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5월 14일에 방영된 <개과천선>, 경찰서에서 우연히 혜령(김윤서 분)과 마주친 김석주(김명민 분), 혜령은 김석주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침을 뱉는다. 모욕을 당했다 생각한 김석주는 항의하려 하고, 그런 김석주를 이지윤(박민영 분)은 말린다. 도대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까지 겪느냐는 김석주의 말에, 이지윤은 정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냐고 반문하면서, 차영우(김상중 분)가 내가 알고 있는 당신보다 실제 당신이 20배나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당신은 지금 어렴풋이 알게되는 당신보다, 20배, 아니 그 이상 더 나쁜 놈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이지윤의 말에 긴가민가 했지만, 시스타 호 서해 기름 유철 사건 와중에서 얼핏 떠오른 자신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린 김석주는 결국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만다. 결국 서해안 어민들의 생계를 빼앗은, 그리고 노인 한 분이 건물에서 떨어지도록 절망케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석주가 포기한 시스타 호 사건을 맡고 '로또'를 맞은 듯 기뻐하는 강팀장(이한위 분)처럼 그저 높은 수임료로만 측정되었던 사건의 이면에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이 숨겨져 있음을 병원에서 도운 환자의 보호자가 건네 준 음료수 한 병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김석주는 비로소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독특한 시도를 한다. 우리가 흔히 밥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참치 통조림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각종 물류 과정을 거쳐, 참치 통조림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을 샅샅이 훑어본다.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그런 알랭 드 보통의 시선을 따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난 고기들이 포장에 얌전히 쌓여, 그들이 도살되는 과정의 살육의 잔인함이 사라지듯, 많은 현대인들이, 원자화되어 책임지고 있는 일들 역시 그 일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책임과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밥벌이로만 전락해가고 있는 과정을. 숫자에 둘러싸인 회계 업무와, 기계 장치로 산적한 물류 과정에서 먹거리로서의 참치 통조림의 의미는 유실되고, 그저 숫자와 과학적 수치로만 계산될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부재는, '도대체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이다.
(사진; 스포츠 서울)
최유라 작가의 <개과천선> 역시 마찬가지다.
개과천선이라는 선명한 결과를 제시하는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촘촘히 김석주라는 이 시대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자신을 잃고 되찾아 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간다.
태진 전자 인수건을 둘러싼 과정에서, 변호사로서의 김석주가 가진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통해, 충분히 비도덕적일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더니, 이제 시스타 호 보상 사건을 통해, 그 비도덕적인 일의 범위가 그저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실제 삶을 빼앗고,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또'라는 표현처럼 높은 수임료, 그에 따른 명망이라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능력이라는 배후에, 5년 동안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어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석주는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5회의 김석주는 그런 면에서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과 통한다.
이동휘 역시 팔콘이라는 기업의 컨설턴트로서 기업 이익의 극대화라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양진리에 북한 잠수함 투입이라는 작전을 실행토록 한다. 또한, 이제 막 기업 회장이 되어 어떻게 하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있는 김도진에게, 남한 사회의 불안이 곧 기업에게는 노다지가 됨을 교육한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개입했던 양진리 사건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애초에 기획된 양민 학살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석주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다치면서, 비로소 돈과 승소라는 업무적 효율성의 근거로만 보았던 사건들의 실체에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휘가 그랬듯이, 김석주 역시 자신이 일이 가져온 무책임한 사회적 결과를 느끼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쓰리데이즈>의 김은희 작가와, <개과천선>의 최유라 작가가 공통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이 사회의 거대한 비리나, 부도덕의 폭로가 아니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닦뜨리고 있는 거대한 슬픔의 현장에서 우리가 낱낱이 목격하고 있는 무책임과 방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잊고 무디어져 가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두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기억하겠다고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라며, 우리 사회에서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일에서 사회적 채무를 다하고 있냐고 김석주와 이동휘를 통해 두 드라마들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일들이 고도로 체계화되면서, 개인들은 그 아래 원자화된 부속품으로 그저 각자의 일의 미시적인 분야에만 골똘하도록 편제되어 간다. 그러기에 더더욱, 각자가 자신의 일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길어내지 못한 채 그저 몇 푼의 돈이나, 직위로만 그 일의 의미를 치환하기 십상이기 쉽다. 그러기에 알랭 드 보통은 굳이 식탁 위의 참치 통조림을 거슬러 남태펴양의 참치 잡이 어선까지 갔을 것이다. <개과천선>의 김석주나, <쓰리데이즈>의 이동휘가 우리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참치 통조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잊었거나, 무시했던 삶의 수단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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