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상반기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에서 배우 송중기는 극중 주인공인 이탈리아 마피아의 전담 변호사 콘실리에리로 분했다.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전력을 가진 빈센조, 하지만 그를 입양한 양부모는 강도의 손에 살해당하고 이탈리아 마피아 손에 길러지게 된다.

죽은 마피아의 돈을 찾기 위해 돌아온 고국, 하지만 그는 돈 대신, 자신을 품어 준 변호사 홍유찬의 죽음 앞에서 예의 마피아 콘실리에리의 능력을 발휘해 법의 비호를 받는 재벌가를 징벌한다. '악은 악으로 응징한다', 친모에게서, 그리고 고국에게서 버림받은, 마피아 출신 변호사라는 그의 배경이, '안티 히어로'로서의 빈센조라는 존재 이유가 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법과 상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정의에 대한 갈증을 마피아 식으로 풀어내는 콘실리에리 빈센조에게 열광했다. 

 

 

윤현우의 이생망? 
그로부터 1년 여, 배우 송중기는 또 다른 안티 히어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미 웹툰으로 화제가 되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마피아에게 잔혹하게 복수를 하고, 거대한 포도밭을 태우는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 끌었던 <빈센조>의 첫 회와는 정반대로, 대를 이은 재벌가 순양의 기획조정본부 산하 미래자산 관리팀장으로 등장한 현재 윤현우의 삶은 척박하다. 

동료 직원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대상인 윤현우, 하지만 말이 관리 팀장이지 '재벌가의 미래'인 재벌가 식구들을 위해 그는 변기 뚜껑을 직접 갈고, 감정 조절못해 휘두른 골프채에 피를 보는 처지이다. 그래도 '거절도, 판단도, 질문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그에게 '동앗줄'이 내려온다. 처음으로 한 '판단'으로 새로 취임한 진성준 회장에게 보고한 페이퍼컴퍼니에 관련된 사안, 그 자리에서 진성준은 그를 재무팀장으로 발령하고 그 자산을 찾아오라는 명을 내린다. 홀홀단신 해외로 날아간 윤현우, 여유롭게 돈을 찾았지만 누구하나 도울 사람없는 그곳에서 벼랑 끝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가난한 집안의 사연있는 장남,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무능한 아버지와 고시생 동생을 부양해온 윤현우, 흙수저 출신으로 자신을 갈아 겨우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 어이없는 죽음이라니, 말 그대로 '이생망!'

 

 

1987년의 재벌가 자제로 인생 2회차 
그런데 '이생망'이었던 윤현우의 의식이 깨어난다. 가난한 집안 흙수저였던 그가 깨어난 것은 사라진 순양가 3남, 진윤기의 둘째 아들로였다.  윤현우이던 시절, 쓰러진 진영기의 병실에 찾아와 자신의 사라진 둘째 아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면 지분을 주겠다던 진윤기의 처 이해인, 그런데 이제 윤현우가 그녀의 아들 1987년의 진도준이 되어있었다. 

기존 드라마와는 다르게 금토일, 매주 3회 편성을 한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번 생에서 죽임을 당한  '이생망'의 주인공을 과거로 소환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온 주인공, 언제나 그렇듯 '과거의 역사'를 아는 주인공은 그곳에서 이미 강자이다. 그런데 하물며 비록 서자지만 순양가 3남의 자제라니. 비록 순양가에 발도 못붙이게 하지만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인생 2회차가 우선 <재벌집 막내아들>의 관전 포인트이다. 

과거로 소환된 윤현우, 아니 이제 진도준은 그렇다면 무얼 하고 싶을까? 당연히 우선 그에게 최우선 목표가 된 건, 현재의 시절 윤현우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범인'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가 비밀 문서를 진성준에게 준 것을 안 비서실장 허정도의 배후가 누구일까? 

 

 

그런데 배후를 알기 위한 진도준의 행보는 좀 다른 궤도를 그린다. 이미 현재에서 자격이 없음에도 순양가의 '미래'로 등극한 진성준, 그를 넘어 자기 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진양철 순양 그룹 회장의 눈에 들고자 한다. 바로 이미 살아본 자로써의 '어드밴티지'를 이용해.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이라는 불특정한 재벌가를 등장시켰지만, 역시나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머릿 속에 그 누가 떠오르는 현대사의 재벌가를 배경으로 '아는 자'가 되어 돌아온 현재의 흙수저 진도준의 복수를 넘어선 야망을 통해 ,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양 김 통합이라던가, 다음 대통령이라던가, 지나온 역사의 순간에 던져진 진도준이 그걸 '치트키'로 이용해 진양철의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이 아는 이야기임에도, 아니 아는 이야기라 더욱 흥미를 배가시킨다. 진도준과 함께 역사를 아는 시청자들이 그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래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과거의 재벌을 굽어보는 묘미를 드라마는 한껏 보여준다. 

또한 그에 더해 칼기 피격사건에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저쪽 경기도 짜투리 '분당 땅'을 얻은 진도준이 시세차익으로 거대한 자금을 손에 넣고 그를 이용해 진양철- 진영기 - 진성준으로 이어지는 장자 상속의 룰을 헤집고자 하는 거대한 구상은 <빈센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복수물'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물론 드라마는 그저 진도준의 야심과 복수만으로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1987년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서태지의 은퇴를 둘러싼 현재의 적이었지만, 이제는 '연인'의 인연을 풀어가는  서민영과의 만남, 영화 수입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타이타닉>에 투자하고, <나홀로 집에>를 수입하라는 진도준의 조언은 마치 <응답하라 1987>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빈센조>가 송중기에 전적으로 의지한 드라마였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가 회장 진양철에 이성민에, 진영기에 윤제문 등 연기파 배우의 다수 포진으로마치 현대 재벌가판 <용의 눈물>을 보는 듯 쟁쟁한 연기 경합의 장을 펼친다. 식구들 모두 눈도 못마주치는 진양철 앞에 말간 눈으로 그를 휘두르는 진도준이라니, 이미 그의 복수는 '성공' 중이다. 

물론 그런 보여진 진도준의 광폭 횡보 아래, 과연 윤현우는 왜 진도준으로 깨어났을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드라마는 제기한다. 사라졌다는 진도준, 그리고 친아들이 아닌듯했던 윤현우, 윤현우가 진도준이 된 건 필연이었을까 라는 물음표, 출생의 비밀이라는 우리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마저 <재벌집 막내 아들>을 내포하고 있다. 

<빈센조>에 이어 또 새로운 장르물로 <재벌집 막내 아들>이 배우 송중기의 빛나는 필모그래피가 될까? 무엇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플롯과, 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입성이 기대되고 반갑다. 



by meditator 2022. 11. 25. 20:31

지난 11년간 비만 인구가 6.6%나 증가했다. 고도 비만은 물론, 초고도 비만도 3.3%나 증가했다. 어느새 다이어트는 산업이 되었다. 365일 다이어트를 한다는 사람들, 과연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이 다이어트 보편의 법칙이 모두에게 통용될까? 다이어트라는 말만큼 '요요현상'이라는 용어 역시 일상이 되어간다. 무엇보다  마르고 날씬한 몸이 사회적 몸의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이 찐다는 건 게으르거나 자기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찐 사람들은 자책하고 우울해 한다. 11월 21일에서 23일 방영된 3부작 <다이어트 혁명 0.5%의 비밀은 통용되고 있는 다이어트 방식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통해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자 한다. 

 

 

비만은 유전적 질환이다 
117kg의 도주원 씨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식단도 운동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배고픔과 식욕과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다음 날 발목 등 관절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body mass index, 체질량 지수(BMI), 자신의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세계 보건기구(WHO)에서는 체질량 지수 25~29까지를 과체중, 30 이상을 비만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체질량 지수 25~30 정도까지는 식단과 운동을 통해 체중의 감소가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30이 넘으면 이른바 통상적인 다이어트로는 체중조절이 쉽지 않은 상태로 보고 있다. 

0.5%, 다이어트를 해서 성공할 확률이다. 21일 방영된 <요요와의 전쟁>은 이런 속설을 검증한다. 무려 일년의 기록, 참여한 이들은 다이어트를 할 수록 살이 찌는 '요요'에 시달린다. 다이어트를 꾸준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22일 방영된 <내 몸 사용 설명서>는 극단적 마름을 추구하는 프로아나를 주목한다. 최근 우리 사회 10대에서 1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극단적 마름이다. 찬성'을 뜻하는 Pro-와 '거식증(Anorexia)'에서 딴 Ana를 합성한 단어 프로아나, 체중 감량 성공! 이라는 자랑스러운 용어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자기 학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체중이 정말 바람직할까? 

 

 

요요 현상과 프로아나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 사회의 다이어트 열풍, 그런데 캠브리지 대학 분자유전학자이자 <왜 칼로리는 계산되지 않는가>의 저자 자일스 여 교수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유전자'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즉 비만은 '유전적 질환'이라는 것이다. 

다큐는 구석기 시대인들이 만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소환한다. 풍요, 다산, 생산력의 상징, 늘 먹을 것이 부족했고 그래서 극하느이 굶주림을 견뎌야 했던 인류에게 살찜은 축복이었다. 굷주림을 견뎌야 했던 인류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이 먹고, 그 먹은 걸 축적시키는 비만 유전자가 발현되었다. 즉 더 많이 먹게끔하는 비만의 유전자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든 축복의 상징이었다. 

문제는 그 구석기 시대의 유전자를 가지고 풍요를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인류에게서 발생한다. 풍족한 먹거리의 시대, 하지만 비만 유전자를 가진 인류는 여전히 계속 먹고 다이어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가진 비만 유전자는 얼마나 될까? 연구진에 따르면 인류에게는 천 개가 넘는 비만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한국형 비만 유전자 게놈 지도를 만들어 보니 20개 정도가 등장한다.

 

 
'비만'에 대한 시각을 제고하자 
모두에게 존재하는 비만 유전자, 하지만 주요한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따라 개개인 비만도에 차이를 낳는다. 161kg에서 무려 80kg을 감량했지만 박민석 씨는 요요에 시달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비만이 되기 시작해서 중학교 졸업할 때에는 초고도 비만이 된 민석 씨, 그런데 민석 씨네 집은 어머니를 비롯해 3형제가 모두 비만이다. 

민석 씨의 유전자를 검사해 보니 지방을 더 많이 빠르게 축적하는 FTO 유전자와 , 지방을 좋아하고, 식욕이 폭발하는 MC4R 유전자가 나타났다. 즉 더 많이 먹고, 쉽게 찌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전자만이 문제는 아니다. 타고난 유전자와 식품 환경이 만나 비만이 형성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함께 요가 학원을 운영하는 쌍둥이 자매, 일란성 쌍둥이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몸매를 가지고 있다. 요가 강사를 하는 동생이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언니는 비만과 전쟁 중이다. 무엇이 다를까.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 동생과, 탄수화물 위주이 식사를 한 언니, 오랜 시간 서로의 다른 식습관이 장내 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를 낳고 이것이 비만을 초래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즉 내가 먹는 음식에 따라 좋은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기도 하고, 나쁜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요현상에 시달리는 박보영 씨, 이른바 저탄고지 식사를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 결과, 보영 씨는 지방만 제한하는 식사가 어울린다는 처방을 받았다. 김용철 씨는 지방 분해를 위해 근력 운동이 필요했다. 박형제 씨는 2000 칼로리 이하의 식사와 유산소 운동이 권장됐다. 즉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각자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야 되풀이되는 요요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질환으로서의 비만을 접근하자는 다큐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비만을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비만을 개인의 의지로 보는 사회적 시각, 게으르거나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렇다는 편견에 대해 시야를 터준다. 대부분 오랜 기간 비만과 반복된 다이어트와 요요 현상에 시달린 사람들은 낮아진 자존감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다큐는 '나의 잘못'이라는 족쇄를 풀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획일적인 다이어트 신화 역시 또 다른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내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자 말한다. 프로아나가 젊은 층에 열풍처럼 번질 정도로 마른 몸에 대한 갈증, 날씬하고 마른 몸이 가져온 사회적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장상균 씨는 121kg의 체중을 20kg 감량하여 100kg대가 되었다. 의사는 지금 그의 상태가 좋다고 말한다. 표준 체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내가 가장 편안한 자기 몸의 상태를 찾아가라 다큐는 권한다.  바디포지티브, 자기 몸 긍정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사이즈가 아니라, 내 자신에 맞는 몸을 찾아갈 때라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2. 11. 24. 20:12

셜록에게 셜록만큼 똑똑한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가정으로 <에놀라 홈즈>는 시작된다. 그런데 왜 하필 여동생이어야 할까? 이건 영국을 중심으로 그간 백인 남성 중심의 고전들을 성과 인종적 평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문화적 시도의 일환이다.

 

 

당대 최고의 탐정 셜록, 그를 키운 어머니는 아직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선각자로서 참정권 운동에 나선 패미니스트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 분)였다. 일찌기 오빠들이 집을 떠나고 어머니와 남겨진 막내 여동생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 분), 어머니는 딸에게 격투기를 가르치는 등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에놀라 홈즈 1> 은 에놀라가 전적으로 의지하던 진보적인 어머니가 사라지고 그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탐정 에놀라의 서막을 연다. 

이제 <에놀라 홈즈 2>는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탐정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에놀라 홈즈가 본격적으로 '탐정'일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도 허용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 그런 시대에 여성이 탐정 사무소 문을 열었다고 '문전성시'를 이루겠나. 탐정 사무소라고 들어와 여성이 탐정이라니 질색을 하고 나가는 사람들, 에놀라를 찾아와 오빠 셜록에게 부탁 좀 해달라는 사람들, 이대로 문을 닫아야 하는가 싶은데 소녀 베시가 탐정 에볼라를 찾는다. 성냥 공장에 다니는 자기 언니를 찾아달라는 사건이었다. 

언니 세라는 베시와 함께 성냥 공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기꺼이 맡은 에놀라는 수사를 위해 성냥 공장 직공으로 들어간다. 모든 직공이 다 여성인 공장,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것같은 미성년 베시에서 부터 아줌마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나무판자를 쪼개 여기에 인을 입혀 성냥을 만든다. 베시와 세라가 함께 살던 집을 조사하던 중 성냥 공장과 세라의 실종에 일련의 관계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챈 에놀라는 공장 사무실에 잠입 장부 중 일부분이 뜯겨져 나갔음을 알아낸다. 장부를 뜯어낸 건 세라였을까? 

 

 

성냥 공장으로 간 에놀라 
<에볼라 홈즈 2>에서 실종된 여성은 세라 채프먼, 그녀는 1088년 매치걸스 스트라이크((Match Girls’ Strike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를 주도한 실존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처음 에볼라가 공장에 간 날, 공장 입구에서 남자 직원이 직원들의 얼굴을 살피며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리프스'라면서. 전염병이라며 돌려보낸 이 증상은 사실, 공장 측이 원료를 아끼기 위해 독성이 강한 백린을 성냥 원료로 쓰면서 '아래턱 부분에서 괴사가 일어나며 턱이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증상'이었다. 

애니 베전트라는 언론인이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공장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자의 인중독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폭로한다. 애니 베전트에 대해 공장은 소송 등을 벌이며 대응했지만, '우리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입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1400 여 명의 브라이언트 앤트 메이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선다. 이때 이 파업을 주도한 여성이 세라 채프먼이다. 

<에볼라 홈즈 2>는 이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적 파업을 극중 주요 사건으로 만든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픽션'으로서의 재미를 더한다. 즉, 알고보니 실종된 세라 채프먼은 연인인 공장주 아들 윌리엄과 함께 공장주의 부도덕한 인 사용 사실을 폭로하려 했다는 식이다. 또한 세라는 동료 메이와 함께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그 댄서로써의 능력을 살려 시슬리라는 여인으로 변장, 이제는 진보적인 의원이 된 에볼라의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루이스 파트리지 분)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라의 연인 윌리엄도, 동지였던 메이도 모두 목숨을 잃고 에놀라는 탐정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헨리 카빌이 분한 셜록, <에볼라 홈즈 1>에서는 배우의 존재감에 비해 비중이 적었던 것과 달리, <에볼라 홈즈 2>에서는 에볼라의 성냥 공장 실종 사건과 셜록의 국고 분실 사건이 맞물린다. 두 사건이 만나게 되는 곳, 그곳에서 모든 일의 배후에 드디어 실종 사건의 지도로 '만나서 반가워요 홈즈'라는 기발한 인사를 남기는 '모리아티'가 등장한다. 

 

 

여성 탐정 셜록 시리즈답게 셜록에게 도전장을 내민 모리아티 역시 미라 트로이(그녀의 이름을 재조합하면 모리아티가 된다. 샤론 던컨 브르스터 분)라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에놀라가 가는 곳마다 등장하던 이 흑인 여성,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흑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래서 존중받지 못한 흑인이자, 여성이 백인 남성 셜록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를 농락하는 가장 지능적인 악인이라는 설정은 기발함을 넘어 상징적이다. 

또한 첫 번째 시리즈에서 폭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무력 사용을 마다치 않던 전투적 패미니스트 어머니 유도리아와 그녀의 동지 이지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에놀라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셜록은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빼낼 수 없게 되자,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와 이지스는 자신들이 만든 폭탄을 던지며 에볼라를 탈옥시킨다. 

돌아온 에놀라, 그녀는 오빠 셜록과 남자 친구 듀크스베리와 함께 모리아티의 하수인 그레인 경감 등을 무찌르지만 증거가 되는 문서가 불태워지면서 인중독 사실이 덮힐 위기에 놓이게 된다. 문서가 없으면 안될까? 가장 강력한 증거들, 에놀라와 세라는 동료들이 일하는 공장으로 달려가 여공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바로 영화로 온 매치걸스 파업이다. 

by meditator 2022. 11. 14. 22:14

1931년 최영숙은 스톡홀름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06년부터 이화학당을 다니던 그녀가 9년 만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수학자가 되어 귀국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 대서 특필되었다. 조선에서 여성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졌던 그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귀국했던 시기는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률이 50%를 육박하던 때였다.

 

 

수학자로서 교수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금의환양을 했다며 반기던 때와 달리 자리는 없었다. 5개 국어를 하던 그녀는 어학교수라도 하고자 했으나 그 조차도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수학자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일은 배추와 콩나물을 파는 일이었다. 귀국한 지 6개월, 1932년 스트레스와 생활고로 인한 영양 실조로 최영숙은 2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최고의 엘리트 최영숙에게 허용되지 않은 '직업', 하지만 1920년대 직업 여성의 수는 약 33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 수학 교수는 허용하지 않던 사회가 많은 여성들을 어떤 분야에 고용했을까? EBS다큐프라임 <여성 백년사 -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2부 직업 부인 순례>는 100년 전 여성들의 일과 삶을 살핀다. 

 

 

330만 명의 직업 여성들 
192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식민지 산업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무신을 만들고 옷감을 짜는 등 경공업 위주의 산업화에서 '값싼 노동력'은 필수적이었다. 1929년을 기준으로 일본 남성 노동자가 2.32 엔을 받을 때, 조선 남성 노동자들은 1엔을 받았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6.59엔에 불과했다. 당시 330만의 여성들은 '값싼 노동력'으로서의 몫이었다. 여성들은 조선인이라,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중차별로 인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산업전선에 내몰렸다고 <여성 백년사>는 말한다. 

당시 여교원들은 35원에서 60원을 받았다. 여기자는 25원에서 60원, 반면 여차창의 월급은 25원에서 30원, 연초 공장 직공은 6원에서 25원을 받았다. 쌀 한 가마니가 12,3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방직 공장 고용주는 여공이 삯이 싸고, 사상이 악화될 우려가 없으며, 결혼하면 자연히 그만두어 승진의 부담이 없고, 애교가 많고 나긋나긋하다며 여성의 고용 이유를 밝힌다. 

또한 늘어나는 '직업 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직업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 '여성의 그림자는 나날이 늘어가' 라는 식으로 여성들의 직업적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순종적이지 않고 사치스럽고 반항적이라며 신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부추겼다. 

 

 

그런 환경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1929년 광주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 여학생을 성추행 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경성의 여학생들도 시위를 벌여 항의하고자 하였다. 경성의 13개 여학교 학생들이 모였던 곳은 다름아닌 경성여자 상업학교에 다니던 송계월의 집이었다. 이 사건으로 수감된 송계월은 다행이 집행유예로 나오게 되었다. 

이후 조지아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송계월은 <신여성> 지의 유일한 여성 기자로 특채되었다. 그녀가 쓴 첫 번째 기사는 <내가 신여성이기에>, 남자의 기생충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적 독립의 토대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최초', 혹은 '유일한'이라는 수식어를 지녔던 당시 여성들처럼 그녀의 삶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여성운동을 계급 해방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사회주의 패미니스트였던 그녀는 옥살이 하며 얻은 폐결핵과, 아이를 낳으러 갔다는 둥 '사회의 비열한 공격'으로 인한 상심으로 인해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나는 꼭 사라야겠다. 엇전 일인지 죽을 마음은 조금도 업다. 할 일은 만치, 나는 젊지' 라며 삶에 의지를 불태웠던 송계월,  결국 23살 약관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직업 전선에 나선 모든 여성들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여자가 운전을 하면 호기심에라도 타볼 거야'라는 택시 운전을 시작했던 이정옥은 집을 담보로 잡아 크라이슬러 자동차 2대를 사서 직접 '운수 회사' CEO로 한 달에 600원에서 1000 원을 버는 성공을 거두었다. 요즘으로 치면 '플렉스'의 대상이었던 당시 택시, 당연히 많은 남성 승객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이정옥은 그걸 참아내며 직업부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알렸다. 

 

 

또한 아직 '미용'이라는 인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그리고 대부분 미용실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시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엽주 미용실'을 당시 조선인이 운영하는 화신 백화점에 연 오엽주의 성공도 프로그램은 주목한다. '여성이여, 튼튼하고 건강하라'는 표어를 내건 엽주 미용실은 당대 최고 배우가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갔다. 

열악한 사회적 인식과 근무 환경에도 여성들은 직업을 찾기 위해 나섰다. 20명의 여점원을 모집하는데 180명이 모여들었고, 벼스 여차장 30명 모집에 126명이 모였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떨까? 기자가 된 송계월은 데파트 걸(백화점 직원)로 일할 당시보다는 훨씬 나은 월급을 받았지만, <신여성>이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사에 그녀는 유일한 여성 기자였다. 프로그램은 OECD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 ;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별이나 인종 등의 이유로 조직에서 일정한 서열 이상 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 최하위인 한국의 현실을 말한다. 여성의 91.5%가 스스로 차별받는다고 말하는 삶, 지난 10년 동안, 아니 지난 100년 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by meditator 2022. 11. 13. 20:53

tvn 월화 드라마로 찾아온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랑스 원작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프랑스 시청률 1위 작품으로 시즌 4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작품은 매회 실제 유명 배우인 줄리엣 비노쉬, 모니카 벨루치 등이 극 중 배우로 등장하여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snl 코리아 시즌 4>와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백승룡 피디와 <회사 가기 싫어>의 박소영 작가 등이 함께 리메이크했다. 

 

 

조여정, 이희준, 진선규가 '고객'
메쏘드 엔터를 이끌던 황태자의 발인 날, 그의 무덤 앞에서 그가 일찌기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 진선규가 추모사를 한다. 여전히 대표를 '형'이라 부르며 눈물짓는 진선규, 그런 그에게 맞은 편의 이희준이 '분위기 이렇게 만들고 어쩔 거야'라며 일갈한다. 그러자 진선규 배우는 고인이 즐겨부르던 노래로 추도사를 마무리하겠다며 노래를 시작한다.

마이크를 들고 눈물 머금은 목소리로 진심을 다하는 진선규의 열창, 그런데 진선규의 노래 한 소절이 끝나자 이희준이 나선다. 진선규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뺏으려 하고, 진선규는 뺏기지 않으려 하고,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마이크를 뺏고 뺏기며 노래를 이어가고, 결국 클라이막스에서 절묘한 이중창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부등켜 안는 두 사람,  배우로써 데뷔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을 몰아갔던 애증의 시간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진선규, 이희준, 두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연기가 보장되는 두 배우가,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이중창을 불러제끼는 이 장면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배우의 수상 소감에서도 등장했던 '코를 높였어야 했어'라는 진선규 배우의 이야기가 에드립인지, 대사인지 모르게 등장하는 이희준 배우와의 애증의 해프닝,  그리고 그 해프닝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오래전 대학로에서 했던 사자 분장으로 등장한 두 배우의 '살신성인'의 카메오를 넘어선 '열연'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 연기 잘하는 두 배우와 매니저로 등장한 서현우, 곽선영이 어우러진 한바탕 난장의 현장, 모처럼 배우들의 펄떡거리는 연기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엔터업계 1세대 매니저인 왕태자가 이끄는 메쏘드 엔터를 배경으로 이곳을 직장으로 삼은 연예인 매니저들과 그들의 '생업 전선'인 메쏘드 엔터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을 내용으로 한다. 프랑스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첫 화 우아한 한복 차림의 조여정이 그녀의 이름 그대로  김중돈 매니저(서현우 분)의 '고객'으로 등장한다. 

이제는 20대가 아닌 여정,  그래서 그녀와 작품을 하기로 했던 '타란티노 감독'은 그녀와 하기로 했던 영화에서 20대 회상 씬을 그녀가 소화하기 힘들겠다는 이유로 진캐스팅을 취소하려 한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김중돈, 배우와의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만 차마 그녀에게 나이가 많아서 캐스팅에서 '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현실에서도 이제는 젊지 않은 조여정이란 배우가 그녀가 배우로서 가진 핸디캡을 그대로 극중 캐릭터로 이입한 1화, 저절로 보는 이들이 극중 매니저 김중돈의 마음이 되고 만다. 중돈이를 찾아다니는 여정, 그런 여정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중돈, 눈치없는 신참 소현주(주현영 분)으로 인해 사실을 알게 된 여정은 중돈을 찾아내 자신을 믿지 않는 중돈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수습에 나선 마태오(이서진 분)는 타란티노 감독의 서울 로케에서의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여정의 캐스팅을 살려낸다. 그리고 여정에게도 20대의 캐릭터를 위해 '시술'을 강권하는데, 캐릭터를 위해 시술을 하려는 여정과 그런 여정이 안쓰러운 중돈의 동행, 결국 드라마는 두 사람의 신뢰와 의리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결말을 맺는다. 

여전히 스타인 조여정이 목제 말에 올라타서 말타기를 배운다는 웃픈 현장, 그리고 선그라스로 가린 채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 배우의 현실적 모습과 극중 캐릭터를 오가는 이 날 것과 가공의 경계선에서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의 묘미가 생겨난다. 

이희준과 진선규 역시 마찬가지다. 연기파인 두 사람이 해묵은 애증으로 인해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황태자의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의 오랜 속내를 다 내뱉으며 육박전에 돌입하는 해프닝은 이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배우가 자신의 이름으로 실제와 가공의 캐릭터 사이를 오가며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극중 매니저로 등장하는 서현우, 곽선영, 이서진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진 매니저로 등장하여 이들의 연기를 유연하게 받쳐준다.

스타라는 존재,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매니저들, 그들의 직장 매쏘드 엔터, 이런 '밥벌이'의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욕망과 열정이 생생하게 맞부딪치며 그들이 불협화음이 한 편의 진솔한 화음으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프랑스에서 시청률 1위를 했던 원작답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스토리에 날개를 달아준 건 줄리엣 비노쉬, 모니카 벨루치가 부럽지 않을 까메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진솔한 연기를 보여준 조여정, 이희준, 진선규의 열연이다. 그리고 그 못지 않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이서진, 곽선영, 서형우의 발군의 연기가 정의와 불의가 아니면 드라마가 안되는 듯한 요즘 드라마계에서 모처럼 진솔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드라마볼 재미를 찾아준다. 그래서 궁금해 진다. 다음엔 또 누가 나올까? 또 어떤 배우의 진솔한 모습과 캐릭터의 이중주가 흥미롭게 펼쳐질까. 

by meditator 2022. 11. 9. 20:05

ebs는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여성 백년사-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3부작을 방영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제목을 비튼 듯한 여성 백년사 3부작의 제목,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이를 통해 다큐는 백년 전 그때 남성 중심 사회 속에 첫 발을 내딛은 여성들의 '잔혹사'를 다루며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에는 고달픈 여성들의 삶을 살펴보려 한다. 

 

 

프로그램은 최근 방송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와 같은 토크멘터리 형식을 차용한다. 방송인 안현모, 김현숙, 이승국을 오늘의 패널로 등장시켜, 역사학자 심용환과 함께, 그때와 오늘의 이야기를 견주어 보고자 한다. 

의문의 방에 들어간 김현숙, 안현모, 이승국 세 사람, 그들에게 갑자기 질문이 던져진다. 남성 독립운동가 세 사람을 말하라. 순간 당황했지만, 무사히 세 사람의 독립운동가를 답할 수 있었다. 다음 질문, 여성 독립운동가 세 사람을 말하라. 세 사람 모두, '유관순 열사' 이상 답을 이어가지 못한다. 세 사람의 무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들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는 어떨까? 역시나 우리는 근대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이광수'는 알아도, 이광수가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칭찬을 아끼지 않은 그 당대의 여성 소설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간 김현숙, 안현모, 이승국 세 사람, 192,30년대의 경성 역 플랫폼을 재현한 듯한 장소에서 이들을 역사학자 심용환이 맞이한다. 그리고, 이들을 찾아온 한 사람, 그 시대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복장의 여성은 이제 부산으로 가서 조선을 떠나려는 김명순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만나려는 김명순은 누구일까?

탄실은 어릴 때부터 생각하기를, 누구든지 퍽 빈곤한 집안에 태어났을 지라도 공부만 잘하고 점잖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다
                                                - 김명순, <탄실이와 주영이>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김명순
1915년 매일신보에  19살 동경 유학 중인 여학생이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동경 유학을 가는 거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던 시절, 그 중에서도 10명도 안되는 여학생들은 당연히 주목의 대상이었다. 실종된 여학생이 바로 김명순이었다. 평양 갑부의 서녀였던 김명순은 일찌기 동경 유학을 떠났다. 재학 중 소개로 만난  해방 후 초대 육참총장이 된 당시 일본 육군 소위 이응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며칠 후 학교로 돌아온 김명순, 그녀는 피해자였지만 학교와 사회, 그리고 동료 학우들은 그녀를 '남자를 유혹한 헤픈 여자' 취급을 했다. '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라는 식이었다. 결국 학교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김명순을 그런 처분에 대해 굴복하지 않는다. 귀국을 해서 다시 숙명여고에 졸업한 김명순은 1917년 최남선이 발행하는 <청춘>에 단편 소설 <의심의 소녀>를 응모해 2등으로 당선, 등단을 하게 된다. 이제 막 근대적 소설이 등장하던 시절, '교훈적 주제에서 벗어난 <무정>에 버금가는 작품'이라는 이광수의 극찬을 받으며 김명순은 최초의 여성 소설가가 된 것이다. 

이후 김명순은 '쥐같은 남자에게 짐승같은 팔 힘으로......', '창부같은 계집이라...... 일본 남자와 연애한 줄.....',  자신의 성폭행 경험을 낱낱이 고발한 <탄실이와 주영이>를 1924년 조선일보에 연재한다. 하지만, 주변 문인들은 일찌기 자유 연애를 하며 살던 신여성이었던 김명순에 대해 그녀의 작품이 아닌 사생활을 들어 '협잡'에 가까운 비평을 일삼았다. 

당시 대표적인 사회주의 계열 비평가였던 김기진은 1924년 신성에 <김명순 씨에 대한 공개장>을 싣는다. '착한 처녀인지 보증할 수 없다'라던가, '거친 생활을 한 타락한 여자'라며 그녀의 작품에 대해 '분냄새 나는 시'라고 폄하했다. 

이 단편집을 오해받아온 젊은 생명의 고통과 비탄과 저주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노음니다. 
        - 김명순, <생명의 과실> 머리말 중 


이에 대해 김명순은 <김기진 공고문을 무시함>이라는 글을 당시 신여성에 투고했지만, 잡지 광고에서 등장한 김명순의 글은 정작 발간된 잡지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리고 1925년 시 24편, 소설 2편, 수필 4편이 실린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발표했다. 또한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공채를 거쳐 매일신보에 입사, 이각경, 최은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 번째로 여성 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문인들의 비판을 넘어선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조차, '은파리'라는 필명으로 '남편을 다섯이나 갈았다'던가 식의 가십성 기사를 써, 김명순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할 정도였다. 

조선아, 
이 다음에 나갓튼 사람이 나드래도/ 할 수만 잇는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 
                  - 김명순, 시 <유언> 중에서 


결국 김명순은 더는 조선에서 그녀의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녀는 생활고와 정신병에 시달리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방정환, 김기진,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들조차 '신여성'이자 능력있는 문인이었던 김명순에 대해 파렴치한 협잡을 마다하지 않던 시절, 그 시절에 대해 <여성 백년사>는 당시의 한 광고를 들어 말하고자 한다. 전차에 다리를 드러내고 앉은 여성들, 그녀들의 다리에는 '피아노 한 채만 사주면, 문화 주택만 사주면 일흔 살이라도 괜찮아요.' '돈도 없고, 신경질은 많고, 집세 낼 돈도 없어요', 바로 이 광고가 그 시대가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신여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했던 김명순은 결국 조선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고 프로그램은 말한다. 토크멘터리의 형식으로 '미래를 알 수 없다면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던 과거의 인물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기획된 <여성 백년사>, 과연 선각자였던 김명순의 삶을 제대로 조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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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이 아닌,  주체적 인간상의 조명이 아쉽다
최근 인기를 끄는 토크멘터리 형식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프로그램들에서 우선 눈에 띄는 건, 패널로 등장한 이들의 '감정적인 접근'이다. 당연히 일본 유학 중 성폭행을 당하고, 동료 학생들, 그리고 동료 문인들에게 왕따를 넘어서 발을 못붙일 정도의 수모를 당한 김명순의 삶을 굳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안타까움과 분노가 앞서게 된다. 그런데, 그게 김명순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일까? 외려, 희생양, 사회적 피해자라는 부정적이고 제작진이 말하고 싶은 편의적인 면만이 부각된 것은 아닐까?

실제 김명순은 여전히 가문과 집안에 따라 결혼이 정해지던 당시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유 연애'를 하고, 이를 통해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주장했던 여성이다. 근대 소설의 시발점이 된 이광수의 작품들이 '자유 연애'를 주장한 이유 역시, 근대적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과 의지의 문제를 이를 통해 풀어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은 당시 사회에서 아직 쉬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런 그녀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에 대해 조금 더 차분하게 접근하는 지점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그녀의 자부심처럼 세 번의 일본 유학을 하고, 진명과 이화 등 당시 신여성들이 다녔던 학교를 섭렵했던 그녀는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할 만큼,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대 소설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광수가 찬탄할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었다. 여성 백년사의 첫 테이프를 끊은 여성이라면, 아직 근대적 의식이 채 자리잡지 못한 조선 사회에서 희생된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근대 소설가로서 그녀의 작품의 가치를 조금 더 조명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여성 백년사가 한 면만이 부각된 것같아 아쉽다. 언젠가 교과서에 김명순이 실린다면, 그녀의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김명순을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22. 11. 8. 20:44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르겠지만, 기자 세대와 그 언저리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쥘 베른'의 작품을 한번쯤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꼭 원작은 아니다. 하다못해 고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로도, 소년소녀 명작 전집의 축약본으로, 그게 아니면 성룡 주연의 영화로,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비롯하여,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의 작품을 만났다. 

 

 

그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 작품이라면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아닐까 싶다. 1873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영국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가 프랑스 하인 장 파스파루투를 데리고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영국 식민주의 시대, 그리고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증기기관차가 다니고, 기구가 막 세상에 등장하던 시절, 필리어스 포그는 이러한 '문명적 수단'을 활용하여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클럽 동료들과 내기를 건다.

클럽으로 가는 걸음 수를 정하고, 면도물 온도가 약간 맞지 않는다고 하인을 해고한 필리어스는 자신이 믿는 '과학적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리고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 이탈리아로 기차를 타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 이집트로, 인도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필리어스의 여정을 통해 작가 쥘 베른은 자신의 진보적인 세계관을 펼쳐낸다. 

 

 

21세기 버전 80일간의 세계 일주 
그간 고전을 21세기적 세계관에 맞춰 재해석해왔던 영국의 bbc가 <80일 간의 세계 일주>를 작품화했다. 우리에게는 가장 인기있었던 <닥터 후> 시리즈의 주인공이던 데이빗 테넌트가 전형적인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데이빗 테넌트 버전 <80일간의 세계일주>에는 어떤 현대적 해석이 들어가 있을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일행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점이다. 클럽에서 필리어스의 관심을 끌었던, 80만에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기사를 쓴 주인공, 애비게일이 합류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기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에비게일은 필리어스의 친구였던 아버지의 이름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딴 에비게일 픽스로 자신의 길을 떠난다.

또 한 사람 주목해야 할 사람은 흑인 배우 이브라힘 코마가 분한 하인 파스파르투이다. 흑인 루팡과 여성 홈즈가 새로이 해석되는 시대, <80일 간의 세계일주>는 프랑스 출신 하인 파르파르투를 흑인으로 설정한다.  당연히 유색인종 파르파르투는 그가 가는 곳곳마다 편견과 오해를 맞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런 인종적 갈등을 서사의 씨줄로 삼는다. 싸움을 피해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이 된 그는 사실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보고 도망치듯 떠난 전세계를 떠돌던 이, 원작에서도 온갖 아력을 자랑하던 캐릭터의 업그레이 버전으로 그는 다양한 외국어 구사에, 도둑질까지 해결사이자, 트러블 메이커가 된다. 

2만 파운드를 내기를 걸고 떠난 필리어스, 하지만 그는 원작과 달리, 클럽만 오가는 '샌님'이었다. 심지어 오래 전 사랑하는 여인과 세계 일주를 떠나자 약속해놓고 그녀를 남겨둔 채 도망친 적이 있는 겁쟁이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받은 '시계탑 사진' 뒤의 'coward(겁쟁이)'라는 단어에 뒤늦은 출발을 한다. 

이처럼 드라마는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원작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리버풀조차 가보지 않은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에비게일, 파르파르투 백인 남성, 여성, 그리고 흑인 남성 세 사람의 성장 서사가 된다. 그리고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보적 시각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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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과업이 된 세계일주 
'우물 안 개구리'같았던 필리어스 포그, 그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방문 중, 인도인 여주인에게 당당하게(?) 영국이 철도도 놓아주고 인도를 발전시켰다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그가, 때로는 본의 아니게, 때로는 스스로의 의지로 가는 곳마다 여러 사건에 개입하며 그의 편협했던 의식을 변화시켜 나간다. 

인도에서 마치 '세포이 반란'과도 같은 상황에서, 그는 처음에는 무사히 기한 내에 다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탈영한 용병을 위해 그의 입장에 서서 변호를 아끼지 않는다. 프랑스로 가는 배 위, 처음 타본 배멀리에 구토를 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던 그는 증기 기관차의 나무 벽을 떼서 태우며 무너져 가는 다리를 건너는 모험을 앞장서는 모험가로 거듭난다. 

특히 미국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처럼 백인우월주의자를 호송하는 흑인 보안관과 동행한 상황에서, 그는 백인이자 영국인으로서 그간 그가 가져온 신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무인도에 떨어지고, 감옥에 갇히고, 목숨이 경각에 이르는 상황을 겪으며 백인 부르조아 필리어스의 세계는 깨져간다. '겁쟁이'였던 그는 이제 하인과 그저 여자 기자였던 파스파르투와 에비게일을 기꺼이 '친구'라 부르는 진정한 '신사'로 성장해나간다. 

필리어스 포그가 백인 부르조아로서의 자기 세계에 갇혀 있었다면 에비게일이 넘어야 할 인생의 산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버지가 하던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약하던 그녀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딸이었다. 아버지의 성대신 어머니의 성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향했지만 늘 그녀는 기사를 써서, 그 기사를 아버지가 기사화했는가에 목말랐다. 

하지만 영국 사교계에서 지탄받는 여성에게 사막에서 도움을 받고, 그녀를 통해 뛰어난 기자가 아닌 비겁한 협잡꾼인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되며 에비게일의 세상은 무너진다. 이제 진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에비게일이라는 존재로 세상에 다시 첫 발을 내딛은 그녀, 필리어스 포그를 따르는 기자가 아니라, 때론 그와 파스파르투의 목숨을 구할 정도로 거침없는 모험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혁명가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쳤던 파스파르투, 하지만 프랑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혁명가로 성장한 동생이었다. 그리고 다시 동생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파스파르투, 그는 늘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한 발 비껴선 채,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으로 여행의 일원이 된 파스파르투는 위기와 모험을 함께 하지만 하인이라는, 혹은 유색인종으로서의 규정된 존재론적 고민으로 때론 필리어스를 위기로 빠뜨리기도 하고, 여행 자체가 중단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루팡 급의 파르파르투의 능력치는 늘 위기의 세 사람을 구해내며 하인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만난 인종 갈등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며 늘 도망치기만 하던 그가 비로소 도망자 파스파르투의 딜레마를 극복해 낸다. 



by meditator 2022. 11. 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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