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라지만, 정작 청춘의 시절 자신이 꽃보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지했던 청춘이 얼마나 있으랴. 오히려 자신이 한창 아름답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주체하지 못한 채 얹혀서 한 시절을 보내곤 하는 것이 청춘의 실상이기가 쉽다. 그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이 시대의 청춘들은 '자존감'이란 대명사로 명명한다.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되어버린 자신의 무게는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정의만큼이나 묵직하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늘상 부딪치는 건 그 반대의 현실, 그 현실로 인해 상당수의 청춘들은 '낮은 자존감'을 자신의 고민 중 하나로 꼽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청춘시대2>는 주목한다. 




시즌1의 시절을 함께 보낸 '하메'들, 12부작의 시간만큼 각자 많은 일들을 겪어 왔다. 밥 먹을 틈도 없이 알바를 전전하던 윤진명(한예리 분)은 이제 정규직 사원이 되어, 자신이 겪었던 그 '을'의 시간을 겪는 해임달의 '목격자'가 된다. 어렵게 첫사랑을 얻었던 유은재(지우 분)는 실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명 유리창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보였던 송지원(박은빈 분)은 그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숨겨진 기억 속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건 예은, 얄밉도록 똑부러지던 그녀는 시즌1에서 겪은 데이트 폭력의 트라우마와 여전히 고전 중이다. 그리고 강언니가 나가고 대신 선머슴애 같지만 그 누구보다 여린 조은(최아라 분)이 합류했다. 

자신으로부터 발화
시즌1의 발화점이 하메들 그들과 부딪치는 세상이었다면, 시즌2 역시 여전히 그녀들은 세상 속에 있지만, 그 발화점의 시작이 자신으로 부터 비롯된다. 늘 갑질의 대상이었던 윤진명이 정규직 사원이 되어 겪는 세상,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선 신입 사원이지만, 경영 지원팀으로서 그녀는 아이돌 '아스가르드'에게는 회사를 대변하는 '갑'의 존재가 된다. '갑'이지만, '을'의 잔상이 그득한 그녀가 바라보는 '해임달'을 통해, 진명의 또 다른 변화가 움트는 중이다. 시즌 1에서 '당하던' 그녀가, 그녀의 또 다른 버전같은 '해임달'에 자꾸 걸려버리는 모습은, 그러면서도 경영 지원팀으로서의 일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은, '사회'라는 곳에 첫 발을 딛은 그 누군가의 자화상이다. 

알바 한 사람으로서 '을' 개인의 고통에 침몰하고 부유하며 버텼던 윤진명이, 이제 '조직' 화 되어 가는 과정은, 존재감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이다. 또 다른 질문은 가장 인간 친화적인 송지원에게서 비롯된다. 휴학을 하고 취준생이 된 그녀는 가장 스스럼없이 예전의 대학 신문사를 드나들지만 그곳이 자신이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명과는 또 다른 존재의 고독을 맛본다. 졸업반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해피엔딩만을 꿈꾸던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하던 예은에게 대학은 하루 하루 한 시각 한 시각이 자신을 뱉어내는 듯한 세상과의 싸움이다. 은재 역시 지나간 사랑의 그늘과 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신의 키만큼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조은이야 말할 것도 없고. 



7회의 소제목이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제 또 훌쩍 커버린 그녀들이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점을 포착한다. 무리 동물인 인간, 그들은 그 '무리'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하며 '자존감'의 바닥을 친다. 
8회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세상의 중심도 아닌데, 심지어 내가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니! 류적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아이러니한 점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나르시즘'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미모에 홀려 물에 빠져죽었다는 그 신화의 dna는 모든 이에게 유전되어 아닌 것같지만 알고보면 모두 한 '자뻑'을 해야 '자존'이 된다고 살아가기가 쉽다. 그런데 <청춘 시대2>의 박연선 작가는 그런 '자뻑의 자존감'에 발을 건다. 

바닥으로 부터 시작되는 자존감
8회 <나는 나를 부정한다>에서 순둥이 은재는 가장 편협한 시선에서 예은을 몰아붙인다. 물론 떠나는 예은의 손을 잡은 건 은재이지만, 첫사랑의 상흔은 예은의 또 다른 사랑에 한없이 옹졸해졌다. 예은이라고 다를까.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꺼이 감싸주는 하메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도 반발한다. 해임달의 1인 시위는 신입 사원 윤진명에게는 그저 해내지 못한 업무로 불편하다. 찾아온 아버지에게 조은은 너그럽지만도, 까칠하지만도 못하다. 그렇게 하메들은 각자 '이기적인'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만다. 

우리 사회에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흔히 '칭찬'을 든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한없이 칭찬하고, 잘했다고 해야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라고 <청춘 시대2>는 묻는다. 어린 시절 내가 잠들면 세상도 다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던, 즉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 생각했던 그 착각에서 깨어나오는 것이 '자존감'있는 어른으로서의 첫 발이 아닌가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나를 향한 칭찬이 '환타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새는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그 얇은 알 껍질이지만, 알 속의 어린 새에게는 고통스러운 '투쟁'의 과정이다. 엄마의 산도를 머리를 틀어 나와야 하는 신생아의 출산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듯 '탄생'은 '고통'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더는 '보호되어야 할' 미성년이 아닌, 진정한 성년이 되는 과정은 자신을 세상 속의 '한 존재'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각'으로 부터 비롯된다고 <청춘시대2>는 7,8회를 통해 냉정하고 제의한다. 

더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건 더더욱 아니면, 심지어 자신이 어쩌면 그리 좋은 사람이지만은 않다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수용하고, 그런 '모자란'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을 <청춘시대2>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내가 중심이고 잘나서 사랑하고 칭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라서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그 과정으로서의 '청춘이다. 여전히 이 드라마가 청춘의 교과서이기에 모자람없는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7. 9. 17. 02:57

mbc에 이어 kbs로 이어진 파업의 여파로 <추적 60분>이 연 2주 결방했다. 그 빈 자리에 '어부지리'의 혜택을 입은 건 뜻밖에도 2017 드라마 스페셜이다. 애초 일요일 밤 10시 40분이 정규 편성이었던 <드라마 스페셜>은 평일 수요일 밤 11시 다시 시청자들과 만남을 갖게 되었다. 지난 주 <우리가 계절이라면>에 이어, 이번 주 <만나게 해주오>가 다시 찾아왔다. 




1930년대 경성의 혼인 정보 회사라니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 경성, 지금의 서울이다. 정치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하였지만, 그 '식민지배'의 체제 아래, 일본을 통한 서구적 문화가 조선, 그 중에서도 경성을 강타했다. 서구의 문물의 상징인 '백화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나날이 새로운 문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두발과, 의상, 언어, 의식에 있어서 그 이전의 젊은 세대와 다른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7 드라마 스페셜 두 번째 작품 <만나게 해주오>는 바로 이런 '모던 보이'가 활보하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들은 전통의 관습과 풍속 대신, 서양의 문화에 매료되어 '적극적' 실천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실천의 양식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자유 연애'다. 일찌기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고뇌로 등장한 자유 연애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강제된 계약 관계인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에 빠지는 '개인주의적' 삶으로의 도약(?)이었다. <만나게 해주오>는 바로 이런 '자유 연애' 지상주의 경성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결혼 정보 회사가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으로 드라마를 연다. 

얼룩진 얼굴에 치마 저고리를 입고 결혼 정보 회사를 찾은 수지(조보아 분), 아니 사실은 숙희는 '모던 보이'와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여성이다. 그 야심찬 목표에 따라 경성 혼인 정보 회사 주최 쌍쌍파티에 난입한 그녀는 막춤을 추며 파티장의 수질(?)을 흐리다 대표 차주오(손호준 분)의 눈에 띤다. 10전 상점 점원인 그녀를 10전 상점 여주인으로 오해한 차주오와 그녀를 아끼는 10전 상점 여주인의 배려로 '모던 걸'로 수지로 변신한 숙희는 차주오의 적극 응원에 힘입어 여러 모던 보이와의 맞선 자리에 나선다. 

1930년대 자유 연애가 부르짖던 그 시대에도 결국 결혼은 '돈과 집안과 외모에 따라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속물주의를 내세운 결혼 정보 회사와 그들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선 수지를 통해 드라마는 당시 '모던 보이'의 실상을 들여다 본다. 와세다 대학이란 허울좋은 간판, 고위직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축첩의 시도 등이 매번 '헛물'을 키게 만드는 숙희의 맞선 작전의 실체다. 

결국 맞선 자리의 해프닝으로 총독부까지 끌려가, 정보 회사가 문을 닺게 될 위기에 빠지며 뚜쟁이와 속물 모던 걸이었던 두 사람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저 모던 걸의 결혼 작전이었던 드라마 역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춘의 고달픈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우선 수지라고 이름조차 세련되게 바꾼 숙희는 사실 제천 출신의 가난한 아가씨, 아픈 어머니를 경성에 있는 큰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한 채 잃은 그녀는 아버지가 강제로 권하는 결혼에 반발하며 스스로 결혼을 통해 성공하고자 경성으로 온 사연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경성 혼인 정보 회사 대표 차주오는 넉넉한 형편이었지만, 독립군 자금을 대주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빨간 딱지 투성이가 된 집안의 청년으로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에 반발하여 '돈'을 쫓아 혼인 정보 회사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알고보면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은 혼인 정보 회사 대표와 고객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가까워져 간다. 



뜻밖의 만주행
그렇게 가까워지던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은 뜻밖에도 총독부 공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중국 정복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 100명의 만주행을 결정한다. 총독부 관리에게 이자를 주러 온 주오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혹시나 끌려갈까 주오의 여동생을 강제 결혼시키려 하다 동생의 가출 사건으로 이어진다. 동생의 가출 사건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지만, 주오는 그 만주행 명단에 숙희가 있음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일본인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그런 주오가 섭섭한 숙희는 그녀의 로망이었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 대신 만주행을 택하게 되는데,

달콤쌉싸름한 연애사였던 드라마는 여성 100인의 만주행 공지문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냉큼 발을 딛는다. 부푼 꿈을 안고 만주로 향하던 숙희는 실상을 알게되지만 강제로 기차에 태워지고, 그녀를 찾아온 주오는 쌍쌍파티를 이용하여 숙희를 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애초에 전형적인 '로코'의 형식을 띠었던 드라마는 위기의 만주행 기차를 주오와 아버지의 화해를 도구로, 만주로 잡혀갈 뻔했던 100명의 조선 여인들의 탈출 작전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총독부 관리들의 실패와 실수로 만주행은 없었던 일이 되고 주오와 숙희는 행복한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로 끝나게 되는 드라마. 



시대적 고통을 담아내는 진지한 접근이 아쉽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드라마는 전통적 결혼에 반발하는 여성과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에 반발하는 청년이라는 시대적 청춘의 고통으로 일제 시대라는 배경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뜻밖에 숙희에게 닥친 만주행은 2017년에도 끝나지 않는 시대적 고통을 절묘하게 극적 긴장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21세기에도 끝나지않는 민족적 고통, 그 일제 시대 여성들의 강제 공출의 문제를 '로코'의 형식을 드라마가 '절정'의 갈등으로 차용한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드라마에서 강제로 기차에 태워진 숙희를 구하기 위해 주오는 애를 쓰고, 그런 주오를 발견한 총독부 관리는 총을 든다. 그런 그를 주오의 아버지가 가격하고, 주오가 구한 여성들은 총독부 군인들을 함께 물리친다. 

바로 이 지점이 과연 역사적 비극을 '환타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라라는 '로코'의 소모적 갈등 도구로 소비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모호하다. 그런데 그 모호한 지점에서 주오가 자신의 혼인 정보 회사의 쌍쌍 파티를 활용하여 총독부 경무 국장 요시다를 희롱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만주로 갈 처녀들을 구하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억압적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조악'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의도'는 알겠지만, '안이하고, 편의적'인 구성이라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강제 수용소를 '단체 게임'으로 속인 아버지의 거짓말은 아들을 구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는 현실성에 기대어 울림을 가진다. 과연 , <만나게 해주오>가 숙희의 위기로 등장시킨 만주행 강제 징집은 그 역사적 무게감에 비해 드라마 속 장치로 너무 가볍게 처리되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시대적 비극에 상상력이 짖눌릴 필요는 없다지만, 그래도 그 상상력의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더 비극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애써야 하지 않았을까? 두 주인공의 행복하게 사랑했어요란 결말조차 불편해 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by meditator 2017. 9. 14. 15:54

<응답하라> 시리즈는 드라마계에 새로운 시대극의 조류를 형성하게 했다. 1988, 1984, 1994란 특정 연도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살아낸 세대에게는 추억을,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과거'라는 추억을 바탕으로 한 '순정'의 코드가 사랑의 진정성을 더하며 '열광'을 불러왔다. 그 이전에 시대극이라고 하면 '사극'이거나, '일제 시대' 혹은 '6.25'를 배경으로 한 협소한 범주를, <응답하라> 시리즈는 확장, 계발하였다. 물론 <응답하라>시리즈가 처음은 아니었다. <tv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kbs에서 꾸준히 방영되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중장년층의 향수에 주로 기댄 이들 아침 드라마와 달리, 전 연령대에게 적극적 호응을 얻어 '시대극'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응답하라>의 70년대 확장판 
그리고 9월 11일 방영된 kbs2의 <란제리 소녀 시대>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확장된 시대극의 70년대 버전처럼 찾아왔다. 대구를 배경으로 70년대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한껏 흐드러지게 풀어내며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그때 그 시절로 이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길의 정서를 두고,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와 갑론을박한 적이 있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자란 두 사람은, 드라마 속 1988년이란 배경을 그려낸 제작진에 대해 호와 불호의 의견을 나누었다. 왜 같은 시대를 공유했음에도 그 '추억'에 이견을 보였을까? 그건 아마도 같은 서울 하늘을 이고 살았어도, 가스 렌지와 석유 풍로로 대변되는 삶의 다른 층위가 가져온 다른 반응일 것이다. 그건 아마 언젠가 2017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 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남 타워 팰리스와, 변두리 반지하방의 경험이란 한 시대, 하나의 지역적 추억으로 뭉뚱그려 그려 낼 수 없는 차별적 층위를 가진다. 그런 시대적 다른 경험의 층위가 내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시대'를 내세운 드라마들은 '시대'를 대변하는, 그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문화적 코드'에 집중한다. 새로이 방영된 <란제리 소녀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여학생도 '교련'을 배워야 하던 그 시절의 여고생이다. 조남주 작가의 <82년 김지영>을 통해 이제 하나의 시대적 코드가 된 82년 김지영 세대, 그 시대의 여성들이 제삿상도 차려줄 수 없어 차별을 당연하게 당하며 자랐던 그 시절에서 한 발 더 과거로 드라마는 발을 담근다. 같은 반의 공부도 잘 하고, 심지어 시도 빼어나게 쓰던 친구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여상'을 가던 시절, 군복을 입지는 않았어도 교련 선생님이던 수학 선생님이던 이제는 '성희롱'이 될 수도 있는 벌을 받는 게 당연하던 그 시절을 <란제리 소녀 시대> 충실하게 복기해낸다. <란제리 소녀 시대>가 방영되고 드라마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처럼 '여자도 교련을 했어?'라는 그 신기한 시절이었다. 

70년대만 해도 융성하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대구, 당시에는 흔했던 가내 수공업 수준의 메리야스 공장과 체벌이 시스템처럼 갖춰져 횡행했던 교실을 드라마는 충실하게 구현한다. 그리고 제목의 란제리 답게, 하얀 백런닝과 끈 달린 런닝으로 대별되는 당시 소녀들의 '속옷 로망'을 드라마는 놓치지 않고 그려내며 시대의 세밀화를 완성해 간다. 여주인공과 같은 이름의 기자 역시 무심하게 드라마를 보던 중 그 '끈달린 런닝'에서 움찔하고야 말았다. 여고 시절, 교복 사이로 드러난 그 두 줄의 끈은 정말로 당시 여학생들에게는 '여성성'의 로망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드라마 속 '사물'들은 아마도 그 시절을 살아온 그 누군가의 추억 속의 '어떤 것'들을 자극하며 이 드라마 앞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응답하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들, 전교 회장 교회 오빠 손진(여회현 분)과 그런 오빠를 흠모하게 되는 여고생 정희(보나 분), 그리고 그런 정희에게 미팅 자리에서 첫 눈에 반해버린 순정파 동문(서정주 분)에, 다크호스처럼 등장한 서울에서 온 혜주(채서진 분), 그리고 그 시절 있음직한 동네 총각 영춘(이종현 분)까지, 70년대 시대극의 전형적 요소를 빠짐없이 채워넣었다. 



추억은 여전히 힘이 세다?!
이런 주인공들의 면면은 이미 아침 드라마 <TV 소설>을 통해 되풀이 반복 학습되다시피한 70년대 인물의 전형적 갈등 구조이다.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 역시 다르지 않다. 첫 회, 교회 오빠 손진과 문학의 밤을 통한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첫사랑의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먼 도서관까지 손진을 보러 가는 해프닝 과정은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그런 시대극에서는 '클리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이다. 

하지만 뻔한 클리셰의 중복이라 해도 아침 드라마 <TV 소설>이 계속 되풀이 될 수 있듯이, 모처럼 미니 시리즈로 찾아온 70년대의 복기는 70년대스러운 화면과, 그보다 더 70년대의 추억을 끌어오는 음악이란 양수 겹장의 장치로 인해, 추억을 찐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그 '맞춤 양복'처럼 잘빠진 70년대의 추억은 신기한,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로 젊은 세대를 솔깃하게 만든다. 적어도 첫 방송의 <란제리 소녀 시대>는 '추억'의 힘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적인 듯보여진다. 

과연 79년 여름 대구라는 구체적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가 그저 '추억'의 복기만으로 끝날까? 10.26를 코 앞에 둔 79년의 그 여름의 끝에서 어떤 성장통을 보여줄 것인지, 8부작이라는 실험적 형식을 통해 그 주제 의식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비록 시청률면에서는 미비했지만 신선한 시도였던 <완벽한 아내>의 홍석구 연출과 윤경아 작가 등 제작진의 그 여정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7. 9. 12. 19:02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킨 근대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이다. '의지'와 상관없는 관례 결혼으로'사랑'의 존재를 무용하게 했던 전근대의 종식은 연애 지상주의, 사랑 지상주의 시대의 도래였다. 그러기에 이 시대 고달픈 삶에 짖눌린 젊은이들이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다는 건, 결국 시대의 재앙이 된다. 그렇게 우리가 몸담고 사는 시대의 대표적 정서가 된 '사랑', 하지만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칭송받는 사랑은 그것을 수호하는 신이 변덕스럽고 심술궃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듯이 불가해하고 변칙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혼돈에 빠져들게 하고, 그 이타의 감정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형벌도 다가온다. 많은 철학자들은 '사해동포주의'로 사랑의 승화를 외치지만, 대부분 비극은 '너와 나', 혹은 '우리'라는 협소한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첫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이렇게 장황하게 '사랑학 개론'을 줏어 올린 것은 9월 3일 첫 방송을 탄 2017드라마 스페셜의 스타트를 연 작품이 바로 <우리가 계절이라면> 때문이다. 대문을 나란히 한 이웃집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다시피 한 해림(채수빈 분)과 기석(장동윤 분)의 '학교물'의 외형을 띠고 진행된다. 전교 1,2등을 나란히 하며 자전거를 함께 타며 학교 생활을 하는 두 사람. 이제 청소년기의 통과 의례처럼 첫사랑의 홍역을 앓게 된다. 방과 방 사이를 줄로 이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인 두 사람. 이제 기석은 수행 평가 과제로 친구들이 장난스레 쓴 해림과의 첫키쓰를 중대 과제로 여길만한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찌기 <겨울 연가> 이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담타기에 이어, 담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 동경(진영 분)은 순탄할 것만 같던 소꼽친구의 첫사랑 전선에 균열을 가져온다. 

우연히 아빠의 핸드폰을 통해 아빠의 외도를 직감한 해림은 아빠의 뒤를 쫓고 그곳에서 동경을 만나게 된다. 결국 외도에 대한 추적은 오해로 드러나고, 해림과 동경은 동병상련 아닌 동병상련으로 서로의 벽을 조금씩 허물게 되고, 반면 해림과의 첫 키쓰에 집착한 기석은 자꾸 해림과의 관계에서 엇박자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만남과, 오누이같은 관계의 성장통은, 엄마의 생일날 당연하게 여겨졌던 선물의 엇갈린 행방으로 전혀 다른 질감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아빠가 해림의 오해를 받으며 어렵사리 구한 악보, 해림은 그게 당연히 엄마의 선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는 엄마의 피아노 학원에 새로온 젊은 여선생, 눈물가득 추궁하는 해림에게 아빠는 그런게 아니라면서도, 그냥 주고 싶었고, 좋았다며 사랑의 불가역성에 손을 들고 만다. 

아빠를 한껏 원망해야 할 해림, 하지만, 해림 역시 자유롭지 않다. 당연히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보아와 준 기석의 첫 번째 고백을 들어줘야 할 처지, 하지만 정작 해림 역시 새로온 전학생 동경에게 마음을 흔들리고 만 것이다. 



사랑의 아포리즘, 그러나 
뻔한 사랑의 성장통같았던 이야기는 아빠의 외도 아닌 외도(?)를 통해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으로 변모한다. 뻔한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라는 속된 경구 대신, 여전히 가정에 성실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른 아빠를 등장시켜, 해림의 뜻하지 않은 두근거림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설명'을 통한 '사랑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했던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헷갈리는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구르리 그린 달빛>의 조연출답게 청량한 젊음을 서정적으로 한껏 분위기로 자아냈지만, 과연 목적한 바가 해림과 기석의 성장통인지, 아니면 사랑의 불가역성에 대한 담론인지, 정작 '절정'의 순간에 머뭇거린다. 아빠의 불가역적인 사랑도, 해림 앞에 등장한 동경의 존재로 '단막극'이란 핑계를 대기에는 '소모적'으로 사용한 드라마는, 성장통 그 자체를 '도구'로 삼아, 청춘의 한 시절을 그저 시각화시키는데 천착하고만 만듯한 결과에 이른다. 아름다운 화면만으로 사랑의 불가역성을 설득하기엔 화면은 너무 단편적 나열이었고, 그렇다고 그게 아닌 그저 성장통을 그려내고 싶다기엔 너무 뻔했다. 아니 뻔하다고 하기에도 불친절했다. 가슴 떨림, 그저 좋아함의 감정은 그저 한 컷처럼 지나치기엔 너무 묵직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 계절이 지나고, 동경은 스리슬쩍 사라져 버리고, 이제 청소년의 터널을 지나버린 해림과 기석은 우정인 듯 사랑인 듯 기차역에서 해림이 원하던 포옹을 하며 끝이 아닌 이별을 하지만, 지난 과정에서 해림과 기석의 감정을 충분히 설득해 내지 못한 드라마는 그 엔딩조차 눈물로 포장된 아름다운 청춘에 대한 장식처럼 여겨진다. 

오히려 도발적이라도 아빠와 해림의 불유쾌하지만 불가피했던 감정에 좀 더 솔직하게 파고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스치듯 지나쳐버린 기석의 잔인한 목격 장면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시청률이 필요한 미니 시리즈도 아니고, 비록 '멜로의 법칙'을 내세웠지만 '실험작'으로서의 단막극에 대한 기대를 부푼 채 맞이한 첫 번째 2017 드라마 스페셜의 작품치고는,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좀 안이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매년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단막극 시리즈가 가진 한계를 손쉬운 '멜로의 전략'으로 통과해 보려는 야심이었을까? 

그러기에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다시 원점에서 단막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과연 매년 없는 편성을 쪼개어 단막극이 방영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뻔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일까? <다큐 3일>을 뒤로 제친 채 끼어든 시리즈라면, <다큐 3일>의 목소리를 제칠만한 특별한 존재감을 기대해 보는 건 무리일까?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도 해줄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던 드라마 스페셜이 '멜로의 법칙'으로 돌아와, 단막극의 생존을 위한 '연성화'가 아닐까란 우려가 드는 가운데, 첫 작품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그 고민의 깊이를 더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멜로는 어찌보면 '근대'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치명적 상흔이다. 그 상흔을 내세워, 심지어 법칙이란 말까지 등장시켰다면 그래도 최소한 드라마 스페셜이라면, 좀 더 치명적인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저 녹록하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한 잔이 아니라. 

by meditator 2017. 9. 4. 19:38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명불허전>은 조선시대 침술의 대가로 알려져있는 허임이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환타지물이다. 국중 허임은 혜민서 의원 생활 10년만에 허준의 도움으로 겨우 왕의 편두통을 치료할 기회를 얻었지만 손을 떠는 바람에 관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던 그가 의문의 인물이 쏜 화살을 맞는데, 뜻밖에도 그가 눈을 뜬 곳은 한양, 아니 2017년의 서울 청계천 한복판이었다. 이렇게 타임슬립 드라마 <명불허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선 시대의 의원 허임이 대한민국 한 가운데 등장한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상황을 황망해 하던 허임, 하지만 그는 곧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애쓰는 대신, 이곳 서울에서 의원으로 떳떳하게 자리잡기를 원한다. 임금을 치료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선에서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에돌고 에돌아 9월 3일 방영된 <명불허전> 8회는 그 '속없어 보이던 속물' 허임(김남길 분) 선생의 실체를 비로소 드러냈다.


 

왜 허임은 노비의 치료를 거부했을까? 
애꿏게도 조선에서 허임의 뒤를 쫓던 건 관군만이 아니었다. 병조참판의 노비 두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관군은 허임을 잡으려 했지만 두칠은 허임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그가 잡혀 의금부로 가자, 자기가 죽일 기회를 놓쳤다며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고, 그를 죽이러 불속을 뛰어들었었다. 

그 사연의 시작은 밤이슬을 맞고 양반가의 비밀 치료를 다니던 허임의 행보에서 비롯된다. 혜민서를 찾아 자신을 치료하라 호통치던 병조참판을 거절했던 허임은 그날 밤이 깊자 병조 참판의 집을 찾는다. 높은 분을 백성들이 치료받는 혜민서에서 모실 수 없어 그랬다며 사정을 말한 허임은 병조참판의 신뢰를 얻고 돌아가는데, 그의 발목을 노비 두칠이 잡는다.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의 어미에게 침을 한번이라도 시술해주기를 간청했던 것이다. 

병조 참판 정도의 집안 노비가 왜 허임의 발목을 잡고 침 시술을 간청했을까? 이는 조선 시대의 의료 체계를 통해 그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이 달랐다. 왕실이나 관료들은 '내의원'을 통해, 일반 백성들은 '혜민서'에서, 그리고 전염병 치료나 빈민 구제 기관인 '활인서'가 있었다. <성종 실록>에 기록된 노비는 대략 35만명, 인구 대비 공노비가 10%, 사노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으니, 조선 인구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위에서 보여지듯이 조선 시대 의료 기관 중에 '노비'를 치료하는 의료 기관은 없었다.

<명불허전>의 주인공 허임이 의원이 된 계기만 봐도 당시 노비 등 하층민들의 의료 실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극중에서도 드러나지만 관노의 아들인 허임은 집안이 가난해 어머니 박씨가 병에 걸렸을 때 의원을 부를 수 없었다. 당시 의료 행위는 허준처럼 약을 쓰는 방법과 허임처럼 침을 통하여 고치는 방법이 있었는데, 약의 경우 약재가 비싸, 서민들이 경우 침을 놓는 방법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가난한 백성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허임 역시 어머니의 침 시술비를 갚을 수 없어 의원 집에서 일을 해주며 눈썰미로 침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 그가 의원이 된 계기였다고 역사는 밝힌다. 그러기에 성주 지방의 선비 이문건의 <묵재 일기>에서도 드러나듯서민들은 먼 의료 체계 대신 손쉬운 무당, 점쟁이, 승려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렇게 백성들에게 조차 먼 의료 체계, 그 중에서도 노비는 더욱 극악한 상황이었다. 극중 허임은 발목을 잡고 매달리는 두칠 형제의 청을 외면하고 병조 참판의 집을 떠난다. 충분히 돈만 밝히는 속물 의원이란 것이 의심되는 상황, 8회까지 <명불허전>은 '입신양명'을 노리며 2017년 서울에서도 야심을 숨기지 않는 허임에 대한 '오해'로 드라마의 주된 갈등을 이끌어 간다. 



노비에게 침통을 연 허임, 그가 택한 죽음의 길 
하지만, 8회 드디어 왜 허임이 두칠 형제의 간청을 거부했는지 드러난다. 덕술이 의금부 앞에서 허임을 자기 손을 없앨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에 발을 구르고 있었을 때, 그의 동료가 찾아온다. 그리고 밤이 이슥한 시간, 병조 참판의 특별 조치로 허임의 하루 방면이 허락되었다면서 덕술이 그를 찾아온다. 두칠을 따르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허임 앞에 두칠이 통곡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자신의 형을 살려달라고. 

동생 바보였지만, 양반집 노비를 하기엔 조금 모자랐던 형, 병조참판 첩의 심부름 과정에서 동생에게 주려고 곳감 하나를 슬쩍한 것이 들통이 나 매타작을 맞고 죽음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형을 살려달라는 두칠, 그런 두칠에게 허임은 자신의 시술 행위가 형의 목숨은 물론, 덕술조차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경고한다. 하지만 눈물로 매달리는 두칠, 결국 허임은 침통을 연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겨우 복수로 가득찼던 두칠 형의 배를 꺼지게 만들며 그의 숨을 고르게 하는 찰라, 두칠의 방문이 열리고 병조 참판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허락없는 허임의 시침 행위에 분노하며 두칠 형의 목숨을 멍석말이로 거둔다. 결국 형은 맞아죽고야 만다. 

그랬다. 허임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동막개의 눈물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고 남몰래 노비들을 치료하러 다니던 의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로운 의료 행위는 결국 동막개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두칠 형제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가 발을 돌렸던 건, 그들의 어머니에게 침을 놓는 순간, 두칠 형제의 목숨조차 위험해질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극중 조선으로 타임 슬립한 최연경(김아중 분)은 양반댁 아가씨로 위장해 거리를 걷던 중 천민 꼬마랑 부딪친다. 그러자 천민 꼬마와 그의 아비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바닥에 고개를 쳐박는다. 허임 역시 걸출한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혜민서에서 10년을 썩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분제 사회' 조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드라마는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두칠 형제와 그 어머니의 비극을 통해 신분제 사회의 비극 에 방점을 찍는다. 

조선 시대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을 소유한 국가든, 개인이든 그들의 재산이었다. 양도, 매매, 상속의 대상이었다. 즉, 허임의 의료 행위는 병조참판의 사적 소유 재산을 허락도 없이 '건드린' 것이었다. 의무만이 있는 천민 중의 천민인 노비, <경국대전> 등은 여러가지로 노비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노비구가장조> 등에 따른 현실은 달랐다. <명불허전> 8회에서도 드러나듯이 '만약 노비가 주인의 시키는 명령을 위범(違犯)하였으므로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결행(決行)하다가 우연히 죽게 만든 것과 과실치사한 자는 모두 논죄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허임은 그가 제 아무리 빼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관노 출신이라는 신분의 제약, 그리고 그가 몸담은 신분제 사회 조선이라는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없었다. <명불허전> 8회는 속물 의원 허임의 실체(?)를 드러내며 신분제 사회 속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그 고발을 통해 허임이 왜 그토록 2017년 서울에서 떳떳하게 의원 생활을 하기를 갈망했는지, 설득해 낸다. 흔히 신분제 사극에서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고민하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할 수 없는 의원의 고뇌를 극적으로 그려내며 중반을 넘어선 극에 '화력'을 더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그를 스카웃한 신혜 한방 병원의 원장 마성태(김명곤 분)는 그를 vip 병동 전담 의사로 이용하고자 한다. 즉 신분제 사회 조선의 모순이 싫어 이곳에 안착하려는 허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신분제 벽에 봉착할 예정이다. 이렇게 <명불허전>은 그저 속물 의원 허임의 타임슬립기인듯 코믹한 외피를 벗어내던지고, 조선과 2017 대한민국 다른 듯 어쩌면 같은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 맞부닥치는 의원 허임을 통해 '참의술'의 길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런 코믹과 진지한 주제 의식을 오가는 <명불허전>을 설득해 내고 있는 건 김남길이다
당찬 최연경의 김아중 역시 매력적이지만, 속물 허임에서 병자 앞에서 한없이 진지한 의원 허임, 그리고 병조 참판 앞에서 눈물로 읍소하며 자신이 한낯 양반네의 개새끼임을 고백하는 관노 출신 허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건 바로 김남길이다. 배우가 인상깊은 연기의 캐릭터로 불리는 것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그는 김남길 대신 비담으로 불리웠었다. 이제 그에게는 한동안 '비담'대신 허임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7. 9. 4. 14:30

14%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려하게 종영한 <죽어야 사는 남자> 후속으로 '하지원'을 앞세운 <병원선>이 찾아왔다. 1회 10.6%, 2회 12.4%의 동시간대 1위 순조로운 출발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지원'이 주인공 불패 신화가 다시 한번 시작된 것일까? 


[TV성적표] <병원선> 드디어 출항! 허탈한 죽음은 이제 그만 이미지-3



하지원의 건재
<병원선>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믿고보는 배우'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는 캔디형 캐릭터에 가장 맞춤형인 하지원은 '생존의 신호음'을 제외하고는 눈물을 사치고 여기는 소녀 가장 외과 의사 송은재 캐릭터로 다시 한번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연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병원선>이란 드라마를 극 초반부터 가장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가는 건, 이러니 저러니해도 하지원이다. 종종 그런 하지원조차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병원 용어가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럼에도 극적인 상황에서 '제가 그 수술합니다'라고 당차게 외칠 때, 심지어 도끼를 내려 칠때조차 그 대사와 행위에 믿음이 가도록 하는 건 역시 하지원 때문이다. 

<병원선>은 심하게 하지원에게 의존한다. 여주인공 하지원을 제외하고는, 남자 주인공이라지만 어쩐지 그와 같이 병원선에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한 이서원, 김인식과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강민혁은, 이 드라마가 이른바 '역하렘물'이라지만, 그 꽃이될 남자들의 존재감은 하지원 한 명에 비해 현격하게 부족해 보인다. 드라마는 회차마다 내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인 그들의 사연을 풀어놓을 예정인 듯하지만, 그 사연은 그저 양념처럼 여겨질 뿐이다. 남자 캐릭터들뿐만이 아니다. 하지원에 맞서 그녀의 발목을 걸고 들어설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 역시 그다지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그녀가 근무했던 병원의 외과 과장도, 이제 새로이 그녀를 응급실에서 맞이하려다 내치는 종합 병원장도 하지원의 존재감에는 한참 못미친다. 

그런 면에서 <병원선>은 본의인지, 혹은 본의 아니게인지, 결국 '하지원'의 드라마가 된다. 물론 <태양의 후예> 등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의사로 나와 '휴머니즘'을 실현했지만, 그 누구도 <태양의 후예>의 강모연(송혜교 분)에 비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지원이 분한 송은재로 치면 이전 남자 배우들이 의사로 분해 드라마를 끌고 가던 의학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명불허전>에서 최연경으로 분한 김아중과 비슷하지만, <병원선>엔 김남길만큼 원맨쇼를 벌이며 여주인공을 보완해줄 그 누군가가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없는 건 비단 극중에서만이 아니다. 

 하지원, 차화연 죽음에 ‘자책’··· 강민혁에 이어 병원선 탑승 완료! 이미지-2


촌스러워 보게 되는 드라마?
하지만 단지 <병원선>이 하지원으로 인해서만 시청률이 잘 나올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중 '촌스럽다'는 반응이 상당수가 있었다. 파업의 여파때문인지 연출이나 편집, 화면, 구성에 있어서 상당히 '올드'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의 배경이 2017년이지만 마치 70년대의 어느 시절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의료 사각지대인 섬을 돌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는 병원선. 실제 병원선에 비해서 심지어 수술실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설정으로 한결 조촐하게 설정된 병원선의 세트하며, 70년대 낙도 봉사 활동의 어느 시절로 돌아간듯한 기시감조차 주는 컨셉이다. 
올드한 장치만이 아니다. 실제 드라마의 내용도 이제는 도시에는 가볍게 여기는 맹장 수술이 응급 상황이 되는 설정에서 부터, 단 한 순간의 외면으로 어머니를 잃게되는 사연까지 21세기의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드라마의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여 '휴머니즘의 인술'의 도구로 작동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사극'은 아니지만, '시대극'처럼 시청자들을 향수처럼 이끌며 끌어앉힌다. '안되도 되게 하는' 응급 상황과, 그 속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의학 드라마'의 본령으로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세련된 맛이라고는 없는 투박한 연출과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서사가 오히려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21세기에 안락한 아파트에서 느긋하게 리모컨을 쥐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에겐 여전히 힘들고 고달프게 이겨왔던 그 시절의 정서가 지배적일 지도 모르기에. 어쩌면 <병원선>의 이 방식은 서투름이 아니라, 의도된 촌스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죽어야 사는 남자>가 여전히 가장 호소력있는 '가족애'를 주제로 내건데 이어, <병원선>이 도시의 성장주의에서 탈락한 여의사를 내세워 다시 한번 가장 근원적인 '휴머니즘 인술'을 내세워 시청자들을 이끄는 이 전략은 이제 중장년층이 대세가 된 공중파 tv에서 어쩌면 가장 영리한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21세기의 시대를 살지만, 7,80년대를 살아왔던 그 세대에게 <병원선>은 그럼에도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정서를 복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증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발한 설정의 <맨홀>과 역시나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 <다시 만난 세계>가 고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병원선>의 전략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엔 이르다. 상대작인 <맨홀>이나 <다만세>가 공정한 경쟁작이라기엔 완성도면이나 연기면에서 너무 수준 미달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분간 안정적인 시청률 호조세를 보일 <병원선>의 진검 승부는 이종석, 수지를 앞세운 트렌디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방영과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by meditator 2017. 9. 1. 14:45

<비밀의 숲>, <터널>, <쌈마이웨이>, <품위있는 그녀>, <죽어야 사는 남자> 이들 드라마들은 최근 '화제'의 드라마들이다. 그리고 화제의 드라마들답게 시청률면에서도 동시간대 1위를 거뜬히 낚아챈 드라마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입봉의 신인이거나, 입봉작이 아니더라도 드라마화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은 '신인'이라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넘나들며 새로운 작가군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이들 신진 작가군의 활약은 그저 '신인'이라는 점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아깝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선한 기획과 서사, 그리고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구성으로 이들 드라마에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는 점이 진짜 놀라운 점이다. 이렇게 드라마의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장르물의 약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타임 슬립을 통해 풀어낸 구성으로 방송 초반 <시그널>과 비교되던 <터널>은 극이 중반을 넘어서며 더 이상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터널>이라는 드라마 자체만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었으면, 과거에서 온 형사와 현재에서 그의 과거 인연으로 얽힌 인물들과의 공조 수사만으로, 그리고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악행을 멈추지 않는 연쇄 살인마의 귀추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범죄의 종식을 응원하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계에서 장르물은 희귀했다. 그러기에 2011 <싸인> 이래 장르물의 김은희는 독보적이었다. 늘 '장르물'이 작품이 등장하면 과연 김은희의 작품을 넘어설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김은희 작가를 불러내기엔 장르물이 너무 잦아졌다. 거의 2년에 한번씩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희 작가를 '학수고대'하지 않아도 장르물 애청자들의 마음을 쏙 빼앗을 장르물들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신인 그룹'의 작품들이다. 

신인 작가 그룹에 의한 드라마계 지형도의 변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드라마 장르의 변화이다. 위의 검찰청을 '숲'으로 상징하고 그 속에서 직업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낸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는 한국 장르물을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단 한 작품만에 구축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복수'를 매개로한 정의 실현이 한국 장르 드라마의 일반적 양상이었던 그 '한계'를 단 한 개의 사건으로 16부을 뚝심있게 이끌어간 <비밀의 숲>은 그 흔한 '미드'와의 비교에서도 우리의 어깨를 우쭐하게 할 만큼 주제 의식과 구성에 있어 시청자들의 자부심을 한껏 만족시켰다. 

<비밀의 숲>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터널>역시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바탕이 되었지만, 형사라는 직업군의 책임 의식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면서도, 장르물 특유의 묵직한 정서를 대중적 호흡으로 적절하게 순화시킨 <터널>은 ocn 드라마로는 드물게 6%를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6.490% 16회,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동시간대 1위는 아니었지만, 화제성에 힘입어 시즌2를 예약한 kbs2의 <추리의 여왕>은 '추리'를 전문가만큼 잘 하는 동네 아줌마와 열혈 형사 콤비의 신선한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며 묵직한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풀어나가면 <추리의 여왕>만의 정서를 구축한다. <피고인(sbs)>의 최수진, 최창환 작가나, <피고인(mbc)>의 김수은 작가 역시 공모전 출신으로 장르물로 작가 입문의 시작을 열었다. 



기존의 장르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그러나 이런 장르물만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종영한 <품위있는 그녀>는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화제성으로 인기를 몰았다. 대성 펄프라는 가상의 재벌가를 중심으로 상류 사회와 그 주변의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며 인기를 모은 <품위있는 그녀>는 주말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고스란히 수용하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고, 그것을 '부조리극'으로 승화시키며 퀄리티있는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이 드라마를 저술한 백미경의 작가의 경우 죽음을 사이에 둔 연상연하 남녀의 순애보 넘치는 사랑 이야기 <강구 이야기(2014)>가 20여년만에 만난 톱스타와 작가의 우여곡절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은동아(2016)>로 업그레이드 되더니, 천하장사 여성과 재벌남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힘센 여자 도봉순(2017)>의 변주를 통해, <품위있는 그녀>에 이르렀다. 순애보 러브 스토리에서 막장 스릴 부조리극에 이르기까지 장편 드라마로는 불과 3작품에 이르를 동안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작품을 이기는 기묘한 역전극을 벌이고 있는 백미경 작가의 다음 작품은 예측 불허라서 더 기대가 된다. 



청춘물도 이들이 쓰면 다르다. 이미 <백희가 돌아왔다>로 단막극으로서는 드물게 인기를 끌었던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는 재벌가 없이, 88만원 세대의 현실감넘치는 사랑 이야기로 공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죽어야 사는 남자>의 김선희 작가는 헤어진 모녀 상봉이라는 '가족 드라마'를 기상천회한 코믹물로 업그레이드 시켜 땜빵 드라마의 승리를 거머쥐었고, <자체 발광 오피스>의 정회현 작가는 '오피스'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도전했다. 

장르도 신선했지만, 그간 시간에 쫓기는 촬영 일정으로 완성도에 있어 문제 제기가 되왔던 고질적 문제점들에 있어서도 진일보한 성과를 보였다. 한 여름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겨울옷, 하지만 결코 그 설정과 의상이 답답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분위기로 압도했던 <비밀의 숲>과 <품위있는 그녀>는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굳이 시의성있는 피드백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전 제작'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22부작의 <죽어야 사는 남자>가 보인 속도감있는 전개 역시 16부작, 20부작의 관성에 대한 반문이 되었다. 

이렇게 신진 작가군의 등장과 그들의 신선한 작품에 의한 드라마계의 수혈은 시청자들에게는 뻔하지 않은을 넘은 올드 미디어로서 tv의 가능성을 다방면에 걸쳐 열었다. 미드 등을 통해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젊은 층들에게도 호응을 얻으며 노령화된 시청층의 벽을 허무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여전히 스타 작가의 아성은 공고하지만, 이들 신진 그룹의 활약으로 좀 더 다양하고 재밌는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 
by meditator 2017. 8. 29. 16:42

고백컨대, 그랬다. 글을 쓰는 기자도. 청춘시대의 조은 역에 최아라라는 키가 훤칠한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했을 때, 심지어 이 캐릭터가 선머슴애처럼 짧은 쇼트 머리에, 검은 색으로 아래 위를 도배한 옷을 입고 등장했을 때, 아하 저 친구는 이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의 캐릭터로 '소모'되지 않을까, 연상했었다. 그리고 2회를 보고, 내 '얼토당토'않은 선입견에 정곡을 찌른 박연선 작가 앞에 새삼 부끄러웠다. 바로 이 '안일한 편견'에서 비롯된 차별에 대해 새로 시작한 <청춘시대2>는 문을 열었다. 




이른바 '연선내'의 징후
동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 실감나고 공감가게 그렸던 <청춘 시대1>을 보고, 드라마의 대본집대신 당시 따끈따끈했던 박연선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쳬가>를 찾아 읽었다. 드라마와 소설, 장르는 달랐지만, 2016년 청춘의 이야기를 '당대성'을 살려 구현해내 칭송을 받았던 <청춘시대>처럼,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무시무시한 제목과 달리, 어쩌면 <청춘 시대>보다 더 '당대성'을 살린 청춘들의 이야기다. 단지 그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청춘 시대>가 벨 에포크라는 대학가 셰어하우스를 배경으로 했다면, <여름, 어디선가 시쳬가>는 이제는 쇄락한 첩첩산중 마을 두왕리를 배경으로 한다. 

<청춘시대2>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이토록 장황하게 박연선 작가의 <청춘시대1>과 그녀의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 대해 구구절절 풀어놓는 건 박연선 작가의 '스타일'와 '주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막장 드라마를 보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운 죽음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할머니 홍간난 여사네 집에 떨어진 백수 강무순의 뜻하지 않는 보물찾기 대작전으로 부터이다. 그러나 보물을 찾아나선 강무순이 건드리게 되는건 15년전 온 마을 사람들이 최장수 노인 백수 잔치로 마을이 비었을 때 이 동네 소녀들 4명이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사건, 그때부터 드라마는  본격 미스테리 스릴러로 장르를 변경한다. 즉,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할머니 집에 떨어진 손녀의 엉뚱한 보물 지도 해프닝을 '과거'로 번져 사라진 4 소녀들의 비밀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처럼 독자를 끌어간다. <청춘 시대>에서도 그랬지만, 박연선 작가는 '셰어 하우스'라던가, 가장 일상적인 공간, 거기에 모인 청춘들을 통해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괴상한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 혹은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죽음이나 귀신조차도 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보면, 그곳에선 거기 사는 사람들의 가장 진솔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편의적 편견은 배제를 낳는다
그랬기에 <청춘 시대2>의 시작은 셰어 하우스답게 헤어짐과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벨 에포크에 등장한 최아라. 하지만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쉽게 말조차 붙이기 힘들고, 송지원의 너스레나 농담까지도 '반사'라도 하듯 무안함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그녀의 등장은 <청춘 시대> 그 서막에서 저마다 쉽게 정가지 않을 것처럼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면면을 회상케 만든다. 그런데 그저 싸기지 없거나 비밀에 잔뜩 쌓였던 시즌1의 등장 인물들을 넘어 최아라는, 그의 행위나 태도, 심지어 방문객을 통해 혹시나 그녀가 '레즈?'라는 의심을 유도하고야 만다. 

조은을 제외하고 신입 주제에 자신들에게 만만하게 굴지 않아 전전긍긍했던 윤진명(한예리 분), 정예은(한승연 분), 송지원(박은빈 분), 유은재(지우 분)는 '쿨을 넘어선 조은의 태도를 '남성성'으로 오해하고 지레 그녀를 혹시? 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심이 가기 시작하자 그녀의 모든 태도는 그 의심하는 내용에 딱딱 들어맞기 시작한다. 최아라가 감기약을 사들고 안 열려지는 은재의 방을 억지로 열고 은재를 쫓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시즌 1에서 각자 청춘의 통과 의례를 혹독하게 겪었던 네 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그런 경험에서 배운 깨달음따위는 흘려버리고, 자신들의 앞에 등장한 이질적인 한 인물에 대해 쉽게 '편견'의 색안경을 끼어버린다. 타인이 저어하는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나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은재가 이제 가장 쉽게 조은의 편견에 거침없는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나, 정작 말로는 공정한 잣대를 운운하면서도 하우스 메이트들의 편견을 방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윤진명에 이르기 까지 손쉽게 조은을 그녀의 예상되는 성적 정체성으로 '따' 시켜버리는 그녀들의 속단은 근거없이 확신에 차있다. 

의심이 곧 배제로 이어지는 <청춘 시대 2>의 서막은 그래서 가장 동 시대적인 출발이 된다. '혐오 사회'라고 칭해지는 이 시대에서 그 편견과 혐오의 시작이 저리도 어이없이 그저 자신들이 가졌던 편견을 바탕으로 손쉽게 이루어지며, 그 편견의 결과가 불편으로, 그리고 배제에 대한 고려로 이어지는 과정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혐오의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말은 달리 하지만, 네 명의 하우스 메이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인지적 능력이 무색하게 조은이 '레즈'라는 편견에, 그리고 그런 자신들과 다른 성적 정체성에 거침없이 불편해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생각은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낳고,그 것은 결국 한 여름 거리의 질주로 마무리된다. 알고보니 그저 키 큰애라서 늘 오해받고 불편했던 조은, 그저 키크고, 남성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받은 그 편견과 그로 인해 벌어질 뻔한 결과는 어처구니없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편견과 혐오의 과정을 까발린다. 

물론 여전히 조은을 바라보는 친구 안예지(신세휘 분)의 모호한 눈빛으로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의심'은 또 다른 갈래롤 펼쳐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2회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레즈건, 게이건 혹은 성적 정체성이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쉽계 예단하고, 그들을 우리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는데 편의적인가 하는 지점이다. 하우스 메이트 한 명의 등장이란 에피소드 만으로 우리 사회에 현재 만연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그 결과로서의 배제의 '기제'를 드라마는 대번에 설파해 낸다. 그렇게 박연선 작가는 자신의 장기를 뽐내며 가장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장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래서 가장 설득력있게 풀어내며 <청춘시대2>에 대한 기대를 2회만에 업그레이드 시켜낸다. 
by meditator 2017. 8. 27. 04:00

도발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이제 종영한 수목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이하 죽사남)>가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거둔 성과는. 22회 기준 12. 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라는 이제 이 정도면 공중파에서는 중박이라고 치는 시청률을 전제로 하지만, 시청률 이상 '공중파 미니 시리즈'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문제 제기의 기회를 '도발'했다. 



'근본이 없는'이 아닌 근본이 제대로 있었던 죽사남
마지막 회, 딸을 찾고 가족을 이루어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이룬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최민수 분)은 자신의 친지들을 이끌고 전세 비행기를 동원하여 보두안티아 공화국을 향해 떠난다. 신이 나서 비행기에서 원맨쇼를 벌이던 백작, 하지만 기상 변화에 흔들리던 비행기는 끝내 엔진에 불이 붙고 뜻하지 않은 곳에 불시착을 한다. 뻘에서 겨우 목숨만을 건진 채 살아남은 백작과 그 가족, 친지들, 그들을 맞이한 건 괴수의 음성같은 효과음이 들리는 무인도로 추정되는 섬이다. 



내내 가족드라마인 줄 알고 '화목한 해피엔딩'을 꿈꾸던 시청자는 종영을 10분 남겨놓고 나타난 백작의 또 다른 아들 때문에 아버지에게 '죽빵을 날리는' 존속 상해의 현장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 전재산을 날릴 뻔했던 해프닝에서 벗어나 희희낙락 딸과 함께 헐리웃 생활을 즐기는가 싶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무인도 행으로 마무리짓는 드라마에 '어이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이게 과연 어이상실할 일인가 싶다. 애초에 가상의 보두아티아 공화국에서 나타난 석유 재벌 바람둥이 아빠란 이 '희귀한' 설정에서 시작된 드라마는, 바람난 남편을 아내 바보로 개과천선을 시키는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되는 것이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 전형적인 악녀의 딸 코스프레라는 막장 가족극의 소재와, 남편의 바람, 그리고 헤어진 친딸 찾기, 심지어 치매 등 한국 드라마에서 그간 전형적으로 등장했던 소재를 차용했지만, <죽사남>은 이중 어떤 클리셰에도 천착하지 않고 단 1분의 진지함을 넘기지 못하는 코믹하고 엉뚱한 서사로 드라마를 반전에 반전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첫 장소가 '헌팅'을 위한 클럽이었다는 기가 막힌 설정에서부터 시작된 코믹한 반전들만을 가지고 <죽사남>을 평가하면 아쉽다. 오히려, 진짜 이 드라마의 매력은 동시간대 드라마들이 어설픈 사랑 놀음에 16부작 혹은 32부작의 이야기를 늘이고 있는 동안, 짤막한(?) 24부의 쾌속 정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천착해 들어갔다. 

클럽에서 만난 아빠와 딸이 서로의 존재를 알기 전에 '인간적' 교감을 나누고, 딸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서로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보다듬고, 가족으로서의 교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죽사남>은 그 어떤 가족 드라마보다 정갈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내조의 여왕>, <파스타>의 고동선 피디 특유의 섬세한 정서의 교감이 때론 어수선할 수 있는 '코믹' 드라마의 정조를 따스하게 감싸며 드라마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던 점이 무엇보다 <죽사남>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가족 드라마이면서, 그 풀어가는 서사에 있어서는 기존 드라마들이 의존했던 진부한 설정 방식에 단 한번도 기대지 않았던 김선희 작가의 뚝심있는 전개는 한류에 의존하여 어설픈 소재와 연기, 혹은 작가의 명망에 기대어 안일한 소재와 더 안일한 연기로 매 회를 인공호흡하는 타 미니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더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기에 우리 사회 가족을 여전히 이상향으로 그려내지만, 드라마는 결코 '가족'이란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아버지는 딸의 아버지로 돌아왔지만 그 특유의 '유아독존'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고, 심지어 바람둥이 기질조차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남편의 불륜은 곧 이혼이 되어버린 드라마의 공식에서 응징과 개과천선이라는 모색은 수긍은 둘째치고라도 신선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갑인 '부'의 문제에 있어서도 '환타지'를 버리진 못했지만, 사람을 그에 굴복시키지 않고자 노력한다. 무엇보다 '악인'의 처리에 있어서조차 '인간적'인 기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심지어 중동 진출 일꾼이었던 장달구, 현 알리 백장의 과거을 추적하는 '국정원' 직원을 통해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졌던 산업 일꾼의 역사까지 헤아리는 내공을 드러낸다. '가족'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 다루는 방식은 '인간 친화'적이었던 <죽사남>의 패기넘치는 도전은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만든다. 

최민수, 그리고 신성록, 강예원의 절묘한 삼각 편대 
또한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문제점에 대한 <죽사남>의 가장 큰 도발 중 하나는 다름아닌 <죽사남>의 출연진이다. 최민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단언을 하게 만든, 거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그의 보두아티아 백작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런 최민수의 연기만이 있었다면 <죽사남>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최민수의 무대를 충실하게 받쳐준, 아니 사실은 최민수가 앞서나가서 그렇지, 그 연기의 내공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다 싶었던 강호림의 신성록과 딸 이지영의 강예원의 연기 역시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가짜 딸 이지영의 이소연과 비서 앞달라의 조태관은 눈이 즐거운 감초로서 드라마를 넘기게 했다. 갈수록 그의 몸짓 각도가 커져만 가던 최민수와 그걸 흥겹게 받아쳐준 신성록과 강예원의 연기는 마치 '변검'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가장 감동적인 가족애의 현장으로 시청자를 이물감없이 이끌며 드라마의 수목 1등이 되도록 하는데 헌신한다. 



이 처럼 드라마는 그간 그의 연기 내공이 무색하게 주인공 아버지로서 소모적으로 소비되던 한때 잘 나갔던 배우 최민수에게 새로운 대표작을 제공했다. 최민수에게 대표작이 <모래 시계(1995)> 만이 아니라, <사랑이 뭐길래(1991)>와 영화 <미스터 맘마(1992)>와 <결혼 이야기(1992)>도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죽사남>, 무엇보다 '왕년'의 배우가 아닌 현역의 최민수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와 함께 한류 스타가, 젊은 청춘 스타가 아니라도 연기를 맛깔나게 하는 배우들의 조합이라면 거뜬히 주중 미니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신성록, 강예원 불패 신화로 증명해냈다. 이런 <죽사남>의 선전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최근 부진의 늪에 시달리는 공중파 드라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by meditator 2017. 8. 25. 02:24

1980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첫 유세 장소로 선택한 곳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알려진 미시시피주 네쇼파 카운티였다. 1964년 흑인 인권 운동가 세 명이 kkk단에 의해 살해된 이래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이곳에서 레이건은 복지연금을 받으며 캐딜락을 모는 시카고의 여성을 언급하며 복지 문제를 인종 갈등으로 국면 전환을 시켜 남부 지역에서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당시 대통령 후보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당연히 복지 무임승차한 여성을 흑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하며 신뢰할 만한 언변에 진실에대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레이건 쇼 ⓒ ebs
뛰어난 배우 레이건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70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재선에 성공한 역대 가장 나이가 많았던 대통령, 8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 대통령만큼이나 익숙했던 그는, 무능과 존경이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지만,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호감도가 높은 대통령이다. eidf 개막식의 자리를 빛내준 파쵸 벨레즈 감독은 바로 이 대통령 레이건의 시대를 <레이건 쇼>라는 제목의 영화로 작품상 경쟁 작품의 대열에 올랐다.

다큐는 레이건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88년 이제 곧 대통령 직을 마무리할 레이건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인터뷰어는 질문한다. 당신이 배우였던 것이 대통령 직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해 '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라고 답한다. 바로 이 레이건이 한 답이 파쵸 벨레즈 감독의 <레이건 쇼>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레이건 취임 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미국은 핵전쟁 위기가 높어져 갔고 그런 위기에 대통령 레이건은 불을 지폈다. 다큐가 주목하는 건 레이건의 정치 행위 방식이다. '한번도 정치가가 되본 적이 없다'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대통령 레이건의 행보는 그 이전의 역대 다섯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상 자료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이 된 첫 해에만 무려 7번의 국정 연설을 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은 tv 쇼의 세트장으로 삼았고, 다큐는 컷 소리와 함께 국민을 향애 유려한 언변을 펼치는 대통령 레이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는다.

그토록 수많은 영상을 통해 국민들을 매료시킨 대통령, 그 저변의 자질은 그가 '배우' 출신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스스로 배우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배역의 소화만이 아니라, 각본까지 해야 하는 대통령 직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로, 좋은 대통령으로 보이는 연출의 과정에 전혀 스스럼이 없었던 대통령.
비록 '조연'으로 배우로서 헐리웃 역사 에서 그 존재감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 호남형의 인상을 지닌 이 배우는 헐리웃 영화에서 매번 성격좋고, 이상적인 영웅상을 맡아왔었다. 그리고 그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대통령의 이미지에 치환시켰다.

레이건 쇼 ⓒ ebs
미디어프렌들리한 정치, 
차기 대통령에 나올 후보들이 일찍이 방송을 타면서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 시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이 그의 정치적 입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절에 레이건의 미디어 프렌들리는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1/3은 정책 구상을 하는 둥하다가, 2/3는 홍보와 행사에 치중했던 대통령 레이건은 2017년에는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정치'에 있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선례를 남긴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라는 점에 다큐는 주목한다.

미디어프렌들리한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시절, 하지만 레이건은 그 질문의 시작이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그에게는 그가 정말 행정부의 수반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미디어를 통해 유머러스한 모습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결단력 넘치는 영웅의 모습을 견지했던 그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참모 의존적이며, 심지어 실제 대통령이 영부인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정도의 반문이 따라 다닌 인물이고, 그 의문에 그는 이란 인질 석방  종종 자신의 정책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실언'이나 '허언'으로 증명을 해냈다.

행정부의 수반답지 못한 무지보다 더 심각한 건, 그의 맹목적인 카우보이식의 안보관이었다. 1983년 역시나 tv를 통해 중계된 대통령의 연설에서 자유 진영 시민들이 맘놓고 살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앞세워 '스타워즈'란 그럴 듯한 허울좋은 명목 하에, 전략 방위 계획을 발주했던 것이다. 소련의 미사일이 닻기 전 격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고 하지만, 언제나 방아쇠를 담길 수 있는 무력 행사에 레이건은 거침없었고, 그런 영웅적 행보에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레이건 쇼 ⓒ ebs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디어 프렌들리 대통령의 발목을 건 건, 그보다 더 미디어 프렌들리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쵸프란 사실이다. 미소의 국제적인 긴장이 세계적 화두였던 시절, 54세의 레이건보다 더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고르바쵸프의 등장은 정책보다 이미지로 정치를 해온 레이건에겐 가장 큰 위기를 불러왔다. '도베랴이 노 프로베라이(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소련어 한 마디 외에 이렇다할 이미지적 각인을 불러오지 못한 미국은 전세계인이 그토록 원하는 핵무기 동결 나아가 폐기까지를 내세운 도발적인 고르바쵸프의 제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던 레이건의 냉전적 이미지는 자중지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노령의 나이에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처음 4년간 히트작만 내다 줄곧 실패작만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는 여전히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유머의 너스레를 떨지만 그 약발은 잦아져갔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대중적 호감도와 별개로 능력있는 대통령의 순위에서 레이건을 찾아보긴 힘들다.  제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을 해도 결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 일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큐는 냉정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을 행위 예술가로 평가하듯, tv에서 먼저 성공해야 대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미디어 정치의 나쁜 선례로서 다큐는 그의 행보를 반면교사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7. 8. 23.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