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 말끝마다 호식이는 영주가 대학만 가면 저 바다에 배 띄워 낚시나 하며 살겠단다.
그렇게 아이들 대학보낼 날만 바라며 정신없이 달려온 두 사람 앞에, 아이들이 사랑한다며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 심지어 현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고 둘이 살 집만 마련해 달란다. 청천벽력이다. 두 아버지는 자신들답게 반응한다. 인권은 차마 현을 때리지 못하고 집안을 다 때려부순다. 호식은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하염없이 운다.
처음 현이 영주의 이야기를 했을 때 인권은 늘 자기 아들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하던 영주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걸 안심했다. 호식은 영주의 이야기를 듣자 믿을 수 없다며 함께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 했고, 그 다음엔 아이를 지우자고 한다.
영주와 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의 다음날, 일을 하는 인권과 호식, 두 사람에게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동네에서 피붙이처럼 친했던 두 사람, 그래서 호식을 겁박하면 인권이 무릎을 끓던 시절, 이 담에 아이들이 크면 사돈을 맺자며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가 떠나고 밥통에 밥알도 말라버린 채 영주가 배가 고프다고 한 날, 호식은 그래서 가장 친한 인권을 찾아 돈을 구했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호식은 인권으로부터 돈을 가져갔고, 그 돈은 도박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인권의 태도가 달랐다. 인권은 영주에게 다가가 '돈주세요'하라고 하고, 그런 영주에게 돈을 주었다. 그리고 호식에게 말했다. 딸 앵벌이 시켜 돈얻으니 좋냐고. 그 말 한 마디가 호식을 변하게 했다. 아내가 떠나도 끊지 못하던 도박을 인권의 그 한 마디가, 딸의 손에 얹힌 돈다발이 호식을 변하게 했다. 대신 인권과 호식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부모라는 자리 피붙이같던 인연을 끊고 자식키우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두 사람이다. 이제 아이들이 번듯한 대학만 가면, 고지가 저긴데, 그 고지 앞에서 두 아이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
첫 회부터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던 인권과 호식, 두 아버지들의 둘도 없는 자식 현과 영주의 러브스토리, 그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역설적으로 '부모'를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장 헌신적인 아버지들을 통해 '이타적'이기만 할 것같은 '부모' 자리의 '이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이란 없이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달려온 듯한 인권과 호식, 심지어 두 사람은 아버지이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들에게 두 사람은 완전체로서의 부모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가속을 붙여 달려온 자기 희생적인 삶, 그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이 원했던 부모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니면 당신의 아이가 이룬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아내도 못끊게 했던 도박을 끊게 만들고, 잘 나가던 주먹질을 접게 만들었던 맹목적인 부모의 자리, 하지만 그 '맹목성'은 동시에 잘 나가는 자식이라는 '보상'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라고 드라마는 묻는다. 그래서 영주의 임신 소식에 인권은 자기 아들이 1등을 하게 됐다며 좋아했고, 호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딸의 앞길을 막는 아이를 지우자고 단호하게 결정한다. 물론 거기에는 아내가 떠나버린 상실감과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감내했던 시간이 준 트라우마가 있다.
어느 부모가 전교 1, 2등을 다투던 내 아이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이를 낳고,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 노릇을 하겠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물론,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인권과 호식이기에 결국은 현과 영주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부모 노릇을 통해 작가는 묻는다. '내 새끼'만을 향했던 그 마음의 향배를.
또한 그 '맹목성'이 놓치고 있던 내 삶의 자리는 어떤 것이었냐고 묻는다. 가끔 인권의 순대국밤 노점에는 한때 그와 함께 '주먹' 좀 쓰던 친구들이 온다. 그리고 인권을 신기해하는지, 비웃는지 묘한 뉘앙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인권도 현에게 늘 말한다. '돼지 냄새' 맡아가며 너를 키운다고. 늘 어디 동호회 무료 티셔츠 나부랭이나 입으며 얼음을 나르는 호식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 안에는 어쩌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한 자기 삶에 대한 서러움이 묻혀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새끼 좋은 대학 갈 날만을 향해 달려왔던 삶, 과연 그건 내 새끼의 좋은 대학 입학만으로 '보상'받아야 할 삶일까? 주먹질을 하던 인권이, 도박판을 전전하던 호식이 아이들로 인해 '보상'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꽃길 대신 현재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아이를 선택한 현과 영주의 행복말이다. 우리는 늘 먼 훗날의 여유와, 행복을 그리지만, 사실 어쩌면 고단한 지금 여기의 삶이 현생을 사는 나의 '황금기'일 지도 모른다.
작년말 기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전세계 540만 명을 넘었다.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의 파고는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코로나와 같은 '야생'으로 부터 인간을 급습한 인수공동 감염병이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 윈난성이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곳에 서식하는 박쥐 배설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일치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 그 시작을 제공한 건 바로 윈난성의 박쥐였다.
박쥐 때문? 아니 인간 때문 그런데, 우리가 주목한 건 여기까지였다. 윈난성의 박쥐가 코로나를 퍼뜨렸다. 그런데 왜? 야생의 동굴 속에서 서식하는 박쥐가 전세계인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릴까?
윈난성의 시장 토막난 박쥐들이 요리로 한창 만들어지는 중이다. 모든 것을 요리로 만드는 중국인들, 박쥐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중국인들의 식습관 때문일까?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어서? 물론 안먹은 건 아니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설명하는 건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일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 ebs다큐프라임- 여섯 번째 멸종 5부 멸종위기종 인류>는 말한다.
포츠담 기후영향 연구소는 20세기 초부터 기후학적 조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더워진 지구가 박쥐의 서식지를 넓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아시아에서 낙엽활엽수림과 사바나 지역까지 서식지를 옮겨간 박쥐는 그곳의 야생 동물과 접촉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 에볼라 등 300여 종의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북상하는 건 박쥐만이 아니다. 브라질 임산부들이 소두증 아이를 출산해서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지카 바이러스는 우간다가 고향이다. 우간다가 고향인 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건 흰줄숲모기이다. 이 모시 역시 온난화로 북상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지카 바이러스를 비롯, 댕기열, 황열병 등을 옮기고 있다. 비행기바퀴에 알을 낳고, 화물을 통해 옮겨지는 모기 알, 2019년 우리나라 영종도 인근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더워진 지구,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인도에는 니파 바이러스가 퍼져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다.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에서 시작된 니파 바이러스 역시 나무 열매와 꽃을 먹고사는 과일 박쥐가 숙주이다.
깊은 숲속에 사는 과일 박쥐, 하지만 인간이 숲을 농지로 만들고, 산림을 마구잡이로 벌채하며 박쥐가 사는 곳과 사람이 사는 곳의 경계가 무너졌다. 박쥐만이 아니다. 박쥐로 부터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대표적인 중간 숙주가 '천산갑'이다. 멸종위기종 천산갑, 그런데 이 천산갑이 '스태미너식'이라는 이유로 전세계에서 빈번한 밀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늘은 약재로 쓰인다. 인간이 자처해서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온난화로, 그리고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동물들의 지리적 분포가 변화되고 있다. 인류에 해로운 병원체를 가진 바이러스가 무차별적인 종간 이동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신음하고 전세계, 하지만 언제라도 또 다른 코로나가 우릴 찾아올 수 있다.
폭주하는 지구 다큐는 환경주의자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멸종>을 주목한다. 2021년 발간 전세계적으로 경종을 울린 이 책은 기후가 1도씩 오를 때마다 지구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가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지구의 온도가 1도 오르면 가뭄이 지속되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그로 인해 일부 동식물이 멸종된다. 2도가 오르면 기후 시스템이 붕괴되고 대홍수, 대가뭄이 빈번해지고 그린란드가 녹기 시작한다. 3도가 오르면 강력한 허리케인이 등장하고 식량 생산이 급감하며 지구의 심장인 아마존 우림지대가 파괴된다. 4도가 오르면 남극 빙하와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아내리고 기후 재난으로 인한 이재민들이 넘쳐난다 등등.
마크 라이러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에 대해, '숙제 좀 안한다고 큰 일이 날까?'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고. 사람들이 안한 숙제는 어떤 결과를 낳고 있을까?
실제 2021년 독일은 사상 최악의 홍수를 겪었다. 러시아 남부의 가뭄은 해마다 악화일로이다. 호주의 산불은 우리나라 보다 넓은 면적을 폐허로 만들었다. 가뭄, 홍수, 산불 등 예측한 속도보다 더 폭주하며 지구가 변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 야쿠티아는 영하 50도 아래로 내려가는 시베리아 동토층이다. 그런데 올여름 내내 건조한 날씨에 기온이 42도까지 오르며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잦은 폭염과 건조한 날씨, 동토층은 점점 녹고 있다. 동토층의 해빙은 지형을 변화시킨다. 깊이 100m, 길이 1km에 이르는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그저 골짜기에 불과했던 이 곳이 불과 20년 사이 3배 이상 커져버렸다.
문제는 수만년 동안 얼었던 곳이 녹아내리며 빙하기 때 멸종된 코뿔소, 매머드 등그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생물들이 귀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연구소는 시베리아에서 3만년된 피토 바이러스 시베리쿰을 발견했다. 인플루엔자의 70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자이언트 바이러스'이다.
실제 방목 중이던 순록들이 감염된 탄저균이 유목민에게 옮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났다. 시베리아에 탄저균이라니! 오래된 영구 동토층에 얼려있던 탄저균이 이상 기온으로 인해 물과 흙으로 그리고 이걸 먹은 순록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것이다. 동토층이 녹는다는 건 그저 얼어버린 땅이 녹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이 지구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것이다.
IPCC(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지구 환경 보고서에 다르면 지난 2000년간 지구의 온도가 1도 가량 상승했다고 한다. 겨우 1도? 하지만 지난 만년간 지구의 온도 변화는 1도 미만이었다.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과 발전, 인간의 문명이 낳은 재앙이 폭주하고 있는 중이다. 매년 수만 종의 동물들이 멸종하고 있다. 과연 '숙제를 미루고 있는' 인간종의 미래는 안전할까?
'맘충', '꼴페미', 아니면, 반대로 '한남', 이런 말을 써본 적이 있는가? 이런 말들을 쓰면서 그런 자신의 표현이 '혐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지. 어느덧 우리 사회 일부 집단에서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저 표현들, '혐오'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기사들의 댓글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얼마나 일상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는 '혐오', 이에 대해 4월 26일 kbs1의 <시사기획 창>이 집중 탐구한다.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프랑크 제임스, 그는 그 자신이 흑인임에도 흑인들은 고통받으며 살 수 밖에 없다며 '인종'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혐오'는 폭력적인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4월 12일 뉴욕 브루클린 역에서 지하철을 탄 그는 연막탄을 터트리고 열차가 연기로 가득차자 총기를 난사했다. 그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10 여 명이 부상을 당했고, 그 중 5명이 중태에 빠졌다.
미국에서 '혐오 범죄'는 이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동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한 아시아계 여성을 따라가서 130여차례나 가격을 하고 침까지 뱉은 흑인 남성, 그가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90초였다. 지난 2월 13일에는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던 한국계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백주대로에 동양인을 폭행하는 것이 빈번해 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까지 지적한 '혐오 범죄', 하지만 그렇게 일상화된 '혐오 범죄'의 증폭기가 된 건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다. '중국이 코로나를 은폐하여, 질병이 전세계로 퍼졌다.', '불법 이민으로 인해 미 노동자층이 각종 부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등등 그가 공적인 현장에서 쏟아놓은 말들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sns를 통해 내뱉은 짧고 거친 발언들이 논란을 유발하여 미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
앞서 프랑크 제임스의 범죄에서 보여지듯이 '혐오'는 결국 '발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 의회 의사당 점거 사태를 벌였다. 혐오는 더 큰 혐오를 낳고,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이끌어 간다. 안타깝지만 현재 미국의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다시 '트럼트'이다.
도대체 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거친 트럼프의 표현들이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는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노골적으로 '혐오'를 자기 정치적 수단으로 삼은 정치인이다. 그런 혐오에는 사회 경제적 불만이 자양분이 된다. 불만을 가진 유권자층을 상대로 그들의 '불안'을 '핑계'댈 대상과 이유를 들어 국민을 갈라치기 한 겅이다. 그 대상이 바로 이민자와 소수자들이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혐오 정치 기간 동안 실제 남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현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 안의 혐오 그렇다면 '혐오'를 도구로 사는 정치는 미국만의 일일까? 최근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전장연'의 시위가 있다. 이 시위에 참여한 정기열 씨는 대학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가 없이는 이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그가 2년 여 병원 생활을 마친 후 나온 세상은 비장애인으로 살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대뜸 천원 짜리 한 장을 적선하는데서 느끼는 자괴감은 둘째치고, 생활이 곧 전쟁이 되는 장애인으로써의 삶이 더 문제였다. 장애인으로써 사회 적응의 첫 연습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는 연습이었다고 한다. 노동을 하든 뭘 하든 집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고 '전장연'은 자신의 몸을 무기 삼아 지하철에서 시위를 했다.
그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사람들은 처음에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 지 몰라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이에 대해 발언을 한 후 사람들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놓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 하기도 한다. '너희들 때문에 나라가 힘들다.'는 식의 반응들, 사회적 약자인 자신들이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같다고 정기열 씨는 힘들어 한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발언'은 사람들의 '혐오'를 부추키거나 조장한다.
지난 10년간 sns를 중심으로 '혐오' 키워드가 4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 장애 관련 기사의 댓글 5만 여건을 다큐 제작진은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는 '페미' 등의 부정적 표현이 증가했고, '남성을 차별'한다거나, 남성을 벌레취급한다'는 역차별의 표현도 늘었다.
아이러니한 건 중국에 대한 양가적 표현들이다.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 혐오 범죄 앞에서는 같은 편처럼 대하던 중국에 대해 베이진 올림픽 편파 판정이 문제가 되자 '혐오'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장애와 관련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반응이 비슷한 반면, 장애 단체로 가면 불편하다. 피해를 겪는다의 부정적 표현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전문가는 이런 혐오 관련 시민들의 반응에서 공통점을 도출한다. 바로 '내가 손해를 보는 건 못참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기저에 경쟁의 장으로서의 사회, 그 안에서 내가 먼저 차지하지 않으면 내 몫은 없다는 '제로섬 게임'의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런데 이런 '손해'는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일까? 경북대 주변에는 무슬림 유학생과 그 가족들이 산다. 하룬 컨씨처럼 바이오 공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무슬림 공동체를 이룬 이들, 그래서 이곳에 무슬림 사원을 짓고자 했다. 그러자 '사람을 죽이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치안이 불안해지고 슬럼화의 우려가 있다는 주민들, 막상 한 사람씩 붙잡고 물어보니 뾰족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 그저 싫다는 식이다.
이런 '혐오'에 대해 김승석 교수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본성처럼 진화한 인간의 특성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피부색, 나이, 옷차림을 근거로 타인을 판단하는데 불과 0.1초도 걸리지 않는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여 '폭력', 혹은 '폭력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가장 위험하다고 김교수는 경고한다.
실제 예일대에서 실시한 실험, 선생님에게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문제 행동을 보일만한 아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무의식중에 흑인 남자 아이를 주목했다고 한다. 평소 스스로 인종 차별을 한다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선생님, 하지만 그 선생님처럼 '주목'하며 특정인을 지켜보면, '침소봉대'라, 그의 실수나 잘못이 더 눈에 들어오고, 그로 인해 그가 가진 무의식적인 신념이 강화된다고 실험을 말한다.
특히 이런 '혐오'의 신념이 강화되는 과정에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북대 무슬림 사원 사태에서 기초 단체는 혐오스런 플랜카드를 용인하는 등 암묵적인 조장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의 이준석 대표의 발언, 그리고 경북대 무슬림에 대한 지자체의 태도 등은 일반 시민들에게 일종의 '메시지'가 된다고 다큐는 지적한다. 개인의 자유의사 표현을 강제할 수 없다고 하지만 과연 이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일까?
실제 국회 앞에서 노골적인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 다큐는 묻는다. 노예제 찬성을 과연 오늘날 백주대로에서 주장할 수 있냐고. 그렇듯 표현의 자유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혐오가 될까? 욕설이나 비난만이 아니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적 지향 등 집단의 정체성을 이유로 어떤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혐오'라고 전문가들은 정의내린다. 특히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던지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혐오를 조장하게 되는 식의 '투사적 혐오'가 바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좀먹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혐오'지수는 어떨까? 다큐는 '시민을 위한 혐오 리스트'를 제시한다. 이 '리스트'로 지금 당신의 '혐오'는 어떤 수준일지 한번 체크해 보시길.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 우선은 '취업'이 관건이다. 자소서를 100통쯤 쓰고, 자존감이 바닥을 두어 번 치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죽어라 죽어라 한다'하는 끝에 직장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취업'만 하면 다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다니다 보니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 예전에는 직장 생활 성실하게 꾸준하게 하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할 만 했는데, '부모 찬스'가 아니면 '내 집 마련'이 '남의 떡'이 된 시대에 젊은이들의 어깨는 자꾸만 수그러든다.
너무 '물질적인 삶'아니냐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 사는 일이란게 때되면 직장 잡고, 때되면 결혼하고 아이낳고 뭐 이런 삶의 과정을 무탈하게 밟아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더는 부모처럼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 그래서일까 요즘 드라마들은 이런 젊은이들의 결핍감을 주된 이야기꺼리로 삼는다.
나 먹고 살 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 돈 3억, 엄마가 해줄께, 이혼하면 되겠지. 이혼하면 3억은 주겠지!' 난데없이 이혼을 들먹이며 사태의 종지부를 찍는 어머니(이경성 분)에 아들 창희(이민기 분)는 그만 입을 닫고 만다. 드라마의 꽤 많은 비중을 주인공들의 출퇴근에 '할애'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해방'을 갈구하지만 현실을 하루 네 다섯 시간 걸려 출퇴근을 해야 하는 처지, 파김치가 되어서 '당미역'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려 터덜터덜 걸어 도착한 그곳에 염기정, 염창희 , 염미정의 집에 있다.
그래도 거기엔 '집'이 있다. 하지만 창희의 '흰자위론'처럼 노란자 서울이 아닌 그곳에 집이 있기에 늘 주인공들은 지친다. 늘 '노른자'가 되고픈 창희,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편의점 본사 직원으로 일하는 창희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관리해온 편의점 점주로 부터 한 달 500만원의 수익이 꼬박꼬박 나오는 편의점을 인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80세, 새로운 5년 갱신 계약서를 앞두고, 점주는 재계약 대신, 성실한 창희에게 권유를 한다. 하지만 어쩐다, 창희는 돈이 없다. 창희 뿐이랴, '노다지'인 줄 알면서도 창희 주변 그 누구도 돈이 없다.
그래서 지난 번 차 사겠다고 했다가 얼굴이 벌개져서 상을 들어엎으려던 아버지 앞에 머뭇머뭇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조상 대대로 살던 이 동네, 저 밭을 팔면 가능할 텐데, 저렇게 한여름에 땀을 비오듯 흘리며 싸구려 싱크대 만들어 제 값도 못팔며 사는 대신 꼬박꼬박 한 달 500만원은 벌텐테, 창희는 조바심에 결국 말문을 연 것이다.
'아버지 그냥 하는 얘기예요. 편하게 들으세요', 하며 아버지의 혈압이 오르지 않게 서두를 꺼낸 창희, 하지만 창희의 말이 다 끝나도 아버지는 묵묵부답, 그 끝에 돌아오는 한 마디, '나 먹고 살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니가 3억 벌어서 인수해라'이다. 역시나 낭패다 싶은 그런 창희에게 어머니가 '이혼'을 들먹이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며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도 창희는 답답하다 하면서도 제안이라도 해볼 '언덕'이 있다. 서너 시간을 걸려서도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고 매달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직장도 있으니 그것조차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들의 '고뇌'가 또 다른 배부른 청춘가일지도. 인터넷에 서울에서 싼 방이라고 소개하는 곳은 '고시원'같은 공간에, 문 하나를 열면 화장실과 싱크대가 마주하고 있다. 그걸 투명 칸막이로 막는다. 그래야 싱크대에 뭐라도 올려놓고 샤워라도 할 수 있다나. 그래도 공용 화장실을 쓰는 고시원보다는 나은 편이라는 그곳이 보증금 500에 월 40만원이다.
창희네 해프닝은 늘 창희 옆자리에 앉아 창희의 인간성을 시험에 들게 하던 회사 동료가 아빠 찬스를 써서 편의점 쇼핑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벌써 그렇게 편의점을 차린 게 세 번 째라며. 결국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편의점을 놓치며 늘 결핍감에 시달리던 창희의 자괴감만 더하는 셈이 됐다.
그렇게 드라마는 꼬박꼬박 서너 시간을 걸려서 출퇴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그려낸다. 열심히 사는 데 달라지는 것이 없는 삶, 과연 쉽사리 풀릴 길없는 처지에서 이들은 저마다 어떤 삶의 희망을 길어올릴까? 무엇보다 '흰자위'운운하며 스스로를 '흰자위'로 만드는 창희의 '해방'이 궁금하다.
결혼만 해라, 집도 주고 상가도 주겠다? 이렇게 삶의 조건이 삶을 만드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삶, 그 삶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가 또 한 편 있다. 바로 kbs2의 <현재는 아름다워>이다.
여기서 시작은 할아버지 이경철 씨(박인환 분)이다. 매번 손주들 자랑이 늘어지는 동생네 집과 달리, 장성한 손주들이 세 명이나 되는데 그 누구도 결혼을 하지 않아 적적함을 느끼던 할아버지는 이 문제를 두고 아들 내외와 의논을 한다.
머리를 맞댄 세 사람은 손주 중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집'을 주겠다며 '경품'을 건다. 맏손주 윤재(오민석 분)는 치과 의사지만 주식으로 손해를 보고 집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처지이다. 둘째 손주 이현재(윤시윤 분)는 지난 연애에서 상실감이 큰 상태에, 아직 집도 살 여유가 없어 결혼을 꿈도 꾸지 않은 상태이다. 막내 손주 이수재(서범준 분)는 공시생으로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닥터스>, <상류사회>의 하명희 작가가 쓴 <현재는 아름다워>는 대가족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kbs2의 주말 드라마식 구성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역시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를 주된 서사의 테마로 삼는다.
물론, 말이 '집도 못사고 결혼도 못하는 젊은이들'을 다룬다지만 <현재는 아름다워>와 <나의 해방일지>의 온도차는 크다. 서너 시간 걸려 출퇴근을 하고 주말이면 밭일을 해야 하는 처지와 언제든 물려줄 재산이 있는 서울사는 노른자 같은 처지의 차이일까. <현재는 아름다워>에서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결혼만 한다면 자신이 가진 상가를 주겠다고 선뜻 나선다. 그러자, 며느리인 한경애 여사(김혜옥 분)는 자신들이 '여분'으로 가진 아파트를 내놓겠다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세 아들이자, 손주들은 저마다 앞장서 먼저 결혼을 하겠노라며 결혼 전선에 뛰어든다. 형제들보다 먼저 결혼하여 '집'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그 '집'을 팔아 자신이 하고픈 헬스장 자금을 구하기 위해. 치과 의사에 변호사, 이 잘나가는 젊은이들조차 '집' 을 주겠다는 부모와 할아버지의 '미끼'를 덥석 물며 드라마가 시작된다.
<현재는 아름다워> 속 집없는 젊은이들은 결혼만 하면 집도 생기는 '위장된 어려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가도 있고, 아파트도 있어 결혼만 하면 주겠다는 부모 슬하의 전문직 자녀들의 어려움이란게 '있는 사람들의 응석'같으니 말이다. 주말 드라마의 전형적인 가족 관계 속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만들어진 '어려움'같은 거다. 하지만 치과 의사고, 변호사라 하더라도 '집' 앞에서는 체면 불사 나서는 그 '낚시밥'이 주말 드라마의 테마로 등장, 요즘 세태의 관심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역설적인 현실성이다.
우울증, 무기력, 자존감 저하 등 이 단어들은 현대인이 자기 자신을 마음 감옥에 가두는 이유들이다. 실재하는 '감옥'도 없고, '간수'도 없고, 문도 활짝 열려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한 발자국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뜨겁디 뜨거운 여름, 신영복 씨는 감옥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계절이 여름이라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옆의 사람를 증오하게 만든다는 그 계절, <나의 해방일지>는 바로 그 나 한 사람 서있기도 힘든 계절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나 한 사람 혼자 서있기도 힘든, 그런데 한 집에서 부대껴야 하는 삼남매가 있다.
왕복 4~5시간을 걸려 출퇴근해야 하는 처지, 드라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정, 창희, 미정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낙담'이 이해도 된다. 그런데 그것 뿐일까? 되돌아 보면 <나의 아저씨>에서도 박동훈과 그 주변의 삶은 처음엔 참 답답했다. <나의 해방일지> 속 삼남매의 삶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심지어 서울 변두리 박동훈 네가 낫다 싶을 정도이다. 존재로부터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회사 생활도 뾰족한 것이 없고, 관계는 더욱 지지부진한 염씨 댁 삼만매의 처지가 안쓰럽다. 그런데 어언 4회차에 이를 즈음에,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의 '존재'가 답답한 건 맞지만, 어쩌면 저들은 '존재' 이상, 스스로 만든 '마음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음 감옥에 갇힌 이들 서울이란 계란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 같은 동네, '흰자위'론을 들고 나온 건 아들 창희(이민기 분)이다. 그런데 창희의 이른바 '맞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의식에는 사람의 존재도 노른자, 흰자가 나뉘어져 있는 듯하다. 그토록 흰자위 이 변두리 동네의 존재를 탈출해서 '노른자'로 가고픈 열망에는 그래야 그 스스로 '노른자'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드디어 '창희'가 연인과 헤어진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늦은 저녁 전철을 타고 집에 오던 기정(이엘 분)은 창희와 헤어진 연인이 홀로 창희에 동네에 오는 전철을 탄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돌아와 그 소식을 전하니, 창희는 말한다. 그 연인이 자신을 보게 되는 그 '별 수 없는 놈이라는 눈빛'때문에, 그래서 스스로 벽을 치고 헤어졌노라고.
연인과 함께 멋들어지게 자가용을 타고 데이트도 할 수 없는 놈, 회사에서 '갑'이 될 수 없는 처지, 에어컨 한번 맘대로 틀 수 없는 가정 형편, 그런 것들이 모두 창희에게는 '흰자위'같은 삶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창희는 그런 삶의 조건들에 견딜 수 없다. 대리점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든 동료에게 '입바른 소리'를 한없이 풀어놓으며 창희의 결론은 승진을 해서 스스로 '노른자'와 같은 인물이 되어 그런 '흰자위'같은 것들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승진'처럼 삶이 달라지면 '노른자'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창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무한루프같은 경쟁 사회에 자신을 던져 그 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된 삶만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창희의 또 다른 모습일 지도.
창희가 스스로를 자존의 늪에 가두었다면 기정을 혼돈스럽게 하는 건 '권태'이다. 십 수년의 쳇바퀴같은 회사 생활, 그리고 늘 출퇴근에 시달리는 나날, 그 속에서 기정은 삶의 활로를 찾지 못해 바둥거린다. 그런데 그녀가 찾는 그 삶의 활로가 막막하다. 머리를 해보고, 성형외과를 찾아 시술을 해보고, 그리고 올 겨울 안에 그 누구라도 붙잡고 사랑을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막상 이혼남을 소개해줬다고 소개팅 주선자에게 거품을 무는 처지이다.
자기 자신을 가둔 감옥에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채 '여름'이라는 계절을,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별 다른 변화없는 삶을 상대로 끝없는 실랑이를 벌이는 창희와 기정, 그들 사이에서 서늘하게 침묵을 지키는 미정(김지원 분)이 있다. 그런데 염씨네 막내 미정과 염씨네에 일을 도우는 정체불명의 구씨(손석구 분)는 참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한 걸음 한여름 볕보다도 더 묵직하게 자신의 일만 묵묵하게 해내는 두 사람, 끝없이 술만 마셔대는 구씨와, 조용히 회사와 집을 오가는 미정, 삶을 겨우 버텨내는 짙은 우울이 두 사람 모두에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미정의 눈에 구씨가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날 미정은 구씨에게 당돌하게 말한다. '나를 추앙해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그 '구문'의 문체, 미정은 설명을 보탠다. 그 거창한 '추앙'이 서로를 무조건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미정의 도발은 '구씨에게 추앙'을 요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출퇴근으로 회사 그 어느 동아리에도 들지 않아 요주의 인물이 된 미정은 자꾸만 회사의 행복 센터로 불려가고 거기에서 미정처럼 각자의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된 다른 두 사람 박상민 부장과 조태훈 과장(이기우 분)을 만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세 사람, '동아리' 문제로 고민하던 중 미정이 제안한다. 우리가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자고. 그렇게 해방클럽이 탄생한다.
'해방 클럽'이 뭐냐는, 뭘로 부터 '해방'을 하는 거냐는 동료의 질문에 미정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여기서 미정의 웃음이 중요하다. 4회 만에 처음으로 미정은 진짜 웃음을 웃었다. 늘 무표정하게, 심지어 오빠와 언니가 싸워서 언니가 날린 슬리퍼를 맞아도 무표정하게 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문 밖으로 슬리퍼를 던지는 것으로 겨우 자신을 드러내는 미정인데, 그런 미정이 자신감넘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어떤 동아리에 끌려들어갈 처지에서 탄생한 해방 클럽,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색하지만 나란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세 사람의 표정이 편안하다. 그저 늘 자신들은 세상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세 사람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전남친을 위해 신용대출을 받고 그걸 대신 갚아야 하는 처지, 회사 동료들은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쑥맥' 취급을 하고, 상사는 '빨간펜'으로 대놓고 미정을 무시하는 처지가 미정이를 꿈틀하게 만든 것이다. 미정은 벼랑 끝에서 배수진을 치듯 한 걸음 나선다. 지금까지 그녀를 가두었던 자신의 감옥 밖으로.
많은 심리서의 결론은 사실 뜻밖에도 명쾌하다. 무엇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구구한 심리 이론의 끝에 도달하는 건 '실행'에 있다.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행동'에 옮기라고 한다. 바로 그 심리서의 '답정너'에 삼남매의 막내 미정이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런 미정에 구씨가 화답했다. 미정의 모자를 , 아니 미정을 향한 도약으로.
ebs 다큐 프라임은 2020년 방송대상을 받은 <인류세> 시리즈에 후속작으로 <여섯번 째 대멸종> 5부작을 4월 18일부터 방영한다. 46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그간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여섯 번 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소행성 충돌, 빙하기 등의 지구 환경 변화가 가져온 지난 멸종과 달리, 여섯 번 째 대멸종의 주범은 '인간'이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중략)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몇 마리의 새조차 다 죽어가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고 날지도 못했다. / 죽은 듯 조용한 봄이 온 것이다 .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중에서
'죽음'의 철새 중간기착지 죽은 듯 조용한 봄, 그저 레이첼 카슨이 지은 '내일을 위한 우화'일 뿐일까? 비행기에도 항로가 있듯이 새들 역시 '항로'처럼 이동경로가 정해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9개 정도의 철새 항로 그중 규모가 큰 것이 '동아시아 항로'이다. 호주, 동남아, 중국, 시베리아, 알래스카에 이르는 이 항로를 '비행'하는 철새들이 꼭 중간에 들르는 '허브' 국가가 있다. 맞다. 바로 우리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새 종류는 500여 종에 이른다. 하지만 그 중 텃새는 불과 95개 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400여 종이 넘는 새들이 '철새'로 저 긴 여행 중 중간 기착지로 우리나라에 잠시 머문다.
갯벌은 장기간 여행을 하는 철새들의 중요한 보금자리이다. 그래서 갯벌을 지키기 위해 환경단체들이 앞장서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갯벌만 지키면 될까?
미국의 조류 보호단체 오듀본 협회의 스티븐 마제스키는 매일 아침 뉴욕 빌딩 숲 사이를 헤맨다. 바로 건물 유리창에 부딪쳐 생명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있는 새들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쳐야 얼마나 부딪친다고?
앞서 말했다시피 '허브' 기착지로서 수많은 새들이 찾는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2만 마리 정도가 유리벽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한다. 한 해 800만 마리 규모이다. 북미의 경우 연간 3억~ 10억마리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도시 곳곳의 유리벽은 너무도 일상적인 풍경이다. 건물 유리창, 방음벽 등등. 흑산도의 방음벽은 철새들의 야생 서식지를 관통한다. 새들은 눈 앞에 보이는 숲을 향해 돌진하다 목숨을 잃는다. 유리벽에 부딪친다고 목숨을 잃나?
하늘을 날기 위해 적합한 구조적인 신체를 가진 새는 평균 40~70km의 속도로 난다. 소형 조류의 경우 유리벽에 부딪쳐 '계란'이 깨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더구나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진화된 새들은 측면에 눈이 있다. 당연히 3차원적 인식이 부족하니 인간이 만든 도시 공간은 그들에게 '죽음'의 공간이 된다. 신도시 방음벽 주변을 탐문한 조류보호단체는 불과 2~3시간 만에 6~70마리의 사체를 발견한다.
유리벽만이 아니다. 몽골에서 3천 km날아온 겨울 철새 독수리, 사냥 대신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독수리에게 한국은 이제 더는 먹이를 구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농약에 중독되어 죽은 오리를 먹고 다시 2차 중독이 되는 사태 등 2살까지 살 확률이 채 28%도 안되는 상황, 멸종의 단계에 놓였다. 또 다른 멸종 위기종인 흰목 물떼 새의 경우 하천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자 공사장 자갈 틈에 둥지를 트는 신세가 되었다.
그물 속에서 죽어가는 상쾡이 바다로 눈을 돌리면 상괭이가 죽어나가고 있다. 토종 새돌고래, 웃는 낫이라 웃는 돌고래라 칭해지는 상괭이이다. 가족 단위로 2~3마리씩 연안의 얕은 바다에 모여사는 상괭이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물고기와 달리 '폐호흡'을 하는 바다 생물이다. 멸종 위기 종으로 포획이나 유통이 금지된 상괭이, 제주 경찰에 한 해에만 4~50건의 죽음이 신고된다. 하지만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상괭이 시체에서 보여지듯 한 해 1000 마리 이상이 '폐사'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상괭이가 죽어갈까? 그 '범인'은 연안 낚시 그물인 '안강망'인 경우가 많다. 자루 모양의 안강망은 바다에 드리워져 그물 안의 모든 것들을 싹쓸이 하는 방식의 조업 방식이다. 고기들은 조류에 따라 안강망 안으로 들어가고 상괭이는 그런 물고기들을 따라 안강망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폐호흡을 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설 수 없는 상괭이들은 안강망 안에서 '질식사'하고 만다. 안강망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실제 태안에서 잡힌 상괭이들의 97.8%가 어린 상괭이들, 재생산을 책임져야 하는 연령대인 이들 상괭이의 '폐사'는 곧 상괭이 종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이 만든 여섯 번 째 대멸종 육지의 유리벽, 유리창, 바다의 그물, 그뿐일까? 시선을 세계로 돌려보자. 태국의 타키압 마을 농민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코끼리를 쫓기 위해서이다. 기후가 변화하고 있는 태국, 정오에서 부터 4시까지 더위가 극심해져서 농사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물도 부족해지고, 고무나무 채취가 안될 정도다.
높아진 기온과 가뭄으로 숲이 메마르자 먹이와 풀을 찾아 코끼리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마을의 밭은 잘 차려진 한 상이다. 익어가는 파인애플 밭이 코끼리 떼가 지나가자 파인애플 나무가 뿌리채 뽑히고 뭉개졌다. 불빛만으로도 쫓을 수 없자 폭죽을 터트리고, 그 폭죽에 스트레스를 받은 코끼리 떼는 더욱 포악해지고, 찻길을 활보한다. 코끼리의 위태로운 하루, 90%의 코끼리가 감소 추세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동부 노천 광산의 오랑우탄은 남벌로 인해 반동강이가 난 숲의 보금자리를 잃었다. 광산의 불빛과 석탄을 실어나르는 트럭의 소음이 가득한 광산 주변 나무에 홀로 둥지를 틀었다. 생애 대부분을 나무에서 보내는 오랑우탄 집을 지을 나무와 열매가 있어야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이 먹다버린 깜부탄 열매를 주워먹는 오랑우탄에게 이곳은 먹을 것도, 물도 찾기 힘든 '화성'과 같은 곳이 되었다. 결국 아스팔트 너머 사람들 마을로 찾아든 오랑우탄에게 분노한 농민들은 총을 쏘아대고, 죽은 오랑우탄의 시신에서 130 여개의 탄환이 발견되었다. 75%의 보르네오 오랑우탄이 사라지고 있다.
2019년 호주 산불로 8000 마리 이상의 코알라가 죽어갔다. 물 대신 유칼리투스 수액을 먹고 사는 코알라들, 결국 인간이 건네주는 물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 호주 산불 자체가 뜨거워진 지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건조한 가뭄이 계속되었던 상황이 그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들불이 만들어 냈고, 그 결과 많은 호주 생물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지구 온난화, 서식지 파괴, 남획 등 숲, 호수, 산 등의 자연과 그 자연에 깃들어 살던 생물 등 생태계 전반에 걸쳐 100배에서 1000배나 빠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 과연 이 위험한 폭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은 학생 책임지라'. 1960년 4월 25일 마산 강남극장 앞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소복처럼 흰 옷을 입고, 호미와 방망이를 들고 모여든 할머니들은 3천 명에 이르렀다. 시위 도중 사망을 당하고 부상을 당한 학생들을 목격한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 할머니들의 시위는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4.19 혁명이 62년이 지났는데도. 4.19 혁명이 발발한 지 62년이 지났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4.19 이래도 수많은 피를 흘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4.19는 지난 세대의 '역사'처럼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있다면?, kbs1은 특집 다큐로 1960년 그 역사의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우리나라의 1960년대가 여성들에게는 어떤 시대였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문맹률이 28.8%였는데 그중 72.2%가 여성이었다. 딸은 초등학교도 안보내던 시대였다. 농업 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발돋음하려던 이 시대 상당수의 저연령층 미혼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력이 되었다. 1963년 15세 이상 여성 인구 중 경제 활동 참여 인구가 37%나 되었다. 여전히 '가부장제'의 완고한 틀이 지배하는 사회, 하지만 여성들은 그저 시대의 변혁 앞에 그저 뒤에 머물지 않았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들 4.19의 도화선은 마산에서 지펴졌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던 마산 시민들, 시위 후 집에 돌아오지 않던 김주열 군이 얼굴에 최류탄이 박힌 채 떠오르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나',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 시민들 사이에 당시 마산성지여고생이었던 이영자 학생도 있었다.
당시 학도호국단 대대장이었던 이영자 씨는 마산 시대 학도 호국단 회의에 참석한다. '시신을 봤는데도 가만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공감대 하에 대대적인 시위 참여 독려가 이루어 졌다. 학생들이 앞장 선 시위, 그중 25%가 여학생이었다. 여성이 초등학교 문턱조차 여전히 밟기 어려웠던 시절에 여학생의 참여는 대단한 것이다. 여학생들 만이 아니었다. 중년 여성들이 나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 당시 미 국무부 보고서는 '중년 여성의 비중과 참여도가 놀랍다'고 명시할 정도였다.
마산으로 부터 시작된 부정선거 항의 시위는 점차 서울로 퍼져나갔다. 당시 고려대 법학과 1학년이던 오경자 씨, 역시나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 출신이던 오경자 경무대를 다녀온 것을 자랑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타도'에 있어 갈등은 없었다.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들어간 대학, 하지마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고 김주열 군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광장에 모여든 학생들 무리에 당연히 합류했다. '민주 역적 몰아내자.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가자 국회의사당'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4.18 고려대학교 데모의 행렬 안에 오경자 씨가 있었다.
'하천에 물이 흐르듯 사람들이 광화문을 향해 갔다'고 당시 여고 2학년이던 이재영 씨는 회고한다. 날마다 신문을 읽으며 사회 현실에 눈을 떴다던 재영 씨는 '엄마, 저 데모하려구요. 죽어도 어쩔 수 없다'며 시위대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경무대로 향하던 사람들은 삼엄한 경비와 최류탄 공세에 막히고 만다. 전차를 밀고, 수도관을 굴려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하자 경찰은 총을 든다. 경무대 앞에서만 21명이 죽고, 172 명이 부상을 당한 아비규환의 상황, 5개 도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부산 혜화여고를 다니던 김남영 씨는 전봇대 뒤에 서있다 총을 맞았다고 한다. 발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는 당시의 소회, 복숭아 뼈가 깨지고 평범한 여고생은 평생 장애를 지니고 살게 되었다.
피를 흘리며 사람들이 실려가고, 친구가 죽어가자 외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을지로 등 서울 한복판에서만 100 여 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중에는 중2 여학생도 있었다. 진영숙 씨, 시간이 없어 어머니를 보지 못한 채 시위에 합류했던 앳된 여학생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영숙 씨가 남긴 편지는 당시 시위에 합류한 학생들의 심정을 그대로 담았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와 싸우겠습니다. 제가 철이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저의 목숨을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정부 수립과 함께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원조물자에 의존한 경제는 미국의 무상원조 중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와중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더구나 두 차례나 무리한 개헌을 감행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공권력과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상상을 초월하느 부정 선거를 감행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부터 3인조, 5인조로 조를 짜서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하는 부정 투표 행위 등에 투표율 97% 이승만 100%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당시 투표 참관인이던 오무선 씨의 남편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며 투표장을 뛰쳐나왔고 마산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 구속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20년전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 오무선 씨는 당시 시위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학생들의 추모제를 20여 년 째 손수 만든 음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앞장서 '부정 선거'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시위는 4월 25일 교수 시국단 회의를 기점으로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모한다. 4.19 세대만 해도 3.1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날의 '만세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 그리고 8.15 해방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한번 거기로 나선 것이다.
'광목 자투리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광화문을 향했다. 모여든 시민들은 자석에 쇳가루에 붙듯이 탱크에 올랐다. 천지개벽하는 듯한 시민들의 함성 소리, 품었던 태극기를 꺼내들었다.'
이재영 씨가 남긴 기록이다.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며 기록으로 남기자며 써내려간 일기이다. '우리 형님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 수송초등학교 어린이들도 합류했다. 이재영 씨는 그런 초등학생들을 앞에서 인도했다. 초등학생들, 그리고 군인들까지 합류한 시위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 하야를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바깥 일은 남자들의 일이란 의식이 우선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4.19는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 앞에 남녀가 없었고, 어른 아이가 없었던 시민 혁명이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은 '시민 의식' 앞에 남녀가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여학생들이, 중년의 여성들이, 그리고 할머니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4.19 혁명의 주역들이다. 어느덧 80줄의 할머니가 된 그녀들, 손녀에게도 조차도 할머니의 역사는 새삼스럽다.
옵니버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우리들의 블루스>, 3회로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이정은 분)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한수는 어떻게든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그런 줄로 모르고 은희는 몇 십 년만에 한수와 둘이 온 목포 여행에 설레기만 한다.
아내와 별거를 한다며 은희에게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한수, 함께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은희의 입가에 묻은 과자를 떼어주고, 그 시절의 솜사탕을 함께 먹고, 없어진 자리에 생긴 호텔에 함께 머문다. 은희의 마음은 드라마 속 OST로 등장하는 Quando, Quando, Quando, 언제 내 사람이 될 지 말해 주세요. 제발 말해주세요, 언제일지, 언제일지, 언제일지."라는 듯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그 시간 미국을 떠난다는 아내와 딸에게, 특히 골프가 더는 재미없다는 데도 골프가 없이 니가 어떻게 사냐며 절규하듯 전화를 끊은 한수는 거울을 보며 연습한다. '은희야, 나 2억만 빌려줄래?'
은희, 첫사랑을 잃다 하지만 은희의 설레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명보를 만나 한수의 처지를 알게 된 인권과 호식이 은희에게 그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희는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별거'도 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의 증거 사진 앞에 황망하다. 안그래도 소개를 받으려 해도 다들 자기 돈만 본다며 한수에게 토로했던 은희, 오랜만에 찾아온 첫사랑 한수마저 그러니 마음이 찢어진다.
오늘 나랑 놀고, 이제 같이 잘 거냐고 . 아님 돈을 빌려주냐고 직진하는 은희, 그런 은희 앞에 한수는 무너진다. 한수를 쿠션으로 마구 치며 은희는 울부짖는다.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중략) 이런 데 끌고 오지 말고, 잘 사는 마누라랑 별거네 이혼이네 말하는 순간 너는 나를 친구가 아닌 너한테 껄덕대는 푼수로 안거지'. 그렇게 은희는 친구도 잃고, 첫사랑도 잃었다.
여기까지가 <우리들의 블루스>의 예상 가능한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역시 노희경 드라마인 이유는 여기부터이다. 한수와 함께 호텔에 와서 호텔 방에 누워 본 은희는 울컥한다. 몇 개의 가게와 엄청난 현금 동원력을 가진 '부자'가 될 때까지, 그동안 돈 버느라 이런 좋은 데 한번 와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나오는 거다. 그런데 이 무슨 호사인가, 몇 십년만에 돌아온 첫사랑과 함께 이 좋은 곳에. 하지만 환타지는 금세 끝났다.
과연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아마도 대부분 그 호텔 방에서 은희처럼 한 것처럼 한바탕 퍼붓고 '똥 밟았다'하면서 두번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조식을 먹고 가겠다고 말했듯이 다음날 아침 홀로 앉아 조식을 끄적이는 은희, 생전 처음으로 온 호텔에 눈물짓던 때가 언젠가 싶게 처량맞다. 그때 호식에게 온 전화, 은희는 친구들에게 퍼붓는다. 니들이 친구냐고. 집도 절도 없다는 한수, 그런 한수에게 돈이 여유가 있으면서도 꿔주지 않은 형식이, 빌려주고 이자놀이하듯 하는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신나서 뒷담화하는 너희들', 이라며 은희는 말한다. '돈많은 나를 챙기듯, 돈없는 한수도 챙겼어야지.'
'역지사지', 그 하룻밤 사이에 은희는 많은 생각을 한 것이다.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말하던 한수, 자신의 꿈이 가수라던 은희에게 농구가 꿈이라던 한수, 아이는 자신처럼 돈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랬다던 한수, 그리고 평생 돈을 벌어 남 좋은 일만 하던 은희에게 차마 그 소중한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말못했다던 한수의 마지막 말, 그리고 친구들이 전한 한수의 처지, 그 모든 것을 은희는 짚어본 것이다.
제주로 돌아와 희망퇴직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떠나던 한수에게 온 문자, 은희는 한수에게 2억을 보냈다. 그 돈은 돈이 있어서 보낸 돈이 아니다. 그래도 한수를 이해하려고 애쓴 은희는 지난한 노력의 결과이다. 한수와 함께 바닷가에 간 은희는 한수에게 말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이제 은희는 잘 자라주지 못한, 자신의 꿈조차 이루지 못해, 그 꿈을 자식을 통해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바둥대는 한수를 그래도 '친구'로 접어준 것이다. 호식 등의 친구들에게 은희는 말했다. 니들은 어려울 때 나한테 돈을 잘도 꾸면서, 왜 한수는 나한테 돈 빌리면 안되냐고.
사람의 참모습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드러나게 된다.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동창회의 주역이 된 은희, 그리고 은희 주변의 사람들, 그건 그저 은희가 돈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꼬셔 돈이라도 빌려보려던 첫사랑, 어른들 말대로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은희는 돈을 빌려준다. 첫사랑은 잃어도 친구는 잃고 싶지 않은 은희의 '휴머니즘'이다.
그렇게 노희경 작가는 은희를 통해 사람살이를 이야기한다. 이십년도 더된 첫사랑, 그 첫사랑도 '집도 절도 없는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가장으로 바둥거리는 한수의 고단함을 은희는 헤아려준다. 그리고 힘들 때는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손을 벌리는 친구들의 자리에 앉혀준다. 그저 '밑진 장사'한 셈치고. 돈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않겠다는 은희는 큰 그림이다. 우리는 어떨까? 과연 그럼에도 '사람'을 잃지 않으려 했을까? 나의 설움, 나의 아쉬움, 그리고 나의 손해에 주판알을 튕기느라 연연하다 사람도 놓치지 않았던가.
참 멋진 여자다. <우리들의 블루스> 3회를 본 소감이다. 그 멋진 여자를 이정은 배우만큼 멋지게 표현할 배우가 있을까. 참 멋진 여자 은희 씨는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첫 사랑을 보내고, 노래를 부른다. 멋지게 나이드는 거 쉽지 않다. 딱 그녀의 노래다.
그날은 생일이었어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 더 어려워 (중략)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중략)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
2014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염전 노예 사건', 그 후로 8년이 지났다. <시사 직격> 다큐 제작진이 당시 '염전 노예' 당사자였던 57살의 백성종 씨를 만났다. 그런데 백씨는 태연하게 당시 소금을 날랐던 일을 재연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드러난 건 백씨 자신이 당시 자신이 당한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국민 분노할 정도의 일을 당한 당사자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바로 백성종 씨가 '경계성 지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4월 15일 방영된 kbs1 <시사 직격>은 우리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성 지능인들에 대해 다룬다.
피해자임을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아이 2년 전 갓 중학교에 입학한 우희(가명)가 세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우희가 자신이 당한 상황에 대한 진술이 정확치 않고 피해자답지 않다며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을까?
사건 속 CCTV에서 우희는 가해자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고도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만난다. 그렇다면 정말 우희는 '자발적'이었을까? 그런데 재수사 과정에서 심리 검사를 하게 되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우희는 이른바 IQ 70~85 사이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였다. 언어 이해와 작업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처리 속도가 평균 이하라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 대처 능력이 떨어지니 당연히 자신이 당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니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도 웃는다던가, 먼저 연락한다던다 하는 등 일반적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교육 과정에서 '지능 검사'를 더 이상 진행하기 않기에 우희의 아버지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경계선 지능'은 1995년에서야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개념이다. 그런데 전체 인구 중 약 14%나 차치한다고 한다. 7명 중 한 명인 셈이다. 즉 한 교실에 적어도 3명의 아이들이 이런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이다.
방과후 지역 아동 센터에 다니는 재훈이, 4학년인데도 리본을 묶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오른쪽과 왼쪽의 방향 감각도 헷갈린다. 웩스터 아동용 지능 검사 기준에 따르면 학습 부진을 겪는 '보더 라인'에 해당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집에 온 재훈이는 여동생의 기저귀를 척척 갈아주는 등 맞벌이 부모님을 도와주는 든든한 아들이 된다. 그러기에 아빠는 자신의 아들이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일상의 반복되는 일은 해낼 수 있지만, 공교육의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는 없는, 말 그대로 '경계'에 서있는 아이들. 아직 우리 교육 과정과 복지 정책 그 어느 곳에서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그래서 더 위태롭다고 다큐는 말한다.
초등 4학년, 2학년 두 남매가 모두 경계선 지능을 가진 엄마 연수씨의 일상은 아이들의 학원으로 가득차 있다. 한 달 교육비만 200만원이 넘는다. 숫자 개념만 익히는데 3년이 걸렸다. 연수 씨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학습 부진은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고,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등 사회성 저하를 뒤따르게 하니 할 수 있는 한 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아이들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려 애쓸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역부족인 한계가 있다. ;'느린 학습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이재경 박사는 말한다. 일반적인 아이들이 1+1을 가르쳐 주면 '맥락적' 파악을 통해 2+2를 아는 것과 달리,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그걸 다 따로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교육 과정에서 이런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결국 엄마들이 나섰다. 오산의 '느린 학습자'를 둔 엄마들의 모임, '동치미'는 학부모들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 중심에 11살 영호의 엄마 민정숙 씨가 있다. 7살에 '경계성 지능' 진단을 받은 영호는 어린이 집만 20곳에서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아이를 태우고 언어치료를 받고 가던 중 이대로 바다로 직진하면 모든 게 끝날 텐데 하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두 남매의 엄마 연수씨 역시 빛이 없는 터널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하지만 정숙 씨 부부는 포기하는 대신 적절한 자극을 꾸준히 주면 인지 기능에 느리지만 유의미한 성취를 보이는 '느린 학습자'인 아이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하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느린 학습자'인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케어'는 오롯이 부모들의 몫이다. 하지만 한 달에 100 만원이 넘는 비용은 쉽지 않다. 실제 자신의 아이가 경계성 지능을 가졌다는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알아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일반 아이들의 10배나 되는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 하지만 장애 판단이 내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교육 방법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지지만 부모가 발버둥치는 것에 비해 성취는 느리고, 사회의 도움도 없으니 사회 부적응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복지시설에 머무는 26살의 이은호(가명) 씨는 25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어떤 도움도 요청할 줄을 몰랐다.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친구는 이은호 씨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현재 은호시가 짊어진 빚만 4천 만원이다. 아직도 친구 핸드폰 요금을 대신 내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폭력에 시달린 은호 씨, 그런 은호 씨에게 친구들은 3만원을 빌리고, 젤리 한 통으로 때우는 식으로 이용을 했다. 그런 은호 씨인데도 '군대'를 다녀왔을 정도로 사회는 자비가 없다.
은호 씨는 검사 결과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렇듯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제대로 인지적 훈련을 받지 않거나, 가정에서 방임, 학대 당하거나 학폭을 당하며 점점 그 '인지적 기능'이 떨어져 간다. 또한 지역내 골칫덩어리였다가 결국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김태준(가명 분) 씨처럼 사회적 부적응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정신병인가' 했다는 태준 씨의 아버지 이해하기 어려운 아들을 늘 '그것도 못하냐'며 때렸다고 한다. 모두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태준 씨는 그 '방어기제'를 분노로 표출했다. 실제 오랫동안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인해 고심해 왔던 일본의 학자들은 상당수의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이나 '은둔형 외톨이'들의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실제 소년원생의 34%가, 그리고 보호 소년의 37%가 경계성 지능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경계성 지능 장애'의 경우 말 그대로 '경계'의 존재이기에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후 대안 학교에서 배움을 마친 최원재씨는 2014년 장애 인권 대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는 등 자립에 성공한 케이스다. 무엇보다 가족의 지지가 전폭적이었다. 원재 씨는 말한다. 조금 다른 사람들일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100의 속도로 갈 때 40~50의 속도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지능의 경계가 삶의 경계가 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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