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호청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불만은 바로 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간이다. 불금 아니 불금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간, 12시 하고도 2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시작된다. 아니 그것도 운이 좋으면이다. 요즘처럼 월드컵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함흥차사이다. 6월 27일 혹은 2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5주년 방송이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5주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브라질 월드컵이 16강전에 앞서 하루를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호청자들의 불만, 방영 시간의 불리함을, 정작 mc인 유희열은, 그것이 바로 '가늘고 길게' 5주년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 중 하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희열의 말을 듣고 보니, 밤 11시 대에 공중파, 케이블을 막론하고, 야심차게 편성되었던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정말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그 애매한 시간대는, 제약이 아니라, 정말 생존의 조건일 수도 있겠단 '웃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어쩌면 방치된 듯한 시간대에 놓여, 한 1년이나 할랑가 하는 시간을 무려 5년이나 지속해 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5주년은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야무지게도, 내친 김에, 유희열이 송해 할아버지 나이가 될 때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해보겠단 포부를 펼친다.
그리고 그 포부의 '현현'으로, 5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것이, 바로 장수 프로그램 특집이다. 덕분에, kbs의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들이, 5주년 특집 기념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방문한다. 송해 할아버지의 <전국 노래자랑>, <뮤직 뱅크>, 그리고 <열린 음악회>이다.

<전국 노래 자랑>의 시그널이 울리고, 송해 할아버지의 우렁찬 '전국 노래 자랑~' 이라는 멘트가 울려 퍼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전국 노래 자랑>의 단골 초청 가수 박구윤의 트로트 '뿐이고'가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 오래도록 <열린 음악회>를 지켜왔던 황수경 아나운서가 나와, 그 내공의 한 자락을 펼치고, <열린 음악회> 하면  떠오르는 가수 인순이가, 그 무대에서 즐겨 불렀던 <거위의 꿈>을 수화와 함께 열창한다. 


5주년 특집으로, <전국 노래 자랑>과 <열린 음악회>의 무대를 고스란히 퍼 나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자부심과 정의를 확인하게 된다. 굳이 후반부에 '아이유', '십센치' 등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매의 눈'으로 발견해낸 가수들이 아니라도, 5주년 특집 그 자체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설명된다. 
일찌기, 이전 특집들에서도 그랬듯이,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써, 음악이 자리한 그곳의 모든 것을 눈여겨 보고, 그것의 가치와 존재를 제대로 확인시켜 주는, 우리 시대의 어쩌면 유일한 방송, 바로 그것으로써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론을, 5주년 특집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 증명해 낸다.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가수들의 절창은 물론, 가수들의 절창을 가능케 해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음악인으로서의 연주자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제 5주년을 맞이하여, 그 가수와, 음악인들에게 오래도록 무대를 제공해 왔던 '장수 무대'들의 존재를 새삼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은 쉬이 흐르고, 우리는 그 세월 속에 쉽사리 묻혀져 흘러 가지만, 이렇게 <유희열이 스케치북>과 더불어 가끔, 우리가 흘러온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우리가, 혹은 우리 가족들이, 함께 했던 음악 프로그램의 역사를 반추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어려서 <뮤직 뱅크>를 즐기다, 철들어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맛들이고, 나이가 지긋해져 가면서 <열린 음악회>가 편해지고, <전국 노래자랑>이 흥겨워지는, <시네마 천국>처럼, kbs의 음악 프로그램만으로, 마치 누군가의 일생을 조망하게 되는 듯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가능한 특집만이 아니다. 아이유라는 가수를 일찌기 발견해 주고, 십센치의 붐을 선도했으며, 일찌기 '장미여관'을 발굴했던, 음악 프로그램 본연의 몫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5주년에 즈음하여, 스스로에게 개근상을 수여하듯, 되돌아 본다. 또 하나의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다. 되돌아 보건대, 결국은 '인기 가수'가 되었던 많은 가수들이, 일찌기 유희열의 극찬을 받으며 떨리는 모습으로 이 무대에 섰던 가수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가기 전에, 일찌기 그들과 조우했던 '선견지명'의 맛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호청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몫이었다. 

그렇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할 수 있는 각종 특집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매의 눈으로, 오늘의 5주년을 만들었다. 늦은 밤의 기다림도, 변심한 애인처럼 가물에 콩나듯 하는 만남도 마다치 않을 터이니, 부디 오래오래 해먹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8.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