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첫 선을 보인 <장사의 신-객주 2015>는 김주영 작가의 대하 소설 <객주>를 2015년에 걸맞게 새로이 각색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구한말 격동기의 상인 사회를 중심으로 정의로운 상인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세기말 조선 사회의 사회적 갈등과 새로운 계층의 대두를 실감나게 묘사했던 김주영의 <객주>가 2015년을 배경으로 하면 어떻게 변화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2015년의 대한민국에 돌아온 <객주>

<장사의 신-객주 2015(이하 장사의 신)>의 시작은 청나라와의 무역로인 책문이 열리고 포부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의 장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길을 떠나기도 전에 천가 객주의 발목을 잡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개성 유수,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 행렬을 붙잡고 느닷없이 술을 권한다. 객주에게 모처럼의 청나라 행은 엄숙하다 못해 신성하기까지한 과업이기에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한 맹세를 개성 유수는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술을 강권한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만한 천가 객주의 길목을 막아서던 개성 유수는 어느 틈에 바람같이 수도 한양으로 달려와 육의전 행수에게 아양을 떤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정경유착, 그 중에서도 '재벌'처럼 보이는 경제 권력에 빌붙는 정치 권력의 두 얼굴이다. <장사의 신>이 진단하는 2015년의 대한민국, 그곳에서 진정한 장사의 도를 이야기 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것은, 이렇게 강력한 재벌에 아부하고, 힘없는 경제 세력들을 짓밟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비굴한 현실에서 <장사의 신>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어떤 것일까? 모처럼 열린 책문을 향한 길을 험란하다. 겨우 개성 유수의 협박을 아들 천봉상의 기지로 넘기로 길을 떠난 천가 객주의 길을 장마로 허물어진 길이 막아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가 객주 천오수(김승수 분)는 목숨을 잃을 뻔한다.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은 송파 마방의 조성준(김명수 분)이다. 소가죽 밀거래를 하기 위해 책문으로 떠났던 조성준은 천오수의 목숨값으로 자신들과 함께 밀거래를 할 것을 제의한다. 그런 조성준의 제의에, 떠나기 전 환전 객주 김학준(김학철 분)에게 빌린 돈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천오수의 의형 길상문(이원종 분)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길상문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천오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이유는, 자신도 밀거래로 인한 이익이 탐나지만, 그렇게 이익을 취하고 나면 더 이상 험난한 길을 걸어 다리품을 팔아 물건을 팔러 다니는 객주로서의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첫 회지만, <장사의 신>은 '정의'롭게 물건을 파는 장사의 도를 지키려는 천오수와, 그런 천오수의 맞은 편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성준, 김학준 등을 대비시켜, <장사의 신>이 그저 천봉삼의 입신양명기를 넘어, '진짜 돈을 버는 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공홈의 소개에도 천봉삼을 '정경유착 재벌에 항거하는 700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설정'하듯이, 2015년 버전으로 돌아온 <장사의 신>은 그저 돈을 버는 방법, 혹은 돈을 통해 입지전적 성공을 이루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버는 법을 이야기하겠다고 첫 회부터 포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2015년에 유의미한 <장사의 신>의 의미라는 것이다. 





제대로 돈을 버는 경제 정의에 대한 이야기, <장사의 신>

하지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그려진 객주의 길은 험란하다. 천봉삼의 아버지 천가 객주는 오늘날 금융권을 상징하는 환전 객주의 빛 독촉에 시달린다. 심지어, 환전 객주는 천가 객주의 흑충(말린 해삼)을 미리 사들여 청나라의 흑충 값을 떨어뜨려 천가 객주를 위기로 몬다. 흡사 오늘날 골목 상권을 차지한 재벌들의 행태와도 흡사하다. 심지어 돈을 위해 아편 밀매를 부추기는 부도덕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는 것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치 2015년의 대한민국의 재벌이 그러하듯, '돈'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돈의 정의인 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장사의 신>은 그렇게 부도덕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의 세상 속에서 아비를 잃은 천봉상을 통해 '진짜' 돈을 이야기 하겠다고 한다. 


이런 <장사의 신>의 야심찬 혹은 무모한, 그렇지만 2015년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은 의도는, 최근 kbs수목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적 코드이다. 비록 6%를 넘지 못한 채 종영했지만 그 강직한 울림으로 '참 정치'에 대한 갈망을 되살려 준 <어셈블리>는 정치 혐오 주의 세상에서, '진짜' 정치의 길을 어렵사리 밝혔다. 또한 그 전작 <복면 검사> 역시 권력과 돈의 시녀가 된 법의 세계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 검사를 통해, 대한민국 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렇게 '법'과 , '정치'에 대한 '정의'를 꾸준히 부르짖던 kbs 수목 드라마가 이번에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경제'이다. 하지만, <장사의 신>이 이야기 하고자 할 경제 정의는 정치 혐오주의보다 더 험란하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막장식' 조롱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과연, '진짜' 돈 버는 법의 순수함에 관심을 기울여 줄런지, 그 누구 한 사람 열연이 없었던, 진실한 외침이 일관되었던 <어셈블리>에 대해 '순진하'고 '단순한다'는 평가를 내리는 세상에, 과연 <장사의 신>의 야심찬 의도는 올곧게 받아들여질런지, 지레 우려가 된다. 또한 과연 <복면 검사>가 애초의 주제 의식과 달리, 용두사미가 되었던 경험처럼, 과연, '진짜 돈벌기'의 야심찬 의도가 마지막 까지 순조롭게 진행될런지, <장사의 신> 제작진에게 화이팅을 먼저 외쳐본다. 부디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kbs 수목 드라마의 정의 시리즈가 <장사의 신>에서 빛을 발하길!

by meditator 2015. 9. 24. 20:34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셈블리>에 대해 혹자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환타지라며 냉소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시청자들이 골몰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재벌'을 만나서 사랑을 이루고, '재벌'을 징벌하는 드라마는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 <어셈블리>는 '일장춘몽'과도 같은 환타지였다. 그리고 아침과 주말, 그것도 모자라, 이제 주중 미니 시리즈까지 장악한 '재벌'을 조롱하고 징계하는 드라마들 역시 '환타지'이긴 매일반이다. 하지만 똑같은 '환타지'이지만 서로 다르다. 드라마판을 범람하는 '막장 재벌 드라마들이 현실 삶의 고통을  배설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면, 비록 4.9%의 시청자들만이 공유한 <어셈블리>의 환타지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각'시켜주는 무뎌진 일상의 '송곳'과도 같은 '환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가 끝난 이후, 마음이 더 묵직해지는, 그렇게 '진짜 정치'를 남기고 9월 17일 <어셈블리>는 20부의 꿈같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정치 불감증의 현실을 복기하다. 

초반 시선 잡기에 무리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듯이 <어셈블리>의 첫 장면은 '법'으로 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일군의 노동자들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일군의 노동자들은, 오늘의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길거리에서 조차 갈 곳이 없어 드라마 속 배달수가 올라갔던 '크레인'처럼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광판이든 그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고공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소리조차 전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고 <어셈블리>는 그 서두를 뗀다. 


더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곳이 없어 막막했던 해고 노동자 진상필(정재영 분)의 선택이었든,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차기 선거를 향한 은밀한 포석이었든, 요행히도 진상필은 동료들의 오해까지 사며 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그렇게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어셈블리>는 본격적으로 '어셈블리'에서 국회의원이 할 일들을 점검해 나간다. 즉, 현실의 정치에서 권력의 이합집산으로만 비춰지는 국회, 극중 진상필이 정의내리듯, 편 가르기와 나눠먹기의 '정치공학'을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로 오해하게 하여, 외면하게 만들고, 그 한편에서 끼리끼리 맘껏 해먹는 '정치판'을 여당의 진상, 나아가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복기해 나간다. 


진상필의 진상 짓을 통해, 시청자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외면했던 '진짜 정치'란, 국회의원 자리는 밀실 공천을 통해 나눠먹기 식으로 준 하사품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뽑는 자리라는 것을, 그리고 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그저 지역구의 이익 사업을 따내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와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국회가 '힘있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법을 만들고 거수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여,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라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곳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 모인 '동지'들이 있고, 그 '동지'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치를 외면한 댓가로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낳는' 곳이 아니라, 치고 박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부정해도 정치가 우리의 인생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셈블리> 공홈 게시판을 끝없이 메운 '명대사'들이 실현될 수도 있는 그곳이 국회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어셈블리>는 현실에서 시작되어서, 가장 현실의 정치를 차근차근 복기해 나가면서, 그리고 현실에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진짜 정치들을 이야기해가면서 '환타지'가 되어간다. 

드라마 속 한낱 해고 노동자였던 진상필은 결국 '살신성인'으로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사회가 '쓰레기'라 버린 사회적 패자들을 위한 '배달수법', 두번 째 인생을 위한 법을 성취해 냈다. 19회 장황한 입법의 과정을 겪어내며,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애초에 자신이 국회에 들어온 목적을 이루어 내었다. 하지만 만약에 현실이었다면 요행히도 국회로 간 해고 노동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던지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수 있었을까? '법'을 만드는 대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는 '재선'을 노리고, 원칙을 지키는 대신, 훗날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세를 규합하려 들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원칙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일그러지고, 어긋나버리는 것을 굳이 드라마가 재현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의 정치에서 확인하기에 <어셈블리> 속 '진상 정치', '진짜 정치'는 환타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타지'가 된 진상필과 그의 동지들이 구현한 '진짜 정치'를 통해, 그간 우리가 정치라 믿었던 것이 '정치 기술자'들의 '정치 공학'이었음을, 국회의 주인은 세금내고, 나라를 지킨 국민들이며, 당연히 국회의원은 그들의 대표자로,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아프게 일깨워준다. 국회에서 10넌간 잔뼈가 굵은 정현민 작가의 내공으로, 현실 가능한, 그리고 가능해야 할 '환타지'를 낳는다. 



현실로 온 정치,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

정현민 작가는 정치판의 생로병사를 2014년 사극 <정도전>을 통해 실감나게 풀어낸바 있다. <정도전> 속 정치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듯,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정치 기술자가 된,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싸움판이었다.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정치판을 '리얼'하게 묘사했던 작가가 현실로 끌어와서 풀어낸 정치로 구현해 낸 것은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이었다. 이상주의적 정치를 풀어내려 했다가, 결국 기술자가 되어버린 슬픈 운명의 사내, 그리고 그 사내를 둘러싼 숱한 정치 공학의 술수 대신, 우직하게 끝까지 원칙을 놓지 않은 '진상필'의 진상 정치를 내세웠다.


아마도, <어셈블리>가 현대판 정도전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면, 아마도 <어셈블리>는 정치 게임에 열광하는 숱한 애청자들을 양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세간의 시선을 잡는 정치 게임 대신, 아니 이미 현실의 정치판을 통해 신물나게 경험하고 있는 정치판의 복사 대신, 그런 정치판에서도 누군가 노력하면 가능할 '진짜 정치'를 논한다. 덕분에 누군가는 그것이 생경하다 외면하고, 누군가는 현실성이 없다 거부하고, 또 누군가는 '좌빨'이라며 손가락질 한 덕분에, 6%을 넘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환타지'로서마저도 '정치'에 희망을 걸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고사되지 않은 5~6%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포기되지 않는 '진짜 정치'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닮은 정치인을 두고 설왕설래하듯, '리얼'한 정치판을 배경으로, 가장 '리얼하지 않은' 진짜 정치를 이야기 한 덕분에, 시청자들은 <어셈블리>을 보며,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진짜 정치'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진짜 정치를 꿈꾸도록 하는데, '리얼'한 정치판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열연해준 <어셈블리>의 배우진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타지'인 줄 알면서도, 살그머니 진상필의 진상 정치, 진짜 정치를 응원하고, 그래서 놓을 뻔한 현실 정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다시 잡게 만든, 진상필로 '빙의'한 정재영의 열연,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만든 제작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정재영의 드라마 속 연기를 기대해 보고 싶지만, 정재영의 진상필 외에 그 누구를 쉬이 떠올릴 수 없도록 만든, 진상필, 정재영의 진정성이, <어셈블리>의 진심을 채웠다. 그리고, 제작진과 배우들의 진심이 더한 드라마 <어셈블리>는 2015년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를 잠시나마 돌려주었다.













by meditator 2015. 9. 18. 09:17

9월 15일 방영된 <미세스 캅> 14회, 최영진(김희애 분) 팀장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한 강태유(손병호 분) 회장은 최영진을 향해 '빈볼'을 던지기로 한다. 그 방법은 바로 한적한 거리에서 폭력배를 동원하여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것. 하지만, 막상 강태유가 던진 '빈볼'을 강타당한 것은 최영진이 아니라, 신입 팀원 민도영(이다희 분)였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폭력배에 둘러싸인 민도영, 그녀가 몇 대 맞기도 전에 동료 팀원인 한진우(손호준 분)가 짠~! 하고 등장하여 폭력배들을 무찌르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민도영을 구해내고 그녀의 사랑도 얻지 않았을까? 하지만, <미세스 캅>은 달랐다. 백마 탄 왕자님은 오지 않았고, 민도영은 폭력배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고소를 해야 할 정도로 4;1의 처지에도 민도영에게 얻어터졌다. <미세스 캅>은 민도영인 폭력배 네 명을 상대로 벌이는 고군분투의 액션씬을 장황하게 보여준다. 폭력배에게 배을 걷어차여도, 칼을 들이밀어도 민도영은 쓰러지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동그라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칼을 휘두르며 다가온 그들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맨 손으로 그들의 팔을 꺽고, 제친다. 결국 무시무시하던 네 명의 폭력배는 길바닥에 나동그라져있고, 민도영은 씩씩거리며 그들을 포박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너끈히 해내는 여성들

민도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친 몸으로 병원을 가라는 동료들의 걱정을 마다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강태유를 잡고자 펄펄 날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기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신입 형사,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젊은 남자 배우가 할 캐릭터가 <미세스 캅>에서는 고스란히 민도영의 몫이 되었다. 그런 민도영을 가라앉히는 건 이제 막 그녀를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한진우도, 다른 남자 동료들도 아니다. 신입의 열혈 기세를 팀장의 노련함으로 감싸며 치밀한 작전을 지시하는 최영진이다. 때로는 다짜고짜 장태유를 찾아가 큰 소리를 치는 최영진이 이때만큼은 팀장의 내공을 자랑한다. 장태유를 방심하게 하고, 그 사이에 수사 과정을 통해 드러난 폭력배들의 심리 불안을 빌미로, 장태유가 배후임을 드러내고야 만다. 


애엄마 형사임에도 '애엄마'의 고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는 <미세스 캅>이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은 신선하다. 지금까지 애엄마 형사라고 하면, 일과 육아 그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미세스 캅>은 일하는 여성의 그 딜레마를 전제로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분명 싱글맘으로서 초등학생인 아이가 엄마의 부재로 인해 '신경질'적이 될 정도로, 겨우 짬이 나서 식구들에게 해주는 게 '인스턴트 짜장면'일 정도로 육아와 가사엔 젬병이지만, 그 딜레마가 그녀의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대신 그녀는 일을 한다. 14회, 딸에게 문제가 생겨서 동료 여경의 경조사에 빠지게 된 최영진, 딸의 친구 아버지가 접근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차에 태우느라 벌어진 해프닝에 여동생은 놀란 마음에 지레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그 자리에 간 최영진은 그저 사건의 경과를 보고 받고는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마시라 다짐하고 말 뿐이다. 여느 드라마의 엄마들이라면 어땠을까? 대뜸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이를 붙잡고 울고불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는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마치 그간 엄마 노릇을 못한 것을 상쇄하기라도 하듯이 그 호들갑의 정도는 더했을 텐데, 최영진은 차분하게 정황을 듣고 충고를 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후, 모처럼 모인 최영진과 딸, 그리고 여동생, 아빠가 없어 서운한 딸과, 역시나 아빠가 없어 때론 반항기까지 보냈던 두 사람을 다독이는 최영진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가장'이다. 여기서 보이는 '엄마'이자, '가장'의 모습은, 그간 우리 드라마가 전통적으로 그려왔던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자식들을 진 자리 마른 자리 보살피던 '엄마'로 살아왔던 여성상과는 또 다른,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엄마'이다. 비록 가사 일은 젬병이지만, '일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가족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이 시대에 현실적인 '엄마'로서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식을 살뜰히 보살피지는 않지만, 기껏 해먹이는게 짜장 라면이지만, 가족들의 울타리로 반항해 집을 나선 동생을 때려서라도 집에 들여다 앉히, 그리고 딸이 위험할 때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달려오는 '가장'으로서의 엄마다. 



<미세스 캅>에서 또 한 사람 주목할 캐릭터는 또 다른 여성인 민도영이다. 경찰대 출신의 강력반 초짜, <미세스 캅>은 강력반 팀장 최영진의 활약사이자, 동시에 신참 형사 민도영의 성장기이다. 경찰대 출신의 원리 원칙만 따지던 그녀가 최영진 수하로 들어와 진짜 형사가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묘미이다. '깡패' 같아 졌다는 동료 여경의 평가처럼, '깡패' 못지 않게 깡다구를 가지고 사건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은, <미세스 캅> 속 일하는 여성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책상 물림이었던 그녀가 경쟁을 넘어 동료를 이해하고, 법 조항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로서의 원칙을 성숙시켜 가는 과정은, 그저 소모적 러브 스토리의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발군의 진화이다.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역전? 아니 새로운 발견

극중 최영진은 범죄 수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형사였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걷는, 어디서 많이 보던 설정이다. 단지 기존 드라마에서 아들의 역할을 이젠 딸인 최영진이 대신할 뿐이다. 14회 등장한 강력팀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강력 팀원 조재덕(허정도 분)은 민도영을 앞에 두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하지만, 혼자서 신출귀몰하며 폭력배를 때려잡던 최영진 팀장의 무용담을 설파한다. 그런 무용담에 에이 설마 하던 민도영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최영진처럼 혼자서 네 명의 폭력배를 때려 누인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스를 붙인 채 수사 현장을 펄펄 날아 다닌다. 


아버지의 일이었던 형사일이 최영진 대에 와서 여성으로 전화되고, 최영진의 일은 이제 다시 신참 여형사 민도영을 통해 계승되는 이 묘한 직업적 인맥은, 이 시대 여성의 위상과 위계를 드러낸다. 남성의 영역에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도전했던 최영진과, 그 일을 일로써 계승하는 후배 민도영의 새로운 '가계도'인 것이다. 그러기에 극중 최영진의 캐릭터와, 민도영의 캐릭터는 그간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반장 역의 남성 캐릭터와, 신참 형사 남성 캐릭터와 많은 부분 겹친다. 일을 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구현하려 하지만, 기존의 여성성의 극복이 그저 '남성화'에 그칠 우려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캐릭터의 딜레마라기 보다는, 남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로써 승부를 보아야 했던 여성들의 딜레마일 지도 모른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엄마는 젭병이 되어야 하는, 그저 극중 설정을 넘어, 이 시대 여성들의 현실말이다. 캐릭터의 묘사의 한계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5. 9. 16. 16:00

2m이내 접근 금지를 부르짖으며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렸던 홍찬미(김서형 분) 의원과 최인경(송윤아 분) 보좌관, 이 두 사람의 멋진 '합작'으로 진상필(정재영 분) 의원이 수감중이던 감옥에서 나왔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두 사람의 합작이라기 보다는, 결국 한민 은행장에게서 시계를 받지 않았던, 그래서 그 시계값을 은행장 면전에 대고 뿌렸던 진상필 의


원의 승리이기도 하다. 홍찬미 의원과 최인경 보좌관이 합작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한 푼


도 받지 않았던 진상필 의원과 달리, 백도현(장현성 분)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과 검은 뒷거


래를 했던 한민은행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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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의 합종 연횡, 그리고 독야청청 진상필의 행보 
수감되었던 진상필의 석방은, 곧 그를 주요 타겟으로 삼았던 백도현 사무총장의 위기로 다가온다. 노골적으로 집행부는 백도현의 사퇴를 요구하고, 그런 사퇴 요구에 백도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무기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 그런 백도현의 '공작'에 청와대와 손을 잡은 딴청계는 지도부 집단 사퇴라는 카드를 들고 결국 백도현을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만든다. 

하지만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고 했던가, 한때는 그의 개였던 보좌관조차 '협박'을 해대는 상황에서, 백도현은 그가 은닉하고 있던 비자금을 무기로, 반청계와 함께 '비대위'로 다시 한번 국민당의 권력을 사로 잡는다. 비대위의 딴청계 대표 자리를 놓고 여유롭게 실랑이를 벌이던 딴청계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다. 그리고 그 대응에 최보좌관이 노심초사할 때, 진상필은 그런 최보좌관을 말린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진짜 정치'를 하겠노라고, 그러면서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은 한때 그의 인턴 보좌관이었던 배달수의 아들 김규환이 만들다 만, '두번 째 기회를 위한 법안', '패자 부활법'에 매진한다. 

한민 은행장과 손을 잡고 진상필을 불법 정치 자금 수수로 엮어 감옥으로 보내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아니 그 이전부터, 최인경이 선배님의 초심이 그립다고 했던 그 시절부터, 아니 최인경이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기 그 이전 진상필을 경제시에 국회의원으로 공천을 주던 그 시점부터 백도현은 '정치인' 대신, 차기 재선을, 그리고 국민당의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꾼'이 되었다. 

그런 백도현이 늘 진상필과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것은 백도현이 걸어가고자 하는 방식과 진상필이 하고자 하는 정치가 늘 그 원칙에서부터 위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도현이 '권력'을 노릴 때, 그의 반대편에서 진상필은 그의 초심을 생각했고,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생각했고, 국민의 뜻을 대신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생각했다. 그러기에 늘 백도현의 가는 걸음걸음 진상필은 걸림돌이 되었고, 백도현은 이제 반청계의 우두머리 박춘섭(박영규 분)조차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노회한 음모가이자, 술수꾼이 되었다. 

진상필을 끌어내리기 위해 끝없이 펼쳐지는 백도현의 방해 공작, 드디어 진상필을 감옥으로 까지 보낸다. 하지만 다행히 진상필의 곁에는 백도현 못지 않는 '정치 공학'에 득도한 최인경이 있고, 이제는 제법 국회의원티가 나는 홍찬미까지 가세했다. 17회, 진상필을 감옥에서 출감시키기 까지는 이 두 사람, 최인경과 홍찬미의 멋진 팀웍이 돋보였다. 홍찬미는 백도현을 안심시키기 위해 잠시 '칩거'를 마다하지 않고, 그런 와중에 최인경은 진상필의 석방을 위해 발로 뛰고, 갖은 지혜를 짜낸다. 그리고 석방된 진상필에 만족하지 않고, 청와대를 설득하여 백도현을 사무총장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진상필의 감옥 행과 그 이후의 여야 담합, 그리고 그것을 뒤집기 위한 딴청계의 한 판. <어셈블리>를 보는 시청자들은 결국 자신의 보좌관을 감옥으로 보내버리고 사무총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백도현을 보며 잠시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백도현은 그의 적이었던 반청계와 손을 잡고 '비대위'의 1인으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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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이 아니라, 진짜 '정치'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아마도 <어셈블리>를 보는 시청자들은 17회에 벌어진 신나는 홍찬미와 최인경의 더블 플레이를 보며, '정치'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보좌관 생활로 뼈가 굵은 작가 정현민은 보란 듯이, 시청자들이 쾌감을 느낀, '정치'를 뒤집는다. 게임처럼, 그렇게 '장군'하며 적을 물리친 '정치'는 결국, '멍군'하며 치고 올라오는 '또 다른 정치'로 인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진짜 정치가 아니라고. 그런 정치, 비대위에 들어가지 못해 노심초사하며 작전을 짜려고 했던 그런 정치는 결국, 다수의 국민들이 환멸을 느끼는 '싸움박질 하는 정치'를 낳을 뿐이라고.

17,8회 보여지듯이 진상필은 참 무능하다. 심지어 청와대와의 통화에서도 최보좌관이 적어 준 쪽지를 대놓고 읽을 정도로, 그는 '정치적 상황'을 풀어가는데 무기력하다. 그래서 언제나 최보좌관의 눈치를 보고, 그의 의향을 묻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른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최인경이 국회의원을 하고, 진상필은 그의 운전을 해줘도 모자를 상황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진상필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정치'에 능한 최인경은 보좌관이다. 왜? 진상필이 진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반청계와 백도현의 합종 연횡에, 비대위의 한 자리를 빼앗긴 것에 고심하는 최인경이 아니라, 더 이상 그런 한 자리를 놓고 싸움박질을 해대고, 좀 더 유리한 정치적 고지를 획득하기 위해, 폭로'를 일삼는 정치가 아니라, 그런 정쟁 대신 진상필은 일찌기 자신이 국회에 들어왔던 본연의 임무 '법'으로 귀환한다. '법'을 만들기 위해, 동료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백도현에게 무릎을 끓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은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상황을 역전시킬 '작전'에 골몰하는 능수능란한 최인경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진상필은 국회의원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 그렇게해서 그는 경제시의 숙원 사업을 전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반대했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기꺼이 감옥으로 갔고, 이제 비대위의 한 자리를 놓고 싸우는 대신 '목숨'을 걸고 법을 만든다. 비대위의 한 자리를 건 싸움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보다 더 노회하고, 협잡과 술수에 능숙한 '정치꾼'들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지만, 그가 만든 법안은, '개정'이 되기 전에는 국민들을 위한 '등대'가 될 수 있으니까. 바로 이것이, 정현민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정치이다. 

극중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김규환은 '정치에 신물이 난다'고 거침없이 최보좌관을 향해 막말을 던진다. 그런 김규환에 대해 최보좌관은 그럼에도 그런 신물이 나는 정치가 바로 너의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라 설득하려 한다. 설득에도 불구하고 '냉소'로 떠난 김규환, 진상필이 감옥에 갔을 때도 돌아오지 않았던 김규환이 진상필이, 그가 만들려 했던 '패자 부활법'을 만들자 돌아온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통해, 인터넷에 회자되는, '당신이 정치를 외면할 때 가장 어리석은 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식의 말뿐인 설득 대신, 이 시대 정치가 해야할 바를 말한다. 이 시대의 수많은 배달수씨를 위한 법, 그런 법을 만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그 무엇을 해내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정치의 몫이요, 정치를 외면하는 이들을 설득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변한다. 6%의 시청자들만이 누리는 '진짜 정치'의 감동이다. 


by meditator 2015. 9. 11. 15:12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의 예고편은 호쾌하게 책상을 쓸어버리고 거기에 사장 이영애라는 번듯한 명패를 올려놓고 콧대를 치켜세운 영애씨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 예고편처럼 영애씨는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었다. 의기투합한 동료 라미란과, 낙원사의 비정규직 두식까지 합세한 이 팀은 흡사 종합상사를 나와 작은 사무실에 모인 오차장의 드림팀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미생> 20회 두바이를 종횡무진하는 오차장과 장그래처럼 희망에 가득찰까? 천만에 말씀, 현실은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이랏사이마세'를 외치다 만난 파혼남을 피하다 식당 바닥에 미끄러져 낙지를 떼어내려 몸부림치는 신세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을 제대로 다루었다는 <미생> 보다도 더 현실적인 여전한 '미생' <막대먹은 영애씨>이다. 




'로코'의 구도에 현실을 끼얹다
나이 서른 여덟, 알바를 하러 간 식당에서 당연히 아이들 학원비를 벌러 나온 줄 아는 나이, 하지만 여전히 엄마에게 '시집이나 가 이년아' 소리를 떼지 못하는 영애씨(김현숙 분), 하지만 그녀의 독신 라이프는 낭만적이다. 이제는 '전 사장'이 되었지만, 낙원사 이승준(이승준 분) 사장의 마음을 온통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비록 혼수 문제로 파탄이 난 사이지만, 전 약혼자 산호(김산호 분)는 영애씨에게 아직도 널 잊지 못하고 있다고 카톡을 날리고, 어려운 회사 사정에 선뜻 자기 회사 일감을 가져다 준다. 이 정도면 웬만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저리 가라할 설정이다. 

어디 영애씨 뿐인가. 낙원사에게 영애씨네 회사로 옮겨 온 두식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기 전까진 '사랑' 따윈 쳐다보지도 않겠다던 두식, 하지만 그는 자꾸만 낙원사의 앙숙이었던 현영(조현영 분)과 자꾸 19금모드로 엮인다. 술 김에 키스를 하는가 싶더니, 비록 '별일'은 없었다지만, 이젠 두식의 오피스텔에서 나란히 아침 잠을 깨는 사이가 되었고, 비록 이상형은 아니지만, 이젠 니가 이상형이라 할 사이가 될 즈음이다. 

전 애인과 현재 자신을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남자, 그리고 우연을 빙자하여 자꾸만 엮이게 되는 청춘 두 남녀, 이 설정만을 놓고 보면, '로맨틱 멜로'의 '클리세' 저리 가라할 전형적인 설정들이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설정들도, <막돼먹은 영애씨> 버전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에 가서 한 사업이 성공하면 고백을 하리라던 이승준 사장과 영애씨의 해후는, 사업이 망해 도망다니는 그를 쫓아 한강 주차장으로 온 영애씨와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해후'의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직원들을 망하게 한 주제에 자책하여, 물에 빠져버리는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 이승준 사장은 늘 영애씨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잡지만, 그 고백할 타이밍은, 이제 뜻밖에도 김산호라는 존재가 막아선다. 

큰 용기를 내어 레스토랑까지 예약하고 영애씨를 찾아간 이승준 사장,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영애와 나란히 나오는 산호이다. 게다가 그의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단다. 그 상황에 이승준 사장은 '버럭'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냐는 영애씨의 더 큰 '버럭' 하지만, 이승준 사장의 고백을 막은 것은 김산호가 아니라, 기실 영애씨의 험란한 사업이다. 



달콤하기 보다 쌉싸름한 현실의 맛, <막돼먹은 영애씨> 
이승준 사장 후임으로 낙원사를 맡은 조덕제 사장의 사내 경쟁 체제에서 밀려 결국 실직을 하게 된 영애씨, 결국 그녀는 자신처럼 떠밀려난 라미란과 함께, 이영애 디자인을 차린다. 그러나, 현실은 <미생>의 오차장처럼 무지개 빛이 아니었다. 두바이를 종화무진하는 대신, 한 건이라도 광고건을 따내기 위해 말도 되지 않는 영업을 뛰어야 했고, 결과는 직원들 월급조차도 주지 못하는 신세이다. 심지어 믿었던 라미란은 대놓고 자신을 배신하고 낙원사로 돌아갔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주말 알바라도 뛰려 했지만, 우연히 마주친 김산호 때문에 그 조차도 여의치 않게 된 영애씨, 그런 그녀에게 김산호는 손을 내민 것이다. 파혼남 김산호가 다시 다가오고, 사랑을 이루려 했던 이승준 사장과는 오해가 쌓이고, 영애씨의 현실은, 영애씨의 사랑조차 흔들어 버린다. 산호의 고백 카톡조차, 직원들의 밀린 월급 앞에서 질끈 눈을 감게 만든다. 어디 영애씨 뿐인가. 이영애 디자인에 위기가 찾아오자 두식은 어렵게 마음을 먹었던 현영과의 사랑을 다시 접는다. 

일반적인 드라마들이라면, 제 아무리 어려운 위기가 다가와도,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랑'으로 극복가능해 진다. 위기는, 결국 '사랑'을 이루어 가기 위한, '엑설레이터'였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 잔뜩 몸을 담은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 버전이 달라진다. 분명 같은 드라마의 장르인데, 이 드라마에 유독 청춘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사랑'조차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현실의 씁쓸함이다. 이승준 사장과의 설레이는 '썸'도, 그리고 아직도 마음을 접지 못한 산호와의 사랑 앞에서 영애씨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 서른 여덟 이영애라는 사람이 맞닦뜨린 현실이다. 아직은 비정규직인 두식 역시 마찬가지다. 뭔가 좀 로맨틱하게, 설레이게, 혹은 좀 재미지게 폼나게 살아볼려 해도, <막돼먹은 영애씨>네 사람들은 늘 현실에 걸려 버둥거린다. 그리고 그 현실은, 끝없는 미생의 길을 끝내고,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일 먹고 살기 힘들다는 자영업자의 대열에 합류한 이영애 사장이 되어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원사의 '미생'들 역시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해도 월세 75만원의 옥탑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지순이나, 정리해고 위기에 몰린 남편 때문에 영애씨를 배신해야 하는 라미란이나, 비겁하고 용렬함을 벗어나지 못하기는 매일반이다. 달콤한듯 하다가, 어느새 쌉살함만은 남기고 흩어지는 그 현실의 참 맛에의 중독, 그게 바로 시즌 14를 이어가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참 맛이다. 
by meditator 2015. 9. 8. 16:38

작가 배유미는 대표적인 주말 드라마의 작가이다. <진짜 진짜 좋아해>, <반짝 반짝 빛나는>을 경유하여, 2013년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까지 mbc의 내로라하는 주말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이전 배유미 작가하면, 일찌기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로망스>, <12월의 열대야>까지 독보적인 주중 미니 시리즈의 일가를 이룬 작가이기도 하다. 배유미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주중 미니 시리즈이건, 주말 장편 드라마이건, 여타 드라마들과 달리 '배유미'라는 작가의 색깔이 분명하다. 배유미 월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그저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얽히고 섥히는 인간 관계들 속에, 올곧이 추구하는 어떤 독특한 '휴머니티'랄까, 혹은, 인간애의 천착이라고나 할까, 배유미의 작품을 보다보면, 분명 다른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막장과 멜로임에도 어딘가 그 결이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그 현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작가가 욕을 먹으면서도 끈질기게 놓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인간의 모습에 천착함을 놓지 않던 배유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계기로, 좀 더 확장된다. 그저 드라마의 배경처럼 등장하던 부와, 그 본질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날카로워지고, 분석적이어지고 비판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살기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작가 역시 눈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 <애인있어요>로 돌아온 배유미월드는 어떨까? <애인있어요>를 통해 배유미 작가는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애인있어요>는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과 <스캔들>의 콜라보레이션한 작품과도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캔들'; <애인있어요>
일찌기 친구의 특허권을 빼앗아,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악몽으로만 등장하지만 심지어 친구의 목숨과 바꾼, 자신의 영혼을 팔아 천년 제약을 일군 최만석, 그렇게 또 하나의 부도덕한 스캔들로 시작된 기업사는 이제 그 자식대에 와서는, 신약 개발을 둘러싼 시약 실험을 위시하여, 그 부도덕한 스캔들의 사회적 확장판이 되어간다. 그렇게 <스캔들>의 개발 재벌은, 이제 2015년 <애인있어요>의 도 하나의 부도덕한 제약 재벌로 현현된다. 배유미의 작품 속 재벌은, 그저 여느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재벌보다 구체적이다. 그들이 부를 일구는 과정은, 기억을 더듬으면 그 누군가가 손에 잡힐 듯, 한국 사회의 '원시적 부의 축재'의 과정을 복기한다. 그런가 하명, 6회 등장하는 최진리의 휠체어 씬은 애교일 정도로, 극중 천년 제약의 신약 개발 과정을 둘러싼 비리는 실제 우리 사회의 그것을 복기한다. 그렇게 현실적 부의 부도덕함을 배경으로, 거기에 얽혀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풀어내는 방식 역시 <스캔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마치 막장 주말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홀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 가장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를 건물 붕괴 사고로 잃은 하명근(조재현 분)이 그 일의 주범 장태하(박상민 분)의 아이를 납치하는 사건으로 시작된 <스캔들>처럼, 1회,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여 죽음의 위기에 몰린 독고 용기 대신, 도해강이 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고, 그로부터 4년을 거슬러 올라가, 천년 제약의 며느리로, 최진언(지진희 분)의 아내로 살아가는 도해강이 겪는 최진언의 뻑쩍지근한 불륜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최진언의 불륜에 분노하는 도해강이라는 평범한 주말 드라마의 공식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필연과 우연이 뒤범벅된 인간 군상의 관계가 펼쳐져 있다. 도해강은 바로 그 특허권을 빼앗은 최만호의 친구의 딸이자, 최만호가 가장 미더워하는 회사의 중역이다. 그런가 하면, 도해강의 쌍둥이 동생은 그 천년 제약의 신약 실험 비리를 알리려다 목숨을 잃은 연구원의 약혼자이자, 유복자를 낳을 천년 제약의 직원이자,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은 <애인있어요>의 얼개가 되는 부의 부도덕한 구조와, 인간사의 인연으로, 뒤엉켜있다. 

하지만 배유미 작품 세계의 특징은 그저 얽혀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괴범의 아이가 된 부도덕한 재벌의 아들처럼, 피와 인연의 아이러니를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반짝반짝 빛나는>의 운명이 뒤바뀐 한정원(김현주 분)과 황금란(이유리 분)을 통해 드러난 아이러니한 운명이다. 이제 그 운명은 죽음의 위기를 뒤바뀌게 된 도해강과 황금란, 그리고, 원수의 자식이면서 사랑의 굴레가 씌워진 최진언과 도해강으로 현현한다. 



4년 뒤 반전을 위한 길고 지리한 서론
하지만, 이렇게 필연과 우연, 사회 구조적 부도덕과 인간사의 아이러니로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 때문일까, 유독 <애인있어요>의 발동이 늦다. 워낙 mbc의 10시 주말 드라마의 아성이 굳건한 탓도 있겠지만, 첫 방 이후 6회에 이르는 3주차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속 인간 관계의 우연과 필연의 깊이를 더해가려 하다보니, 서론이 길단 느낌을 준다. 특히, 앞으로 역전될, 도해강의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최진언의 불륜에 대한 과정이 너무 상세하다보니, 그것 자체가 인내심을 요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해강의 피폐함이 깊어질 수록, 4년 후 그녀의 도발이 설득력을 얻겠지만, 그럼에도 최진언의 불륜 과정은 너무 장황하다. 또한, 도해강과 독고 용기 김현주의 1인2역으로 펼쳐져 가는 두 자매의 서사를 탄탄하게 다루려다 보니, 아직은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독고 용기가 묻히고, 도해강의 불륜이 더 늘어지게 느껴지는 탓도 크다. 

하지만, 이제 그 길고 지리한 서론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 하니, 배유미의 세계을 탐닉하며, 김현주의 연기로 버텨낸 시청자의 인내도 끝이 보인다. 이번에도 부디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고 배유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5. 9. 7. 16:10

kbs2의 수목 드라마 <어셈블리>는 이번 주에도 변함없이 수목 드라마의 꼴찌다. 시청률이 상승했다지만 6%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셈블리>의 반응은 시청률로 잡혀지지 않는 곳에서 뜨겁다. '한겨레'는 한 지면을 할애하여, 진상필을 비롯한 <어셈블리>의 등장인물들과 현실 정치인과의 '싱크로율'을 앙케이트화하였고, 이 앙케이트는 곧 sns를 비롯한 인터넷 상의 여러 게시판에서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그 앙케이트에서 박춘섭의 현실적 인물로 다수의 표를 받았던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과 진상필이 닮았다 하여 '공분'을 사기도 하였다. 현실에서 박춘섭에 버금간다고 평가받는 여당의 노회한 정치인이 시청률 꼴찌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상' 정치인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자신의 '진심'을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다가오는 진상필의 정치적 위기
<어셈블리>는 이른바 '발암' 드라마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정치 초년생 진상필(정재영 분)은, 정치인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의 역정을 겪는다. 15회에서는 '공천 나눠먹기'를 폭로함 혐의로 출당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었고, 16회에는 드디어 국회의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것도 뇌물 수수 혐의로. 

하지만, 극중 진상필에게 닥치는 '고난' 그리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발암'을 일으키는 <어셈블리>를 통해 작가 정현민이 '정치'의 본질을 설파하는 과정이 된다. 즉, 진상필에게 고난이 닥치면 닥칠 수록, 진상필은 무너지고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도 꼿꼿하게 자신의 진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역설적으로 현실의 정치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15회, 진상필이 출당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게 된 사연의 시작은 홍찬미(김서형 분) 의원으로 부터 비롯된다.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홍찬미, 그녀는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통해 재선을 하려고 했지만,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외면으로 지역구 당협위원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홍찬미, 그런 그녀에게 백도현은 그녀와 자신의 관계가 '동업자'임을 분명히 한다. 그런 백도현에게 분노하지만 홍찬미도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 백도현이 위기에 빠졌을 때, 그녀 먼저 백도현을 멀리한 '전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백도현이란 끈을 놓친 홍찬미는 부랴부랴 박춘섭(박영규 분)에게 달려가지만 거기서도 홍찬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였다. 결국 여당의 두 계파에게 '팽'당한 처지의 홍찬미는 진상필을 이용하여, 회심의 복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녀가 준비한 복수에 돌아온 댓가는 여당 두 계파의 나눠먹기식 공천을 폭로한 진상필의 출당 징계위원회 회부이다. 심지어 거기에 홍찬미는 징계위원으로 선정된다. 

그 누구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징계위원으로 참석한 홍찬미, 심지어 두 계파의 백도현과 박춘섭이 관전한 가운데, 징계 위원회는 진상필을 다그친다. 당신에게 그 문건을 넘겨준 사람이 누구냐고. 하지만, 진상필은 최보좌관(송윤아 분)의 설득에도, 그리고 '출당'을 들먹이며 위협을 하는 위원들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니가 바로 '좌파'가 아니냐는 위원들의 공격에, 오히려 반격한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청와대파도, 반청파도 아닌, 그저 국민들의 대표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일 뿐이라고. '출당'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홍찬미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진상필, 그런 진상필에게 결국 홍찬미가 두 손을 들어버린다. 

15회의 진상필은 그렇게 홍찬미라는 한 사람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그저 한 사람의 신뢰가 아니다. 비례 대표로 국회에 들어와, 늘상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에 매달려 편을 먹고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무언가를 획책하는 '정치'라는 걸 해왔던 사람을 돌려세운 것이다. 그것은 곧, 홍찬미가 해왔던 방식의 정치를 돌려세우는 진상필의 정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단 한 사람이라도 설득할 수 있는 있는 정치, 그것이 바로 정치의 시작이라고 <어셈블리>의 진상필은 설득한다. 

진상필의 정치의 시작은 '배달수'이다. 자신이 여당 국회의원이 되겠다 마음 먹은 그 시각, 부당 해고를 알기기 위해 철탑을 올라가다 목숨을 잃은 오랜 동지이자, 형 배달수, 국회에 들어온 진상필은 배달수가 만족할 만한 정치를 하기 위해 매진한다. 동지이자 형을 만족시키겠다는 정치, 매우 소박하고 감상적이어 보인다. 하지만, 그 소박함과 감상적인 진상필의 정치의 본질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진상필은 그가 위기에 빠진 순간마다, 자신이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 하는 형, 그리고 자신을 뽑아준 경제시민들, 그리고 자신이 대표해야 하는 국민들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확장해 가고,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진상필의 '신뢰'를 놓치지 않는 진심의 정치 맞은 편에는 홍찬미에 대한 최보좌관의 물음, 그간 국회에 들어와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느냐는 질문이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홍찬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실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질문이다. 국민을 대표한다고 국회에 들어와 당신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고!



진상필의 진상, 아니 진심 정치 
하지만, 진상필이 그 말하기 좋은 '초심'을 놓치지 않고, '신뢰'를 잃지 않는 '진심'의 정치를 하려 하면 할수록 그의 행로는 험란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진상'이었던 진상필의 정치는 이제 '국민 진상'이 되어, 국민당의 계파를 막론한 모든 이들의 정치 행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빠르게 조웅규(최진호 분)를 영입한 백도현은 진상필을 제거하려 하고, 출당이라는 처분이 여의치 않자, '뇌물 수수'라는 졸렬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 카드는 그간 '국민 진상'의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진상필에게 독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진상필의 진실을 알려하기 전에, 뇌물 수수 혐의란 그 혐의만으로도 손가락질을 한다. 더구나 '법'은 언제나 강한 자의 편이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한 정기 국회에서 활약은 봉쇄되고. 

그 상황에서 정치 공학에 능란한 최보좌관이 꺼낸 카드는 구속을 미뤄달라는 국회의원들의 표결이었다. 반청계와 야당의 자율 투표까지 호응을 얻어내며.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며, 국회라는 장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그 전략을 진상필은 마다한다. 어떻게든 국회를 놓치지 않으려던 현실 정치의 그것을 진상필은 그저 '시간 벌기'이며, 그래봐야 국민들의 의심을 풀수 없다며 거부한다. 그리고 당당히 법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어셈블리>의 감동은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온다. 진상필이 규정했던 바, 재선을 노리고, 국회 안에서 살아남는 정치 공학 대신에, 홍찬미가 '바보'라고 정의내릴 정도로 고지식하고 우직하게, 정치의 본질를 묵묵히 감내하려 하는, 진상필의 어리석은 진심의 그 순간, 우리가 현실에서 잃어버렸던 정치가 '필사즉생(必死卽生반드시 죽고자 하면 오히려 살아난다)'한다. 그렇게 현실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는 수목 꼴찌 드라마 한 주인공을 통해 부활해 가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5. 9. 4. 14:44

월화 드라마의 확고한 강자 <미세스 캅>은 제목답게 학예회에 나간 아이와, 범인 잡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 경찰의 딜레마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여자인 엄마와 범인을 잡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찰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는 바로 <미세스 캅>의 정체성이자, 화두가 된다. 




'모성의 확장판' 최영진
제목은 '미세스 캅'이지만 극중에는 두 명의 여성인 경찰이 등장한다. 극중 강력5팀으로 시작하여 지구대 경찰 아줌마를 경유하여 이제 자타 공인 '서울지청'의 에이스로 강력5팀을 이끌어 가는 팀장 최영진(김희애 분)이 한 사람의 경찰인 여성이다. 거기에 5회 경찰대 출신으로 강력5팀을 자원한 신출내기 형사 민도영(이다희 분)가 또 한 사람의 경찰인 여성이다. 독특하게도 여성인 경찰 두 사람을 내세워 수사 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는 <미세스 캅>의 이야기는 일하는 여성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수사반장>의 여성판이라고나 할까? 강력 5팀의 수사반장 최영진은 서울 지청 에이스라는 소개에 걸맞게 '뜨거운 심장와 차가운 두뇌를 가진 산전수전 공중전'에 능한 능구렁이 수사팀장으로 그려진다. 범인을 잡는데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에서는 그 어떤 남성 수사반장 못지 않고, 심지어 범인을 눈앞에 두고, 혹은 범인 잡기를 두고 걸린 현상금을 두고 팀원들과 내기를 하는 여유를 보일 때는 그간 등장한 웬만한 수사반장급보다도 노회한 면모를 보인다. 철야에 밤샘을 불사하는 경찰 근무에서도 매회 트렌드한 '놈코어룩'을 선보이며 주인공의 면모를 일신하는가 하면, 화장기없어 보이게 분장한 얼굴, 질끈 동여맨 머리에서는 '여성'이라는 성 역할을 차치한 그저 경찰로서의 위상이 강화된다. 

그런 최영진에게 여성으로서 발목을 잡는 것은 그녀가 '엄마'라는 것이다. 첫 회 범인을 쫓는데 연일 울리는 딸 하은이의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유일한 가장이자 보호자인 그녀는 늘 모성과 일 사이의 딜레마에서 고뇌하고, 그것이 최영진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라마틱하게 살려내고, '일하는 여성'들의 시대에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 일하는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최영진의 선택은 '일'일 수 밖에 없다. 

일에 있어서는 남자와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아니 월등하게 우월하지만, 그 모성적 감정의 근원은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 여성, 이것이 <미세스 캅>이 그려낸 새로운 여성성이다. 그래서 비록 현실의 엄마로서 최영진은 무능하지만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은이를 가슴에 제일로 품고 있으며, 딸 하은이의 엄마로서의 모성성을 그녀의 일의 영역으로 풀어낸다. 그리하여, 강력5반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가출 청소년들의 일에 집착적으로 매달려 그들을 집으로 돌아보내려고 하고, 심지어 살해된 아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이성을 무너뜨리고 감정적이 되는가 하면, 무릎을 끓는 것조차 불사한다. 무능한 엄마 최영진이 가진 모성성의 진심은, 외람되게도 정작 딸 하은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딸같은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서 발현된다. 최영진은 모성성이 강하지만, 그녀의 모성성은 외연이 확장된 사회적 모성성이다. 


그런 면에서 최영진의 캐릭터는 주목할 만 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이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모성성을 아이에 대한 집착와 이기적인 사랑으로만 줄기차게 그려왔거나, 혹은, 자신의 일로 인해 모성을 외면하거나, 모성성이 상실된 또 다른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려가는데 반해, <미세스 캅>은 일하는 엄마의 딜레마를 실감나게 그려내면서도, 그녀가 가진 '모성성'의 원형을 놓치지 않고, 심지어 그것의 의미를 확산하여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못다한 모성에의 논의는 또한 최영진의 책임론으로 전가되어서는 안된다. 드라마에서 최영진의 못다한 모성은 그녀의 동생인 남진의 몫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최영진의 책임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을 품어갈 우리 사회의 몫이라는 것이 정확한 책임의 소재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엄마인 여성은 당연히 '모성'이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다. 결혼을 한 여성, 아이를 낳은 여성은 당연히 '모성'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물론 또 하나의 고정 관념일 수 있지만, 그런 고정 관념을 잠시 제쳐두고 본, 최영진의 캐릭터는, 이 시대의 모성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5팀의 팀장의 내공에도 불구하고, 종종 이유를 불문하고 감정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라던가,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감정 코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의 지평을 넘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희애란 배우를 통해 구현되는 더 큰 엄마, 그리고 능력있는 노련한 강력 5팀장 최영진의 캐릭터는, 근래에 보기드문 멋진 여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멋진 사람의 모습이다. 
by meditator 2015. 9. 2. 14:44

드라마의 한 장르라고 명명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드라마들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을 '아동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중심에 아이들이 있고, 그들의 사건이 극의 중심을 이루지만, 결국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이들의 세계를 감싸고 있는 어른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의 이야기인 척 하지만, 기실은,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어른들의 이야기, 들어주기를 바라는 대상도, 역시나 어른들이니, '아동극'인척 하는 '성인물'이라고 하면 정확한 장르명이 될까? 그리고 8월 28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그 형제의 여름, 1992 부산 갈매기 댄스 대회>가 바로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그리는 한 편의 '우화'이다. 




'잔혹 동화'로 시작하여, 어른의 '휴머니즘'을 그리다.
이야기의 시작은 '잔혹 동화'이다. 서태지의 음악이 세상을 지배하던 1992년 부산에 사는 초딩 4학년 최동길(최권수 분)이. 서태지에게 자신을 거둬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내는 그는 자신이 밥 하고 빨래도 잘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엄마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지금 같이 사는 사람이 아버지도 아니고, 동생도 아니라고 하니, 이렇게 불쌍한 아이가!

엄마도 없고, 의붓 아버지와 산다는 불쌍한 아이 최동길, 엄마가 없어 밥하고 빨래를 한다던 최동길, 하지만, 정작 그네 집의 모든 가사 일은 의붓 아버지라는 작은 트럭을 몰며 납품업을 하는 최국진(유오성 분)씨 몫이다. 게다가 그의 말로는 동길이를 낳은 첫 번째 아내는 동길이를 낳다 죽었고, 동길이와 피부색이 다른 동길이 동생 영길이를 낳은 미군이었던 흑인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갔다는데, 하여튼 그에게는 피부색이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거기서 문제는 이제 막 반항기 들어선 최동길, 말로는 서태지가 너무 좋아서 그를 흠모하여 그를 곁에서 보필하고 싶다지만, 사실은 피부색이 다른, 거기다 자기와 피도 안섞인 동생이 부끄럽고, 심지어 그런 동생을 자기 보다도 더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는 -자기는 야쿠르트 사주면서 동생은 초코 우유사주는 식의- 아버지가 야속한 그저 '아이'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야속함은 동생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집을 떠나려는 삐뚤어진 동심으로 자라나게 되는데.

<그 형제의 여름>을 이끄는 사건은 서태지를 흠모하여 가출 사건을 도모하는 최동길의 해프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력을 빚는 형제애. 하지만, 그런 좌충우돌하는 최동길의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동네 미장원 아가씨에게 '금사빠'인 여전히 순진한 면모를 지니면서도, 잔뜩 날이 서있는 동길이도, 피부색이 달라 상처를 받는 영길이도, 심지어 동길이 만큼 철딱서니없는 하숙생 현철(조정치 분)까지 넉넉하게 품어 안는 아버지 최국진씨란 어른의 모습이다. 

영길이 동길의 동생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상처받고, 이제 미장원 아가씨가 세번 째 최국진씨 부인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부닥친 동길은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출'을 감행하려 한다. 하지만, 뜻밖에 상황에서 마주친 진실, 정작 아버지 최국진씨가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던 동생 영길이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었으며, 어머니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심지어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동생을 버린 채 도망가버렸고, 그렇게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아버지 최국진씨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심지어 자신과 피하나 섞이지 않은 영길이 혹시라도 상처를 받을까 자신의 친아들보다 더 아끼며 길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에 동길의 가출을 돕다 열이나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형바라기 동생까지. 결국 동길의 가출 사건은 무위로 돌아간다. 아니 그저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아버지와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집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잔혹 동화'라고 했지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잔뜩 볼멘 모습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원망하는 동길이 등장했을 때부터 이 이야기는 동길이의 잔혹 동화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최국진의 '휴머니티'가 담긴 '미담'일 것이라는 예감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극처럼 진행된 동길의 가출 사건은 예상을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그려진다. 하지만, 이 '뻔한' <그 형제의 여름>은 타 드라마의 뻔한 막장극에서 시달린 시청자들의 마음에 안식을 준다. 어떻게든 튕겨져 나가려는 동길이의 발버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국진이라는 넓은 어른의 품 안에 노니는 물고기 같아 미소가 지어지고, 피부색이 다른 두 아이, 심지어 자신의 피가 섞이지도 않은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상처주지 않고 키우려는 아버지 최국진의 '동화'같은 이야기에, '서로 다름에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 시달린 마음이 안식을 얻는 듯하다. 심지어 아버지를 한 탕의 대상으로 여기며 찾아든 미장원 숙자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까지도, '동화'처럼 아름답다. 자신을 등쳐먹으려는 숙자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경찰서로 향하는 대신,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며, 뱃속의 아기의 아버지와 잘 살아보려는 최국진씨의 씬은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영길이를 보담는 그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뻔한 아이의 일탈로 시작하여, 역시나 결말이 예상되는 아버지의 동화같은 '미담'으로 끝을 맺었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여 서로 삿대질하다 못해 '없애버리'려는 세상에선, 그 동화가 새삼스럽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최국진같은 어른들의 세상이라면, 제 아무리 아이들이 튕겨져 나가려 한다 해도, 그 어른들의 손바닥일 거라는 깨달음까지 준다.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유오성을 비롯한 최권수 등 아역들의 호연, 심지어 조정치까지 제 몫을 다하는 조화로운 연기와, 물 흐르듯 공감가는 이야기들의 연결과, 1992년을 배경으로 한 시대적 상황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모처럼 훈훈하게 마음을 덥혀준 빼어난 단막극 한편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이런 '단막극'이 아니고서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시절이기에, <그 형제의 여름>이 더욱 맛깔나다. 
by meditator 2015. 8. 29. 15:19

tv에도 종종 등장하는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취미 생활을 '정치'라 정의한다. 나이들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남자들이 밥 먹고 취미 삼아 허구헌 날 '정치'를 취미로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고 또 씹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듯 '종편'이 하루 종일 '정치'를 매개로 각종 프로그램을 돌려도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남성들의 정치다. 아니 남성들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폭스 tv를 본따, 가쉽화한 '정치'는 이제 여성들의 '껌'으로 까지 기능한다. 조만간 tv에서 자취를 감출 강용석이 tvn에서 가쉽성 프로그램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진행하다, tv조선의 <강적들>이나, jtbc의 <썰전>에 출연하는 것이 이물감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타 프로그램의 정치가 같은 프레임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라고 생각해 왔다. 


독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정의했다. 대표적 현대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예술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정치는 '혐오주의'를 낳을 만큼 협잡의 장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정치는 현실로 들어오면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의 다른 말로 구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 침을 뱉고, 그 더러운 침을 뒤집어 쓴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무관심을 혹은 가쉽성 관심을 핑계로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에 충실한다. 

그런데 보좌관 생활 10년 국회에서 뼈가 굵을 대로 굵은 작가 정현민은 그렇게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고, <어셈블리>의 진상필을 통해 일갈한다.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매번 물을 먹은 백도현(장현성 분)에 대해 드디어 청와대 칼을 빼들었다. 스스로 국민당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선택한 카드는 진상필. 왜 자신처럼 매번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문제적 국회의원에게 사무총장직을 권유하냐고 진상필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진상필의 의문에, '제갈공명'같은 최인경(송윤아 분)는 이것이 청와대에게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히든 카드요, 재선을 기약할 수 없는 진상필에게는 정치의 중심에 설 절호의 기회라 역설한다. 일개 국회의원인 당신으로서는 해결하기 힘든 해고 노동자 문제와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최인경에게 진상필은 한 마디 던진다. '최보는 기술자 같아요. 정치 기술자!'



정치 공학이 아닌 진짜 정치를 말하는 <어셈블리> 
사무총장직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국민당 의총, 그 자리에서 백도현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그리고 잇달은 국민당 의원들의 성토 발언, 마지막으로 진상필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 진상필은 '제가 사무총장이 된다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반청계와 친청계로 나뉘어 계파 싸움이나 하는 당신들에게 한 명도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소리높여 말한다. 그의 발언에 반발하는 동료 국회의원들에게도 거침없다. 당신들, 국회 앞에서 매일 농성을 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어느 회사 소속인 줄 알고나 있냐고, 정작 국민들의 대표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계파 싸움에, 차기 공천에 눈이 멀어 있는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은 체불되고, 그 사주는 법의 선처를 받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벗어나는데, 그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소리 높인다. 그리고 만약에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을 준다면 사무 총장을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편갈라 싸우는 '정치 공학'이라고 일갈한다. 

<어셈블리>의 시청률은 고전중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그런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13회 진상필이 한 일은 아내가 돈을 맡긴 바벨 타워 시티 파산에 대해 아내의 돈을 받아주는 대신, 그 문제로 '특검'을 들고 나온 진상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배달수의 아들을 통해 진상필의 목을 조르려던 백도현 측의 술수가 결국 진상필의 진심에 마음을 돌린 김규환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다룬다. 그리고 14회, 백도현의 사무총장 직을 넘겨받은 진상필로  결국 통쾌한 '정치 공학'에 대한 질타로 이어진다. 이렇게 진상필에 의한 '진상'이 아닌 진짜 정치'를 다루는데, 왜 시청률이 낮을 수 밖에 없냐고? 

이쯤에서 <정도전>의 화제성을 되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핵심에는 바로 지금 <어셈블리>에서 노회한 반청계 대표로 등장한 이인임이란 인물이 있었다. 즉, 고려말 노회한 정치가 이인임에 의해 벌어지는 '정치 공학', 마치 삼국지의 각 인물들이 일진일퇴를 하듯, 게임처럼 자신들의 정치 생명과 목숨을 두고 벌이는 롤러코스터같은 그 '정치 드라마'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한 결국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없는 정치허무주의까지. 사람들이 생각한 '민낯'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물론 <어셈블리>에도 반청계와 친청계를 중심으로 한, 그리고 정치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백도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 공학의 묘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상필에 의해 설파되는 진짜 정치에 대한 '계몽'이 <어셈블리>에는 결정적이다. 바로 이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참 정치에 대한 갈파가, 역설적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셈블리>에 재미를 덜 느끼게 한다. 진상필의 정치는 분명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그리고 추구해야 할 진짜 정치이지만, 그래서 어쩐지 더 이상적이고,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판 각시탈같은 <용팔이>의 김태현보다도 더. 아내가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 보다도,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 국회의원, 입신영달보다도, 재선보다도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더 고려해야 하는 진짜 정치, 그게 너무 다가오지 않는 웃픈 현실인 것이다. 김규환이 말하듯, 최인경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듯, 진상필은 멋지고, 최고인데, 그가 멋지고, 최고일 수록, 어쩐지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만 가는 듯하니, 역시 현실의 진짜 정치는 '상그릴라'처럼만 느껴지나 보다. 


by meditator 2015. 8. 28.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