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성취되돌아 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 경쟁까지 벌이며 장르물이 시청률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고, 반면, 겹치는 장르의 드라마가 동시에 반영되는 바람에, 갈리게 된 시청층은, 안그래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던 장르물의 시청률을 깍아먹어, 장르물 자체의 대중성을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절도 불사하고, 개연성 따위는 제껴둔 채,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한류붐에 편승하여, 막장의 전개조차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2014년 상반기의 궤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공공 자산으로서의 방송의 책임을 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장르물의 첫 포문은 3월 5일 <쓰리데이즈>가 열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신경수 피디, <추적자>의 손현주, 그리고 20대의 대표적 배우인 박유천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이끌었던 <쓰리데이즈>는 걸고 넘어진 것은 도발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재벌 기업의 컨설턴트라는 과거를 가진 대통령(손현주 분)은, 과거 자신이 공모자가 되었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인한 양진리 양민 학살의 진실을 한태경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나선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당장의 먹고 사는 나라 경제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대통령은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나라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써의 진실된 본문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을 둘러싼 집단과, 직책에 따른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장임에도, 양진리 학살 현장에서 동료들을 잃었던 함봉수(장현성 분)는 대통령의 저격에 나섰고,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최측근이던 신규진(윤제문 분) 그의 국가관에 따라 대통령에 맞서 김도진의(최원영 분) 편에 서지만, 결국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이제는 그 단어 조차도 생경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정의가 피상적인 글 속의 문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 일의 문제라는 것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통해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한태경)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넘치는 헌신이다.
공교롭게도, <쓰리데이즈>가 드라마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에 대해 논하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 제기가 되었고, 드라마 이상의 공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장르물이 바라본 2014년의 대한민국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 전, 혹은 바로 지금 맞부닦치는 현실의 사건들을 길어올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되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빅맨>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애꿏은 젊은이의 생명을 엿보는 재벌가의 실상은, 그들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골든 크로스>의 상위 1% 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 그리고 <개과천선>을 통해 그려진 부실 환율 상품 사태, 재벌 그룹 경영권 싸움,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은 우리가 이미 사회면을 통해 익숙해진 사건들의 복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장르물이나 사회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 사회, 국가 체제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2014년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이다.
즉 8,9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부추키는 억압적 체제의 국가, 즉, 국가 자본주의 형태였다면, 이제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 문제 의식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절대 악은 자본(쓰리데이즈의 김도진, 빅맨의 강동석)이거나,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의 화이트 칼라군(개과천선 차영우, 골든 크로스 서동하)이다.
이들 장르물과는 약간의 궤를 달리하며 <갑동이>는 십여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의 사이코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를 내뱉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니가 감히 나를'를 되풀이 하는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차영우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서동하의 성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기에 배태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사회적 의식은 바로 이들 장르물의 악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들은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장르물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나, <개과천선>의 김석주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했던 과오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빅맨>의 김지혁,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 <갑동이>의 하무염처럼,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의 복수로 부터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게 자기 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이들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사회적 각성과 자각을 거치며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즉 진정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 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 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그 검사보가 변신한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같던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한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으며, 감옥을 나온, <골든 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하지만,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순수한 정의의 인물들을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불굴의 진리로 귀결한다.
때로는 키쓰신이 있기도 하고, 안타까운 밀땅도 있었지만, 대부분, 2014년의 핍박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이들 장르물은, 인기를 추구한 드라마들이 노린 웃음기와, 개인기와 사랑 놀음조차 마다한 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의 공감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설명할 길이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조차, 새삼스레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쓰리데이즈>처럼,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하반기, 그리고 2015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이나, 환타지'가 아닌 진실로 위로하는 장르물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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