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둘러싼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했던 임경재(박원상 분)의원이 의문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음을 당한 후, 강도윤(김강우 분)은 홀홀단신 나서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여의치 않다. 그의 입은 막아지고, 그는 그의 동생이 맞았던 서동하(정보석 분)의 골프채 앞에 던져지게 될 뿐이다. 결국 마이클 장 대신 쏜 알렉스(김재헌 분)의 총을 맞고 쓰러진 강도윤은 생매장이다시피 흙구덩이에 던져지고, 그의 몸 위에 솔선수범하여 흙을 덮은 후, 서동하는 빛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3년 후 경제 부총리 내정자가 된, 이제는 경제계의 거물로 장인인 김재갑(이호재 분)마저 어쩌지 못할 사람이 된 서동하는 야심차게 토종 펀드를 조성하려 하고, 그런 그의 앞에 세계 투자은행들의 VVIP들만 상대하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 테리영이 나타난다. 강도윤과 똑같이 생긴.

검사보로서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던 강도윤은 결국 골든 크로스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실패했다. 그리고 그가 맨 몸으로 부딪친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와 힘을 합친 사람들은 하나씩 무너져갔다. <빅맨>에서 김지혁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지만, 강도윤에게 희망이 되주던 양심적인 국회의원도, 의협심이 가득했던 기자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간다. 그리고 강도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장의 변호사가 되어 나름 가면을 뒤짚어 쓰는 듯했지만, 여전히 강도윤은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이였다.

골든 크로스 16회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제 3년이 흐른 후 나타난 테리영은 얼굴만 강도윤일뿐, 그 어느 곳에서도 검사보 강도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술이 거나해진 서동하와 박희서(김규철 분)가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의 동생을 죽였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테리영이 된 강도윤은 유쾌하게 웃어제낄 뿐이다. 애증의 서이레(이시영 분)가 찾아와 읍소를 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다. 그 무엇을 해도 '을'이었던 그가 이제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목줄을 틀어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인 '갑'이 되어 그들을 좌지우지 하고자 한다. 그런 그의 변신에, 서동하는 말한다. 그가 강도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치 않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펀드의 매니저라는 사실뿐이라는 사실이라고. 

서동하와 박희서가 테리 영 앞에서 굽신거리고, 마이클 장이 그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 이제 그들의 목줄을 죈  또 다른 '갑'이 되어, 그들을 휘몰아쳐 몰락시킬 일만 남은 존재가 되어 나타난 강도윤으로 인해, 그토록 몰리기만 했던 복수는 이제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만이 남았다. 
그런데 어쩐지 허전하다. 결국 16회까지 이른 드라마는 평범한 서민의 아들 강도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듯해서 말이다. 
사실 점만 찍지 않았을 뿐, 결국 돌고 돌아, <골든 크로스>가 도달한 '복수'는 여느 복수 드라마의 클리셰와 다르지 않다. 약자였던 주인공은 그를 핍박하던 상대에게 한없이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고, 그러다 사라져버리고, 한참 후에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즉 신분 세탁을 거친 존재로, 이전에는 그들에게 당하는 위치였다면, 이젠 그들의 목을 죌 위치가 되어 나타나 지금까지 당한 것들을 하나하나 복수해 나간다. 결국 <골든 크로스>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 분)을 비롯하여, <상어>의 한이수(김남길 분)가, <적도의 남자>의 김선우(엄태웅 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간 <골든 크로스>가 우리 사회 상위 1%의 전횡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실감나게 그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강도윤으로서의 복수의 실패는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티없이 맑았던 배우 지망생이었던 강도윤의 동생,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그 두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검사보였던 강도윤이 나섰을 때, 함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서동하의 딸 서이레, 국회의원 임경재, 기자 갈상준의 패배나 몰락은, 이제 의문의 펀드 매니저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의 복수에서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씌여졌다.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싸움은 철저히 패배가 되어 강도윤과 함께 흙에 묻혀 버리고, 이제 복수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로서, 오로지 환타지로서 드라마는 '복수'를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성공이, 현실의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점을 찍고 누군가 실력자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위에 설 수 있는 갑이 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상위 1%를 대항한 싸움은 불가항력이라고 드라마는 말하는 것같아 아쉽다.

16회 땅에 묻히기 까지 강도윤은,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싶은 평생을 남의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의 평범한 아들이었지만, 이제 테리영은 클럽 골든 크로스의 대표 홍사라가 뒷배를 봐주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 또 다른 힘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싸움은 무기력한 패배라는 걸 16회에 이른 <골든 크로스>가 스스로 확인한 셈이 되었다. 제 아무리 이제 부터 벌어지는 강도윤, 아니 테리영의 복수가 칼바람이 분다 한들, 어딘가 씁쓰레해지는 지점이다. 여전히 '복수'에 방점이 찍힌 드라마들은, 복수를 당할 자들의 전횡에 골몰하다, 전세를 역전시켜 그들에게 당한 만큼 몰아부치는 '복수'의 '양'에 몰두한다. 하지만, 점을 찍고 나타나, 또 다른 갑이 되어 댓가를 치뤄주는 복수는 환타지일뿐, 진정 우리 사회의 '을'들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누군가의 아들 강도윤의 실종과, 테리영의 대두가 결국 '을'들의 무기력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환타지'로서의 복수는 그저 '환타지'일뿐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