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를 맞이하여 네 번째 단편영화 제작기에 돌입한 <전체 관람가>는 '단편 영화' 활성화를 위한 영화 감독들의 외도라는 취지를 넘어 매회 새로운 기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장윤철 감독이 실사 영화와 게임의 콜라보를 하는가 하면, 에로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이 가족영화를 찍고, 이원석 감독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영화의 주인공 박광현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2000억이 든다는 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15분짜리 단편 영화에 담는다. 


3000만원이라 불가능해서, 가능해진 블록버스터 품앗이
3000만원 초저예산의 단편 영화와 블록버스터라는 이 모순의 조합,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 대체적인 담론이 된 현실에서, 애초에 액션물을 하고자 했지만 제작비로 인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로 급선회한 이원석 감독처럼 주어진 제작비는 영화 자체를 규정한다. 그런데 박광현감독은 애초에 '3000만원이 판타지다'라며, 과감하게 그 '돈'으로 제한된 제작 환경을 뛰어넘어 버린다. 3000만원의 한도 내에서라는 현실적 조건을 '구걸'과 '협조'로 대응하며 17년간 하고자 했지만 '투자'라는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던 박광현 감독의 로망을 단편 영화라는 틀에 과감히 담아내 버린 것이다. 



감독은 말한다. 아마도 장편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와, 단 3일의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들이, <웰컴 투 동막골(2005)>, <조작된 도시(2017)>를 함께 했던 스탭들과 유명 디자이너, 심지어 밥차까지 십시일반 '노력과 자본'의 동원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능한 제작비가 꿈을 실현시킬 품앗이의 기반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박광현 감독은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트라 100명과, 제작비 3000만원으로 세팅한 현장 외에, 단편 영화에서 무려 카메라 3대의 지원과, 의상, 미술, 제작 과정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과, 밥차 등등의 '구걸'을 통해 15분짜리 단편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영웅이 못생겼다면?
그러나 12일 방영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을 그저 제작비를 넘어선 품앗이라는 지점의 신기록으로만 기억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거기서 진짜 로망은 일찌기 90년대 장준환 감독의 <방구맨>, 김곡, 김선 감독의 <드릴 소녀>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의 계보에 놓여있지만, 결코 투자받을 수 없는 비운의 b급 히어로물의 구현과, 그보다 더 투자받기 힘든 '불편할 정도의 직관적 현실 묘사가 투영된' 뚝심있는 현실 반영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다. 

외모 지상주의를 자신의 주제로 선택한 박광현 감독은 대작 <스파이더맨>의 패러디에 기반한 오늘의 '적나라한 투영'이다. 실제 항문에서 거미줄이 분사되는 거미가 히어로물 주인공이 되어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그래서 박광현 감독의 히어로 <거미맨>은 항문에서 거미줄이 나온다. 또한 늘씬한 몸매의 히어로대신, 늘씬하고 잘 생긴 건 악당에게 양보하고, 배나오고 팔다리 가는, 심지어 가면을 벗었는데 대머리가 땀에 가닥가닥 절어있는 얼굴은 '시나노'급의 현실 아저씨 영웅이 등장한다. 심지어 그가 초능력자가 되는 과정도 어린 시절 동네 또래들에게 집단 이지매를 당하는 과정에서이다. 

젊음의 성소 '클럽', 그곳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잘생김만을 믿고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발차기로 날려버리며 '클럽의 수질 관리'를 탓하는 악당의 등장. 그 소란에 불만을 표출하던 과객과 클럽의 주인은 가면을 벗은 그의 멀끔한 외모에 '비난'을 '감탄'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던 여성의 못생김에 오히려 '악당'을 응원하기에 이르는데. 그때 암전과 함께 하늘에서 등장한 황금빛 거미, 

하지만 현실은 항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에 의존해 궁색하게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주관적 액션'에서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의 멋짐을 한껏 발산하지만, 현실은 그를 악당으로 오인한 경찰들과의 아저씨들 동네 떼싸움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궁색한 영웅, 거기에 그만 가면까지 벗겨지는데. 

영화의 정점은 가면이 벗겨졌어도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거미맨과 악당과의 1;1 대결장면,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악당이 보인 나쁜 행동들의 목격자였음에도, 그의 잘생김에 매료되어 악당을 응원한다. 그가 거미맨을 쳐박을 때마다 클럽에 울려퍼지는 환호성.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 초라하고, 거기에 영웅연했지만 악당에게 무참하게 짓밟혀 더 불쌍해진 거미맨 앞에, 그의 이름 '수호'를 부르며 나타난 첫사랑. 영화가 끝난 후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엄청난 뚝심'답게 박광현 감독은 3000만원의 환타지로서의 단편이 가진 기회에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주제로 마지막을 장식하여, '내 얘기같아 슬프다'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묵직한 환타지 영웅물을 탄생시킨다. 





<거미맨>은, 박광현 감독은 묻는다. 늘 이겨야만 혹은 '우생학적 적자'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의도는 가졌지만 성공해내지 못하는 영웅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제작비의 신화를 넘어선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 화두를 남긴다. <거미맨>은 겨우 15분인데, 마치 한 시간을 넘는 장편 영화을 본듯한 감상의 무게를 남긴다. 굳이 이명세 감독이 지적한 '단편 영화의 폼에 장편 영화를 끼워넣은 듯한 한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5분을 통해 보여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도전과 주제 의식이 <전체 관람가>의 도전을 무한하게 확장했기 때문이리라. 적은 제작비, 제한된 제작 환경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편이 단편이기에 풀어내어질 수 있었던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은 단편의 위상을 새롭게 부상시킨다. 



by meditator 2017. 11. 13. 16:05

50부작의 대장정을 시작했던 <황금빛 내인생>이 이제 절반의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회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2 주말 드라마의 아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21회 32.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드라마 시작 초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박시후와 관련된 잡음이 무색하게 한 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빠르고 예측 불허의 전개는 역시 소현경! 이라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한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작가의 또 다른 화제작 <내딸 서영이>의 기록을 과연 <황금빛 시청률>이 언제 깰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삼고 있을 정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은석, 아니 지안
그간 가슴졸이며 벌여놨던 서태수(천호진 분)-양미정(김혜옥 분)의 가짜 딸 사기 사건은 20회를 기점으로 들통나고, 은석이었던 지안(신혜선 분)은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찜질방과 거리를 전전하던 은석이 아닌 지안은 가족들과 함께 놀러왔던 바닷가에서 홀로 추억에 잠기다 결국 숲속에서 약병을 입 속에 털어넣는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이 걷잡을 수 없어져 버린 '친딸 사기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오래도록 딸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사기꾼들에게 농락만 당했던 재벌가 최재성(전노민 분)-노명희(나영희 분) 부부, 그래서 이제는 은석이라는 이름조차 집안에서 생소해질 즈음. 그들에게 친딸의 생존 소식이 바로 그 딸을 유괴했던 당사자들로부터 도착했다. 그리고 그 유괴범들을 닥달해 찾아간 서태수-양미정의 집, 다짜고짜 들이닥쳐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딸을 내놓으라는 노명희에게 양미정은 순간 진실을 바꿔버리고 만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던 가족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었던 지수가 가족들의 사랑 아래 부족함없이 자라온 반면, 쌍둥이지만 언니였던 지안은 그녀가 도전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갖은 허드렛일은 다하면서 정규직이 되고자 했던 해성 어패럴은 그녀 대신 낙하산인 그녀의 친구를 선택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도경과의 악연은 그녀에게 차 수리비 명목의 수모를 안긴다.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좌절하는 딸 지안을 지켜봤던 엄마 양미정은 도도한 노명희의 요구에 순간 다른 선택을 한다. 

<황금빛 내인생>은 그렇게 엄마 양미정, 그리고 딸 지안의 궁핍으로 부터 비롯된 뒤틀린 선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신주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극 초반 양미정의 선택에 이은, 그녀의 앞에서 아버지가 차마 진실을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든 지안의 선택은 결국 진실이 밝혀졌지만 당신의 딸을 괴롭히겠다는 노명희의 선전 포고,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딸, 그리고 자살이라는 결론을 통해 일단락된다. 

엄마와 딸의 '물신주의적 욕망'의 행보,
숟가락의 빛깔로 구분되는 세상, 우리는 쉽게 자신이 타고난 숟가락이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매몰된다. 바로 이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운명론적 사고'에 소현격 작가는 마치 복권처럼, 하지만 사실은 '도발적인' 음모를 통해 그 욕망을 점검한다. 

엄마 양미정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자식을 위해서라고 다짐한다. 자신의 딸이 죽고 으슥한 인가에서 어린 지수를 만났을 때, 그냥 두면 죽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딸처럼 끌어안았던 그 '이기적 모성'은 변함없이 이제 다시 그냥 두면 스스로 고사될 것같은 딸 지안을 위해 거짓말을 해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딸을 키운 대가로 음식점을 받는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쪼달리던 양미정의 모성은 그 해결책으로 기꺼이 '돈'을 선택한다. 

딸 지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실은 재벌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대번에 태세를 전환한다. 말리는 아빠도, 동생도 아랑곳없이, 그간 세상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쳤던 그녀는 선뜻 재벌가의 딸이라는 자리를 받아든다. 

그러나 그 덜컥 받아든 '황금'은 그녀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금수저가 된 지안의 하루하루는 금수저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인정 투쟁'의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고달팠지만 돌아오면 따수웠던 가정 대신, 형제도, 부모도 피보다 진한 '재벌가'라는 위계 속에서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마치 작가가 88만원 세대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그 '수저'의 삶도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재벌가로 들어간 지안의 하루하루는 고달프다. 소현경 작가는 흔히 주말 드라마들이 빠지기 쉬운 흙수저 집안의 가족주의 vs. 금수저 집안의 이기주의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지안이 무엇을 탐했고, 외면했는가를 그녀의 선택 이후의 과정을 통해 통렬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이제 진실이 밝혀지며 양미정, 지안 모녀는 외적으로는 자신들이 저지른 사태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따른 '물신주의적 선택'이 낳은 생각지도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식을 위해서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모정의 선택은, 큰 아들의 외면은 물론, 편의적으로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던 두 쌍둥이 딸 중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결국 '가족'을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자신만을 생각하며 재벌가로 들어갔던 지안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간의 과정에서 보인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선택에 대해 깊은 회한에 빠지고, 그 결과 법적 처벌 이전에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극단적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황금빛 인생>을 위해 선택했던 엄마와 딸의 이기적 선택은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드라마의 한 장을 마무리한다. 흙수저의 어긋난 로또는 이렇게 자기 반성과 회한으로 종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흙수저의 도발과 그 '처리'의 과정에 집중했던 드라마는 또 다른 수저, 금수저 집안의 반성과 회한이라는 2막을 열고자 한다. 그 2막의 시작은 그래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사랑으로 보다듬어졌던 지수의 도발적 재벌가 행으로 열어진다. 


 

by meditator 2017. 11. 12. 18:40

mbc의 월화 드라마 <20세기 소년 소녀>와 tvn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2017년을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을 드라마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돌아온 한예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20세기 소년소녀>는 그 화제성이 무색하게 2%대의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 표절과 관련된 잡음으로 시작에서 부터 삐걱거렸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초반의 문제들을 불식시키며 매주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의 드라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 (10회 4.19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전국 기준)


물론 공중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을 수치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지만, 그럼에도 <20세기 소년 소녀>의 부진은 명확해 보인다. 똑같이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다른 온도차를 보이는 건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이 두 드라마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감'때문일 듯싶다. 



내 얘기같아 마음아프고 마음이 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83년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던 이제는 서른 중반의 동갑내기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 청소년 시절의 풋내기 첫사랑의 정서를 이어가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서른 중반의 그녀들이 보이는 현실의 사랑 이야기에서 여전히 '기존' 이라 쓰고 '진부하다'라고 읽혀지는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뛰어넘지 못한 채 답습하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알고보니 모쏠인 스타 사진진(한예슬 분)하며, 매번 승무원 복장의 핏을 고심해야 하는 한아름(류현경 분), 초짜 변호사 장영심(이상희 분)의 처지가 그럴 듯하지만 그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어쩐지 어디선가 본 로코의 한 장면인 듯 익숙하다. 

반면, 오갈 데가 없어 계약 결혼을 감행한 전직(?)드라마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로서 생존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 우수지(이솜 분), 로망은 현모양처지만 현실은 옥탑방 동거 신세인 양호랑(김가은 분) 등이 매회 맞닦뜨리는 결혼과 사랑, 우정의 현실은 '너무 내 얘기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세희(이민기 분)와 결혼에 골인한 지호, 세입자가 필요한 집주인과 가장 점수가 높았던 세입자라는 계약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를 겪는다. 무엇보다 결혼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오해의 해프닝이지만 복남이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세희를 보며 지호는 집주인을 넘어 세희를 남편으로 좋아하기 시작하며 관계의 설정에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된다고 섣부르게 덜컥 '로코'의 정석으로 넘어가지 않는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장점이다. 



결혼, 제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한 미시적 고찰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그 '마음'의 변화와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겪는 지호의 변화이다. 수지가 칭한 '감배' 모임, 즉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사생활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으로 변질된 동창 모임에서 그간 친구들과 소원했던 지호는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안온함을 느낀다. 반면 '비혼주의자' 수지는 재수없어 하고, 결혼이 로망이 호랑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 시댁 제사에서 고단수의 딸내미같다는 칭찬을 들으며 시댁 제사일을 다 떠앉은 지호는, 이른바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라는 진단과, 수비수로서의 존경을 받았던 전력'이 무색하다는 세희의 평가에 혼돈스러워 한다. 

이처럼 그간 드라마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여성, 혹은 부부 관계를 상투적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미시적'으로 그 제도에 속해가는 지호를 들여다 본다. '감놔라 배놔라'해서 싫다는 수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소속감이 싫지 않았다는 지호의 마음이나, 적당히 거절할 수 있지 않았냐는 세희의 비난에 착한 며느리 증후군인가 들여다 보면서도 '마음'을 놓치지 않는 문과 출신 지호의 고민은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착한 며느리 증후군을 통해 짚어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도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으로서의 결혼이라는 정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회학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섬세하게 살펴낸다. 

또한, 결혼이 로망인 호랑을 위해 2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일을 접어가면서 까지 '취직을 감행한 그녀의 남자 친구 심원석(김민석 분)과, 하지만 옥탑방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아득한 이 커플의 현실은, 개념, 무개념이라 선을 그을 수 없는, 집을 가진 세희와 지호의 고민과 또 다른 지점에서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짚어낸다. 연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손해를 보고싶지는 않은 수지의 계약 연애 역시 또 다른 현실이기는 마찬가지다. 

by meditator 2017. 11. 8. 13:57

영화 감독들의 단편 영화 제작기를 예능으로 담은 <전체 관람가>는 정윤철, 봉만대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메이킹과 영화의 콜라보의 의미를 십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의 <아버지의 검>이나, 봉만대 감독의 <양양>이 게임과 실사 영화의 콜라보라던가, 19금 감독의 전체 관람가 가족 영화라는 신선한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주목을 받았지만, 메이킹과 영화라는 균형추에서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 아쉬움은 3000만원의 부족한 제작비와 짧은 촬영 시간의 핑계로 대신되었었다.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 드디어 단편 영화의 빛을 발하다
하지만 이제 4회를 맞이한 <전체 관람가>는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그런 핑곗거리를 역설적 기회로 활용하며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제사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액션 영화에서 급 변경된 뮤지컬이라는 장르, 그것도 '노래방' 음향이라는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 오히려 이원석 감독이 주제로 삼은 '아재들의 이야기'의 화룡점정이 되어 작품의 빛을 더한다.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 전작 <남자 사용 설명서>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했던 이원석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요 이래 <영웅;샐러맨더의 비밀(2010)>을 유일하게 개봉한 극장에서 찾아 볼 만큼 배우 김보성의 팬이었던 자신의 팬심을 영화에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김보성만큼이나 <클레멘타인> 등을 통해 액션 배우로 일가견이 있는 이동준 배우와 함께 하고자 한다. 

대중들에게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광고를 통해 등장해 철 지난(?) '의~리'를 외치는 그 '아재'들의 감성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한 그 무엇에 대한 고찰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원석 감독이 여전한 아재들의 액션 감성을 고수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에 엄격한 조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 의해 대번에 가로막히고 만다. 그리하여 정윤철 감독처럼 '즉흥 환상곡'처럼 아재들의 감성을 역설적으로 '랩권하는 세상' 속에서 구원하고자 발리우드의 한국판 버전 '코리우드 뮤지컬'로 급변경된다. 


열악한 제작 환경이 만들어 낸 코리우드 노래방 뮤지컬 
빠듯한 제작비에 하나 둘씩 톡방을 빠져나가는 스텝들, 그리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배우의 섭외 등의 과정은 이제 <전체 관람가>의 통과 의례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여전히 팬이라 알아봐주는 이원석 감독을 위해 혹은 여전히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감독을 위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촬영에 성실하게 임해 생전 처음해보는 랩에서 부터 60의 나이에 등에 땀이 나도록 안무를 연습하는 이동준 배우의 '노익장(?)은 그 자체로 한편의 '인간 극장'처럼 다가온다. 

드디어 영화의 개봉, 영화는 신나는 싱어롱 노래방 뮤지컬을 표방하며,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뜬금없는 설정에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잠시 옆 사람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한 후 본다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시작된 영화는 여전한 의리의 김보성이 영화 오디션 현장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지는 거승로 시작된다. 어떻게 요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김보성의 일정한 연기는 '갓잇'의 수식어를 요구하는 '랩부심'이 충만한 현장에서 당연히 '거절'을 당하고, 그에게 겨우 마련한 오디션 자리를 소개해준 후배의 타박이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에도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보성의 '시간이 째깍째각~ 흐르는 세월~'하는 노래가 이어진다. 김보성의 노래에 맞춰 방금 타박을 주던 후배의 백댄서 변용까지, 우리가 이른바 '발리우드'라 칭하는 인도 영화에서 흔히 보던 급전직 뮤지컬의 등장 방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혼자 술을 마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버지 김보성 앞에 등장하여 아버지는 '아재'라며 구박을 하는 아들의 대사 역시 '랩'으로 대신한다. 이후 열 번의 오디션에서 계속 물을 먹은 아버지 김보성은 마지막이라며 후배가 권한 영화의 배역 '랩에 빠진 아버지'의 역을 맡기 위해 '랩하는 방법'에서 부터 첫 걸음을 뗀다. 그리고 이원석 감독의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 등장했던 방식을 차용하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도입 부분처럼 cg를 활용한 김보성의 랩 입문기는 그 자체로 실험적인 영역으로서 단편 영화의 맛을 한껏 만끼하도록 만든다. 

드디어 랩에 빠진 아버지 역할의 오디션을 보는 날, 말이 래퍼지 80년대 촌스러운 운동복에 머리띠까지 두른 어색한 아재미 풀풀 풍기는 김보성 래퍼가 뜻밖에도 오디션 장에서 그처럼 오디션을 보러 온 그와 같은 왕년의 액션 배우 이동준을 만난다. 아내의 롱 털코트까지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과거를 상징하는 트로피까지 들고 온 또 다른 아재 배우 이동준. 

두 사람이 트로트 반주에 어머님을 그리는 노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시작된 오디션, 의상까지 맞추며 등장했지만 빠른 비트 박스에 이동준 배우는 차마 입도 떼지 못한 채 오디션 장을 나서고 만다. 김보성 배우라고 다를까. 하지만 한번의 기회를 더 청한 그는, 그만의 리듬으로 '현실을 피한 돈키호테'로서의 자신의 현실을 토해내고 오디션 장을 빠져나간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다른 촬영의 보조 출연자로 조우하고, 그곳에서도 타박을 받다 잠시 벤치에서 쉬던 두 사람은 아직도 두 사람을 알아보는 왕년의 팬들로 인해 한숨을 돌리고 <라라랜드>의 그 절정의 음악 못지 않은 아재들의 <랄라랜드> 협연으로 영화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웠던 아재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많은 감독들이 기립 박수를 쳤고, 눈물로 환대하듯,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는 웃음과 그 특유의 b급 감성과 그럼에도 그 속에 담겨있는 아재들의 순정으로 인해 한 조각의 '맛있는 케이크'처럼 15분을 60분처럼 느끼게 다가온다. 문소리의 평처럼 김보성, 이동준이라는 두 배우의 현실이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영화 속에 녹아든 아재들의 <랄라랜드>는 '랩'으로 대변되는 흐르는 세월 속에 템포를 맞출 수 없는 '돈키호테'같아졌지만 그래도 '사나이'로 대변되는 '순정'의 가치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단상으로 결론내려진다.

이원석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뒤처진 단어가 되어가는 '아재', 그들의 존재 가치를 '코리우드'라는 신조어가 어울리는 노래방 뮤지컬의 형식을 통해, 이제는 아니 예전에도 a급은 아니었지만, b급 그 자체로서도 얼마든지 존재 가치가 있는 '아재'의 존재 가치를 빛낸다.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 오히려 변하지 않아 가치가 있어져 버린 영역에 대해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김보성, 이동준 배우의 재발견은 물론, 나이들어 가며 세월에 뒤쳐져 조바심을 내는 이들을 위로한다. 우스개처럼 장편이라면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란 이 <랄라랜드>야 말로 단편만이 해낼 수 있는 독보적인 감성의 승리다. 
by meditator 2017. 11. 6. 17:24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의 물꼬를 튼다. 친구의 연식으로 보아 공중파에서 한참 인기가 있는 그 어머니들의 출연하는 예능? 아니면 케이블의 인문학 수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유툽의 항해에 빠졌단다. 지난 촛불 광장으로부터 불붙은 그 친구의 관심은 유툽에 있는 다종다양한 정치 팟 캐스트에 대한 열혈 시청 욕구를 불붙였고. 직장 일로 바쁜 틈틈이 접근성이 좋은 팟 캐스트를 한 편씩 시청하는 것이 요즘 일상의 낙이라고 적극 추천한다. 




팟 캐스트, 그 선두 주자로서의 김어준 
이런 식이다. 어쩌면 공중파의 면구스러운 시청률을 케이블이나 종편 핑계를 댈 것도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툽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의 프로그램에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친구처럼 지난 촛불 정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사안을 펼쳐내는 팟 캐스트가 인기를 끌었고, 그 선두에 '김어준'이 있다는 건 자타공인이다. 

김어준이라 하면, 기억을 거슬러 딴지 일보 총수라는 독특한 그의 이력을 시작으로 아직 팟 캐스트라는 채널이 볼모지인 시절, 2011년 4월부터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을 향한 저격수의 역할을 자처한 <나는 꼼수다>를 당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 평론가,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과 함께 시작했다. 18대 대선 하루 전인 33회차를 끝으로 종영한 <나는 꼼수다>는 이후 한겨레 tv와 함께 한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용민의 국민tv <맘마이스>, 정봉주의 <전국구> 등으로 확산되어가며 촛불 정국을 달군 팟캐스트 열풍에 힘을 실었다. 

왜 팟 캐스트 였을까? <나는 꼼수다>의 등장에서 부터 보여지듯 이 정치 팟캐스트의 존재는 파격적이었다. 때로는 욕설까지 등장하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그보다 더 직설적으로 '가카'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 정치 풍자, 비판 방송에 당시 17대 총선이후 좌절되었던 의식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후, 이런 <나꼼수>의 활동이 촉매가 되어 18대 대선 이후 정의당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등의 정치 까페 등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보여지듯이 정권의 공영 방송 장악과 종편의 파상적인 정치 공세에 좌절한 의식적 대중의 마음에 등대지기 역할을 하며 지난 촛불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치 팟 캐스트의 역할은 그 어떤 공영방송의 뉴스보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데 일조한 김어준과 그의 팟 캐스트는 당당하게 공중파 sbs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이기에 이르른다. 바로 지난 4일과 5일에 선보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란?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이하 블랙하우스)>를 그저 개선장군으로서의 행진으로만 보아서는 아쉽다. 오히려 <블랙 하우스>의 존재는 오히려 2011년 이래 줄기차게 이어져 온 김어준의 '가카 헌정 방송'의 절정이며, 또한 동 시간대 방송해온 <그것이 알고싶다>가 타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들이 정권과 야합하는 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시도해온 정치 비판 다큐의 연장선상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4일의 첫 방송에서 다큐는 화제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 첫 주자는 다름아닌 유병언 세모 회장의 아들 유대균씨, 외국의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 '음모론'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아버지 유병언의 자살에서 부터 국정원 연계설까지 모든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쳐낸다. 

그렇게 세간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가던 세월호를 다시 부양시킨 인터뷰는 이어서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와 함께 정창래 국회의원 등과 함께 한 두바이의 비밀 인터뷰를 공개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에 대한 대담으로 이어진다. 이 내용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그리고 김어준의 팟 캐스트 등을 통해 그 일부가 소개되었음에도 그 실체의 진실에 대해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권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비도덕적 행각을 폭로하는데 거침이 없는 한편, 2회 강유미를 등장시켜 '다스는 누구꺼죠?'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야 만 '흑터뷰'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아니 이제서야 드러나기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다스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리의 서막을 명쾌하게 설명해 낸다. 

즉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새 정권의 최대의 임무가 '적폐 청산'이듯, 아직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적폐 정권의 그림자를 김어준과 제작진은 드러내 보이기에 거침없었고, 이를 통해 <블랙하우스>의 존재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2회 강경화 장관과의 인터뷰, 그리고 1회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와 정세현 전 외교부 장관을 등장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며 '코리안 패싱'은 없다는 해명의 여지도 주는가 하면, 새 정부의 행보에 대한 훈수를 두는데도 서슴치 않았다. 

1,2회 파일럿을 마친 <블랙 하우스>에 비견될만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jtbc의 <썰전>이라 할 것이다. 지난 정국에서 <썰전>의 파격적 존재감을 보며 앞다투어 종편에서 그와 비슷한 포맷의 정치 대담 혹은 방담 프로그램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블랙 하우스>는 그런 종전의 방식과는 다른 '김어준'이라는 '총수'로 불리는,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정치적 사안도 가장 명쾌하고 단순하게 설득해 내는 그의 존재감에 기대어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와 초대 손님의 직설 인터뷰에 이어, 그를 중심으로 한 패널들의 정치 분석, 그리고 강유미와 같은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명쾌한 이명박 전대통령과 다스에 대한 설파에 이르기까지 마치 종합 예능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코너로 정치에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포맷의 이 정치 시사 프로그램은 첫 방 6.5%에 이어 2회 7.8%로 정규 편성의 청신호를 밝혔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by meditator 2017. 11. 6. 12:56

마치 돌림 노래처럼 너도 나도 연예인 혹은 연예인 측근들의 관찰 예능이 붐을 이루는 최근, 지난 10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의 <내 이름을 불러줘 -한 名회>의 존재는 남다르다. 신개념 소설 클럽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동명이인'이라는 우리 사회 흔한 현상을 '휴먼 스토리'의 일반인 토크쇼의 소재로 끌어와 거기에 장성규 아나운서의 '이름의 사회학'을 곁들여 차별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첫 회 그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실한' 김정은으로 부터 시작하여,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건너, '하늘', 그리고 이제 2017년 가장 유명해진 '김지영'으로 따로 또 같은 이들의 사연과 입담,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열어간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매개가 된 김지영 씨들의 소셜 클럽 
4회 김지영이란 이름을 가진 출연자들에 앞서 우선 2017년을 달군 <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지난 2016년 10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13번째 책으로 선을 보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서른 네살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 김지영을 상담한 리포트를 재구성한 형식의 소설이다. '젠더'적 감성에 기반한 이 소설은 태어나면서 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서 차별을 당하고, '여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결혼'과 '육아'라는 제도를 통해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 82년생 여성의 리포트는 발간과 동시에,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여성 가족부가 출범,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음에도 '내재화되고 관습화된 성차별'의 감성을 건드리며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라는 시대적 화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결과 이 시대 차별받는 여성의 상징처럼 된 <82년생 김지영>은 그 공감대를 발판으로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다큐 등 여러 프로그램 들이 앞다쿠어 이 화제의 책을 언급하고 다룬 가운데, 이제 10월의 마지막 날 jtbc<한명회>에서 그 '김지영'씨들을 소셜 클럽의 주인공들로 모셨다. 
소설은 82년생이라는 특정 연도의 출생 김지영을 다루었다. 실제 김지영의 출생 연도를 조사해 보니, 1980년에 제일 많은 김지영의 출생 신고를 한 것에서 보여지듯, 김지영이란 이름은 80년대 여성의 가장 '흔한' 이름이었다. 그 '흔해서 무시받던' 이름이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의 대명사'가 되며 재조명받아 감사하다는 90년생에서 61년생까지의 9명의 김지영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나이가 다르듯 세대적 현실이 다르고, s대 출신 의사, 변호사에서 웃음 치료사, 아르바이트 전문가, 주부, 공백기를 가진 회사원까지 다양한 직종과 경험을 가진 9명의 여성들, 그저 그녀들의 아침 주부 대상 휴먼 스토리 토크쇼가 될 뻔한 프로그램에 차별적 연결 고리가 된 건, 바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소설을 읽은 9명의 김지영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66년생의 김지영도, 83년의 김지영도 어떻게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삶은 변화하지 않는가라고. 심지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mc 한혜진은 소설 속 어머니의 삶조차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너무도 똑같다며 공감대를 넓힌다. 

그리고 이 놀라움의 배경을 장성규 아나운서가 등장하여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이라는 사회적 통계를 통해 설득한다. 2016년 전체 인구 중 여성 비율 49.9%, 여성의 대학 진학율 73.5%, 고용율 50.2%의 세상, 그러나 20세 이상 928만 9천 명의 여성 중 696만의 여성이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겪게되는 것을 통계는 보여준다. 10명 중 7명이 퇴사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15%는 경력 단절의 갭을 넘어 사회에 복귀하지만, 상당수가 그 이전에 비해 직종이나 임금에서 다운그레이드한 상태를 겪게 된다고 수치는 증명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15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페미니즘'은 어때? 
이런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9명의 김지영들의 삶이 보충한다. 의사나 변호사라는 전문직이라도 결혼을 하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전제'만으로 선택 과정에서 당연한 차별을 겪게 되며 결혼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그나마 첫 아이까지는 출산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둘째 아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로 만드는 조직.
조직만이 아니다. 낳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성장 과정,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가족내에서부터 사회 조직에서까지 여성이 잘 나가면 오히려 불쾌해지는 아이러니, 마치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세상에 여성은 너무도 작아 계속 잘리는 느낌이라고 출연자가 말하는 그 '내재화되고 제도화된 차별'에 8명의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런 8명의 김지영들의 토로와 공감은 출연한 한 명의 남자 김지영과 mc 노홍철, 그리고 출연자의 가족인 남자들에서부터 의식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그리고 자신이 겪은 차별적 삶에 대한 해법에 대한 답을 '사회적 의식 변화'라고 명쾌하게 정의한 그 '변화'의 물꼬를 프로그램은 유도한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소설을 읽은 남자 김지영은 '도와준다'고 했던 가사 노동에 대한 다른 변화된 시각을 보인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그저옛날 이야기라 여겼던 노홍철은 현실에 대한 놀라움과 자각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차별적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혼'을 선택했던 72년생의 변호사와, 자신의 성취를 위해 '비혼'을 희망한다는 90년의 구직자, 그리고 딸이라면 '비혼'을 권장하겠다는 현실의 막막함을 함께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어떤 캠페인이나 구호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치열했던 8명의 김지영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차별적인 삶을 이해시킨다. 왜 이 시대 여성이 존중받아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좀 더 여성을 위한 제도와 배려들이 필요한 것인지, 지난 시절의 내재화된 차별 속에서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통해 설득한다. 남성들의 무지와 외면 역시 노홍철과 남성 김지영 등을 통해 교감하고 소통한다. 어쩌면 그저 흔한 '휴먼 스토리'일 수도 있던 토크쇼는 한 편의 소설이라는 문화적 콘텐츠의 의미와 공유,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의 사회화, 그리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멋들어진 '페미니즘'의 결과물에 도달한다. 





by meditator 2017. 11. 1. 16:22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초식남의 연애담과 가사 노동의 소중함을 주제로 삼아 '가정' 꾸리기에 집중했던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のは恥ずかしいけど役に立つ>(아래 <니게하지>의 계약 결혼은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와 가족과 결혼에 대한 현실적 담론으로 변모했다.  여전히 일본 원작 설정의 기억을 지울 순 없지만, 회를 거듭하며 왜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이 드라마가 '리메이크'라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바다 건너 온 계약 결혼의 양상은 달라진다.  <직장의 신(2013)>, <호구의 사랑(2015)>를 통해 공감어린 현실을 그리는데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윤난중 작가답게 2017년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실'을 윤지호(정소민 분), 우수지(이솜 분), 양호랑(김가은 분) 세 30세 동창생들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낸다. 




본의 아니게 '우리'가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 
세입자가 필요했던 남세희(이민기 분)와 오갈데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전직 보조작가 지호는 '의기투합' 집주인과 세입자의 월세 결혼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두 사람의 계약은 순조로웠다.  평생 살 집의 경제적 보조와 분리 수거, 고양이 밥 줄 사람이 필요했던 세희에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청소에,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며,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지호는 더할 나위없는 찰떡 궁합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이 순조로운 두 사람의 2년 약정 동거 프로젝트에서 함정이 된 건 현실 대한민국의 결혼 제도이다. 양가에 인사만 드리고 결혼 과정을 뚝딱하려던 두 사람에게 결혼만 하면 더 이상 어머니와 이혼을 운운하지 않겠다던 세희의 아버지와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호의 서울 생활을 지원하던 어머니가 반기를 든다. 이런 식의 '동거'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국의 부부를 '전통적 가족간의 결합'과 '개인의 자유로운 결합', 그 과도기에 있는 형태로 본다. 즉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연애에서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는 '가족'이라는 제도의 체계적 결합이 필수적이라는데 있다. 대부분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결혼 후의 집이라던가 결혼식 과정에서의 비용 면에서 부모들의 도움을 받는다.  또한 결혼은 그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여겨지며, 그 과정에서 양가 간의 경제적 균형에서 비롯된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속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거기에 결혼식 자체도 부모 세대는 물론 결혼 당사자에게도 그간 자신이 다른 친지들의 결혼식에 낸 '부주'의 수확 과정이라 여겨지는 게 오늘날의 결혼이다. 

다시 드라마로 와서 세희와 지호는 '결혼'이라는 면피를 통해 그들의 동거를 합리화하려 하지만, 그들이 사는 21세기의 '결혼'이라는 통과 의례의 '난코스'를 본의 아니게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상견레와, 결혼식을 통해, '우리'라는 확대 가족의 범주에 자신들을 끼워넣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 과정은 코피를 쏟을 정도로 번거로운 과정임과 동시에,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의 정을 다시금 깨닫는 여전한 가족의 울타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요, 그런가 하면 그저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형식의 '중력'을 깨뜨리는 본의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 탄생 순간으로 드라마는 기록한다. 

가장 현실적인 이해 관계로 함께 한 두 사람이 가장 운명적인 제도 결혼을 통해 드러내는 한국의 여전히 강고한 가족 제도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을 회수를 건너 탱자의 정체성을 실감나게 살린다. 그리고 이 본의아니게 이번 생 처음으로 '우리'가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가 겪어갈 해프닝이 이 드라마의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된다. 



원석과 호랑의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
<이번 생>의 한국적 정체성을 더해주는데 한 몫을 하는 건 지호의 친구 호랑과 수지이다. 그 중에서도 허무맹랑하게도 아직도 21세기에도 현모양처를  꿈꾸지는 현실은 옥탑방에서 동거를 하는 수지의 '결혼에 대한 로망'을 또 다른 각도에서 결혼에 대한 이 시대의 현실을 건드린다. 

이제 서른, 물론 마흔이 넘어 오십이 되어서도 임신이 가능하다지만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하여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도록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픈 호랑에게 서른은 마치 마지노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호랑의 조바심에 동거남 원석(김민석 분)은 철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동문서답만 한다. 프로포즈를 원한 호랑에게 신혼집에 들여놓을 소파를 몇 개월 할부로 옥탑방에 들여놓는 식이다. 

하지만 원석의 입장은 현실적이다. 앱 개발을 하는 중 투자도 못받아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일은 하늘의 별과도 같이 먼 미래의 이야기다. 호랑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그에겐 사랑과는 별개의 '책임'이란 무게를 더한 다른 범주의 문제가 된다. 

어쩌면 호랑과 원석의 갈등이야말로, 세희-지호 커플보다 조금 더 현실에 한발을 들여놓은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다. 계약이 진짜 가족간의 결합이 되어버린 세희와 지호의 결혼 과정에서 세희의 번듯한 직장과 집이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는 건 이미 드라마를 통해 짚어진 바 있으니까.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한 옥탑방 앱 개발자에게 결혼이란 '무책임'이라기보다 오히려 '책임감'있는 소신이 되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결혼도, 연애도 사치, 우선은 직장에서 살아남기가 먼저인 수지 
어쩌면 호랑과 지호를 만날 때마다 가장 넉넉하게 그녀들의 지원군이 되어주는 수지야 말로, 가장 그녀들 중에 '여유'가 없는 형편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가라는 꿈을 꾸었던 지호와, 여전히 결혼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호랑과 달리, 수지는 일찌감치 'ceo'라는 꿈을 접은 채 대기업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에 매진하는 중이니까. 

남들이 보기엔 그럴 듯한 직장의 대리지만,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직장 동료들의 성희롱 발언들도 유들유들하게 웃어 넘기고, 친구들과 모처럼 노래방에 갔다가도 직장 일로 부리나케 출동해야 하는,  남자는 그저 '성욕'의 대상일 뿐, 사랑 따위 사치가 여기는 수지야 말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청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7. 10. 25. 15:05

지난 10월 10일자 오마이 스타 < 스크린 독과점 그 너머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를 보면 '일부 대형 배급사들이 실패 위협을 낮추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크린을 독점하고, 유통에 개입했지만 최근 2년간 성공률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기간을 돌아보면 여전히 대형 배급사의 흥행률은 실패율보다 3,4배 높다. 그러나, 이건 글에서도 나타나다시피 독점하고 유통에 개입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독점과 유통의 빛을 받지 못한 중소 규모의 영화들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란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가고 있다. <대립군>, <비밀은 없다>, <조작된 도시>, <마담 뺑덕> 등의 우리 영화들은 그 '손익분기점'의 턱걸이를 넘지 못한 채 사라졌다. 흥행을 담보해내지 못한 감독들에게 '차기작'의 기회는 더더욱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때로는 그래서 첫 데뷔작이 은퇴작이 된 감독들도 많다. 대기업 중심, 대박아니면 쪽박의 한국 영화 시장에서 '중견' 감독이 꼭 다음 작품을 보장받기란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장 흥행과는 또 다른 문화적 트렌드가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는 명절 특선 영화로나 만나야 하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어둠의 경로'를 비롯하여, 핸드폰, 인터넷 등의 다양한 수단으로 영화를 접하는 세상이다. 더구나 이동하는 혹은 잠시 틈을 타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짧은 시간을 활용한 '웹툰'이나, '동영상' '웹드라마'의 인기는 미디어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변화하는 트렌드, 감독들을 예능으로 모이게 하다 
그런 변화하는 영화 콘텐츠의 흐름을 jtbc의 <전체 관람가>가 발빠르게 '예능'으로 흡수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까지는' 가장 영향력이 크다 자부하는 두 매체, 영화와 예능' 두 장르의 콜라보 예능이 탄생한 것이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감독들,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그의 대표작을 들면 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감독들이 <전체 관람가> 스튜디오에 모였다. <인정사정 볼 것없다>의 이명세 감독,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남극 일기>의 임필성 감독, <미스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남자 사용 설명서>의 이원석 감독,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봉만대 감독, <계춘 할망>의 창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한국 영화계에서 내노라하는 대표작을 가진 감독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작이 부진하거나, 최근작을 만나보기 힘든 감독들이다. 

이들을 모아놓고 제작진은 mc 윤종신, 김구라, 문소리를 내세워 '신나리' 프로덕션을 만들고, 제작비 3000마원, 12분 내외의, 2017년을 대표할 키워드를 내세운 '단편 영화 제작'을 제작할 것을 주문한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영화 제작이다. 하지만, <전체 관람가>는 말 그대로 예능과 영화의 콜라보, 하지만 엄밀하게 분류로 보면 '예능'이다. 

첫 회 한 자리에 모인 늘 카메라 바깥에서 지시를 하다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와 어색해 하는 감독들의 만남에서 부터, 스튜디오에 모인 감독들의 입담과 영화 제작 순서와 제작 과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며 '예능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첫 영화는 정윤철 감독의 <아버지의 검>이지만, 그 영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1회와 2회를 다 보고 마지막 20분전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신 그 시간을 채운 건, 감독들과 mc진의 토크와, 짧은 시간, 부족한 제작비를 두고 그럼에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감독, 배우, 제작진의 '리얼 버라이어티 '이다. 

<전체 관람가>는 자칭 블록버스터 콜라보 예능이란 명칭에 어울릴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감독들의 만남, 그리고 영화 제작기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관찰' 예능의 형식을 담아낸다. 촉박한 시간, 정윤철 감독 제작부의 표현대로 '즉흥 환상곡'처럼 변수를 만들어 내는 제작 현장, 그 속에서 '창작'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감독, 배우, 제작진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새로운 관찰 예능이다. 첫 방송 후 영화 보다 재밌는 감독들이란 '아이러니한 평가(?)를 받았던 스튜디오 녹화는 그 자체로 '토크쇼'로서의 맛깔나는 성찬이었다. 열 명의 개성 강한 감독들과, 그들과 한 배를 탄 배우 문소리, 영화에 대해 안목이 있는 중견 mc 윤종신과 김구라의 조합은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영화 제작에 있어 필수 요건으로 제시된 신인 배우 출연은 그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위한 신인 배우 오디션에서 부터, 출연기까지 또 한편의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띤다. 그리고 방송을 통한 영화 개봉 이전에 미리 온라인 시사회 관객단 100명을 통한 사전 시사 프로그램과 그 댓글의 공개나, 영화 사후 동료 감독들의 평가는 최근 등장한 상호 교감 방송의 또 다른 사례로 볼 수 있다. 



화룡점정을으로서의 영화(?), 그 첫 번째 정윤철의 <아버지의 검> 
이 처럼 <전체 관람가>는 예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다 구비하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를 내세운 하지만 결국은 '중견 감독들이 만드는 단편 영화'라는 신선한 시도로 '호객'한 이 프로그램의 절정은 '영화'가 된다. 

그리고 그 첫 영화 신윤철 감독의 <아버지의 검>이 10월 22일 오랜 기다리 끝에 방영되었다. 과연 정윤철 감독의 영화는 토크와 메이킹을 뛰어넘어, '영화'프로그램으로서 위신을 지켜냈을까? 댓글 창의 호평과 달리, 이명세 감독은 메이킹을 본 기대에 비해 영화의 만듬새의 아쉬움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의 표현처럼 '영화는 한 방이다'란 말에 걸맞게 동료 감독들의 찬사를 받으며 12씬 165컷, 1759 테이크를 밤을 세어가며 '전광석화'처럼 만들어 낸 <아버지의 검>은 실사 영화와 게임의 절묘한 콜라보를 이룬 절정으로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증명해 내었다. 

적은 제작비, 짧은 시간 동안 중견 감독이 만들어 낼 영화는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좋지 아니한가(2007)>, <말아톤(2005)>, <대립군(2017)>을 통해 '드라마틱한 서사'를 통한 '성장'에 능했던 정감독은 예의 자신의 장점을 살려 '왕따' 문제를 영화화했다. 하지만, 그 장점에 더해, 단편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실험적 도전'으로 게임과의 콜라보를 시도한다. 왕따를 당하는 중학생 소년, 그에게 학교 폭력을 가하는 무리들은 게임 머니 충천을 요구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 가해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소년, 그의 좌절에 아버지가 쓰러지신 사고는 더 절망으로 그를 이끈다. 이 '평범한 클리셰'에 반전은 아버지의 병실을 찾아온 아버지를 '군주'라 부르며 흠모하는 사람들. 일상 생활에서는 존재감이 없던 아버지이지만 게임 속 '최 게바라'로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악의 무리에 대항하여 전쟁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이 '황당무개'한 설정을 이희준, 구혜선 등의 진지한 연기를 통해  정윤철 감독은 '현실'과 '게임'의 세계를 이으며 <좋지 아니한가>처럼 '역설'의 존재론을 설득해 낸다. 그리고 마치 포켓몬 고처럼 가상과 현실을 이은 영화는 지리산까지 찾아가 아버지의 검을 획득해낸 소년이 스스로 왕따의 굴레에서 벗어나 '최게바라 '아버지를 만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왕따, 가장의 죽음이라는 현실적 소재는 '게임', '가상 공간 속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또 다른 의미를 짚는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 정의야 말로 , 12분의 한계 속에 적은 예산의 단편 영화이기에, 가능한 시도이고, 그걸 정윤철 감독은 첫 영화로 스타트를 끊으며 프로그램의 가치를 높인다. 





남겨진 과제
가치의 증명에도 불구하고, 이제 2회를 마친 <전체 관람가>는 숙제를 남긴다. 새로운 콘텐츠 환경에 대한 시도라는 점에서 획기적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영화와 예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갈 것인가의 과제는 내내 남을 것이다. 이미 초창기 jtbc가 단편 영화 제작을 예능으로 담으려 시도했던 바의 연장 선상에 있는 이 프로그램은 과연 그때의 신인, 혹은 일반 감독들과 이제 중견 감독으로의 차별성 속에서 '단편 영화'의 부흥에 기여할 것인가가 궁극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영화'가 재밌어야 하는데, 과연 예능보다 재밌는, 혹은 화제성있는 영화의 탄생기가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이 프로그램과 관련 구혜선 등의 재능 기부가 화제가 되었듯이 3천만원의 제작비에 감독들이 그건 솔직히 자신들에게 '출연배우들' 및 제작진들에게 '사과'와 '구걸'을 하라는 다른 말이 아니냐는 반문에서 보여지듯이, '밤샘 촬영'과 함께, 또 다른 '열정 페이'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족으로 더해본다. 좋은 시도와 좋은 과정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되기를~
by meditator 2017. 10. 23. 15:36

월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에 이어, 수목 <부암동 복수자들(이하 복수자들)>로 편제된 tvn의 주중 미니 시리즈 배치는 다분히 시청률 타깃을 의도한 편성처럼 보여진다. 월화 <이번 생>이 2,30대 청춘들을 타깃으로 한 헬조선 청춘 백서에 가깝다면, 그에 이어 바톤을 물려받은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이후의 중년층의 현실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이런 차별적 편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지금의 구도는 이와 같고, 그런 타깃별 편성은 4%를 바라보는 <이번 생>에 이어, 첫 회 2.9%, 그리고 2회 그 두 배에 가까운 4.63%로 폭발적인 출발을 보인 <복수자들>로 성공적이라 점쳐진다.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부암동 복수자들>은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다음 온라인 만화 대전 장려상을 수상하고 이미 웹에 게재될 당시부터 화제작이었던 이 작품은 <작업의 정석> 각본 황다은, 김이지 작가와 <골든 타임> 권석장 피디의 손을 거쳐 tvnd의 수목 드라마로 안착했다. 



같이 복수하실래요? 
제목에서 부터 '복수'라는 말로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이 작품은 더구나 중년의 세 여성이 모여 각자의 복수를 함께 도모한다는 신선한 설정만으로도 솔깃해 지는 작품이다. 부암동에 있는 까페에 모인 세 여인, 그 시발점이 된 건 재계 서열 10위 건하 그룹의 딸로 역시나 재벌가의 첫째 며느리인 김정혜(이요원 분)의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는 청에서 부터 비롯된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가의 여인이 생선 장수에게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니. 하지만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정혜는 재벌가의 여인이지만, 아기도 없고, 심지어 이제 남편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통보까지 받은 상태이다. 남편은 미안해하기는 커녕 남편의 자식이라는 그 녀석과 희희덕거리기에 정신이 없다. 그에게 아들이 생긴다는 건 재벌가 후계 구도에서 그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포기하지 못한 아기의 방은 그 듣도보도 못한 남편의 자식 방이 되어 아기 용품들이 바닥을 뒹군다.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다정한 부부지만, 정혜는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복수'가 필요한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나선다. 

그녀에 눈에 띤 첫 번 째 동지는 바로 남편과 함께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만난 이미숙(명세빈 분)이다. 이미 까페세서 정혜의 눈에 들어온 이미숙을 보고 정혜는 확신한다. 그녀가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라는 것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청한다. '함께 복수하실래요?' 그러나 순종적인 미숙에게 그런 정혜의 청은 청천벽력이다. 그러자, 안하무인 정혜는 이제 곧 교육감 선거에 나설 남편의 폭력 행사를 폭로하겠단다. 그래서 정혜는 울며 겨자먹기로 '복수자 클럽(이하 복자 클럽)'에 나섰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도 정혜와 미숙은 서로 모임을 통해 남편들끼리도 아는 처지라지만, 세 번 째 멤버 홍도희(라미란 분)의 등장은 생뚱맞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날 뻔한 두 사람은, 그 대가로 차를 태워주고, '홍도 생선'이라 불러주며 인연의 끈을 맺기 시작했다.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을 계기로 애를 태우는 홍도희에게 '복수 클럽'은 동앗줄과도 같았으며, 화끈하고 통이 큰 도희는 곧 정혜와 미숙의 언니처럼 이들을 품으며 격이 다른 삶에도 불구하고 함께 클럽 멤버가 된다. 

그리고 3회, 주부만이 이 클럽의 멤버가 될 수 있다는 정혜의 냉정한 배척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멤돌던 유일한 청일점 이수겸(준 분)이 복자 클럽 제 4의 멤버가 되었다. 정혜와는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굴러들어온 돌멩이 같던 녀석이었지만, 처음부터 정혜에게 호의적이었던 수겸은, 자신 역시 그 나이 되도록 코끝 한번 비추지 않았던, 오로지 돈과 승계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친부모들을 향한 복수라는 취지에서 복자 클럽의 멤버가 되기를 '고소원'한다. 그리고 도희 딸에게 성추행과 보복 행위를 가하는 교장을 향한 복수를 성공시키며 '복자 클럽'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합류한다. 



'가부장제'에 대항한 '복수'
재벌가의 맏며느리와, 교육감 아내, 생선 가게 아줌마, 그리고 재벌가의 혼외 자식, 이들 네 사람을 엮이게 만들어 준 복수의 교감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

물론 네 사람 모두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맞지만 이 이질적인 네 사람을 묶어주는 건 '가부장제'의 공고하고도 거대한 위계이다. 재벌가의 맏며느리이지만 가문을 승계한 아들을 낳지 못해 혼외자식을 들이는 일조차 '통보'를 받는 굴욕을 겪어야 하는 정혜.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벌가의 아들로 입성하게 된 수겸은 바로 그 재벌가라는 가문으로 윤색된 가부장제의 '희생양'들이다. 번듯한 교육감 후보의 아내 미숙이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남편에게 학대당해 그의 손길 한번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녀에게 돈과 명예로 휘감은 '가부장'의 권력이이 힘없는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가해자'이라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하지만 도희에겐 '가부장'이 없지 않냐고? 아니 도희에게 '남편'이 없다는 건, 바로 그 남자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조직에서 '도희'와 그녀가 보호해야 할 자녀들은 이미 '루저'라는 증거가 된다. 아버지가 없다고, 엄마가 생선 장수를 한다고 돈이 없고, 기댈 언덕이 없다고 같은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다 참다 못해 밀친 동희 아들 희수의 '자기 방어적 행동'이 '학폭위(학교 폭력 위원회)'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상황이나, 기간제 교사로 들어간 딸이 학교의 윗어른(?)인 교장에게 당하는 성추행은 '가부장제'적 모순의 현실태이다. 

혼외 자식의 입성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정혜, 그리고 가정 폭력에 무방비한 미숙, 그리고 뻔히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 엄마 앞에서 무릎까지 끓어야 하는 도희는 남성 권력으로 체계화된 사회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그녀들은 각자의 힘으로 돌파해 나갈 수 없는 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꿈꾸며 모여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고통을 그녀들의 계급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여성이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서슴치않고 '동지'로 뭉칠 수 있었다. '돈'과 사회적 지위를 앞선 고통과 공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복수가 드라마로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상당수가 이런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비록 아직은 '복수'를 꿈꾸지만, 그 '복수'의 의도보다는 헛발질이 더 많은 그녀들의 복수,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부암동 복수 클럽의 '전도양양한' 복수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7. 10. 19. 05:46

9시 30분으로 자리를 옮긴 tvn의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는 2. 023 %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4회 3.841%까지 상승하며 월화 드라마의 자리를 안착시켰다. 하지만 상승하는 시청률과는 별개로 매회 <이번 생>을 보는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그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이민기의 군 복무 중 논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혐의를 벗은 배우의 방송 출연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이제 와 발목 잡기일 뿐이니. 그 보다 정작 베일을 벗은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건 <이번 생> 드라마와 2016년 tbs에서 방영하여 20%가 넘는 화제작이었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のは恥ずかしいけど役に(이하 니게하지)>와의 유사성이다. 



<이번 생>과 <니게하지>, 그 미묘하게도 같은
38세의 가구주 웹 디자이너 남세희(이민기 분)와 그가 여성인 줄 알고 그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게 된 30세의 윤지호(정소민 분)은 집에서 결혼 독촉에 시달리는 남세희의 상황과 집도, 일도 다 잃은 채 고향 남해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윤지호의 이해가 맞물리며 4회 드디어 계약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계약 결혼 스토리는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서사이지만, 일드 <니게하지>에서 역시나 비슷한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첨단 직종에 프로 독신남 히라마사(호시노 겐 분)가 아버지의 권유로 그의 집에 '가정 도우미'로 들어온 미쿠리(아라가키 유이 분)와 엮이게 되고 집의 이사로 그에게 계약 결혼을 권한 미쿠리의 요구를 냉철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손해날 것이 없다며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본 사람이라면 그 다르지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듯하다. 

특히나, 두 드라마의 공감이 기초하는 곳은 바로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 여주인공의 처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5세 파견 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보다 전문적인 일을 찾아 임상 심리 대학원까지 진학하지만 문과 계열 그녀에겐 취업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는 그녀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지인인 히라마사 집에 가정 도우미 알바를 권하게 되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된다. 물론 <이번 생>의 윤지호의 서사는 전혀 다르다. 30살, 서울대 국문과까지 나왔지만, 현실은 보조 작가, 이번에는 입봉을 하려나 했지만 그녀가 맞닦뜨린 현실은 기존 작가에 의한 원작을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윤문'과 작업실을 빌려준 피디의 성폭행 시도, 결국 윤지호는 집도 절도 없이, 심지어 자신이 하고자 했던 글 쓰는 일조차 포기하며 10년 여의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르지만, 문과 출신의 여성이 자신의 꿈은 커녕 사회에 발 붙이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남자 주인공과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tvn 측은 불거진 표절 시비와 관련하여, '리메이크도 표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과연 <니게하지>가 없었다면 <이번 생>이란 드라마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기에 더욱 <이번 생>의 입장이 아쉽다. 

더욱이 의심이 깊어지는 건, <이번 생>의 윤난중 작가에게 이와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직장의 신(2013)> 역시 2009년 연습 삼아 일본 드라마를 각색했다 이후 판권을 사서 드라마화 전례가 있으며,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달팽이 고시원>은 소설<와세다 1.5평 청춘기>, <위대한 계춘빈>은 역시나 소설 <공중 그네>와의 유사성 논란이 이어졌던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이번 생>이 일본 드라마 <니게하지>를 <직장의 신>처럼 판권을 사서 각색했더라면 가감없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 행보가 더욱 아쉽다.  



표절이라기엔 너무도 현실적인 <이번 생>
물론 표절이라 하기엔 <이번 생>의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된다. <니게 하지>가 자신의 필요를 알아주는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이 먼저 계약 결혼을 요구하는 것과 반대다. <이번 생>은 결혼 독촉에 시달리던 남세희가 지금까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세입자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분리 수거라던가 청소라던가, 고양이 돌보기같은 일을 완벽하게 해낼 뿐 아니라, 해외 축구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비슷한 윤지호라면 가장 완벽한 '결혼 상대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서 먼저 계약 결혼을 제시한다. 

수지타산을 맞춰보니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일 거라는 남세희의 청혼에 윤지호가 응답을 한 건, 바로 이 시대 청춘의 응답이기도 하다. <이번 생>에는 일드와 달리 윤지호를 비롯하여 다른 두 명의 동년배 여성 양호랑(김가은 분), 우수지(이솜 분), 세 명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이지만 각자 전업주부, 사장, 그리고 작가의 꿈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 서른 줄의 그녀들은 결혼이 늦어져 임신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기약할 수 없는 동거, 사장 대신 사장님의 호출이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대기업 대리, 그리고 연애 따위 사랑 따위조차 사치로 여기며 방 한 칸을 위해 계약 결혼을 감행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전업 주부에 럭셔리 현모양처가 꿈인 호랑의 꿈이 허무맹랑해 보이듯, 오히려 <이번 생>의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빗나간 전통의 강제일 뿐, 비효율적이며, 비인권적이라는 남세희와 우수지의 '비혼주의'가 공감되는 지점, 그리고 이번 생에 연애는 개뿔, 차라리 방 한 칸이 현실적이라는 윤지호의 선택이 호소력을 얻는 그 현실적 묘사가, <직장의 신>에 이어 다시 한번 3포시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며 <이번 생>의 시청률에 청신호가 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0. 18.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