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개과천선>이 종영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상반기 드라마 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장르물'의 약진도 함께 마무리 된 듯하다. sbs는 5월 1일 <쓰리데이즈> 종영 이후 형사물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방영중이지만, 형사물의 외피를 쓴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경우는 장르물이기 보다는, 신참 형사들의 성장기와, 늘 그렇듯이 경찰서에서 연애하기에 촛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kbs2의 월화 드라마<빅맨>의 후속극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트로트의 연인>이고, 수목 드라마<빅맨>의 후속 <조선 총잡이>는 개화기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기반해 있긴 하지만, <공주의 남자>와 비슷한 무협복수극에 가깝다. mbc <개과천선>의 후속은 <운명처럼 널 사랑해>, tvn<갑동이>의 후속은 <연애말고 결혼>처럼 로맨스물로, 마치 그간 장르물로 찌푸려진 미간을 달달한 사랑이야기로 달래주겠다는 듯이 약속이나 한 듯 익숙한 사랑 이야기들이 포진한다. 


 포토 보기


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성취
되돌아 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 경쟁까지 벌이며 장르물이 시청률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고, 반면, 겹치는 장르의 드라마가 동시에 반영되는 바람에, 갈리게 된 시청층은, 안그래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던 장르물의 시청률을 깍아먹어, 장르물 자체의 대중성을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절도 불사하고, 개연성 따위는 제껴둔 채,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한류붐에 편승하여, 막장의 전개조차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2014년 상반기의 궤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공공 자산으로서의 방송의 책임을 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장르물의 첫 포문은 3월 5일 <쓰리데이즈>가 열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신경수 피디, <추적자>의 손현주, 그리고 20대의 대표적 배우인 박유천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이끌었던 <쓰리데이즈>는 걸고 넘어진 것은 도발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재벌 기업의 컨설턴트라는 과거를 가진 대통령(손현주 분)은, 과거 자신이 공모자가 되었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인한 양진리 양민 학살의 진실을 한태경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나선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당장의 먹고 사는 나라 경제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대통령은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나라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써의 진실된 본문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을 둘러싼 집단과, 직책에 따른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장임에도, 양진리 학살 현장에서 동료들을 잃었던 함봉수(장현성 분)는 대통령의 저격에 나섰고,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최측근이던 신규진(윤제문 분) 그의 국가관에 따라 대통령에 맞서 김도진의(최원영 분) 편에 서지만, 결국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이제는 그 단어 조차도 생경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정의가 피상적인 글 속의 문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 일의 문제라는 것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통해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한태경)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넘치는 헌신이다. 

공교롭게도, <쓰리데이즈>가 드라마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에 대해 논하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 제기가 되었고, 드라마 이상의 공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포토 보기

장르물이 바라본 2014년의 대한민국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 전, 혹은 바로 지금 맞부닦치는 현실의 사건들을 길어올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되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빅맨>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애꿏은 젊은이의 생명을 엿보는 재벌가의 실상은, 그들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골든 크로스>의 상위 1% 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 그리고 <개과천선>을 통해 그려진 부실 환율 상품 사태, 재벌 그룹 경영권 싸움,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은 우리가 이미 사회면을 통해 익숙해진 사건들의 복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장르물이나 사회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 사회, 국가 체제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2014년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이다. 
즉 8,9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부추키는 억압적 체제의 국가, 즉, 국가 자본주의 형태였다면, 이제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 문제 의식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절대 악은 자본(쓰리데이즈의 김도진, 빅맨의 강동석)이거나,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의 화이트 칼라군(개과천선 차영우, 골든 크로스 서동하)이다. 

이들 장르물과는 약간의 궤를 달리하며 <갑동이>는 십여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의 사이코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를 내뱉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니가 감히 나를'를 되풀이 하는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차영우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서동하의 성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기에 배태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사회적 의식은 바로 이들 장르물의 악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들은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포토 보기

장르물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나, <개과천선>의 김석주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했던 과오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빅맨>의 김지혁,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 <갑동이>의 하무염처럼,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의 복수로 부터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게 자기 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이들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사회적 각성과 자각을 거치며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즉 진정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 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 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그 검사보가 변신한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같던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한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으며, 감옥을 나온, <골든 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하지만,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순수한 정의의 인물들을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불굴의 진리로 귀결한다. 

때로는 키쓰신이 있기도 하고, 안타까운 밀땅도 있었지만, 대부분, 2014년의 핍박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이들 장르물은, 인기를 추구한 드라마들이 노린 웃음기와, 개인기와 사랑 놀음조차 마다한 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의 공감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설명할 길이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조차, 새삼스레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쓰리데이즈>처럼,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하반기, 그리고 2015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이나, 환타지'가 아닌 진실로 위로하는 장르물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7. 18:34

6월 17일 16부작으로 kbs2 tv의 월화 드라마 <빅맨>이 마무리지어졌다.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현성 에너지의 회장이 되어, 1년이 지난 후 김지혁은 기념으로 연설을 한다. 처음 자신이 회장이 되었을 때, 자신이 대단한 걸 이룬 것 같아 대견했었다고,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른 후 깨닫게 되었다고 김지혁은 말한다. 그저 자신이 한 일이란, 자기 주변을 조금 바꾼 것 밖에는 없었다고, 그렇게 자신이 조금 바꾼 주변이,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고. 김지혁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지기 쉽다고. 이기기 힘들다고. 김지혁은 힘주어 말한다.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을 위해, 우리 끝까지 힘을 모아 싸워 나가자고. 지지 말자고.  그렇게 김지혁이 말을 하는 동안, 단상의 자리는 비워져 있다. 마치, 세상의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싸워 줄 진짜 김지혁을 기다리는 듯이. 


드라마 자체로만 따지고 보자면, <빅맨>에 내려질 평가는 결코 호의적일 수 없다. 
시장 바닥 양아치 김지혁이 그들의 심장을 원하는 현성 가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 초반의 반전은 그럴 듯했다. 허수아비 사장이었던 김지혁이 강지혁이 되어, 현성 유통의 사장이 되어 불어 일으키는 바람은,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로서의 호평은 거기까지다. 그 이후 드라마 <빅맨>은 마치 어린이 잡지의 만화를 보는 듯 순진하고 단순했다. 재벌 기업의 회장 아들 강동석은 매번, 감히 니들이 나를! 이라는 대사만 반복하며, 자신보다 나은, 시장 바닫 양아치 출신 김지혁에 대한 열등감으로 집착하며, 그런 강동석에게 당하는 김지혁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마지막 연설에서 그가 말한 바, 그의 주변 사람들의 선의이자, 정의이다. 강동석이 온갖 협잡을 하며, 김지혁을 굴러 떨어뜨리면, 그 주변에서, 그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결국 김지혁의 인간에 대한 믿음에 감동하여 결국 김지혁의 편에 서서 강동석을 무찌른다. 김지혁이 내건 사훈, '우리는 가족입니다'와, 늘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믿을 건 인간 밖에 없다'는 그 지론이 일관되게 드라마를 끌고 간다. 심지어, 강동석 주변에서 일관되게 그에게 충성을 하던 도실장마저도, 끝내는 현성의 개가 되고 싶지 않다며 제 발로 경찰서로 향하는 시점에 이르면, 실소를 지나, 수긍하게 된다. 그렇지, <빅맨>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이 정도가 되면, 만화도, 초등 고학년이 아니라, 저학년들이 즐겨 볼 수준의 스토리텔링 수준이다. 

image
(사진; 스타 뉴스)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마지막 회를 다가가면서, 묘하게, 김지혁의 인간론, 그리고 그 인간론에서 비롯되는 개혁들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 말도 안돼? 어떻게 다 저렇게 돌아설 수 있어? 우리 사원 지주제? 말이 좋지, 그게 가당키나 해? 사람들을 믿는다고?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정말 결국 조금씩 바뀌면 되는 건데, 우리나라 재벌들, 말이 좋아, 회사 주인이지, 반은 커녕, 1/3도 안되는 주식으로 서로 돌려막기 하면서,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는 건데,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잖아? 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 마지막 회, 김지혁이  연설에서, 자신이 한 것은, 그저 주변을 조금 바꾼 것이라고 했을 때, '작은 불씨 하나가~'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6월 16일 한겨레 신문에 도쿄 경제대 서경석 교수는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는 칼럼을 기재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책을 근거로 한다. 즉,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글을 통해 오늘날 지식인 본연의 자세를 위협하는 것은 아카데미도, 저널리즘도, 상업주의도 아닌, 전문주의(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단언하며, 오늘날 교육 수준이 높아질 수록, 사람들은 좁은 지(知)의 영역에 갇혀 순종적이며, 자발적인 상실의 존재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이익이나, 이해, 편협한 전문적 관점에 속박되지 않는 아마추어리즘, 즉, 사회 속에서 사고하고 걱정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가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정의내린다.

그리고, 바로 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그리고 그의 의견을 빌은 서경석 교수의 아마추어리즘을 빌어, 종영을 맞은, <빅맨>을 옹호하고자 한다. 
분명, <빅맨>은 어설프다. 스토리 라인은 단순했고, 그것을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단선적이었다. 하지만, 대신, <빅맨>은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에 충실했다. 머리를 굴려야 이해할 수 있는 현학적 대사들 대신에, 단순하게 인간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인간의 변화를 추구했다. 너무 순진해서 '풋'하고 실소가 나오는, 그것이, 김지혁을 거대 기업 현성의 회장이 되게 한 힘이었다. 그리고 김지혁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은 그걸 환타지라 치부해 버리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빅맨>을 구성했던 이야기의 골조들은 사실이다. 회사의 주인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사장도 그들의 손에 의해 뽑히는 게 맞고, 그것을 함께 의논해 나가야 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1/3도 안되는 지분으로, 거대 그룹의 주인입네 하는 재벌들의 현실은 틀린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원칙들을, 세상 살이에 물든 우리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 주인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런 우리의 알면서도,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진실을, <빅맨>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서경석 교수가 말한 바, 그 어떤 이익이나 이해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원칙으로 단순하게 담백하게 말한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던 세속에 찌든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어린 아이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이듯, 16회로 종영한, <빅맨>의 순진무구한 주제 의식이, 이기는 법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6. 18. 00:41

이제 4회를 남긴 <빅맨>,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내세운 탄원서철 사이에 강동석이 한 이면 계약서를 끼워넣어 역전을 노렸지만 결국 검사는 현성 유통 직원들이 내세운 법정 관리인 김지혁(강지환 분)에게 사기 전과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강동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망하고 나선 김지혁과 구덕규(권해효 분)등에게 현성의 직원들이 다가온다. 김지혁은 자신이 모자라서 죄송하다고 말을 하고, 그런 김지혁에게 노조원들은 반문한다. 왜 사장님이 죄송하냐고, 함께 하자고 한 건 우리인데, 라며 김지혁을 독려한다. 그러자 김지혁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함께 좀 더 열심히 해보자고 하고, 직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부등켜 안는다. 멀리서 그런 김지혁과 현성 직원들을 지켜보던 법정 관리를 다룬 검사,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직원들이 이전에 내세운 탄원서를 읽어보고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부도가 나서 법정 관리가 이루어진 회사에 가장 필요한 건 직원들이 원하는 사장이라며 김지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빅맨>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12회에 이른 지금까지 한결같다. 노조원 중 한 사람의 배신이 알려진 후 과연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로 골머리를 썪힐 때, 김지혁은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그런 우리가 사람마저 잃으면 무엇을 가지고 저들을 상대하겠냐고. 이것이 바로 1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행되어 온 <빅맨>의 '휴머니즘'이다. 

시장 바닥의 양아치 김지혁이 우연히 강동석의 꼭두각시로 현성 유통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가 진짜 기적을 일구고, 이제 다시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돌아오기까지, 김지혁의 일관된 노선은 '사람'이다, 즉 그가 주장하듯, '사람만이 희망이다' 
현성 유통에 어렵게 공급된 우유를 사먹은 사람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그 사람의 안위였다. 그런 그의 방식이, 대기업들의 보이콧으로 비워진 현성 유통의 매대를 순진우유로 채울 수 있었다. 바로 현성 유통 직원의 떡고물로 인해 하청에서 떨어져 나갈 뻔하던 순진 우유를 살려준 것이 김지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장이 되었던 현성의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그가 가족처럼 여기던 시장 사람들이었고, 그의 진심이 그를 무시하던 직원 구덕규와, 최유재(김지훈 분)를 돌려세웠고, 그가 사장으로 보인 성의에 노조원들이 돌아섰다. 제 아무릭 급해도 '리베이트' 대신, 사장의 초심과 진심에 호소하는 김지혁의 방식이, 현성 유통의 법정 관리인으로 그를 만들었다. 

(사진; 메트로)

<빅맨>은 착한 드라마이다. 결국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믿어야 할 것은 너와 나의 진심이요, 우리가 힘을 합쳐야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순수하고 곧은 의지를 일관되게 내세운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빅맨>의 휴머니즘이 싱겁다. 분명이 옳은 말이고, 올바른 방향인데, 너무 세상이 세속적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런 빅맨의 순진 혹은 순수함은 어쩌면 바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일 수도 있겠다. 과연 정말 김지혁처럼 가진 것 하나 없이 순수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회사를 살리고 싶은 직원과 노조원들이, 또한 김지혁을 믿고 자신의 상권을 내준 시장 사람들이 온갖 권모 술수는 물론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이 사회의 '갑'들을 대항해 내세울 무기가 결국 누군가의 '감성'에 호소하는 휴머니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 사실 <빅맨> 속 주장들은 다양하다. 대기업 상권과 시장 상권과의 충돌 속에서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에 주목하고, 대기업 유통망에 짖눌린 중소 기업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하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들도 제대로 일한 댓가를 받고, 대접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포함된다. 하지만,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들면서도, 그 해법이 늘 김지혁의 인간적 설득과, 누군가의 감성적 결단이라는 식이 되어버리니, 이젠 어떤 이야기가 등장해도, 또 그렇게 해결하려니 한다. 

<빅맨> 속 등장인물들은 결국 '성선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지혁이 내건 사람 냄새에 홀려 사람다운 일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순간 김지혁이 설득하려고 나섰던 그들이 자신의 불리함을 넘어서는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12회에 이를 동안 김지혁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빅맨>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가 가진 착한 인간에 대한 절대 신뢰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러기에 때로는 늘 한결같이 김지혁의 휴머니즘에 동참하는 그들이 어쩐지 '꿈'같기만 하다. 어디 사람이 모질고 싶어 모질어 지는 것인가, 세상이 사람이 모질게 만드는 것일진대, 드라마<빅맨> 속 길은 마치 모범생의 모범답안같이 예외가 없다. 그러기에 모범 답안을 벗어난 모범생이 무기력하듯, 인간에의 호소를 벗어난, 김지혁과 동료들의 행보는 그래서 때로는 허무해 보이며, <빅맨>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고민을 던진다. 

재벌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조화수(장항선 분)의 표현대로 '강아지 새끼'처럼 자신의 이익을 향해 모든 것을 수단화시키며 내달리듯, 애초에 시장판 양아치가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빅맨>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환타지'이다. 그리고 그 환타지는 가장 이상적인 휴머니즘에 입각해, 모두가 힘을 모아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잘 해보자 라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회의가, 착한 드라마<빅맨>을 보다보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복수' 드라마에 맛들인 시청자가 보기엔,<빅맨>은 순수 무공해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 건강한 음식과도 같지만, 어쩐지 그게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고, 맛도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드니, 세상의 떼가 묻은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을'들의 속시원한 해법이 '인간적 호소' 외에는 마땅치 않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빅맨>은 명쾌한데, 어렵다. 


by meditator 2014. 6. 4. 05:15

공교롭게도 공영방송 kbs2의 월화 수목 드라마는 복수를 꿈꾸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5월 20일 방영된 <빅맨> 8회,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 두 장의 유전자 검사서를 손에 쥔 강지혁(사실은 김지혁, 강지환 분)은 소미라에게 달려간다.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해도 당신만을 믿을 만하다고 했던 소미라가 김지혁에게 전해준 말은 '미안하다'였다. 달려온 김지혁에게 강동석(최다니엘 분)은 말한다. 원래 가진 것이 없었던 당신은 그저 잠시 가졌다가 다시 빼앗겼을 뿐, 원래 잃은 건 없지 않냐고. 하지만, 김지혁은 포효한다. 절대 잃어서는 안될 걸 잃어버렸다고. 왜 나에게 가족이라고 속였냐고. 당신들에게 꼭 되갚아 줄 거라고.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김강우 분)도 마찬가지다. 은행을 다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 가게 할 돈 좀 융통할 능력도 없냐며 다그치던 그가 서동하로 인한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좌절하고 분노한다.

(사진; 뉴스엔)

<빅맨>의 김지혁과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은 그저 평범한 사내들이었다. 비록 가진 건 건강한 몸 밖에 없는 김지혁이지만, 한때 몸 담았는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시장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려던 사람이었다. 강도윤 역시 마찬가지다. 얼른 검사가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의 안위만을 챙기는 재벌가의 이기심이, 상위 1%의 커넥션 안에서 재미 좀 보려던 경제계 관료의 삐뚫어진 행태가 그를, 그의 가족을 희생으로 삼는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았으면 그저 평범하게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이나 챙기며 살았을 그들이 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기적 행위로 말미암아 개인과 가족의 미래를 빼앗기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개인과, 화목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낸다. 

<위험 사회>에서 올리히 벡은 오늘날의 정치는 오늘날의 사회 제도들이 양산해 내는 항시적 위험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근자에 우리 사회를 좌절과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세월호에서 부터, 잊을만하면 우리 사회 전체를 혼돈에 빠뜨리고 마는 각종 전염병, 핵 등으로 인한 재해 등이 단지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근거로 한 근대적 체계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위험 요소들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그런 공포가 사람들을 자각하게 만들고, 21세기의 정치적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위험 사회>의 정치적 시민의 자각 과정은 <빅맨>과 <골든 크로스>의 분노와 유사하다. 원자화된 개인이나, 전근대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쳐 온 자신들의 힘으로써는 어쩌지 못할 구조화된 제도를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위험에 빠지게 된다. 당장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또 다른 개인들의 이기주의처럼 보이지만, 진실에 다가갈 수록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키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형태이다. 희생자였던 김지혁이 오히려 재벌 아들 강동석을 대신하여 검찰에 체포되고, 사기범으로 몰리며, 그 과정에서 철저히 검찰과 변호사는 현성 그룹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왜곡하는 그 과정이나, 희생된 것은 강도윤의 동생인데 서동하의 측근 들을 통해 오히려 강도윤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저 '개인'이고, '가족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분노하고, 깨달으면서,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진; 뉴스엔)

개인의 분노에서 출발한 <빅맨>과 <골든 크로스>는 그 개인적 분노가 그저 한 개인의 일이 아님을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밝힌다. 재벌 회장가의 자기 아들 심장을 탐하는 이기심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의 탐욕이 상위 1%의 전횡과 부도덕의 항시적 산물임을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는 골몰한다.  드라마는 많은 회차를 할애해 주인공들의 복수 이전의, 그들을 파멸로 이끈 저들의 부도덕과 전횡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 사회의 불균등한 부가 그저 더 가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덜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행복조차 짓밟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김지혁과 강도윤을 덮친 불운이 그저 그들에게 닥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재해가 사회적 결과물이듯이, 그들에게 닥친 불행 역시 구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위험 사회> 속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공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개인'으로 떨쳐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드라마는 분노로 시작된 주인공들이 그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는 저들의 실체를 알고, 그들을 정죄하는 과정을 환타지로써 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각성의 교과서로 사용하고자 한다.모처럼 공영 방송으로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천한다. 


by meditator 2014. 5. 21. 10:26

5월 13일 방영된 <빅맨>에서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직장의 신>에서 마케팅분 만년 과장이던 고정도 과장으로 출연했던 김기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장의 신>에서는 만년 을의 신세였던 고정도 과장은,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내려가, 현성 유통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 역이었다. 현성 유통 건물 로비에서 그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영업 팀장 최유재(김지훈 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HACCP(한국 식품 안전 관리 인증)도 땄는데 왜 납품이 거절되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최유재는 단호하다. 그런 최유재를 지켜보던 강지혁(강지환 분)은 한 마디 한다. '먹었네, 뭘 먹었어' 

그리고 최유재를 사장실로 부른 강지환은 최유재의 뇌물 수수를 추궁한다. 그 옆에서 재무팀장 구덕규(권해효 분)는 결코 최유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극구 편을 들지만, 정작 최유재는 가슴에 손을 제대로 대지도 못한 채 버벅거리다 자기 측근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잠시후 부리나케 납품업체 사장을 찾아나온 그, 직원들의 월급을 주려고 제 2금융권이라도 알아보라며 전화를 하던 납품업체 사장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따라나온 강지혁도 함께.

<직장의 신>의 고정도 과장의 등장으로, 이 장면은 더더욱 을들의 각성을 일깨웠던 <직장의 신>이 오버랩된다. 그러고 보니, 현성 유통에 강지혁이 등장한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파업을 하던 노조원들과, 그들을 때려부수려고 나타난 구사대가 함께 죽은 비정규직 직원의 초상을 트럭에 그리고 반목하던 노조원들과 관리직들은 파업의 종료되었다는 소식에 손을 맞잡고 기뻐한다. 사장이던 강지혁이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가고, 제일 앞서 구사대와 싸운 결과이다. 분명 강지혁은 사장이지만, 시장판에서 뼈가 굵은 거리의 남자 강지혁이 현성 유통에 들어와 한 일은 <직장의 신> 미스 김이 일으킨 변화와 비슷한 궤적을 가진다. 



<빅맨>은 현성 그룹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의 심장에 무리가 생기면서, 그의 심장 역할을 하기 위해 급하게 구해진 강지혁이 현성의 아들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재벌가의 속사정을 까발리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빅맨>에서 재벌가의 비리와 부도덕이라는 이야기의 한 축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빅맨>에서 흘러가는 스토리의 관찰자 시점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소미라(이다희 분)이다. 강동석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강지혁의 호흡기를 스스로 떼려했었지만, 뜻하지 않게 강지혁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점점 변화되어 가는 사람이다. 현성 그룹의 FB팀장으로, 그룹의 수족이 되어 회장님의 갓김치까지 구해다 바치는 마름 역할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강동석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던 야심을 가졌던 그녀이지만, 강지혁의 옆에 있으면서 조금씩 '양심'이란 것이 일깨워진다. 회장님의 수발만 들면 그뿐이었던 그녀이지만, 사고치는 강지혁을 수습하면서 자꾸 양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뿐이라는, 도상호(한상진 분)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던 그녀였지만, 강지혁을 지켜보며 울리기 시작한 양심의 소리는 급기야는 강동석의 결혼 신청까지 미루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강동석과 강지혁, 소미라의 사랑이라는 삼각 관계도 개입되지만, 그것만이 아닌, 갑의 세계를 내재화했던 하지만 결국은 을이었던 소미라의 자기 자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소미라의 자각은, 최윤재의 자각과도 일맥상통한다. 납품업체 사장에게 고개를 수그리며 최윤재는 말한다. '그간 제가 갑질에 너무 익숙해 졌었나 봅니다'라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 갑을 관계, 즉 을이면서 동시에 갑이 되는 이중적 존재들의 탈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맨>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갑질을 하던 을들의 자각이다. 그런 을들의 자각에 매개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갑이 된 을' 하지만 갑임에도 불구하고 을의 정체성을 지닌 강지혁이다. 그런 강지혁의 등장으로, 결국은 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하던 을들이 점차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을의 자각은, 또 다른 을과 합류하며, 인간미 넘치는 상황을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례식이 그것이요, 시장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낸 자로끄 패션쇼가 그것이다. 을이 을로써 자각하여, 을과 함께 함으로써, 한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걸, <빅맨>은 4회에 이를 동안 꾸준히 주장한다. 그리고 아마도, 시장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던 강지혁이듯이, 앞으로의 강지혁의 행보에서, 이 변화된 을들의 존재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리고 아직은 가장 강력하게 강지혁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을, 하지만 현성 그룹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비리와 부도덕을 가장 직시하는 그의 변화도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5. 14. 06:33

또 한 편의 재벌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재벌의 부도덕한 비리를 다룬, 그래서 그 비리로 인해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이 침해받고 훼손당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kbs 2tv에서 새로 시작된 <빅맨>이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굴지의 기업 현성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고 과정에서 손상을 입은 강동석의 심장은 이미 한번의 심장 이식 수술을 했던 상태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강동석의 엄마이자, 현성 그룹의 안주인 최윤정(차화연 분)은 흉부외과 과장을 다그친다. 당장 자기 아들의 새로운 심장을 찾아내라고. 아직 대기자가 많다는 의사의 말에 그딴 것들이 다 무슨 말이냐고 다그친다. 강동석의 아버지 강성욱(엄효섭 분)도 다르지 않다. 비서실장을 통해 아들의 심장을 대체할 만한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사진; 와우 경제)

<빅맨>속 재벌이 새삼 경악스러운 것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 밖의 모든 다른 사람들의 목숨 따위는 당연히 제껴져야 하는 것이거나, 수단으로 사용될 대상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들의 목숨을 대체하기에 적당한 김지혁(강지환 분)을 찾아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뇌사 상태에 빠뜨리거나, 막상 그가 뇌사에서 깨어날 지경이 되자,'폐기'하라고 지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타인의 생명을 경원시하다 못해 도구화하는 재벌의 등장은 이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새삼스럽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 <빅맨>은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타인의 심장을 탐하는 또 하나의 신선한 재벌의 부도덕한 아이템을 더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재벌이 공영 방송의 10시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 따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 나라의 재벌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빅맨>의 출발점이자,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 이미 <빅맨>의 전작, <태양은 가득히>의 재벌 한태오(김영철 분) 역시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정세로(윤계상 분)의 삶을 앗아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본의 아니게 자신의 심장을 빼앗길 뻔한 김지혁(강지환 분)의 복수를 다룰 것 같은 <빅맨>이 정세로의 복수극이었던 <태양은 가득히>와 그리 차별성이 없어보기기도 한다. 

물론 단선적으로만 비교할 일은 아니다. 복수를 하기도 전에 복수의 상대방의 딸과 사랑에 빠져 복수하는 시간보다, 사랑의 늪에 허우적거리던 시간이 더 많았던 순정파 정세로와 달리, 스스로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모토가 분명해 보이는, 살인 미수의 범죄를 벗아나기 위해 스스로 범인을 찾아 경찰 앞에 들이대는 김지혁이라는 캐릭터는 첫 회부터 꽤나 역동적이다. 즉, <빅맨>의 성공 여부는, 바로 뇌사 상태에서 살아나 졸지에 재벌 회장 아들이 되어버릴 것 같은, 김지혁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신선하며, 개연성있는 복수극을 전개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 강지환의 연기에 의존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주인공 역할의 강지환은 고무적이다. 이미 그의 전작, sbs의 <돈의 화신>을 통해 검사에서 부터 정신병원 환자까지 종횡무진 다양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설득해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의 진폭이 컸던 전작은 또한 <빅맨>의 그의 연기에서 전작의 그늘을 찾아내게 할 수도 있을 만큼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1회만으로도, 뒷골목 양아치에서 하루 아침에 재벌 회장 아들로 금의환양하는, 하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할 그 캐릭터에는 강지환만큼 적역이 없어 보인다. 



또한 강지환 외에, 이미 1회에서 아들의 일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속엣말을 참지 못하는 재벌 회장 부인 역의 차화연이나, 이미 <비밀>을 통해 서늘한 욕망의 매력을 선보인 이다희의 연기 역시 기대해 볼만 하다. 아직 병상에 누워 있지만, 최다니엘 버전의 재벌 회장 아들도 기대가 된다. 이 신선한 조합의 연기자들의 조화 속에 <빅맨>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오늘자 신문에도 등장하듯이, 재벌의 불황은 국가의 곳간을 열어 해결해 주려 애쓰면서도, 정작 재벌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여는덴 인색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해마다 경기 지표는 나아진다는데, 서민들의 장바구니 삶은 고단하고 갈수록 피폐해 진다. 그럴 때 유일한 오락이라면 그래도 이런 재벌을 상대로한 통쾌한 복수극이라도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해보자, 뭐 이런 것이, 공영방송 kbs2의 뜻깊은 처사가 아닐까, 그게 <빅맨>의 출사표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by meditator 2014. 4. 29. 01:59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