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이토록 우리 곁에 친근한 단어로 씌여지는 때가 이 시대이다. 더구나, 2014년 4월, 5월, 그리고 6월은 온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과연 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만 할까? <sbs스페셜>은 <다친 마음의 대물림, 3대를 간다>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의 치유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본다. 


당연히 다큐의 시선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향한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부모님을 걱정했다는 착한 딸과,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돌아와 책을 사겠다며 남겨둔 기특한 아들을 '수장시켜버렸다는' 장순복, 유성남씨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 흘리는 대로, 혹은 공황상태이면 공황상태인 대로, 심지어는 죽은 언니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할까봐 울음을 틀어막거나, 형을 따라가고 싶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차마 맘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가족들에게 찾아간 재난 전문가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자, 가슴 속에 응어리들은 조금씩 풀어져 나온다. 

하지만 우리, 우리 사회는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를 덮친 트라우마는 비단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도, 성수대교 붕괴 사고도, 그리고 대구 지하철 참사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뿐, 여전히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살아남은 신옥자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사고 이후, 하다못해 자동차 헤드라이트까지 끄고 다녀야 하는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면서, 그녀와 그녀 남편의 일상은 피폐해져갔다. 사고 당시 꿈많은 여고생이던 손미영씨는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자살 시도와 자해를 되풀이해왔다. 


트라우마는 비단 심리적 기제만이 아니다. 뇌단층 촬영을 통해 보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편도체가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뇌의 손상을 입는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는데, 심지어 임신을 하고 있는 엄마가 트라우마를 겪으면, 태어난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성향을 유전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면서 스트레스에 더 과하게 반응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트라우마의 유전은 손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3대에 걸쳐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1년간의  시간을 트라우마의 골든 타임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잘 치유가 된다면, 유전이 될 정도로 무서운 트라우마는 아물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때 치유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1년후, 혹은 몇년, 심지어는 몇 십년이 지나서도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911테러 이후 다수의 사람들을 희생한 한 지역에서는 병원 부설 치료 센터를 만들고, 피해자 중 센터장을 뽑아, 지속적으로 911테러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를 돌보아 왔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활동 등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끼지 결연을 맺어 상실의 아픔을 보다듬을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수의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벗어나,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sbs스페셜이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우리 사회도, 미국 911테러 후속 조치들처럼 사회적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골든 타임 안에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치유의 방식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공동체를 통한 유대감을 재확인 시켜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치료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각자의 트라우마를 각자의 가족이 짊어진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세월호 사건 수습 과정에서 보여진 정부, 해운사, 해경 등의 대응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그 유족과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까지 챙길 깜냥이 되겠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책을 세우기 보다, 유족들이 들고 일어날까 경찰부터 붙이는 시스템이, 과연 그들의 트라우마 골든 타임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해법이 존재하기에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6. 2. 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