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밤 11시 15분, 평소 같으면 <sbs스페셜>을 해야 할 시간, 대신 신선한 교양 프로그램이 찾아 들었다. <백투더 마이페이스> 말 그대로, 성형중독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복원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고 검버섯이 생기는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또래 여성들을 만나면, 그 중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나타나는 주름과 검버섯, 혹은 기미를 없애는 시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 그 이야기들은 자기 주변의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그걸 이용한다고 한다. 칠십 먹은 어르신까지도, 그걸 하고 한결 만족하셨다나 뭐라나. 심지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고 나서 보기 좋으면 됐지, 굳이 거기에 자연스러움 어쩌고 가타부타 토를 달 필요가 뭐 있겠냐는게 세상의 추세다. 나이든 사람들이 이럴진대 하물며 젊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는 증거를 없애고자 주민등록 사진을 찍기 전에 리뉴얼을 하는게 대세란다. 엄마와 딸이 손잡고 성형외과를 출입하는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태다. 성형 수술 세계 1위, 혹은 대한민국 젊은 여성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성형 경험이 있다는 수치를 들 것도 없다. 

하지만, 조물주가 만들어 준 그 상태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게 참 멈추기가 힘들다. 불완전함이 인간의 특성이듯,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외모는, 끊임없이 '수정'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니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해 질 거 같아서, 그런 욕구들은 결국, 강남 어딘가를 걷다 보면, 얼굴이 똑같은 사람들을 빈번하게 마주치게 되는, '강남녀' 혹은 '성형 괴물'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쌍꺼풀에서 시작된 질주는, 앞트임, 뒤트임, 가슴, 윤곽, 전신 성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진; osen)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시작되고, 까페에 앉아있는 열 댓명의 여자들의 사진을 들고, mc인 박명수, 호란, 그리고 일반인들이 그 사람을 찾으러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진 속의 그녀를 찾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은 까페의 그녀들에게 혼란만 느낄 뿐이다. 적게는 서너 번에서 많게는 스무 번이 넘는 성형 경험을 가진 그녀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얼굴은 슬쩍 지나간 화면에서도 너무나 비슷했다. 스스로 '성형 괴물'이라고 하며 자조적으로 웃는다. 절대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거듭되는 성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합숙을 거쳐 원하는 사람에게 원래의 얼굴을 되찾아 주는 시도를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하고자 한다. 그 시도 자체로서 신선하다. 모든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갈 때, 그걸 멈추고, 자신이 가진 본래의 것의 소중함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그 시도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합숙에 들어간 네명의 여성,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또 한 명의 남자에게, 제작진은 섣부르게 복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복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결론이 내려진 사람을 미리 발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계속된 성형에 이르게 된 과정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얼굴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자존감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맨 얼굴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여자, 거울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는 여자, 하루 종일 어디를 더 고치면 이뻐질 것인가를 연구하는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지우고 싶은 남자.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한번의 시술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백투더 마이 페이스>는 밝혀간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상황극도,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설문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속 이야기도 해본다. 그 과정을 통해 다섯 명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또 한번의 성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이 결정한다. 과거 자신의 얼굴로 돌아갈 것을. 복원에 참여하지 않은 세 명도 더 이상 성형을 하지 않고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백투더 마이페이스>는 예능이 아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예능이면 어떻고, 교양이면 어떠랴. 성형 중독이란 단어가 일상화된 대한민국은, 결국 성장과 발전의 논리를 내재화한 사람들이, 그걸 외형적으로라도 따라가기 위한 안간힘의 결과물이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가제에 불과하고,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을 고쳐서라도 이 경쟁 사회의 속도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진짜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첫 회라서 만듬새는 거칠었지만, 진짜 필요한 것이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라는 방향 제시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들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가 과연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었을 때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가 여부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백투더 마이 페이스>가 자리잡아, 성형으로 찌든 세상에 정말 한 줄기 희망과 대안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복원된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나았다. 



by meditator 2014. 5. 12. 06:24

과연 우리 국민 들 중에서 '삼성 반도체'를 다니는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민영화 11년 동안 살인적인 노무관리로 인해 자살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KT의 자살은 몰라도, 애플 대만 자회사의 자살자 증가 사실을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렇다, 그 이유는 <한겨레> 등 몇몇 신문이 보도를 하고, 특집으로 다루어 심각성을 보도해도, 공중파를 비롯한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언론 매체에서 이와 관련된 사실 보도에 침묵을 지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작 같은 하늘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무감하게 지내다, 자기에게 그 문제가 닥쳐야, 세상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시사저널)

그러기에,  [시사저널] 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언론인 부문에서 47.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라디오라는 매체를 떠나, 비록 종편이지만, 파급력이 좀 더 큰 매체로 옮겨, 야심차게 '사실만을 보도하겠다'던 손석희 JTBC사장의 <뉴스9>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미터는 바로 JTBC의 사주인 '삼성'을 어떻게 다루는가였다. 

그리고 드디어, 9월25일 <JTBC뉴스9>은 삼성과 관련된 보도의 말문을 터트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삼성전자 본과 앞에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절차에 삼성전자와 정부의 직업병 피해자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서한을 제출했다는 기사를 단신으로 다룬 것이다. 

물론 중요한 꼭지들 사이에 슬쩍 전해진 단신 보도에, 그래도 역시 삼성의 눈치를 본다며 비판의 날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공중파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삼성 직업병'과 관련된 보도를 처음으로 한 것의 가치는 그것만으로 낮아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메가박스에서 상영이 중단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보도도 했다. 천안함이 뭐? 라고 하겠지만, 중앙일보 계열 제이콘텐트리가 메가박스 지분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역시 쉽지 않은 결단인 것이다. 손석희의 JTBC<뉴스9>은 사실 보도라는 사명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 직업병' 근로자들, 유엔에 진정서 제출
(사진; 연합 뉴스)

 생뚱맞은 예이지만, 얼마 전, <라디오 스타>에는 아이돌 그룹 카라의 멤버들이 나왔었다. 여기서 아이돌 그룹 카라는 <라디오 스타>에서의 태도와 관련하여, 혹독한 복귀 신고식을 치뤘다. 한 마디로, 그날, <라디오 스타> MC들의 태도는 '니들이 뜨면 얼마나 떴다'고 하는 식으로 카라를 다루었고, 그들의 온갖 구설수와 약점을 들추어 내고, 그걸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놀림 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이렇게  뜯어 먹기에 신이 나던 <라디오 스타>가, 아니 뜯어 먹는 것을 자신의 장기로 삼는 <라디오 스타>가 MC 규현이 소속된 SM의 소속된 연예인들이 나올 때면 태도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김민종 등이 나왔을 때는, SM 홍보 방송이 아니냐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같은 소속사의 다나가 규현에 대해 뭐라 하려하자, 다나의 입을 막으며 규현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그것을 당연시 한다. 심지어 예능 조차도 내 편은 당연스레 챙기고 접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인 상황인 것이다. 

그런 방송가의 관례에서, 그래서, 더더욱 민감하고 파급력이 큰 보도 부문에서, 자신이 속한 회사의 허물을 단신으로라도 들추어 내는 용기에 박수치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삼성 직업병과 관련된 보도는 단지 삼성을 다루었다는 사실 이상의 의의가 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등 직업병과 관련된 기사는 현재 돌아가고 있는 많은 쟁점이 된 사안들에서 한 발 비껴난, 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코 좌시해서는 안될 뉴스거리들이다. 
바로미터가 되었던 삼성, 그 중에서도 소외된 사안이었던 노동자의 직업병과 관련된 보도를 했다는 것은, KT의 자살도, 그리고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외로운 외침에도 기사의 볕이 들 날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사안의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늘 정공법으로 그날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안을 심도깊게 다루는 <뉴스9>은 재밌다. 지난 선거 때 종편의 갑론을박을 빙자한 노골적 여당 편들기  시사 프로에 혼을 빼앗긴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큼. 그리고, 25일자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LH공사의 부당한 직원 재교육 과정을 폭로한 기사처럼, 스스로 발로 뛰어 찾아내는 기획 기사의 품새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LH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의 돈으로 움직이는 국영 기업 전체의 부조리한 관행으로 파악하는 점에서, 뉴스를 보는 시선도 예리하다. 
손석희의 <뉴스 9>은 볼 만하다. 


by meditator 2013. 9. 26. 09:39

이제는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님이 쓰신 수필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느 가난한 노파의 집을 찾아가게 된 박완서 작가님, 그곳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있는 노파의 아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몸조차 늙어 버거운 노파는 그 커다란 덩치의 아들이 버거워 욕을 하며 이리저리 굴리듯 아들을 다뤘다. 
그걸 본 박완서 작가님은 질투심에 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가 되었었다고 고백하듯 쓴다. 바로 그 얼마전 '참척'(부모를 놔두고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난), 그것도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보내셨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들이 죽어서, 그걸 견딜 수 없어서 세상과 벽을 쌓고 수녀원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는데, 비록 가난하고 늙고 병들고, 아들조차 일어설 수 조차 없어도 살아있는 아들을 만질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박완서 작가님같은 분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힐링 캠프>에 출연한 이지선씨의 오빠는 오래도록 그와 반대인 고통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in heaven' 뮤직 비디오 마지막 장면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차에 갇혀 불 속에서 죽어가는 여인을 보며, 오빠가 너를 저렇게 놔뒀어야 하는 게 아니었냐는 말 속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같았던 지선씨의 고통의 시간을 막연히 가늠해 보게 한다. 
그러나 이지선씨의 담백한 소회의 뒤편을 가늠하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시간을 , 박완서 작가님의 질투심의 본연인 그 '생명'의 손을 놓지 않고,  지선씨와, 지선씨의 식구들은 그저 살아있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용감하게 고통의 시간을 건너왔다. 아니, 그저 건너온 것이 아니라, 식구들이 지선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게 이겨왔다.
지선씨의 가벼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숨겨져 있는 고통와 아픔이 헤아려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다던 김제동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뭉클한데, 그런 시간을 견뎌온 지선씨는 웃으라며, 편하게 웃으며 말한다. '손가락 마디를 다 자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며


'꼬아보지 마세요'
눈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밝게 이야기하는 이지선씨 임에도, 그런 긍정의 여왕 이지선씨를 선뜻 믿을 수 없는 이경규는 언제나 그렇듯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아니 이경규만이 아니다.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아직도 일그러진 이지선씨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녀가 겪어온 고통의 시간을 들은 시청자들조차 그녀의 밝은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지선씨는 웃으며 단호하게 한 마디를 건넨다. '꼬아서 바라보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티하나 없는 '무한 긍정'이 비단 이번 이지선씨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역시나 <힐링 캠프>가 가장 본연의 자태를 잘 드러내는 자리였던 지난 번 '닉 부이치치' 역시  '긍정적'이라는데 있어서는 이지선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라는 '닉 부이치치'와 '훙해서 어떻게' 하는 이지선씨가 오히려, 더 밝고 긍정적인 것이다. 영혼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영혼의 무게가 묵직할 그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보통사람이 욕구하는 삶을 극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해탈'의 경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저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닮아 하던 사고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지선씨의 결론이 그저 헛 말만은 아니라는 공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해 자신을 들볶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냐는 질문에, 바로 오늘이라며 지선씨는 해맑게 웃는다. 제 아무리 긍정의 여왕이라도 ,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밖에 나갈 때마다 연예인과 자신의 닮은 점 10가지의 주문을 외며 용기를 냈던 지선씨가 공중파 텔레비젼이라는 세상 밖으로 나온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by meditator 2013. 9. 10. 10:17

<꽃보다 할배>의 시청률이 7%를 넘었다.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중 <슈퍼스타K>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가장 높은 시청률일 것이다. 더구나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할아버지들의 '황혼 배낭여행'이라는 어찌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얻은 것은 수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한 감마저 있다. 그 정도로 할배들의 여행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 일색이다. 
이렇게 <꽃보다 할배>가 붐을 이루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나날이 낮아지는 시청률로 인해 고전하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인간의 조건>이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런칭'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두 프로그램의 엇갈리는 희비는 아이러니하다. 

나영석 피디는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본인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 였다고 슬그머니 발을 뺀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떠나와, 프로그램의 인기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케이블이라는 전쟁터로 들어온 것에 대한 감회를 '도전'으로 대신했던 그의 소감을 기억에 떠올려 보면, <꽃보다 할배>가 나영석,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브랜드가 되어가는 아이디어 뱅크의 출사표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 바로 전에 시도한 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은 이른바 <1박2일>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의 해가 저무는 시점에, 관찰 예능으로서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꽃보다 할배>가 그저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담는 '관찰'에 집중하는데 비해, <인간의 조건>은 여섯 남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측면에서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지만, 4회 정도에 걸쳐 굵직한 대 미션과 매회 주어지는 소미션이 주어지는 점에서는 리얼리티 예능의 성격도 지니는 '과도기적'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똑같이 나영석 피디가 만들었음에도 이제 30회차를 넘어가는 <인간의 조건>은 처음만 못한 화제와 인기에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처음 <인간의 조건>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을 때, 그 분위기는 <꽃보다 할배>와 유사했다.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네 할배와 한 명의 짐꾼처럼, 그저 웃기는 개그맨으로만 접했던 여섯 남자에게서, 문명의 이기를 빼앗자, 아날로그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좀 비약은 있겠지만, 나영석 피디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만들어 낸다 싶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개개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치중한다. 이서진이란 그저 잘 생겼던 남자 배우를 몰래 카메라를 통해, 그 예전의 허당 이승기 못지 않은 국민 짐꾼으로 돌변시키고, 직진 순재에, 로맨티스트 박근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영석 피디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뚱뚱한 개그맨이었던 김준현을 아날로그한 감성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는 여백이 넘치는 인간으로, 온갖 웃기는 분장으로만 다가오던 정태호를 따뜻한 엄마같은 인물로 만들어 낸 것도 바로 <인간의 조건>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같이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던 두 프로그램인데,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의 조건>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30회 정도 되니 인기가 떨어질 때도 돼서? <1박2일>이 꽤나 오랜 시간 국민 예능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을 되돌아 보면, 겨우 30회차에 벌써 피로가 누적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인간의 조건>을 질리 새도 없이 매 달 새로운 미션이 들어가고, 더구나 최근엔 <꽃보다 할배>처럼 휴가 미션까지 했는데?

아마도 그 결정적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 캐릭터의 변주에 있어, <인간의 조건>이 그 깊이를 더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31회 '휴가의 조건' 4부에서 완성된 김준현의 피톤치드를 앞에 두고 여섯 멤버는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호명한다. 김준호는 '호감, 호감, 비호감', 김준현은 '뚱이, 뚱이, 뚱뚱이'에 양상국은 '활동'을 담당하고, 박성호는 '불혹'이란 식이다. 여전히 허경환은 '얼굴'이요, 정태호는 '엄마'다. 처음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여섯 남자에게 주어졌던 캐릭터에서 30회차를 넘은 지금까지 이들의 캐릭터에 별 변화가 없다. 첫 회에 보았던 이미지랑, 지금의 이미지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납작한' 캐릭터로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군분투한다. 

반면에 <꽃보다 할배>는 겨우 8회만에 캐릭터들이 롤러코스터다. 직진 순재였던 이순재가 다리가 아픈 일섭을 위해 독일어까지 해가면서 길을 알아보기에 분주한 따스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드라마에서 엄격한 회장님이었던 박근형은 부인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내느라 바쁜 로맨티스트다. 사람 좋아보이기가 한량 없던 신구는 시즌 2에서 숨겨왔던 외국어 실력을 내보이며 짐꾼이 필요없단 말이 나올 만큼 리더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영문과 출신 일섭은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가 최고요, 대화는 한국어로 완성된다. 게다가 떼쟁이일줄 알았더니, 정의의 화신이란다. 
사실 <꽃보다 할배>의 내용은 별거 아니다. 여행을 가서 무언가를 보고, 뭘 찾아 먹고, 잠잘 곳을 마련하고,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속에서 찾아내지는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매회 샘솟듯 솟아나는 출연자들의 색다른 면모에 젊은 사람들조차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분명 여섯 남자의 색다른 인간적인 면모였었다. 그런데, 30회를 지난 지금, 여섯 남자는 처음 그 자리에 아직도 서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정태호는 부지런히 음식을 하고, 무언가를 만든다. 김준현은 열심히 시간만 나면 먹고, 뚱뚱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속내와 능력을 내보인다. 김준호는 여전히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잔머리를 쓰기에 바쁘다. 
미션도 해야하는 과도기적 성격이 <인간의 조건> 멤버들의 인간적 모습의 능력을 활짝 펼치는데 방해가 되는 걸까? 돌아가면서 미션 수행하는 모습만 줄줄이 나열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많은 걸 해내는데, 막상 기억에 남는 건 점점 드물어 진다. 

이번 <휴가의 조건>에서 박성호는 시간이 주어지자 용감하게 혼자 사이판 행을 감행한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의 여행 과정은 다른 멤버들이 제주도를 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비춰진다. 그걸 보면 제주도를 가건, 사이판을 가건 무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꽃보다 할배>에서 하듯이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먹을 곳을 찾고, 여행을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꽃보가 할배>와 비교된다. 할배들이 거리를 걸을 때, 화면을 결코 쉽게 지나친 적이 없다. 직진 순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하고 기가 막힌 배경 음악이 깔린다. 박성호가 사이판의 밤길을 동네 개들을 두려워하며 걷는 모습은 그저 맹숭맹숭 지나쳐간다. 사이판에서 박성호는 여전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자 잘 노는 형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꽃보다 할배>에서 한지민이 할배 일행과 조우할 뻔하다 엇갈린 일이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일정상의 조율 문제로 엇갈렸을 뿐인데, 인간의 도리까지 나오면서 갑론을박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의 조건>에 아이돌 그룹 멤버인 이준이와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미 이준이란 개인의 캐릭터 자체가 여기저기 온갖 프로그램을 다니면서 소진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멤버들의 모습도 새로울 것이 없었기에 화제를 끌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준과 함께 마빡이를 했다? 그건 화제조차 되지 못했다. 
한때 <남자의 자격>에 몸담았던 김준호가 프로그램에서 꽁트를 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좌장 격인 이경규가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꽁트가 당장 인트턴트 식 웃음을 만들어 낼 지언정, 기본적으로 캐릭터로 깊어져야 하는 프로그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를 거듭할 수록, 캐릭터는 여전한데, 꽁트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을 보다보면, 무엇을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을 초대하기 보다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과 인간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을 활용하란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조건>의 정체 혹은 하강은 미션의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그 미션을 요리하는 방법과, 그것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여섯 남자의 매력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초심으로 되살리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8. 25. 10:23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를 보기에 앞서,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를 보았다. 

40년차 양희은에서, 겨우 2개월의 김예림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선, 후배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말로는 즐기겠다고 하지만, 수차례 바뀌는 편곡의 리듬에, 화려한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무대 장치에, 한 사람 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를 무려 두 팀이 어우러져 혼신의 노력을 해댔으니, 때로는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존재감있는 무대였다. 그걸 보면서, 조금 있다 보게 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떠올리며, 과연 이제 그 프로그램이 케이블의 사생결단 서바이벌과, 공중파의 다양한 대결 프로그램들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버틸 수 있을까란 회의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래도, 200회인데, <슈퍼 매치>의 우승자를 뒤로 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채널을 돌렸다. 아, 그런데, 초라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없을까? 나의 오산이었다. 여전히 200회를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MC 유희열이 부른 마지막 노래 '여름날'처럼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뉴스24)

비록 이 지면은 아니었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을 감격해 하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 데,  200회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의 100회 특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그랬었다. 100회 특집의 이름은 'The Musician', 무대에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가수를 위해 무대 뒤에서 수십년 묵묵히 연주를 해왔던 연주자들에게 헌정하는 특집이었다. 기타의 대가 함춘호와, 하림과, 50여년을 아코디언을 연주한 심성락 선생의 연주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 특집을 위해 인순이, 루시드 폴 등 가수들은 무대의 중심이 아닌,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겨이 그들의 백댄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무대의 감상을 묻는 시간, 함춘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에, 그 프로그램이 100회 라는 시간을 건너왔기에 용기를 내어 마련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마련했었던, 루시드 폴과 함께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여 다시 부르던 포맷은 이제 <나는 가수다>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아이유, 효린 등 신인 가수가 나와 선배의 노래를 다시 부르던 기획은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을 노래하는 상시적 아이템이 되었다. 한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mbc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늘상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오던 일상의 숙제이다. 이제는 스타가 된 아이유와, 알리와, 존박 등이 떨리는 모습으로 조심스레 무대에 서던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으니까. 금요일 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요일 0시 반에 시작하여, 2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밤도깨비 같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화려하게 조명받지 않아도 꾸준히 우리의 음악을 다양한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풍성하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세간에 그들의 이름과 음악만으로 회자되는 언더 그라운드의 밴드와, 인디 뮤지션들이 처음으로 무대를 서는 기회를 얻는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12년만에 첫 무대라며 눈물을 적시며 떨던 '바스코'에게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케이블에서도 조차 명멸해가는 고품격 음악 방송들 사이에서도, 늦은 시간이라도 감지덕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간이 흘러 200회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은 'The Fan'이다. 
이번 <슈퍼스타K>시즌 5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한경일'이다. 200년대 꽃미남의 가수로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던 가수로, 이제 다시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한경일이란 기존의 가수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나와야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 가수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가수들의 가수, 가수들이 팬이 되어 좋아하는 가수,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미처 그들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 가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에 출연자를 보면, 물론 이승환이나, 이현도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가수들도 있지만, 그 중 김태우, 윤도현, 바비킴 등은 타방송의 대결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가수들이다. 심지어 그 중 바비킴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에 이어 <슈퍼 매치>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렇게 인기 가수들이 중복되어 몇몇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 특집의 자리를 내주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다운 기획이고, 그러기에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빛나고, 아직도 이 프로그램이 존속해야 할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 되었다. 

(사진; osen)

이효리의 '콜'에도 '시간 나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며 시크하게 자신의 음악과의 어울림을 고민했다던 김태춘,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우는 기분이라며 감격해 마지 않지만, 그런 그들이 여전히 하드 롹을 고집해서 좋다는 윤도현과 로맨틱 펀치의 어울림, 장기하 보다 더 맛깔나게 가사를 음악에 맞춰 요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한 김대중, 지금까지 박정현과 함께 했던 임재범, 김범수 등에 견주어 결코 그 음색의 독특함이 뒤지지 않는 이이언, 그리고 까다로운 유희열이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극찬을 한 선우 정아까지,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해 각기 자신의 장기를 뽐내듯, 컨트리, 락,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실력자들이 있었어 라고 감탄하게 되는 특집의 시간이었다. 

마치, 당신들이 편식하는 음악 뒤에,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우리는 이런 세상을 당신들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인도하고 싶어요 라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200회 '음악으로 전한 소감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남들은 거리를 싸돌아 다니며 불태우는 금요일 밤을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고 앉아 불침번을 서게 만드는 버거운 싸움을 계속하게 만드는 고단하지만 기대에 부푼 강요의 시간이다. 
Let's go 300회!


by meditator 2013. 8. 24. 10:03

자, 여기서 역사 문제 하나 내보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과연 이 정의는 타당한 것일까?
흔히 역사는 마치 DNA 의 나선구조처럼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결과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클레파트라의 코는 그 중 우연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우연도, 필연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역사적 결과를 놓고 클레오파트라라는 역사적 인물을 '폄하'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들이댄 잣대에 불과하다. 저녁 무렵 술 자리에서 술 한 잔에 끼얹은 농지꺼리처럼. 왜냐하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역사적 결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줄 우연적 사건도 아니요, 필연적 귀결도 아니니까. 하지만, 증권가 정보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해석에 귀를 기울인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리고 <썰전>의 강용석이, 그가 주장하는 해석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베'와 "강용석'은 지난 번 강용석의 'NLL문건'과 관련한 여당 인물의 사퇴 무리수 운운 이후, '일베'나 혹은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실망했다', 심지어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일한 궤적을 지닌다. 
친척 중학생이 재미있어서 들여다 보게 된다는 '일베'가 그 돌출적인 입장(?)으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지만, 전혀 다른 포지션으로 그것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강용석이다. 

(사진;tv리포트)

처음, 강용석이 텔레비젼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아나운서'와 관련된 말도 안되는 언급과 그와 관련하여 '개그맨'을 고소하겠다는 등, 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켜 그가 소속된 집단에서 조차 방출된 '또라이' 정도로만 보였었다. 더구나, 그가 처음 'TVN'에서 진행한 '고소한 19'는 그의 캐릭터에 맞게, 제작진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된 요지경 세상사로, 그가 보여준 캐릭터와는 유사성을 지니되, 탈정치적 프로이기에 큰 무리없이 방송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출신에, 서울대에, 유학까지 화려한 스펙에 걸맞는 화려한 입담과 박학다식함은 곧 그를 돋보이게 했고, 결국 그를 JTBC의 시사 프로<썰전>에 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처음 <썰전>에서 그가 안철수를 물어 뜯고, 박원순을 발목 걸을 때만 해도 '팽'당한 주제에 이른바 여당 저격수로 활동하던 시절을 잊지 못한 채 '지 버릇 개 못준다'는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썰전>의 회가 거듭될 수록, 강용석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즐기는 이철희 소장과 달리, 강용석은 허겁지겁 그가 가진 지식을, 그가 준비한 정보들을 즐비하게 나열했고, 시청자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를 '전문가'로 받아들이기에, 그가 제시하는 의견들을 전문가적 견지의 식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시탐탐 정치인으로 '리바이벌'을 꿈꾸는 강용석은 <썰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수복'하기를 노렸고, <썰쩐> 앙케이트에서 '이미지 세탁'이란 평가조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전환을 야곰야곰 진행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썰전>에서의 강용석의 발언들은 이미 얼마간 이루어진 대중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보이는 입장이, 과연 그가 지향하는 '건강한 보수'의 이미지와는 거기가 멀 뿐만 아니라, 이제 <썰전>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그의 입장은 더 이상, <썰전>의 자막처럼 '상상의 나래' 정도의 파급력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주 <썰전>에서, 강용석은 국정원을 규탄하기 위해 시청 앞에 모인 촛불 시위자들을 '동원'이라고 했다. 자기가 여당을 해보았는데, 동원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모일 수가 없다고 장담을 얹었다. 어디서 들어봤던 언어의 스타일 아닌가? '내가 해봤는데.....' 이 더위를 무릎쓰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인 진심들을, 관광버스를 타고 돈을 받아 동원된 알바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이번 주 <썰전>에서는 안철수의 멘토로 나섰던 최장집 교수의 <내일> 포럼 이사장직 사퇴를 두고, 내 돈 내고 하기 싫어서, 잘못하면 내가 뒤집어 쓰게 될 것 같아서, 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철희 소장 표현대로, 재야 학계의 거두를 '돈'을 중심으로 행보를 달리하는 속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딱 증권가 찌라시에나 실릴 법한 해석이다. 그걸 보수라고? 보수는 정치적 입장이지, '클레오파트라 코가 높아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식의 루머는 아닌 것이다. 이철희 소장이 화를 낸 것은 강용석의 입장이 자기와 달라서가 아니라,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상대방을 낮잡아 보거나, 폄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나와 다른 입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중심으로 사안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상대방을 '속물'이나 '찌질이'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은연 중에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가장 비열한 수법을 번번히 강용석은 유지해 간다. 
예전같으면 '찌질한' 강용석이 하는 말이기에 우스개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 야금야금 이미지 세탁을 통해, 어느덧 '전문가'의 견지에 오른 강용석이 하는 말은, 그저 웃고 넘어가기엔 불쾌하고, 불편하며, 위험하다. 

(사진; tv리포트)

처음 <썰전>이 시작되었을 때, 종편의 여당 위주의 편파적 입장 전달과 달리, 여, 야 각 정파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정치, 사회적 현안을 다룬 기획이었기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제 24회차에 이르른 <썰전>이 과연 공정한 정치 비평 토크쇼가 되고 있는지 제작진은 준엄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듯하다. 
아마도 지금쯤 강용석은 재야에서도 '야당 저격수'로 불철주야 헌신하는 그를 어느 분인가 알아주어 정치에 복귀할 날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용석의 비평이라는 명목을 내세운 야당, 혹은 야당 인물의 루머성 흠집 내기를 '상상의 나래'라는 표현으로 눈 감아주기에는 도를 넘었다


by meditator 2013. 8. 16. 10:12


정상 이하의 지능을 가졌거나 감정 폭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경이적인 지적 재능을 보이는 희귀한 증상

 kbs2의 월화 드라마 <굿닥터>의 남자 주인공, 성원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로 1년간 임시 고용된 박시온(주원 분)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임상 병동 순시 과정에서 김도한 교수의 지시 사항을 고스란히 머리에 입력할 정도로 복사기와 같은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하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 자폐적 장애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 <굿닥터>는 그런 비정상적인 주인공 박시온을 내세워, '좋은 의사'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KBS월화드라마 굿닥터 -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력과 사랑. 다시 시작되는 KBS 휴먼 메디컬 드라마!


역설적이다. 

그의 임용 자체가, 그가 역에서 응급 상황 하에서 아이를 살린 해프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듯이, 환자와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사라는 직업에, 그것이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자체가 도발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2회 만에, 죽은 형과 토끼가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는 레지던트라는 전문 직업임에도 여전히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박시온을 통해 과연 의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김도한(주상욱 분) 교수이지만, 그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병원의 시스템, 집도의의 말 한 마디에 수술실 밖으로 내팽개쳐지거나, 말 한 마디 못하고 주먹을 맞아야 하는 상명하복의 군대식 서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도한에게 맞은 박시온을 토닥이며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너의 행동이 어쩌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고 달래주는 차윤서(문채원 분)의 영혼없는 설득(드라마 속 윤서는 또 하나의 박시온처럼 행동한다)처럼, 이른바 보다 편의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그 운용 여부에 따라 굳어져 버린 관료 체계화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분명, 위태로운  환자의 상태 하나만을 보고, 담당의나, 수술방 예약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다짜고짜 환자를 밀고 들어가는 행위는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대책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말의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두달은 여사로 기다리게 만드는 현재의 대학 병원의 대기 순번 체제에, 겨우 기다리다 의사라고 만나면, 환자와 눈을 마주치기는 커녕, 앞에 있는 차트나 모니터만 들여다 보다, 또 몇 가지의 검사나 하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처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 체계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합리성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들이, 말도 안되는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의 돌발적인 행위에 공감하게 만드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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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학 드라마에서 병원내의 비인간적인 관료적 의료 체계는 이미 '클리셰((문학·예술 평범한 수법)'처럼 등장하고 있다. 2012년의 화제작이었던 <골든 타임>에서 헌신적인 의사 최인혁을 가로막은 것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병원의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브레인>의  의사 이강훈은 그 자신이 그 체계의 수호자에서 희생자로, 그리고 다시 저항자로 거듭나는 히어로로 그려졌었다. 이제, <굿닥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김도한 교수의 정의가 가장 냉철하게 정확한, 오로지 인간을 살리겠다는 순수 의지만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박시온을 통해, 지금의 의료 체계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문제 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충격적 요법을 통한 문제제기 방식은, 2013년에 들어서 화제작으로 관심을 끈 작품들의 공통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직장 내 갑을 관계를 사회적 문제로 까지 환기시킨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은 그 어떤 정규직도 넘보기 힘든 많은 자격증과 자격증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3개월 임시직을 고수한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뿌리박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을 관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최근 종영한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선생님이, 가장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 아이들을 조련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똘똘 뭉쳐 선생님에게 대적하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자생력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남들을 밟고 혹은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양산하는 경쟁 제일 주의의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가장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을 등장시킨 것이다. 

직장, 학교에 이어, 이번엔 병원이다. 

당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서번트 증후군이라면 어떨까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 아마도 백이면 백 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누구나 의사로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내세워 의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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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학교, 병원,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그리고 이젠 가장 시스템화되어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체계 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무시되어져 가는 제도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들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들이다.

거기에 드라마들이 질문을 던진다. 마치 골리앗에게 자그마한 바윗돌을 던지며 덤비는 다윗처럼, 

거인을 만나러 가는 다윗을 보고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변할 수 없다고, 한 개인이 어찌 해보기엔 무력하다고 느끼는 존재들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선,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 선생이나, <직장의 신>의 미스김, 그리고 <굿닥터>의 박시온처럼 역설적 인간형이 필요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7. 10:00

이런 게 방송이 되겠어?'

이 대사는 첫 방송을 앞둔 <이적쇼>를 두고 이적이 <방송의 적> 도중에 한 말이다.  주변의 친구들이 너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단독으로 토크쇼를 하면 누가 보겠냐는 조언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에 앞서 가장 먼저 회의을 표명한 사람은 이적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슷한 대사를 이적은 <힐링 캠프>에서 또 읊조린다. 왜 힐링 캠프가 자신에게 출연 요청을 했을까? 혹시 누가 펑크를 냈나? 과연 이게 방송이 될까? 이제 곧 한혜진이 영국으로 가는데 지금 방송이 안되면 자신의 방송분은 영원히 묻히는데? 
하지만 이게 방송이 되냐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세상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송의 적>과 그 안의 코너 <이적쇼>는 순항중이고(물론 때로는 존박쇼가 되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건 어떻건 힐링 캠프 이적 출연분은 방영이 되었다. 

(사진; 스포츠 월드)


<힐링 캠프>의 도입부 게스트 소개에서, mc들은 이적을 소개하기에 앞서 '국민 가수'라는 호칭을 들먹인다. 하지만 '국민가수'에 걸맞는 사람으로 mc 자신들도 '조용필'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냐며 자평을 한다. 이승철은 끼워넣어 주고, 부활은 이경규가 친분으로 어거지로 갖다 붙이고. 그러더니 뜬금없이 이적 소개로 넘어간다. 나오는 이적 자신도, 자신 정도의 게스트로 방송이 될까를 걱정하며 소심하게 처신을 하고. 
<sbs 스페셜-대한민국 가수, 조용필> 편을 보면, 국민 가수란, 그저 팬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필과 동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기쁠 때, 외로울 때, 그리고 사랑을 할 때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던 것처럼,  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던 노래를 불렀던 가수를 말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거위의 꿈'을 비롯해, '달팽이', '왼손잡이', '하늘을 달리다', '다행이다'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낸 이적이야 말로, 차세대 국민 가수감이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런데, 조용필이나, 이승철과 달리, 이적에게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버거워 보인다. 그가 그렇게 수많은 노래들을 통해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도 어쩐지 그는 그의 세대인 유희열이나, 김동률, 심지어 윤종신보다도 이른바 포스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걸고 하는 <방송의 적>이란 프로그램을 보면, 포스는 커녕, 한참 아래 후배 존박과 존재감을 놓고 아등바등거리는 그가 만만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건 <힐링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그만한 '엄친아'가 어디 있겠는가. 형제들과 함께 서울대를 나오고, 어머님은 1세대 여성학자에, 때로는 안쓰는 근육을 쓰는 느낌으로 원서를 읽으며, 13만부가 팔린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다. 
그런데, 서울대를 나온 수재는 학창시절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처음 작곡을 한 소년의 이미지에, 학자인 어머님의 존재는, 이분들이 나를 지켜주지 않겠구나란  세속적 깨달음으로, 책을 많이 읽는 지식인은 음담패설을 즐기며, '낯선 여자'를 좋아하는 속물의 풍모에 밀려버린다. 심지어,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노래가 불려진 아티스트가, 방송 분량을 걱정하며, <다행이다>를 이경구의 심장 수술 버전으로 바로 바꾸어 불러주고, 낯선 여자를 주제로 한 즉흥곡을 만드는데 거침이 없다. 
김동률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거위의 꿈' 가사를 단숨에 써버렸다는 걸 보면, 말만 하면 말하는대로 툭툭 만들어 내는 걸 보면, 천재는 천재인 거 같은데, 그 예전 살리에르가 보고 분노했던 천박한 천재 모짜르트를 보는 것처럼, 어쩐지 천재로 인정하기엔 너무 범상하다. '아우라' 따위는 개나 줘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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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이 가수의 본업에 충실하라 조언을 할 정도로 개가수가 되어가는 이적의 장점은 아마도 그 평범함이 빗어내는 친근감일 것이다. 
<방송의 적>에서 이적은 늘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 부풀려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언제나 신인 가수 존박에게조차 밀릴 정도로 보잘 것 없다. 한껏 허세를 부려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잘 것없고, 하지만 이적은 그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결코 마다치 않는다. <힐링 캠프>에서 방송이 될까를 걱정하는 이적의 캐릭터와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경규가 늘 누군가에게 묻혀간다는 지적에, 그렇게라도 살아남는게 어디냐는 담백한 토로가 어울리는 지점이기도 하고. 

그런데 리얼리티 쇼에서의 어설픈 허세어린 모습이, 그리고 토크쇼에서의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모습이, 그의 동년배들, 그리고 이제 서른 중반을 넘긴 그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공감대를 자아낸다. 
그 세대가 그렇다. 자식 하나나 둘 낳는 시절에, 누구나 다 나름 '엄친아'였고, 한 가닥씩 하면 사회에서 자리잡아 가려고 하는데, 영 포스가 안 나는 세대인 것이다. 그 앞전의 세대는 민주화다 뭐다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경제 발전기의 떡고물로 그런대로 잘 먹고, 잘 나갔는데, 이제 이적으로 대변되는 세대는, 나름 배울만큼 배우고, 이룰만큼 이루었는데, 영 때깔이 안나는 것이다. 경제는 불황이라 하니 내일을 알 수 없고, 자신이 이룬 것들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다. 반면, 별로 내세울 게 없으니 어깨에 힘 좀 넣으려 해도 넣어지지 않는, 그래서 눈 앞의 조그만 행복, 조그만 욕망에 솔직한 그 세대의 전형적 캐릭터로써의 이적을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캐릭터가 발견되기 시작한 곳은 일찌기 캐릭터 발견의 귀재였던 <라디오 스타>였다. 그것을 증폭시킨 것은 <무한도전>이었고, 이제 그는  <방송의 적>을 통해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가 되어, 이적이란  세속적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소비시키는 중이다. 이 황당무개하고 어의없는 리얼리티 쇼에서, 얍삽하려 노력하지만 늘 별로 건지는 것 없는 '이적'을 연기하는 이적이 그럴 듯해 보이는 건, 방송의 적 이적과 실제의 이적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소탈하고 소박한 유형의 '이적'을 동시대의 표상으로 예능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이담에, 이적이 '국민 가수'가 된다면, 그때의 국민 가수는 조용필이나, 이승철의 아우라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국민 가수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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